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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4

믿음으로 미래를 본 사람은 준비한다

LNCK 2014. 12. 29. 16:07

믿음불패5. '순종, 미래를 본 사람은 준비한다' - - YouTube

◈믿음으로 미래를 본 사람은 준비한다        창6:8, 22, 히11:7          
                                                                                                
◑믿음은 미래를 보게 합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멀리 보는 것입니다.
히11;7절에,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고'는, 아직 다가올 미래의 일이죠.
하나님을 믿으면, 이렇게 사람들에게 장래의 일을 보이십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거죠. 자기가 보는게 아니라요.

'내가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미래의 일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이 보여주셔야 아는 것이죠.
새해에도, 믿음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장래를/비전을/경고를 주시기 기원합니다.
내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을요!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이 알게 하시죠.
그것을 믿음의 사람들이 가진 비밀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미래의 비밀을 안다는 것은 사명입니다.

그게 사명자의 사명이고 책임입니다. 남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는 것은 '사명'이죠.
노아는 그 시대의 선지자에요.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미래를 보여주십니다.
성경은 미래에 대한 책입니다. 과거의 역사를 기록했지만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미래가 보여요.
과거의 역사를 앎으로, 미래를 알게 되는 이유도 있고요,
미래에 대한 경고를 통해서, 미래를 알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 앞에 어떤 일이 다가오는가를,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죠.

히브리서 11: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여기서 '바라는 것'이 뭘까요? 미래의 일이에요.
그 미래는,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백 퍼센트 이루어집니다.
그것을 확신하는 게 믿음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요. 이 세상에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믿게 하시고, 바라게 하시고. 그게 오늘 우리의 믿음의 삶이고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가 아니라, 다가올 미래의 생명을 걸어야 된다는 거죠.
믿음의 메시지를 계속 듣는 가운데, 우리의 눈이 열려야 해요.

그래서 이 현실이 아니고, 현실이 아무리 화려하든/ 바닥을 치든
현실의 내 인생에 좌우되지 않고, 미래에 내 인생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이게 다른 인생을 살게 하는 비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미래를 보여주세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미래를 보여주시면서 기회를 주시는 거죠.

하나님은 노아에게 미래를 보여주신 것은, 그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기회에요.
하나님은 죄를 짓는다고 곧바로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노아로 하여금 방주를 백이십년 동안 짓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얼마나 무궁하신가를 보여주시죠.

노아의 방주를 짓게 하신 것은, 하나의 경고입니다.
하나님이 심판을 하시고 싶으신 게 아니라, 심판을 안 하고 싶으신 거예요.
그래서 이 방주는 하나의 시청각 교재로. '제발 너희들이 심판 받지 않기를 원한다.'
120년 동안 시각적 자료로 보여주신 거예요. 끊임없이 회개하라, 돌아오라는 거죠.


◑미래를 본 사람은, 준비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심판보다 경고를 먼저 하십니다. 심판은 가장 마지막 선택입니다.
여러분 이걸 기억하셔야 해요. 심판은 하나님의 가장 마지막 인내의 끝에서 하는 거예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얼마나 하나님이 오래 기다리실까요.

하나님은 120년 동안 경고를 하셨습니다. 경고가 길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합니다.
거짓말이라는 거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더딘 것이 아니라 기다리시는 것이에요.
여러분, 경고를 경고로 받을 줄 아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과 사건을 통하여 싸인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매를 먼저 드시는 분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세요.

하나님은 특별히 말씀을 통해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귀에 신앙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내 안에 들려지고 있다면
굉장히 영적으로 좋은 상태입니다. 자가진단을 한 번 해보세요.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요즘 잘 안 들린다.. 듣고도 지나친다.. 내 안에 안 들리고 지나가버린다.
듣고 나면 무슨 말씀을 들었는지도 모르겠고... 이건 굉장히 위험한 상태입니다.
오늘이라도 주의 은혜가 임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적으로 건강한 상태에 있으면, 어떨 때는 설교자가 죽을 쒀도
하나님의 말씀이 천둥처럼 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사는 길이에요.
말씀을 들을 때마다 귀에 쏙쏙 들어오고 눈물이 나오고 믿음이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근데 말씀을 들었는데 깨달음이 없어요. 귀에 들어오지가 않아요.. 이건 아주 위험한 상태입니다.
여러분 경고의 음성이 들려야 합니다. 경고의 음성을 들을 때 두려움이 일어나야 해요.
그게 '듣는' 겁니다.
제대로 들은 사람은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에 두려움이 생깁니다.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하므로, 이 경외가 두려움이죠.
하나님의 말씀의 경고를 들었는데 불구하고, 나는 두려움이 없다.. 그것 자체가 심판이에요.

