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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1 / 허운석

LNCK 2014. 6. 24. 11:13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1          고후13:4~5, 벧전2:21         설교스크랩, 녹취

   

고린도후서 13장 4절로 5절까지 읽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십자가는.. 대속 뿐만 아니라,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참으로 여러분들 이해가 가십니까?

 

예수님이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것을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여러분들은 이해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약하시다니요?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저는 도대체 이 말씀이, 참 이해가 안 되었었습니다.

 

아니 예수님이 약해서 돌아가셨다니.. 이게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정말 이해가 안 되었었습니다.

 

수 년이 지나서 지금에 와서 조금 제가 이해를 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그 예수님의 일생을 한 번 돌아봅시다.

예수님이 당신의 영적인 권세를 자신을 위해서 쓰신 적이 있으십니까? 한 번도 없으세요.

 

왜냐하면 철저하게 100% 인간으로서 사시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길의 자취를 따라오게 하시려고요. 벧전2:21 ↓

 

그의 자녀들이 거쳐 가야 될 그런 생이 있잖아요.

그래서 주님은, 아주 십자가에 미련함으로 어리석음으로 사셨다는 거예요.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심으로써, 우리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실 뿐만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십자가의 삶을,

그 공생애 동안, 우리에게 모델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일생은 나의 일생이 돼야 해요.

예수님처럼 똑같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이 땅에서 성령의 인격적 열매를 맺지 못하면 나는 가짜에요. 여러분들이 그것을 아셔야 되요.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생명으로 생명을 바꾸는 거예요.

나같이 하찮은 이 생명이, 하늘에 속한 생명으로 바뀌어지는 것이잖아요.

 

이게 보통 일이겠어요?

여러분들 어떻게 생각해요. 너무 놀라워서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하나님이 우릴 향해서 베푸신 이 놀라운 역사↓를 우리는 알 수 없어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특별히 십자가의 어리석은, 미련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이 구원을, 사역을 이루셨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도 십자가의 어리석음과 미련함으로,

이 일을 성취해야 된다는 이야기에요.

이것은 어마어마한 비밀이에요.

 

벧전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바울사도께서 특별히 당신께서 체험하시고, 그런 것을 많이 열어놓으셨죠.

고후12:10절에 보면 ‘내가 약할 그때에 그가 강하니라’

 

제가 처음부터 당장 이 진리를 깨달은 것은 아닙니다.

이 십자가의 도를 조금이나마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요..

그런 시행착오의 과정을, 잠시 여러분과 나눌까 합니다.

 

 

◑지리산 산골에서 깨달은 진리

 

▶아마존에 선교하러 가기 전에, 앞서 저희 부부는 지리산 자락 농촌에서 6년 동안 목회했어요.

 

신혼 초에 남편이 40일 금식기도 하면서,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렸는데,

그 40일이 끝날 즈음, 하나님께 받은 응답은,

‘목회자 없는 시골 교회로 가라. 갈릴리 나사렛의 가난한 삶을 배워라.’

이것이 40일 금식 기도한 응답이었습니다.

 

내심 큰 도시에서, 큰 목회를 하라는 응답을 받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정 반대로, 가장 깊은 오지로 들어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남편이 40일 금식 후에 능력 받아서, 큰 부흥사가 되면

내가 밥이나 편하게 먹고 살아야지..’ 그런 궁리나 하고 있었죠.

 

당시 저희는, 세상에 얼마나 가난하게 살았는지요.

그런데 옆에 보니까, 남편 목사님들이 설교를 잘 하시면,

그 사모님들을 보니까, 명품에다가, 너무 잘 먹고 잘 사는 거예요.

그것을 보면서 내 속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던지.. 얼마나 속이 아팠겠어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예수님을 잘 믿고도, 우리 신자들이 더 시험에 들어요.

왜 시험에 빠지는가 하면

부자 형제/자매의 집에 가면, 저들은 믿음도 없는데 왜 저렇게 잘 사나?

그러면서 막 시험이 드는 거예요.

 

우리는 어떻게든, 내가 폼을 좀 잡고, 나를 조금 내세워볼까.. 하는 마음이 다 있어요.

