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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이지만..

LNCK 2014. 5. 30. 11:04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이지만..   행21:5-9      14.01.05. 설교 스크랩

                                                              

좀 성공한 사람이, 자기를 슈퍼 스타로 착각하면, 마귀의 미혹에 빠져서, 결과가 안 좋다는 주제의 글을 모음. 

☞<보통 사람> 관련글 모음

  

▶도입 예화 / 큰 인물도, 한 때 평범한 일을 하며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미국 28대 대통령이었던 우드로우 윌슨은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개업했는데

그의 변호사 생활은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고 합니다. 우선 고객이 별로 없었습니다.

몇 안 되는 고객 중의 한 사람이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또 윌슨은 변호사의 일에 별로 취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자기의 문제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줘야 되는데

왜 그 이야기를 들어줘야 되는지, 그 이유를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윌슨은 변호사 일을 접고 교육계에 입문해서

뉴저지 주의 주지사가 되고,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성공했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자기 문제를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은

그렇게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은 위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많은 사람들이 털어놓는 그 많은 이야기를, 항상 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문제 제기.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위대한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가 잘 아는 성경구절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그의 의와 그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냐는 차치하더라도

 

우리 대부분처럼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

평범한 상황에서,

어떻게 늘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할 것인가? ..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오늘 이 문제를, 한 번 잠시 함께 생각해 보실까요?

 

 

◑사실 우리 대부분은 평범하게 살고, 우리 관심사의 대부분도 평범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평범하던 일상사가, 특별해지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는 고사하더라도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라도

뭔가 평범함을 탈피하려고 노력합니다.

 

여행도 해보고, 친구들도 만나보고, 맛집에도 찾아가 보고, 취미생활도 하고,

이렇게 평범함을 탈피하려고 애를 쓰지만

그것이 끝나면 다시 평범함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평범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기를 부끄러워합니다.

누가 별안간 예고 없이 찾아오면 당황합니다.

제가 한번은 심방을 갔는데 잘못 찾아갔어요.

A라는 분에게 가야하는데 B라는 분을 찾아갔어요.

 

벌써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심방을 받는 집의 분위기가 아니고, 집안이 쥐 죽은 듯이 조용했습니다.

 

그래서 벨을 눌렀더니 그 성도님이 당황한 얼굴로 문을 열고

‘목사님, 어쩐 일이십니까?’ 순간 제가 잘못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분도 민망하고 저도 민망하고 준비되지 않은 심방은

서로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누가 찾아오면 당황합니다.

집안을 정돈하지도 못했고, 그릇은 사방에 널려있고,

집에서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평소의 모습이에요. 그게 우리의 참모습입니다.

우리는 특별할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인데요.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뭔가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내가 교회 봉사를 하고, 단기선교를 가고, 직분을 맡으면

평범한 신앙생활을 벗어나서, 뭔가 하나님을 위하여 특별한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과거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뭔가 봉사를 하면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봉사를 아예 안 한 것보다는 나았지만

무엇을 하는 것이 저를 변화시켜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변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늘 무엇을 하려고 했던 저의 과거를 후회합니다.

왜냐하면 별 소득이 없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결국 인간은 doing이냐 being이냐 둘 중에 선택해야 되는데

doing이 being을 만들어주지 못합니다.

그 반대입니다. being에서 doing이 나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면 어떤 일을 하게 됩니다.

이게 너무 소극적인 생각이 아니냐 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요..

 

▶예수님의 예를 보면, 예수님이 30살 되셨을 때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33세에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생애는 3년 반밖에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느냐?

성경이 별로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잘 알 수는 없지만

목수로서 평범하게 사셨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평소대로 회당에 들어가셔서

성경을 읽으셨다는 구절이 있는 것을 보면

공생애 이전에 예수님은 평범한 신앙인의 삶을 사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영화 <벤허>를 보면, 벤허라는 인물이 예수님과 나이가 같고, 예수님과 동시대 인물로 나옵니다.

그리고 벤허와 예수님이 우연히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장면이 나오기 전에 나사렛 동네의 목수 요셉의 집이 등장합니다.

아버지 요셉이 톱질을 하고 있는데, 손님이 찾아와서 물어보기를

 

‘내가 주문한 책상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군요. 당신의 아들은 어디 있습니까?

당신 아들은 왜 당신을 도와서 지금 일하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물어봅니다.

