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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입은 사람은, 쉽지 않습니다

LNCK 2014. 3. 18. 15:18

www.youtube.com/watch?v=6J_0z-gW2qU

◈은혜를 입은 사람은, 쉽지 않습니다      창6:8      14.02.23  
                              
성경에,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이, 세 분 나옵니다.
노아, 아브라함, 모친 마리아입니다. 그런데 세 분 다 공통점이 있어요.
그 받은 은혜로 인한 환란과 역경(막4:17) 가운데, 꿋꿋이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그 받은 은혜로 인한 환란과 역경(막4:17) 가운데
하나님의 계명에, 하나님의 사명에, 반드시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1. 노아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 창6:8
하나님이 노아를 부르셨어요. 홍수를 준비하기 위해서.
또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모든 민족의 조상으로 삼으셨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을 이 땅에 탄생시킬 때, 먼저 마리아를 부르세요.

그런데 그들의 공통점이 뭐냐 하면, 영어로 보니까 
하나님의 favor(호의)를 입었어요.
그것을 한국말로 ‘은혜를 입었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어요.

그래서 특별히 창세기 6:8절에 보면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Noah found favor in the eyes of the Lord.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 라는 것이지요.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님은 왜 하필 노아를 택했냐. 이 말이에요.
그게 하나님의 페이버를 입었다.. 라는 말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의 그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면
그 다음에 반드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시기가 오게 되어있어요.

노아가 120년 동안에 그 방주를 지었어요.
그 비가 한 방울도 안 오는 그 땅에서, 비가 올 줄 알고 방주를 짓고 있었어요.

120년 동안을. 그 순종을 한 번 생각해보시라고요. 다른 사람이 뭐라고 그러겠어요.
‘저 사람 정신 나간 사람이야. 이런 날씨에 무슨 홍수가 온다고 
방주를 짓고 있냐.’ 이 말이에요.

그런데 노아는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어요.
창세기에 보면 Noah did all that the LORD commanded him. 7;5
Noah did everything just as God commanded him. 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 하였더라.’

하나님의 페이버를 받은 사람의 특징이 뭐냐면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말씀에 순종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노아는 그 방주를 짓는데 온전히 순종하고, 홍수가 나중에 왔습니다.
노아 식구 여덟 명만 구원받았어요. 나머지는 다 물에 빠져 죽었어요.

우리가 다 은혜 받기를 원하고, 은총 입기를 원하죠.
안 원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은혜 받고, 은총 받은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가요?
<순종>한다는데 있습니다.

순종 못하면요.. 그거 가짜 은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은혜, 은총을 부어주십니까?
그가 받은 사명, 그가 받은 말씀에 순종하라고.. 은혜를 주시는 겁니다.
노아가 그랬다는 것이지요.

◑2. 마리아

눅1:28.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하니”

마리아에게 천사가 찾아왔어요.
천사 가브리엘이 찾아와서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여기도 영어로 you who are highly favored. the Lord is with you.
이 마리아는 ‘highly favor’를 입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특별한 은총을 입은 자’가 이 마리아라는 거예요.

거기까지만 말하면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마리아한테 뭐라고 그래요?
‘네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다.’
‘나는 남자를 모르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습니까?’
그 때부터 마리아가 고민에 빠지는 거예요.

아니 하나님의 favor(은총, 호의,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기지요?
혹시 favor 대신에, 반대로 눈총을 받은 게 아닌가요?

▲하나님의 은총은, 사명을 감당하라고.. 주십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름으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랬어요.

그래서 마리아가 그 가브리엘의 말을 듣고 뭐라고 그래요.
38절에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순간에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게 된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이 이렇게 페이버를 주신 분들,
이런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테스트를 하신다.. 이 말이에요.

그런데, 그들은 그 테스트에 합격, 즉 순종하게 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favor를 입었으니까요.

오늘날에도, 우리 주위에 하나님께 은총을 받았다는 사람들.. 꽤 있습니다.
큰 환상을 보았다는 사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어떤 말씀을 해 주셨다는 사람,

불치병에서 고침을 받았다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로, 자녀를 잘 키웠다는 사람 등등

그런데, 오늘 믿음의 조상 세 사람을 살펴보겠지만요,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다고,
마냥 좋아라.. 한 것이 아니에요.

