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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나를 십자가로 이끈다 / 허운석

LNCK 2013. 1. 27. 13:07

[허운석 선교사] (3) 십자가 고난에 참예함 - YouTube

 

◈고난이 나를 십자가로 이끈다      사50:4~11, 아6:10          2012.11.10. 출처보기

 

◑이사야서 50장에 나타난 <십자가의 도>

 

본문은 이사야서 50:4~11절까지 입니다.

빌3:10에서 바울사도께서 하신 고백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이것은, 사도바울이 깨달은 <십자가의 도>에 관한 말씀이고요..

그런데 이 <십자가의 도>를, 바울이 제일 먼저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벌써 구약에, 특히 이사야서에, 이사야가 계시로 미리 깨닫고, 다 예언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새벽시간에는, 이사야서 50장의 말씀을 같이 생각해 보는 겁니다.

이번 집회 기간에, <십자가>에 대해서 제가 말씀을 계속 드리고 있지요?

이 <십자가의 도>가 무엇인지.. 그 모습이 여기 본문에서 선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4절,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십자가의 도>를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은, 학자의 혀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 <십자가의 도>는 이성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계시로, 성령으로, 우리를 깨우쳐 주셔야, 학자같이 알아듣게 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주님을 잘 모르는 사람은

십자가를 권면하는 메시지를, 즉 <십자가의 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신자가, 세상 사람들에게 뜯기게 되고, 상하게 되는 깊은 섭리를

쉽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5절,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학자같이 알아듣게 된 종(예수님)’은,  그래서 거역하지도 않고, 물러가지도 않으시고

그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가실 것을..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십자가의 메시지, 십자가의 도>를 학자 같이 알아듣게 된 성도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가지도 않고,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 아직도 <십자가>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성경을 읽어도, 그 십자가의 말씀을 잘 못 알아듣는 거예요.

 

그래서 십자가의 메시지를, 형제들에게 권면 받을 때, 또는 설교를 들을 때,

신경질만 나고, 자존심만 상하지.. 이게 기쁨으로 안 받아지는 거예요.

 

왜냐면 아직까지 내가 십자가에서 함께 죽고, 함께 다시 태어나지 않아서 그런 거에요.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이해시키실 줄로 믿습니다.

 

▶6절,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래서 ‘학자의 혀’를 받았고, ‘학자같이 알아듣게 된’ 성도들은,

그것이 단순히 지식에 그치지 않고,

<십자가의 도>를, 자기 삶에서, 직접 경험하게 되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섭리하십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나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경험시키는 데에 있어서는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게’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로 사는 우리가

겪어야 되는 일에 대해서, 본문을 통해 설명해주시고 있습니다.

 

나에게 때리는 자에게 나의 등을 맡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나를 십자가에 죽여주시는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감사한 일입니다.

 

주님과 연합해서 죽임을 받는 세례를 받는,

이 세상에 대하여 죽고, 이 세상에 대해 십자가에 못 박혀지는

이 사실에 대해

성령께서 지금 얘기하고 싶으신 거예요. 가르쳐주고 싶으신 거예요. 할렐루야!

 

그래서 나를 때리는 자들을 볼 때마다

내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그죠?

 

 

▶7절,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사람은.. 주님이 그를 도우십니다.

혹시나 비방하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의 그의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해 주셔서,

그들의 비방을 다 이기게 하십니다. 나의 내적 인격, 신앙의 내공이 강건해 지는 것입니다.

 

어제 밤에 제 속이 울렁거렸습니다.

그래서 토를 했습니다. 죽을 먹었습니다.

 

새벽4시에 일어나니까 계속 속이 니글니글 합니다. 또 속이 울렁거립니다.

왜냐하면 한방약이 들어가면, 몸에서 좀 울렁울렁 거리게 합니다.

그러나 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죽기를 각오하고, 또 이 새벽집회에 나와서, 강단에 선 것입니다.

 

찬양할 때도, 호흡을 평소보다 크게 해야 하니까, 폐암 말기 환자인 제 폐가, 얼마나 아프겠어요?

