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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기뻐하는 단계로! / 허운석 선교사

LNCK 2013. 2. 12. 13:41

 

◈고난을 기뻐하는 단계로!            고후12:10, 신8:2                       12.11.11. 출처보기

 

◑환란과 궁핍과 곤란을 기뻐하는 수준까지 올라가야

 

제가 암투병의 악전고투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배운 교훈은, ‘환란과 곤란을 기뻐하는 신앙’입니다.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사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후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사도바울처럼, 약한 것들과 궁핍과 핍박을 기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런 것들을 멀리하게 해 달라고 금식/철야/작정기도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곤란’한 일을 면하게 해 달라고, 특별헌금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내 유익을 위해서

항상 신앙생활(기도, 헌금, 봉사)을 합니다. 이건 잘못입니다.

 

아니, 내 약한 것, 능욕 받는 것,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한다’고요?

눈을 씻고, 성경을 다시 쳐다봅니다.

그랬더니 사도바울은, 정말 그런 것들로 인해서, 기뻐했습니다.

그 이유는 ‘약할 때 강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얻은 사람, 십자가를 아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기쁨입니다.

 

▲아, 제가 얼마나 그리스도께 충성한 사람인데,

6년 전에, 암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너무나 많은 제 주위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저렇게 아마존 선교지에까지 나가서 충성한 사람인데,

축복을 못 주실 망정, 암을 주셨다고?’ ..

그래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제 질병으로 인해서, 시험에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판단을 했습니다.

‘일은 잘 했을런지 모르지만, 그 속에 죄가 가득한 모양이야,

아니면 자아가 아직 안 깨어진 모양이야..’ 그렇게 저를 정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병원에서, 암이 퍼진 폐를 일부 잘라내고, 누워있으면서 제가 저를 봅니다.

저는 아주 그 재미로 삽니다. 무슨 사건이 터지면 너무 기쁩니다.

왜냐하면 제가 더 탄로가 나니까요.

 

-제가 어떤 종류의 인간이며,

-내 속에 뭣이 숨어 있다가 발견되는지, 들키는지.. 그래서 회개하게 되는지..

저는 이게 기쁨이고, 성령충만입니다.

 

제가 으악 하며 비명을 지르면서도, 회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주님 좀 괜찮아 졌는줄 알았는데, 아직 여전히 부족하군요,’

 

물론 그렇게 들킬 때, 오히려 절망으로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약 이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직 자아가 스스로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즉, 아직 자기가 옳은 줄 알고, 쓸만한 줄 아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깜짝 놀라서, 다시 나를 돌아보고 회개하고,

그래서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이.. 성령의 충만입니다.

 

여기에 바울 사도가 기뻐한다고 했잖아요?

이것이 성령충만 아니겠습니까!

 

▲그때 제가 암으로 죽느니 사느니 했는데

그때 저는 아무런 감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웠던 것은,

분명히 사탄이 찾아와서 하나님 앞에 저를 참소했을 것입니다.

욥기에 나오는 것처럼요.

 

‘하나님, 그를 치십시오. 그러면 그가 주를 대하여 욕을 할 것입니다.

분통을 터트리고, 노발대발 할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나 놀랐습니다. 제 마음이 평온한 것입니다.

 

부모가, 애가 작은 사고를 치면, 노발대발 하다가도,

애가 큰 사고를 치면, 마음이 오히려 차분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심정과 같다고 할까요?

사람이 너무나 엄청난 일을 당하게 되면,

오히려 심정이 차분해 지는 것입니다.

 

▲제게 엄청난 통증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은 상태라서, 지금 이렇게 설교하고 있지만

그 통증은 상상을 초월하는 통증입니다.

암환자의 통증은,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인간으로서는 어떻게 참아낼 수 없는, 그러한 고통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여러분들도 저처럼 아프면,

오로지 고통 밖에는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이 무슨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뜨겁고 아파죽겠는데..’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은혜고 뭐고 아무 생각이 안 나고,

오로지 ‘예수님’이라고 하는 그 단어 하나만 안 잊어버리고 버티며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은혜도, 다른 것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고통 자체가 저를 고문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 다른 감각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 잔잔한 평화가 있었습니다.

후회를 하거나, 세상에 대한 어떤 미련이 없었습니다.

그냥 당하는 겁니다. 그냥 당하면서 가는 거죠.

 

▲그랬을 때 제가 조금 안심했습니다. 욥처럼, 제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으니까요.

 

그 고통을 당하면서, 제가 깨달은 교훈이 바로 이것입니다.

