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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0 고난 받은 크기에 따라서, 천국에서 인정받습니다 / Русский

LNCK 2013. 4. 25. 15:50

◈고난 받은 크기에 따라서, 천국에서 인정받습니다.    마5:11~12, 눅6:24~26     

                                                                                                             Russian Translation 

 

 

 

☞<제자들의 이름이 기록된 순서에 관한 묵상>에 계속 이어지는 설교문

첫 번째 이유는, 전도를 하고, 형제를 돌아본 사람의 이름이, 성경에 먼저 기록되었고,

  

두 번째로, 12사도들 중에, 고난을 많이 받은 사람의 이름이,

성경에 먼저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

베드로 사도는, 초대교회에서, 박해를 받은 인물의 대표자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 그룹의 대표였기 때문에, 조그만 계집종도 그를 알아볼 정도였습니다.

(아마 다른 사도였다면, 계집종이 그를 못 알아봤을 것입니다.)

 

그러니 베드로는,

그 이후로도, 아마 가는 곳마다, 박해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를 좋아하고 믿고 따르는 무리들도 있었겠지만,

 

그와 그가 전파하는 기독교의 복음을.. 듣기 싫어하고, 고의로 거부하는 사람들은,

가장 얼굴이 널리 알려진, 베드로부터 핍박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행12장에 봐도, 베드로는 감옥에 갇혔고,

다음날 아침에 참수를 당할 형편이었는데, 극적으로 감옥에서 탈출하기도 했습니다.

 

기독교 전승에 의하면,

결국 그는 마지막에,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못 박혀 죽었다고 합니다.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고난을 많이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가 쓴 베드로전후서를 보면, 당시 모든 성도들이 핍박을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베드로가 그 무리들의 대표였으니, 아마 가장 많이 핍박을 받았음을

우리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 씌어진 4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보면,

12사도들 중에, 베드로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그 이유는, 그가 12사도들 중에 누구보다도,

고난을 가장 많이 받은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왜 성경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의 이름이, 순서상 가장 먼저 나오느냐?’

하는 이유를 살피면서,

그 순서는, 핍박을 가장 많이 받은 순서다.. 라는 논지를 펼쳐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가 흐르면, 우리 다음 세대에는,

또한 우리가 천국에 가서는,

누가 가장 큰 우대를 받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전파를 위해서

핍박을 가장 많이 받은 순서가 아닐까요?

 

지금은 이 세상에서 순교하고, 투옥되고, 기타 여러 박해를 받는 사람이

불쌍하게 보이지만,

천국에 가서는, 그분들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을 영광이 너무 적으니까요!

 

▲야고보 사도

야고보는 주후 47년에, 12사도들 중에 최초로 순교합니다.

헤롯이 그를, 제일 먼저 죽였습니다.

 

행12:1 그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야고보는, 12사도 중에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젊은 나이에, 30대 초반에, 죽었으니

얼마나 억울합니까?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즉 영원한 천국에서는

야보고가 베드로 다음으로, 아주 존귀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요한 사도

사도 요한은, 산 순교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다른 사도들은 다 순교했지만,

약 90세까지 살아남아서, 요한복음, 요한 1, 2, 3서,

그리고 밧모 섬에서 요한계시록을 썼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순교자’였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빨리 죽은 순교자’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하잖아요.

치과에 가서 이를 뽑게 되었을 때,

‘빨리 뽑아드릴까요, 아니면 천천히 뽑아드릴까요?’

 

‘살아있는 순교자’의 삶이, 어떤 면에서 더 힘들다는 것을,

치과치료를 예로 들었는데, 더 좋은 예가 있으면, 여러분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밧모섬은, 당시에 채석장이었습니다.

사도요한은, 그 늙은 나이에, 밧모섬에서, 채석장 노동에 동원되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적어도 거기가, 당시에, 관광지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험한 채석장에서,

그는 ‘요한계시록’의 환상을 받았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그저 등 따습고 배부른 환경에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중노동과 감금과 유배의 상황에서, 그 고난의 상황에서 얻어진 결실입니다.

 

아마 사도요한이 당시에 에베소 교회의 목회에 바빴더라면

어쩌면 요한계시록의 환상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의 이름이

12사도들의 이름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을 보면,

사도 요한도, 다른 어떤 사도들보다

가장 극심한 고난과 환란을 겪었기 때문에, 얻게된 영광인 것입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의 이름은,

하나님 나라에서, 그 순서가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요?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당하는 고난, 환란의 분량에 의해서, 결정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신앙선배는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이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분들이 가장 많이 고난을 당하시고, 순교하셨기 때문이 아닙니까?

