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싸움 왕하3:21-27 출처보기
*관련글 깃 싸움
▲도입예화/ 여러분! ‘기 싸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권투선수들이 링 위에서 심판이 불러 모아서 주의를 주고 이럴 때,
심판 말은 듣지 않고 서로 눈을 치켜뜨면서 쳐다봅니다. 이게 기 싸움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아무리 주먹이 강하고 근력이 강해도 또 몸이 민첩하고 날렵하더라도
마음이 주눅이 들어버리면,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기 싸움’입니다.
신앙인이 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 자체는 ‘기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좀 색다른 기 싸움인데요..
◑본문 설명/ 악한 세상적 기싸움
본문에 아주 극명하게 기 싸움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했어요. 조공을 거절했다는 뜻입니다.
조공은 어린 양 십만 마리,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해마다 조공으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모압 왕이 거절합니다.
그래서 새로 왕이 된 여호람이 남 왕국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에돔 왕의 힘을 빌어서
지금 모압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전쟁을 일으킨 겁니다.
그런데 그 동기도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 전쟁이 아니었고,
자기 소득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반발
또는 외교적 자존심의 문제 이런 것들이 걸려서 전쟁을 시작했는데,
남 왕국 유다의 왕 여호사밧이 그나마 끼어들어서,
물이 없으므로 공급의 문제가 생기면서 전쟁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여호사밧이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찾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친구 따라 강남 본다고 덩달아 하나님의 은총아래 거하게 된 여호람이
이제 이스라엘의 연합군이 모압을 향해 진격을 하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압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어리석게 만들어서
아침노을 때문에 핏빛으로 물든 물 색깔을 보면서
이들은 그것을 피로 받아들입니다. 이스라엘 진영에 내분이 일어났다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섣부른 판단에 근거해서, 모압이 공격해 들어오게 합니다.
들어왔다가는 이스라엘의 연합군에 의해서 완전히 궤멸상태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 모압 왕이 그 포위망을 뚫으려고 700명 특공대를 선출해서
그 포위망을 뚫고 진격해서 빠져 나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실패를 해버립니다.
하다하다 안 되니까 부하들을 다 잃어버리고 그리고 몰려서 성위로 올라갔어요.
성위로 올라간 모압 왕이 자기 맏아들을
이스라엘 연합군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성위에서 불 태워 죽입니다.
제 생각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만히 보니까, 그 아들이 태자에요. 어떻게 했겠어요?
‘아바마마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끔찍해요.
이렇게 난리를 치고 울고불고 공포에 질려서 애가 경악을 하면서 살려달라고 발버둥을 치는 그 모습,
그런데 그 아들을 불태워 죽여 버리는 겁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이 이 모습을 본 것입니다.
▲정리하면, 모압 왕이 700명 특공대를 뽑아서
포위망을 돌파하려는 필사의 각오로 그 포위망을 뚫으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다가 실패합니다.
그러니까 모압 왕의 이 분노가 “기”가 죽는 게 아니고
'끝이구나.' 하고 절망하는 게 아니고, 분노가 핵폭탄처럼 폭발해 버린 것입니다.
그 분노의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자기의 아들을 불에 태워 죽여 버립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모압 왕의 극렬한 분노 앞에서
사기가 충천했던 이스라엘의 연합군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팍 쭈그러들어 버렸습니다. “기”가 눌려버린 것입니다.
그 모압 왕의 기세 한 방에 분노의 기세에, 지금 다 이긴 전쟁이었어요.
자기 아들을 죽이는 그 격노한 모압 왕의 모습을 보고
완전히 진짜 찬물을 확 끼얹은 것처럼 이스라엘의 사기가 팍 죽어버렸습니다.
그러고 다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기 싸움”에서 져 버린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 가정과 아들을 지키려고 하는 겁니다.
전쟁을 일으킨 이유가 조공을 바치던 것을 바치지 않겠다고
내 소득과 내 재산을 지키려고 전쟁을 일으킨 게 아닙니까?
그런데 아들을 지키고 재산을 지키려고 전쟁을 일으키는데
그 지키려고 하는 목적(아들) 자체를 자기 손으로 죽여 버리는 겁니다.
제 손으로 끝내버리는 것입니다.
이제 자기는 더 잃을 게 없다는 것이지요.
‘더 이상 겁나는 게 없다’는 신호입니다.
‘죽기를 각오했다!’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 “기”에 눌려 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이 당시에 자식들을 종교적인 분위기 안에서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모압 땅에도 그모스 신에게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는 종교적인 세팅이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에 더 좋은 해석이 나오면, 고치겠습니다.)
◑적용/ 신령한 기 싸움
이 악한 모압 왕의 행위에서, 우리 신앙인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기 싸움에서 이겨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직장에 나가서 돈을 벌겠다고 이를 악물고 달려드는 그 모습이
기세가 등등한 것 같지요?
이를 악물고 남보다 더 돈을 더 벌겠다고 달려드는 그 모습이 기세가 등등하게 달려드는 것 같고
일류대학 들어가겠다고 이를 악물고 엄마와 아빠와 아이가 힘을 합쳐서
있는 힘을 다해 공부하고 질주하는 것이 기세가 등등한 것 같지요? 아니에요.
영적으로 보자면 이미 먹힌 것입니다.
기 싸움에서 이미 진 것입니다. 기가 눌린 것입니다.
▲이를 악물고 돈을 번다는 얘기는, 이미 돈의 노예가 되었다는 겁니다.
