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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자기긍정

LNCK 2015. 3. 23. 08:07

◈십자가와 자기긍정            고후5:14~15절          인터넷에서 스크랩, 녹취


    

 

고난주간을 맞이한 우리는, 함께 심자가를 묵상하며, 또한 함께 십자가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과거의 역사적 유물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체험해야 할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십자가는 단지 종교적 상징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에 임해야할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통로인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들었으므로, 그 놋뱀을 쳐다보는 사람마다 다시 살았던 것처럼

우리가 믿음의 눈을 들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우리에겐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라보는 것은 믿음입니다. 무엇을 바라보는 것일까요. 무엇을 믿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못 박히신 십자가의 자리는 예수님의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자리였습니다.

모세가 들었던 녹뱀은 바로 우리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

 

그 흉한 뱀의 모습으로 형상으로 달리셔야만 했던 이유는

바로 뱀의 꾐을 받아 타락한 저희들의 육신에 생명을 제하시고

새로운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그 나무에 달리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리였습니다. 우리가 죽어야 할 죽음이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예수님이, 나의 자리에 예수님이 대신 매달리셨음을 우리는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님 안에서 그 십자가에서 함께 죽었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함께 장사되었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사지낸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일, 놀라우신 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승천하셨을 때, 우리도 함께 그러했음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셨을 때 우리도 주와 함께 다시 올 것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1. 십자가를 묵상할 때, <자기 긍정>이 일어나는 이유는,

<자기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에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생명에선 일어나지 않았던 변화가 일어납니다.

내 힘으로 끊을 수 없었던 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내 안에 새로운 능력이 일어납니다.

새로운 생명의 역사로 말미암아 예전에 누릴 수 없었던 평안과 기쁨을 누리고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인하게 될 때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있습니다.

새로운 생명으로 인해서 우리 자신을 긍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과 더불어서 우리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긍정하게 됩니다.

옛사람은 부정하되 새 사람이 우리를 긍정하고

어떠한 고난과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긍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옛사람의 긍정은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옛사람의 긍정은 세상의 긍정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십자가의 긍정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고백합니다.

 

옛사람의 긍정은 죄가 있어도 문제가 있어도 없는 것으로 여기고 살라 말하지만

십자가의 긍정은 우리가 십자가에서 회개할 때만 우리에게 새로운 길이 열린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옛사람의 긍정은 내가 잘된다고 생각하면 무엇이든 잘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안에서 변화된 자기의 긍정은 내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이면 나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게 십자가의 자기긍정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나를 부인함과 동시에 나 자신을 긍정하게 됩니다.

 

이것은 역설적인 고백입니다. 어떻게 나를 부인하면서 동시에 나를 긍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옛사람과 새사람이 십자가에서 분리된 가운데, 새로운 생명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가운데

우리에게 새로운 인생에 대한 소망과 비전과 긍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를 새롭게 발견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나를 옛사람의 내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생명의 나로 발견하게 되는 것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총.

 

로마서 8장 1, 2절에 이렇게 고백하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로마서 8장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그 어느것도 나를 끊을 수 없다.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우리는 인생을 긍정하게 되는 겁니다.

 

십자가의 자기 긍정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십자가는 우리 자신의 가치를 발견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그것을 십자가는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멸함과 동시에 얼마나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사랑의 도구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정하셨느니라.'롬5:8

 

우리 옛사람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살아남을 입어야 할 소중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나의 가치를 깨닫고 나의 삶을 긍정해야 되는 줄로 믿습니다.

 

최근에 맥스 루케이더 목사님 책이 한 권 번역되서 들어왔는데

<하나님 저도 고칠 수 있나요> 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아주 좋은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느 도시의 큰 백화점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그 도둑이 밤새 백화점 안을 뒤지고 다니더니 무사히 빠져나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 도둑이 아무 물건도 훔치지 않았다는 겁니다. 모든 물건이 그대로였습니다.

그 도둑이 밤새도록 한 일은 모든 물건들의 가격표를 다 바꿔놓은 겁니다.

 

아주 비싼 것을 싼 것으로, 싼 것은 비싼 것으로. 다 가격표를 바꿔놓은 것입니다.

다음날 직원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을 시작합니다.

손님을 맞이하여 네 시간동안 영업이 지속되었습니다.

알지 못하고. 그 사이에 바가지 요금을 쓰고 간 사람도 있고, 비싼 물건을 싸게 사간 사람도 있다는 거예요.

 

왜 그 이야기를 기록했냐면 그게 바로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모습입니다.

사탄은 이 세상이 일어나는 모든 일의 가격표를 다 바꿔놓은 거예요.

소중한 가치를 아무 쓸모없는 가격표로 바꿔놓은 겁니다.