환란과 곤란을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저는, 그것을 기뻐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너무 율법주의로 살았을 때,

내 마음에 하나님께 기도해서 못 받은 그 앙심이 제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들켰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하나님께 받은 상처가 너무너무 많을 수 있습니다.

내 욕심을 따라서, 기도를 너무 많이 해서..

기도한 만큼 원한이 사무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응답을 못 받은 게 너무 많았으니까요.

 

기도를 작게 했으면, 실망도 작게 했을 터인데,

기도를 금식, 철야로 엄청나게 많이 했는데도, 응답을 거의 못 받으면,

그 실망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여러분이 기도를 많이 안 하셨으면, 이런 심정을 잘 모르실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엄청 세게 했는데도, 하나님이 전혀 감감 무소식이면,

사실 자기 속에서 다 칼을 갈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신뢰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도대체 제 기도를 듣기나 하십니까?’

 

그러니까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 좀 어떻게 잘 되게 해 달라고 그랬는데,

영 하나님이 제 말을 안 들으시거든요.

 

그러니까 그게 막 곪아터져 가지고..

그런데 내가 감히 하나님을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대신에 스스로 자폭을 해 버립니다. 하나님께, 제가, 심하게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자폭을 해서, 만사에 살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왜 내가 그렇게 죽고 싶은 마음이 충만했는지..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고 좋아했는데.. 그때는 죽고 싶었습니다.

죽지 못해 안달이 났습니다. 자폭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있는데, 어느 날 주님이 제게 이런 마음의 감동을 주셨습니다.

‘네가 왜 그러고 있느냐? .. 네가 살려고 하는 마음을 가질 때까지..

네가 나를 <기뻐>할 때까지, 암을 통해서, 내가 너를 쥐어짤 것이다.’

라는 감동을, 제게 주셨습니다.

 

‘이 세상을 내가 이렇게 아름답게 창조하고,

 

네게 이 복을 주는 것을 네가 경험하고 와야 되지 않겠느냐.

 

네가 내게 원한에 사무쳐서, 나를 죽일 수는 없고,

 

네가 스스로 자폭해서 영적인 자폐증에 걸린 것.. 그 죄를 회개하여라.

 

그리고 고난과 환란과 궁핍을 기뻐하는 수준에까지 올라가라.’

마음의 감동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이 간증을 드리는 이유는,

여러분도, 저와 비슷한 처지나 경험을 이미 하셨거나,

아직 안 하셨으면, 앞으로 거기에 이르게 되실 것입니다.

 

그때 자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붙잡고 씨름하지 마시고,

빨리 항복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환란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고후12:10

 

그러나 저는 기가 쎈 사람이니까, 계속 버틴 것입니다.

‘나는 죽고 싶다. 죽고 싶다.’ 그 마음이, 제 속에서 뿌연 연기처럼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암을 통해서, 저를 교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하도 선교비 달라고 울었는데 안 들어주신 것,

그것 때문에, 제가 자폭해 버렸습니다.

 

진짜 저는 선교비 달라고 너무너무 울었습니다.

‘주님, 나 먹고 살자고 지금 그러는 거예요?, 당신 자녀들 먹여 살리자는 건데, 왜 안 들어줘요?’

그게 너무 원한에 사무쳐서, 제가 그만 자폭한 것입니다.

 

주님은 ‘지가 구해놓고, 지가 낙심하고 스스로 자폭한 것이다

내가 언제 그렇게 구하라고 했느냐?’ 하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너무 대들지 마십시오. 그게 도가 넘어서, 자폭해 버리지 마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쎈 것을 주셔서, 그를 항복시키십니다. 저를 보십시오.

 

▲최근에도 제가 한 가지 시험에 들 뻔 했습니다.

우리 딸 시집 잘 가게 해 달라고, 그렇게 오래도록 제가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결과를 놓고 보니까,

우리 딸이 30대 초반인데, 아직 시집을 못 간 것입니다.

게다가 딸의 친구들이 다 시집 간 것을 보면, 제 속에서 막 화가 나는 것입니다.

 

아니, 기도를 안 했으면, 시험에도 들지 않을 것인데,

그렇게 딸의 결혼 문제를 놓고, 오래 기도한 결과,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응답을 놓고 볼 때, 하나님이 또 싫어지는 것이지요.

정답은 이 때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뻐하는 것’인데도.. 그게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제게 이런 감동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주님은 나의 노래, 주님은 나의 기쁨, 오직 주만 나의 사랑!

이 고백이 진심으로 나와야만, 네 딸이 시집을 갈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에, 각자의 소원이 있습니다.

