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갈망이 너무 약한 시대 시73:25, 합3:17~19 14/07/25 설교녹취
◑신앙인의 현대병, 영적 갈망이 없어요!
여러분 시편의 시인들이 이걸 경험했어요. 영적 갈망이 큰 거예요.
그 시인들의 경험들을 보면, ‘주님밖에 사모할 자가 없습니다.’
이런 고백들이 나오는 거예요.
시편 73:25절에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오.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자가없습니다.’
기가 막힌 고백이에요.
렘29:13절에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그랬어요.
오늘 우리는 이 시대에 특별히 <영적인 게으름> 이것과 일평생 싸워야 되요.
기도도 마찬가지에요. 십 분밖에 하지 않는 신앙과
한 시간 두 시간하고 가는 것과 다르잖아요.
온 몸이 찌릿찌릿해지는 영적인경험이 오나요. 여러분?
성경을 여러분 그냥 눈에 들어옵니까.
여러분 1독~ 2독 한 거랑, 10독한 거랑 다르잖아요.
여러분, 그 대가를 지불하는 거잖아요.
여러분, 어느 날 성경을 읽는데 몇 독을 하다 보니
그냥 문자가 아니고, 살아있는 활자로, 툭툭 튀어나오는 문자로 보이는 겁니다.
여러분 성경을 몇 독을 하셨어요?
여러분, 우리 요즘 보니까 성경 열심히 읽으시는 분들 계시더라고요.
바빠서 읽지 못할 이유가 수백 가지가 있다니까요.
그런데도 내가 대가를 지불하고 앉아서 성경을 읽는 이 지구력!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어느 지점에서 내가 멈추어서있는지를 점검 하셔야 되요.
저도 지금 그것을 제 자체적으로 자가진단을 하고 있어요.
제가 나도 모르게 나태해져 있는 부분이 없는지,
내가 정말로 영적진보가 나타나고 있는지,
스스로 내가 자아도취하고 빠져서, 발전하지 않고 서 있지 않는지요?
내가 진정한 제대로 된 목사로서
하나님의 진리에 완전히 사로잡히고,
이시대의 우리의 정말 그것을 살려내는
그 영적인 샘물로서 콸콸 넘쳐 나야 하는데,
제가 지금 밑바닥을 헤매고 있진 않냐 는 겁니다.
▲신앙생활의 핵심 키워드 중하나가 뭐냐면 <갈망>이에요.
주님이 사마리아여인에게 말씀하죠.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 와서 마시라’
이 목마름이 갈망이죠.
시편84:편2절에도
“내 영혼이 여호와의 집을 사모하여 쇠약하며, 내 육체가 살아있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사람들안에 이 갈증이 있어요. 목마름은 근원적인 것이잖아요.
근데 사람들이 그것을 엉뚱한 것으로 채우려하는 거예요.
엉뚱한 것이란 딴 게 아니에요. 성경에 딱 3가지로 분류하는데,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에 자랑
그것을 통하여 내 갈증을 채우려 하는 거예요.
역사가 아무리 깊어도, 이 3종 범죄 안에 다 들어요.
사탄은 우리 결혼관계안에서도 그렇죠.
행복과 즐거움을 보지 못 하게 하고, 결혼 밖의 즐거움을 찾도록 유혹하는 거죠.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며 기쁨이 있어야 정상인데
다른 것에 즐거움과 만족을 얻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다가, 어느 날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뒤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갑자기 머리가 돌면서, 교회는 조금 당분간 적당하게 다니고 돈을 좀 벌어야 되겠다.
자기 눈에 ‘세상’이 더 크게 보이기 시작한 거죠.
내게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 것이 더 크게 보이는 겁니다.
이게 보통 심각한 게 아니에요.
▲오늘도 세상의 어떤 것이 크게 부각된다면,
기도를 더 힘 쓰셔야 되요.
부패한 본성이 뭐냐면, 참된 것을 갈망하지 못 하게하는 거예요.
이게 아주 무서운 겁니다.
마귀는 하나님이 주신 것들로 만족하지 못하고
무엇인가 부족한 게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에 눈을 갖다 대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인한 만족이 아니고, 만족을 못하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뭔가가 사탄이 주는 거예요.
여러분 인간적인즐거움은 갈증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더 목말라요. 더 해결하기 위해서 더 노력하고.. 악순환입니다.
문제는 뭡니까? 가짜와 진짜를 구분 못하는 거죠.
▲그래서 영적인 세계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못한다는 것은,
이게 굉장히 심각한 겁니다.
그래서 시야가 자꾸 좁아집니다. 여러분 집중과 집착은 다른 거예요.
