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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4

한계돌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힘 얻기

LNCK 2014. 12. 29. 16:08

 

믿음불패8. '한계 돌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얻다' - 이규현 목사 - YouTube

 

 

한계돌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힘 얻기      히11:11~12     설교 녹취, *믿음불패 시리즈 8

                                                                                                       

  

 

◑서론/ 한계에 봉착한 아브라함

 

 

 

아브라함의 생애는 믿음의 길을 걷는 우리에게 모델이 되죠.

 

우리 모두는 이 땅의 순례자들입니다.

 

아브라함이 순례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우리 모두가 순례자들입니다.

 

이 땅이 목적지가 아니고 영원한 나라가 목적지입니다.

 

 

 

우리는 아직 천국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천국을 향해 가고 있는 도상에 있습니다.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참 중요합니다.

 

 

우리는 홀로 걷는 것이 아니죠. 하나님과 함께 걷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이 순례의 도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 속에 일어날 수 있는

 

놀라운 일들이 경험되어져야 합니다.

 

삶의 과정에서 믿음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은 순례의 길에 큰 용기를 줍니다.

 

 

 

본문에서 아브라함과 사라가 아들을 낳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사건은 아브라함의 생애 가운데 주목할 만한 사건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난관을 통과하고 마침내 결실을 얻는 사건이죠.

 

 

 

믿음의 중간 경유지에서, 어떤 일을 경험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한계를 돌파하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본문에 보면,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상하였으나..

 

여자로서의 생산 능력이 끝이 났다는 겁니다. 이것은 로마서 319절에서 바울이

 

그가 백세나 되어 그의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라고 했습니다.

 

'죽었다'는 겁니다.

 

더 이상 인간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한계 수준을 한참 지났습니다. 거의 불가능합니다.

 

 

 

학습된 무기력증

 

 

 

여러분 우리가 살면서 수없는 인생의 한계지점에 서게 됩니다. 많은 한계에 부딪히죠.

 

아마 살아오면서 우리는 숱한 한계 상황에 부딪히며 살아왔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한계에 계속 부딪히다 보면, 그 한계가 내 인생의 경계선이 됩니다.

 

선을 딱 긋게 됩니다. 안 되는 구나.. 그러면 줄을 긋고 그 한계를 안 넘으려고 합니다.

 

한계의 지점에 부딪히는 게 반복되고, 거기서 계속 무너지면 선을 그어요. 더 이상 안 넘어갑니다.

 

 

 

벼룩도 1.1m 이상 뛴다는 데, 큰 통으로 뒤집어 넣어놓고 거기서 부딪히다 보니까

 

나중에 덮어 놓았던 통을 벗겨도, 더 이상 거기까지밖에 못 뛴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한계 지점에 계속 부딪히면, 그게 경계선이 됩니다.

 

   그 줄을 안 넘으려고 한다는 거죠.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세계가 참 중요해요. 반복된 한계 앞에 주저앉으면

 

   결국 거기가 내 인생의 경계선이 되고, 더 이상 넘으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분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셀레그만이라는 세계적 심리학자가 이 말을 사용했습니다. 학습된 무기력.

 

무기력도 학습이 된다는 거예요.

 

어떤 부정적인 결과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더 이상 어떤 것도 시도하지 않으려고 하는

 

심리적 상태에 빠진다는 거예요. 상당히 일리가 있습니다.

 

 

 

실제로 가만히 보면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있습니다.

 

어떤 일들에 대해서 이미 부정적인 결론을 맺고 있는 것이죠.

 

그런 결론을 맺는 순간 어떤 일에 대해서 기대하지 않죠.

 

그 뿐만 아니라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지금도 그럴 거예요.

 

지금 이 자리의 여러분들도,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을 통해서

 

내 안에 어떤 결론들을 갖고 있어요. 그게 우리의 뇌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기도 자체도 하지 않는 거죠. 기도하려고 생각조차 못하는 거죠.