어쩌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눈물과 고뇌의 시간을 가졌고,
다른 사람들이 겪지 못하는, 환란과 고통의 나날을 보냈으며,

그 ‘순종’이라는 것이 .. 식은 죽 먹기나, 누워서 떡 먹기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정말 ‘차라리 내가 은혜를 입지 말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탄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결국 순종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에게 부어졌으니까요.

◑3. 아브라함

▲아브라함이 받은 은총
창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아브람이 하나님을 잘 믿어서, 그가 이런 특전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우상장사의 아들이었고, 우상을 섬기던 이방인이었습니다.

아브람이 어떤 선행을 하기도 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주셨습니다.
그것도 복의 근원으로, 모든 열방의 아버지로 그를 불러주셨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큰 은총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은총을 받았다’는 직접적 표현은 없지만,
창12:1~3절, 아브라함의 부르심이.. 그가 하나님께 은총을 받은 것을 증명합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시험과 순종

창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그랬어요.

하나님은 자기에게 은혜를 입은 자에게는, 사명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사명은,
자기 아들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바치는 일을 통해서,

장차 이루어질 인류 역사의 구원,
구세주 예수님을 통한 인류 구원의 역사를,
구약에서 모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자기가 처음 받은 사명, 창12:1~3절의 약속과 부르심을
창22장,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드림으로써,
자기 시대에, 자기 사명을 성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장차 오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사건을,
구약에서 모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당당히 그 시험에 순종했습니다.
이게 남의 얘기라서 그렇지.. 내 얘기, 내 입장일 때.. 그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거뜬히 그 시험에 순종, 패스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은총을 입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적용

저/설교자도 테스트를 많이 받았어요.
제가 어느 날 말씀을 읽다가 깨달아요. 말씀이 너무 귀한 은혜가 되어요,
그런데 그 다음 날 되면, 꼭 그 말씀에 해당하는 테스트를 하나님이 나한테 주세요.
그런데 테스트를 별로 통과를 못해요.

말씀은 깨닫고.. 말씀은 이렇게 감동은 받는데.. 제 삶이 그 삶대로 못 살더라..
그 말이에요.

여러분도 비슷한 말씀들을 하시더라고요.
교회에서 은혜 받은 날은, 꼭 가정에 가면 싸울 일이 생기고요,
직장에서, 그 받은 은혜를 다 쏟아버리게 되는 불상사가 생긴다고요..

은혜를 받기는 받는데..
순종을 하기가 쉽지 않더라는.. 그런 고백입니다.

▲그런데 테스트를 통과하고, 순종하면,
‘여호와 이레’의 은총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정말
하나님이 도리어 감탄하는 것이지요.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그래서 13절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 본 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 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그랬어요.

하나님의 본심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빼앗는 게 아니시잖아요.
아브라함의 순종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총을, 또 그에게 주신 것이지요.

▲여러분,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원하는게 뭐가 있을까요?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그 분의 뜻대로 살기(순종)를 원하세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세요.
그냥 타이틀만 내가 예수 믿는 기독교인이 아니라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대로 살기를
우리 하나님이 원하고 계세요.

그런데 저나 여러분이나 그 모든 테스트를 통과해야 되요.
노아처럼, 마리아처럼, 오늘 이 아브라함처럼 우리가 통과해야 되요.

그래서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 라는 뜻이 뭐냐면
이제 돌이켜서 순종하라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네 뜻대로 살면 망하게 되어있다는 거예요. 찢긴다는 거예요.
그것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에요.

이번 또 일주일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셨어요.
오늘 예배 드리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한 주간을 살아야 되는데
그 사는 한 주간이 바로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가 살아야 하는 기회라는 것이지요.

▲이사야 1장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도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는 것을 좋아해요.
그저 소 잡고 양 잡고 그냥 번제단에 피를 뿌립니다.

그런데 제사는 그렇게 드리고 양을 잡고 소를 잡는데 뭐 합니까.
제사 드림과 동시에, 삶에서 악을 행한다는 거예요.