 

우리는 왜곡된 가치 체계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탄이란 도둑이 우리 인생의 가치를 다 바꿔놓은 거예요.

천하보다 귀중한 생명을 그 작은 돈의 유혹에 넘어가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잘못된 가치 체계를 만들어놓은 겁니다.

 

작은 돈에 국가를 배신하고 은혜를 배신하고 관계를 배신하는 인생들로 우리를 바꿔놓은 겁니다.

우리의 가치 체계는 심각한 혼란 상태입니다. 사탄이 그렇게 만들어놓았어요.

 

부모님들은 자녀를 평가할 때 잘못된 가치 체계로 평가합니다.

공부를 잘하면 가치 있는 사람이요, 공부를 못하면 가치 없는 인생이라 말해요.

잘했을 때는 칭찬 받아 마땅하지만 실수했을 때는 버림 받아 마땅하다고 가르쳐요.

 

능력 있으면 가치 있는 인생이요, 그렇지 않으면 가치 없는 인생이라고 평가받는 인생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장 잘못된 가치는, 외모에 의해서, 외모가 훌륭하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그런 겁니다.

 

보이는 것에 의해서 내 인생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의 가치 체계가 혼란스럽습니다.

모든 가격표가 바뀐 백화점처럼 우리 인생들이 잘못된 가치 체계 속에 평가하고 있다는 거예요.

 

어디서부터 이 잘못된 가치 체계가 잘못됐습니까.

사탄이 우리에게 잘못된 가치를 심기 때문에,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라고 생각하기에

우리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도 없이 아무렇게나 살다가 죽으면 끝이다라는 생각 속에

우리의 가치는 더 혼란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죽음의 위에는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가치는 무엇으로 평가합니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많은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것은, 예수님은 그 세상의 가치로 사람들을 평가하지 않으셨다는 것에

사람들은 새로운 희망을 얻었던 거예요.

 

▲예수님이 만나셨던 사람들은, 그 당시 사람들의 기준으로 볼 때 세상에 도움이 안되던 사람이었습니다.

창녀, 사마리아인들, 이방인들 등 유대인들이 볼 때 가치 없는 인생들,

 

그런 사람들을 대할 때에 예수님은 그들의 죄는 예리하게 지적하지만

그들을 대할 때 그들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 있는 사람인가를,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사람마다 가치를 느꼈어요.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향하여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다시는 가서 죄를 범치 말라.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 하셨을 때에

예수님은 그 여자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인생인지를. 그가 십자가에서 변화되면

얼마나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는 여인인가, 예수님은 그렇게 대해주셨다는 거예요.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예수님이 초대받으셨을 때에, 시몬은 예수님께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지만

식사 중에 들어온 한 여인이 옥합을 깨뜨리며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예수님의 발을 입 맞출 때에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이 여인이 어떤 여인인지 안다면 이런 일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너무나 무가치한 여인의 그 사랑을 받아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인의 수치를 다 끌어안으시고

그 여인을 참으로 가치 있는 여인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사람들은 가치 있는 것만 사랑하지만,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므로

우리 모두를 가치 있게 만들어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으로써,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께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라는 겁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는 소중한 나를 발견하고,

십자가로 구원받은 인생이라는 것, 나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고

우리의 삶을 긍정할 수 있게 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가치있는 인생인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 사랑하시므로

우리를 사랑하시며 십자가에 못을 박아버리셨어요.

 

내가 너희를 이처럼 사랑한다. 우리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입니까.

누구나 자녀가 죽게 되었을 때, 그 자녀를 살릴 수 있는 길이 부모가 죽는 길이라면

정상적인 부모라면 기꺼이 죽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은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보다 더 큰 사랑을 주신 것입니다.

아들을 내어주신 사랑.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요..

 

그러므로 이 가치를 십자가에서 발견하고 우리는 삶을 긍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가,

우리의 삶을 가치있게 여기고 소중히 여기고, 우리의 삶을 긍정하며 살아가는 우리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체험은, 바로 우리의 삶에 자기 긍정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적극적 사고 방식이 아니라, 그냥 문제가 있어도 덮고 죄가 있어도 넘어가는 그런 의식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변화된 나, 옛사람은 못 박히고 새 사람이 내 안에 생겨났을 때에 생기는 삶에 대한 긍정,

나의 소중한 인생에 대한 가치를 깨닫고 인생을 긍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 자신의 긍정을 발견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십자가를 체험할 때, 자기 긍정이 되는 이유는

우리는 연약함 속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하용조 목사님께서 마지막 일본에서 치료받으시는 가운데,

그 기간은 하 목사님의 가장 연약했던 기간입니다. 그러나 그 기간에 일본 CGN TV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러브 소나타가 열 몇 차례 이루어졌어요.

하 목사님의 가장 연약한 기간에 가장 놀라운 일본의 영적인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거예요.

