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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3

복음의 첫 마디 / 데이빗 구직

LNCK 2013. 2. 6. 11:24

◈복음의 첫 마디          눅24:46, 행2:38                      출처보기

 

by David Guzik, 영어설교 번역

 

◑복음의 첫 마디는 ‘회개하라’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이, 또한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신자들이

많이들 ‘복음의 첫 마디’를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의 첫 마디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아십니까?

 

어떤 사람은, 복음은 ‘사랑’으로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요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렇게 나오니까,

복음의 첫 마디는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널리 사용되는 4영리도, 복음을 ‘사랑’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막연하게, 복음은 ‘소망’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예수 믿고 천국가세요!’를 복음이라고 생각하니까,

복음의 메시지는 ‘소망’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1. 세례요한이 입을 열어 전파한 복음의 첫 마디는, ‘회개’였습니다.

 

마3:1~2,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여러분 중의 일부는, ‘세례요한은 좀 독특하고 극단적인 사역을 해서 그런 게지,

다른 사람은 안 그럴 거야.. 다른 사람은 사랑의 복음을 전했을 거야!’ 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2. 그럼 ‘사랑의 예수님’이 전파하신 복음을 살펴봅시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전파하신 복음의 첫 마디는,

역시 ‘회개’였습니다.

 

마4: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도, 세례요한과 마찬가지로 “회개하라”로부터 시작합니다.

복음의 첫 마디는,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 “천국 소망을 가져라”가 아닙니다.

 

▲3. 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예수님의 파송을 받고서, 전도하러 나갈 때,

그들이 전파한 복음도.. “회개하라!”입니다.

 

막6:12,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people should repent

 

should (반드시) 라는 말을 주목하십시오.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개역에는 ‘반드시’ 라는 말의 번역이 빠져 있네요.

 

열 두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며 복음을 전파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 곁에서 들은 복음의 메시지의 핵심이 ‘회개’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는 ‘회개’가 빠져있습니다.

먼저 자기 죄를 깨달아야.. 회개하게 되고.. 구세주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복음의 첫 단추는 ‘죄책(죄를 깨달음)과 회개’인 것입니다.

 

그런데 첫 단추를 끼우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부터 전파합니다.

‘복음을 믿으면 세상에서 잘 살게 된다’고 전파합니다.

그건.. 잘못된 복음입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는 복음입니다.

 

▲4. 그래도 여러분은 혹시, ‘회개하라’는 메시지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까지의 복음의 메시지이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구원 사역을 완성하신 다음에는,

그 복음의 메시지가 어쩌면 달라졌을거야!..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40일간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지상명령’을 주실 때,

그때 가르치신 복음도, “회개”의 메시지입니다.

 

눅24: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예수님이 지상명령을 주실 때, *지상명령은, 가장 크고 중요한 명령이란 뜻입니다.

그 지상명령은 한 마디로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고, 복음의 증인이 되라’는 것인데,

그들이 전파하는 복음의 내용은, 위 본문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 장래의 소망’ 따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회개와 죄사함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영어로는 ‘repentance and remission of sins’입니다.

 

오늘날 우리 선교사들이 해외에 나가서 전파하는 복음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회개와 죄사함을 받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 믿으면, 가난한 여러분도, 서구의 기독교 국가들처럼

잘 살게 된다’는 복음은, 혹시 아닙니까?

 

▲5. 그러면 또 일부 사람들은,

‘아직 아냐, 복음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검증하려면,

오순절에 성령이 임한 후에,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메시지를 살펴봐야 해.

어쩌면 오순절 성령이 임하신 후에는,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그 내용이 달라졌을 수 있어!’

하실 것입니다.

 

그럼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베드로의 첫 설교에서도,

베드로가 전파한 말씀은 ‘회개’입니다.