요즘 교회마다 전부 다 예배에 미쳤습니다.
예배 시간만 되면 전부 다 예배에 몰입을 해요.
그런데 사는 것 보면 하나님 말씀하고 관계가 없어요.

바로 그 말씀을 이사야서 1장에 하나님께서 하고 계세요.
너희가 드리는 그 번제에 내가 역겹다고 그랬어요.

자기들의 삶은 악을 행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그런 자의 예배는 하나님이 안 받으세요.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이 시간에 드리는 예배가 아니에요.
지난 한 주 동안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산 자로서 예배를 드리는 거예요.
그런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것이지요. 할렐루야.

오늘 주일날, 이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려면
이 시간에 와서 예배만 잘 드리는 것이 아니에요.

지난 한 주 동안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서
오늘 이 시간에 그 마지막을 예배드리는 것이다. 이 말이에요.
그게 하나님이 받으시는 진정한 예배인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때로는 원망이 나오고 불평이 나옵니다.
그 때 빨리 엎드리고 돌이켜서, 이제는 감사와 찬송과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우리가 바뀌어야 되는 거예요.

저나 여러분이나 언제 이 땅을 떠날지 몰라요.
부산 외국어대 학생들이 그 경주 리조트에 가서 MT하면서 (2014년 2월)
그 날 밤, 자기들이 세상을 떠날 줄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어떤 사람이 한 시간 동안 비디오카메라로, MT상황을 찍었더라고요.

그런데 그 사람도 죽었어요.
그래서 경찰이 그 비디오카메라를 다시 재생시켜서 그 상황을 다 봤어요.
그래서 막 그 안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어요.

퀴즈 내서 맞추면, 자매과 짝지어 준다는 게임하면서,
아마 퀴즈를 게임을 맞췄다봐요. 그래서 짝지어 계단을 뛰어 내려가다가
바로 그 순간에, 건물이 흔들리면서 지붕이 내려앉았어요.
그 다음부터는 어두워서 카메라가 새까맣게 나왔어요. (매몰된 것이지요.)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만, 여러분 우리가 내일 일은 모릅니다.

▲계시록이 일곱 교회가 나옵니다. 일곱 교회에 매번 하는 말이 뭐예요?
마지막에 “이기는 자에게” 그랬어요.

뭘 이기라는 거예요? 죄를 이기라는 거예요. 세상을 이기라는 거예요.
나를 이기라는 거예요.

이기는 자에게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둘째 사망의 해를 입지 않게 하리라.
그리고 모든 축복을 준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우리는 이기는 자가 되어야 되요. 이 마지막 때에 우리 교회는 죄를 이겨야 됩니다.
세상을 이겨야 됩니다. 우리 정욕을 이겨야 됩니다.
그런 교회에 하나님이 ‘생명나무의 과실을 준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여러분 교회의 목적은 다른 것이 아니에요. 사람 많이 오는 게 목적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게 하나님의 교회에요.

하나님과 관계 없으면 그게 무슨 교회입니까. 그냥 써클 모임이지요.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뜻대로 살아야 됩니다.

만국을 다스리는 철저한 권세를 주시고요.
생명책에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아니한다고 그랬어요.
이런 축복을 우리 교회가 받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

◑서론/ 시작도 좋아야 하지만, 끝도 당연히 좋아야 합니다.

그 유월절 어린 양의 보혈로, 문에 양의 피를 바르고,
그들이 정말 홍해를 건너서 이제 광야로 들어갔는데,
그 홍해를 건너간 것은 시작인 거예요.
우리는 홍해를 건넌 것으로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홍해를 건넌 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이에요.
홍해를 건넌 사람들은 다시 이집트로 돌아갈 수가 없어요.
이집트로 돌아갈 때는 홍해가 갈라지지 않아요. 다 물귀신 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제 홍해를 건넌 사람은, 이제 앞으로 가야되는 거예요.
어디로? 요단강을 향해서 앞으로 계속 가야되는 거예요.
그것이 저와 여러분의 이 땅에 영적 여행인 것입니다.
이 영적 여행을 우리가 잘 하지 못하면 안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홍해는 사실 누구나 다 건넜어요.
출애굽기 12장 38절에 보면 이런 말씀을 했어요.
'중다한 잡족'과 함께 건넜어요.
(어쩌면 누구나, 아무나 쉽게 건널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면이 있어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홍해를 건넜는데
이제 홍해를 건너서 광야를 지나서 요단강을 갈 때는,
요단강을 건널 때에는 아무가 가는 것이 아니에요. 이게 중요한 것이에요.