 

약할 때 강함되시는 하나님. 하용조 목사님의 연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셨다는 거예요.

 

지금도 기억하시는 것은 러브 소나타를 설교하시기 위해서 동경에서 투석을 마치자마자

공항으로 가셔서 오신 후에 집회를 마치자마자 바로 가셔야만 다음 투석을 받을 수 있는.

투석은 조금만 시간이 늦어도 위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본 내에서 다니는 것조차 스케줄을 맞추기 어려운 그 연약한 몸으로

하용조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일본 열도의 꺼지지 않는 부흥의 열기를 일으키신 거예요.

우리가 연약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더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용조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가운데 몇 번 이렇게 말씀하셨죠.

'여러분, 내가 몸이 아프다고 못 한 게 있습니까?' 기억나시죠?

 

그것은 세상의 긍정적 사고 방식이 아닙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새 생명이 고백하는 자기 긍정인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발견하는 자기 긍정,

하 목사님의 이러한 십자가의 긍정을 우리도 함께 본 받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기를 축원합니다.

 

바로 그 고백을 사도 바울이 했죠. 고린도후서 12장. 9절부터 10절의 말씀입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내가 약할 때에 곧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체험한 자가 고백하는 자기 긍정인 것입니다.

나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방해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통로가 될 것이다.

나는 연약한 가운데 처했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연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일으키실 수 있다.

이것이 십자가의 자기긍정. 약할 때에 강함이니라.

 

우리는 세상에서 강자와 약자로 사람을 구분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성공을 거듭한 사람은 계속 성공을 거듭하기에 나는 또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에 강자라고 생각하고.

실패를 거듭한 사람은 자신을 약자라고 생각해요.

 

여러분은 스스로 강자라고 생각합니까, 약자라고 생각합니까. 이러한 구분법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가 두려움 속에 있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볼드윈이라는 심리학자는 사람이 두려움을 강하게 감추기도 하고 약하게 감추기도 한다.

강하게 감춘 사람은 강자처럼 보이고, 그것을 미처 감추지 못한 사람은 약자처럼 보일 뿐.

우리는 모두 연약할 존재일 뿐이라는 겁니다.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면이 있죠.

직장에서 강자인 상관에게 괴롭힘을 받은 사람은 집에 와서 약자인 가족을 괴롭힙니다.

그런데 직장에서 약자들을 괴롭히는 상관은 집에 가면 강자가 있어요, 아내.

 

이 사회를 보면 약자와 강자의 사이클 속에서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고,

또 약자는 강자가 되서 약자를 괴롭히고. 사도 바울은 뭐라고 고백합니까.

이 세상의 사이클을 끊어버리는 거예요. 약자와 강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강자의 교만을 십자가는 끌어내리고

연약한 자의 두려움을 벗기고 용기를 주는 게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나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나는 연약하지만

내가 약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남을 믿습니다.

 

나는 십자가 위에 죽어야 할 존재입니다. 절대 교만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체험한 사람은 자신을 강자거나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내가 강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계시기에 내가 강할 수 있다.

이것이 세상의 방식이 아닌 십자가를 체험하며 살아가는 인생의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약함 속에 강하게 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기 때문이라.

 

여러분 그리스도의 능력은 십자가의 연약함으로 죽임 당하는 능력이었어요.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있었으나 내려오지 않는 능력이었어요.

 

의인이었지만 죄인 취급을 받고 죽임 당하는 능력이었어요.

강한 분이셨지만 스스로 연약한 자가 되는 능력이었어요.

 

능력이 있었지만 스스로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도리어 죽기까지 낮아지는 능력.

되려 우리를 강하게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살리신 그리스도의 능력.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의 어떤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강건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병들어 몸이 아파 누워잇는 분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좌절하는 분들.

이제 십자가 위에서 여러분이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가 약할 때에 곧 강함이니라.

내가 연약하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 수 있게 됨을 믿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자기긍정입니다.

 

 

◑3. 십자가를 체험한 사람이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이유는

이제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살지 않고,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기 때문입니다.

 

본문 고린도후서 5:14~15절을 읽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그 분을 위해 살게 하시려 십자가에 못 박히셨어요.

십자가를 체험하는 사람은 그 마음 속에 갈망과 열망이 일어납니다.

더 이상은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자 하는 열정, 이것이 긍정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향하여 갈망합니까. 우리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갈망에 의해 결정됩니다.

불교에서는 우리의 모든 욕구와 갈망을 무의 상태로 보내라고 합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갈망을 무의 상태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에너지를 욕구를 바꾸어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는 갈망으로 바꾸라는 겁니다.

 

그 에너지를 그리스도에게로 바꾸라. 이것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삶을 바꾸시는 십자가의 자기긍정입니다.

우리의 갈망이 더 이상 나 자신을 위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는 긍정.

