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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2

자기 애 / 허운석 선교사

LNCK 2013. 2. 27. 11:44

 

◈자기 애               고전2:12~16, 엡5:13            12.11.14. 출처보기

 

◑도입

 

왜 갈렙이, 그 노인이, ‘그 산지를 내게 주십시오.’ 라고 나선 것입니까?

저도 처음에는 잘 몰랐습니다.

 

그 산지는, 헤브론 지역을 말합니다.

그곳에는 아브라함의 무덤이 있습니다.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생명의 씨가 있었습니다.    ☞관련글/ 뒤진 자도 앞서게 된다

그래서 갈렙이, 목숨을 걸고, 주님을 소유하기 위해서 자기를 던지겠다고 한 겁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목숨을 던지겠다.’ 이런 마음이 있습니까?

주님을 소유하기 위해서,

나를 없는 것같이 버리겠다고 하는 그러한 마음이 준비되셨습니까?

 

그래서 갈렙이 그 주님의 모형이신 그 생명의 영원한 씨,

그것을 그 분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 땅을 차지하는데 있어서, 자기 목숨은 그렇게 소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 그 영원한 생명을 사랑하는 갈렙의 마음을

우리가 봐야 합니다.

우리가 영원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우리는 전쟁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껏해야 어디서 헤매고 있는가 하면, 광야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면서, 나를 축복하소서 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우리는 자나 깨나 우리의 소원은 복 받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 사업, 내 가정, 내 자녀, 복 받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소원은 그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40년 동안 왜 광야를 배회하게 하셨습니까?

<죽기를 기다리셨다>고 했습니다.

 

싸가지 없이 영원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아주 우습게 여기고,

그저 세상 것만, 자기 소유만, 자기 육신 편하게 되는 것만 구했던 그들이

죽기를 기다리시기 위해서, 광야에서 40년을 배회하게 하신 것입니다.

 

저는 그 성경을 보면 너무 무섭습니다. 온몸이 떨립니다.

'혹시나 내가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아닌가!'

 

그것 때문에 너무 오랜 세월을, 저는 밤이 맞도록 울고,

밤이 맞도록 고민하고 슬퍼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과 영생의 모든 것을 다 해결하시고, 이기셨습니다.

우리는 이긴 전쟁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이미 이겨 놓으신 것을, 우리가 가서 확인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광야를 통해서, 우리의 어떠함을 뽀록 내는 곳이 광야입니다.

내가 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너무너무 싫어하는 것,

그러니까 ‘애굽에 들어가서 차라리 사는 게 낫다’고 우리도 얼마나 불평했습니까!

 

‘차라리 예수님 안 믿을 걸, 예수 믿는 게 왜 이렇게 무거운 거야?,

차라리 세상에서 사는 것이 훨씬 더 낫겠다!’

이렇게 우리는 불평하기를 잘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광야의 백성들처럼 우리를 대우하십니다.

‘우리가 다 죽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해도 해도 안 되면... 그 방법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제가 20대 미혼 때, 예수 믿는 관계로, 저희 집에서 쫓겨나서 거리를 헤맸습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요.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아버지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라는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뭐, 성령을 주신다고? 당장 밥이나 좀 주시지..’ 이렇게 푸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걸 크게 죄송해하고, 후회하고 있지만요. 하나님께 제가 대든 것이지요.

 

여러분도 혹시 그럴 수 있습니다. ‘성령이고 나발이고.. 제 문제나 당장 해결해 주세요!’

 

그런데 솔직한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인 줄 믿습니다.

경건한 척 하고 나가면, 절대 안 됩니다. 그냥 하나님 앞에는,

벌거벗고 나가야 되는 겁니다. 그래야 구원이 주어집니다.

 

▲영적인 관계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소스라치게 자신에 대해 놀라게 됩니다.

