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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은 늘 은혜의 빚을 주는 사람 / 中語

LNCK 2013. 5. 10. 15:22

◈크리스천은 늘 은혜의 빚을 주는 사람            에2:19~23          출처보기

                                                                                                                            Chinese Text

 

▲본문에, 대제국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의 목숨을

모르드개가 구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왕이, 모르드개에게, 자기의 목숨을 빚지는 자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절대 권력자 왕이, 평민 모르드개의 목숨을 구해주어야 정상인데,

반대로 평민인 모르드개가, 제국의 절대권력자의 목숨을 구해줍니다.

 

저는 이 본문에서 ‘하나님의 사람,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보게 됩니다.

자기가 어떤 지위와 어떤 처지에 있든지 상관없이,

자기 주위의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들을 구해주는.. 그런 일을 하게 됩니다.

진정한 크리스천은, 반드시, 이렇게 꼭 필요한 그 일을 하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신앙인이 무엇이냐?

왕에게 조차도 꾸이지 않고,

오히려 꾸어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신앙인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설명

왕의 출입문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두 내시가

왕을 모반하여 암살하려는 계획을 숙의하는데, 그것을 모르드개가 듣게 됩니다.

 

아니 그 큰 제국의 왕을 죽이려고 하는데,

어떻게 모르드개 같은, 힘없고 빽 없는 사람이

특별히 몰래 숨어들어갔다가 우연히 듣게 된 것도 아니고

자기가 있어야 될 일자리인 성문에 앉아 있는데,

어떻게 그런 얘기를 듣게 되느냐는 겁니다.

 

무슨 모반을 이렇게 엉성하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어쨌거나 하나님의 역사 아니었겠어요?

 

두 내시가 누군가 봤더니, ‘문을 지킨다’(2:21)고 하는 것은

‘쉐에르’라고 하는 히브리어 단어를 생각하면, 왕궁의 정문이나

왕실의 침실 문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마치 느헤미야가 술 관원으로서 왕의 측근이었던 것처럼,

이 모반자들은, 측근중의 측근들이었을 겁니다.

 

이 사람들이 왕을 죽이려고 마음만 먹으면

그까짓 것 문제가 될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아니 왕의 출입문을 지키는 내시가, 왕을 죽이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그들이 모르드개가 듣는데 와서, 그런 역적모의를 숙의 하느냐 이겁니다.

모르드개가 우연히 듣게 된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자기 조카, 왕후 에스더에게 알려 주고

에스더가 왕에게 얘기해서 불러다가 내시들을 내사하고 조사한 결과

사실인 것이 확인이 되어서, 그들을 죽이고,

왕이 살아남고, 이 이야기를 궁중 문서에 기록해 놓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다 잊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빚진자로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자, 지금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향한 특별한 계획과 섭리를 진행 중에 계십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지금 그들이 initiative를 쥐고 살 수 있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일에는, 꼭 크리스천들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자기의 종족과 민족에 대하여

일절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뭘 뜻하느냐? 2:20.

 

모르드개가 느끼기에, 아직 아하수에로 왕의 마음에서

유대민족에 대한 생각이 그 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느낍니다.

변방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에요.

유대나라가 왕의 마음에, 가까이 있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이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를

하나님께서 단 한 번의 사건을 통해서 완전히 뒤바꾸어서

아하수에로 왕의 목숨을 건지게 만들어 버리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유다백성이 구원을 받으려면, 아하수에로 왕의 덕을 봐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는, 어떻게 이끌어 가시느냐?

 

아하수에로 왕이 먼저 신앙인에게 덕을 보게 합니다.

왕이 먼저, 신앙인에게, 은혜를 입게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볼까요?

바로 왕이 요셉을 자기 바로 밑에 총리로 두고

요셉에게 자기의 모든 권력을 다 위임해 버립니다.

 

그런데 요셉이 바로 왕의 덕을 본 것이 아니에요.