괜찮게 나가는 사람들처럼, 우리도 이것, 저것, 사고 싶은 게 얼마나 많아요. 인간본능이지요.

 

그런데 예수 믿고도, 부자 못된 사람도, 현실적으로 많아요.

그 못 가진 것에 대한 그 원한, 상처, 슬픔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자기 속으로 스스로 찌르고 욕하는데, 외부에서 비웃고 조롱하면, 참 더 암담해요.

 

▶저도 신혼 초에,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이죠. 시험에 든 것입니다.

 

저희 남편 목사님이, 전도사님 시절 때, 그렇게 3년을 저를 따라다녀서 결국 결혼했어요.

제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고, 생긴 것도 마음에 안 들고 그랬어요.

 

그 당시 남편은 샌님에다가, 그런 남자가 세상에 목숨 걸고 저를 따라다녔어요.

세상에 주님이 제게 말씀만 안 주셨으면, 저는 결혼을 안 했을 거예요.

 

그렇게 결혼을 하고 보니까, 우리 목사님은 왕 바리새인이에요.

술 먹고 담배피우는 사람은, 인간으로 취급도 안 해요. 성격이 청렴결백 형이에요.

너무나 샌님에다가, 선비에다가..

 

그런 분과 결혼 했는데, 밥벌이할 생각도 안 해요.

가방만 메고 신학교만 가요.

나는 양자(신랑) 하나 얻어서 키워야 하는 입장이 되었어요, 세상에!

 

그러니 세상에, 그런 사람이랑 살려고 하니, 내가 제대로 살 수 있겠어요?

숨 쉬는 그 자체가 죽음이지.. 그 사람 옆에만 있으면, 내가 송장이 된것 같아요.

죽음의 기운이 내게 덧입혀져서..

그래서 혼자 얼마나 기도를 하면서 버텼겠어요.

 

게다가 남편이, 보니까 너무 기도를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제 이혼하자’고 으름장을 놨습니다.

이혼을 안 하려면, 금식기도해서 능력이라도 받아 오라고! 남편에게 닦달했어요.

 

다들 기도하면 능력 받는다고 하잖아요. 이제는 그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남편이 금식기도해서 능력을 받아야, 제대로 목회도 하고,

밥벌이도 해서, 가족도 돌봐야 될 것 아닙니까!

 

▶그래서 20일 금식기도 하라고 했더니, 보니까 40일 금식을 하고 돌아왔어요.

 

그 결과, 40일 금식기도 마칠 즈음, ‘갈릴리로 가라’는 응답을 받아서,

농촌으로 찾아갔지 뭐예요. 대도시 큰 교회가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였지요.

 

그 때 지리산 농촌으로 들어갈 때,

제가 그때 신학교 나와서 여전도사를 하고 있었어요.

50명 정도 모이는 중고등부 전도사로 제가 섬기고 있었는데

조금 지나서 200명이 넘었어요.

그러면서 그들 중에서 목사가 된 사람이 여럿이 생기고, 아주 굉장히 뜨거웠어요.

 

그런데 서울에서의 그 사역 다 접고, 남편 따라 지리산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니..

마음이 영 시원하지는 않았죠.

 

그러면서 농촌에 내려갔어요. 그 때 주님이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네가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

 

그렇게 부흥이 있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농촌 마을에, 열 세 집 밖에 없는 그 곳에, 그 깊은 골짜기에서

아마존에 선교사로 가기까지 6년을 있었어요.

 

▶그 때 삶을, 제가 지금 회상하면, 너무나 끔찍한 거예요. 그 세월이.

내 심령 속에서 내가 주님을 속이고 싶은데, 도저히 숨겨지지 않는 것이에요.

(내 자아가 다 드러나서,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뜻)

 

그래서 금식을 더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골다공증에 걸려서, 뼈 골밀도가 60%밖에 없었어요.

 

그 정도로 정말 주님을 배반하고 싶지 않는 그 마음.