 

행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것은 베드로의 ‘첫 설교’ 중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위에서 예수님과 사도들의 복음의 첫 마디가 ‘회개하라’였는데,

 

오순절 성령강림 후 베드로의 ‘첫 설교’를 살펴보면,

비록 ‘회개하라’는 말이, 설교의 첫 마디에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설교의 중요한 주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세례를 받으라)’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베드로가 전파한 복음에는,

그의 첫 설교부터, 회개가 빠진 복음이 아니라,

<회개를 중심으로 한 복음>을 전파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회개는.. 복음의 첫 단추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첫 걸음, 첫 시작입니다.

 

행2:38절의 베드로가 전한 복음과

눅24:47의 예수님의 당부를 비교해 보십시오.

‘repent and remission of sins’ 즉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으라’는 내용이

공통적으로 발견됩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의 당부를, 충실하게 이행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님의 당부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적당히 바꾸어서, ‘듣기 좋은 복음’을 전하지는 않습니까?

 

▲6. 그러면 또 어떤 사람은

‘에이, 그건 어쩌다가 한 번, <회개하라>고 설교한 거지,

계속적으로 <회개하라>고 설교한 것은, 아닐 거야..’ 라고 딴지를 걸 수 있습니다.

 

그러면 베드로의 두 번째 설교를 보십시다.

행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무조건 ‘예수를 믿으라’ 하지 않고,

‘너희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잠깐 회개가 무엇인지, 잠시 한 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회개는.. 자기 마음에 강한 죄책 conviction of sin이 생길 때,

그래서 ‘내가 정말 죽을 죄인이구나, 지옥가기 딱 알맞은 죄인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진심으로 죄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저 맨 정신에, 배운 지식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 성령께서 내 마음에 죄책을 주셔야 합니다.

물론 나와 성령님의 상호작용, 둘 다 필요합니다.

 

내가 회개할 때, 성령님이 죄책을 주시고,

순서를 바꾸어서 볼 수도 있습니다.

성령님이 죄책을 주시면서, 내가 더 회개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론과 지식으로 하는 회개가 아닌, 어떤 신비적 요소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보통, 복음이 전파될 때, 이 신비적 작용이 일어납니다.

어제까지는 내가 죄인인줄 몰랐는데,

오늘, 설교를 듣다가, 전도를 받다가.. 신비하게 내 죄가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전파할 때, 성령의 역사를 간절히 의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지식이 아니라, 성령의 신비적인 역사이니까요!

 

▲7. 그렇다면 베드로만 그렇지, 혹시 사도바울은 다르지 않을까요?

바울은 로마서에서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강조했으니까,

아마 그가 전한 복음에는 ‘회개’라는 요소가 빠져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사도행전에서 사도바울의 첫 설교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파할 때, 그가 언급한 말도 ‘회개’입니다.

 

행13:24,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바울은, 복음에 ‘회개’가 선행되어야 함을 인정한 것입니다.

 

또한 사도행전에서 사도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전한 복음을 살펴보십시다.

 

행26:19, ‘아그립바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20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should repent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위 구절을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이,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가서

전한 복음의 메시지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자기 입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하고 should repent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고 전파한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과 세례요한이 전한 복음의 첫 마디가 <회개>였고,

복음서에서, 열 두 제자들이 나가서 두루 다니며 전한 복음의 메시지가 <회개>였고,

 

사도행전에서 사도 베드로와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 내용이 <회개>이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회개란 무엇인가요?

 

회개에는, 나를 회개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성령의 역사>와 아울러,

또한 <내가 실제로 회개>해야 하는 두 측면이 동시에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회개를 그저 ‘죄송하다고 느끼는 것 feel sorry’라고 생각합니다만..

 

회개는 그리스어로 ‘메타노이아’인데,

‘메타’와 ‘노이아’의 합성어입니다.

 

메타는.. change, 바꾸다는 뜻이고

노이아는.. mind, thinking 즉 생각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일단 ‘생각하는 방식,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인데,

좀 더 설명이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내 생각 중심’으로 살았다면, 이제는 ‘믿음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세속적 가치관 중심’으로 살았다면, 이제는 ‘천국 영생 가치관 중심’으로 바뀌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변화는, ‘이제 내가 앞으로 변화되어야지’ 하는

내 결심과 결단으로 인한 변화가 아닙니다.

