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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금광을 캐서, 하나님을 발견하십시오

LNCK 2014. 8. 17. 18:27

 

이웃의 금광을 캐서, 하나님을 발견하십시오            막7:25~30          스크랩 

어느 교회 청년 여름수련회 메시지

 

이대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변해야 됩니다.

그것은 바로 너무나 물질주의적인, 돈 중심적인 이 사회

그리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이 사회,

그리고 생명의 존중보다, 쾌락의 문화가 더 앞서가는 이 사회와 이 세상이

 

정말 모든 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는 그런 사회로,

정말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청년’이라는 말은, 그 변화의 가장 중심이 되는 단어입니다.

 

 

 

어느 사회나, 이러한 저러한 일은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에게 얼마 전에 모든 국민들이 정말로 흔히 얘기하는 대로 멘붕이 왔다고 할 정도로,

 

정말 크고 엄청난 사고가 불행히도 일어났습니다.

 

 

 

우리 사회의 그 사고는, 우리 사회의 여러 부패, 무책임함, 생명에 대한 경시 태도,

 

그 모든 것들을 적나라하게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우리들의 그런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국민이

 

바로 이것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변화되어야 한다고, 우리 모두가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그렇게 바라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철저히 자기 집단의 손익을 계산하는 식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생 동안 자기가 쓰고 싶은 대로 실컷 써도 남을,

 

그러한 재산을 벌어들인 재벌가도, 전 국민을 상대로 상품을 팔 때는,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더 벌까 하고

 

때로는 아주 얄팍한 상술을 쓰기도 하는 그런 세상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정말 뿌리부터 변화가 되어야 하는데, 여기에 새로운 문화가 탄생되어야 하는데,

 

바로 ‘청년’이라는 말은, 바로 이 변화를 이루는 핵심적인 단어가 되는 겁니다.

 

 

 

▶바로 미래의 역사를 꾸려나갈 ‘청년’,

 

그렇다고 해서, 기성세대가 지금 청년들보다 더 악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성세대가 지금의 문화를 만들고, 지금의 문화를 이끌어가고,

 

지금의 문화에서 또 자기의 생존의 그런 길을 갖고 있기 때문에    *먹고 사는데 열중하다 보니

 

기성세대는 이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이 청년이라는 단어는 바로 그런 뜻, 새로운 문화의 가능성을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비록 나이가 많다 하더라도

 

이런 길에 나서는 사람은, 그는 청년입니다.

 

 

 

전혀 변화되어야 될 새로운 문화에 대한, 실제적이고 상징적인 단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류를 거슬러 가야만 합니다.

 

 

 

지금 이 사회는 변화되야 한다는 말씀이고,

 

청년들은 그 첫 번째 주자들입니다. 시대 조류를 거슬러가고,

 

이 조류를 거슬러 곧바로 움직이는 대담성을, 여러분은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조류를 거슬러 가고, 용기 있게 전진합시다.

 

이런 일을 여러분들이 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청년여러분, 여러분은 불의에 특별히 민감하며,

 

공동선 앞에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드는 사람들의 그 부패에 자주 실망합니다.

 

 

 

여러분에게,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저는 반복해서 말씀드립니다.

 

결코 용기를 잃지 말고, 신뢰(믿음)를 잃지 말고

 

여러분 마음속에 희망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십시오.

 

 

 

▶제가 여러분들께 한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여러분들, 하나님을 만나고 싶습니까?’

 

“예” (회중 일동)

 

 

 

‘정말로요?’

 

“예”

 

 

 

그러면 제가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제가 성경을 읽을 때, 그 길이 한 가지 발견됩니다.

 

그 길을 여러분들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한 가지 예를 듭니다. 금이 어떻게 나오는지, 금광에서 원석을 캐내지요.

 

돌을 보면, 그 안에 금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커먼 돌입니다.

 

이 돌을 깨고, 불에다 녹여서 금을 추출합니다. *99.5%는 돌멩이고, 0.5%가 금입니다.

 

 

 

사람도 그와 비슷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 모습 그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싶으면,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그 피부를 뚫고 들어가면,

 

거기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입니다.