이 소원을 무조건 우리가 간구하고, 강청하면 안 됩니다.

 

처음에, 믿음이 연약한 초신자 때는, 간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십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사탕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빨 썩으니까요.

 

그래서 ‘사탕을 주세요!’ 하고 아무리 기도해도, 금식하고 철야해도,

하나님은 꿈쩍도 안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속에 어떤 소원이 있을 때는,

‘주님 이걸 어떻게 기도를 하면 좋겠습니까?’

이렇게 분변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무조건 내 뜻을 내세워서, 강청하면.. 결국 나만 손해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해서, 저처럼 암까지 걸릴 필요가 없습니다.

제 속에 있는 그걸 끄집어내시려고,

그 자폭한 것, 그래서 살 의욕을 안 갖는 이 마음,

하나님을 섬기다가 시험에 들어서 이 죽어진 마음,

 

이 마음을 살아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러한 일(암)들을 연출하셨던 것입니다.

지금은 얼마나 주님으로 말미암아 기쁘고 감사한지요!

 

▲또 사람이 목숨이 다 끊어지게 되니까..

정말 민감하게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성도 인디오 중에, 아주 못된 인디오가 한 명 있었습니다.

5년 동안 우리가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는데,

저는 그가 너무나 지겨웠습니다.

 

아는 것도 하나도 없으면서, 늘 잘난 체 하고

수업 시간, 예배 시간을 흐트러뜨리는데, 아주 능했습니다.

 

그럼 제가 그를 강하게 흘겨봅니다. ‘조용히 해!’

그런데 때로는 사람 눈에서 살기가 뻗쳐 나올 때도 있습니다.

제 속에서 너무 화가 치밀어 오르면, 마치 레이저 광선처럼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때는, 그 말썽쟁이 형제가 정말 눌릴 때가 있습니다.

못 되게 굴다가, 갑자기 180도로, 또 풀이 확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제 눈의 레이저가, 그의 기를 확 꺾어버렸던 것입니다.

 

내가 죽을 때쯤 되니까, 그것 까지 생각이 자꾸 났습니다.

눈을 살기로 쏘아본 것도, 주님이 다 걸러내셨습니다. 다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런데 제가 지금 여러분이 보시기에 얼굴이 훤합니다.

그 비결을 지금부터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제가 말기 폐암에다가, 암세포가 장에도 잔뜩 퍼져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아직 멀쩡하게 보이는 이유가 있다면, 아마 이것일 것입니다.

 

▲저를 핍박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제게 와서, ‘선교사님은, 아직 깨어질 게 많다고..’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기도해서 팍 나았는데, 왜 선교사님은 아직 못 나았느냐고?

좀 더 믿음으로 기도하시라고!’ 그렇게 사랑의(?) 권면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글쎄 나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 줄 모르겠어요.’

그러면 또 나를 권고하고, 무시하고, 야단칩니다.

제가 암환자니까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이렇게 되었으니까, 겸손히 책망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시험에 들지 않는 비결이 있습니다.

‘주여 제가 옛날에 저 짓을 충만하게 했습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더니만, 지금 제가, 뿌린 것을 거두고 있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나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하니까

제 얼굴이 훤해 지는 것입니다. 제가 시험에 들지 않고요.

 

이렇게 간단합니다.

그래서 그 누구를 만나도, 그 사람을 통해서 나를 보고,

회개할 것이 있으면, 회개의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나는 저 사람처럼 안 그래야지..’ 그러면 율법으로 가는 것이고,

오히려 그의 단점을 보면서, 나를 보게 되면서, 내 상한 제사(회개)를 드려야 합니다.

 

 

‘주여, 제가 그만하면 된 줄 알았더니, 제 본성이 또 드러났습니다..

 

주님 제 마음이 아픕니다.

 

세상에, 제가 빨리 좀 성숙해서 다른 사람들을 충만하게 편안하게 해 주고,

그 형제의 짐을 들어주고, 이래야 되는데 하나님,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 아프고 쓰린 마음을 보여드리는 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지만, 다시 말씀드립니다.

제 남편 김철기 선교사님이 한국에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여보, 아마존의 우리 집 개가, 남의 집에 가서 생선을 물어와!

이웃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어. 저 개들을 어떻게 해야 될까?’

 

제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그 개가, 당신의 요즘의 영적 상태가 아닌가 몰라?’

