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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요?

LNCK 2014. 4. 10. 09:07

◈어떻게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요?      벧후1:4~9, 고전1:9      인터넷설교 녹취

 

신앙 성장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사도 베드로가 이렇게 권면을 합니다.

 

▲벧후1:4절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더 이상 우리가 육신의 정욕대로 살거나

세상을 좇아 사는 것이 아니라

신의 성품, 예수님을 온전히 담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신 거예요.

목적을 잃어버려서는 안 돼요.

 

우리, 잘 먹고 잘 살고 복 받으려고 부르신 것은 부스러기인 거예요.

주께서 우리를 부르신 고귀한 목적은

세상의 썩어 없어질 정욕을 쫓지 않고

우리가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되게 하려고 우리를 부르신 거예요.

그 방향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1:5절, ‘그러므로 너희가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성장하라’ 이 말이에요. ‘더욱 힘써서 멈춰있지 말아라,

더욱 힘써서 믿음을 가졌느냐. 네 삶이 덕스럽게 되어야 한다’ .. 입니다.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자녀로서, 부모로서,

이제 정말 그리스도인의 덕스러운 그 입술의 말들!

 

그 전에는 비판하고 부정적이고 그런 찌르는 말을 했다면

이제는 내 입술에서 정말 주님의 생명의 말이 흘러나가고

나의 삶에서 주님의 덕이 이루어져서, 그 사람이 가는 곳에 평화가 이루어지고

그 사람이 가는 곳에 하나님의 화평함이 이루어지는

믿음 위에 덕을 세워야 하고, 덕에 지식을,

하나님의 이 말씀의 진리의 지식이 충만해져서

그 지식으로 사람들을 세워주고, 또 절제를,

 

나의 삶에, 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졌어도 절제 하고,

절제의 모습을 보이고, 거기에 인내를,

고난이 있어도 참고 견디며, 거기에 경건을..

 

그래서 자녀들이 ‘우리 엄마 보면, 우리 아빠 보면, 정말 하나님을 만나는구나.’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저절로 그런 고백이 자녀의 입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죠.

이것이 자기 속에 예수의 생명을 가진 사람의, 삶의 증거입니다.

 

링컨 대통령이 전쟁 중에, 하루에 세 시간씩 기도하고 나올 때

얼마나 영광스러웠겠습니까. 그래서 그 북군 병사들이

‘저 분을 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셔.’ 라고 느꼈다고 하지요?

 

그 깊은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의 결론은 '사랑을 더 하라' .. 사랑으로 귀결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예수 믿는 믿음에서 그치면 안 돼요.

거기에서 멈추지 말고

점점 삶이 변하고, 입술이 변하고,

결국 끝에 사랑의 삶으로써 ‘야 저분은 예수님이다.’ 이런 평가를 들어야 돼요.

저도 아직 여기에 이르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잖아요.

‘저 분을 보면 사랑이 느껴진다.’ 그렇게 성장을 하라고 말씀하시는데요..

 

▲벧후1:8절을 한 번 보세요.

‘이러한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흡족할 때, 믿음에 덕, 덕에 지식, 지식에 절제, 절제에 인내,

인내에 경건, 경건의]에 형제 우애, 형제 우애에 사랑이 계속 흡족할 때

구원의 확실한 증거가 거기에서 나타난다.. 라는 것이에요.

 

여러분 교리적으로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시인했다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면 안돼요. 성경적이지 않아요.

정말 그 믿는 믿음이 내 삶에 풍성한 열매로 나타날 때

‘아 정말 저 사람은 그 믿음이 진짜구나.’ 이렇게 증거되는 거예요.

 

▲1:9절 읽습니다.

‘이러한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보지 못하고 거기에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10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하게 너희들에게 주시리라’

 

‘열매 맺어야 한다. 이런 것이 흡족하도록 달려가라.’

주님께 기도하면, 주님이 제게 주시는 단어가 있는데요. ‘달려가라’입니다.

‘너 멈춰있지 말고, 누워있지 말고 잠들어있지 말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라!

더 성령이 충만하도록. 더 하나님의 열매가 맺혀지도록 흡족하게 달려가라!’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멈춰있는 것은 퇴보되는 거예요.

제가 살아보니까 멈춰있는 것이 없어요.

내가 주님과 관계가 열려서 달려가던지, 이것이 끊어져서 영적으로 죽어가던지..

