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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원수

LNCK 2013. 3. 25. 12:19

◈십자가의 원수                    빌3:18~19               13.03.10.설교일부녹취

 

오늘날의 종말 징조 3가지 에 계속 이어지는 설교문

 

 

 

 

▲초대교회는, 핍박 가운데서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빌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지금 한국의 성도들, 또한 미국의 교회와 성도들이

신부 단장하고, 들림 받기를 애쓰고 사모해야 될 때인데,

오히려 마귀의 미혹을 받아서, 십자가의 원수로 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의 원수’가 무엇인지.. 오늘 한 번 구체적으로 살펴 보려고 합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18↑

바울이 여러 번 가르치고, 당부했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나고, 틈이 있을 때마다.. ‘십자가의 원수로 살지 말라’고 권면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놀라운 것은,

지금 빌립보서 상황은, 초대교회입니다. 핍박을 받던 상황이었습니다.

 

빌립보서도 옥중서신인데, 지금 바울도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아서,

로마 감옥에서 이 서신서를 쓰고 있습니다.

 

신자 개인적으로나, 사회 환경적으로.. 기독교가 핍박을 받으면,

신자 개개인이나 교회는,, 보통 정결해지고, 신앙은 더욱 순수해집니다.

 

그런데도 본문을 보십시오.

빌3:18b,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우리가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초대교회를 배우자!” .. 그러는데,

그 초대교회 안에도, 한 두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었다고..

 

그래서 바울이 안타까워서,

한 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그것도 눈물까지 흘리면서, 그들을 권고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저는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이것을 십자가에 못 박고 처리하지 않고는,

가장 모범적인 (초대)교회에 다니면서도, 가라지 신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움직이는 동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욕심>입니다.

 

제가 목회자인데, 목회자인 제 자신도 욕심과 욕망을 느낄 수 있음을 종종 발견합니다.

그래서 저 자신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목회를 해 오면서, 제가 3가지를 주님께 서원하면서, 목회하게 되었습니다.

 

◑목회자로서의 나의 세 가지 결심

 

▶1. 내 욕심으로, 절대로 예배당 건축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강권하심으로.. 건축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건축을.. 목회자의 욕심과 야망에 따라서도.. 추진할 수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로서의 ‘교회당’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건축으로서의 ‘교회’,

즉 성도의 모임과 교제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교회당 건축’에 제 목숨을 걸거나, 제가 발버둥치거나,

더욱이 그 일로 인해서, 성도님들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저는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 크고 웅장한 교회당을 지어서,

그 일로 인해서 제가 교만하게 되고, 자고심을 품게 된다면, ‘십자가의 원수’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절대로 ‘교회 건물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겠습니다.

 

▶2. 목회에 대한 내 욕심으로, 숫자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한 영혼, 한 사람이 천하보다 귀하며,

한 영혼, 한 사람을 위해서, (예수님처럼) 내 목숨을 바치는 것이.. 내 삶의 목적이라면,

저는 결코 ‘숫자’에 대해 연련하지 않겠습니다.

 

더욱이 숫자를 무리하게 늘리려고

인간적인 수단을 동원하지 않겠다는.. 제 굳은 각오입니다.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성도님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 앞에서 믿음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숙하고 세워지는 것이니

그것이 우선되지 않고서, 숫자만 많이 늘어나는 것에.. 제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제가 최근에 한국에 가서, 수 천 명이 모인 교회에서 설교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늘 그러하듯이, 막 힘을 내어서,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본 교회에 돌아오니, 적은 숫자가 앉아서 제 설교를 듣는 것을 보고서,

약 3초간 순간적으로, 제 몸에 힘이 쑥 다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순간적으로 저는 회개했습니다.

‘주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사람의 숫자에 매달리지 않겠다고 그랬는데,

제 눈에 잠깐 사람의 숫자가 보였습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이 천하보다도 귀하니,

제가 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도 잊지 않게 해 주소서!’

 

여러분 사실입니다. 제가 설교할 때

‘잃어버린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 우리 속에 들어있는 99마리보다 더 귀하다’

는 사실을, 늘 인식하며 설교합니다.

 

회개하고 변화되는 한 영혼이,

회개하지 않고, 변화되지도 않고.. 그냥 교회당 안에 앉아있는 여러 영혼들보다

훨씬 더 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제 설교를 들으시는 분들도.. 그 숫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숙되는 것이 중요하지,

 

그런 변화가 ‘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이,

그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설교만 듣고 끝내는 ‘99명’보다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교인 숫자가 적으면, 목회자가 힘이 빠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 영혼의 소중함’을 생각한다면,

교인 숫자가 적다고, 목회자가 힘이 빠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인터넷 세상입니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세상에 널리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목회자가 힘이 빠진다’는 것은

사실은 ‘사명감’의 문제이지, ‘숫자’의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3. 저는, 제 욕심으로, 교회를 옮겨 다니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서, 사역지를 옮기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내가 더 인정받기 위해서, 내 야망을 위해서라면,

저는 교회를 옮겨 다니지 않겠습니다.

가급적 저는, 한 교회에서, 끝까지 목회하다가 마치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지금 개척한지 30년이 되었는데,

제 이 소원이, 그대로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네 가지 질문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이 네 가지 질문을, 여러분이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십자가의 원수인가, 아닌가?’.. 를 분별하기 위해서입니다.

 

▶1. 나는 무엇을 위해, 오늘 헌신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제가 답한다면, ‘저는 건물을 위해서는, 헌신하지 않습니다.

저는 영혼들을 위해 헌신합니다.’

 

저는 건물을 위해서는, 죽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영혼이 회개하고 천국 가는 일을 위해서는, 저는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런 각오로 심방하고, 임종을 앞둔 예배에 달려갑니다.

