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4

3장 거룩하게 살기 / Poonen 中文

LNCK 2014. 8. 14. 12:04

https://www.youtube.com/watch?v=s76vv6p0bsk

 

https://www.youtube.com/watch?v=3mBzWBhwDLI&t=15s

거룩하게 살기      4:15, 26:41      Ch. 3. LIVING IN HOLINESS / Poonen

 

Zac Poonen                                                                中文

 

성령론과 아울러 아래의 성화론역시, 신학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개혁주의적 성화론(사람은 절대 완전할 수 없으며, 믿음으로 성화된다)이 대세입니다.

  

그런데 아래 푸닌의 성화론은, 웨슬리의 성화론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두 측면 다 받아들이면 됩니다. 성경에 두 측면 다 나오니까요.

믿음으로 거룩함을 얻은 성도가(개혁주의), 그 후로 성화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웨슬리). /.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동행한 세 제자들에게, 마음은 원하더라도 육신이 약하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26:41

 

그렇습니다. 가만히 있는다고 성화되지 않습니다.

물론 성령님이 우리를 성화의 길로 인도하시지만, 그 인도에 순종해서

자기도 깨어 기도해야 하고, 죄를 이기려는 결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신 후에,

비로소 십자가를 지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서, 가만히 있어도 성화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죄의 유혹을 이길 때, 그의 <거룩함>이 증명됩니다.

 

하나님은 빛이고 사랑이십니다. 요일1:5, 4:8

그 분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 가운데 거하십니다.’ 딤전6:16

이것은 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도 역시 부르셔서, 거룩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사람의 거룩함은, 오직 유혹을 통해서, 그 유혹을 이길 때 증명되어 집니다 .

 

아담은 원래 죄가 없이 창조되었고, 심지어 선과 악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거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그가 시험(유혹)을 받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것 자체로는 나쁜 게 아닙니다.

그 나무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을 때,

즉 여섯 째날, 그 나무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31

 

왜 선악과를 만드신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느냐 하면,

그것은 아담이 거룩하게 되는 도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 선악과의 시험을 이기는 동안에는요!

 

선악과는.. 신자들이 싫어합니다. 왜 그딴 것을 만들어 두셔가지고.. 이렇게 불평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선악과의 유혹을 승리할 경우,

그것은 아담을 거룩하다고 증명해 주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는,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1:2

 

왜냐하면 시험(유혹을 포함한 포괄적 개념),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예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12:10

 

12: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그래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1:4

즉 거룩하게 되는 것이죠.

 

 

예수님은, 100% 인간으로서, 거룩함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살펴볼 때,

만약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본성적으로 타고나셨다면,

그 분은 우리의 본이 될 수 없습니다. 근본이 아예 다르니까요.

 

그러나 성경은 그 분은 모든 일에 우리와 같이 되셨고2:17

‘우리처럼 유혹을 받으셨지만, 죄는 짓지 않으셨다’고 말씀합니다. 히4:15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히2:17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4:15

 

예수님은, 우리보다 앞서 달려가신 분이십니다. 6:20

선구자로서, 본을 보이시며, 먼저 그 거룩한 삶의 길을 가셨다는 뜻입니다.

 

인간도, 이렇게 거룩하게 살 수 있다는, 길을 닦아놓으신 셈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예수님이 가신 길을, 뒤따라 갈 수 있습니다 .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은, 12:26

인성을 가진 내가 살았던 그 거룩한 길을, 너희도 따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 신자들은, 우리 앞서 달려가신 예수님을

늘 바라보아야 하며, 우리도 인내하며 그렇게 성화의 길을 달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치는 일도 있고, 낙심하는 일도 있지만, 그걸 이기고 달리라는 것입니다. 12:1~4

 

예수님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시험을, 다 참으셨습니다.

모든 면에서 우리와 한결같이시험을 당하셨다고 히4:15절에 분명히 나옵니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용기를 줍니다.

예수님이 무슨 신성을 가지시고, 그런 모든 시험을 이기신 게 아니란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성을 가지시고,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서

그 모든 시험(유혹)을 이기셨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도 예수님처럼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항상 신자에게 이런 생각을 심어줍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다 지키기에 너무 무겁고, 그걸 다 순종하기는 불가능하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그런 생각은, 사탄이 심어준 거짓말이다는 것을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시험에 져서 죄를 짓게 될 때,

변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거룩함과 성화의 삶에 대해좀 더 높은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말씀이 요구하는 바입니다.