정말 순종하게 살고 싶은 그 마음이 있었는데,

현실은 자꾸 내 자아가 드러나서, 다투고 그러니까,

철야하고 금식 하면서, 더 그렇게 몸부림을 쳤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남편하고 신경질만 내면 (다투면)

그 철야/ 금식의 은혜가 어디로 갔는지.. 은혜가 소멸되는 그 고통스러움.

 

자살하고 싶고 우울증에 빠지고 ‘도대체 어디가 길이냐, 어디로 가야 하느냐?’

이 고통은 여러분들도 그렇죠?

 

그런 고민들이 제게 얼마나 많았는지요.

‘차라리 일찍 저를 거두어가 주시면 내가 죄나 안 짓고 살 텐데.’ 너무 고통 했어요.

 

▶그 때에 제 ‘자아’를, 하나님이 제게 보여주시는데

기도하는 중에 말이죠.

내 자아가, 이 땅에 발을 딛고, 하나님의 보좌 까지 서 있더라고요.

그렇게 커다란 제 자아가 버티고 서 있는 거예요.

 

그런데 나는 이 자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모르잖아요.

도대체 어떻게 이 자아를 처리해서, 주님과 연합할 수 있겠는가..

제가 절망했어요. 너무 고민했어요.

 

그러면서 농촌 교회에 가서 있으면서, 제가 얼마나 서울에서 헛물 킨 삶을 살았는가.

예수님 처음에 믿었던 그 순수한 사랑, 정말 주님 밖에 몰랐던 깨끗한 마음이,

서울에서 목회하다가, 자꾸 부자 사역자들을 쳐다보면서 시험에 든 것이지요. 비교도 되고요.

 

제가 젊었을 때, 저는 금식/철야를 많이 해서 은사가 많았어요.

그래서 서울의 우리 교회에도 당시에 은사자들이 그렇게 많았어요.

그때는 얼마나 정갈하게 주님의 앞에서 내 영혼이 서있었던지.

결혼 전에, 혼자 살 때는.. 뭐 그렇게 고상하게 살 수 있었던 거지요.

 

그렇지만 제가 이제 결혼하고 나서 엉망이 되어지는 거죠.

왜냐하면 가정에서, 자꾸 제 자아/제 성질이 나타나면서.. 제 스스로 괴로운 겁니다.

 

그래서 제가 결혼한 것에 대해서, 당시에 너무 후회했었어요.

견딜 수 없는 그 고통이,

그리고 그 결혼 전 시절의 은혜가 다 사라지고, 엉망이 되었어요.

 

이제 결혼을 해서 그런가 해서.. 너무 마음고생을 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저를 결혼을 시켰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제 자아가 얼마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제 속에 이 강한 자아를 처리하지 않으면

나는 결코 하나님과 연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결혼을 시키신 거예요. (제 예를 들었지만,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래서 나라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완전히 뒤집어엎어서 보게 하시려고.

저를 결혼을 시키신 거지요.

 

만약 제가 남편과 결혼 안 했으면,

진짜 아주 저는 독신 성녀처럼 굉장히 그렇게만 살았을 거예요.

늘 기도하고 금식하고, 혼자 신령한 생활만 하면 되니까요. 부딪히지 않고요.

 

그러나 용사는 될 수 없었을 거예요.

하나님의 군사와 용사로서 전쟁 할 줄 모르는..

 

(물론 독신이 열등하고, 결혼이 우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 케이스는, 반드시 결혼을 통해서 성화되었어야 했다는 뜻입니다.)

 

▶아가서에 그 놀라운 말씀이 있잖아요.

아가서 6:10절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아멘.

 

그 마음이, 그 영혼이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은 자,

바로 우리들이잖아요. 신부된 우리들이잖아요.

 

그 쓰리고도 아픈 모든 시험을 거쳐서, 아침 빛 같고, 달 같고, 해 같이 된 이 여인.

믿음의 정절을 지키고, 어떠한 곤고와 핍박과 어려움에도 주님을 배반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신실한 마음으로 바쳤던 그 여인들의 모습이.. 제 비전 중 하나였어요.

 

여러분들은 이 여인(그리스도의 신부)들이 되기 위해서 사시는 것 아니에요?