꿈을 꾸고 나서 어쩔 줄 모르고 그 꿈대로라면

애굽이 이제 5년 뒤에 풍년이 지나고 나면, 다 멸절하게 되어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을 요셉이 구해주는 겁니다.

 

그 천하에 지금의 미국과도 같은 그런 나라였던 애굽의 왕이

감옥에 갇혀 있던 히브리 유랑민의 아들이었던

감옥에 있는 죄수의 덕을 보게 만드십니다.

 

아, 신기하지 않아요? 여러분!

왕? 높은 자리 아닙니까?

 

거기까지는 못가더라도 하여간 그것을 향하여 가는

상승 가도를 달리고 싶은 것이 인간이에요.

 

우리 모두가 좋은 대학가고 싶어 하고 돈 많이 벌고 싶어 하고

건강하고 오래살고 싶은 것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

좌지우지 하고 싶은 것

이런 것이 다 왕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본능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인간의 최고봉에 서있고

그것을 실현한 그 자들에게 채권자(은혜의 빚을 주는 사람)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절대로 자유롭습니다.

무엇에 대해 자유롭습니까? 사람에게 덕을 보려고 하는 것에서 자유롭습니다.

 

누가 나를 좀 도와줘야 되는데?

누가 나를 좀 알아줘야 되는데?

누가 내 말을 좀 들어줘야 되는데? .. 하면서

 

누구에게서 은혜와 덕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 한 자들이.. 바로 신앙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크리스천이,

누구의 덕이, 누구의 은혜가, 누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그런 마음이 있다면

그는,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개인적 간증

 

저에게는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에,

참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래서 선교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선교회를 시작하면서, 제가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이사회 구성이었어요.

그 이사회 구성을 왜 생각했느냐?

첫째 원인이 재정적인 소스 뭐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운영은 해야 되겠고, 그래서 제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봐야

영락교회 계신 분들을 제일 많이 아니까

몇몇 분들, 능력이 있다할 만 한 분들,

제가 덕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몇몇 분들을 찾아 갔습니다.

 

그 분들이 다 그럴 분들이 아니에요.

그 옛날에 같이 지내던 정을 생각하면,

제가 무슨 일을 벌인다고 하면, 발 벗고 나설 분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다 거절당했어요.

저는 그냥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여깁니다.

 

▲제가 지인을 찾아다닌 그건.. (제가, 순간적으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사람들에게 덕을 보려고 하는 마음으로,

제가 어떻게 선교회를 이끌어 가겠습니까?

 

그 마음에는 선교회를 이끌 수 있는 어떤 영향도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나중에 깨닫습니다.

맨 처음에 어떻게 생각했는가 하면

그냥 원룸하나를 빌려서 거기서 나 혼자 촬영하고

설교를 하면서라도 시작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나와서, 며칠 지내다 보니까

신앙이 잠깐 식어졌던 거지요. 그래서 사람들을 찾아 다녔던 것입니다.

 

거절당하면서 혼자 머물고 있을 때

방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깨닫게 됩니다.

아! 내가 이거 잘못생각하고 있구나.

사람들이 내게 덕을 봐야지. 왜 내가 사람들의 덕을 보려고 하고 있느냐?’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고백하면서

내가 지금 여기서 선교회를 하려고 하는 것은

내가 이것을 통해서 ‘내 인생의 꽃’을 피우려고 하는 게 아닌데,

 

하나님이 내게 선교회를 하게 하신다면

다른 사람들이, 나의 덕을 보게끔 하시려고 하시는 것이지?

내가 채권자 (not 채무자)가 되게 하시려고 하시는 것이지?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남들을 찾아다니며, 은덕favor을 얻으려고 하느냐?’

 

제가 깜빡 잊었던 것을, 재빨리 다시 깨달은 거예요.

태 목사가 잘나서가 아니라

구조상

하나님께서 어쨌든 먼저 제 쪽으로 먼저 은혜를 부어주셔서

선교회 관여되는 분들에게 말씀이 나가는 것 아닙니까? 그렇잖아요?

구조적으로 그렇게 되어있지 않습니까?