폐가 오그라붙었다 들러붙었다 합니다.

이 몸 전체가 고통이죠.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그러나 저는 상관이 없어요.

찬양 할 때는 씩씩하게 부르는 거에요. 할렐루야!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아픈 거 하고 나하고는 별 상관이 없어요.

난 그저 주님을 노래할 뿐이에요.

왜냐하면 그것이 나의 생명이고, 나의 기쁨이니까

오직 주님이 나의 노래이고, 나의 기쁨이시고, 나의 힘이고, 위로니까요.. 여러분도 그렇죠?

 

아무리 파도가 거세게 내리쳐도,

베드로가 물위를 걷듯이, 환경에 상관없이

그리스도를 노래하는 그 행복에 젖어서,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을 악을 이기는 길이고, 모든 환경과 사건을 이겨나가는 길입니다. 할렐루야!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게 될 줄 믿습니다!

 

▶8절,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가인이 아벨을 때려죽인 것처럼,

악이 우리를 때려죽이고, 악이 우리를 핍박하고 고난을 주잖아요.

 

그때에, 즉 십자가의 고난을 받을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의 의가 나타난다는 얘기에요. 할렐루야!

그게 ‘나를 의롭다’ 하신다는, 위 말씀의 의미입니다.

 

이 기회를, 왜 멍청하게, 우리가 자존심을 세우면서, 십자가를 물리치면서

우리가 거절을 해야겠습니까? 그건 어리석은 자지요, 그죠?

 

우리가 예수님을 거꾸로 믿은 거예요.

‘주님 환란을 피해주옵소서..’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 내게 은혜를 더하사, 은혜의 강물이 넘쳐서, 

그 사건과 문제를 넘어서게(초월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피하는 게 아니라, 정면으로 맞부딪혀서, 넘어가게 하십니다.

 

맨날 문제만 해결해주고 어린애 코 닦아 주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 아니에요

자기가 어서 커서 혼자 닦아야지요.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그 삶을 사는 사람은.. 성인이 된 것입니다.

주님께 코 닦아 달라고, 요구 안 합니다.

 

어제 말씀드렸죠? 우리 문제, 아무리 해결해 달라 해도.. 대개의 경우

하나님은 해결을 안 해 주세요.

대신에, 내가 그 문제를 다룰 줄 아는 지혜를 갖도록, 우리를 성장, 키워주시는 거에요.

정면 돌파하게 하신다니까요.

 

▶9절,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보세요. 문제나 대적이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먹어서 스스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피해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굳세고 강건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서 있으면,

대적이/문제가 한 길로 왔다가도, 일곱 길로 물러가는 것입니다.

 

다만 이 모든 것은 <십자가의 도>를 사는 자에게 허락된 은총입니다.

처음에는 그게 죽는 길인 것 같지만, 결국은 오직 그 한 길만이, 내가 사는 길이 됩니다.

 

▶10절,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 어디에 있어요?

주께서 나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시려고,

하늘에 속한 비밀을, 또한 당신을 계시하시기 위해서, 계시적인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말씀을 내 삶에 실제화 시키시려고 하시는, 그 주님의 의도를 빨리 알아차리셔야 합니다.

 

이게 얼마나 지혜로운 자입니까,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이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은지 10년, 20년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땅에 속한 자처럼, 맨날 뭘 달라고 발버둥을 치면,

주님께서 핏대가 나시겠어요, 안 나시겠어요?

그 잠시 있다 없어질 것(세상 복)에 대해서

우리가 목숨을 걸고 환장을 하면 되겠어요?

 

그것 해결해 달라고요? 이미 영생이 해결이 되었는데요..

그 하늘에서 영원히 은총가운데 살 수 있도록 주께서 허락하신 것을!

우리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를 느끼는데

우리의 풍성함이 있고, 우리의 승리가 있는거잖아요!

 

그래서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6

이게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에요?

누구한테 머리털을 잡혀서 흔들리고, 수염을 뽑힌다고 생각해 보세요.

대적이 내 수염을 잡고 흔든다고 생각해 보세요. 너무나 괴롭지만, 그러나.