 

나는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어요. ‘난 그래도 괜찮을 거야..’

아닙니다. 침체 되서 죽으면 그 다음에 마귀가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온갖 것으로 끌어내려가면서 이 모든 은혜를 다 소멸시킵니다.

    

 

믿음도 없어지고 덕도 없어지고 경건도 없어지고 사랑도 없어지고

그냥 온갖 끌어내려요.

 

그러나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과 관계 맺으면

다시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으로 달려 나가요.

 

둘 중에 하나에요. 중간 없어요.

믿음이 자란다. 라고 하는 것은 이제 정말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서

그 충만한 열매들이 맺혀져서, 나 자신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열매가 되고

주님이 나를 보시면 얼마나 예쁜지, ‘나의 아들이, 예수의 피로 구원 받은 저 자녀가

예전에는 자기 정욕대로 살았는데 이제는 경건하구나.’

 

‘그 전에는 쟤 입술의 말들이 저렇게 나를 기쁘게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어떻게 하는 말마다 진리를 말하느냐.’

 

‘그 전에는 자기만 위해 살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남을 위해서 살아 가나’

 

이제 주님이 우리만 보시면, 마치 잘 익은 과실을 맺힌 것처럼

너무 기쁘신 거예요.

 

또 그 사람만 좋나요. 한 사람이 영적으로 서면

반드시 그 한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영향력이 흘러갑니다.

 

많은 열매를 맺어서,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가정이 구원받고

친척이 구원받고, 주변이 살아나면서, 그 사람이 열매를 맺힐 때

주님이 춤을 추시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 구원의 목적입니다.

 

‘내가 너를 통하여 그렇게 열매 맺는 것이 나의 목적이었는데

너에게서 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구나.’

이게 주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놀라운 뜻이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최후의 그 날, 주님이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예수를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

이렇게 물어보지 않아요.

대신에 ‘너는 사랑하며 살았느냐?’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왜요? 믿음의 결론이 사랑이란 열매이니까요.

 

‘너는 얼마나 나를 닮았느냐. 너는 얼마나 열매 맺었느냐.

너는 얼마나 내 일을 하다가 왔느냐?’

그것이 진정한 믿음에서 나오는, 열매들이에요.

주님이 그것을 물어보시는 거예요. ‘믿음/불신’이 아닙니다.

 

나는 믿었다고는 했는데.. 열매는 없고, 사랑하지도 않았고

주를 위해 살지도 않고, 그냥 교회만 왔다 갔다 했는데요.

그러면 바깥 어두운 데로 가는 거예요.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두는 거예요.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이 심판대 앞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에요.

정신을 차려야 되요.

열매 맺는 것은 옵션이 아닙니다. 정말 내가 살아있는 믿음이라면

우리는 그 방향으로 조금씩이라도 전진해 나갈 것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고

또 우리 교회가 그러한 믿음을 세우기를 원합니다.

 

 

자 그러면 신앙 성장의 단계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 아는 부분이지만, 한 번 더 신앙 성장이 어떻게 되는지를

한 번 정리를 해보고, 나 자신을 적용해보고

내가 섬기는 영혼들이 어떻게 이 과정으로 갈 수 있는지에 대한

눈을 가져야지만 기도할 수 있어요.

 

▲1, 진정한 신앙생활의 출발이란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었느냐’ 에서 출발 합니다.

아무튼 진정한 출발은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느냐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야 합니다.

 

회개와 믿음이 명확해야 되요.

저도 이렇게 사역을 하다보면 어떤 경우에는 역사가 나타났어요.

그 때 막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은 것처럼 모였어요. 그런데 우수수수 떨어졌어요.

 

고등학교 때 굉장히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를 했거든요.

그런데 우수수.. 남은 열매가 별로 없어요.

 

제가 그 동안 사역 해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은혜 받은 것 같았는데

끝까지 가는 사람이 그 사람들 정도가 아니에요. 많이 빠져나가요.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볼 때 진정한 회개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결국에는 떠나가요.

 

여러분 ‘장가 세례’라고 아십니까. 장가가기 위해서 세례 받는 것 아세요?

이 장가 세례 받는 분들, 아무튼 내가 이 여자만 주면

내가 신앙생활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면 세례 받아야 되.

네, 저는 예수님 믿고 세례 받겠습니다. 그렇게 ‘장가 세례’를 받아요.

