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큰 일, 큰 자는? 마18:1~8 인터넷 설교 스크랩
◑3. 단락이 하이라이트입니다.
◑1. 세속적 가치관에 절어 있는 사람들
‘삼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마18:10
▲하나님 나라에서는, 소자가 '큰 자'입니다.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아라. 무시하지 말아라.’
아무 것도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는,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누구도 잘 기억해 주지 않는 사람
그러나 그가 진실되게 예수님을 믿는 소자라고 할 때
나를 믿는 작은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아라
내가 분명히 너희에게 말하는데,
그들의 (수호)천사들이,
날마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보호하는 천사를,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은 배정해 놓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천사를 시켜서, 하늘나라의 왕자와 공주를 경호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니, 진리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세상에서는 ‘누가 크냐?’ 하면, 물을 것도 없습니다.
금방 대답이 나옵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 누가 제일 크냐 하면
세상 직위가 높은 사람, 연봉이 많은 사람, 또는 세상 움직이는 영향력이 큰 사람,
또는 나이가 많은 사람.. 들이 ‘큰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 VIP가 만약 이 자리에 참석했다면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것이고, 심지어는 기자들도 취재하느라 따라다닐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 소자를 영접할 때, 그건 주님을 영접하는 일이요,
그것은 조찬기도회 같은 장소에서, 주님의 바로 옆자리에 앉는.. 영광을 누립니다.
왜냐하면 내가, 주님을 영접한 최측근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큽니까?
예수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가장 작은 자, 사람들이 거들 떠 보지도 않는, 그러나 나를 믿는 그 작은 자가
하늘나라에서 그렇게 크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각각의 수호천사로부터 경호를 받고,
또 예수님이 '그들을 업신여기지 말라. 그들을 나를 영접하는 것처럼 영접하라'고 명하셨으니,
그 작은 자들도, 천국에서는 귀하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천국에서 작은 자가 누구입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누구나 귀하게 대접 받는, 존귀한 영접을 받는 존재이니까요.
그러니까 하늘나라에서 큰 자는
절대 우리가 생각하는 세속적 가치로,
영향력이 있거나, 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큰 사람’들을 폄하하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 신앙인들은, 큰 사람들을 존경하지만,
하나님 나라 관점을 갖고서, 사람들을 대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이 땅에서 크고 작은 등급으로 나누는 식으로,
판단하거나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하늘나라에서 ‘큰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위에서 말씀드린, 그 '작은 소자'를 영접하는 그 일이.. 하늘나라에서 큰 일입니다.
여러분 이왕 일을 하려면, ‘큰 일’을 하는 것이, ‘작은 일’보다 좋지 않겠습니까?
이왕 한 번 사는 인생이라면,
크고 주목 받을 만한 일을 하고 지나가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심지어는, 주의 일을 하는 가운데서도
이왕 주의 일을 할 바에는, 큰 일을 하고 싶은 욕심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큰 일은,
물론 세상 가치관으로 매기는 큰 일과 다릅니다.
세상을 움직이고, 언론에 뜨고,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일들과는.. 너무도 다른데요..
성경을 보자고요
5절,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소자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여러분,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크고 위대한 일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인데,
누가 감히 예수님의 최측근이 되어서, 예수님을 자기 옆에 모시고 설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특히 좀 중요한 모임에 가면, 좌석 배치 문제로 상당히 신경을 씁니다.
예를 들면, 국가조찬기도회 같은 특별한 모임에 가면
VIP 곁에 누가 앉느냐, 누가 그 옆에 포진하느냐 하는 것을, 아무렇게나 배치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서열 순서나, 중요인물 순서로.. 그렇게 배치하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 바로 옆에 딱 앉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가 바로 '큰 자'요, 또한 '큰 일'인데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소자 하나를 영접하면,
그러면 곧 나(예수)를 영접함이니라..’
이 말씀을 곰곰이 묵상해 보십시오.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대단히 영향력 있는 일과는.. 완전히 다르지요?
이 생각이 우리가 바뀌지 않고,
우리가 여전히 세속적 가치로, 언제나 ‘큰 일, 큰 사람’을 판단하다가는
그 사람은 평생 하나님 나라에서 ‘큰 일, 큰 사람’ 되기는 글렀습니다.
그 하나님 나라는, 현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잘 아시죠?
평생 세속적 가치와 판단에 사로잡혀서 ‘큰 일, 큰 사람’되려고
거기에 자기 이름 걸고, 거기에 거금을 투자하고
거기에 목매달고 살아가다 보면.. 평생 변두리 인생을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니까,
제자들의 관심사도, 역시 세속적 가치에 빠져 있었습니다.
‘주여,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면 (메시아라면서요, 주님이 임금이 되실 것 아닙니까?)
그럼 서열로, 주님의 최측근에 설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왕이면, 제가 지금까지 나름 충성을 다하며, 재산 다 정리하고 따라다녔는데
제가 주님의 최측근 자리에 서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번 화끈하게, 큰 일을 해 보고 싶습니다.’
