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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수 한 그릇 - 천국에서 누가 크니이까?

LNCK 2013. 2. 16. 18:59

◈천국에서 누가 크니이까?                 마18:1~14                        출처보기

 

 

 

 

※제가 과거에 성경을 읽을 때, 마18장의 본문이 이해가 명확히 되지 않아서 늘 고개를 갸우뚱 했었는데,

이 설교문을 읽어보니까, ‘아, 이게 그런 뜻의 말씀이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편.

 

 

마태복음 18장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지침이 되는 말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가장 미혹되기 쉬운 부분을

제자들과 예수님의 대화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마18:1절,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제자들이 ‘천국에서 누가 크냐?’고 예수님께 묻고 있습니다.

본문은 지금 우리 교회의 상황을 그대로 말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정말 본능적으로 '크기' 경쟁을 많이 합니다.

온갖 것으로 자기와 남을 비교하고, 경쟁하며 '크다'고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데요... 

 

▲마18:2~3절,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어린아이를 세우시고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고 말씀 하십니다.

 

제자들은 천국에서 누가 크냐고 묻고 있는데

지금 제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은 동문서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크다는 즉답을 안 하시고,

천국에 들어가는 선행 조건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제가 이 본문을 읽으면서, 마치 지금 한국 교회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천국에 들어갈지/ 못 들어갈지..’ 그것도 확실히 모르면서

‘어떻게 하면 천국에서, 우리 중에 누가 큰 자가 될 것이냐?’ 하는 것을 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일부 신자들은, 본문의 제자들과 같이,

‘자기가 천국에 들어갈지’도 확실히 모르면서

‘천국에서 누가 크냐?’를 논하는... 참으로 웃기는 코미디 같은 현실을 살고 있습니다.

 

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5절,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이어서 예수님은 ‘누가 큰 자냐?’는 물음에 대답을 하십니다.

4절에서, 자기를 낮추는 자가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5~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여전히 <천국에 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천국에서 누가 크냐?’가 궁금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갈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대답은 계속적으로 천국에 갈 수 있는 조건을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지금 왜 이 말씀을 하시는 가를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천국에서 더 큰 자가 되기를 원해서

어린 소자를 영접하는 것보다, 일/사역/봉사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린 소자 한명이라도

더 천국을 잃어버리지 않고 오는 것을 바라시는데

사람들은 그것에는 관심이 없고

더 큰 자가 되기 위해서, 소자를 함부로 대할 것을 아시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교회들은 사람 하나만 들어오면, 일꾼을 만들겠다고 큰소리 치고 있습니다.

온갖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고 제자 훈련이다, 셀 교육이다, 하지만

실제 그런 것으로 인하여 오히려 소자를 실족 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본문에 예수님께서는 안타깝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꾼들을 만들어서 갖가지 수많은 일을 하는데

그 일로 인하여, 믿음을 바로 세우지 못할 것을..

그리고 그 일꾼들이 오히려 실족하게 될 것을.. 이 오늘날의 현실을,

예수님은 마치 미리 내다보시고, 예언하시는 것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6절을 다시 봉독합니다.

마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예수님은, 앞으로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미리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천국에서 더 크기 위해서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고 할 것을 내다보시는 말씀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서

만약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반대한다면 그는 이단이라 정죄를 받을 것입니다.

교회 모임에서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누가 반대를 하면

그를 믿음이 없는 자로, 심지어는 이단으로 정죄하기를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일이 만약 전도나 선교의 일이라면,

그리고 교회당 확장을 하는 일이라면,

정죄의 칼은 더 시퍼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누가 크냐.. 에는 관심이 없으시고

누가 크냐를 경쟁하다가 소자를 실족 시키는 일에.. 더 마음을 쓰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보다

그 일로 인하여 소자를 실족 시킬 것에 더 가슴 아파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7절,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분명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이라 하면서, 물불을 안 가리는 사람들이

소자를 실족케 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8절,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지금 이 말씀은, 제자들이 ‘천국에서 누가 크냐?’에 대한 대답을 계속 하고 계십니다.

천국에서 ‘크기 위해서 경쟁하다가, 범죄 하는 것’을 말씀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열심을 내서 충성한다 하면서

그런 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을 실족 시키는 것에 대해서 말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과 발로, 소자를 실족케 하는 일을 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합니다.

나는 실족시키는 자가 아닌지..

내가 지금 실족 당하고 있지 않은지..를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된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열심이 많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데, 그것이 어찌 죄가 되겠느냐?>고 반문하실 분도 많을 줄 압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지옥에 갈 수 있는 죄가 딜 수 있다고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8절,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자기가 자기 손을 찍어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더구나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내서 일을 하고 있는데,

자기가 범죄 하는 지도 모르고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찍어 버릴 수 없다는 것을 말씀 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소자를 실족시키는 이 범죄는

어쩌면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 하는 것입니다.

 

실족 당하는 사람은, 자기 의지로 그것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소자는 자기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족하게 하는 사람이 실족시키면, 그냥 실족 당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게 하면 천국에서 크게 된다’고 하는

실족시키는 자의 말을 믿기 때문에

그 소자는 그것이 죄인지도 모르고, 그냥 실족 당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손으로 발로 소자를 어떻게 실족시킬까요? ↓

 

※교회 건축은, 필요가 있을 때는, 당연히 해야 합니다.