 

이게 학습된 무기력의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나도 모르게 우리 안에 그렇게 경계선을 그었어요. 이미.

기도를 해도 그 경계선 안에서 기도한다는 겁니다.

 

묘하죠, 여러분. 기도는 기도고, 생각은 따로 하는 거예요.

 

이번에 우리 집회를 통해서 그 생각의 경계선을 뛰어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나는 나이가 많아서 안 돼 그건 자기가 그은 겁니다.

 

나이가 몇 세인지 모르지만. 사람마다 다르거든요.

 

 

 

어떤 분은 연세가 여든이 넘어도, 숫자에 불과하다고 사시는 분이 계시거든요.

 

그런데 한 30세 됐는데, 아 생각이 다 늙어버린 이런 친구도 있거든요.

 

 

 

어떤 사람은 나는 나이가 어려서 안된대요 또.

 

나이를 좀 먹어야 되는데, 너무 어려서 안된대요. 자기가 다 그어놓은 거예요.

 

자본이 없어서 안된대요. 요즘 자본 아무리 많아도 안 되거든요.

 

자본이 있는 사람들은, 아이디어를 찾고 있어요.

 

나는 능력이 없어서.. 스펙이 부족해서.. 핑계는 수없는 거예요.

 

 

 

요즘 목사님들도 그래요. 개척하면서 요즘은 개척이 안 된대요. 다 자기가 그어놓은 거예요.

 

성경 몇장 몇절에 그게 있어요? 내가복음이거든요.

 

 

 

여러분 기도의 시간보다 생각의 시간을 늘리면, 이성이 춤을 추게 되어 있습니다.

 

 

이성이 춤을 춰요. 이성에게만 우리의 삶을 맡기면, 삶은 얼어붙습니다.

 

우리의 이성은 한계선 안에서놀고 있습니다.

 

경험의 세계 안에서 만들어진 삶을 사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성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이성을 능가합니다. 아멘.

 

이성의 얼음바다를 깨야 해요. 확 깨야 됩니다.

 

그 안에 무궁한 세계가 있는데, 이성에 갇혀 있는 거죠.

 

 

 

여러분 이걸 우리가 계속 기도하시면서 그걸 하셔야 해요.

 

이성의 얼음이 너무 두꺼운 분이 계세요 어떤 분은. 매번 제 자리 걸음이에요.

 

변화가 없어요.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동일한.. 자기는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실제로 수없는 한계의 벽에 부딪히며 살아갑니다.

 

 

 

왜 믿음이 필요하죠?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과 접속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접속시키는 게 믿음이란 말이죠.

 

여러분, 믿음으로 한계를 넘어본 경험을 해야 믿음이 자랍니다. 그걸 경험해봐야 해요.

 

이 경험이 많이 쌓인 사람은 무적이에요.

 

 

마치 무적함대처럼, 파도가 부딪쳐도 그냥 밀고 나가는 거예요.

 

경험해봤기 때문에. 다른 세계에 사는 것입니다.

 

이번에 여러분이 다른 세계로, 즉 믿음의 세계로 넘어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현실의 벽을 뚫고 지나가봐야 해요. 돌파해야 해요.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학습된 무기력을 짓밟아야 합니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경계선. 인간의 이성에 갇혀 있는

 

그 얄팍한 이성의 세계를 뚫고 지나가야 합니다.

 

 

 

모두 다 안 된다고 하는데, 된다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자기는 보는 것이죠.

 

여러분, 믿음이 하는 일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경계선을 훌쩍 뛰어넘는 것입니다.

 

 

 

홍해를 건너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능력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홍해를 가르세요.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일에는 믿음이 필요했다는 거예요.

 

 

 

신약에도 여러분 38년된 병자를 낫게 하던지, 맹인을 낫게 하던지,

 

그 믿음을 보시고 믿는대로 될지어다. 계속 믿음을 이야기 하세요, 믿음을!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은 성경 안에서/ 성경 바깥에서 충분히 입증되고도 남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성경 바깥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은 충분히 입증되었고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해요. 믿음은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거부합니다.