이 십자가의 길을,

나를 못 박아 주는 이 세상이

이것을 얼마나 우리가 고마워해야 되는지...

(내가 스스로 못 박히기 힘든데.. 못 박아주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근데 우리는.. 세상이 나를 못 박는다고.. 그냥 난리를 치잖아요.

이를 갈면서, 주님께 아주 원수처럼 대들잖아요.

 

남편한테도 그렇고, 새끼한테도 그렇고,

나를 십자가에 못박는 그들을 향해서,

우리는 아주 그냥 사자같이 덤비잖아요.

그건 <십자가의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까?

 

주님이 모범을 보이셨잖아요. 묵묵히 십자가로 승리하는 모범을 보이셨어요.

그러면 우리도 그와 같이 승리에 참여해야 되잖아요.

근데 우리는 복음을 잘못 받아들여서

축복받고 문제 해결하는 것이.. 복음인줄 알아요.

 

그렇게 사단이 우리를 속였어요. 변질시켜 놨어요.

신앙의 주체가 항상 ‘나’니까, 언제나 ‘내 문제를 해결해 주옵소서’ 합니다.

아니면 ‘내 가정’ .. 그것밖에 우리는 몰라요.

 

심지어 그리스도도 상관이 없어요.

그것이 교회요, 교인이겠습니까? 아니지요.

지금 현실이 이렇게 (변질)된 것입니다.

 

8절,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여기에서 놀랄 일 하나를 발견합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의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

이사야50장 전체가,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 십자가를 지는 제자를.. 주님이 의롭다 인정해 주시는 겁니다.

 

▶11절, 보라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여

너희가 다 너희의 불꽃 가운데로 걸어가며, 너희가 피운 횃불 가운데로 걸어갈지어다.

너희가 내 손에서 얻을 것이 이것이라. 너희가 고통이 있는 곳에 누우리라.’

 

정말 무서운 말씀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거부하고,

혼의 역사로, 자꾸 십자가 밖에서 주님을 만나려고 하다가는

‘너희가 내 손에서 얻을 것이 이것이라. 너희가 고통이 있는 곳에 누우리라.’

 

결단코 그리스도의 의를 발견할 수가 없어요,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결국은 환난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영벌까지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만날 때, 나눌 때 마다

말씀을 통해서도, 십자가의 주님의 말씀을 나눌 때

그 자리에 주님의 살과 피가 역사하셔서

우리를 풍요롭게 하시고 우리를 살찌게 하시는

그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적용

 

▶대화할 때

 

그래서 하는 말인데, 여러분들, 성도들끼리 만날 때마다, 이상한 수다 떨지 마세요.

뭐 어쩌고저쩌고, 반찬이 어쩌고저쩌고, 저는 진짜 너무나 힘들어요.

 

성도들끼리 만나면, 예수님 얘기는 하나도 안하고, 그 이상한 세상 얘기만 잔뜩 해요.

참고 들으려고 하는데, 견딜 수가 없어요.

 

우리가 왜 만나요?

‘거룩한 입맞춤으로 문안하라’

 

예수가 우리 안에 계시고, 그것이 우리의 생명인데,

그 귀한 만남의 시간에, 우리는 딴 짓만 하고 있는 거에요.

 

우리는 그런 짓 하지 맙시다.

말씀을 나눌 때, 주의 성찬이 거기에 있어서,

주님의 살과 피가 계시고, 주님이 계시는 것을

 

그래야 우리의 영혼이 담대해지고

그 형제 안에 계신 그 아름다우신 주님을 보고 기뻐하고, 힘을 얻고,

내 안에 계신 주님은 약해 보이고.. 약해 보이시잖아요.

 

내안에 계신 주님은 약해보이고 얼마나 작아 보이는지..

 

그러나 다른 형제를 쳐다보면.. (그 형제를 통해 역사하시는 주님을 보면서) 

'와 주님이 저렇게 크시고 놀라우시구나!'

 

그래서 막 힘을 팍팍 얻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씩씩하게 살잖아요.

그런데 왜 힘 빠지는 세상 얘기만 계속 하냐고요?

