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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 / 잭 푸닌

LNCK 2014. 8. 6. 11:52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           창1:26, 요일2:6          출처, 영어 편역


Living As Jesus Lived by Zec Poonen                                   *잭 푸닌 설교 모음 보기     中文

1장. God's Purpose For Man

 

<지 킴의 녹음>

 

<같은 내용을 신밀라 녹음>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 하나님의 형상을 본 받게!

 

우리는, 내 신앙생활의 방향을, 올바로 잡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심부름을 시킬 종이 필요해서가 물론 아닙니다.

왜냐하면 일을 시킬 목적이라면, 이미 천천만만의 천사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나타내 보여줄 어떤 존재가 필요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진리를 놓친다면, 종종 어떤 실수를 범하게 되는가 하면,

뭔가 하나님을 위해 빡세게 일하고, 봉사하는 것이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근본적 목적이라고.. 곁길로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무슨 일을 시킬 목적으로, 사람을 창조하지 않으셨다니까요.

그런데도 신자들은, 종종 이런 곁길로 빠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근본적인 목적을 잊어버리고,

뭔가 자꾸 봉사를 빡세게 하면, 하나님이 자기를 기뻐하시리라고.. 그렇게 착각합니다.

 

봉사를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고요, 많이 해야죠.

그러나 그보다 그 중요한, 근본 목적을 망각한 봉사는.. 별로 쓸데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실 때

“우리가 사람을, 우리의 형상과 우리의 모양대로 만들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창1:26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ccording to our likeness"

 

그런데 아담이 범죄할 것도, 미리 아심을 따라 다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이 창조되기도 전에,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그의 죽음을 통해서

사람을, 타락한 그 죄의 구덩이로부터 구원해 내실 섭리를.. 다 작정하셨습니다.

 

이렇게 창세 전에 미리 작정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사역,

그 구원 사역의 주요 목적도,

원래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죄로 인해 타락한 ‘하나님의 형상’(신자)들을,

다시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창세기와 아울러, 로마서에도

그 사실을 재차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8:28~29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을 구속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요?

아담의 범죄로 인해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도덕적/성품적인 영역입니다.

다시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창1:26절↑의 회복입니다.

 

구원은 - 하나님 형상의 회복

 

우리의 구원은, 믿음을 통해서 주어집니다.

그런데 오해하기 쉬운 것은, ‘믿음’이란 것을

그저 ‘지식적 믿음’, ‘교리적 믿음’으로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그리스도의 형상을 내 속에 회복’하는데 까지 눈이 열려야,

그게 바로 진정 성령의 감화로, 여러분이 진정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구원’은 자기 결단도 아니요, 뭘 몰랐던 것을 배워서 얻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신비한 역사입니다. 말씀을 지식으로 믿는 게 아니라,

말씀을 통해, 내 내면에 성령의 감화 감동이 일어나는 초자연적 역사입니다.

 

그래서 진정 ‘구원’이 일어나면..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구원의 원래 목적인 ‘하나님의 형상 회복’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구원은.. 대단히 우려스런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번째 아담’이십니다. 즉, 인간의 모델이 되셨습니다.

 

▶두 번째 아담이란, 첫 번째 실패한 아담 대신에,

이제는 성공하는 모델이 되신 것입니다.

 

‘아담’이란 말에 유의하십시오.

우리 인류의 본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신'이 아니라, ‘두 번째 아담’이란 뜻은,

완전한(성숙한, 구원 받은, 형상이 회복된) 인간(아담)으로서,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너희들도 나처럼 살 수 있어!’

 

참고로, 이것은 완벽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성품, 더 성숙되어져 가는 성품을 뜻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신부된 성도에게 뭘 원하시겠습니까?

 

혼수로, 많은 물질 가져오는 것을 원하실까요?

‘부리는 영’들인 천사들이 많은데, 많은 업적을 원하실까요?

 

그런데 만약, 신부의 성품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준비되지 못하면,

그 ‘연합(혼인)’은 결국 파경에 이르고 맙니다. 서로 안 맞으니까요.

아니, 그 전에 ‘혼인잔치’에 초대 받지도 못 합니다.

 

그래서 ‘두 번째 아담’은, 그 아담의 후손인 우리들에게

자신을 따라오도록,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험을 받지 (유혹에 넘어지지) 않으셨습니다.’ 약1:13,

예수님도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지만, 거기에 굴복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마4:1~11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해도, 이단이지만,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해도, 똑같이 이단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가지셨지만,

죄를 짓지 않으시고, 죄의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이것은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신성 Deity을 가지시고,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인성 humanity을 가지시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즉 믿음 생활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서 Deity 경배하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를 두 번째 아담으로서 humanity, 우리가 그 분의 본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3년 공생애를 통해서, 우리에게 삶의 모범과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회복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형상’(구원)이 무엇인지,

직접 몸으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일 뿐만 아니라,

‘우리 앞서 달려가신 분 forerunner’ 이십니다.

 

히6:20 ‘그리로 앞서 가신 forerunner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앞서 달려가신 분’이란,

뒤따라오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해 주시고,

모든 은혜의 수단(기도와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를 일관적으로 어떤 목표를 향해, 인도해 가십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conform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단순히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것이었다면, 만약 그것이 전부였다면,

공생애가 3년 길게, 필요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1주간만으로 충분했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반을 사시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삶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면,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그 많은 계명들을 주실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근본 목적이 ‘하나님 형상의 회복’이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에, 수많은 계명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신약에 대표적 계명은 산상수훈입니다.

