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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가비 목사님 인터뷰 2/2 Blackaby

LNCK 2013. 2. 15. 12:10

(Revival Conference 2008 Atlanta) Henry Blackaby Interview - YouTube

 

◈블랙가비 목사님 인터뷰 2/2      말3:1~2, 대하7:13~14, 눅12:5~6, 13:3, 요16:24 출처

 

 

 

 

▲(2008년 미국 경제위기 당시라서 특히 더 그런지)

오늘날 많은 미국 사람들이, 깨어짐과 고통과 슬픔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의심하거나,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다면,

왜 이렇게 그의 자녀인 우리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가?’

 

물론 하나님은 항상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신 적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

우리 인간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부흥,

이런 것은, 성경적 개념과 상당히 멀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 우리가 괜찮게 신앙생활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하나님의 관점, 또는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부흥은, 개인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살펴보더라도, 또한 지난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부흥은 항상 단체적으로 일어납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연합’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다 각자 개인적, 개교회적으로 부흥을 추구하는데요..

그것은 부흥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이 있는

존재라는.. 그 상호책임감을 잃어버렸습니다. Inter-dependence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죄다 자기만, 자기 교회만 잘 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또는 개교회적으로

‘나만 잘 하면 된다. 우리만 잘 되면 된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부흥하고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기 개인만 결코 잘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 몸이고, 한 지체인데.. 결코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고 계신데,

하나님의 역사는, 큰 그림으로 볼 때, 항상 ‘몸 전체’를 관심 가지십니다.

 

물론 부흥이 이반 로버츠나, 또는 다른 몇몇 사람을 통해서, 시작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부흥은, 반드시 ‘연합적으로, 전체 몸을 통해’ 나타납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들이 서로 함께 모인 자리에서,

하나님의 성령은, 깊이 있게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 함께 모인 자리에서, 성령이 임하시고,

그때 우리 각자 개인도, 깊이 있게 변화될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 각자도 변화되고, 동시에 전체가 함께 변화되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혼자서 은혜를 받고, 깊은 성령을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갱신 renewal’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부흥 revival’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 블랙가비가 정의하는 바로는, 부흥이란,

언제나 그리스도의 전체 몸에, 함께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성경적으로 볼 때, 그것은 사실입니다.

 

▲부흥이 일어나려면, 치러야하는 대가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 부흥은, 미국의 대형교회를 통해서는, 좀처럼 일어나기 어렵다고 봅니다.

교회가 클수록, 자족감 self-sufficient 이 크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갈급하게 간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흥은, 뭔가 갈급한 상황, 절망적 상황 가운데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교회가 클수록 부흥을 간구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히려 자기들은 이미 부흥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니까요.

 

물론 사람이 많이 모인다는 것만으로는, 성경적인 참 부흥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적 관점에서 ‘교회가 성공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런지 몰라도,

‘부흥했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부흥은, 작은 나라 작은 교회에서, 고통을 당하는 한 목회자나 성도가

간절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그 자리에서부터 일어날 것입니다.

 

그때 갑자기 성령이 그에게 임하시고,

그 불이 그를 풀무불 속에서 금속을 재련하듯이, 그를 녹여서 정결케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전체로 확산될 것입니다.

 

▲그래서 말라기3장1절에 보면,

‘내가 내 사자를 보낼 터인데, 그가 앞서 내 길을 예비할 것이요,

여러분들이 찾는 주님이 <급작스럽게 suddenly> 그 성전에 임하실 것입니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의 임하심은, 황급하고, 급작스럽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급작스럽게 임재하실 때,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습니다. 그게 뭐 달콤하고,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재련하는 불’처럼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금을 정결케 하고, 은을 재련하듯이, 불로 우리를 정결케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임재가 임하시고, 부흥이 임한다면,

주의 종들도, 성도들도.. 처음에는 한 동안 회개하며 고통당하게 됩니다.

그 성령의 불이, 우리 양심과 심령을 태우고, 정결케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 불이, 우리 속에 모든 정결치 못한 것들을 다 드러내시고

우리를 비통함 가운데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며, 회개하게 하실 때

그 순간에는, 우리가 그게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래서 심지어는 ‘부흥’에 관해 연구하는 사람도, 깊이 연구할수록,

부흥에 대해 탐탁치 않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환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또한 교회적으로.. 치러야 할 대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말라기3장2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누가 주님(또는 주의 사자)가 오실 때, 능히 견딜 수 있겠느냐?

그때 누가 능히 설 수 있겠느냐?’