많은 분들이 장가 세례 받고 그 다음에 점점 교회 빠지다가

그냥 ‘너나 가라’ 하는 경우 많이 있어요.

 

그 중에 귀한 하나님의 은혜 받은 분들,

여기에도 그런 ‘장가 세례’ 받고 신앙생활 잘 하시는 분이 계시죠?

 

열 명에 한 둘은 ‘장가 세례’ 받고도, 나중에 승리하는 분이 있어요.

하지만 열에 일곱, 여덟은 그렇게 떠나가는 이유가 뭐냐면

진정한 회개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에요.

 

우리 신앙생활에 진정한 회개, 터닝 포인트, 회심이라고 하지요.

여기서 벗어나서 정말 내가 예수를 믿는 참 믿음의 기초 위에 서는 참 회개의 경험은 너무나 중요해요.

 

그럼 무엇을 회개해야 되는가요?

 

가장 근원적인 (첫 번째) 회개

내 중심적인 살아왔던 것을 회개한다. 가장 근원적인 회개예요.

‘내 마음대로, 내가 주인이 되어 살아왔던 삶에서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히고 하나님 이제 나에게 예수가 주님입니다.

당신의 주권, 로드십을 내가 이제는 인정하고 그렇게 살아가겠습니다.’

그게 회개예요.

 

내가 여전히 주인이면서 믿는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에요.

‘정말 이제 당신이 내 인생의 주인입니다.’ 라고 하는 이 주인의 터닝 포인트,

이 회개가 반드시 있어야 되고

 

두 번째 회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죄, 육신의 죄, 불륜의 관계를 맺고

여전히 끊지 못하는 죄악들이 있고

그러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에 이 무거운 추가 하나님께로 못 나가게 해요.

이게 끊어져야지, 회개로써 끊어져야지

영혼이 풀어지면서 성령의 깊은 은혜로 들어가지요.

 

많은 분들이 겉으로는 믿는 것 같은데 성장이 안돼요.

5년, 10년이 지나도 신앙이 내내 그 자리에요.

열어보면 그 삶에 잘못된 부분들이 끊어지지 않은 거예요.

 

이 기준으로 현재 교회들을 바라볼 때, 아직 시작도 못한 쭉정이들이 굉장히 많아요.

저는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정말 우리 교회가 회개를 강조하고, 정말 예수님이 주되심을 강조하고

그리고 정말 우리의 삶에서 이제 주님, 예수님만을 따르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결심해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의지해서 그렇게 달려갈 때

주님이 그 믿음을 보시고 그를 변화시켜 주시는 거예요.

그 참된 회개와 믿음이 첫 출발이고요.

 

▲2. 두 번째, 십자가에서 진정으로 회개하면, 반드시 그 다음에 열리는 것이 뭐냐면

성령 세례를 통한 영적인 부분이 열려지는 거예요.

 

여러분, 신약 성경의 핵심은 십자가 복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부어지는 거예요.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면 너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겠고

이제 그 보혜사 성령이 너희 속에서 너희들을 가르칠 것이고, (너희들을 이끌 것이고)

그 성령의 능력으로, 네 육신의 힘으로 이기지 못한 죄와 세상을 이기게 될 것이다.’

 

사도행전 2장에 그 약속대로 성령이 임하셨죠.

그 다음에 사도행전 2장부터 성경을 보세요. 다 성령 이야기입니다.

 

성령님이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고 성령을 통해서 은사가 임해서

그들의 신앙생활이 풍요로워지고 성령을 통하여서

그들이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주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그 성령을 통하여 충만한 능력으로 고난도 이기기도 하고 다 성령이예요.

 

성령이 없이 종교적으로 율법적으로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구약입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간 자들이에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과 깊이 교제하면서 그의 사랑 안에 빠져 들어가야 되요.

 

고린도전서 1장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시는

그 분과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전1:9

 

신앙생활이 정말 영적인 것이 열려서, 자꾸 이렇게 이야기하면

우리 교우를 이야기 하는 것이 부담스럽긴 한데, 어제 새 가족이 그러시는 거예요.

 

‘세상적인 어떤 것들을 누렸는데 마음이 그렇게 늘 허전했다’고 해요.

채워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 전에, 돈을 많이 버셨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은 교회에 가야 풀릴 일이구나. 참 그것도 지혜롭지요.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지요.

