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으로써 육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7:25~8:2, 8:13 스크랩, 출처보기
*위 동영상의 4:16초부터 아래에 녹취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 진리
▲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를 두 부분으로 나누면, 전반부 1~4장은 "구원 받으려면" 에 대한 답이구요,
후반부 5~ 8장까지는 "죄를 이기려면", 이 두 부분입니다.
"구원받으려면", "죄를 이기려면" 이 안에 신앙생활의, 거의 모든 답이 다 들어 있는 거예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초점을 잘 맞추셔야 돼요?
신앙생활에 중요한 핵심은, 죄를 이기는 비결을 배우는 것입니다.
뭐 비젼도 중요합니다. 지금 비젼스쿨 하고 있잖아요.
은사도 중요합니다. 은사를 활용해야 돼요. 그리고 뭐 여러 가지 사역도 다 중요해요.
하지만 죄를 이기는, 비결을 깨닫지 못하면,
비젼도, 은사도, 사역도 다 모든 것도, 아무 가치가 없어져 버려요. 죄라는거 통해서 다 깨져 버리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창세기에 인간에게 주셨던, 그 어마어마한 축복도,
선악과 하나 따먹은 죄로 말미암아 다 깨져 버렸잖아요.
그래서 성경은, 가만히 들여다보면요,
뭐 비젼, 리더쉽, 은사.. 그런 이야기가 많지 않고,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어떻게 죄를 이겨나가는가에 대한, 그 길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제가 안타까운것이 뭐냐면,
분명히 거듭났어요. 분명히 성령 받고, 정말 예수님 만났는데,
그 후로 건강한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분들이, 그 외로 적다라는 거예요.
분명히 주님 만날 때는, 막 눈물 흘리고, 막 정말 구원의 감격을 갖고,
'나 주님을 만났습니다.' 이러한 그 구원받은, 경험은 분명히 명확한 분들은 많은데,
그 다음에 신앙생활의 풀이 꺾여 버리는 거예요. 그때처럼 충만한 기쁨을 못 누리는 거예요.
그리고 첫 사랑, 빨리 회복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고, 뭔가 신앙생활에 힘이 없고, 기쁨이 없고,
삼손처럼 영적인 힘이 빠져 버린 가운데, 그렇게 무기력하게, 신앙생활 하는 분들이 꽤 많거든요.
우리도 그런 경험 해보셨잖아요. 그게 왜 그러냐면, 이런 비유를 들 수 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지금은 그래도 영양이 좋고, 그리고 의술이 발달되어서,
아이가 태어나면, 영아 사망률이 우리나라는 굉장히 적어요. 생존률이 높다라는 말이예요.
그러나 과거에는, 생존률이 아주 낮았죠. 그 아기가 태어났을 때,
그 아이의 생명을 앗아가는, 수많은 위험의 환경에 노출되잖아요.
그래서 태어나자 마자, 막 예방주사 접종하는게, 천연두, 간염,
기타 이러한 병들로 인하여, 예전에 얼마나 많이 죽었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 병원균을 이길 수 있는, 약이나 면역력의 발달들로 인하여, 많이 죽지 않잖아요.
저는 처음에 우리 큰 아이가 태어났을 때, 한 번도 아이를 키워본적이 없으니까, 애가 막 불안한 거예요.
이 갓난아이가 살 수 있을까? 막 걱정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자다가 새벽에 깬 다음에, 아기가 숨을 쉬나.. 이렇게 살펴 봅니다.
그러면 숨을 쉬면, 안도에 한숨을 쉬고, '너 살아 있구나.'
애를 보며 '얘가 이 엄청난 바깥에 그 병원균을 잘 이길 수 있나?' 그런 불안한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둘째부터는 안들었습니다. 첫째만 그랬어요. 불안 하더라구요. 왜냐면 너무 약하니까요.
▲여러분 영적인 원리도 똑 같은거 아세요?
한 아이가 태어나긴 태어 났지만, 구원 받았지만, 그가 노출되어 있는 영적 환경은, 좋은 환경이 아닙니다.
사탄과 죄의 병원균들이, 득실득실 대는 세상인 거예요.
