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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거주지, 새 하늘과 새 땅 / 中文

LNCK 2013. 9. 19. 20:02

 

◈새로운 거주지, 새 하늘과 새 땅    사65:17~25, 계21:1      출처        中文 

    

※‘새 하늘과 새 땅’, 이 어려운 주제를,

영적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물리적인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1) 아래 설교문은 ‘물리적인 새 하늘과 새 땅’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맞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부활할 때, 몸의 부활을 할 것이고,

몸이 부활하면, 그 몸이 거주할 물리적인 새 하늘과 새 땅이 당연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2) 그런데 ‘영적인 새 하늘과 새 땅’을 설명하시는 분도 더러 있습니다.

계시록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이 ‘그리스도의 신부’인 성도로

성경이 (영적/상징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볼 때,

 

비슷하게 ‘새 하늘과 새 땅’도

요한복음에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라는 구절에서

그 주님이 예비하신 ‘처소’가 바로 ‘우리 영혼 속의 지성소’이며,

거기가 바로 ‘영적인 새 하늘과 새 땅’이다.. 라고 설명하는 것도 들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영적인/내적인 새 하늘과 새 땅'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영적인/내적인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물질적/외적인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요일3:2에 의거, 우리가 마지막 순간에 변화될 것을 믿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육신적 차원'에서, 예수님처럼 변화된다는 뜻입니다.

인격적 차원의 변화, 내적인 변화는.. 성령의 인도로, 우리가 매일 갈고 닦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일단, ‘영적인/육적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둘 다 받아들입니다.

    (이 외에도 성경의 많은 부분이, 영적/육적 두 차원을 다 함께 설명합니다.)

 

◑서론

 

이사야 65장은 하나님께서 인류역사를 어떻게 운행하실 것인가 하는

역사의 운행 계획을 기록한 참으로 위대한 장(Chapter)입니다.

 

우리 인류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타락하고 부패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시고 심판하시어 영원한 지옥에 보내도

아무런 할 말이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류역사를 그렇게 운행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 가운데 남은 자를 두셨고, 이방인 가운데 택한 자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부르시고 구원하셔서 ‘새로운 인류’를 만드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바로 영생할 새로운 인류이자 하나님의 백성이며

죄악으로부터 구속받아 영원히 새 하늘과 새 땅에 살게 될 영생할 백성입니다.

이 새로운 인류는 지금도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65장 후반말씀은 이 새로운 인류가

어디에서 영원히 살 것이냐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본문 65장 17절에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인류에게 주실 ‘새로운 거주지’를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미래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현재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 가시는 과정에 있고

새로운 인류는, 미래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토록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성경과 신학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지라도

‘새 하늘과 새 땅’이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지 다 알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그곳에서 인류는 어떤 집에서 무엇을 먹으며

어떻게 여가생활을 할지를 다 알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2절에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지금 이생에 살면서 가지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지식은

불완전하고 희미하며 부분적인 것 밖에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 이사야 65장 말씀과 신약의 문서 계시를 통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어떤 곳이냐 하는 큰 그림은 그릴 수 있는데

오늘은 그 큰 그림을 그려보겠습니다.

 

 

◑1.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신약의 5대 명제

 

새로운 인류가 영원히 살게 될 새 거주지에 관해 신약성서는

다섯 가지 분명한 명제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65장에서도, ‘새 하늘과 새 땅’의 5가지 분명한 특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신약이 선포하고 있는 5가지 진리는 무엇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현재 세상은 불로 완전히 멸망할 것입니다.

노아홍수 때에 세상은 물로 멸망하여 노아의 가족 8명을 제외한 온 인류가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 8명으로 말미암아 다시 인류가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더 이상 인류를 물로 심판하시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그 증거로 하늘에 무지개를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류는 ‘이제 홍수가 나도 부분적으로 나지

전 세계적인 홍수는 나지 않을 것이다’라며 안심합니다.

그러나 안심하기에는 이릅니다. 왜냐하면 물보다 더 센 불의 심판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 3 :10절에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기록되었고,

 

12절에도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여러분 가운데 이 세상에서 땅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분이 계시더라도,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땅은 불로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땅뿐만 아니라 하늘도 불로 없어질 것입니다. 마24 :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하늘과 이 땅이, 큰 소리와 함께 불로 멸망한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어차피 멸망할 땅에, 자신 소유의 땅이 한 평도 없을 지라도 기죽지 마십시오.

(추석 때 온 가족이 모이면, ‘땅/ 유산’ 얘기를 많이 하게 됩니다.)

 

▲둘째, 불 심판이 끝나면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입니다.

벧후3:13절에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말하는 ‘그의 약속’은 이사야 65:17절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로마서 8:18절로 23절에도 놀라운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8절에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21~22절에는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바울은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켜 '장차 올 영광'(glory to come)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재의 세상은 죄로 오염된 세상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 살아갈 때에는 탄식과 고통과 신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래에 영원히 살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은

탄식, 고통, 신음이 없고 영광의 자유(the liberty of glory)가 있는 세상입니다.