 

그래서 우리의 입이 거듭났는지 안 거듭났는지 좀 봐야 해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지..

아니면 세상 얘기 쓸데없는 얘기만 하고 있는지 .. 확인해 봅시다.

세상의 꿀꿀이죽만 좋아하고, 그것만 끊임없이 말하는데, 그가 거듭났겠어요?

 

▶신비주의에 관하여

우리는 밤하늘의 별빛을 아주 신비스럽게 생각해요.

태양은 그냥 자동적으로 떠오르니까.. 관심이 없어요.

 

의의 태양의 신 그 주님의 밝은 빛 아래

온 천하 만물이 싱그럽고 아름답고 찬란하잖아요. 할렐루야!

 

그런데 우리는 밤하늘의 빛나는 그 별빛에 매혹되는 거예요.

철야/금식/깊은 기도 안에서만 주님을 만나려고 해요.

 

그리고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 신비해가지고

거기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 우리올시다.

별빛을 보고 신비해한다 말입니다. 태양을 제쳐 놓고요.

 

내가 내 혼에서 만나고 싶고 느껴지고 싶고 다 그런 것들, (은사, 표적)

그 반짝반짝 것에 신기해가지고.. 거기에 사단이 우리를 매혹 시키는 거에요.

 

기도 해야지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도제목으로 삼고, 집중 기도하세요!

의의 태양이신 그 밝게 보여주시는 주님,

 

그런데 우리는, 그 주님은 아랑곳도 없어요.

그러니깐 마귀가 얼마나 우리를 쉽게 속이고 미혹을 하는지 몰라요.

아시겠습니까? 이해하실 수 있지요?

 

▶십자가를 지신 <믿음의 조상>을 묵상합니다.

오늘 아침에 제가 그렇게 묵상을 합니다.

저는 그 믿음의 조상들에 대한 그 묵상하는 것을 굉장히 기뻐해요

 

제 나이가 이제 60이 되면서

이제는 그 믿음의 선진들의 그런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삶>을 묵상할 때마다

눈물이 흐르곤 해요.

 

그분들이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시기 위해서

오시는 메시아의 영에 동참하시기 위해서

그들이 받으셨던 그런 고난의 흔적들을 생각하면, 가슴속에 눈물이 흐르는 거예요.

 

야곱을 생각해 보면, 어떻게 요셉을 잃어버리며 살았을까..

자식이 죽었다면 본인도 죽은 건데..

자기가 사랑하는 것마다 족족 빼앗김을 받았던 그 야곱의 아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기 위해서,

그가 가진 모든 귀중한 것들이 뺏겨지는 그 아픔을.. 묵상해 봅니다.

 

물론 뺏고 난 다음에, 십자가를 발견한 다음에, 도로 돌려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베냐민마저 잊어버려서 통곡하는 그 야곱의 눈물을 묵상할 때마다

저는 가슴이 저리고 아픈 거예요.

 

우리는 얼마나 내 자신이 눈물을 흘려야만

자녀들을, 야곱처럼 <생명의 계보>에 들어가게 할 수 있을런지..

 

‘하나님 제발 나에게 당신을 아는 심령을 주소서.

내 자식들이, 내 자손들이

야곱의 자녀들처럼 생명의 계보에 들어가기 위해서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해야 될런지..

정말 내가, 당신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주님 알게 해 주시옵소서!’

 

 

◑나를 십자가로 인도하시려고, 가족의 정을 떼게 하십니다.

 

▶우리가 시집가고, 결혼하는 이유 중 한 가지가,

부모에게 못 받은 사랑을, 그 정을, 남편/아내한테 받고, 정을 붙이려고

시집가고, 결혼하잖아요.

 

그래서 결혼해서, 이제 마음을 붙이고, 안정감을 누리고 살고자 했더니,

이 남편이, 아내를 패대기쳐 버리잖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러니깐 이제, 그 마음을/정을 어디다 붙여요? 남편에게서 옮겨서, 자식새끼한테 붙여요.