 

오늘날, 교회를 다니시는 분들도, 이런 질문에 정직하게 답해 보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분들은, 주님께 헌신하기 위해서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교육 시스템을 보고서

-교회에 많은 성도들을 보고서, 인맥을 넓히려고,

-큰 교회에서 직분자가 되면, 그것이 자기 자랑이 되니까.. 등등

 

이렇게 기타 다른 목적으로, 교회를 다니고,

그 다른 목적에 헌신하는 신자들이 꽤 많습니다.

 

-또 건물을 보고서, 교회로 찾아오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건물이 웅장해서 오기도 하고,

건물이 초라하면 나중에 건축에 부담이 될까봐.. 안 오는 신자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나에게 스스로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오늘 헌신하고 있는가?’

 

그것이 정말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2. 무엇이 나를 정말 화나게 합니까?

 

사람이 어떤 문제에 대해서 화를 낸다는 것은, 자기 관심이 거기에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자기 관심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좀처럼 큰 화를 내지 않습니다.

 

저는요, 누가 나를 멸시하고, 나를 이단이라고 그러고,

나에 대해 험담하고, 손가락질하고, 멸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화가 안 납니다.

 

제가 화가 나는 이유는,

세상에 죄가 만연하는 것을 보고.. 화를 냅니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화가 납니다.

성도가, 신부 단장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한 세상이, 점점 동성애를 옹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화가 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세워져야 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가감없이 전파되고, 성도들이 정결한 신부로 세움을 받아야 되는데..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웠는데, 아직도 졸며 자고 있는 ‘신부된 교회’들을 보면서,

저는 막 화가 납니다.

 

제가 어제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말 울면서 왔습니다.

그 부흥강사의 설교 중에 ‘여러분의 자녀가 잘되기를 원하면,

자녀 이름으로 헌금을 드리라. 그러면 자녀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얻게 된다’

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예를 들기를, 누가 자녀의 한 달 과외비용을

자녀의 이름으로, 교회에 헌금을 드렸더니,

하나님이 그 자녀를 책임져 주셔서, 좋은 대학 붙었고, 잘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회중석에 앉아서, 그 설교를 듣다가

‘아~ 저 분이, 땅의 일을 생각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땅의 일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할 수도 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도, 자기 욕심으로 행하면, 십자가의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 교회 숫자.. 이런 것에 연련하시면 안 됩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데, 만약 도움이 된다면,

그가, 다른 교회에 가고, 다른 목회자의 메시지를 듣는 것을, 적극 권장해야 합니다.

 

▶3. 오늘날 나는, 무엇에 가장 염려합니까?

 

내 마음에 가장 염려, 걱정을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물질입니까?

 

우리는 죄 때문에, 가장 염려하고 걱정해야 합니다.

그가 성숙한 성도요, 깨어있는 성도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집니다.

 

오래 전에, 제 어머님이 제주도에 가셔서, 기도원을 개척하셨는데,

은사집회를 인도하시면, 사람들이 방언을 받곤 했습니다.

 

그 소문이 퍼지자,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제가 학교에 갔는데,

담임선생님이 저를 불러서 ‘너희 어머니가 이단이라면서?’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담임선생님께 미움을 받아서, 그 해 1년 내내 교실 청소를 했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제가 교회를 다녔는데, 하루는 예배 시간에

‘임마누엘 기도원에 다니는 성도들은 다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일어났고, 보니까 약 15명의 성도님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날 저를 포함한 15명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교회에서 추방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배척당한 성도들을 중심으로, 약 35~40년 전 일입니다.

가마니 깔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 나중에 <서귀포 예루살렘 교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핍박 받는 것을 염려하지 마십시다.

그것은 나중에, 저와 여러분께 복된 영광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염려해야 할 것은, 오직 우리를 타락시키는 죄와

우리 영혼을 지옥에 던지실 수 있는 하나님뿐이십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염려하는지.. 살펴보면,

내가 ‘십자가의 원수’인지.. 아닌지.. 분별되는 것입니다.

 

▶4. 오늘날 나는, 누구의 칭찬에 갈망합니까?

 

성도는, 주님의 칭찬.. 그것 하나면 만족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칭찬과 인정과 존경과 갈채.. 그것을 갈망하고, 그것을 좇아가다가는..

십자가의 원수로 행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을 다 내려놓고, 주님 한 분만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정말 마지막 날 주님의 칭찬, 그것만 바라보게 해 주시옵소서!’

저는 끝까지 그런 종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우리가 발버둥치면서, 그렇게 살지 않으면,

나 자신부터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면, 그 결국이 어떻게 됩니까?

 

빌3: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여러분, 얼마나 무섭습니까!

평생 예수 믿고 교회 다니고, 평생 목회했는데..

그 마침이 ‘멸망’일수도 있습니다.

오늘 내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할 때.. 그렇게 마쳐질 수도 있습니다.

 

‘저희의 신은 배요’

‘십자가의 원수’들이 섬기는 신이 있습니다.

여기서 ‘배’라고 했는데,

‘식탐’을 말할 수도 있고, 나아가 ‘육신’을 뜻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 ‘내 배, 내 육신’의 만족과 욕망을 채우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빙자해서, ‘내 배, 내 육신’을 채우게 되고,

결국 ‘십자가의 원수’가 되고,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정말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십시다.

나는 무엇을 갈망하며 구하고 있는가요?

나는 혹시 십자가의 원수는 아닌가요?

 

예수를 믿는다고, 10년, 20년 이상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지만,

내 욕심, 내 욕망을 내려놓지 못하면, 그것들을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하면..

나는 ‘십자가의 원수’로, 오늘날 살아가고 있으며,

그 마침은 ‘멸망’이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위 녹취문 기계음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