 

합리주의와 이성주의를 넘어가야 합니다.

 

, 우리는 한계에 부딪히면, 인간적 대안을 마련합니다.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 인간적인 궁색한 답을 만들어내려고 애를 씁니다.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은 엘리에셀 종을 상속자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 당시 일반적인 풍습이에요. 상속자가 없으면, 종을 대리인으로 세우는 거죠.

 

 

 

그래서 아브라함도 엘리에셀을 그냥 상속자로 삼자라고 대안을 마련합니다.

 

사라도 마찬가지에요. 남편을 자꾸 여종 하갈을 통해서 자식을 낳자.. 대안 마련이에요.

 

 

 

여러분 우리는 인간적 대안을 대신할 때가 많습니다.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에서 실패하면, 대안을 모색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선택하는 것에 대해 매우 익숙합니다.

 

문제는 차선의 선택함으로써, 믿음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밀어낸다는 데 있습니다.

 

믿음이 약해지면, 대안이 밀고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면 끝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마치 대안을 만들어,

우리 때문에 곤란해진 하나님을 구출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많이 곤란하시죠? 제가 대안이 있습니다. 하나님 너무 고민하시지 마세요.

 

제가 해결해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해결사가 되려 합니다.

 

 

 

우리의 대안과, 하나님의 약속을 바꾸면 안 됩니다.

 

대안은 우선 보기에 엇비슷해 보입니다. 이스마엘이 안성맞춤으로 보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을 통해서 언약을 이룰 것을 약속하시죠.

 

 

 

인간의 대안은, 때로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한 지름길이, 도리어 멀고 먼 길을 가게 만듭니다.

 

 

아브라함의 변칙, 이스마엘을 낳은 사건으로 하나님은 화가 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침묵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일정한 거리를 두시고 침묵의 시간을 가지는데

 

창세기 16장과 17장 사이에는 13년이라는 공백기가 생깁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기보다, 조급한 결정이 얼마나 미련했던 것인가를

 

하나님의 침묵 13년이 보여 줍니다. 이게 시간 낭비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삶은 조급함과 싸워야 합니다. 조급해지면 악수(나쁜 선택)를 두게 되어 있습니다.

 

절대 믿음의 삶에는 조급함과 싸워야 합니다. 조급해지면 자기의 생각에 자기가 넘어져요.

 

자기 발에 자기가 걸려 넘어지는 거랑 똑같습니다. 가상의 시나리오를 씁니다.

 

 

 

믿음은.. 때를 기다린다.

 

 

 

여러분, 믿음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뭐냐면,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때를 기다리는 게 믿음이에요. 뭐가 믿음입니까?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는 게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안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유일한 대안을 기다리는 게 믿음입니다.

 

 

 

신자들이 여기서 실패를 해요. 아브라함도 실패한 겁니다.

 

기다리는 동안이 힘들어요. 기다림은 힘든 겁니다

 

여러분. 힘들고 힘든 게.. 기다림입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기다려야죠.

 

 

 

이 과정은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믿음이 좋다라는 그 말은, ‘기다림을 잘한다이 말입니다. 같은 말이에요.

 

 

 

임신했다고 금방 아이가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입덧을 하며 커져오는 배를 움켜쥐고, 수없이 몸부림을 쳐야 하잖아요.

 

그리고 만삭이 가까웠을 때 너무 힘든 거에요. 때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펄쩍펄쩍 뛴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믿음은 종종 시련을 겪습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 제대로 된 것인지 아닌지 시험을 거칩니다. 그게 기다림이에요.

 

믿음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기다림 가운데 계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것은 참 힘든 것입니다.

 

그때 우리 믿음은 시련을 겪지만 기다림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훌쩍 자라게 됩니다.

 

믿음으로 기다리면 하나님은 정확하게 역사하십니다.