그런데 그건 예수 믿었다고, 하루아침에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랜 성숙과 십자가에서 자아가 죽은 기간 후에..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금만 시험에 들면, 예수님 언제 봤냐는 식으로 원망하잖아요.

그런 삶을 너무나 많이 살잖아요.

 

저는 여러분들보다 더 많이 했어요.

그래서 조금 더 겸손해졌어요.

 

남편이 40일 금식하고, ‘갈릴리로 가라’는 응답은, 참 응답이었어요.

그때 당시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대도시가 아니었어요.

갈릴리 시골 마을에서, 더 성화되고 성숙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내가 올바른 사람이라고 그런 것이 아니라, 더 못 돼 먹어서,

죄인 중에 괴수라는 것을 내가 알아서, 그래도 조금 더 겸손해진 것이에요.

그 악랄한 내 모습을, 내가 봤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십자가(내 자아의 죽음)를, 우리의 삶 가운데에 적용하느냐?

내가 결혼을 해서, 나 라는 인간을 봤어요. (여러분도 가정에서 적용해 보세요)

 

내가 얼마나 남편을 미워하고, 내 마음에 맞지 않으니까,

나를 아프게 한다고 무조건 남편을 미워하는 나의 원초적인 악랄함,

 

이 악함을 터트려 내시는 데는, 남편이 제격이었어요.

정말 내 속을 아주 세포까지 뒤집어 놓아요.

 

내가 얼마나 악랄한 인간인지 아주 세포 구석, 구석마다 들추어 주니까..

제가 십자가 보혈로 나아와 회개를 하게 되죠.

그 전에는, 제가 제 실상/ 진면목을 몰랐다니까요!

 

그런데 나도 남편에게, 그 역할을 하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리 봐도 내 사랑, 저리 봐도 내 사랑, 내 주인이시여.

이것을 누가 만들어 놓았어요? 우리 예수님이.

 

나 같이 세상에 못 되 처먹은 이 인간을 변화시키신 이 하나님의 능력,

이것만 보아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은 분명한 거예요.

 

그래서 세상에 얼마나 깊은 절망을

나를 바라보면서, 제가 스스로 했겠어요.

거기서 십자가로 나아가게 되는 거죠.

 

 

◑적용

 

▶여러분들은 그러실 거예요.

아휴 선교사님처럼 영적으로 깊으려면, 그렇게 세게 아파야 하는가요?

 

그러지 않아도 되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했잖아요.

빨리빨리 자기 십자가를 지면,

나처럼 삥 둘러가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매 순간마다

그 십자가로 인해서 예수님과 친밀하게 살 수 있는 거예요.

시행착오의 시간을 단축하는 거지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너무 율법주의의 독을 많이 마셔서

‘내가 인내 해야지, 다시는 내가 죄 짓지 말아야지’

그런 것이 인이 박혀 있잖아요.

 

그게 이제 자기 의에요. 자기 의가 성장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대적하는 거예요.

 

담배 한 번 안 피웠다고, 술 한 번 안 마셨다고, 싸움 조금 안 했다고.

자기 의를 내세워서, 주님이 주신 의를 박살을 내놓고

주님의 십자가를 다 무효화 시켜버리는 거예요.

 

얼마나 우리가 조금 착한 일 한 것, 조금 해 놓은 선, 이것을 가지고

우리가 주님의 의를 얼마나 대적하고 있는지 몰라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폭로시키세요.

이것은 진짜 여러분들이 너무 잘 귀담아 들으셔야 되요.

 

하나님께서 문제를 보내주시고, 사건을 보내주실 때,

우리는 부인합니다.

내가 안 보고, 안 들으려고 합니다. 현실을 회피해 버리려 합니다.

아니면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려 합니다. 말이 안 되는 소리에요.

 

여러분들이 어떠한 사건이나 문제가 올 때, 내 자신이 드러나잖아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본능적으로 이렇게 반응합니다.

 

얼른 무화과로 치마를 만들어서 수치를 가리려 했던 아담과 하와처럼,

안 들키려고,

사람도 속이고, 주님도 속이려고 하잖아요.