그렇게 온전히 순종하며 살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나는 연약해서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어

이런 전제를 가지고 나아가면,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4:15절을 요절로 암송하시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래서 사도 요한도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요일2:6

 

성경은, 예수님을 우리의 모델로 제시합니다.

 

벧전4: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위 구절에서 예수님이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다는 뜻은  ‘Christ has suffered in the flesh’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여러 시험과 유혹을 받아서 괴로우셨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순종할 때 당하는 고난이, 나중에 불순종해서 당하는 징계보다 훨씬 더 쉽습니다.

그리고 순종하고 나면,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광에 참예하는 기쁨도 맛보게 되니까,

죄의 유혹이 왔을 때, 순종하는 것이 백번 낫습니다.

 

모든 죄의 근본적 속성은, 자기 자신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거룩함의 근본적 속성은, 자기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삶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습니다.

 

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대로 심판하노니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6:38, 26:39참조

 

 

성도는, 성령님의 인도가운데,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는데,

보혜사(Helper) 성령님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도 예수님이 하신 일을 똑같이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위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기적 행하는 자로 만드시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기 원하셔서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들 중에 가장 중요한 일 한 가지는,

거룩하게 사시면서, 인간들의 본을 보이신 일입니다.

  

똑같은 인성을 가지신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거룩할 수 있다는

본을 보이시고, 우리도 그 삶을 본받아 살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성령으로 그 삶을 살아내셨고,

오늘 우리도, 성령으로 충만해서, 그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자들이 오순절에, 성령으로 충만케 되었을 때,

그들도 예수님처럼, 전적으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지낼 때, 그들은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일으키며,

나병환자를 깨끗케 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10:8

그러나 아직 죄를 이기는 능력은 받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순절에, 성령으로 충만케 되는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병고치고 귀신 쫓아내는 것도 능력이지만, 더 큰 능력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죄를 이기는 능력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도 똑같이 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4:34

 

이것이 바로, 구약 시대의 성도들이 받지 못한,

신약의 새 언약 가운데 사는 성도들이 얻게 된 놀라운 특권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아버지의 뜻(거룩, 순종)을 행하는 일.. 말입니다.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속죄제로 자신을 드리셔서)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도 역시 죄의 유혹을 극복하고 이기는 길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열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앞에 열어 놓으신 길은 새롭고 산 길로 불립니다.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 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휘장 가운데, 즉 지성소는, 성소 중에서 가장 거룩한 장소요,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시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휘장을 찢으시고, 그 길을 열어놓으셨다는 뜻은,

우리 제자들도, 지성소 안의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예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앞서 그 거룩한 지성소로 들어가셨습니다. 6:20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을 뒤따라, 거기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본을 바라보며, 거룩함의 경주를 달리고 있는 자들입니다. 12:1~2

 

예수님이 이미 휘장을 찢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휘장을 또 찢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예수님을 뒤따라, 이미 열어놓으신 그 길로 가기만 하면 되는데,

 

다시 말하면, 그것은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뒤따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자기 육체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휘장 가운데로, 하나님의 지성소로 들어가는 특권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도, 자기 십자가를 묵묵히 지시는 모습을 통해서,

그 자기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심이, 잘 나타났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예수 죽인 것(십자가)’, 우리 육체로 지고 갈 때,

예수님의 생명이, 그 거룩함의 영광이, 또한 우리 육체에도 투영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도록,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가십니다.

즉 성령님은, 예수님이나, 우리나, 십자가의 길로,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예partake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예하였고, (지성소로 들어갔고)

우리 역시, 그렇게 성화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 P2 ////////////////////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는데,

그 구원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하나님의 거룩하신 divine 성품에, 우리를 참예케 하시는 것입니다.

 

벧후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죄없는 완전한 삶을, 자동적으로 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 가운데서, 온전한 삶을 살려고, 순종하고 달려가야 합니다.

애를 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칭의는 믿음으로 얻었으나, 성화는 자기 순종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점점 성화에 이르러,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자기 양심의 죄에 대해 승리하는, 온전한 삶과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더욱 자세히 살펴봅시다.

 

1. 예수님은 언어생활이 순결하셨습니다.