하나님께 집중하느냐, 세상에 집착하느냐?
둘 중 하나의 선택입니다.
자신이 바라보는 것 외에, 다른 것을 바라보지 못하는 겁니다.
마귀는 ‘이게 너한테 필요해, 중요해, 전부야! 이걸 붙들어’ 이렇게 윽박지르죠.
여러분 우리의 기쁨과 만족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어거스틴이 그런 얘기를 했잖아요.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우리는 진정한 평안이 없습니다.’ 행복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으로 찾는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신 분이고 모든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는 것이다.’
이 간단한 진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끊임없이 방황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이 밤에도 다른 게 필요한 게 아니에요.
오직 한분이 필요한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갈망이 어느 분에게 가야 하겠어요?
하나님만을 갈망하는 거예요.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함’을 얘기하죠.
그리스도안의 풍성한 은혜, 충만 이라는 단어를 써요.
근데 여러분, 세상에는 풍성이나 충만 이란 단어를 경험할 수 없어요.
가지면 가질수록., 충만이 아니라, 더 갈증이에요.
이거는 영적인 세계 안에서, 하나님 관계 안에서 반드시 충만이 있는 거예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아무리 내가 붙들어도, 그것은 충만이 될 수 없어요.
세상에서 충만을 경험할 수 없어요.
여러분 돈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충만을 느낄 수 없어요. 더 부족함을 느끼죠.
인기를 아무리 얻어도 뭔가 부족해요.
아무리 쾌락을 추구해도 충만하도다. 이런 게(충만이) 없어요.
충만이 안 되니까, 더 목이 말라요. 여러분 내가 하고 싶은걸 마음껏 해보세요.
만족이 오는가.. 안 오게 되어 있단 말이에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을 주신다는 겁니다.
충만하신 분이기 때문에, 만물 위에 충만한 분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만나고, 그 안에 있으면, 완벽한 만족이 온다는 겁니다.
이걸 경험하셔야 되요.
오늘 이 밤에 그것을 경험하셔야 되요.
하나님 외에 더 이상 사모할 것이, 내게 없습니다.
이 고백이 내 영혼 깊숙한 곳에서 터져 나와야 되요.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고백되지 않으면, 위험한 신앙이에요.
▲근데 문제는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충만하신 분이고, 훨씬 더 풍성하신 분인데,
문제는 우리가 추구하지 않아요. 그러면 얻을 수 가없어요.
내가 추구하는 만큼 얻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하죠?
영적 갈망의 그 도수를 올려야 되요.
여러분들, 변화가 어디서 일어날까요?
영적 갈망의 강도를 높여야 되는 거예요.
문제는 뭐냐면, 사람들이 갈망이 약한 거예요.
어떤 사람은 교회를 다니는데, 영적 갈망 자체가 사라져 버렸어요.
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느냐? 갈망이 없어요. 갈망이!
여러분 변화/성장이 빠른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면, 갈망이 있어요.
그게 있기 때문에, 쉽게 만족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지 않아요.
‘하나님 나는 여기 이 수준에 만족해서,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갈망이 없는 상태는 굉장히 위험한 상태에요.
배가 고픈 사람이 밥을 찾잖아요. 목이 마른 사람이 물을 찾잖아요.
여러분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특징이 뭡니까? 배움에 대한 갈망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이라도 배우고자하는 갈망만 있다면요, 온 세상이 스승이에요.
온 땅에 모든 것들이 내게 가르침을 줘요.
근데 갈망이 없어요.
교실에서도 갈망이 없는 학생들은, 이미 앉아있는 태도가, 선생님과 상관이 없어요.
근데 갈망이 있는 학생들은, 선생님을 잡아먹을 것 같잖아요.
설교를 해보면요. 그 교회가 갈망의 도수 만큼만 은혜가 임합니다.
그 갈망이 꽉 차 있는 데는 그냥 막 나오는 거예요.
갈망이 없는, 말씀을 사모함이 없는 교회에 가서, 말씀 전하려 하면, 힘들어요.
설교의 말이 안 나와요. 벽치기 하는 것 같아요. 그럴 때는 10분도 하기 힘들어요.
◑왜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삶에 갈망이 없을까요?
잘못된 신앙 환경 때문에,
특별히 한국 교회 안에 율법주의적인 신앙 속에서 딱 정해진 게 있어요.
각종 헌금, 봉사 등.. 거기에 도달하면, 내가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자기만족에 빠져요.
그것마저도 자발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교회가 만들어놓은 기준,
그래야 직분도 주니까, 사람들이 좋게 평가하니까,
사람들의 눈과 의식과 체면과 자발성에 의해서 하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누르는 억압, 통제, 규율이 있기 때문에
자격기준에 도달하기 위해서,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깊은 자발성에서 나오는 게 아니에요.