 

이 속에 있는 이 마음의 공허함은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 그 분을 사랑하고, 그 분을 바라보고, 그 분으로 채워져야지만 만족되어지는 우리의 영입니다.

 

신앙생활은 뭐냐면, 예수님을 빌미삼아서

내가 성공 하는데 밀어주는 이 알라딘의 요술램프가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만났다면 이제 내 마음에 소망은 주님이고

내 마음의 목적도 예수님이고 내 살아가는 이유도 주님이고

내 사랑은 주님인데 주님, 주님 한 분이면 나는 충분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내 안에 거하시는 것으로

주님, 내 인생이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내 인생의 어떤 부요함이 있지 않다고 할지라도

주님, 당신이 내 안에 만족되기 때문에 저는 기뻐합니다.

이게 초대 교회 성도들의 모습이었잖아요.

 

이것이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주님이 내 안에 성령으로 채워지면, 우리는 가장 행복하고 가장 만족스러운 자가 되는 거예요.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 물을 여인아 마셔라. 그 물을 우리에게 주셨어요.

 

그런데 주님을 믿는데 여전히 주님으로 만족되지 않으면,

주님으로 인해서 채워지지 않으면.. 무엇으로 채워야 되요?

 

많은 분들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세상적인 부족함 때문에 낙심하고 원망하고,

주님은 우리 안에 계신데, 그 것 하나면 충분한 것인데.

정말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고 기뻐하는 그런 신앙으로 나아가서

견고하게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3. 세 번째, 따라합시다. 진리 안에서 자라나야 한다.

 

성령이 역사하실 때 말씀이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말씀 없이 성령의 표적과 나타나는 현상만 추구하면 이상하게 꼬여요.

왜, 이 현상, 표적, 여기에 이렇게 관심 가지면서 알맹이가 빠져버려요.

 

주님께서 그런 것들을 일으키시는 목적이 있거든요.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와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런 중심이 있거든요. 말씀 안에.

 

그런데 말씀이 없으면 이상하게 표적은 나타나는데, 중심은 이기적이에요.

그러니까 자기를 위해서 일하는 자가 되는 거예요.

 

반면에 성령이 역사하는 것이 없이 말씀만 있으면, 날카로워집니다. 판단만 해요.

우리 안에 성령이 온전한 역사와 말씀에 충만함이 함께 자라날 때

주님이 쓰시는 온전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주님이 주님께서 20대 초반의 저에게 성령의 은사를 막 열어주셨을 때

감사하게 성경을 그렇게 보게 하셨어요.

성경 속에서 그렇게 주님 추구하다가 제가 넘어지면 성경을 열고

‘주님, 제가 왜 넘어지죠. 나는 성령도 받고 은혜 받았는데 왜 내가 실패하죠?’

 

로마서를 보았습니다. 쭉 읽은데 막 답이 보이는 거예요.

또 다른 성경을 보고, 그렇게 성경을 읽고 읽으면서

제 영혼의 뼈대 안에 진리 체계가 딱 세워지니까, 이게 얼마나 힘이 있는지

어떤 시험이 오고 넘어져도 진리가 작동하면 금방 일어나게 되더라고요.

 

지금 조차도 그렇게 지내온 지 벌써 24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날마다 저의 양식이고 저의 힘이고

그 진리 체계가 계속 업그레이드 되어가는 제 영혼의 성장의 동력입니다.

 

말씀을 우리는 보셔야 됩니다. 진리 안에서 성장되어야 해요.

특별히 로마서가 열리셔야 해요. 로마서 안에 신앙의 A, B, C, D가 체계적으로 나와 있어요.

 

무엇이 율법이고, 무엇이 복음이고,

무엇이 믿음이고, 어떤 것이 생명의 원리이고,

십자가의 원리는 나 죽고 예수 생명 사는 것인데

육신으로 살 때 우리가 어떻게 넘어지는데

 

8장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어떻게 죄와 사망의 법에서 이기게 하는지

이 진리 체계가 우리 안에 돌아갈 때

그 안에서 우리는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고

아까 말한 그 사탄의 공격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진리 능력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 계시록이 열려야 되요. 왜, 세상의 끝이 보이니까요.

세상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한 총체적인 이 세상의 역사의 그림이 보이면

가치관이 정해져요. 더 이상 썩어질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안돼요.