신앙적인 기세가 등등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기세가 등등한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스데반 집사 같은 모습입니다.
내가 맞서 싸워서 주먹질을 하는데
더 세게 하고 더 열심히 돈을 벌고 더 열심히 성공하려고 하고
그런 것이 기세가 등등한 것이 아니라,
돌에 맞아 죽는데도 원망이 생기지 않는 것이, 영적으로 기세가 등등한 것이고,
하늘에 기세가 등등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데 왜 내가 돈이 없어서 이렇게 어렵게 지내야 하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데 왜 일이 이렇게 잘 안 풀리나?
하나님이 사랑하시는데 왜 이렇게 병이 들어있고, 내 자식들은 이 모양 이 꼴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질문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이미 세상에 기운의 “기 싸움에서 져버린 상태의 질문들”이라는 겁니다.
영적으로 기세가 등등한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 것이냐?
내가 비록 돈이 없지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니까,
‘내가 비록 돈이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행복할 수 있다.’
이게 기세가 등등한 것입니다.
돈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죽어버린 것이고, 먹혀버린 것이고 져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 싸움에서 이기는 길은 무엇입니까?
이 악한 모압 왕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자기 사랑하는 것들을, 불살라 버린 것입니다.
배수의 진을 치는 것이지요. (물론 영적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끊임없이 내 마음으로 밀고 들어오는 이 세상의 악한 기운,
나를 불행하게 하는 기운,
기회만 있으면 근심과 걱정에 빠뜨리고, 스트레스를 싸이게 하고,
불평불만하게 하는 것들을
조용히 내려놓고,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마귀가, 그걸 들이대면 꼼짝 못 하고, 미끼에 걸려서 자기를 따라올 줄 알았는데
영적인 기 싸움에서 이긴 사람은,
(모압 왕처럼)
자기가 먼저, 자기 사랑하는 것들을 스스로 내어버리는 것입니다.
마귀가 기 싸움에서, 벌써 확 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도가 힘이 없어 흐늘흐늘 하는데.. 마귀가 확 꿇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깡패들도 싸움 할 때, 깡패들끼리의 기 싸움에서 누가 기선을 제압합니까?
누군가 하면, 자기 목숨을 이미 마음에서 버린 자, 죽기로 각오한 자가 이기는 겁니다.
자기의 목숨을 지키려고 하는 자는 절대 기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어요.
이상한 겁니다.
돈을 지키려고 하는 자는, 기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어요.
이 세상과의 기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어요.
반드시 걱정과 불만과 불안과 두려움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불행에 빠져버리고 말아요. 돈을 지키려고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돈을 아예 버리려고 합니다.
모든 세상 사람들이 돈을 벌려하고 돈은 지키려고 하고 있는데
돈을 아예 마음에서 버려버립니다.
마귀가 이 사람을 당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버리는데서 기 싸움에서 승리의 기선을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지,
지키려고 하는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가 이 세상을 이기는 자입니까?
주님이 이기셨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어떻게 세상을 이기셨습니까? 당신의 몸을 버리셨습니다.
그 기에 이 세상이 2,000년이 흘러가도록 눌려 사는 겁니다.
주님이 이기신 것입니다.
버리는 데서 기세가 등등한 것이고,
이 세상의 기운이 물리쳐져야 마음의 행복과 평강과 감사가 생길 수가 있는 겁니다.
버리는 자가 이기는 것입니다.
지키려고 하는 자들의 기세는, 버리는 자의 기세를 이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비결이 어디 있습니까?
왜 주님의 십자가가 승리의 상징입니까?
주님이 목숨을 지키려 하시다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면 그건 실패예요.
그것 자체로 참담한 실패일 뿐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당신 스스로 당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 거십니다.
지키려고 한 것이 아니라 버리려고 하는 이 기세를
세상이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이에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승리하면 승리의 결과가 반드시 마음의 평강으로 오는 겁니다.
기세가 등등한 것은 왕 고집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자존심이 강하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고, 오기를 부리는 게 아닙니다.
기세가 등등하다는 것은, 콧대가 높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또 호전성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도대체 이 세상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고 지키고 싶어 하는 그 모든 것이
하나도 자기에게 없는데도
행복한 것, 기쁜 것, 있거나 없거나 상관이 없는 것,
이것이 선민의 기세가 등등한 겁니다.
내가 죽음으로써 다 버리는 것 아닙니까?
모든 연결이 다 끊어지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를 붙들면서
다른 사람 모든 사람들이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자기를 강화하기 위해서 싸우고
더 벌기 위해서 싸우고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자기 십자가를 마음에 지고 직장에 나가서도 직장을 버리는 겁니다.
그 기세를 이길 수가 없다는 겁니다.
▲신앙인은, 기 싸움에서 이겨야 됩니다. 기세가 등등해야 됩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죽이는 자가, 기세가 등등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자신이 죽어버렸습니다.
‘죽은 자같이 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 붙잡고
기세가 등등한 사람들로 오늘 하루를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아버지! 지키려하고 보존하려하고 더 많게 하려는 동안에
우리는 세상에 완전히 먹히고 세상의 기운에 정복당해서
비굴하게도 돈 좀 더 있으면, 좀 더 건강하면, 좀 더 아름다우면,
좀 더 높아지면.. 하고 살았습니다.
결코 그 상태로는 마귀와 기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다 못 박고 죽음으로써
마귀와 기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하늘의 평강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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