하나님 나라(천국)의 삶의 원리인 것입니다.

 

 

◑성령의 사역도, 우리의 성화로 인도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는 것을, 불가능하게 여기고 지레 포기합니다.

쉽지 않은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우리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성령님이, 우리가 성화의 삶을 살도록, 인도해 가십니다.

 

고후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우리가 구원 받은 이후에, 내주하시는 성령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주 예수님의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을 거울처럼 환하게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성품을 본받아 살아가도록, 사역해 가시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그 주권으로,

우리 모든 삶의 정황, 삶의 환경들을, 같은 목적으로 섭리해 가십니다.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 받게 하기 위한 합력하여 선)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8:28~29

 

우리 삶에 벌어지는 모든 사건과 환경들은,

하나님의 섭리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를 빚으시고, 변화시켜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십니다. 즉 구원을 이루어 가십니다.

 

※‘구원’이란 말의 언어적인 뜻은, ‘어떤 위험한 상태(지옥)으로부터 구출’을 뜻합니다.

실제로 헬라어도 그런 뜻입니다. 전쟁/기근/위험 등으로부터 구출(구원)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저 ‘구출’하기만 원하실까요? ‘구출’도 대단한 것이지만, 소극적 뜻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더 적극적/근본적/광의적 표현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구원’이란 말만, 널리 쓰고 있는데요,

대신에

‘하나님의 형상 회복’, ‘그리스도의 신부’, ‘구원을 이루기(완성)’ 등을 자주 쓰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예수 믿어 구원 얻은 사람은,

그에게 성령님이 역사하시게 됩니다.

그 성령님의 역사가, 어떤 목표를 향해 나타납니까?

구원 받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살도록.. 그 목적으로 인도해 가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숙해서, 그리스도의 형상과 모양을 더욱 더 본 받을수록,

우리는 구원의 풍성함/하나님 나라의 복/하나님과 교제의 행복을 더욱 누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며,

이것이 바로 성령충만한 삶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려면

 

인류역사는, 군주나 장군이 아니라, 성자에 의해서 변화되어져 왔다’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어떤 정치적 힘도 아니요, 경제적 힘도 아닙니다.

사실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정권이 바뀌고, 나라가 바뀌어도.. 크게 변한 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자는 달랐습니다.

‘13세기의 성프란시스가, 당시 타락한 중세교회를 구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우리 각자의 가정을 보더라도, 그건 사실입니다.

우리 가정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주님이 주시는 평안, 기쁨, 은혜, 능력이 임하려면,

 

그건 가장의 가부장적 지도력(정치)에 의한 것도 아니요,

부모님의 경제력에 의한 것도, 더더욱 아닙니다.

 

부모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 살 때,

거기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 나라의 평안, 기쁨, 행복,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니라면,

예수님을 본 받은 할아버지나 할머니, 그 중에 한 분만 있어도,

 

정 그것도 안 되면,

이모, 고모, 삼촌 중에라도, 예수님을 본받은 집안 어른이 한 분 계시면,

그 가정은, 반드시 달라집니다. 살벌하지 않습니다. 으르릉 거리며 싸우지 않습니다.

명절 때도 화기애애 합니다. 온 가정에 평안이 깃드는 것입니다.

 

가정을 예로 들었지만,

직장도 마찬가지이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이란, 이 현실 세상 가운데서도 ‘천국/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지옥 같은 삶, 못 죽어서 억지로 사는 삶이 아닙니다.

 

천국은 1백평 아파트에서 산다고 주어지는 것도 아니요,

아버지가 떵떵거리는 권력자라고, 가정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 중에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은 성도’가 섞여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아만의 여종은, ‘여종의 신분’이었지만,

자기 상사를, 하나님의 나라 가운데로 인도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가정/교회/직장의 천국을 원합니다.

그건 평수를 늘이고, 연봉을 인상하는데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것도 필요하지만, 결정적 요인은 아닙니다.

결정적 요인은.. 거기에 ‘하나님의 형상’이 섞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임합니다.

 

오늘 당신은, 당신이 처한 환경 가운데서 구원(하나님의 나라/천국)을 누리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비록 그곳이 감옥이라도요.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처한 환경이 지옥 같다면..

당신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비록 그곳이 호화 빌라 라도요.

 

 

▶마치는 말.

여러분, 천사가 인간에게 수영하는 법을 가르쳐 줄 수는 없습니다.

천사하고, 인간하고는 차원이 다르잖아요.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인간의 삶의 도리를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성정이 똑같은 사람이셨거든요.

 

그래서 고전11: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은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 받으라”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의 삶은

그저 우리 인간의 존경의 대상일 뿐,

그처럼 본받아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푸닌은, 예수님이 굳이 육체로 오신 이유는,

바로 육체된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살 수 있다는

본을 보여주시기 위함이라고 봅니다.

 

제가 늘 자주 인용하는 요일2:6절을, 다시 한 번 인용하겠습니다.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요일2:6

 

우리는, 내 신앙생활의 방향을, 올바로 잡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관련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