 

물론 자기 결심과 결단도 필요합니다, 없어서는 안 됩니다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성령의 감화 감동, 즉 은혜의 역사로 인한 변화>입니다.

그것은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는 것(즉, 거듭남)처럼.. 내면이 완전히 달라지는 변화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예수 믿는 것을,

자기가 살고 있는 삶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거기에다 ‘구원자 예수’ 한 분을 더 보태는 것으로..

그래서 그 분의 도움으로 내 삶이 조금 더 나아지는 것으로.. 쉽게 생각합니다만,

그것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회개 빼고,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장애아, 기형아로 태어나는 아기가 있는데,

만약 여러분 중에 누가 ‘자기 삶의 성공을 위해서, 예수 믿음을 하나 더 보탠 것’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신자의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장애아, 기형아’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어떤 신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보면,

그런 ‘장애아, 기형아 신자’를 낳고 있습니다.

그건 복음이 아닙니다.

 

▲회개에는,

-하나님이 나를 회개로 인도하시는 측면이 있고,

-또한 내가 열심히 회개해야 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둘 다 필요합니다.

 

먼저, 사도바울이 회개한 것은, 하나님의 강권적 인도였습니다.

성경에 그런 내용도 반드시 나옵니다. 행5:31 등.

 

내가 아무리 회개한다고 발버둥 친다고,

내 마음에 죄에 대한 죄책이 생기면서, 진심으로 회개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입술로, 피상적으로, 지식으로 회개할 수 있을지 모르나,

진심어린 회개는 물론이고,

회개하고 나서도 ‘하나님이 나의 회개를 받아주셨다’는 확신은,

오직 성령의 역사, 은혜의 역사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 예수님, 베드로, 사도바울이 전파한 복음은

‘회개하라!’ 였습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회개를 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뜻을 거스려서, 내가 회개도 안 하는데,

강권적으로 회개로 인도하실 수 없다고 봅니다.

 

(이 말은, 위에서 말씀드린 ‘은혜로, 성령으로 내가 회개하게 된다’는 주장과 반대되는 개념이지요?

특별한 2%의 예외가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는... ↓)

 

대개의 98%의 경우는,

평소에 자기가 성실히 회개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어느 날, 은혜로, 강력한 회개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회개해서,

그 자기가 회개한 ‘공로’로

내가 구원을 얻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위에서,

회개는 <하나님의 역사, 성령의 역사, 은혜의 역사>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물론 동시에 그것은 <내가 회개해야 하는 책임>도 있습니다.

 

둘을 조합하면 ‘하나님이 나를 회개로 인도하신다’ 라는 표현이 되겠습니다.

회개로 인도하실 때, 내가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회개로 인도하시는데도, 내가 회개 안 하고 버티다가,

더 심하고 호되게 징계를 당하는 것입니다.

 

지나고 보면, 돌이켜 보면,

내가 회개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주님의 은혜의 역사였습니다.

 

그 은혜의 역사와 동시에, 내가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죄를 끊는 결단이 있어야 하고, (물론 은혜 아래서)

내 의지로,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물론 성령의 인도 안에서)

 

주님의 은혜의 역사와

나의 성실한 회개가.. 둘 다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 믿음! 하는데,

그 믿음은, 회개로부터 출발함을 잊지 마십시다.

 

그리고 <회개와 믿음>은, 젓가락 두 짝처럼, 항상 같이 붙어 다니는 것입니다.

성경에 실제로, 회개와 믿음이 같이 나오는 구절이 많습니다.

 

그래서 <회개 없이는>

구원 salvation 도 없고,

회심 conversion, (즉, 삶의 방향을 바꿈)도 없고,

칭의 Justification 도 없고,

죄용서 받음 Forgiveness 도 없다는 것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