나를 움직이는 어떤 제도적 힘에 의해서 하는 거예요.
의무는 수행하지만, 기쁨은 없어요.
▲여러분 교회 안에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은데, 그것을 강요로 하면 큰일 납니다.
내년에 우리 훈련 프로그램 1년짜리가 도입될 텐데, 굉장히 좋은 거예요.
그런데 절대 강요하지 않는 거예요.
들어온 사람은, 최고의 영적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삶의 진정한 변화,
그 과정을 이수하기 때문에 어떤 것들을
다른 어떤 제도적인 그런 것들을 첨가하기 위한 과정으로 보지 않고
영적순례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경험해야 될 핵심적인 것들을 다루려고 합니다.
눅15:장에 보면 아버지가 참 놀라운 분이에요. 둘째아들이 유산을 요구하잖아요.
아버지가 살아있는데 유산을 달라면, 웬만한 아버지는 안 주죠.
그런데 아버지가 유산을 주죠. 참 온유하죠.
그런데 탕자가 나가서 자유를 만끽하지만 바닥을 기다가
결국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께 돌아와요.
아버지는, 아들이 스스로 돌이켜 돌아오도록 기다려줘요.
복음을 아주 잘 소개해 주는 것입니다. 강요의 문화는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양육과 같은 프로그램을
타의에 의해 참여하면, 효과는 현저히 떨어지게 되어있어요.
타의에 할 수 없이 하는 문화를 만들면, 외적 규례를 지키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거는 굉장히 위험한 것이에요.
영적 부유함을 경험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되어버리면
얼마 안 가서, 메말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의무적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 굉장히 안 좋아요.
여러분 복음의 광휘로움을 경험하기 전에
십일조와 주일 성수를 강조하면, 갈수록 힘들어질 수 있어요.
할 수는 있지만 힘들고, 하긴 해도 그 수준을 능가하기 어려워요.
그러나 복음을 경험하면, 의무적인 수준에서 십일조나 주일성소 하는 것만 아니죠.
‘내 전부가 하나님의 것’ 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중에는 그 복음의 강력한 은혜에 사로잡히면
내 생명 다 드리고도 모자라서, 그게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잖아요.
그냥 하게 되어있어요.
그 복음의 은혜를 체험하면, 복음은 우리를 다른 차원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최선을 다하고도, 더 하고 싶은 거예요. 자발성!
누가 뭐라고 해서 열심을 내는 게 아니에요.
복음이 나를 끌고 가는 거예요.
복음 안에 잇는 하나님의 거대한 충만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C. S. 루이스가 유명한 말을 했잖아요.
‘우리의 갈망이 강한 것이 아니고, 너무 약한 것이다.’
우리가 너무 쉽게 만족하는 것이 문제다.
별것 아닌 것에 쉽게 도취되고 만족하므로,
더 깊고 풍성함을 놓치고 마는 안타까움을, 루이스가 얘기한 거예요.
우리가 진짜를 경험해 본다면, 다른 것은 시시해진다는 거예요.
여러분 왜 요즘 우리 사회의 유혹의 환경이 많습니까?
근본적인 이유는, 진짜를 맛보지 못 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누리는 기쁨은, 일부분에 불과한 신자가 있어요.
예수를 믿어 기쁘고 즐겁긴 하지만
세상에서 주는 것과, 현격한 차이를 못 느끼는 분들도 많이 있을 겁니다.
비교해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다면, 세상에서 주는 유혹을 이겨내기 어려워요.
압도하는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과 만족이.. 하나님 안에서 없다면,
세상 유혹을 못 이기는 거예요.
여러분 영적세계의 즐거움과 풍족함이, 세상 것들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런데 아직도 많은 신자들이
세상에서 주는 쾌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적 외도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인 기쁨은, 육체적인기쁨을 능가하는 것입니다.
◑신앙적 즐거움을, 세상 즐거움보다 더 크게 느껴야 합니다.
세상에 육체적 즐거움도 많죠.
맛있는 과일, 멋있는 곳에 여행가서 기가 막힌 전망과 멋진 요리를
멋진 서비스를 받으며.. 신이 나고 행복하겠죠.
그래서 너무 좋으니까 ‘꿈만 같다..’
여러분 속지 말아야하는 것은, 세상에 서주는 기쁨은 불꽃같은 것입니다.
화려한데 금방 사라져요.
그러나 영적세계에서 오는 기쁨과 만족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는 알 수 없어요.
여러분 요한복음4장의 사마리아 여인을 보면 남편 다섯을 바꿨잖아요.