 

주님은, 십자가 앞에서, 진심어린 회개로 나를 인도하시는데,

우리는 가급적 그 길을 회피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어떻게 해요?

그냥 신경질이 나서, 자기 속이 뒤집어지면서, 도리어 역공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반대로 낙심으로 빠지는 사람도 있어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역공하실래요, 낙심할래요?

 

이제 여기에서 갈라지는 거예요.

-회개와 자유로 가는 길.

-회피, 부인, 역공, 낙심.. 그런데 이건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길입니다.

 

▶율법적 의인은 어떻게 하죠? 의인들은

내가 또 그랬구나, 그러니까 또 다시는 안 해야지. 내가 참아야지.. 이건 자기 의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치마를 만들어서 입어서 자기 수치를 가리려고. 그렇게 가버려요.

그게 여러분들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의 목적은 뭐냐 하면

여러분들의 악함을 들춰내기 위해서 문제를 주시는 거예요. 이것 꼭 아셔야 되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내 속에 ‘악마’와 ‘옛 아담’이 들어 있는 것을

확실하게 내가 봐야

십자가 복음을, 구세주를 간절히 바라 보게 되요,

나를 구원해 주실 분은, 예수님밖에 없으시니까요.

 

이것(내 타락성)을 보지 않고는 알 수 없어요.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할 수 없어요.

 

꼭 아셔야 되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제 막 짜증나고 신경질이 났을 때

여러분들이 고백하셔야 돼요. ‘주님, 감취었던 내 본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이제 하나님이 어떤 문제를 주셔서..

그런데 괴롭긴 하지만.. 참을 만 해요.

힘들지만.. 버틸 만 해요.

 

또한 성경말씀에 ‘인내하라’고 했으니까, 꼭 참아요.

그래서 더 크게 인내를 해요.

그러면 하나님이 조금 더 큰 문제를 보내세요.

 

그래서 이게 (자기 죄의 본성이) 탄로 나야 되는데 얼마나 지독한지,

그래서 더 강퍅하게 세져요. 그래서 더 인내해요.

주님이 그러면 더 강력한 문제를 보내시죠.

 

그러니까 이제는 철야까지 해요. 정열을 다 해서 막.

주님이 얼마나 애가 타시겠어요.

‘얘야, 제발, 나는 주님 이 죄를 이길 수 없고, 주님 나는 이런 인간입니다.’

하고 빨리 고백하고 항복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게 항복하면 좋을 것을!

언제 자기가 그렇게 의로웠다고,

 

세상에 제가 썩은 동태보다 못한데

우리가 주님이 조금 변화시켜서 쓸만하시면, 왜 주님이 죽으셨겠어요.

 

그것을 보라고, 네가 얼마나 썩어 문드러졌는지,

너는 내가 장사지내지 않으면, 도대체 너는 새로워질 수 없는,

 

네가 죽고, 네 속에서 예수님이 드러나지 않으면

너는 도대체 변화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문제를 반복해서 보내시는 거예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제는 남편하고 헤어져서 기도원에 가요.

이까짓 정도야, 기도원에 가서

금식을 빡세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 남편이 짜증 한 번 내면,

죽지 못한 자기 옛사람의 혈기가, 그대로 와르르 쏟아져 나오죠. 도로아미타불.

이 허망함, 이 고통스러움, 이 절망을 반복했던 게 우리잖아요.

 

▶그런데도 우리는 도통 알지 못해요.

율법에 얼마나 지독한 율법(자기 의)에 우리가 사로잡혔나 보세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완전히 쫙 뻗도록, 새로운 무기(환란)를 만드셔서

내 인생에 던져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이제 항복해 가지고,

‘주님, 진짜 나는 이렇게 약한 죄인입니다.

나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고, 사랑하는 남편/아내와, 내 몸에서 난 자식도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존재였군요.’

 

‘세상에 하나님 나는 너무 강력한 악한 죄인이고

진짜 제 속에 있는 것이라고는 죄밖에 없습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이렇게 상한 심령이 될 때에, 자기 의가 깨어질 때에,

그렇게 주님이 기뻐하시는 거예요.