죄다 하나님 앞에서 도망가고 싶어집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제자들이 다 도망간 것처럼,

우리도 주님께 대해 깊이 알게 될수록,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누가 수치를 당하고 싶고, 모욕을 받고 싶고, 벌거벗김을 당하고,

추락을.. 누가 당하고 싶겠습니까?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은, 모욕을 받는 길이요, 수치를 당하는 길이요,

진짜 오해만 받는 길입니다.

 

◑본론

 

▲주제 요약

이 설교문의 주제는, ‘자기 연민, 즉 자기가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보호하는 마음을 깨뜨리라’입니다.

 

자기 연민 속에 숨어 있는 그 마귀라는 것은, 내가 어떤 수치와 모욕을 받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기 연민, 자기 보호’ 쪽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십자가 앞에 나아가, 자신을 회개하지 못하고,

대신에 ‘나는 잘못을 안 한 것 같은데, 내게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하면서

우리가 끊임없이 나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은,

십자가의 길, 회개의 길과는 반대방향이 됩니다.

 

그리고 내 속에 있는 마귀(자아)를 감싸고 보호하고,

절대 떠나지 못하도록 우리가 감싸주는 것이 됩니다.

 

이 끔찍한 일을 내가 지금껏 해 왔으면, 우리는 다 그것을 회개하셔야 합니다.

세상에 ‘주님 난 몰랐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회개하고, 이 자아(옛사람)가 쫓겨나가면서

참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오시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포마다 다 속았습니다. 안 속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귀적인) 옛 자아와 친하게 살면서 못 떠나게 했습니다.

우리가 애써서 자기를 변명하고, 공격자들을 비방하고,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이 시간은 ‘자기 연민’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자기 애 self-love’가 마지막까지 우리를 따라다니는,

깊은 사탄의 미혹, 사탄의 끈질긴 역사입니다. 이것은 정말 떼어 내버리기 힘듭니다.

 

아니, 쉽게 발견할 수조차 없는, 내 속의 ‘사탄의 견고한 진’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아니시고는, 도저히 빼낼 수 없는..

말하자면 엑스레이는 대충 찍어냅니다만, MRI는 아주 세부적으로 촬영합니다.

 

그것처럼 ‘자기연민, 자기 애’가, 정밀 촬영을 하지 않으면, 안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적이 됩니다.

 

사탄은 그 ‘자기 애’ 속에서, 왕노릇합니다.

광명한 천사로 과장해서, ‘자기 애’가 마치 진리인 것처럼, 자기를 사랑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찝어 내겠습니까!

 

▲자기 애, 자기 연민은, 바로 아담이 범죄했을 때, 세상 임금이 그에게 들어갔을 때부터,

인간 속에 견고히 자리를 잡고서, 계속 유전되어 오늘 나에게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애’속에는 ‘세상 임금, 마귀’가 도사리고 숨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기 연민’에 깊이 빠질 때마다,

그 속에 도사린 마귀를, 우리가 얼마나 도와주고 있는지 모릅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을 우리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나는 하나님께 얼마나 열심히 충성했는데... 대적이라니요...

 

그런데 그게 ‘자기 애, 자기 연민’가운데서 충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게 마귀를 도와주는 것이 되는 셈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했던 베드로가,

왜 즉시로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습니까? ‘자기 애’ 때문입니다.

 

‘아휴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신다는 게 뭡니까?’

베드로가 지금 예수님을 걱정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자기 장래를 걱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면, 자기가 손해 보니까, 그게 다 자기 속셈이었습니다.

그동안 따라다닌 게 얼만데, 예수님 따라다니며 투자한 게 얼만데..

 

그런 자기를 버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다니..

계산이 빠릅니다. 손해 볼 것인지, 손해 안 볼 것인지..

우리는 재빠르게 계산해 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베드로보고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너무 과장법이다. 너무 오버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베드로보고 마귀라니요!

