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솔 시냇가에서 삼상30:23~24 도서스크랩
맥스 루케이도, 「믿음 연습 Facing Your Giants」pp.118~125.
지치고 피곤할 때, 예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사건을,
다윗의 브솔 시냇가 사건에서 배우게 됩니다...
▲누구나 지쳐서, 바닥에 주저앉는 순간이 있다.
얼마 전에 어떤 여성이, 강아지 한 마리를 끌고 산책하는 것을 보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개 한 마리를 질질 끌고 가고 있었다.
끔찍하게 더운 날이었는데, 강아지는 다리가 굳어버린 듯 꼼짝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곧 지글거리는 포장도로 옆에 있는 잔디밭으로 훌쩍 뛰어 들어가더니
아예 잔디밭에 자기 배를 깔고 엎드려 버렸다.
주인은 줄을 거칠게 당겨 댔다.
얼마나 승강이를 하던지, 마치 무슨 트레일러라도 끄는 것 같았다.
더위에 지친 강아지는,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한번 주저앉고 나더니, 일어날 기력도 없었다.
어디 강아지뿐이겠는가? 누구나 땅바닥에 주저앉는 순간이 있다.
“한 건만 더 처리하고 가게나.” 상사가 지시한다.
“하루 더 야근할 거야” 남편이 통보한다.
“심부름 할 게 하나 더 있는데..” 엄마가 시킨다.
“한 번만 봐주라.” 친구가 애원한다.
딱 한 번인데, 그냥 들어주면 되지, 그까짓 게 뭐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태까지 줄곧 처리하고, 참고, 해치우고, 용서하고, 봐주었던 까닭에
더 이상 ‘한 번만 더’가 안 통한다는 게 문제다. 지친 강아지마냥 주저앉고 만 것이다.
이웃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하나님이 무얼 원하시든.. 이젠 내가 알 바 아니다.’ 이 정도면 완전히 지친 것이지요?
▲아말렉(마귀)의 공격을 받아서, 지치고 망연자실 할 때가 있다.
강아지가 잔디밭에 주저앉은 것처럼, 다윗의 병사들은 브솔 시냇가에 주저앉아 버렸다.
브솔 시내는, 아말렉의 공격을 받아서, 시글락이 불탄 이후에,
아말렉을 추격하던 다윗의 용사들이, 추격에 지쳐서 털썩 주저앉은 곳이다.
그래서 브솔 시내는 ‘지치고 피곤한 사람이 주저앉는 곳’으로, 이제 불리는 것이다.
이야기는 시글락의 폐허에서 시작된다.
다윗과 6백명의 용사들은, 블레셋 전선에서 돌아오자마자, 말할 수 없이 참혹한 장면을 목격했다.
아말렉 침략자들이 시글락 온 마을을 휩쓸어 버린 것이다.
마음껏 분탕질을 치고 나서, 아녀자들과 아이들을 다 잡아갔다.
다윗의 군사들의 슬픔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노여움의 대상은, 이제는 적군이 아니라, 다윗이었다.
다윗이 용사들을 전쟁터로 데려가는 바람에, 아내와 자식들이 무방비 상태로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섬주섬 돌맹이를 집어 들었다.
친구가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것은 아니다.
목회의 동지들도, 언제나 등을 돌릴 수 있고, 교우들에게서도 외면을 당할 수 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때, 다윗의 전례를 좇아야 한다.
그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다.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삼상30:6
“제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습니까?”
“그들을 쫓아가라.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저 루케이도는, 과거에, 이런 식으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은
성자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자녀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며,
있는 그대로 주님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곧 성도라는 사실을 배워가고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갔지만, 여전히 지쳐서 주저앉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아말렉 군대가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도 모른다.
추격을 해야 하지만,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감감한 것이다.
실제로 군대 중 2백명은, 브솔 시냇가 근처에 이르러, 지쳐서 주저앉고 말았다.
힘이 빠지고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이들은
‘더 이상은 못 가겠어! 자네들끼리 가게!’ 하면서, 거기서 주저앉고 말았다.
이유야 어쨌건, 오늘날에도, 나와 내 주위에
이렇게 털썩 주저앉은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말한다.
‘더 이상은 못 가겠네! 자네들끼리 가게!’
아울러, 브솔 시냇가에 주저앉은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내 태도를 결정해야 한다.
호되게 나무라야 하는가, 아니면 창피하게 만들어야 하는가?
다윗은 이렇게 했다.
다윗은 지친 병사 2백 명을, 쉬게 했다.
그리고 남은 병사 4백 명으로, 다시 추격에 나섰다.
결국 아말렉 사람들이 버리고 간, 애굽인 소년을 살려줌을 통해서,
다윗의 군대는, 아말렉을 추격할 수 있었고, 결국은 잡혀간 가족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지친 사람들을 안아 주시라.
다윗과 용사들은, 매가 들쥐를 낚아채듯, 삽시간에 적진을 휩쓸었다.
다윗은 희생양에서, 졸지에 영웅이 되었다.
온 백성이, 다윗의 이름을 연호하며, 함성을 질렀다.
정말 재미있는 대목은 지금부터다.
현장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체감하기 위해서
내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아래 3명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먼저 <구출된 아내>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해보자.
집 안에 있다가 갑자기 납치되어서 광야까지 끌려왔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며, 아이들을 꼭 껴안았다.
그러던 어느 날 멋진 용사들이 들이닥쳤다.
강인한 팔뚝이 나를 잡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낙타 잔등으로 끌어올린다.