그래서 거듭나긴 거듭 났는데, 그냥 몇일 못가서, 그 은혜를 다 까먹어 버리고,
그냥 성령세례는 수련회 가서 받았는데, 경배와 찬양 학교 가고, 이런 수련회에 가서,
막 그 아이들이 주님을 만나고, 막 행복해 했는데,
학교가 개학하니까, 어떤 소문들이 들리냐면,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힘들어 합니다.
대학생들은 신입생 MT가서, 선배들이 술을 권유하고, 그런 문화속에서, 영적으로 너무 어려워합니다.
고등학생들도 학교에 입학 했는데, 뭐 공부 따라 가느라고, 너무 너무 힘들어 합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 있는 거예요.
분명히 주님의 생명은 얻었지만,
지금 노출되어 있는 영적인 환경이, 신앙을 지키기에는 녹녹치 않은,
영적인 질병의 여러 원인들, 이 속에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지금 싸워 나가야 된다.. 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영아 사망률을 낮추듯이,
정말 우리가 건강하게, 그 영적으로 태어난 아기가, 성령충만 해져서,
하나님을 위한 열매를 맺는 아이까지 되려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따라 하겠습니다.
"죄와 시험을 이기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이게 핵심이예요.
여기서 답을 얻지 못하면, 이 훈련을 하지 못하면, 그의 신앙은 볼것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교회에서, 죄에 대한 설교를 많이 하는 거예요. 오늘도 또 그 설교하는 거예요.
원래 다른 설교 하려고 그랬거든요.
때가되면, 믿는자의 권세같은, 뭐 그러한 능력있는 말씀도 전하겠지만,
근데 주님이, 그것도 중요 하지만, 성도들이 정말 죄와 싸워서 이기는, 이 기초가 되지 않으면,
그 안에 능력이 의미가 없다. 이게 기초라고 말씀 하셔서,
오늘도 다시 한번, 죄와 어떻게 싸워 이기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원리를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처음부터, 뭐 완전히 이기는 신앙인은 제가 보기에는 거의 없어요. 많이 넘어집니다.
초창기에 쓰러져 있는 상태에서, 머물러 있지 않고, 회개하고, 또 주님 의지하고, 또 일어나고,
그리고 로마서 보고, 성경 읽고, 이 안에서도 답 찾고, 진리의 검으로 또, 싸워 일어나고,
또 승리하고, 또 넘어지고, 그렇게 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저의 결론은 실패가 아니라, 승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죄와 싸워 이길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거예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신앙 생활이, 바로 이 싸움에 잘 싸워서,
이 죄와의 싸움에 끝까지 이겨야, 무사히 천국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주제가 우리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에 핵심이예요. 저는 구원을 쉽게 설교하지 않아요.
뭐 이렇게 실패하고, 넘어져도, 그냥 죄 가운데 살아도, 당신은 안전합니다..이건 완전 미혹이예요.
성경을 읽어 보면, 그렇게 말씀하는 구석 없어요. 막 경각심을 줘야 됩니다.
넘어 질수 있어요. 거기까진 맞아요. 괜찮아요. 넘어질 수 있어요.
그러나 넘어진 상태에서, 머무르면 안 되고,
다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능력으로 이겨 나가는 것이, 십자가의 길, 좁은 길, 구원의 길이예요.
저는 여기까지 이 싸움을 싸워 왔고,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앞으로 넘어질 수 있냐구요? 그렇다고 봐요.
안 넘어지길 바라지만, 충분히 가능성을 저는 인정해요.
하지만 저는 또 일어날 거예요.
저에게는 넘어졌어도, 일어날 수 있는, 하나님의 진리를 저는 소유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능력입니다. 저는 감정을 따라 가지 않아요. 진리가 능력이예요.
하나님이 저에게 그 진리를 깨닫게해 주셨습니다.
오늘 그 중에서 칼 하나를, 여러분의 손에 쥐여 드릴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대에, 아까도 말씀을 드렸듯이,
주님께서, 이 곳에 교회를 세워주셨고, 저를 이 시대에, 주의 종으로 세워 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사역을 해야 되겠습니까?
주님 지금 시대에, 기독교의 패러다임이 굉장히 급박하게 변해가고 있어요.