 

그러나 예수님이 틀리실 리 없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속에 있는 ‘자기 애, 자기 연민’

또한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사탄을, 분명히 보신 것이고, 그 사탄을 대적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기 애’ 속에 숨어 있는

이 광명한 천사 같은 사탄의 역사를,

우리가 생각하기에 너무 너무 옳은 것 같은 이 '자기 애'를

우리가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정말 MRI 같은 것으로..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다루시는 것이,

즉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가는 길에서 마지막 단계가

바로 ‘자기 애’ 속에 숨어있는 사탄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어떻게 이 사탄을 제거할 수 있습니까?

‘내가 그런 것이 아니라, 이놈이 내 속에서 나를 조정해서, 내가 이렇게 되었군요.’

우리가 그것을 먼저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발견이 되어야,

빛이 올 때, 그것이 드러나면서

주님이 내 안에 왕으로 완전히 좌정하시는 겁니다.

 

‘자기 애’가 오랜 세월 동안 나의 인생을 주관했던 것이,

이제는 주님의 생명이 들어오셔서,

생명 가운데 살게 해 주시는데,

그 과정에는 <가나안 광야>의 치열한 싸움이 있습니다.

광야에서, 우리가 그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애’를 드러내고 버리는 싸움!

 

▲그러니까 우리는 교회 왔다갔다 하면서 헌금이나 적당히 내고, 그냥 뭐 그러고..

이것은 신앙도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어쩌면 그 싸움을 시작도 아직 안 했을 수 있습니다.

 

헌금도 많이 하고, 봉사도 죽도록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죄악이 들통 나니까요.

안 하는 사람은 들통도 안 납니다.

 

그러니까 그냥 쌔카만 채로.. 하나님 나라에 갈 건지, 지옥에 갈 건지.. 그건 모릅니다.

그래도 주님 사랑하는 것 때문에, 열심히 하는 것 때문에

나중에 가서 ‘아, 내 신앙이 잘못 되었구나..’ 이것을 깨닫습니다.

 

잘못된 것을 깨닫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열심히 봉사해야 합니다.

‘아이고 이게 틀렸구나!’

 

나는 옳은 줄 알고 했던 것이

다 틀린 것이라고 나중에 뽀록 나는 것이

나중에 영원한 것으로 바꾸어주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놀라운 역사이십니다.

 

이 사탄이 너무나 광명한 천사로 오기 때문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충성하고, 봉사하고, 헌금하고 하는데..

누가 그걸 의심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속에 ‘자기 애, 자아 우상’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이것을 분변해 낼 길이 없습니다.

 

▲저는 남편 선교사와 같이 살면서,

내 남편이기 때문에, 무조건 편들어 주는 것,

저는 그것을 하나님이 못 하게 하시는 것 같아요,

 

만약 그렇게 하면, 제가 남편을 해치는 겁니다.

그의 눈을 멀게 하고, 그가 십자가의 길로 가는데 있어서, 제가 덫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때로는 위로도 삼갈 때가 있죠.

주님 앞에 서야 되는 시간에, 제가 인간적 사랑으로 대체해 버리면,

남편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매 순간 주님께 여쭈어 볼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제가 이 시간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사랑과 위로의 타이밍인지, 선지자의 음성을 발할 때인지.. 분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자기 연민>에서 깨어져 나올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실 때는,

나를 징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세상 임금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파쇄되고 깨어져 버려야, 심판을 받아야.. 그게 물러 나갑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뭘 싸우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즉 아담의 생명 안에 웅크리고 있는 세상 임금이

나를 조정하고, 다 속이고, 나를 영광 받게 하고, 나를 자랑하게 하고,

 

막 이렇게 해서.. 결국은 그냥 내가 나중에 죽임을 당하게 하는 겁니다.

 

나중에는 열심히 하나님 앞에 봉사해 놓고,

열심히 하나님 앞에 충성해 놓고,

우리는 곁길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 하나님이 진짜 영적인

그 상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때,

진짜 수치스럽고 고통스런 일을 나에게 허락하실 때

 

그때가 진짜 기회인데, 우리는 다 옆구리가 터집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 받는 것을 포기 못 합니다.

나를 변명하는데 급급합니다. 이것이 ‘자기 애’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구에게 비방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중얼중얼 합니다. '자기 연민' 때문입니다.