 

남편은, 암 걸린 아내에게 상처 줄까봐 화는 못 내고,

‘그럴지도 모르지’

기분은 나쁘지만, 제가 쇼크 받을지 모르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여보, 우리 개가 밖에 못 나가도록, 모든 구멍을 다 막아놓는데도,

그 개가 어떻게 해서든지, 구멍을 찾아서, 밖에 나가서, 딴 짓을 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우리가, 마치 바람난 여자처럼,

아버지 집에서 슬쩍 빠져나가서 이상한 짓을 하는 것!

그것을 하나님이, 우리 개를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일 수도 있어!’

 

이런 내용이, 좀 광신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하나님은 매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성경적으로 사실입니다.

 

다만 우리가 민감하게 깨어있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개를 통해서도, 어떤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게 우연일수도 있겠지만요!

 

여러분들이 영분별, 이런 것을 다른 사람에게 찾아가지 마시고,

딱 어떤 환경이 주어지면

‘아 주님! 이것이 바로 제 상태이군요..’ 하고 깨닫는 것이,

이게 바로 영분별(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 세상에 감사합니다. 제가 말귀도 못 알아듣고

 

소경이라서, 제 눈에 들보만 있어서, 남을 판단만 하니까

 

하나님, 안 보여서 기도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가 되어서

 

하나님, 이 환경을 통해서, 제 상태를 가르쳐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그러면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제 우리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그럽니다.

‘집사님, 문제 해결 받으려고 기도하지 마시고

 

문제를 위해서도 기도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성령은,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데 초점이 있지 않고,

 

그것은 어렸을 때나 해 주시는 것이고,

 

좀 커지면 방법이 달라지십니다.’ 라는 식으로 권면을 드립니다.

 

어렸을 때는, 기도를 막 하면, 증거나 표적을 줘서 따라오게 하시려고

주님이 기도응답을 척척 해 주십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까지 자랐다 그러면 딱 끊으십니다.

이빨 썩을까봐, 더 이상 사탕을 주지 않으십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자기를 보는 눈을

환경을 통해서 열어 주시면서.. 우리를 회개로 인도하십니다.

성숙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잠시 잠깐 잘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고,

저 천국에 가서, 영원히 잘 살아야 하니까.. 하나님이 아프지만, 수술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순순히 수술을 받고, 빨리 회개를 하고, 돌이키고, 성숙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때 성령님은 지혜이십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성령이 임하고, 성령은 지혜의 영으로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 바를 깨닫는 지혜를 주십니다.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그 지혜를 가지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의 능력을 길러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되십니다.

 

이 지혜만 우리가 생기면, 요셉처럼, 우리가 그냥 통치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통해서만 이 지혜가 들어온다는 얘기입니다.

내 자신을 하나님 앞에 꺾어드리고, 내 있는 모습 그대로를 항상 직고하는 그 순수함,

그 겸손함 속에서 그 하나님의 지혜가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할 때.. 다른 사람도 회개합니다.

 

▲우리가 울면서 날마다 기도하면, 나중에 짜증이 나게 됩니다.

아무리 난리를 치고, 협박을 하고, 금식하며 자해를 해도.. 주님이 안 들어주시니까요.

 

왜냐면 내 영혼이 파리하게 될까봐 안 들어주십니다.

시106:15,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찌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우리는 응답 딱 따먹고 자랑하고, 또 엉망진창으로 살잖아요.

응답만 딱 받아 먹고 친구에게 막 자랑합니다.

‘나 응답 받았다. 내가 너보다 낫지? 내가 너보다 하나님께 더 사랑 받지?’

안 그렇게 해 보신 분 없으시죠? 저는 너무나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이 약한 것들을 자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입니다.

본문에 바울은, ‘내 약한 것들을 자랑한다. 기뻐한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저도, 하나님께 들킨 것들을, 즉 제 약한 것들을, 제가 여러분께 다 얘기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속에 있는 것이 들켜져서 회개 좀 하시라고요.

하나님이 내 약한 것들, 내 실패를 말하게 하심으로써

동일하게 여러분 속에 숨겨진 것을 끄집어내라고, 발각나라고,

 

그래서 저 자녀들도 내게 회개하고 나아오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나의 약한 것들, 내가 하나님께 거역했던 이 모든 미련한 것들을

다 자랑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충만입니다.

 

▲그래서 광야 40년이라는 것은, 우리의 죄성, 완악함을 폭로하시는 시간입니다.

그 가난, 어려움,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나의 실상을 폭로하셔서, 회개로 인도하시고,

결국에는 하나님이 나를 감싸 안으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8:2 ‘너희를 40년 동안 낮추고 시험하셔서 너희가 어떠한 가를 알려 하심이라’는 말씀이

브라질 성경에는 ‘너희가 해결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내가 너희를 시험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을 따라서 살려고 하는 마음이 해결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아직까지도 내 소원만 들어달라고, 난리를 치고 있지는 않나요?