자식에게 사랑을 주고, 쬐끔 돌려받는 것으로.. 안정감을 누리며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내 정을,

그 사람에게 붙이는 족족.. 그가 망하는 거예요.

 

미성숙한 내 손이 자녀에게 대어지면,

하나님이 잘 키우고 계시던 그 자녀가,

그냥 빗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자녀가 부모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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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녀에게 허탈해지면, 다시 남편한테 붙으려고 해요.

이 마음(정)을 붙여서, 안정감을 누리고 살아볼까 합니다.

 

그러면 남편이 다시 '바로왕'처럼 변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 사랑해야 되는 거예요.

모든 안정감은, 오직 주님께로만 오는 겁니다.

 

사람에게서 안정감을 누리려고 하면,

그가 배우자요, 친자녀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걸 가만히 안 놔 두세요.

 

 

왜냐하면, 택한 자는, 십자가를 지게 하고, 거룩한 계보에 들어가게 해서,

천국에 데려가야 하니까요.

 

그래서 야곱처럼, 라헬을 잃어버리고,

요셉을 잃어버리고, 베냐민도 당분간 빼앗기게 하십니다.

 

나는 그럽디다. 

나는 남편에게 좀 기대볼까 하면.. 남편에게 더 얻어맞는 것입니다.

제가 다시 고독해 지는 거죠.

 

주님이 ‘그 자리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서 잽싸게 ‘어디로 가서 이 마음을 붙이는가요?’

 

자식한테 가 보지만,

그럼 자식이 더 병신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 느꼈어요, 안 느꼈어요?

내가 마음을 붙이는 곳 마다, 내가 손을 대는 자마다,

그 자리가, 그 사람이 망하는 거예요.

 

무서운 사실입니다.

나 때문에, 내 무지함을 깨우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고 그러는지 몰라요.

나하나 구원받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주위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는지 몰라요.

여러분들 그거 모르세요?

 

내가 율법주의자로 있을 때, 내 자식이 희생을 당합니다.

아주 족족이 찌르잖아요, 자녀를 아주 가루로 만들어 버리잖아요.

 

그러던 여러분이 주님 앞에 돌아왔을 때는요,

너무너무 슬픔이 커서, 감당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내가 아버지로부터 죄를 얻었습니다. 주님 내가 (율법주의자로 자녀를 찌르며) 범죄 했나이다.

내가 아담이었습니다. 하나님 내가 죄인 중에 죄인이올시다.’

그렇게 회개하게 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그 중에, 자녀를, 과거에 율법주의자로서, 내가 잘 못 키운 죄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자녀처럼,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발 좀 부자 되는 꿈을 좀 버리시옵소서!

그냥 있는 것으로 족하며 즐기면서 사세요.

아무리 가져도, 거기엔 참 만족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 따라다니면, 자녀처럼, 그게 오히려 멀리 도망가잖아요.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리스도를 얻는데 관심이 있으시지

내가 부자 되고, 잘 먹고 잘사는데 관심이 없어요.

신경 끄세요. 아시겠습니까?

 

일용할 양식의 축복 감사합니다!

오늘 먹여주시고, 살려주시고, 너무 감사합니다... 하실 수 있으십니까?

 

‘마음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나님은 천국을 경험시키기 위해서, 늘 우리를 가난한데로 인도 하시잖아요.

 

그래도 남편을 통해서 먹여주시고, 나를 보호하게 하시고

우리가 철이 들면요, 남편이 '바로 왕'이 아니라, 내 보호자인 것을 알아요.

 

내가 은혜가 덜 차면, 남편이 나를 괴롭히는 못된 바로 왕 같은데,

진짜 은혜를 받으면, 정말 내가 그리스도를 알면,

그때는 내 남편이 나를 보호하는 보호자인 것을.. 너무나 감사하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이렇게 좋은 남편을 만나서

이제까지 나를 보호하고 있을까..’

 

그런데 내가 남편에게 우상처럼 마음을 붙이고, 오두방정을 떠니깐

그 남편이 너무나 징그러워서.. 나에게 마음을 떼는 거예요.

 

그러니깐 오늘 우리 가정이 행복하지 않은 것이 누구 탓이라고요?