내 체면이 손상되었다고.

그래서 그 비방한 사람을 맞받아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지금 이 사탄을 내 속에서 파쇄하시길 원하시는데,

나는 다른 사람에게 가서 나를 변호하고,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사탄을 계속해서 내가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떠나지 마라, 네가 떠나면 내가 어찌 살꼬?’ .. 이런 식입니다.

 

우리가 책망을 받았을 때, 변명하고, 울고..

그래서 사람들의 동의를 얻고 싶고,

그러한 행동이 바로.. 내가 내 속에 자아(옛 사람)를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내 속에 ‘자기 애’가 절대로 떠나지 않습니다.

 

‘그대가 떠나면 되겠어?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같이 태어났는데, 죽어나 사나 같이 살아야지..

나를 망하게 하면 되겠어?’ 합니다.

 

오늘 이것 하나만 알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만일에 신랑각시가 싸웠는데,

그냥 우리 신랑이 어떻다고.. 밖에 가서 사람들에게 죄다 얘기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처리하고 싶으신데,

-내가 남편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

-내가 이렇게 가인과 같고, 이렇게 살인자 같다는 것을

하나님은 내가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 앞에 내 죄를 가지고 나가서 울어야 되는데..

그 순간에 우리는 사람에게 찾아가서 위로를 받으려 합니다.

자기는 절대로 옳고, 남편이 마귀라는 것입니다.

 

그게 자기 속의 ‘자기 연민의 자아(옛 사람, 마귀의 역사)’를 열심히 보호해주는 겁니다.

‘나가지 말어, 나가면 내가 큰 일 나, 그대는 나하고 살자,

왜 내가 예수님하고만 살아야 돼. 너도 같이 살자..’

 

우리가 평생 그 짓을 하면서 삽니다.

여러분들 많이 후회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기도 많이 하고, 금식 철야하고 주님을 사랑했는데,

무슨 문제만 터지면, 사람에게 뽀로록 달려가서 위로 받으려고 하고,

그렇게 위로를 받고 나면 은혜가 충만합디까, 아니면 은혜가 도로 떨어집디까?

 

그러면 내 속에 마귀의 역사는 더 강해집니다. 우리가 마귀를 더 키우는 것입니다.

내 자아를 보호하고, 자기 연민의 죄를 지을 때,

내 속의 옛 사람(마귀 역사)은, 그것을 양식으로 먹고, 더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나를 잡아먹게 합니다.

그래서 자아충만, 자의 의, 자기 자랑, 자기 변호, 자기 외식의 길로 나아갑니다.

나중에 결국 하나님의 징계와 진노를 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짓을 날마다 하면서도,

그렇게 하나님의 손길을 그렇게 대적하고,

그렇게 잘못 하면서도, 이렇게 우리가 실상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진리의 사람이, 어떻게 진리로 가겠습니까?

이 진리라고 하는 것은, 진리 안에, 말씀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들어있어서,

이 말씀에는 승리가 있습니다. 엄청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긴, 생명을 이미 받은 사람들이고, 그것을 가지고 싸우면 간단한 것인데,

그거 변명 한 번 안 한다고 내가 죽습니까?

 

그런데 이게 너무 습관성이 되어서,

그냥 문제만 생기고 슬퍼지면, 뽀르르 사람에게 달려가서,

상대방을 비난하고, 내가 위로를 받는 사람에,

그 바람에 주님의 성령은 나를 떠나시고, 마귀만 더 강화되는 것입니다.

 

그냥 날마다 사는 것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그냥 거기만 계속해서 뱅글뱅글 돌다가, 아까운 자기 인생이 다 끝나게 됩니다.

 

그에게 신앙 성장, 영적 성숙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퇴보되는 사람도 많습니다.

 

주님의 왕권도, 주님의 이긴 생명의 세계가 얼마나 충만하시고, 얼마나 놀랍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생명으로 이끌 수 있고, 얼마나 놀라우신 은혜인지..