 

그게 아니라, 어떠한 환란, 궁핍, 곤란, 핍박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기뻐하는 수준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이 설교의 주제입니다.

 

‘그 어떤 어려움도 내게는 아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을 신뢰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내 아버지니까, 다 주실 줄 믿습니다.

 

다만 나에게 이런 곤고와 어려움을 주시는 것은,

이것을 통해서, 내가 당신을 믿지 않고 있고,

나 자신을 신뢰하면서 살고 있는 것을 폭로시키시려고

그냥 제가 썩어문드러지지 않게 하시려고, 저를 회개로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잠시 잠깐 동안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나에게 곤고함을 주시고,

또한 삶의 이런 어려운 환경을 통해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내가 주님을 의지하도록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은, 자기의 실패, 그것을 아주 그냥 자랑합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남편이 어디 가서 설교할 때,

자기 실패를 자랑하지 않으면, 그 날은 제가, 밥도 잘 차려드리지 않습니다.

 

그 때는, 너무너무 내가 안타까워서, 견딜 수가 없는 날입니다.

 

목회자는 자기의 실수와 나약함과 부끄러운 것만 얘기해야 합니다.

자랑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성도들의 마음속에 깊이 박혀있는 죄들이 탄로 나는 것입니다.

 

내가 벗지 않고서는, 절대로 성도들의 죄는 탄로되지 않습니다. 이해하시죠?

그래서 우리는 형제자매들에게, 예수님이 발가벗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처럼,

 

우리도 모든 것을 벗을 때, 형제자매들이

‘아이고 그렇구나, 아이고 그게 죄네. 나는 그게 죄가 아닌 줄 알았더니..’ 하면서

내 속에 있는 죄가 다 들킬 수 있도록,

나의 연약함과 나약했음을 고백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냥 ‘예수 믿으세요!’가 전도가 아닙니다. 믿으십니까?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에게 다시 말씀드리지만,

여러분들이 십자가를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세요.

 

‘네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나를 따르라’ 고 말씀하셨으면,

그러면 <날마다> 십자가를 우리에게 주신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는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냥 당하면, 내 속의 것이 탄로 나는 기쁨을 만끽하시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는데 주님이, 비유를 거기서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망대를 짓고자 하는데, 그 비용이 그걸 가지고 건축이 되나, 안 되나..

미리 계산하지 않겠느냐..’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는데 있어서,

내 상태로, 십자가를 모르는 상태로 내가 믿음을 건축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나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면서, 이 작은 비용을 가지고, 하다 말면

사람들이 비웃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십자가라는 것은, 내가 싫어하는 것이 내게 겪게 되어요.

그리고 싫어하는 사람을, 내게 딱 붙여놓습니다.

여러분의 신랑, 각시가 아마 제일 싫어하는 사람, 곧 십자가 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사랑스러워질 때까지, 내 속에 있는 것이 깨져야 합니다.

내 속에 있는 것이 깨어져야 사랑할 수 있거든요.

그러면 너무너무 그 사람이 예쁘고, 그냥 감사한 것뿐입니다.

 

‘내 주제에 어떻게 저런 사람을 만났을까!’ 이 생각이 드는 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진짜 어쩌다 웬수를 외나무 다리에서 만났네!’ 이러면

그는 아직 예수님을 모르고, 십자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주님 저는 아직 십자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주님 제발 십자가를 가르쳐 주시옵소서. 그 안에서만 나를 발견하게 해 주시옵소서.’

라고 간구하시면 됩니다.

 

그 안에서 발견된다는 게 뭐에요? 십자가를 보내시니까, 내 속의 뱀이 발견되잖아요.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가서 내 놓는 것,

내가 변화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어놓고 회개하는 것이.. 상한 심령,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뭐 다른 어떤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아주 간단한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것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발견되면 고백하고, 주님 안에 안기는 것!

이 간단하고 확실한 이것 속에서, 십자가로 여러분들이 늘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날마다 내 의지로 경건해지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음란한 행위라고 했습니다.

가인의 제사입니다. 내 것을 가지고 당신 앞에 나아가려고 하다가,

버림을 받았던 가인처럼, 되지 않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 앞에서 상한 심령이 되어서, 정말로 들킨 나의 심령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어린 아이가 될 때에,

당신께서 번쩍 나를 안으시고,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내 존재 전체를 받아주시는 것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