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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기다리며’ 사십니까?

LNCK 2013. 3. 26. 09:19

◈무엇을 ‘기다리며’ 사십니까?           빌3:20~21                  13.03.10.설교일부녹취

 

십자가의 원수 에 계속 이어지는 설교문.

 

 

 

 

 

▲우스갯소리로 ‘집사’는.. ‘집을 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교회에 가면 ‘집사’된다고, 하나님의 복을 받아 게 된다고..

그 말이 귀에 좋게 들려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답니다.

 

그래서 어떤 조사에 의하면,

현재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83%가, 교회에 다니는 주된 목적이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고, 또는 기도 응답을 받고 부자가 되려고’ 라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산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렇게 살면, 신앙생활의 끝은 멸망입니다!’ 라고 권고합니다.

빌3: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여러분,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지 않으셨다면..

이 세상에 오셔서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고, 사람들의 존경과 높임만 받으셨다면..

어쩌면 문선명과 같으실 수도 있습니다.

 

이단 교주들과 예수님의 다른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수많은 기적과 능력을 행하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는데..

이단교주들은.. 그것으로 자기 왕국을 건설하고, 자기가 왕처럼 군림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공생애 동안 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백성들을 가르치시고,

나중에 딱 보좌에 앉아서, 호의호식하면서 왕처럼 군림하셨다면..

십자가를 지지 않으셨다면..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시며 세상을 마감하셨다면,

문선명과 뭐가 다르며, 박태선과 뭐가 다릅니까?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고’

이단 교주들은 ‘십자가의 원수’로 행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저와 여러분이

내 앞에 놓인 십자가 지기를 거부하고,

자꾸 편안한 삶, 부귀영화를 누림, 이런 것에만 신경 쓰고,

세상의 복음전파와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데 인색하다면...

어쩌면 우리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예수님의 자취를, 그 발걸음을 따라가는 성도이고,

십자가를 지기 거부하는 사람은.. 신자이지만..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내가 높아지고, 내가 출세하고, 내가 사람들의 공경과 환호를 받고,

‘내가 유능해서 이런 대우를 받는 거야, 나를 봐라!’ 하고 있으면.. 나는 ‘십자가의 원수’가 됩니다.

 

그러나 높아지고, 사람들의 대우를 받을수록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로,

자신을 제물로 드려서,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그 십자가의 길로 나아간다면,

그는 대대로, 영원히 존경과 사랑을 받는 ‘믿음의 조상’이 될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빌3:20a

 

1974년도에, 제 아버님이, 저희 가족을 데리고 미국에 이민을 오실 때,

내무부, 외무부, 미대사관 등지를 다니시면서, 이민 수속을 하시느라 바쁘게 다니셨는데,

그때 구두 뒤축이 다 닳아서, 2번이나 그것을 새로 갈으셨다고 합니다.

그것도 엑스레이를 찍은 큰 필름을 들고 다니면서, 그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는 미국 비자는 물론이요, 국내에서 여권 받기도 쉽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또 소양교육도 받아야 했습니다. 이사 문제도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때 아버님이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여러분, 미국이란 나라도, 거기에 가려면, 생업을 포기할 정도로 쫓아다녀서,

겨우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결코 그 나라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서 노력한 결과, 겨우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하늘나라의 시민권(빌3:20)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믿으면 다 구원받는다’고 성경에서 가르칩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대단히 쉬운 줄로.. 신자들은 착각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요한복음, 로마서,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믿으면 구원받는다. 믿으면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말씀의 의미는

<미국 이민 가는 과정>에 비유하면.. 그건 초청장 받은 것입니다.

 

구원의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초청장은 누구에게나 주어집니다.

 

그러나 초청장을 받아도, 아직 (미국, 천국) 시민권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시민권을 받기까지는.. 그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천국 가는 초청장 받았다고, 마치 시민권을 받은 것처럼 착각하면 안 됩니다.