 

 

 

온 타임 On Time. 확실한 것은 하나님은 때를 정확하게 지키신다는 겁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정확한 때에 지키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어기지 않아요. 약속의 때를 놓치지 않아요.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이 말은 아브라함도 포함된 거죠. 히11:11 

 

여기서는 아브라함보다 사라에게, 히브리서가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믿음으로 얻은 결과에요.

 

 

 

히브리서 11장에 여인의 이름이 딱 두 사람 나와요.

 

한 사람은 사라고 한 사람은 라합.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사라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의심한 적이 있습니다.

 

믿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완전히 믿지는 못했습니다.

 

 

 

창세기 18장에 천사를 만나고 난 뒤에 아브라함에게

 

내년 이 맘때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알려주죠. 그때 사라가 장막 뒤에 숨어서 웃었어요.

 

'이 나이에 무슨 아들이..' 웃은 거예요.

 

놀라운 것은, 우리가 피식 웃는 것을 하나님이 보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네가 왜 웃느냐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18:14절에 귀중한 말씀 하시죠.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이 때 사라에게 굉장히 믿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아무튼 창세기를 통해서 비춰진 사라의 믿음은, 확실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지만 아브라함과 사라가 점점 나이가 들어 늙고 기력이 쇠했습니다.

 

 

 

남자와 여자 가운데, 여자의 입장이 훨씬 더 현실적이었을 겁니다.

 

아이를 임신하는 여자의 입장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을 더 피부로 느꼈을 겁니다.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힘을 얻었으니..” 히11:11  

 

여러분 여기서 '잉태할 힘을 얻었다'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잉태할 힘이란 사라 자신에게서 나온 힘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실력도 아니죠.

 

하나님이 주신 힘이죠.

 

자신들로부터 나온 힘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주어진 힘(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상태와 조건은,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머리를 쓰면 별 방법을 다 동원해보겠지만, 하나님께는 간단한 거예요.

 

 

 

   하나님의 역사의 기록은, 간단한 몇 문장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것을 보면 복잡하지 않아요.

 

   ‘홍해를 건넜다에요. 그냥. ‘여리고가 무너졌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복잡하지 않은데, 인간이 좀 복잡한 게 문제에요.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사건을 인간에게 맡겼다면, 별 일을 다 했을 거예요.

 

   전략을 짜고 회의를 하고, 서로 싸우다가 볼일 다 봤을 거예요.

 

   싸우다가 여리고가 무너지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빠져 죽을 판이에요.

 

 

 

사라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겁니다. 사람은 너무 분석하는 데 시간을 보내요.

 

여러분 답이 없는 일을 분석하는 일은 의미 없습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절대 한계에서 필요한 것은 절대 믿음입니다.

 

 

 

사라가 본 것은 자신의 몸이 아니라, 이는 약속하신 일을 미쁘신 줄 앎이라.” 히11:11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믿음의 핵심은 뭡니까? 사라가 믿은 것은 자기의 상태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아브라함의 생애의 핵심 코드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미쁘신 분'이라고 얘기할 때, 따라오는 게 뭐냐면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라갔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뭘까요?

 

하늘의 별 같이, 해변의 모래알 같이 네 자손을 창대하게 하겠다.’고 하신 겁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자손에 대한 약속입니다.

 

모든 성경의 약속은 믿음으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습니다고 아무리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하고 붙들어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실상과 증거가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이 무엇이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 성취는, 언제나 하나님의 성품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 분은 미쁘신 분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약속은 사람이 만들어낸 말과 달라요. 힘 가진 사람들의 공약과 달라요.

 

지도자가 공약한 것도 지켜지지 않는 게 많아요. 불가능한 게 많아요.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어 있어요.

 

 

 

사람들이 아무리 만 명, 백만 명, 천만 명이 만들어낸 합의라 할지라도

 

그 결론은 신뢰할 수 없어요. 백만 명이 만든 합의라 해도, 이백만 명이 뒤집어버리면 돼요.