▲노아는 미래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믿음의 사람들에게, 미래의 일을 알리시고 심판의 경고를 하십니다.
심판의 경고. 자, 여러분 믿음으로 미래를 본 사람들은 뭘 합니까. 준비하게 하시는 거죠.

하나님은 노아가 방주를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죠. 그 이유는 준비하라는 겁니다.
믿음으로 미래를 본 사람은, 미래를 준비하게 되어 있습니다.  ←설교의 주제 및 제목

▲아벨은 예배의 상징입니다. 에녹은 동행이라는 키워드를 가진다면,
노아의 삶의 핵심 코드는 "순종"(미래 준비)입니다.

창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했어요.
물론 모든 지면을 쓸어버리겠다는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는, 받아들이기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분 노아 시대까지만 해도, 기후가 너무 최적의 환경입니다.
홍수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않았던 때입니다. 홍수가 뭔지 알 길이 없는 거예요.
홍수의 심판이라는 게, 온 지면을 물로 덮어버리겠다는 게, 와닿을 수 없는.. 전혀 개념이 안 잡히는 메시지에요.

노아는 비가 내리지 않는 맑은 하늘 아래서, 지면이 물로 덮일 것이라는 메시지 아래 방주를 짓기 시작합니다.
노아는 하느님의 말씀대로 움직인 거죠. 방주의 모든 모양과 형태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만든 겁니다.

모든 생물들을 방주 안에 집어넣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성실하게 순종합니다.
이와 같이, 참된 믿음은 순종(미래 준비, 반응)이 따라옵니다.

노아가 받은 하나님의 명령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사건, 인류 초유의 예언이에요.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겠다는 하나님의 심판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없어요.
방주의 규모가 어마어마한 사이즈였습니다.

특별히 오늘날같이 조선술이 발달한 때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고대 사회에서.
이 프로젝트는 사상 최대의 목조 선박 작업이었습니다.

설계 도면은 하나님이 꼼꼼하게 알려주셨지만
여러분 그것을 만들 수 있는, 4층 높이 그 정도인데,
크레인이나 또 무슨 모든 것들을 운반할 수 있는 운송 시설이 하나도 없단 말이에요.
어마어마한 크기의 물 위에 뜰 수 있는 것을 만든다는 게 어려운 일이죠.
모두가 생소하고 상상을 넘어선 일들이기 때문에, 순종한다는 것 자체가 엄두가 안 난단 말입니다.

노동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사람들의 비난과 방해도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120년 간의 순종입니다. 한 마디로 입이 벌어지게 하는 일들입니다.

창세기 6장과 7장을 보면, 반복해서 나오는 메시지가
노아는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철저한 순종입니다.

◑믿음은.. 순종힙니다. 관념이 아니라요.

노아의 믿음은 순종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믿음과 순종이란 동전의 양면입니다. 분리가 안 됩니다. 믿음은 순종을 통해서 확인됩니다.

야고보서에서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순종(행함)이 없는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는 거죠.

여러분 에녹이 3백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다.. 이것은 대단한 일이죠.
그런데 노아의 120년의 세월은 또 다른 의미가 있어요.

에녹의 3백년 간의 동행이지만, 그 동행에 관한 구체적인 게, 성경에는 하나도 안 나타나요.
그런데 노아의 120년은, 에녹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거에요.
아벨과 에녹이 놀라운 일을 했지만,
노아의 120년은, 그 까다롭고 복잡하고 어려운 구체적인 순종의 삶을 동반한 120년이에요.

어려운 현실 가운데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붙잡고
갖은 핍박과 환란과 시련 속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프로젝트를 120년 간 감당했다는 의미에서
노아의 120년은, 에녹의 3백년과 또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노아가 우리에게 심어주는 가장 확실한 믿음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믿음이란 도대체 뭔가요?
노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순종"이라는 겁니다. "믿음은 순종이다!"

여러분 순종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하면, 우리는 노아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성경에서 노아만한 순종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노아에 견줄만한 순종이 없습니다.
우리의 순종의 모델은 노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노아의 눈 앞에, 보이는 게 하나도 없어요.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에요.
인간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과제가 주어졌어요.
그런데 120년 동안 하나님의 명령 하나만 붙들고 나아갑니다.

여러분, 만약 순종하는 가운데 '자신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끼워넣으면, 순종은 거기서 끝나고 맙니다.
여러분 우리가 순종이 어려운 이유는, 그렇게 하려다보면 말씀과 현실의 차이가 너무 큰 거에요.
그때 '내 생각'이 끼어들어갑니다.