이것이 십자가를 체험할 때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를 위하여 살아가는 인생, 바로 그것이 우리가 살아야 할 목적이요 가장 분명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삶의 목표를 찾으셨습니까? 십자가를 체험한 사람은

이제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결단과 목적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십자가를 체험했다면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예수를 위하여 살겠다는 결정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17세기에 목사였던 조지 허버트라는 찬송가 가사를 많이 쓴 분이 있죠.

그 분의 한 찬송시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주를 위하여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여,

범사에 주를 보게 하시고 나 무슨 일을 하든지 주를 위해 살게 하소서.

 

범사에 주와 더불어 하면 천한 일이란 없습니다. 주를 위해 나는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밝고 깨끗해집니다.

그 말로 사는 종에게는 허드렛일도 신성해지고. 주의 말씀을 위해서라면 청소도 즐거워집니다.

무엇이든 금으로 바꾸는 신비한 돌이 여기 있으니 하나님이 손 대시는 것마다 찬란한 빛을 발합니다.

 

범사에 주와 더불어 주를 위하여 하면 천한 일이란 없습니다.

청소도 즐거워집니다. 허드렛일도 신성해집니다.

주를 위하여 할 때에,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주를 위해서 할 때

우리의 일은 거룩해지고 신성해지는 것입니다.

 

골로새서에서 그 당시의 종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종들아, 너희가 하는 일을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라.'

 

만일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내가 저 사람의 종으로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의무기에 하는 거요. 책임 있는 일만 하고 끝내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서 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기쁨이 된다는 거예요.

 

종들에게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에게도 권합니다. 주인들아,

'종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 주인들도 종들을 대할 때에 주를 대하듯 하라.'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체험한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의 인생을 살아야 할 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일터에서 종들은 비굴하게 이를 갈며 살지 말라.

아무리 허드렛일이라도 주를 위하여 하는 일로 하라는 거예요.

 

사람에게 보이듯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 하라. 결혼 생활에도 적용을 하죠.

에베소서 5장에서. 남편과 아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므로 피차 복종하라.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대할 때 주께 하듯 하라. 주께 한다.

우리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사람 눈치 보는 일이 아니라 그 모든 일을 무엇을 하든지 주를 위하여 살 때에,

우리의 인생은 의무감에 젖어 사는 인생이 아니라, 기쁨으로 사는 인생이 될 줄 믿습니다.

 

의무감에 젖어 사는 인생은 절대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체험한 사람은 십자가의 자기 긍정을 경험한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주께 하듯 하는 인생으로.

우리의 일터에서, 가정에서, 관계 속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우리의 삶에서 지나치기 쉬운 어려운 이웃들에게도 주께 하듯 하라. 예수님이 말씀하셨죠.

마지막 심판 때에 내가 굶주렸을 때 네가 먹였고 내가 목마를 때 네가 나를 마시게 해주었다.

사람들이 놀랍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 합니다.

 

십자가의 자기 긍정을 경험한 사람은 내가 처한 곳의 지극히 작은 자가 누구인가를 찾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직장 상사가 아무리 고달프고 힘들게 하는 사람일지라도 주님께 하듯 해보십시오.

놀라운 십자가의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아프게 하고, 늘 말썽만 일으키는 부하 직원이 있다 할지라도 주께 하듯 해보십시오.

십자가의 능력이 그 직장에 임할 줄로 믿습니다.

 

부부 관계도 부자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에겐 주 안에서 순종하라 그랬어요. 그리고 자녀에게는 노여웁게 하지 말라.

우리 모든 인간 관계 속에 주를 위하여 살아갈 때에 주님을 향해 살아갈 때

십자가의 능력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체험한 사람들은 우리 인생의 이런 경험을 하는 거예요. 내가 얼마나 소중한가,

이 세상이 나를 평가하는 가치가 아니라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데

하나님이 나를 대신하여 죽기까지 나를 가치 있게 만드셨는데

나는 나를 얼마나 가치 있는 인생으로 여기며 살아갈 것인가.

 

나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 내가 연약하고 고난 가운데 있지만
나의 연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것이다 믿고 내가 약할 때에 곧 강함이라 고백할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 긍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더 이상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 그랬죠.

강권이란 말은 다른 여지가 없다는 거예요. 이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는 것 외에는

내게 삶의 기쁨을 주는 것이 없다는 거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살아가는 인생만이 나의 가장 큰 보람이요 기쁨이요 전부인 것.

나의 인생의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경험하는 자기 긍정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자기를 부인하며 동시에

나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고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긍정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새 생명의 축복입니다. 새 생명, 새 사람의 인생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을 긍정으로, 모든 고난과 환란 속에서도 믿음으로 주를 바라보며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타자: JHW & J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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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자기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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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자기긍정(위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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