주님이 은혜로, 나를 변화시켜 주시고, 나를 구원해 주시는 것이에요.

 

그것 하나 깨달았다고 주님이 춤을 추시는 거예요.

그것 하나 깨닫자고, 우리가 인생을 그렇게 고통스럽게 사는 거예요.

그 엄청난 고통의 대가를, 우리가 지불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제 죄 짓고 탄로가 나면 어떻게 해야 되요?

다시는 죄 짓지 않는다고 결심하고, 철야 금식하고 그럴 거예요?

‘주님, 제가 다 드러났습니다.

주여, 나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런 나를 보여주셔서(드러나게 해 주셔서)’

 

이 싸움을 강렬하게 해 나가야 되요.

 

그러는 순간에,

내가 내 죄와 악독을 고백하는 것만큼

이 더러운 것이 내 속에서 떠나가는 것만큼 (이게 회개이지요)

 

주님은 내 영혼의 땅을 점령하시는 것이잖아요. 여호수아처럼, 마5:5참조.

그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의 생명이 충만해지면, 이제는 누가 싸움을 걸어와도 싸움이 안 되어요.

예수님이 싸우시는 분이에요? 용서하시는 분이잖아요.

 

내가 용서를 하려고 안 하려고 아무리 그래도, 용서가 되죠.

이렇게 주님의 생명이 내 안에 나를 점령하시면

내 노력 없이도, 그냥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 주님이 주신 새 생명이에요.

 

주님, 오늘도 내 꼴이 드러났습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보혈이 이미 씻기셨사오니 저의 죽을 죄를 다 용서해주셨으니

너무 감사합니다. 이것을 주장하는 것이 믿음이잖아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거예요. 할렐루야.

 

이 말씀의 뜻은,

우리가 무슨 큰 집 그림을 그려 놓고, 비전을 갖게 하고, 그래서 꿈을 꾸고,

그러면 그것이 실상이 될 것이다.. 이것은 속임수에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

 

우리가 바라고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뭐예요.

주님이 용서를 해주셨다고 하면.. 그것이 실상이에요.

내가 죽음에서 너희를 부활시켰다고 하면.. 예, 그것이 저희의 증거에요.

 

그런데 그것을 말씀을 변절시켜서

우리가 출세하고 성공하는데

마귀가 막 끌어다가 이용했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십자가에서 자아가 깨어지고, 회개하고서

성화의 과정을 거친 성도에게

이제 어떠한 고난이나 문제가, 올 때에 무엇이 드러나요?

 

그렇지 못한 신자들은, 문제 앞에서, 자기 죄성이 드러나지만

이제 성숙한 성도들은, 자기 죄성보다, 예수님이 더 많이 드러나지는 것이죠.

 

화난, 삶의 역경, 문제가 있으면 있을수록 나오는 것은, 예수님 밖에 없는 거예요.

 

 

‘도대체 그 비결이 뭘까. 아니 저 선교사는 암에 걸려서

아니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기쁜거야?

왜 울상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이야. 그게 뭘까?’

 

이게 전도에요.

나한테는 문제가 오면 올수록, 예수님이 더 크게 나타나는 거예요.

 

이런 놀랄 일이 어디 있겠어요.

이게 복음이잖아요.

 

우리에게 뭔가 물질이 있어서 웃고

뭐가 잘 되어서 기쁨이 있다면.. 그게 복음이겠어요?

그게 없어지면 즐긴 것만큼 아프고 고통당할 텐데요..

 

 

▶아이들이 내 속을 다 뒤집어 놓으면,

나 된 것을 보여 준 것인데,

그러면 아이들한테 사죄를 하고 살아야 할 것 아니에요.

 

‘엄마가 이 정도 밖에 안 되니까 이해하고 살아라’고.

‘너가 못난 엄마를 위해 기도 좀 해주라’고.

이렇게 살면 좋잖아요.

 

그런데 이 자식이 말 안 듣고 그러면

내가 시험 들어서, 자녀에게 막 욕을 하고, 혼을 내잖아요.

 

완전히 그냥 아이들을, 인생의 의욕도 없게 만들어버리잖아요.