특공대를 보내서 구조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한편,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남편의 얼굴을 찾는다.
“여보, 애 아빠! 당신은 어디에 있어요?” 큰 소리로 불러본다.
그러자 특공대 구조대원이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바깥 양반은 여기 없어요. 후방에서 쉬고 있어요.”
“왜요? 거기서 뭘 하는 데요?”
“그냥 지치고 피곤해서, 쉬고 있어요!”
“뭐, 쉬고 있다고요? 자기 처자식이 다 잡혀갔는데.. 쉬고 있다니요!
어디 한 번 집에 돌아가서 두고봅시다. 내 이 양반을 그냥 둘 수는 없지!”
다음은 <구조대원>이 되어 보자.
다윗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목숨을 걸고 적진에 뛰어들었다.
이제 승리를 거머쥐고 브솔 시냇가로 돌아간다. 마지막 산마루에 올라서니,
저 아래로 뒤에 처졌던 2백 명의 병사들이 한가하게 오가는 게 보인다. “얌체 같은 놈들!”
자기는 생사를 걸고 싸우는 동안,
그들은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풀밭에서 잠을 잤을 걸 생각하니,
속에서 울컥 화가 치민다. 다윗의 용사들은 속이 씁쓸하다.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 사람의 처자만 주어서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삼상30:22.
구조된 아내들은 화가 잔뜩 났다.
그런데 구조대원들의 마음은 원망으로 가득하다.
두 부류 다,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이제 남은 제3의 등장인물, 브솔 시냇가에 남겨진 2백 명을 살펴보자.
그들은, 이 설교문의 주인공들이다.
▲자 그렇다면, 쉬고 있던 2백 명의 심정은 어땠을까?
“지친 무리들” 말이다.
곧 살다가 지쳐서 뒤로 쳐져버린, 우리 자신의 모습일수도 있다.
이들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이제 다윗이 어떻게 좌중을 진정시키는지 보자.
삼상30:23~24
“다윗이 가로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붙이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이 일에 누가 너희를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며 물건을 지켰던 자
의 분깃이 일반일지니, 같이 분배할것이니라 하고..”
※어떤 성경은 그냥 ‘소유물 곁에 남아있던 자’로 번역하지만
어떤 성경은 ‘소유물 곁에 머물며 물건을 지키던 자’로 번역한다. 공동번역, 새번역 KJV등.
24절. For who will hearken unto you in this matter? but as his part is that goeth down to the battle, so shall his part be that tarrieth by the stuff: they shall part alike. (KJV)
다윗이 무엇이라고 표현했는가?
“남아서 물건을 지키던 사람”이라고 말한다.
2백명 가운데 누구도 남아서 물건을 지키겠다고 요청한 적은 없다.
그냥 쉬고 싶어 했을 뿐이다.
하지만 다윗은 뒤에 처지기로 한 이들이 쉰 게 아니라, 일을 한 것처럼 이야기했다.
브솔 시냇가에 머물렀던 지친 병사들의 입장을 존중해 준 것이다.
다윗은 평생에 걸쳐서 여러 가지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물론 어리석은 잘못도 그만큼 자주 저질렀다.
그러나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 사건이야말로, 가장 고상한 행동으로 꼽을 만하다.
언젠가, 누군가는 다윗의 행적을 읽고서 교회 이름을
<브솔 시냇가 교회>라고 지을 것이다.
그게 바로 교회의 존재 이유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교회란 본래 지친 병사들이 힘을 회복하는 자리이다.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Leap over a wall」이란 책에서,
저자 유진 피터슨은, 항상 편지 끝에다
‘브솔 시냇가에서’라고 써 보내곤 하던 친구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다.
▲다윗은 예수님의 모형.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너무 지쳐서 더 이상은 싸울 수가 없다. 너무 부끄러워 감히 불평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전투에 나갔던 이들이, 승리의 대가를 요구하는 걸 말없이 바라본다.
시냇가에는 아직도 수많은 이들이 앉아 있다.
지금 당신이 브솔 시냇가에 머물고 있으신가?
그럼 알아 둬야 할 사실이 있다. 쉬는 게 잘못은 아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원형이다.
우리가 피곤해서 싸우지 못할 때, 그분이 대신 싸우신다.
다윗은, 즉 예수님은, 싸울 수 있는 4백인만 데리고 가서, 싸워서 승리를 얻으신다.
그러나 지쳐서 쉬는 2백인들을.. 비난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우리가 피곤해서 갈 수 없는 곳에 대신 가신다.
우리가 두 손 놓고 앉아 있어도, 화내지 않으신다.
오히려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 하고 말씀하신다. 막6:31
브솔은 안식을 준다. 더불어 브솔 시내는 교만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다윗은 스스로 잘나서 승리를 얻은 게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사막에서 만난 애굽인이 앞장서 길을 안내해 준 덕분이었다.
“다윗이 가로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붙이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삼상30:23
그 기적적인 승리는,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니다.
승리는 마땅히 받아야 할 대가가 아니라, 선물이었던 것이다.
그런 처지인데, 어떻게 지쳐서 주저앉은 이들을 비난하겠는가.
당신은 피곤하신가?
당신은, 다윗처럼, 피곤한 자들을 쉬게 하시고, 대신 싸우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고, 의지하시라.
그리고 내 주위의, 피곤한 이들을 쉬게 하시라.
지친 이들을, 쉬는 이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마시라.
누구나 바닥에 주저앉을 수 있다. 브솔 시냇가의 교훈을 기억해 두면,
그런 상황에 빠졌을 때, 큰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