그녀를 만족시킨 것은 없었어요. 남편 다섯을 바꿨지만
지금 있는 남편도 그의 남편이 아니라는 말은 무엇일까요?
그 사마리아 여인이 지금까지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는
행복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얘기하는 거예요.
다섯 번씩이나 바꾼 것을 보면 그녀의 갈증이 얼마나 강했는가를 보여주잖아요.
이것은 우리의 내면에도 있는 갈증입니다.
이것도하고 저것도 하고 수없이 추구해도 만족하지 못한 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그 내면이 우리 안에도 동일한 갈증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떻게 됐어요?
주님을 만나자마자 모든 갈증이 한순간에 사라졌어요.
목이 더 이상 마르지 않았어요. 완전히 해갈을 경험했다는 게 뭘 통해서 알려줍니까,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간 거예요.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거예요.
그녀가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강력한 경험 단 한번으로 완전한 해갈!
▲여러분, 삭게오도 마찬가지죠. 단 한 번의 예수님과 만남이지만 강력했잖아요.
그가 일평생 돈을 모으면서 만족하려했던 그 노력이, 얼마나 헛된 것이었습니까.
안 채워졌는데, 그 주님과의 단 한 번의 강력한 만남으로
완전하게 그 돈으로 채울 수 없었던 갈증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에요. 사마리아 여인이 찾았던 이성정 만족은 아니지만
종교적 만족, 때로는 인간적인 허영을 통해 만족을 얻고자 했잖아요
그러나 바울역시 갈증이 강력한 삶을 살면서 끊임없이 달음박질 쳤는데
예수를 만나자마자, 완전히 모든 갈증이 사라지고, 모든 것을 버리는,
그래서 여러분 보면 사마리아여인은 쾌락으로 바울은 종교로
삭게오는 돈으로 만족을 얻고자했지만.. 얻지 못 했어요.
모두가 목이 말랐다는 건 공통점이에요. 무엇인가 채우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역시 채워지지 않았어요. 공통점은 뭐에요?
예수그리스도를 확실히 만 난후에, 모든 갈증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거예요.
여러분 확실하게 예수를 만나자, 그들의 모든 갈증은 완전히 채워진 것입니다.
바울은 종교중독에, 사마리아 여인은 이성 중독, 삭게오는 돈 독에 오른 사람,
그런 치유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있던 사람들이에요
하지만 예수를 만나자 확실하게 치유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만날 때, 하나님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죠.
▲태양이 뜨면 모든 빛은 죽습니다.
여러분 라스베이거스의 밤은 화려해요. 그러나 태양이 뜨면 모든 빛은 죽고
화려했던 도시는 얼마나 지저분한가를 알게 되요.
강도 높은 것을 맛본 사람들은 모든 것에 맛이 가버려요.
우리는 이전의 삶에 갇혀서 죄악에 살 때 적이었던 것들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고
반복해서 살 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것들로 인해,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게
문제에요.
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과 멀어진 삶에서, 얻는 기쁨과 만족은 어디에도 없어요.
하나님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주는 것을 다시 회복해야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은혜가 있게 되길 축원합니다.
▲신앙생활의 중요한 키워드가 뭐라고요? 갈망이에요.
그리고 내가 얼마만큼 갈망하느냐 에요. 갈망이 차이가나요.
얼마만큼 갈망하느냐, 그 우리가 더 이상 갈망하지 않으면 거기서 신앙은 중지됩니다.
자 여러분들을 스스로 점검해야합니다.
대단히 중요한 주제에요. 그러니까 더 깊어지고 풍성하게 하는 힘은 <갈망>이에요.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든지 당신을 드러내시고
당신의 영광의 광채를 우리에게 우리가 갈망하는 만큼 드러내시고 보여주세요.
갈망이 죽은 사람에게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요.
기가 막힌 진리라도 귀에 들려지지 않아요.
하나님의 은혜가 아무리 넘쳐나고 풍성해도, 마음의 문을 닫고 있으면
소용이 없는 겁니다.
여러분 영적인 갈망이 식으면 안 돼요, 죽을 때까지!
갈망이 식으면 끝난 겁니다.
제일 복된 사람은, 갈망이 식지 않은 사람!
그 갈망이 있을 때, 영적 등정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우린 계속 가야 되요. 계속 배가 고파야 되요.
그래서 여러분 영적 세계에 어떤 도식을 갖고 있으면 안 돼요.
무한세계에요, 하나님은.
이 정도 되면 내 손에 잡히고, 이 정도 되면 다 이해되어지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에요.
우리의 지성이 아무리 끝에 가도.. 하나님을 다 알 수 없어요.