‘주님, 다 제 탓입니다!

주님 나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나를 통해서 저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면, 저들이 행복을 느낄 텐데, 평안을 느낄 텐데..

다른데 나가라고 떠밀어도 안 나갈 텐데..

 

하나님 내가 너무 징그러워서, 날마다 저들이 바깥에서 맴도는가 봅니다.

주님, 나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십자가를 진 여인, 레아를 묵상합니다.

 

레아처럼 처참한 여인이 어디 있습니까? 십자가를 진 사람의 모형이죠.

그 여인의 삶이, 세상에 그렇게 처참할 수가 있겠어요?

 

사랑도 하지 않는 남자에게 시집가서, 세상에 그 꼴이 뭐에요?

그렇게 자존심이 망가질 수 있겠어요? 인생이 아니잖아요, 그죠?

 

여자가 남자의 사랑을 못 받는다는 자체가 치욕이잖아요.

한번 생각을 해 보세요. 그 자체가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의 수치스러움, 그 거절당함,

그 버림받음, 그 낮아짐.. 그것을 어떻게 감당을 하고 살았겠어요?

 

한번 묵상을 해 봅시다. 여러분, 성경을 어떻게 묵상하세요?

그저 야곱이 복 받고, 그저 복 받은 구절만 달달달 외워서 묵상하시나요?

 

▶그 여인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또한 내 삶을 비춰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의 몸을 통해서 예수님이 오셨다는 거에요.

 

그 버림받은 여인, 그 거절 받은 여인의 몸에서, 예수님(의 조상)이 잉태되었다는 거예요.

그 여인이, 그 길을 열어드렸다는 거예요. 아시겠습니까?

 

그 예수님의 조상을 잉태하기 위해서,

레아는, 수많은 고초와 고난을 겪어내야 했던 것입니다.

 

나도 오늘 그 여인이 되기 위해서

예수를 잉태하게 하신 레아처럼 되기 위해서,

오늘의 삶의 수난을.. 십자가로 여기고.. 묵묵히 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50장 본문 말씀을 묵상 하면서요!

 

어떻게 십자가의 수치와 모욕과 이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어떻게 주님의 인격을 맺을 수 있겠는가요.

 

우리가 주님을 잉태한다는 것은,

오늘날에는, 우리 속에 주님의 인격의 열매를 맺는 것,

즉,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가 없이,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할 수 있겠어요?

어떻게 예수님이 인격이, 내 속에서 열매 맺혀질 수 있겠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냥 두 손 들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무조건 성령 충만 주시옵소서!

그건 아니잖아요. 그건 반드시 십자가를 통과해서, 내가 죽고 난 다음에 오는 겁니다.

 

과거에 다 제가 해본 거예요. 왜냐하면 부흥사들이 다 그렇게 해라고해서

아주 그냥 나도 그렇게 열심히 했죠. 나도 힘빠지도록 열심히 했죠.

그 당시 제가, 제가 얼마나 금식했는지.. 골다공증 60%까지 내려간 거 아시겠어요?

 

혼으로 주님을 그냥 주님을 만나는 날을, 열심이 너무나 특심해서

그래서 누가 은혜 받는 것을 보면, 제가 눈에서 새파란 불이 나오는 거예요.

내가 먼저 안수도 받아야 되고, 내가 먼저 맨 앞에서 펄펄 뛰어야 되는데..

 

왜냐하면 그 은혜가 다른 사람한테 가면, 제가 곤란하잖아요.

내가 주님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 은혜가 다른 사람한테 끼어 들어 갈까봐,

 

‘다른 사람 붙들어 매고, 내가 먼저 받아야지..’ 그랬던 사람이였어요.

왜냐하면 그렇게 가르침을 받았으니까요. 방향이 틀리면서도, 열심만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성경을 깨닫고,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보니까

‘아니올시다!’ 그동안 잘못 믿었던 충격이 얼마나 컸겠어요?

 

나중에는 사단이 제게 역사해서,

남편이 별로 기도를 안 하는 것 같아서, 장로교 신학대학교 3학년 때인데,

제가 남편보고 이혼을 하자고 했어요.