더러운 말이, 한 번도 예수님의 입술에서 나온 적이 없습니다.

한가한 농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진실을 말씀하셨고요, 한 번도 속이신 일이 없으십니다.

또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느냐.. 는 식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려고 했으나, 사람들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유산 상속 문제.. 이런 사안에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로 영생의 주제, 천국의 주제로 말씀을 가르치셨지,

이 현실에서 요령 있게 사는 삶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입술을 거룩하게 잘 지키셨다는 뜻입니다.

 

2. 예수님의 거룩하심은, 먼저 내면적인 것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거룩의 개념을, 외형적인 것들, 눈에 보이는 것들

즉 음식과 의복과 같은 것들의 거룩(정결법)을 따졌습니다.

 

예수님이 거룩하신 삶을 사셨다고 할 때, 그것은 금욕적이거나, 은둔자적 거룩이 아니셨고,

예수님은 일상의 세상 한 가운데서, 거룩하게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슨 특별한 옷을 입고 다니신 것이 아니고,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셨습니다.

자기 옷으로 거룩을 나타내지 않으셨습니다.

 

음료나 음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7:34

예수님은 먹고 마시는 일로 즐거움을 삼으셨습니다. 딤전6:17

 금욕주의적 거룩이 아니었습니다. 내면적인 거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먹는 일로 즐거워하셨지만, 그러나 식탐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식탐이 있으셨다면, 40일을 금식하신 후에, 돌로 떡을 만들어 잡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경건한 사람들과도 어울리셨지만,

반대로 세상 죄인들과도 부담 없이 어울리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죄성을 닮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내면은, 언제나 거룩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세상 죄인들과 격리된 거룩함을 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3. 예수님의 거룩하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삶 으로부터 나온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지식은, 12살 즈음에 벌써 상당하셨는데,

그것은, 어릴 적부터 열심히 말씀을 암송, 묵상하셨다는 뜻입니다.

 

신학교를 가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예수님이나 모세, 엘리야, 예레미야 등 구약의 선지자들을 보면,

그들은, 말씀을, 하나님으로부터 배우셨습니다. 성령의 감화감동으로 깨달으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신학교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씀을 깨닫는데 있어서는,

먼저는 성령으로 기름부으심을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공부하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그 순종의 삶을 통해서, 말씀의 지식은, 예수님께, 정말 날선 검과 같은 무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의 검으로, 사탄을 대적할 뿐만 아니라 (4, 광야의 시험 때)

예수님께서 가르치실 때, 그 말씀에 큰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가르치는 것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외식과 세속성을 드러내셨습니다.

비록 그들이, 교리적으로 맞았을는지 모르나, 그들에겐 지옥이 예비되어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23:33.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반면에 사두개인들은, 교리적으로 틀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틀린 교리와 성경해석상 오류를 지적해 주셨습니다. 22:23~33

 

4. 예수님은, 설교를 통해 대중의 인기를 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일점일획만 슬쩍 피해가시거나, 완곡하게 해석하셨으면

마찰을 피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말씀을 액면가 그대로 전파함으로 인해서, 얻게 되는 고통과 괴로움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평화와 화합을 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진리를 진리대로, 겁 없이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대적들도 그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진리를 가르친 후에 나타날 결과를 겁내지 않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22:16

 

5. 예수님의 거룩하신 분노

예수님의 거룩하신 삶은, 성전을 청결케 하신 그 열심을 보더라도, 잘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물질적 이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셨을 때,

주님께는 의로운 분노가 일어났고, 그걸 억제하실 수 없어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그들을 다 쫓아내셨습니다.

 

성경은  ‘분을 내더라도, 죄는 짓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4:26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군병들이 채찍질을 할 때도, 꿋꿋이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자기 성격에서 나오는 화를 내신 적은 없습니다.

자기 성격에서 나오는 화를 내는 것은, 죄입니다.

 

그렇게 온유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이 정결하지 못한 것을 보셨을 때, 참지 못하셨습니다.

이 때, 의분을 내어야 할 때, 그 분을 참는 것은, 오히려 죄가 됩니다.

 

예수님이 의분으로 채찍을 휘두르실 때,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행하신 것이지요.

그때 예수님은, 머리로 재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성전에서 채찍을 휘두르면, 사람들이 나를 오해할 거야.