이것은 알지도 못한 채,

그냥 거기서만 뱅글뱅글 돌다가, 우리는 그냥 '옆구리가 터지는'(형편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공격을 받을 때,

자기 애, 자기 연민을 버리십시오.

내 체면이 손상되고, 내 자아가 묵사발 되는 것을.. 기꺼이 감내하십시오.

바로 그때가, 내 속에 있는, 세상이/마귀의 권세가.. 물러가는 시간입니다.

 

그러면 묵사발 된 나는.. 예수의 부활 능력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아에서/체면에서 자유하는.. 참 자유인이요, 능력있는 크리스천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 상담할 때

 

▲저는 여러분들이 십자가를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제게 신앙상담 하러 올 때,

기도하고 분변하면서, 직설적으로 말씀해 드립니다.

 

여러분을 위로한답시고, 기분 좋은 말을 해드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편을 들어 드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속의 그 마귀가 드러나야 되고, 쫓겨나가야 되는데,

제가 자꾸 그런 여러분의 ‘자기 애, 상처’를 그저 싸매기만 한다면,

마귀를 도와주는 꼴이 되고, 저는 거짓선지자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거짓선지자들은 구약에 보면 늘 ‘평안하다, 평안하다’라고만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화평케 하는 자요,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내가 먼저 화평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웃을 화평케 하는, 그런 권세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미 이긴 싸움에서, 그 승리의 화평으로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그는 권세자의 아들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그 단계는     마5:9

영적 전쟁을 할 줄 알고, 영적 전쟁에서 이길 줄 아는 자의 권세를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그 사람과 늘 화평케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그 말씀하심을 따라서, 형제를 권고하고, 권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기분 나빠 합니다.

자기를 위로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네가 회개하라’고 하니까,

‘자기 애’가 살아 있는 내담자는, 죽일 듯이 상담자를 미워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오죽하면 바울사도가 '내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졌다'

내가 십자가를 자랑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고통 받지 않았을 터인데..

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니 신앙상담을 자주하는 저도,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소금을 두고 너희가 화평할지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 화평하라는 뜻입니다.

 

나랑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대로 가면,

나는 그 형제를 어떻게 권면해야 합니까?

 

제가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면

상대방과 그 좋았던 관계가 그만 깨질 수 있습니다.

 

그걸 감안하고 들이대야 하니까,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상담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좋은 사람하고, 제가 원수가 되어야 하니까요.

그 좋았던 관계가 깨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육신은 두루뭉실 좋은 관계로 계속 가고 싶지만,

성령은 강권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딸이 30세가 넘어가니까, 시집 못 갈까봐 겁이 나는 겁니다.

우리 딸이 엄마 때문에, 자기 인생을 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엄마 간병하느라고, 하루 종일 고단했습니다.

 

환자가 집에 한 명 있으면, 사실 간병인이 1명으로는 부족합니다.

간병인이 여러 명 달라붙어야 합니다. 그런데 혼자서 하려니.. 얼마나 힘듭니까.

 

‘아 내 인생은 없구나!’

딸이 그 사건을 통해서 자기가 들켰습니다.

 

그렇구나, 내가 침울해 진 것은,

‘내 인생을 살지 못한다’고 하는 그런 실망감이

내 속에서 나를 침울하게 했구나...

 

그러면서 자기가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자식지간이라도,

자기가 뜯어먹을 게 있으니까 기대고 있는 거지,

뜯어먹을게 없으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하는 목숨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엄마인데,

그 엄마 때문에, 자기 인생을 살지 못한다고..

이렇게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애, 자기 연민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발견하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요.

‘오 주님 제가 가짜인 것이 들통나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렇게 딸은 회개했습니다.

 

그러고도 때로는 열 받는답니다. 자꾸 비교를 하니까 창피하답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시집가서 남편과 룰루랄라 하고 살고, 아기까지 낳았는데,

자기는 밥순이가 되어서.. 때로는 마음이 얼마나 초라하겠습니까.