요단강을 건널 때에는 200만이라는 사람이 홍해를 건넜어요.
그런데 요단강을 건널 때에는 몇 명이 건넜느냐. 딱 두 사람이 건너갔어요.
갈렙과 여호수아에요. 물론 1세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2세대는 많이 있지요.

그 200만의 1세대들이 홍해를 건너와서, 요단강을 건널 때는 딱 두 사람만 건넜어요.
광야에서 다 죽었어요. 왜 죽었느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늘 원망, 불평하고 불신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다 광야에서 죽었어요.

오직 믿음으로 산 갈렙과 여호수아만, 요단강을 건너고 가나안으로 들어간 것이에요.
우리가 이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정말 망극하신 은혜로 홍해라는 그 엄청난 바다를 건너왔지만 (시작)
우리가 이 광야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요단강을 건널 수도 있고, 못 건널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우리의 선택이에요. (끝)

홍해를 건너서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 뭐냐 하면, 말씀을 주셨어요.
모세를 통해서 말씀(율법)을 주셨어요.

이제 이 광야라는 것은, 말씀으로 사는 것이 광야에요.
하나님이 주시는 그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살아가는 것이
이 광야이고, 그런 자가 요단강을 건너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여러분, 광야는 우리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로 부터는 만나, 메추라기를 먹고 사는 것이 광야예요.

광야에는.. 물이 없어요. 바위를 깨뜨려서 물을 마시는 것이 광야예요.
그래서 광야는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에요.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하나님을 믿고 사는 곳이 광야에요. 할렐루야.
그것이 아니면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갈 수가 없어요.

다 불안하고 염려되고 걱정 근심 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똑같이 살 수밖에 없어요.

지금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만나를 주시기 때문에 살고 있는 거예요.
바위를 깨뜨려 물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살 수 있는 거예요.

우리 힘으로 된 것이 없어요. 그래서 이 광야 생활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믿고 따라가야 되는 곳이 광야에요. 다른 길이 없어요.
아니면 다시 애굽으로, 세상으로 돌아가야 되요.
그것은 더 불행한 것이죠.

어차피 우리가 홍해를 건너와서 세상 밖으로 건너와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기로 했으면, 이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만 섬겨야 되요.
하나님이 주신 이 말씀대로,
우리가 살아가야 되는 것이 요단강을 건너는 길이라는 것이에요. 할렐루야.

▶그런데 왜 이스라엘 사람들은, 말씀에(시내산 언약에) 순종하지 못했을까요?
다른 이유가 없어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홍해를 건너게 해주신 하나님인데도 불구하고,
건너자마자 물이 없다고 모세를 원망하지요. 하나님을 원망하지요.

‘아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좋은 것을 많이 먹었는데,
마늘도 먹고 수박도 먹고, 이 광야에서 뭘 하는 것입니까.’ 하면서
늘 불평을 표출하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요단강 근처도 못가고 다 죽었어요.

우리는 반드시 이 광야를 지나가야 되요.
저와 여러분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
홍해와 요단강 사이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요.
바로 광야에 살고 있습니다.

이 광야는 하나님이 주신 이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정말 의지하고 사는 곳이 광야에요.
그런 자에게 하나님은 만나를 내려주시고, 
바위를 터트려 물을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인줄을 믿습니다.

좁은 길이에요. 이게 다른 길이 없어요.
오직 하나님의 도움만을 구해야 되는 것이 광야에요. 할렐루야.

여러분 200만이 건넜는데요. 두 사람만이 들어갔어요.
시작은 200만이었는데.. 끝은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갈렙과 여호수아의 그룹’ 안에 들어가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