그 격차가 너무 크면, 내 생각이 들어가기가 쉬워요에.
하나님의 말씀에 해석을 붙이려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자기 해석서. 자기 해설서가 붙는 거예요. 부록이 두껍게 붙는 거죠. 그럼 순종이 물 건너 가는 거죠.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그는 순종에 주저하지 않고, 120년 간 기록적 순종을 이루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조 말기에 맡았는데 지금까지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일제의 해방을 넘어, 625를 거쳐, 민주화 시기를 다 거쳐서,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그 일을 감당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에녹의 생애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미션이 보이지 않아요.
그러나 노아는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 인간적으로 보면 그야말로 '불가능한 임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믿음을 지속적인 순종을 통하여 드러냅니다.

◑순종케 하시는 은혜

▲궁금한 것은 노아의 이런 믿음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하는 것입니다. 
창6:8절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하나님의 은혜. 순종의 삶이 힘들지만,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순종하는 사람들 안에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순종을 시작하지만, 그 순종안으로 들어가보면, 우리의 힘을 넘어선 하나님의 비상한 간섭이 일어나
그 순종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이게 비밀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방주라는 거대한 공사가, 어찌 한 가족의 기술과 노동력으로 가능했겠습니까. 불가능한 겁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노아의 가족을 돕는 사람들을 붙여주지 않았겠습니까.
아마 틀림없이 많은 노동력들이 붙었을 겁니다.

그런데 방주를 지으면서도, 노아는 막 욕을 얻어먹으면서 짓는 거예요.
그런 혹독한 비난 가운데서도 실족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충성을 할 수 있었던 힘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악한 세상속에서도 휩쓸리지 않고, 의인으로 살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한 거죠.

'내게 능력 주시는 자로 인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는 바울의 고백이
노아에게도 있었던 것이죠.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시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백성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순종은 내가 감당하지만, 감당하게 하시는 것은 주의 은혜요.
120년의 순종은 노아의 믿음이지만, 그 믿음을 이끌어나가는 힘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순종입니다.
   한 때의 순종이 아니라, 끝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끝까지.
   이해되는 순종이 아니라, 이해되지 않는 순종입니다.

   미래를 본 사람은 미래를 준비합니다. 그게 믿음이죠.
   믿음으로 절대적 순종을 감당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 믿음의 삶은 시련을 통과하게 되어 있어요.

미래를 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살아갈 때 찾아오는 시련이 있습니다. 필연적인 것이죠.
믿음은 항상 테스트를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미래를 본 사람은 언제나 소수에요.
다수는 미래를 전혀 보지 못합니다.

미래를 본 사람은, 미래를 보지 않은 세계 안에서 왕따를 당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종종 왕따를 경험하죠.
여러분이 왕따를 당하면 그게 정상입니다. 물론 쓸 때없이 왕따를 당할 필요는 없어요.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 찾아오는 외로움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왕따로 고통을 당해보신 분은, 노아를 보고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왕따 백이십년. 집단 왕따. 온 인류적 왕따.
여러분 노아와 그의 가족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미친 사람 취급 했습니다.
외톨이가 된다는 것은 굉장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삶은 시련을 거칩니다. 시련을 통과해야 진정한 믿음이 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언제나 어려움을 겪어야 합니다.

마리아가 어린 나이에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소식을. 천사를 통해 들었을 때, 그랬습니다.
어린 소녀가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 인류 역사에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이야기,

교과서나 참고서에 찾아볼 수 없는 시련. 처녀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누구도 납득할 만한 설명을, 자신도, 남들도 할 수 없는 일들. 확실히 왕따 감이죠.
왕따 정도가 아니라, 그 문화 속에서 돌에 맞아 죽을 일이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예외없이 그 시대 속에서 핍박 받았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비난과 모함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온전히 이해받지 못합니다.
여러분 그 때, 그것을 너무 어려워 하지 마세요. 정상적인 일입니다.

내가 받은 말씀, 내가 본 미래의 일을 설명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이는 매우 도전적인 일입니다. 시련이 예고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마음에 딱딱 맞는 상황을 주시지 않아요, 전혀 상관없는 말씀들을 주시는 거예요.
시련은 믿음의 사람들의 훈장이에요.
미래를 본 사람은 시련을 겪고도 미래를 준비하며, 그 시련을 통과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주는 메시지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노아의 시대와 너무도 흡사합니다.
마24:38~39.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음이라.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오늘 아침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은혜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얼마나 악하고 미련한가를 소름끼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무서운 둔감성, 멸망의 직전까지 가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이 둔감성. 불감증.
죽을지 살지 모르는 상태. 이게 심판이에요.