 

그러면 주님께 화가 난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한 거 다 뻥입니까, 주님과 제가 친해서 좋게 된 것이 뭡니까?’

 

얼마나 솔직합니까.

'주님 내가 부모 따라다니면서 일생 고생했는데,

주님이 좋은 신랑감 척 데려다 주시는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런데 주님은 수치만 주시니, 주님이 싫다는 것입니다.

 

그 표현을 할 줄 아는, 그것이 바로 영적인 전쟁을 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를 볼 줄 아는 사람들,

자기를 보지 않고 어떻게 영적 전쟁을 하겠습니까,

그게 자기애입니다.

 

그 자기애 속에 숨어 있는 그 마귀의 궤계를, 주님이 탁 터뜨리시는 것입니다.

‘아이고 주님, 요놈이 나를 이렇게 속이고 있었네요..’

그래야 주님이 그놈을 빼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외모로, 율법적으로 남에게 욕 먹지 않을 정도로 매끈하게 되어 있으면,

날마다 안 그런 척 하려고, 경건한 척 하려고 하니까,

그냥 더 마귀적이 되고, 배나 지옥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율법적 신앙 때문에요.

 

그래서 우리가 ‘길가 (밭)’ 처럼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헌금 좀 하고, 교회 봉사 좀 하면.. 다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아주 우리 심령에 시멘트를 발라서,

내가 뭘 하고 있으면, 그냥 잘했다고 칭찬만 너무 많이 들어서, 감각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나는 충성하고 있다고 주위 사람들이 하도 얘기하니까,

진짜 그런 줄 알고, 우리가 확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회개를 하겠습니까,

그 영광을 받았으니 어떻게 또 내려오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남편 선교사께 늘 부탁합니다.

‘당신 어디 가서 설교할 때, 당신이 실패한 얘기만 하세요!’

 

남편이 어디 가서 설교하면 그럽니다.

‘과거에 저는 아주 사기꾼이었습니다. 저는 왕바리새인이었습니다.

제가 진짜 하나님께 충성하는 줄 알고, 의인 중에 의인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알고 보니, 나는 주님을 너무너무 대적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왜 이런 설교를 하라고 부탁하는가 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들키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회개하니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들켜야 convicted 합니다. 들키지 않으면 회개할 수 없습니다.

 

자기 실패를 드러내는 것은, 마귀의 정체를 폭로한 것입니다.

그러면 듣는 사람들도 다 들켜서, 다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당신이 실패하고, 마귀에게 속았던 것만 얘기하소서..’

어떤 날은, 제가 남편의 설교 5분 전에 또 전화합니다. 그래서 리마인드 시킵니다.

 

왜냐면 우리의 역사는 마귀를 폭로하는데 있습니다.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내 옛 자아(마귀의 역사)를 폭로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좋은 게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자꾸 가리려고 하면, 자꾸 마귀를 보호해서 살찌고 통통하게 해서,

‘나를 잡아 먹으세요!’ 하는 상태가 됩니다.

 

▲우리 혼은 정상이 아닙니다. 돌아버렸습니다.

내 유익만 구하는데 영리할 뿐입니다. 내 영과 항상 반대됩니다.

얼마나 영리한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둔한 자는, 그나마 십자가를 지려고 하는데,

머리 좋은 사람, 계산이 빠른 사람은

절대 자기 자존심 상하는 일은, 절대 겉으로 나타내 보이지도 않고, 당하지도 않습니다.

딱 자기 앞에 방패를 세웁니다.

 

그러니 언제 그 마귀가 탄로가 나서 쫓겨나겠습니까!

그러니까 아무리 은사를 많이 받고, 아무리 주님께 기도를 많이 해도,

그냥 점점 메말라지고 비틀어져서, 바삭바삭한 삭막한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 얼마나 이게 무서운 일인가요,

그래서 이 자기 연민이라는 것이

나를 보호해서 뭔 (비방의) 소리를 못 듣는 것입니다.