 

▲결국 아하수에로 왕이, 유대인을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

나중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마음에는

모르드개가 자기의 생명을 구해줬다고 하는, 은혜를 입은 자로서 출발하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여러분에게 덕을 보려고 하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그러면 선교회가 망조가 드는 거예요.

 

지역 교회의 목사님이, 그 교회에서

교인과 장로 권사 집사님들의 덕을 보고 은혜를 입으려고 하면

그 교회는 망조가 드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너무너무 목사님을 통해서 보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고마워서

‘빚진 자의 마음’으로 봉사를 해도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세상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에요.

누구의 덕을 보려고 하지 마세요.

어떤 사람의 은혜를 입어야 된다고 마음 졸여 하지 마세요.

 

그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내 인생에 대한 계획이 있다. 몰고 가시고 진행하신다.’

 

내가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자꾸 내가 계획하고 내가 몰고 나가려고 하는 (이건 잘못된 것입니다.)

 

드라이버의 입장에 서 있으려고 하는 내 죄성을

십자가에서 죽은 것으로 인정하면서

하나님이 몰고 가시는 인생의 차에 올라타면,       ☞정거장과 주차장

하나님께서 다 필요한 대로 이끌어 가시면서

 

사람들로부터 은덕을 입지 못해서, 안절부절 하는 마음으로부터 온전히 해방시키고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내덕을 보게 하는 겁니다.

 

왜 내 안에 하나님이 가득하니까, 내 안에 하나님이 가득한 상태에서

그 하나님이 자꾸 전달이 되면 그 사람들의 생명을 빚지고 있는 거예요.

생명이 내게 빚 진자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세상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직책상 조직상 회사 같은데서, 내가 낮은 자리에 있습니다.

 

내가 과장인데, 위로 부장님, 전무님, 상무님, 사장님이 계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덕을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업하는데, 내가 바이어의 덕을 보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무슨 의뢰인의 덕을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으로 가득차고,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버스에 올라타서

만나는 사람에게 마다, 그들의 생명을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지요.

나로부터 하나님이 흘러 내려가는 거예요.

 

샴페인 잔이 5단으로 쌓여져 있다고 가정할 때,

내가 그 비어져 있는 가장 높은 단, 첫 번째 샴페인 잔이 되어서

내가 먼저 가득차서 밑으로, 밑으로 은혜의 생수가 흘러 내려가는 겁니다.     ☞부흥이 일어나는 원리

 

내가 채워지지 않는 한 밑으로 내려 갈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누구의 덕을 보고 누구의 은혜를 입고 살겠다는 것이 아니에요.

 

기도/ 하나님아버지! 위에 있는 상사가, 나를 밉보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며 삽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 세상에서 능력이 있는 자들, 장관, 국회의원, 사장님

이들의 덕을, 내가 보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불신앙인 것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이 몰고 가시는 인생의 자동차에 올라탄 자들이라면

마땅히 세상에 대해 심지어는 사장에 대해서조차도

은혜와 기도를 나누어주는, 채권자가 되어야함을 우리가 잊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내 마음 안에 아버지로 가득가득 채워서, 가는 곳마다 죽어가는 영혼들을

그들의 생명을 살리는, 세상에 주님의 은혜의 빚을 주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죠지 뮬러 목사님,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죠? "

 

 

영국에서 3000명 이상의 고아를 돌본 죠지 뮬러 목사님에게

어떤 사람이 어떻게 그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죠지 물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평생에 성경을 200회 통독했습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웠고, 읽을 때마다 힘을 얻고, 읽을 때마다 소망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회심한 후 54년간의 경험입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최고의 은혜입니다."

 

또 다른 기회에, 한번은 기자가 그에게

"어떻게 그런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평생동안 성경을 2백번 읽었습니다. 단 한 번도 싫증을 느낀 적이 없지요.

내가 성경을 읽지 않았던 3년은 ‘잃어버린 시간’이었습니다.

하루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으면, 저는 영적인 활력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