 

 

 

그런데 하나님은 달라요. 하나님은 미쁘신 분이다. 약속에 대해 미쁘신 분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그냥 보면 안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걸고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유가증권이에요. 돈으로 바로 맞바꿀 수 있는 겁니다.

 

앞부분에서도 그랬잖아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신앙은 확률의 싸움이 아닙니다, 여러분. 반드시 백 퍼센트에요.

 

하나님의 약속은 100%에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믿음이 가지는 확신은 개인적 신념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입니다.

 

 

 

신앙생활 하는 동안 우리가 말씀의 약속을 잘 살펴야하는 이유가 이겁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그냥 기도하면 안돼요.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받고 기도할 때 확 터지잖아요. 말씀을 붙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 없이 기도만 하면 이상한 길로 빠질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기도할 때는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달라고 기도하세요.

 

말씀을 펴 놓고 말씀에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하세요.

 

그 다음에 주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 해보세요. 훨씬 강력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대해서 성령께서 깊은 확신을 주시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임신된 것입니다.

 

그것을 내 가슴으로 품고 있으면, 마치 병아리가 부화되듯이

 

하나님의 정확한 카이로스의 시간에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는 희망은 단순한 낙관론이 아닙니다. 세상은 전부 다 이런 낙관론이죠.

 

잘 될 것이다라는 긍정적 관점과 다릅니다, ‘우리는 잘 될거야그건 믿음이 아니죠.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사람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고

 

그 분의 약속을 믿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시고 한계선을 넘어 다른 세계로 넘어가

 

마침내 열국의 어미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18:14절에.

 

사라가 웃을 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에요. '단산하였으나..' 불가능하였다는 거죠.

 

더 이상 생산의 능력이 없는.

 

그러나 창조의 능력이신 그 하나님.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를 통하여 그 아기 예수를 주셨던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으로 승리한 아브라함

 

 

 

하나님은 사라에게 잉태할 힘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신 겁니다.

 

믿음의 세계에서 주요 과목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죠.

 

하나님은 참으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십니다.

 

나이 1백세의 할아버지, 99세의 할머니.

 

그들을 통해서 하늘의 별들 같이, 해변의 모래알 같이 네 자손이 창대케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이죠.

 

 

 

여러분 오늘 히11:12절에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커다란 별과 해변의 무수한 모래 같이 무수한 자손이 생육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아주 대단한 일이죠.

 

 

 

여러분, 기적은 하나님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동시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은 행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히브리서 11장에서 강조합니다.

 

 

 

13:58절에,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더라.

 

예수님의 고향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 때문에 하나님이 능력을 행하지 않으셨어요.

 

, 믿지 않음으로 인하여. 우리의 믿음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우리가 믿고 나가면 하나님은 거절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의 믿음을 기다리고 계세요.

 

하나님은 능력을 가지고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분이에요.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나오길 기다리고 계신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기적을 기다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요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기다리고 계세요.

 

 

 

이번에 여러분의 믿음이 충만하게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기다리고 계세요. 믿어라, 믿어라, 나를!

 

 

 

우리의 믿음이 없어도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문제는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역사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되잖아요, 우리가.

 

하나님이 하신 거지,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에 참여토록 하기 위하여 우리를 불러들이신다는 거예요. 믿음으로.

 

마치 내가 기적을 행한 것과 같은 엄청난 영광을 누리게 하시는 거예요.

 

우리에게 믿음만 가지고 오라는 거예요.

 

 

 

마치 쫙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젓가락 들고 와 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이건 우리의 선택이에요, 믿음은. 오늘도 수없는 역사가 일어나지만

 

경험한 사람만 아는 거 아닙니까. 믿음으로 나아간 사람들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금도 말씀하십니까?

 

지금도 여러분 주의 종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이유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반응하라는 거예요.