 

‘마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초청장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예복을 입은 사람만 그 잔치에 참여했습니다. 마22:11~12

 

열 처녀도 모두 잔치에 초대를 받았지만,

기름을 예비한 다섯 처녀만 잔치에 참여했고,

졸며 자고 있었던 다섯 처녀는.. 잔치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마25:11~12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발버둥 칩니까?

그런데 정말 그 노력과 정성의 10%만 투자해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습니까? 천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애쓰고 계십니까?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3:20b,

 

‘거기로서’

‘하늘에서부터’입니다.

거기 하늘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러 오십니다. 데리러 오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들림 받음, 휴거’를 기다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날은, ‘시민권’이 주어진 자만, 들림을 받습니다.

‘초청장’만 갖고는 안 됩니다.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여기서 ‘기다리노니’를 ‘추구하나니’로 바꾸어도, 문맥의 뜻은 똑같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 때,

우리 각자는, 뭔가를 기다리며, 또는 추구하며 삽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과 출세,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천국 시민권을 갖기 바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천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립니다.

왜냐하면 그는, 천국을 기다리니까요!

 

그런데 지금 천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리스도를 기다리지 않고,

땅의 것만 주로 추구하며, 사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초청장’만 가졌는데, 자기가 ‘시민권’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 시민권’을 가진 자들은,

이 세상에서 잘 살면 좋지만, 조금 잘 살지 못해도,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관심/ 염려/ 분노/ 칭찬이..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오기 때문이며,

그는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차피 뭔가를 추구하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추구하며, 사시게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여기서 ‘기다리노니’는 보통 평범하게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영어성경에는 eager to wait으로 되어 있습니다.

간절히 소망하며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천국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는 자가, 세상 부귀영화에 눈독 들일 여유가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만 들림 (휴거) 받습니다.

이런 성도만 천국 시민권을 가진 증거입니다.

 

죄송한 이야기지만, 진실이니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이 땅에 것만 목숨을 걸고 ‘기다리며’ 살고 있다면,

여러분은 아직 시민권이 없는 신자입니다.

시민권이 있다면.. 결코 땅의 것을 ‘기다리지’ 않고, 예수님을 ‘기다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빌3:21

 

바울이 지금 죽어서, 장례를 지낸 후의 ‘영혼의 부활’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 본문은, 재림의 순간, 우리 ‘육체의 부활’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의 이 ‘낮은 몸’이

주님이 오시면, 부활의 몸으로, 죽음을 맛보지 않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전지전능하신 천지창조의 역사입니다.

그 천지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주님은,

우리의 낮은 몸을, 부활의 몸으로.. 거뜬히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이것이 바로 들림입니다.

이것이 바로 휴거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몸을, 썩을 육체를,

예수님과 같은, 영광의 몸의 형체로 바꾸어 주셔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하늘나라에서 이제는 영원히 영광스럽게 살게 되는 몸..입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가택 연금) 당한 가운데서, 이 빌립보서를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그는 ‘부활의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땅의 것이 아니라, 저 천국에서

자기 몸이 영광스런 부활체를 입을 것을.. 내다보며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런 소망은.. 현실은 감옥이지만.. 바울로 하여금, 천국 생활을 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 마음에는, 주님이 주시는 천국이 임했던 것입니다.

 

▲마치는 말

여러분, 오늘날 우리로 하여금 ‘들림 받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땅의 것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세상 욕심에 휩쓸려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살아라’가 아니라, ‘이렇게 살게 되어 집니다.’

만약 ‘이렇게 살게 되어 지지 않으면’.. 그는 천국시민권이 아직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주님께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신학이 필요하고, 신학이 성도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독교는 지식이 아닙니다.

내가 신학과 (이신칭의) 이론을, 머리로 깨달아서.. 구원을 얻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천국시민권은.. 내가 뭘 배우고, 그 사실에 내 마음으로 동의해서.. 주어지지 않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창조의 역사로,

내 마음에, 하나님이 천국을 새 창조 해 주셔야 합니다.

그걸 한 마디로 설명하면.. ‘신비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게 없으면.. 우리는 주님께 간절히 그것을 사모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내게 신비의 새창조의 역사를 주시도록!

 

<위 녹취문 기계음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