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에 한 명은 험담꾼이다 요6:70~71, 고후12:20 출처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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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담자는 가룟 유다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요6:70~71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 중에 한 사람은 험담꾼이니라’ 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이 해석이 맞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여기서 가룟 유다를 "마귀"라고 지칭하셨을 때
그것은 어떤 의미로 사용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이 말씀은 비유적인 것일까요, 아니면 실제적인 것일까요?
모든 사람은 그 영혼 속에 악한 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실제로 마귀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일까요?
일부 학자들은 유다는 완전히 사탄에게 사로잡혀
실제로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기 전에,
우리는 이 타락한 사도가 예수님을 팔아넘긴 후에
너무나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낀 나머지, 자살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귀가 죄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요?
나, 프랜시스 프랜지팬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예수님이 가룟 유다를 "마귀"로 지칭하신 것은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 가운데 자연스럽게 퍼져 있는
"비방 (비난, 헐뜯음, 명예훼손)" 등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에 쓰인 그리스어 디아블로스(diabolos)라는 이 단어는
본문 요6:70절에서는 마귀(devil)로 번역되었는데,
일반적으로 "거짓 고소자, 비난하는 자, 혹은 악한 험담꾼"으로 번역됩니다.
은유적으로 ‘마귀’ 또는 ‘마귀 편에 선 자’로 번역됩니다.
실제로, 딤전3:11절과 딤후3:3절에서는
‘디아블로스’를 "악한 험담꾼, 모함자"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딤전3: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디아볼로스)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딤후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디아볼로스)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
"너희 중에 한 명은 마귀다" 즉 ‘너희 중에 한 명은 디아볼로스다’ 라고 하신 말씀은
"너희 중에 한 명은 헐뜯는 자, 또는 악한 험담꾼이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들의 충성심을 자랑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그들을 바로잡아 주시면서,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맞다. 내가 너희들을 선택했다. 그러나 너희 중에 한 명은 악한 험담꾼이다.
그는 악한 말로, 결국 나를 대적들에게 팔아넘기게 될 것이다."
◑혀는 ‘지옥의 불’이 될 수 있습니다.
▲말세에 만연할 험담.
바울은, 교회에 퍼져있는 이 험담하는 문제는
말세에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세의 일들을 얘기한 내용을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딤후3:2~3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디아볼로스)하며 ...’
이렇게 계속 열거하고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배교의 죄들을 열거하는 가운데,
"참소하는 것(악한 험담을 하는 것)"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이 말은 요6:70절에 있는 "마귀(디아볼로스)"와 일맥상통하는 말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항상 타인의 부정적인 면을 보고,
항상 타인의 부정적인 것들을 대화중에 끄집어내는 사람들을 봐 왔을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악한 험담"이 어떻게 사탄의 본성과 짝을 맺게 되는가를 계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우리는, 자기의 말로 인해
의롭다 함을 받거나, 정죄 받게 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마12:37.
그렇습니다. 우리의 말,
즉 타인에 대해서,
배우자나 친구사이에 비밀리에 나눈 말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지, 하지 않는지 판단하는데 있어서,
우리의 말을 보고, 판단하십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기록하기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약3:2.
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성경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잠18:21.
믿음을 시인하는 우리의 말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불신과 모함의 말은, 우리와 우리 동료들을 파멸과 번민으로 인도합니다.
▲야고보서 3:8절은 경고하기를,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지는 6절에서 야고보는
‘혀는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고 경고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혀를 통해서,
이 세상의 선하고 거룩한 것을 파괴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활동합니다.
우리 인생 과정
곧 이 땅에 존재하는 우리의 목적과 삶의 내용들이
우리가 하는 말을 통해서.. 지옥의 불이 붙게 됩니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하거나 악한 험담을 한다면,
파괴적인 지옥의 불이 우리 말을 통해 풀려나게 됩니다.
‘주님, 우리 말에 권세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하소서!’
나는, 하나님이,
교회가운데 역사하는 험담과, 부정적인 말들의 권세를
파쇄하기 원하신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말이,
그것이 왜 악한 것인지.. 완전히 분석해야 합니다.