우리의 경험의 세계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도.. 하나님을 다 경험할 수 없어요.
너무 크신 분이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가 갈망을 가지는 곳까지만 가는데,
그것에 따라 신앙의 레벨이 다른 거예요.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안의 갈망이 식어 진다라는 느낌이 들면
그건 비상이에요. 그걸 그대로 두면 안돼요.
▲여러분 아이에게 젖을 딱 물리면, 막 땀이 나도록 빨아야죠. 그게 건강한 거잖아요.
이 젖을 물려도 안 빠는 아이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주사기 같은 걸로 눕혀서, 목에 넘어가도록 넣어서, 애를 키우는 경우도 있어요.
스스로 못 먹으니까,
여러분, 내 안의 영적인 갈망이식어지면 그건 초비상이에요.
그러면 살려달라고 조치를 취하셔야 되요. 죽는 거거든요, 영적으로.
금식이라도 하던지 하여튼 몸부림을 쳐야 되요.
그걸 그냥 있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누가 하나님을 경험합니까. 갈망하는 사람이에요.
누가 은혜를 많이 체험해요? 목이 마른 사람이에요.
여러분 교회 안에 수없는 좋은 프로그램이 많이 있어도
목이 안 마르면 나와 상관없는 거잖아요.
영적인 갈망이 있는 사람은요, 그게 워낙 강하기 때문에 가만있을 수 없습니다.
▲제가 호주 있을 때 보니까, 어느 분은 비행기타고 왔어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잖아요.
의에 목마른 자, 심령이 가난한자, 애통한자 이게 뭐에요.
갈망하는 자! 그들이 복이 있다는 거예요.
오늘도 여러분, 갈망이 있는 사람이 복이 있는 거예요.
갈망이 깊은 분이 진짜 복이 있는 거예요.
모세가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강해요. 안 물러서잖아요.
여러분 얕은 곳에서 감질나게 신앙생활을 하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도식화되고 외형화된 신앙생활을 청산하시길 바랍니다.
신앙생활이, 예배 참여하는 정도만으로
직분을 주고 직분을 받으면 끝인 것처럼 여기는 이 문화, 위험한 겁니다.
어찌 하나님의 영적 세계를 그렇게 도식화된 것에 만족하고
그것으로 기준이 채워지면, 신앙의 끝에 도달한 것처럼 착각하는 만드는 이 구조는
너무도 초보적인 거에요.
▲하박국3:장 18~19절, 뭐가 없고, 없고 다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될 게 없다는 거예요. 외양간에 소가 없다는 게 문제가 없다는 거예요.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게 영적인 고지를 점령하는 겁니다.
그 높은 곳은, 구원의 하나님으로 기뻐하는,
어떤 것들이 없다, 없다할지라도
내 삶의 장애가 안 되고, 불편함이 아니고, 주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내 삶의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포도나무열매가 없고
이런 것들에 목메어있다면, 바닥을 헤매고 있다는 거잖아요.
무슨 문제가 있다고 불편하다고, 내 삶의 어떤 부분이 모자라다고
거기에서 늘 헤매고 상황에 끌려간다면 바닥을 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과 상관없이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여러분 누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냐..
이거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거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가. 얼마나 능력 많으시고 사랑 많으신 분인가?
그걸 아는 거죠. 알면 알수록 그분은 나에게 그런 상황과 상관없이
즐거이 해주시는, 그래서 이 세상과 어떤 것과 견줄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이게 영적고지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영적인 이 집중력을
우리가 높여야 되요, 하나님에게만 집중해야 되요.
▲사탄은, 갈망/집중력을 흐트립니다.
사단이 우리안의 있는 죄를 자꾸 건드리는 거예요.
집중력을 가지기는 쉽지 않아요. 이건 굉장히 쉽지 않아요. 오늘 여기에서 실패를 많이 해요.
집중력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제거해야 되죠.
세상에 매력적인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요. 속지마세요.
내가 무엇을 갈망하는가. 내가 하나님을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갈망하고 사모하고 있는가,
여러분 만약에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나 사모가 없다면
타락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세상에서 여러분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들이 무엇이 있습니까.
세상의 어떤 것들에 흔들리고 있다면 위험한 겁니다.
까딱하면 넘어지는 거예요. 세상이 우리를 삼키려고 작정하고 달려들고 있잖아요.
오늘 우리는 전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집중력을 빼앗는 것들이 많아요.
하나님만을 갈망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할수록.. 갈망이 깊어져야 정상입니다.
왜요? 맛을 아니까, 그 맛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 여기서 멈출 수 없습니다.
좀 더 경험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