주님이 오시는 날에, 우리가 견디지 못하고, 서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치러야 할 대가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원래 예수님의 초림에 대한 예언이 될 수도 있고, 1)

이중예언으로 볼 때,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도 될 수 있고, 2)

또한 역사 가운데서, 부흥의 날에, 주님의 강력한 임재에 대한 예언 3)도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말라기의 말씀을

부흥의 날에, 주님의 강력한 임재에 대한 예언 3)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말라기 3장2절에,

주님은 대장장이의 불로 a refiner's fire로

또는 세탁자의 비누로 launderer's soap 으로 임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정말 부흥으로 강력하게 임하시면,

마치 우리가 대장장이의 풀무불속에서 재련을 당하듯이,

우리 심령이 고통스럽게 회개하게 될 것이고,

 

또는 세탁자의 비누로 씻어내듯이

우리 몸과 마음이 새롭게 씻어지게 될 것입니다.

 

다만 이런 고통을 감수할 각오를 하는 성도들만이

부흥을 고대하고,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부흥을 주시러 임하시는 주님을 영광스럽게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저 블랙가비는, 오늘날 우리 미국이 당하고 있는 위기가

‘금융권 붕괴’로 인한 재정적 위기가 아니라, 그것은 표면적인 위기고요,

우리의 진짜 위기는 ‘영적인, 도덕적인 위기’가, 실제적 위기라고 봅니다.

 

모든 계층의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의 ‘영적인 도덕적 위기’가 아주 심각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시간을 넉넉히 잡아서,

내가 하나님과 친밀하게 만나서 교제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고,

그 시간을 조급하게 후다닥 마쳐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그날 하루 동안에 일어날 일에 대해, 하나님과 충분히 대화, 의논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감동에 따라서,

그날 내가 수행할 일에 대해, 밑그림을 다 그리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각계각층에, 이런 영적 지도자들을 필요로 합니다.

그가 매일 그렇게 주님과 충분히 교제하고,

주님이 주시는 영적인 권위로써, 자기 직무를 수행해 나갈 때,

사람들은 알게 됩니다. ‘저 분은, 정말 진짜 영적 지도자야!’

왜 모르겠습니까. 세상 사람들도 그를 다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영적 지도자들이, 교계뿐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에 다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지도자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위기입니다.

 

그 지도자는 말로나, 행위로나, 라이프스타일로나, 그의 가족관계로나

정말 ‘하나님의 사람’임을 나타내 보여줍니다.

교계에도 이런 영적인 지도자들이, 너무나도 절실히 필요한 시점입니다.

 

저는, 그 영적 지도자의 핵심적 자질로,

매일 아침마다, 충분히 주님과 만나고, 주님과 교제하며, 주님과 의논하며

주님의 임재를.. 가급적 깊이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지도자의 ‘기본 조건 prerequisite’입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말로는 영적 지도자라는데,

그에게서 어떤 영적인 능력도 보이지 않고, 그냥 매너리즘에 빠지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역대하7장13~1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라’고 했습니다.

제가 보니까, 워싱턴 정가에 스스로 낮추지 않고, 교만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스스로 낮추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 말씀은 반대적으로, 우리에게 적용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악한 길에서 떠나지 않고, 스스로 낮추지 않고, 주님의 얼굴을 찾지 않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지 않고, 그들의 죄를 사하지 않고, 그들의 땅을 고쳐주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지금 우리 미국 땅은, ‘땅을 고칠지라’ 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철저히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선결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는’ 것입니다.

 

▲제가 특별히 은혜를 받은 구절은, 눅12:56절입니다.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그리고 이어서 13장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회개하지 않으면, 예외 없이 다 망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주후 70년에, 로마 군대의 공격을 받아서,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1968년에 (6일전쟁을 통해서) 비로소 예루살렘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두 말씀은, 오늘날 우리 미국사람들이 들어야 하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자처하지만,

-우리가 회개치 않으면, 이와 같이 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기상은 분변할 줄 알면서도,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911을 보냈다’ 2001년.

‘내가 허리케인을 보냈다’ 2005년 경 카트리나 등.

‘내가 재정위기를 보냈다’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그래도 아직 우리가 못 깨닫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회개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자’라고

독려하는 영적인 지도자를, 교계에서, 사회에서,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상은 분별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분변하지 못하는 태도가 아닌가요?’

 

제가 서두에 ‘교정을 위한 점진적 심판 remedial judgment’에 대해 경고했는데,

지금 우리 미국이 점진적 심판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는다면, 최후의 심판까지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을 가집시다. 최근에 저는

요16:24절 말씀에 은혜를 받고서, 계속 붙잡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할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고, 성실하게 간구하면,

‘그리하면 받으리니’ .. 반드시 미국의 부흥을 응답받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우리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스스로 나에게 이렇게 질문해 보았습니다.

‘정말 기도가, 나라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을까?

정말 기도가,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어느 정도로 믿고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그런 기도를 충분히 들어주실 능력이 있으시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성실히 간구하는 것만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