그래서 예수님 믿는 자녀들이 대체적으로 보면 의욕이 없어요. 그리고 창조성이 없어요.

 

왜, 율법적인 부모가 시키는 대로만 해서, 그 입만 보고 있어요.

그래서 사회에 나가서 부적응자가 되고 창조성이 없어요. 부모가 율법으로 죽여 버렸어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아주 대왕 폭군이잖아요.

집에서 부모가 너무 거세면, 자녀들이 사회에 나와서 다 부적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냥 바로 바로왕이 나타나신 것처럼, 아이들이 각기 다 제 방으로 들어가잖아요.

‘어떻게 하면 날벼락을 맞지 않을까.’

세상에 우리가 이 짓을 하고 살았어요.

 

그게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고!

진짜 이 일곱 귀신 들린, 그게 바로 나였잖아요.

 

내 앞에서 자녀들이 평화를 누립니까? 뭘 느껴요. 공포를 느끼잖아요.

그 공포를 느끼는 마음이 생기잖아요. 그러면 내가 마귀잖아요.

 

그러니 그 가정이 아주 망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제 정신이 돌아오면, 여러분이 자녀들 앞에서 용서를 구하게 되요.

 

내가 핍박한 게 얼마고, 그들의 생명을 얼마나 자지러지게 했고,

얼마나 그들의 생명을 찢었는지. 세상에 이 악랄함.

그 율법이라고 하는 이름 아래에서.

우리가 저지른 이 횡포는 상상을 초월해요. 악마적이에요. 여러분 인정합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자꾸 문제를 일으켜서

내 꼴을 보게 해서 입을 다물게 하시려고.

 

그런 너였다. 그러나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래서 내 생명을 너에게 주려고 한다.

네가 싫어하는 것을 이제 멀리 떠나게 해주고

내가 너를, 너와 함께 공의로 살게 하려고 한다.

 

매일 같이 우리를 심판하시는 주님이세요.

판단을 받고 책망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정결함으로 나아가는 것이잖아요.

책망받는 것 마다 빛으로 나타난다.. 엡5:13 얼마나 감사한 말씀이세요.

 

▶예수님이 죽은 다음에 삼 일 만에 부활했잖아요. 그 기간이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도 거기에 참으면 부활의 날이 밝아오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문제를 주실 때

여러분들이 실망해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데, 곧바로 주님의 생명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심었을 때, 그 씨앗이 땅 속에서, 그 깊은 어두움 속에서 껍질이 벗겨져서

그 어둠의 습한 고통을 통해, 결국 옛 생명을 벗겨내는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께서 주님께서 징계하시고 어려움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문제가 풀리지 않는가?’

이것은 바로 내 껍질을 벗기고 있는 시간입니다.

얼마만큼 나는 새로운 생명으로 나타날 것인가. 이 소망스러움.

이게 우리의 믿음이잖아요. 얼마나 멋져요. 인내로 기다리세요.

 

글쎄 이 생명이 이제 그 우리가 씨앗이 어둠 속에서 갈라지잖아요.

그러면 그 틈새로 새싹이 나와요. 그게 뭐겠어요.

우리 옛 생명이 쪼개지는 것이잖아요.

 

어두움 속에서, 습한 곳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주신 이 고통,

이 아픔이 결국에 나를 분해시키고 있는 거예요.

 

어린 새싹도 태양 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흙을 뚫고 나오기 위해서, 껍질과, 또한 흙과 박치기를 1만 번을 시도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오늘 실패했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오늘도 드러내진 내 모습을 가지고, 새싹처럼, 주님의 제단 앞에 올려놓는 거예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뭐예요? 상한 심령이잖아요.

그래서 그것을 제단 앞에 올려놓고, 주님, 주님께서 고쳐주신다고 하셨으니까

고백하는 것마다 용서해주시고, 주님께서 새롭게 해주신다고 하셨으니까

주님 믿습니다. 주님 이기신 생명으로 나를 주장하실 줄 나는 믿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기다리면

어느 샌가 나는 상상할 수 없는 내 벗겨진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거예요...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