 

그래가지고 우리 남편이, 이혼하기 싫어서, 금식기도 20일하러 갔다가

40일 금식기도를 했어요.

 

그 40일 후에, 받은 기도 응답이

<인적 없는 시골교회에 가서, 나사렛과 갈릴리의 삶을 배워라>

그것이 남편의 40일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나는 우리 남편이 40일 금식기도하고 나서,

능력 받아 큰 종이되면, 그 후광으로 좀 편안하게 살까 했더니

(남편이 설교 잘 하면 얻는 것도 많잖아요. 존경받으니깐)

그런데 주님이 뒤통수를 치신거지요.

그냥 그래서 시골로 내려가 가지고, 6년 동안 나무를 해가면서 불 때면서 살은 거죠.

 

다시 레아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레아가 그래서 그 자식들의 이름을 다 짓잖아요.

 

-루우벤 (아들을 보라.. 라는 뜻 - 그래서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라)

-시므온 (들으셨다.. 라는 뜻 -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받지 못함을, 내 통곡을 들으셨도다)

-레위 (연합 - 이제 내가 남편과 연합하리라)

-유다 (찬송 -이제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라.)

 

그 남편의 사랑을 한번 받아보고 싶어서,

십자가 없이, 사랑을 받아보고 싶은 그 환장하는 마음이 미치잖아요.

 

그러나 나중에 유다를 낳으면서,

레아의 신앙이 성숙해지고, 그가 자유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유다!

 

이제는 남편 사랑이 없이도, 주님 때문에 부유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를 통해서, 주님이 오시잖아요.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든지

우리 생을 통해서, 주님을 드러내시는데, 열심이 있으신 거예요.

 

그것이 우리의 참된 부요이기 때문에, 우리의 문제 해결이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의 모든 것에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마치는 말

저도 아주 죽도록 암까지 앓아가면서

‘그것이 그렇구나’ 하는 것을, 비로소 알아 왔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늦게나마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깐 여러분들이 제 설교를 쉽게 듣지 마시옵소서! 아시겠습니까?

 

내 눈에서 피같은 눈물이 강같이 흐르고

그 고독의 아마존에서 그 세월동안에 얼마나 가슴이 터지도록 울었겠어요?

여러분은 상상을 못하실 것입니다.

 

그 흘렸던 눈물이, 땀이

그러면서 결국은 그리스도를 얻고,

내가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그 놀라운 은총, 이것이 구원이고, ‘의’였구나!

 

그리고 모든 성경이 해석이 되는 거얘요. 그 비밀이 열려지는 거예요.

-구속의 역사

-내가 계시적인 삶을 살아내야 된다는 것

-이것이 <생명의 계보>에 내가 들어간다고 하는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얻는다는 것

-내가 십자가 없이 안 된다는 것

-그리스도께 복종 없이 안 된다는 것

 

예수님조차도, 아들이시라도 그 받으신 고난을 통해서 순종을, 

고난을 통해서 순종을 배운 거예요.

고난은.. 성도의 삶에 필수 코스라는 것입니다. 무슨 죄지어서 받는 게 아니라!

 

그런데 여자는 더 쉽게 십자가 질 수 있습니다.

남편의 말에 그저 기쁨으로 예스 하는 거예에요. 아주 그게 승리에요.

자기 스스로 기쁨으로 십자가를 질 줄 아는 그 부유함!

 

그것이 바로 제가 성경을 읽다가 발견한 놀라운 말씀입니다.

나는 이것을 읽을 때마다, 얼마나 멋쟁이 같은 마음이 드는지 몰라요.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아6:10

 

전 아주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행복한 거예요.

-주님과 함께 죽고 일어난 이 여인,

-영적 전쟁을 할 줄 아는 이 여인,

-남편 되신 주님께 순결을 드리기 위해서 전쟁을 했던 이 여인,

-죽음을 불사했던 이 여인의 그 아름답고 아침빛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밝고 깃발 세운 군대 같이 이 여인..

이 모습이 그리스도의 신부(성도인 우리 각자)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