이런 놀라운 세상이 불 심판 후에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올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세상은 불로 망하고 끝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우리가 거기 살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확실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셋째,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 새로운 거주지입니다.

다시 말해 새 하늘과 새 땅에 살 거민은 바로 하나님께서 택하여 부르시고 믿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새로운 인류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8 :19절에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참으로 놀라운 계시입니다.

요한계시록 21:1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처음 하늘과 땅이 없어졌고, 요동, 세상, 고통을 상징하는 바다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27절에는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전부터 기록된 그 이름들

즉, 유대인 가운데 남은 자와 이방인 가운데 택하심을 입은 자들만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이곳에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계시록 22:15절에는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하나님을 거역하고 진리를 거역하는 이러한 자들은

새 예루살렘 성으로 상징되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에 결코 들어갈 수 없고, 

성 밖에 쫓겨나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넷째,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집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조롱하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후서 3:10절에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도적은 시간을 예고하지 않고 쳐들어옵니다.

이처럼 주님의 재림도 예기치 않은 때 온다는 것입니다.

혹시 도둑 맞으실 때,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베드로후서 3 :12절에는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하늘과 땅이 불로 망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는 것은

바로 주의 날, 하나님의 날, 예수님 재림의 날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주의 날은 헬라어로 언제나 단수 ‘호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초림이 한번 있듯이 재림도 한번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재림 후 이 땅에 지상 왕국이 천년동안 있을 것이라는

소위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천년왕국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도 대단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교리도 성경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하늘과 땅은 불로 망해버릴 곳이므로

천년동안 왕국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 재림의 날은 주의 날, 불로 세상이 멸망할 날,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새로운 역사의 전기가 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에 예수님께서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25:34절에는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46절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재림 시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상속할 나라는 천년왕국이 아니라 영생할 나라입니다.

예수님 재림의 날이 언제 인지는 모르지만

그날은 새 하늘과 새 땅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날 인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다섯째, ‘새 하늘과 새 땅’은 영원한 곳입니다.

다시 말해 국권이 갈리지도, 바뀌지도, 망하지도, 없어지지도 아니하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요한계시록 21: 3~4절에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습니다. 히브리서 9: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하여 다시는 사망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토록 살게 될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21 :5절에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이 요한계시록으로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설이나 신화가 아니라 장엄하고도 명백한 계시인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세상은 불로 멸망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예수님의 재림 때 올 것입니다.

거기에는 믿음을 지킨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한 지복을 누리고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그 성 밖에 쫓겨나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쓸데없이 점쟁이들을 찾아다니며 자녀의 대학합격여부를 묻지 마십시오.

이러한 것은 모두 거짓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읽고 깨닫고 믿으라고 주신 참 예언인 것입니다.

 

 

◑2. 이사야 65장에 나타난 새 하늘과 새 땅의 5대 특징

 

우리가 구약의 예언 말씀을 읽을 때 예언이란 한 가지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중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생각하며 읽어야 합니다.

 

평지에서 산맥을 바라볼 때, 앞에 있는 산도 보이고

그 뒤에 있는 산봉우리도 보이고, 멀리 있는 산봉우리도 보입니다.

이렇게 산봉우리 두, 세 개가 한꺼번에 보이는 것처럼

구약의 예언자들은 당시사회, 신약시대, 그리고 예수님 재림 이후의 세상,

이 세 가지 봉우리를 한꺼번에 보면서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언은 다중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말씀은

-바벨론의 포로 된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면 어떻게 될 것인가가 일차적인 의미이고,

-또 예수님께서 초림 하셔서 메시아 왕국이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면

신약시대는 어떻게 될 것인가가 이차적인 의미이며,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이 되면 어떤 세상이 될 것인가가

삼차적인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의 말씀에는 일차적, 이차적, 삼차적인 의미가 한꺼번에 포함되어

예언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65:20절에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세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것이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읽고 ‘새 하늘과 새 땅에도 죽는 일, 저주받는 일이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일차적으로 바벨론에 포로 된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온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 되어 있을 때 아이를 낳으면

여러 가지 열악한 환경으로 인하여 아이들이 일찍 죽었습니다.

 

또한 고된 노예 생활로 보통 40살도 못살고 50살을 살면 장수했다고 할 정도로

수명이 짧았습니다. 이런 백성들이 이제 자유와 평화가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백세에 죽으면 아이라고 불릴 정도로 장수할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영생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20절 말씀은 일차적으로 유다 백성들이 귀환해서 장수할 것을 의미하되,

궁극적인 삼차적 의미로는 영생할 것이라는 것을 구약의 용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의 일차적, 이차적인 의미는 차치하고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장래의 삼차적인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다섯 가지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기쁨의 장소(place of rejoice)입니다.