 

뭔 소리만 들으면, 우리는 즉시로 팽 돌아버립니다.

그 때는 ‘아, 내 속에 마귀가 있는구나!’ 하고 깨우쳐야 합니다.

그래서 솔직해야 합니다.

 

어떤 사건과, 또는 어떤 교제 속에서 드러나는, 그 반응하는 나를

아주 진솔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어머 주님, 제가 어느 정도 되었는 줄 알았더니, 세상에 제가 이 짓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 이것을 뽑아 가시고, 주님이 이긴 생명을 나에게 넣어주셔서,

주님의 새생명 가운데 살게 하소서!’

 

▲제 소원입니다. 저는 어떤 대가를 지불할지라도, 나는 주님과 연합해야 되겠습니다.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때려잡아야 되겠습니다.

 

가나안은 7족속이지만, 왕은 31명입니다. 그 31명의 왕이 내 속에 있습니다.

왕 되고 싶은 마음이 내 속에 있습니다.

이 놈들을 다 쫓아내려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권면과 책망을 받아야 하는지요,,

 

책망을 많이 받는 사람일수록, 마귀가 많이 쫓겨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누구에게 책망을 받을 때, 너무너무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 외에는, 내가 십자가(회개)로 갈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책망을 받을 때, 기분이 나쁘고, 이가 갈리고,

하나님이 이상한 사건을 터트려서 나를 개망신 시키시고, 자존심 상하게 하시고,

너무 괴로운 것만 주시지만,

그러나 그 속에서, 자기 연민이 폭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 폭로시키려고

나 됨을 폭로시켜야 사탄이 폭로가 되니까,

그래서 그것을 인정할 때, 빛이 오시는 겁니다.

 

책망을 받는 것마다 빛으로 나타난다. 그러셨잖아요. 엡5:13

 

그런데 우리는 아주 책망을 받았다 그러면, 기절하는 겁니다.

‘왜 나를 건드렸냐? 내가 그 옛 자아하고 잘 친하게 사는데.. 왜 날 건드리는 거냐,

잠자는 사자 콧털을 네가 겁도 없이 건드렸구나..’ 하고 아주 똥바가지를 씌웁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건드린 것인데, 우리가 그 오신 주님을 그렇게 박대합니다.

이것만 오늘은 깨달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병들었을 때, 제일 친근했던 말씀이,

그의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느니라, 그 말씀이 그렇게 달콤하게 들릴 수가 없습니다.

그 아버지의 사랑이 내 가슴속에 강물같이 흐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징계받는다는 소리를 듣기를 끔찍이 싫어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리가 기쁘게 들려야 합니다.

그 소리를 들을 때, 얼굴이 활짝 펴야 합니다.

 

기도 / 미련한 자는 절구에 빻아도 그 미련과 무지가 안 벗겨 진다더니

주님, 세상에 우리가 옛 자아를 그렇게 보호했다니요.. 끔찍하고 무섭습니다.

 

주님은 그 옛 자아(마귀 역사)를 심판해서 잡아내시려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그렇게 권고하는데도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을 대항하고 대적하면서,

내 속에 그 옛 사람을 그렇게 보호해 주었습니다.

 

하나님 너무 무섭고 끔찍합니다.

하나님 그래서 우리가 형통하지 못하고, 이렇게 정말 고통만 당하고

예수님 믿으면서 승리도 없이 우리가 살아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묵상하게 도와주시고, 가나안 전쟁을 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전쟁을 하게 도와 주옵소서. 피 흘리기 까지 죄를 반대하는 저희가 되게 해 주옵소서.

나를 보호하고 변명하려고 하는 이 습관성,

나의 옛 자아가 철저하게 자기를 보호하고 있는 이 보호막을 갈기갈기 찢게 해 주옵소서.

 

주여 우리에게 십자가를 날마다 주신 것을 고맙습니다.

그 십자가 안에서 발견된 나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솔직하게 고백하는 가운데서,

주님의 위로하심과 인도하심과 그리고 승리를 경험하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