이런 속내를, 제자 중 몇 사람이 드러내었다 이겁니다.
이런 세속적 가치관을, 제자들이 그대로 갖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러다보니까,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에서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일
‘즉, 소자 하나를 주님 이름으로 영접하는 일’은 아예 자기 관심 밖이고
전부 예배당 안에 같이 앉아 있으면서도
주여 주여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앉았어도
오직 추구하는 것들이란...
직설적으로 말해서 미안하지만,
명분은 주의 일을 한다고 말하지만
오직 추구하는 것은, 세속적인 ‘큰 일, 큰 사람’이 되려고 아등바등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싸움이 일어나고, 무슨 경쟁이 일어나고
무엇에 시험 들고, 무엇에 목말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과거에 우리가 있지 않았습니까.
남의 얘기가 아니라요.
▲그 싸움, 그 소용돌이는, 지금도 우리 가운데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내가 내 수준이 그것밖에 안 돼서, 그 소용돌이에 못 끼어들 뿐이지
우리가 조금 더 직위가 높아지고, 조금 더 유명한 사람이 되면
우리 자신도 똑같은 일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부단히, 예수님 말씀으로, 천국 가치관으로
자신을 바꾸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에 주목받고 싶은가요? 무엇을 얻고 싶습니까?
그것을 얻지 못해서, 지금 무엇에 시험 들어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이.. 나에게는 느껴지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십니까?
혹시 ‘큰 자, 큰 일’ 하고 싶은데, 그 야망이 관철되지 못해서, 그런 불평 하는 것 아닙니까?
▲제자들이 평소에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
주님이 십자가를 눈앞에 앞두신, 지금 아주 중요한, 그 절박한 시기에
누구도 제자들 중에,
예수님의 이 위대한 비밀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십자가의 영광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그 상황을 받아들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을 통해서 드러난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존재론적으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서
영이 죽어서, 즉 영적 고아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 세상에서 ‘죄 짠지’로 살면서 *죄에 푹 절어졌다는 뜻.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에 계속해서 일평생 허덕이면서
이 땅에서 그저 꾸미고, 붙이고, 화려하고, 덩치 키우고, 높아지고
이런 것들 외에는, 다른 가치를 생각해 볼 수도 없고..
그 하늘나라(가치)를 다 바라볼 수도 없는, 이 비천하고 가련한 우리 영혼의 문제를
우리는 직시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옛 자아의 모습인데,
예수를 믿은 후에, 우리가 성화의 길을 가지 못하고,
아직도 옛 자아의 모습에 그대로 사로잡혀서,
자기 채울 수 없는 육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서로 이전투구하고, 서로 시기 경쟁하면서,
그 피곤하고 지친 삶을 살아왔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그런 허송세월을 끝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그곳에서 불러 내셔서
우리의 무서운 이 세속의 썩은 가치와 사탄의 어둠의 사슬에서 건져내사
우리를 영원한, 변하지 않는 진정한 가치로 우리를 불러내시는,
우리 주님의 그 거룩한 구원, 이 놀라운 이 일을
주님의 복음으로, 이루어내십니다.
즉, 우리를 변화시키고, 성화시키고, 성숙시키십니다.
이런 주님의 역사에 우리가 적극 따르고 동참해야 하겠습니다.
▲정리하면, 그래서 '가장 큰 자'가 누구냐?
1. 천국에서 가장 어린아이 같은 자,
상징적으로는, ‘자기를 낮추는 가장 겸손한 자’,
그가 천국에서 제일 큰 자입니다.
2. 그리고 그런 소자를 영접하는 그 자가, 또한 바로 큰 자입니다.
세상은 어떻게 해서든지 세상에서 높아져라. 정상을 정복하라.
없는 것까지 부풀려서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해야, 큰 자가 된다고 생각했는데
하늘나라에서는, 그런 자는 ‘큰 자’로 취급도 못 당하고,
하늘나라에서 제일 큰 자로 인정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면,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그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자나,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과는, 정 반대의 개념이요, 가치관입니다.
▲‘제일 큰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어마어마하게 생각하는, 엄청나고 실력 있고 인기 있고
대단한 일, 눈에 보이는 세속적 가치의 일이.. ‘큰 일’이 아니고,
본문에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내 이름으로 이 어린 소자 하나를 영접하면’
즉 세속과 죄악으로 떠밀려가는 불쌍한 한 영혼을 구해내고, 전도하는 일이
또는 그를 불쌍히 여겨서, 사랑과 인애를 베푸는 것이
그것이 바로 ‘제일 큰 일, 제일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숫자가 여럿이 아니라,
숫자가 아무리 여럿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주변의 ‘한 사람에게 인애를 베푸는 일’입니다.
그 일이 바로, 예수님을 (소자를) 영접하는 일이요,
예수님의 최측근으로 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요!
숫자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한 생명의 가치는 ‘천하와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 가장 큰 일은, 바로 그 일입니다.