내가 무엇을 위해 살다가 오늘 죽어도 아깝지 않을

참된 가치가 말씀 안에서 발견되어지고, 그 말씀이 또 성령 안에서 풍성해질 때

그 신앙이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면 진짜 말씀이 막 튀어나와요.

시험당하면 속에서 말씀이 막 튀어나와서, 그 말씀이 나를 막 잡아줘요.

‘정신 차려라. 깨어있어라. 달려가라. 하나님 사랑해라.’ 말씀이 속에서 막 나와요.

 

왜, 진리가 내 안에 부어져있기 때문에.

저는 우리 교회가 아무튼 체계를 세우려고 해요.

말씀. 로마서, 계시록, 또 성경 전체를 보는 눈들.

그 진리 안에서 평신도들이 어떤 한 말씀 챕터를 깊이 연구해서

 

그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 분들은 주께서 보내주시는 그 양육 시스템 안에

정말 여러분 중에 누군가 하나님의 그 은사가 있는 분이 그 말씀을 삶에서

그 진리를 녹여서 가르칠 때,

그 안에서 성도들의 신앙이 성령과 말씀 안에서 쭉 성장할 때

그 영혼은 강력한 세상을 이기는 능력 있는 믿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4, 마지막 네 번째, 몸 된 공동체가 있어야 하고,

그 공동체 안에서 은사대로 봉사해야 됩니다.

 

신앙이 성장하려면 그래야 되요.

어떤 재소자가 감옥 독방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그래요.

막 처음에 얼마나 은혜 받는지 신앙이 막 가파르게 성장하다가

어느 순간에 딱 멈추더래요. 그때 알았대요. ‘내게는 신앙 공동체가 없구나.’

 

여러분 다소 부족해도 함께 교제하고 그를 품어주고 하면서, 신앙이 자라나는 것이거든요.

혼자서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신앙은 더 이상 자라지 않아요.

 

더군다나 주님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내가 몸 된 교회 안에서 손가락의 역할일지 관절의 역할일지 입의 역할일지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우리가 그 몸 된 공동체 안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정해주셨거든요.

 

그게 은사에요. 우리가 그 위치에 딱 들어가서 그것을 발휘할 때 충만함을 누려요.

제가 가장 충만함을 누릴 때는 말씀 사역 할 때에요.

지금도 말씀이 제 속에서 주님 안에서부터 흘러나와서, 제 속에서부터 흘러 넘쳐서 역사하고 있어요.

 

지금 저는 제가 인간적인 열정으로 말하지 않고 성령이 역사하고 계세요.

어떻게 아냐면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막 헤롱헤롱 거렸거든요.

‘아 힘들다, 아 지친다.’ 이렇게 하고 있었거든요.

 

어제 막 심방 갔다가 서울 가면서 지쳐있었는데, 지금 막 초롱초롱 해졌어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저는 지금 제게 주신 은사를 지금 100% 발휘하고 있어요.

제 영혼이 살아나고 있어요.

 

언제 우리에게 신앙 성장이 이루어지냐면

그 주님이 나에게 주신 그 맡긴 달란트를

몸 된 공동체 안에서 내가 발휘하며 순종하며 나아갈 때

주께서 몸 안에서 사랑 안에서 우리를 자라나게 하시는 거예요.

그 몸 안에서 충만함으로 움직이게 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나중에 주님 앞에 서는 그 날 주님께서 물어보신다니까요.

‘내가 너에게 준 달란트. 내가 너에게 준 그 은사. 너는 어떻게 남겼느냐.’

‘가만히 덮어두었는데요. 땅 속에 파묻어 두었는데요?’ 그러면 안 되잖아요.

 

여러분. 제 마음에 간절함은 주님 앞에 설 그 날 밖에는 없어요.

솔직히. 주님 앞에 서는 그 날 저 자신도, 또 주님께서 보내주신 여러분도.

그 심판 날에, 그 날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주님이 원하시는 그 충만함에 그 열매를 맺히는 그 모습으로 서게 된다면

우리에게 영광일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그렇게 사람들을 초신자부터 교회를 처음 나온 사람부터,

아니 불신자가 그렇게 와서 그렇게 잘 자라나게 해서 한 3년이면

정말 와 저 사람 변했구나. 정말 저 사람에게 열매가 맺혀지는구나.

하는 강력한 역사가 이 교회 안에서 움직이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이 행하십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에요. 주님이 행하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함께 동참하고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