교회 건축 자체를 반대하는 내용은 아니고요,

그러나 교회 건축을 ‘자기 의’로 여기는 것은, 실족케 하는 소지가 있다는 내용입니다.

 

▲(히9:11)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손으로 하는 것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교회당 건축입니다.

과거에 한국 교회는, 예배당 건축이 마치 믿음 인양 말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예배당 건축을 하는데 반대했다가는 공격받을 것입니다.

 

누가 실족 당합니까? 예배당 건축을 반대한 사람뿐만 아니라,

예배당 건축을 잘 따른 사람도 실족을 당할 수 있는데요...

 

왜냐하면 그것이 믿음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예배당 건축이 자기 마음에 자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실족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에는 교회 건축을 했기 때문에, 자기는 믿음이 좋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국 가는 믿음 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교회당 건축을 한 그것으로, 자기 믿음을, 자기 의를 삼는 것입니다.

 

또한 그 일을 할 수 없는 소자는, 자기가 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실족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해 주시지 않아

나는 그런 일을 못하니 믿음이 없는 자라고 스스로 정죄하면서 실족당하는 것입니다.

 

"장로님, 집사님은 하나님의 교회를 건축하는데 온 정성을 다했으니

천국 가실 것입니다."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정말 자기 마음에는 그것이 은근히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수많은 선교 단체가 있습니다.

선교 단체를 후원하고 직 간접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 단체에서는 그곳을 후원 하는 사람들을

참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후원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듣는 작은 소자는, 자기가 하고 있는 그것으로

정말 자기 믿음이 좋다고 착각(실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의가 되기 때문에 분명히 죄입니다.

 

물론 선교단체에 후원하고, 헌금을 보내는 일은 선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의'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의'란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의를 받는 것 말고는요!

 

▲발로 실족케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대표적인 이단인 여호와 증인이 바로 발로 실족케 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전도하고 다니는 것이, 자기들의 믿음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을 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발로 하는 것이 참 많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교회 모임 집회나 행사가 있을 것이며

교회에 봉사하고 헌신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그것을 하면 자기 의로 남는 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행하는 그것으로, 자기 믿음이 좋은 것으로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마18:9절,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눈이 범죄케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눈은 아름다운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신앙생활의 의’일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상이 바로 율법주의적인 사상입니다.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몸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경건의 모양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이면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이렇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으로 실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자는, 자기에게서 그런 모양이 나오면, 자기 믿음이 참 좋은 줄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이는 것을, 절제/조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고후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참 믿음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런 주장에 소자들이 그것이 참 인줄 알고,

자기에게서 눈에 보이는 것을 갖추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노력해서 조금 변해진 자기 모습을 보면서

내가 지금 구원 받을 믿음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소자가 실족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보여지는 모습이 아름다우면

천국에서 큰 자가 될 것처럼 주장하는 그 말을 믿고

자기의 보여지는 모습을 가꾸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10절,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예수님께서 열심이 있는 자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열심'과 '믿음'을 혼동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께 열심이라면서

그것이 죄가 안 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롬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의는.. 믿음을 통해 값없이 얻어지는 의입니다.

자기 의를 세우려고, 은혜로 얻는 하나님의 의를 힘써 복종치 않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의를 힘써 복종하지 하는지/ 않는지를 스스로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내가 하는 신앙생활의 모든 행위는 내 열심이 되기 쉽습니다.

그것은 또한 나도 모르게, 내 의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열심을 내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열심을 내어서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의’가 되어서는 안 되고,

더욱이 그 ‘자기 의’를 통해, 자기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착각해서도 안 된다는 뜻입니다.

 

12~14절.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것으로 인하여, 소자를 잃어버리는 것은

또한 소자를 실족시키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열심을 낸다 하면서

그 열심으로 인하여 소자를 실족 시켜서 천국 오는 것을 막을 바에는

차라리 큰 자가 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의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그것을 절제할 힘이 없습니다.

손을 잘라라, 발을 잘라라, 눈을 빼어버리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그렇게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열심을 절제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아닌 열심이 나타나는 그 모습을, 스스로 절제하지 못한다면

그도 죽을 것이요

그에게 가르침을 받는, 아무 것도 모르는 소자도 실족시켜

죽게 만든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지금 교회에서 하는 모든 행사를

그리고 일을 하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 건축도 해야 하고, 전도도 해야 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열심 때문에 소자를 실족 시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스스로 점검 합시다.

내가 실족 시키는 자가 아닌지

아니면 무지한 소자가 되어, 지식도 없이 그저 하라는 대로 따라하는 자가 아닌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일을 만드는 자만 있지

그 일로 인하여, 영혼이 실족 당할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

안타깝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과거에 3년마다 가시적인 새로운 큰 프로젝트를 내세우는 분이 있었습니다.) 

 

큰 자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자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는 열심에

열심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는 신앙생활의 열심은

신앙인들로 하여금 <참 믿음, 하나님의 의>를 혼동하게 만드는 것 일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가진 흠없는 율법적인 의를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하면, 그것(율법적 의)을 버릴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의, 자기 공로를 쉽게 버릴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영혼 구원 보다 교회 일에 더 열심인 사람은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도, 선교, 건축이라도 분명히 실족하거나, 실족시키는

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자기 열심으로 인하여 믿음을 저버리는 어리석은 소자가 되지 마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