 

사람들은, 내가 자기 성질을 다스리지 못하는, 그런 난봉꾼으로 낙인찍게 될 거야

이렇게 재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삶이 우선이셨지, 사람들의 체면, 얼굴을 봐 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검을 주러 왔노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10:34

 

그래서 필요한 경우, 예수님은 그 을 사용하셨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베이고, 아파할 것도 다 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사람들의 거룩을 위한 것이라면,

‘(말씀의) 을 과감하게 사용하셨습니다.

 

 

거룩하게 사는 삶이, 질서가 있고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우리 인간의 삶 중에 가장 아름답고, 가장 질서가 잡힌 삶이셨습니다.

가장 마음이 평화로우셨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100% 순종/거룩하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우주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별들과 행성들은 한 치의 오차가 없이, 그 질서대로 운행되고 있습니다. 

그 별의 움직임에 따라,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은 0.00001초까지 정확합니다. 그만큼 지구의 공전과 자전의 주기가 정확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행성들의 움직임을 예측하기도 하는데, 정확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행성들이 제 나름대로 움직이지 않고,

창조주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궤도와 시간을 따라,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에 순종하는 그곳에, 완전함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반대로 그 질서에 불순종하면, 거기엔 무질서(카오스)와 흉측함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늘의  별들도 무언 無言으로하나님의 명령이 가장 완전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가 감당하기에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무거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전적으로 순종하신 예수님의 삶도, 그 사실을 명백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예수님의 경건하신 삶은, 현세에 뿐만 아니라 내세까지

가장 득이 되는 삶이었습니다. 딤전4:8

 

경건한 삶보다, 더 행복하고, 더 평화롭고, 더 만족스런 삶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삶이, 따분하고 금욕적이며 고통스런 삶이라고 미혹되어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은, 생명의 샘이라고 말씀합니다. 14:27

그런 삶은, 날마다 생명이, 샘솟듯 새롭게 솟아오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all day long 여호와를 경외하라’ 23:17 라는 말씀을 철저히 순종하셨습니다.

 

천국은 항상 예수님 위에 열려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며 거룩하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종종 나는 아버지를 항상 경외하노라8:49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근본)이니라9:10

라는 말씀을, 자기 삶으로써 실제로 살아내 보여주셨습니다. 거룩한 삶을 사는 자가, 진짜 지식인입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늘 응답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에,

기도가 자동적으로 응답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늘 경외함으로 사셨기 때문에,

그 기도가 들으심을 입었던 것입니다.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5:7

 

예수님은 즐거움의 기름으로, 늘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과 삶에는, 늘 권위가 있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서 자동 그 권위 authority 가 생긴 것이 아니라,

항상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셨기 때문에, 권위적인 분이 되셨습니다. 1:9

 

하나님은, 하나님이 가까이 하실 수 있는 거룩한 사람에게, 의논하시고 사명을 맡기십니다.

그래서 그런 정결한 사람이 영적 권위를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맡았으니까, 하나님이, 거기에 따르는 권위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당시 율법학자와 틀린 점이 바로 권위 authority’에 있었습니다.

둘 다 말씀을 가르치셨지만, 예수님은 권위가 있었고, 율법학자들에겐 그게 없었습니다.

그들은 지식은 조금 있었겠지만, 경건한 삶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죄를 지적하시는 예수님께 대해서, 죽이고 싶을 듯이 미워했습니다. 7:7

그래서 거룩하신 예수님은, 거룩하지 못한 당시 종교지도자들로부터

적대감, 거절, 미움, 비난, 출교, 그리고 죽음까지.. 다 당하셨습니다.

거룩한 삶을 설교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혼자만 거룩한 삶을 사시고, 그것을 설교하지 않으셨다면, 입 다물고 계셨다면,

십자가에 죽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설교를 통해,

그들의 위선과 죄를 지적하시고, 드러내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입을 다물게 할 (죽일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3:19. 그들의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오늘날의 기독교계도, 예수님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처럼은 아니지만, 제자들도 예수님과 비슷한 대접을 받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거룩한 삶의 길을 걸어가면서,

결코 미지근한 기독교 신앙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 을 받으리라. 딤후3:1 

이 핍박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먼저는, 종교계로부터 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르려고 한다면,

먼저 앉아서 그 비용을 계산하고 난 뒤에, 따라야 할 것입니다. 14:28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1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