◑2. 그리고 천국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큰 죄악은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믿는 ‘가장 작은 자 하나를 실족시키는 일’은,
세상에 그 무슨 흉측한 일보다 더 무서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차라리 연자맷돌을 지고, 물에 빠지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마18:6
우리가 이 가치에 눈을 뜨지 못하니까
진짜 큰 일에는.. 눈이 멀어서 제대로 보지 못하고
또한 가장 무서운 저주스러운 일에도.. 눈이 멀어서, 그 일을 아무렇게나 행하여
스스로 저주를 자초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린 소자 하나를 실족케 하는 것보다, 연자맷돌을 지고 물에 빠지는 것이 더 낫다’고 할 때
이런 말씀이 현실에서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이런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는데,
여러분, 천만의 말씀입니다. 현실에서도 그런 일이 반드시 일어납니다.
자기가 자초한 ‘저주’가 그를 따라다녀서 그는 하는 일마다,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에스겔서 33~34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이런 일을 행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양떼를 돌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잡아먹고, 제 배만 채우는.. 그런 못된 목자들이었습니다.
양떼(어린 소자)들을, 자기 유익을 위해서, 이용하고 착취한 것입니다.
양들은 병들게 하고, 굶주리게 하고, 이 산 저 산으로 흩어지게 하는
그런 못된 목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무섭게 질타하고 계십니다. 겔33~34장.
여러분, 오늘날에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교인들을 이용하고, 성도들을 끌어들여서
자기 하나 잘 되게 하고, 자기 대적(?)들을 제거하는데 이용하고
그래서 자기가 세속적 지도자가 되는데, 탄탄대로를 만들려고 합니다.
세속적 가치에 완전히 물이 들어서
그 자기 세속적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서
심지어는 자기 양떼들까지 이용한다면..
본문의 예수님은, 무서운 경고의 말씀을 발하시는 것입니다.
‘너 그러다가는, 차라리 연자맷돌 지고 물에 빠져드는 것이 더 낫겠다.’
‘너 차라리 네 눈알을 뽑는 한이 있어도, 그런 짓은 하지 말아라.’
‘너 그런 위험한 일을 하려거든, 차라리 네 다리 하나를 잘라 버려라’
‘네 손모가지를 아예 찍어버려라’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토록 핏값을 치르시고 사신 한 영혼을
내 명예나, 나의 유익을 위해서, 그 영혼을 이용하고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도리어 무시하고 박해하면
너 차라리 불구자가 되어서, 그 짓을 중단하는 것이
네 영생을 위해서는, 더 낫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그게 네가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보다는 더 낫다고 하십니다.
◑3. ‘큰 자’가 아니라, ‘내’가 바로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이 사실이라면,
오늘날 주님은, 그렇게 세속적 가치로 큰 자, 큰 일에 별로 큰 기대가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세속적 가치를 전혀 갖고 있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에서 큰 자도, 주님 앞에서 ‘작은 자’로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역차별 받아서도 안 됩니다.)
세속의 역사가들은, 세속 역사에서 큰 일 한 사람을, 크게 기록할지 모르나
주님의 역사에는, 세속적으로 큰 자들을 통해서, 뭐가 큰 일이 이루어지겠다고
전혀 기대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세속적 가치로 큰 분들이
무슨 큰 일을 못 한다고 .. 너무 기대하거나, 불평하지 마시라는 얘기입니다.
▲여러분이 그분들께, 너무 큰 기대를 갖고 있고,
그 기대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또한 반대로 너무 큰 실망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저와 여러분이 ‘세속적 가치’를 갖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세상 역사는, 그들 영웅호걸들에 의해서 이루어져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나라 역사는, 예수님, 성 프란시스, 장기려 장로님 같은 성자에 의해서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뭐가 큰 일이고, 누가 큰 자냐?
만약 우리가 세속적으로 큰 일, 큰 자에 대해, 너무 큰 기대나 / 실망을 갖고 있다면,
그건 내가 ‘세속적 가치’를 갖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므로
오늘날 우리 자신 스스로가, 먼저 말씀의 기준으로 돌아와, 고쳐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지금 아쉽고, 안타깝고, 불쾌한 소식으로 뒤덮여 있는 이 세상을
우리가 바라보는 관점을 좀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큰 일, 큰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져 가고 있지 않습니다.
그 나라는, 작은 일, 작은 소자들의 헌신을 통해서, 이루어져 갑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한국의 하나님의 나라가, 제대로 왕성하고 있지 못하다면,
이제 우리는 그 화살을 ‘큰 일, 큰 사람’에게 돌리지 말고,
바로 ‘작은 일, 작은 자’인 나에게로, 우리 공동체에게로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주님의 큰 기대는, ‘큰 일, 큰 사람’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주님의 큰 기대는, ‘작은 일, 작은 사람’에게 있는데,
그 ‘작은 사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그 작은 일’을 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자기 주위에 있는 ‘어린 소자’ 한 명에 대해서, 관심가지지 않고,
전도할 줄 모르고,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왕성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아래 설교를 1~16분 녹취.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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