 

현실적으로 보면, 그 남은 가족들까지,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지만,

그러나 역사는, 그 분들을

가장 훌륭한 기독교 지도자들로, 자리매김 해 주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위치와 받는 영광에, 그 누구도, 이견을 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 믿고, 축복 받았다고, 이 땅에서 무슨 제왕 노릇 하려는 사람들..

그거 영생의 관점에서 보면,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닙니다.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왕노릇은,

섬기는 왕, 사랑의 왕, 봉사의 왕이지.. 군림하는 왕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왕으로서 군림하셨나요? 섬기는 왕이셨나요?

 

대신에 성경은, 세상에서 출세하고 부자되었다고 ‘기뻐 뛰놀라’고 하지 않고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핍박을 받을 때, ‘기뻐 뛰놀라’고 하셨습니다.

 

마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여러분, 오늘부터, 저와 여러분이 진짜 성숙한 신자라면,

우리의 기쁨의 이유를, 좀 바꾸어야 합니다.

 

사업 잘 된다고.. 기뻐하지 말고, (이게 잘못된 것은 아니고, 축하해야할 일입니다만)

주님은, ‘나로 인하여 핍박을 받고, 악한 말을 들을 때에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친히, 그 앞의 즐거움을 위하여, 현재의 고난을 참으셨습니다. 히12:2

그리고 사도바울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롬8:17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가 기뻐할 이유를, 이제는 좀 바꿀 때가 되었습니다.

제발 세상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마시고,

영원한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눅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여러분, 혹시라도, 이런 것↓은 복이 아닙니다. 오히려 화가 있는 것입니다.

 

눅6:24 그러나 화 있을찐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여러분, 주님을 위해서 고난 많이 받으시길 축원드립니다.

아멘 소리가 적네요!

그런데 주님은, 성경에, 이것이 복이라고 하셨으니,

나중에 천국 가서 눈물 흘리며, 후회하지 마시고,

이 땅에서 고난 받는 복을 받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을 받으면

여러분의 믿음이, 오히려 강해 집니다.

 

그리고 악으로부터, 지켜집니다.

스스로 악을 멀리하고,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유익들이 있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에게 핍박을 허락하시는 면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 받으세요!’ 하면 “아멘, 아멘!” 하지 마시고,

‘핍박도 기꺼이 받으세요! 피하지 마세요!’ 하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들의 교회도, 성숙되어져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언제까지 복 타령만 하고 있겠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전도하고 복음 전하다가

핍박과 어려움을 당하시는 복을, 업신여김을 당하는 복을,

여러분은 받아 누리게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그래야 베드로, 야고보, 요한... 하면서 이름(서열)이 쭉 나열될 때

내 이름도 거기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고난 없이 너무 편안하게만 살고자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우리가 현재, 너무 세속적인 삶에 빠져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참된 성도의 삶을 사는 신자는,

고난을 받는 것이,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입니다.

 

롬8:17,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죄송한 예를 들자면,

여러분이 <주님의 입장>이 되어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누구를 가장 가까이 두겠습니까?

주님(나) 때문에, 핍박당하고, 곤란 당하고, 어려움을 겪은 사람을

가장 존귀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이런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 타고 다니면서

옛날에 왕들보다 더 좋은 음식을 먹고 살잖아요.

 

그러니까 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이 점점 없어지는 거예요.

그냥 이 세상에서, 영원히, 천국처럼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핍박을 받도록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천국을 사모하게 되잖아요.

그래야 우리가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을, 싫어 버리게 되잖아요.

 

환란과 박해를 받아야,

우리가 다 천국에 하루 속히 가고 싶어할 것 아닙니까?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할 소망을 품지 않고,

엉뚱한 세상 소망, 현재 소망을 품고 살아가니까,

 

예수님이.. 핍박을 허락하셔서 (마귀가 난동 부리는 것을, 주님이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다 천국 소망을 갖고 살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유독 세 제자만 데리고 다니신 이유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종종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만 데리시고,

변화산에도 올라가시고,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는 집에도 데리고 가시고,

3명만 유독 편애하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그 집이 좁아서, 세 명만 데리고 가신 것은 아니고요.