우리가 여전히 험담과 비방에 빠져있다면,
이제 우리는 그 ‘지옥의 종노릇하는 것’을 끊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열방을 위한 기도의 집’이 되도록 부르셨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 즉 영적인 거룩한 성전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즉 부정적인 것들을 분별할 수 있는 완전한 능력을 갖추고
세상을 향해 구원을 선포할 자세를 완전히 갖춘
성숙한 영적 공동체가 되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바울이 우리의 공동체를 방문한다면
사도 바울이 일상적인 미국의 어떤 한 도시에 방문한다고 상상해 봅시다.
바울이, 우리 공동체 내에 있는 분열 과 불화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할까요?
어쩌면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한 말을 똑같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고후12:20
위에 열거한 것들이, 당신에게 (미국 한 도시 내의) 어떤 교회를 떠올리게 합니까?
분쟁하는 A교회, 비방과 험담이 난무하는 B교회..
우리가운데 그런 문제점들을 안고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나는 하나님이 교회에, 새로운 해결책을 주시고자 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과거를 내려놓지 않는다면, 미래를 붙잡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아무개가 (상대방이) 이 말을 들어야 한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지도자들은, 신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멈추어야 합니다.
설교가운데 사람들에 대한 문제점들을 들춰내는 것을 삼가해야 합니다.
중보자들은, 그들이 기도해야 할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험담을 멈추어야 합니다.
10분 동안 그의 부정적인 얘기를 한다면,
20분 동안 그의 구원(회복)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판단하지 마십시다.
당신은 인생을 살면서 나타나는 결점들을 어떻게 대처합니까?
험담하십니까?
누군가의 실패 소식을 들을 때
재빨리 그 소식을 주위에 퍼트립니까?
예수님이 당신의 친구들을 바라보시면서,
초대 사도들에게 하신
"너희 중에 한 명은 악한 험담꾼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험담꾼이나 비방하는 자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교제를 나눌 때 험담하는 자리는 피해야 합니다.
험담은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경고하기를,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고전5:6.
우리가 현자와 걷는다면 현명해 질 것이고,
냉소적이고 비방하는 자들과 어울린다면 그들을 닮아 갈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
너희는 듣는 것을 삼가라, 즉 듣는 말을 주의하라는 이유입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막4:24.
이처럼, 우리는 험담을 듣는 것조차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형제의 부정적인 것을 보여 주실 때,
그것은 우리가 그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이지
온 동네에 떠들고 다니라고 준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긍정적인 것에 집중하도록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그 형제의 현재의 결점과 한계를 뛰어넘는
미래에 이루어질 일들을, 영적인 환상을 통해 봅니다.
그들은 그 본 것들이 이루어 질 때까지, 계속 중보기도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중에 어떤 누구도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누군가를 판단할 때마다,
우리 또한 즉시 심판대에 올려지게 됩니다.
판단의 죄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각 개인들도, 끊임없이 자신의 약점 안에서 넘어질 뻔했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실패를 피한 것뿐입니다.
우리가 타인의 실패를 비방하거나, 자기 의를 가지고 판단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타락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마귀의 편에 섰기 때문입니다.
당장은 아무 일이 없을지 모르나, 결국은 그 쓴 열매를, 자기가 다 거두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과 말은, 반드시 자비에서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이나 사람에 대해
반드시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야 할 때는
악의나 그릇된 의도를 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형제의 파멸이 아니라, 구원이.. 우리의 목표가 되도록 하십시다.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일을 배반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를 지키십시다. 악한 험담의 길에서 우리 스스로 떠나도록
주님의 은혜에, 자기를 부탁하십시다.
(험담하지 않도록.. 나의 최선을 다하지만, 그래도 부족한 나머지는, 은혜에 부탁하는 것입니다.)
‘패려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장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 잠16:28
주님, 나의 입술을 거룩한 제단의 불로 정결케 하소서.
아버지, 항상 구원으로 인도하는 말을 하지 못한 나의 말을 용서하소서.
주님, 교회를 험담하는 곳에서 구원하여, 은혜를 전파하는 일을 하도록 인도하소서.
우리 각자가 ‘기도의 집’이 되도록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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