본문 사65:18~19절에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람은 고통스러울 때 울고 괴로울 때 부르짖습니다.

그러므로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지 아니할 것이란 말은

고통과 괴로움이 없고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만 있는 땅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둘째, 평화의 장소(place of peace)입니다.

본문 65:25절에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아마도 ‘새 하늘과 새 땅’에 짐승도 살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고기도 먹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또 사도바울도 로마서 8장에서 피조물이 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는 걸

탄식하며 기다린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피조물인 짐승들도

예수님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에 짐승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교리화 할 수는 없는 것이고

이사야 65:장 25절에서 말하는 의미는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오직 평화(peace)와 안전(safety)이 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사자와 어린아이가 함께 공을 차고 놀고

뱀도 어린양과 모든 짐승들이 함께 어울려 지내도 서로 해하지도 않고 상하지도 않는

너무나 안전하고 평화스러운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은 안전한 곳이 없고 평화도 없습니다.

해외여행을 가보면 도둑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은 평화와 안전의 장소인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셋째, 만족의 장소(place of satisfaction)입니다.

본문 65:21절에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것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사람이 집을 짓고 거기에 들어가 살 때, 포도원 농사를 짓고

자기가 포도를 따먹을 때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런데 새 하늘과 새 땅은 이러한 만족이 있는 곳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아무리 많이 먹고 많은 재물을 가지며 지위가 높아져도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만족만이 있을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의 장소(place of intimacy with God)입니다.

본문 65장 24절에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그 때가 되면 주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고

우리가 뭘 달라고 하기도 전에 주님께서 먼저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못 박히신 손과 창에 찔리신 옆구리도 만져볼 수 있을 정도로

친밀감이 있는 곳이 ‘새 하늘과 새 땅’인 것입니다.

 

▲다섯째, 공의의 장소(place of justice)입니다.

본문 65:22절에 ‘그들의 건축한데 타인이 거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의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집을 지어 놓으니까 강도가 칼로 위협해 뺏어 살고,

농사를 지어 놓으니까 외적이 대포를 앞세워 쳐들어와 전쟁을 일으키고 빼앗아 가면

얼마나 불의합니까?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은 이러한 불의가 없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도 ‘의에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결론

 

이런 새 하늘과 새 땅에 우리가 영원토록 살게 될 것이고

이것은 정말로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사실입니다.

우리가 가진 구원과 복음은 이처럼 위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상속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어느 재벌도 하나님보다 부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상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재벌 부모님들이 자기 자식이 예쁘다고

어려서부터 달라는 것을 다주면, 오히려 자식을 망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성장한 자식들 대부분은 부모님의 재산을 물려받으면

방탕하고 타락해서 다 날려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재벌들일수록, 자식을 어려서부터 고생을 시키고 군대도 보내야 됩니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을 경험해 봐야, 가난하고 배고프며 어려운 사람들을 이해하고,

나중에 재벌 부모님의 재산을 상속받아도 그것을 올바르게 쓰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재벌 자식이 군대 가서 훈련 받을 때 조금 힘들다고

탄식하고 신음하며 고통스러워해서야 되겠습니까?

‘내가 재벌 아들인데 아버지가 나를 좀 훈련 시키시려고 여기에 보내셨구나’ 생각하고

훈련을 잘 받아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세상에서 고통과 신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훈련으로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참 하나님의 자녀는 어렵고 힘든 순간이 와도 기죽지 않고 절망, 좌절하지 않으며

우리가 상속할 세상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믿으며 바라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 예수님과 함께 상속할

위대한 상속자인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훈련 시키셔야

나중에 새 하늘과 새 땅에 가서 감사한 줄 알고 하나님을 섬기며 찬양하게 되기 때문에

훈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재벌 부모님이 사랑하는 자식에게 군대생활을 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분은 조금 일찍 제대하고 어떤 분은 조금 늦게 제대합니다.

 

이처럼 죽음이란 군대 제대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십시오.

제대할 때 감사하지 않고 화를 내면서 제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도 좋고 죽으면 더 좋은 것이 성도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죽고 사는 것도 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권세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소망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좌절하거나 기죽지 마시고 사시길 바랍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런 소망을 가진 성도들에게 세 가지를 권면 합니다.

 

첫째, 거룩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 :11~12절 전반에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재벌 아들이 조금 고생한다고 자포자기하여 죄 짓고 방탕하고 타락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거룩과 경건으로 살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 :17절에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세상 영광을 가지고 미혹하는 사단의 미혹도 있고,

이단 교리를 가지고 미혹하는 이단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이러한 미혹에 이끌리지 말아야 됩니다.

 

셋째,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 :18절에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전설, 신화, 거짓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고

이것은 확실한 비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소망을 가진 우리 성도님들은

거룩하게 살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믿음

그리고 경건에서 날마다 자라가며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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