지금은 노아의 때와 같습니다. 죄악이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악이 찰 때로 찼습니다. 악독한 시대입니다.
세상은 지금 정상이 아닙니다. 너무 이제 비정상적인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는데
지금 세상은 많이 뒤틀려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이상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목전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습니다.

여러분 신문 지면에 오르는 것을 보면 도를 넘었어요. 상상할 수 없는 죄가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성적 타락과 우상 숭배와 배교와 인간의 폭력성이 온 세계에 퍼져 있고,
열방의 국가들의 질서들이 깨어져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상태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의 상태도 문제입니다.
세상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나의 관점은 무엇인가요? 무관심 아닌가요?

◑하나님의 해법

▲하나님은 그 시대 가운데, 오직 노아라는 한 사람을 발견하십니다.
창6:9절, 이것은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의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하나님과 동행한 유일한 한 사람. 의인의 희소성.
오늘날 우리는, 구약의 노아, 신약의 세례 요한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듣지 않아도.. 경고의 메시지를 계속 외치는 사람.
선지자적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희귀한 시대입니다.

현실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은 너무도 많지만
미리 다가올 일들에 대해서, 강력하게 소리지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별로 들리지 않는 시대에 대해서.. 여러분 이상하게 여기지 않습니까?

선지자적 역할을 하는 사람.
하나님의 뜻을 미리 알리고 정확하게 준비하는 사람이,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모든 것이 망가져도 깨어있는 한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듣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소망이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알릴 사람을 계속 찾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한 가정에도, 한 국가에도, 한 공동체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생명을 걸고 순종할 종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한 가정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깨어 있는 사람(선지자 역할)이 있다면, 그 가정에 소망이 있습니다.
어디에나 먼저 본 사람이 필요한 것이죠. 경고를 들는 귀가 있는 사람이 있는 공동체는 복이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잠들어 있다면, 언제 어떻게 될 지 알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을 세우십니다.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할 사람은,
첫째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에 몰두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

둘째로, 악에 대해 민감한 사람. 악을 보고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아는 사람들.
죄악의 모습들에 깊은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아픔이 자신의 삶에 무거운 짐이 되는 사람들.

셋째는, 용기를 가진 사람. 때로는 죽을 각오도 해야 합니다.
넷째는, 현실에 대해 약간 거리를 두고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들.
다섯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늘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
내가 듣고 싶은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마치는 말
여러분, 우리는 지금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제한적으로 참으시는 아주 긴박한 시간입니다. 깨어있어야 합니다.
번성해가는 현대 문명의 화려함을 보고 정신을 잃으면 안됩니다.
현대 문명의 뒤에 드리워진 어둠을 보는, 영적인 안목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노아에게 초점을 맞추었지만,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세상의 모습을, 우리는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아파하시는 마음을, 우리는 노아 시대의 그 심판을 통하여 들여다봅니다.

하나님은 온 인류적 심판을 하셨지만, 한 사람이라도 구원해내셔서
다가오는 미래의 더 많은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숨은 마음을 우리가 읽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가오는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의 나팔소리가 이미 들려오고 있습니다.
경고음은 이미 강하게 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도래하고 있습니다.
징조들은 이미 가득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의로운 소수에 속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의 회복할 신앙은, 종말론적 신앙을 가진 예언자적 영성과
순교자적 영성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의 길을 예비해야할 사람들!

저는 우리 공동체가 이 종말론적 시대에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순교의 영성을 가진, 마지막 시대 마지막 주자로 쓰임받는, 하나님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순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참된 믿음을 가진 노아처럼 세례 요한과 같은 역할.
저는 우리 교회가 그런 일에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노아처럼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알려야 합니다. 구원의 기회가 끝나는 순간이 온다고 외쳐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특징은 초림과 다릅니다.
초림은 온 인류에게 기회를 주시기 위해 오셨지만, 재림은 구원받은 백성들만 건지시려 오시는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기회는 끝나고 알곡과 가지를 구별하는 시기는 재림 이후에 없습니다. 막차 라는 뜻입니다. 

그 날이 언제 올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의 참된 믿음을 가진 자를 데리로 오시는 거죠.
그러므로 여러분 이번 특새 집회을 통하여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은, 내가 가진 믿음이 진짜 믿음이냐는 거죠.
내가 스스로 속고 있는 믿음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정말 믿느냐 하는 거죠. 악한 시대에 참으로 믿는 자를 보기 힘듭니다.
 
오늘 참된 믿음을 준비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미래를 보는 사람만, 미래를 준비할 것입니다.
깨어있는 영성으로 하나님 말씀에 절대적 순종을 하며 미래를 준비할 때
마지막 나팔소리 불려지는 그 날, 하나님 앞에 불림을 받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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