 

 

 

엉뚱한 데를 쳐다보지 말고, 내 이웃의 피부를,

 

때로는 나를 거슬러서 나를 화나게 하는

 

때로는 나를 언잖게 하는 그 말의 숲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가면,

 

거기에 하나님을 닮은 그 거룩함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인데,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의 이웃을 보면서, 하나님을 볼 줄 모르면

 

마치 뭐와 똑 같냐 하면,

 

금광에서 커다란 돌을 캐내서 보니까 반짝반짝 하지 않고, 시커멓습니다.

 

‘아 이거 금 아니네..’ 하고 버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바로 우리의 이웃을 우리의 사랑의 불로 녹여버리면,

 

그 안에서는 하나님을 닮은 금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의 숙제를 주셨을 뿐이에요.

 

우리에게 마치 금광을 녹이는 불과 같은, 바로 이웃을 녹일만한 사랑이 있으면,

 

사람의 모든 단점이 녹아내릴 때,

 

우리 안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을 닮은 거룩함이, 우리들에게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바

 

이웃에 대한 사랑, 어떤 처지에 있든 모든 사람을 왜 존중해야 되는지..

 

그 사람이 높은 지위에 있든, 낮은 지위에 있든, 부자든, 가난하든,

 

건강하든 불구자든

 

어떤 처지에 있든 그 모든 사람이 존중 받아야 되는 이유는,

 

 

 

그 돌을 깨고 나면,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닮은, 바로 거룩함/하나님의 형상을 모두가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러기에 우리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될 충분한 이유가 있고요.

 

 

 

▶그리고 성경이 가르치는 또 하나의 말씀이

 

사랑을 하는 사람은, 희생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내 안에 먼저 사랑을 가져야만 사랑할 수 있죠.

 

 

 

우리가 갖지 않는 것을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려고 하면,

 

먼저 그 금광의 돌이 깨지고 녹는 것은, 내가 먼저입니다.

 

우리가 모두 사랑해야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여러분들, 이 세상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지요?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사랑하신다고 믿지요?

 

바로 여러분이, 하나님을 닮을 사람이고,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닮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 복음의 힘을 가지고,

 

우리 모든 돌과 같은, 때로는 검은 색의 흙을

 

우리의 사랑으로 전부 녹여내고,

 

 

 

이 세상에 있는 금과 같은 안에 숨겨져 있는 번쩍거리는 금을

 

전부 겉으로 끌어낼 수 있다는..

 

우리가 그 희망의 불꽃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 일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인데,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 모두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힘을 갖고, 사랑의 힘을 믿고, 내가 할 수 있다고 믿고,

 

우리가 함께 하면, 훨씬 더 쉽게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이 세상에 우리의 사랑의 불꽃으로,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일을 이루도록,

 

 

 

이 사회가 이제 여러분들이 앞으로 이 사회의 주역이 될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닮은 그 거룩한 존중을 받는,

 

그런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모두 복음의 큰 기쁨을 안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그런 용기와 믿음을 우리 모두 함께 가집시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 딸들입니다.

 

여러분 모두 서로

 

우리가 가진 사랑으로 이 모든 일을 이루시도록,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만드는 울타리 안에만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한 교단의 울타리 안에만 갇혀 계시지도 않고,

 

한 교파의 담장 안에 갇혀 계시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소심함이 만드는 울타리 안에, 하나님을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

 

종교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하나님은 모두에게 자비로우십니다.

 

 

 

가나안 수로보니게 (이방) 여인의 믿음을 예수님이 칭찬하신 것은,   막7:25~30

 

이 여인은 이스라엘 민족의 배타성과

 

그들에 대한 가나안 사람들의 적대감을 넘어서,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자비를 읽고 그 자비를 간청하였기 때문입니다.

 

 

 

▶복음서가 우리에게 알리는 것은 초기 교회 신앙인들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믿음입니다.

 

 

 

한 민족이 다른 민족에게 가지는 우월감과 미움,

 

하나의 집단이 다른 집단에 대해 가지는 집단적 이기주의,

 

또 우리 각자가 가지는 이기심,

 

이런 것으로 말미암아 찢겨진 우리의 역사이고 우리의 삶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것은 거부하고 미워하면서

 

갈기갈기 찢겨서 살지 않겠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자비로우셔서 주어진 우리의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배워 실천하면서 살도록 창조된 우리의 생명입니다.

 

우리가 만든 인간 차별의 울타리들은 걷어내어야 하고,

 

 

 

우리 가슴 속에 자리 잡은 배타성과 증오심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녹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만드는 울타리 안에만 계시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