겟세마네 동산(막14:33), 변화산에도,

뭐 장소가 좁아서, 특별히 3명만 데리고 가신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세 사도가, 12사도들 중에

장차 가장 고난을 많이 받고, 가장 핍박을 많이 당할 사도들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특별히 많은 관심으로, 그들을 양육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서 순교했고

야고보는, 12사도들 중에 가장 먼저 순교했고

요한은, 산living 순교자로, 일평생 고난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 명을 데리고 가신 그 모든 장소의 공통점은

<모두 죽음의 장소> 이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그곳은 죽음의 장소였습니다.

‘내가 죽은 자도 살리는 것을 보아라. 너희도 죽음이 닥칠 때, 두려워말라!’는

메시지를 주시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제자만 따로 데리시고, 변화산에 올라가신 것도

예수님이 장차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거기서 가르침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의논하는 것을.. 그들은 observer로서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12제자를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셨지만,

세 제자만 더 가까이 데리시고, 그 동산에서 기도하신 것은,

거기는 예수님이 잡히신 장소요, 죽음의 행진이 시작되는 첫 지점이었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 원합니다’ 라는

십자가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그 예수님의 모습을

세 제자들은,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배운 것입니다.

 

‘장차 너희들이 피를 흘리고, 순교하는 그 순간에도

나를 기억하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의연히 십자가의 길을 가라!’는

그 메시지가 아니었을까요?

 

여러분, 부모의 마음은,

여러 자녀들 중에, 가장 고난을 많이 당하는 자녀에게, 가장 많이 가는 법입니다.

 

예수님도, 장차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고난을 가장 많이 당할 것을 내다보시고,

그 세 제자들을 특별히, 예수님이 가까이에, 데리고 다니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과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그렇다고 두려워하지는 마세요!

주님은, 가장 복음을 위해 고난을 많이 받을 종들을

특별히 사랑해 주시고, 가까이 두시고,

그들을 영원한 천국에서, 가장 우대받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3년반 공생애를 지나실 때,

하늘에서, 예수님을 향해, 음성이 3번 들렸습니다.

 

-요단강에서 처음에 수세를 받으신 직후

-변화산에서 십자가를 의논하신 직후

-예루살렘에 나귀타고 입성하신 후, 십자가 지시기 직전

 

위 3번의 공통점은, 다 예수님이 죽으실 때 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세례는 ‘죽음’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인류의 대표로, 두 번째 아담으로서, 죄에 대해 죽는 것을 뜻합니다.

이때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마3:17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를 결심하시고,

그 의논을 모세와, 엘리야와 마치셨을 때, 하늘에서 똑같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마17:5.

 

-세 번째 장면은, 예수님이 나귀를 타시고, 왕으로 입성하신 직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이었습니다.

 

요12: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29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이상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로 결심하시고,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러 가실 때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린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응원>인 셈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극심한 고난을 당할 때,

하늘에서 응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는 식으로

똑같은 문장이 들린다는 소리가 아니고,

어떤 형태로든지.. 고난당하는 성도들을 응원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여러분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싶으세요?

한 번 ‘죽음의 불같은 고난’을 받아보세요!

하늘에서 응원하는 친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오늘날 실제로 듣는 사람들도 간혹 있습니다. 불같은 시험을 당하는 분들요!)

 

여러분도 “OOO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하는 음성이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직후에 총탄이 “빵!” 하는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영혼이, 하늘나라로 영접 받으며, 가게 되겠지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순교할 때,

예수님이, 하늘 보좌에서 벌떡 일어나셔서, 스데반을 응원해 주셨습니다.

 

행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예수님이 일어나신 것은,

순교하는 스데반을 응원해 주시고,

또한 천국으로 입성하는 스데반을 영접해 주시기 위해서

주님의 보좌에서 벌떡 일어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록에 보면,

그런 ‘이긴’ 성도들을 주님의 보좌 (곁)에 앉혀 주신다고 하잖아요?

 

계시록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여러분, 고난이 많은 사람이

하늘나라에서는, 그의 이름이 영원히 기록되고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로, 주님께서 그렇게 인정해 주시고

모든 앞서간 성도들 가운데서도, 그렇게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께, 그러한 진짜 복이 임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세 번째로, 신앙이 매일 성숙해 가는 사람들이, 성경에 먼저 기록됩니다.

즉, 천국에서 우대 받습니다.

 

아래 음성 설교를 들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