 

이에 요셉이 (아들 대신에) 대답하기를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내가 내 아버지 일에 관계하여야 하지 않겠나이까?’

그건 눅2:49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손님이 또 묻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아버지를 도와 일을 해야 되지 않느냐?’

 

이에 아버지 요셉이 (아들 대신에) 대답합니다.

‘Oh, he's working. 그는 일하고 있다.’

이것은 요5:17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카메라가, 들에서 묵상하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비춥니다.

 

아주 의미심장한 장면입니다. 여러분이 그 장면을 기억하시지 못한다면

기억력이 없으시던가, 다시 보셔야 됩니다. 아주 의미심장한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도,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셨다는 얘기입니다.

 

반드시 공적으로 무슨 일을 해야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등에 기름을 준비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일 수도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빌립은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는 열 두 사도에 들지는 못했지만 웬만한 사도보다도 위대한 인물입니다.

사도행전에 다른 사도들의 활약상은 나오지 않는데

7집사 중의 하나였던 빌립의 사역을 사도행전 8장 전체에 걸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 복음을 전한 사람이고,

단독으로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사마리아를 복음화한 인물이에요.

최초로 이방인에게 세례를 준 사람이 빌립입니다.

 

최초의 이방인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고넬료가 아니고 에티오피아 사람입니다.

그 사람에게 세례 준 사람이 빌립입니다.

 

빌립은 그냥 복음만을 전하는 게 아니고, 그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현저하게 나타났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빌립이 행하는 이적을 보고 놀랐다고 했고,

에티오피아 사람을 만나게 된 것도 우연히 만난 게 아니고

천사가 빌립에게 나타나서 그를 인도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빌립은 영력이 강한 사람이에요.

빌립에게 딸 넷이 있는데 딸 넷이 다 예언을 한다고 했어요.

그 아버지에 그 딸이에요. 아버지의 영력이 딸들에게도 전달된 것입니다.

보통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사도행전 8장을 ‘빌립의 장’이라고 말할 만큼

동분서주하면서 일을 하다가

8:40절에 빌립이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라는 구절로 더 이상 빌립에 대한 언급이 없다가

본문 21장에 다시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8:40절과 오늘 본문 21:8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지명이 있는데

가이사랴 라는 동네 이름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빌립이 전에는 동분서주하며 복음을 전하다가

가이사랴에 이르러서 정착하고, 결혼을 하고, 딸 넷을 낳고,

딸 넷을 키웠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가이사랴에 왔을 때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고,

빌립에게 딸 넷이 있으니 다 예언하는 자라고 성경이 기록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아무리 빌립이 종횡무진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더라도 그도 장가를 가야되고,

정착을 해야 되고, 자식을 낳아야 되고, 키워야 되고,

모르긴 몰라도 돈도 벌어야 됩니다. 빌립이라고 예외가 아니에요.

 

그리고 이것은 오히려 빌립을 보호하는데 필요했을 수 있습니다.

빌립이 탈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의 과중한 업무와 특출한 은사로 인하여 교만해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가 정착할 필요가 있고,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 보호를 할 필요가 있고,

평범한 삶을 살아야 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빌립의 은사와 소명은 남아서 여전히 그를 뭐라고 불렀습니까?

전도자 - evangelist 라고 불렀고

그 딸 넷 모두가 아버지의 은사를 이어받아서 예언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할 수 있는가요?

 

어떤 특별한 활약을 해야 되느냐?

사람이 활약을 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돈도 벌어야 되고, 자식 교육도 시켜야 되고,

소도 키워야 되고, 부모님 봉양도 해야 되고, 장도 봐야 되고, 빨래도 해야 되고,

이 모든 것을 면할 수 없습니다.

 

만일 누가 나는 하나님의 나라만을 추구하겠다는 명분으로, 이 모든 것을 안 한다고,

더 하나님 나라를 추구한다는 보장이 없고, 그저 일상을 외면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빌립이 한때 종횡무진 활약할 때도 있었지만

자기를 닮은 딸 넷을 키우는 것도 하나님 나라의 일이고,

바울이 가이사랴에 왔을 때 자기 집에 영접한 것도.. 하나님 나라의 일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조용히 남편을 내조하고 자식을 키운 아내가 있는데

그 아내도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만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게 아니에요.

남자만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게 아니에요.

 

성직자만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진 특별한 일만 요구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고, 사람을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라고 하셨고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곧 큰일에도 충성되다’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은 큰일도 맡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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