 

 

 

그때 우리가 믿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그 말씀의 믿음으로 반응하고 받아들일 때

 

하나님은 우리의 가운데 놀라운 일을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기다리고 계세요. 우리가 온전히 믿음으로 반응하면

 

하나님은 더 이상 미루실 이유가 없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실 때마다, 믿음을 확인하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문제를 풀어나갈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신앙생활을 자꾸 하다보면 우리도 모르게 믿음이 변질됩니다.

 

 

 

내가 믿는 것 같은데 안 믿고 있어요. 믿는 척 해요. 믿는 척. 많은 분들이. 여러분 어때요,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져 있지 않습니다.

 

 

 

한 해를 살아오다 보면 수많은 한계에 부딪혀보면. 멍하니 핸드폰만 보고 있지

 

하나님과 통화할 생각은 안 하고 있지 않나요?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는 것은 두 세 시간 훌쩍 보내지만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은 미루고 있지 않나요?

 

믿음의 날이 무뎌져 있는지도 모르고,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우리의 마음에 솟구쳐 오르는.

 

그런 상태가 되면 한계를 뚫는 것입니다.

 

글쎄요 여러분 믿는다는 게 어떻게 보면 쉽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어려운 일이에요.

 

우리의 믿음의 날을 계속 갈아내는 일이잖아요.

 

 

 

이성의 얼음바다를 뚫고 나가는 파워를 만들어내는 것은

 

끊임없이 영적으로 민감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그 말씀 앞에 반응하고 끊임없이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서

 

내 안에 하나님에 대한 무한 신뢰가 용솟음쳐오를 때

 

우리의 이성이 만들어놓은 내 경험의 세계가 만들어놓은 그 선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 역사가 일어나야 해요.

 

 

 

너무 놀라운 세계가 있는데. 여러분 우리 안에 기적은요, 잠재되어 있어요.

 

단지 우리의 믿음이 제대로 그 잠재된 게 터져 나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거예요.

 

하나님의 역사와 우리의 믿음이 마주치는 순간에, 가공할 만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일상의 삶에서 믿음의 증거를 경험해야 합니다.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현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죠.

 

 

 

사실 여러분,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가 사백 년이었어요,

 

침묵기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는 사백 년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야말로 이스라엘의 불임기입니다. 단산을 한 거예요. 아무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어요.

 

 

 

예수님이 오시므로 때가 차서 만삭이 된 거죠. 하나님의 역사가 터질 만삭이 된 겁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부름을 받았어요. 미미하고 초라하게 끝난 것 같았지만

 

사도 행절의 역사가 일어나면서 봇물처럼 하나님의 때가 임하니까

 

만삭의 애가 터져나오는 겁니다.

 

 

 

그 때는 하나님의 카이로스의 시간이 꽉 찼어요. 밀고 나오는 겁니다.

 

사백 년 뒤의 역사가 일어나니까 어때요? 하루에 삼천 명, 보잘 것 없는 배들을 통해서도

 

하루에 삼천 명, 오천 명, 허다한 무리들이 죽기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탄생되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바다의 모래처럼,

 

하늘의 별처럼. 그 안에 우리도 들어 있는 거예요. 여러분. 기적이 일어난 것이죠.

 

 

 

여러분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과 상상을 초월해 계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순간 바로 우리가 임신이 되는 순간이에요.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동안에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 안에 꿈을 심어주시고 기대를 가지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보여주십니다.

 

바로 그 때 잉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번에 히브리 11장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임신되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약속을 가슴으로 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믿음의 순도를 높여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순례의 여정에 하나님의 능력을 반드시 한 번 이상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한계 지점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

 

하나님의 놀라운 성품을 경험하는 축복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삶에 이 순례의 여정의 큰 용기와 격려와

 

하나님의 놀라우신 그 말씀하심을 실제의 삶 속에 날마다 경험하므로

 

하늘의 소망을 더욱 더 굳세게 붙잡고 지치지 않고 나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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