불과 1년 2년전까지, 한국교회를 주도해 왔던, 그 흐름들이 다 무너져 가고 있는거 아세요?
물론 다 무너지는건 아니예요. 하지만 뭔가 새로운 답을 요구하고 있어요.
물론 완전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계시록의 '새 (신선한) 노래'처럼 '새 메시지'를 요구하고 있어요.
주님께서 저에게 강조하라고 말씀하시는게 뭐냐면,
"정말 죄와 싸워 이기는, 거룩한 군대가 일어나는 것이
이 마지막 시대에 내가 너를 통하여 선포하길 원하는 메시지다."
저는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신해요.
저도 다른 부분에 대한 부분에 대한 지식이 있습니다. 전할 수 있어요.
하지만, 기름 부으심이 성령께서 원하시는 말씀을 전할 때 더 강하게 역사 하는데,
기름 부으심이 지금,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일어나는"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춰질 때,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거예요.
왜요?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각 교회 가운데, 그렇게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들은, 거의 그 메시지로 가고 있어요.
마지막 때이기 때문이예요. 엄청난 죄와 세상에 그 세속이 쓰나미처럼 몰러오고 있어요.
그 가운데, 이 죄와 징면해서, 죄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복음의 권능으로, 정면 돌파하면서,
그것을 싸워 나아가 이기는,
이 명확한 죄와의 싸움과, 승리의 이 복음의 기본적인, 핵심적인, 이 믿음에 서지 않으면요,
리더쉽, 비젼, 은사, 다 좋지만, 그게 안되면요, 지금 와르르 무너집니다.
우수수 낙엽 떨어지듯하는 소리가 들릴 수도 있습니다.
다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이예요. 또 하나님이 회복 시켜 주실 거예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능력도 있고, 타고난 면도 있었지만,
이 죄와의 싸움에서, 명확하지 않으니까, 그런 어려움들이 오는 겁니다.
이런 면에 무관심하게 살면.. 결국 자기 자신이 최대 피해자가 되는 거죠.
저도 제 자신을 점검하면서,
우리 교회가 거룩한 군대로 서서, 건강하게 진군해 나아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육신이 올라올 때는, 감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롬7:25절.함께 읽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 말씀이 보면, 제가 헷갈리는 것이, 말이 앞뒤가 안맞아요.
'예수님의 말미암아 감사한다' 했으면, 이어서 승리를 이야기 해야 되는데,
반대로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면서,
뭔가 꿀꿀하게 끝나버려요. 이 무슨 이야기예요?
도대체 구원받기 전에 이야기예요? 구원받은 후에 이야기예요?
이 이야기는 구원받은 후에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은, 실패를 의미하는 내용은 아니예요. 그러나 현실을 보여주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합니다.
그런 즉, 구원 받았으니까 우리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사랑해요. 온 맘과 정성 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되기 원합니다. 그랬잖아요.
구원받은 신자들은, 거룩한 열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처럼 온전해 지고 싶고, 예수님처럼 사랑의 사람이 되고 싶어요. 거룩한 신부가 되고 싶어요.
이렇게 '우리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섬깁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 죄덩어리인 육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를 따라 가고 있다 라는 거예요.
여전히 죄에 끌리고 있다라는 거예요. 여전히 죄에 배고파하고 있다라는 거예요.
이 현실이, 신자에게 이해가 잘 안 되는 거예요.
내 마음은 그렇게 거룩을 갈망 하지만, 동시에 이 육신 안에서는,
'그거 지겹다. 나를 그렇게 사랑하고 있지 않다. 나는 내 멋대로, 내 자아를 추구 하면서 살고 싶어.'
그렇게 원하는 내 안에, 내 육신은 조금도 안 변하고, 죄를 섬기고 있다라는 거예요.
좀 황당한 이야기죠. 네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로마서 7장, 8장이 그걸 설명하는 겁니다.
바울은 명확하게 알았어요. '아 이게 육신이구나!'
이게 육신의 작용이라는 것을 알아야지만,
그 순간에 하나님이 주신 해답, 즉 복음의 능력으로써,
그 부분을 처리/대처하면, 그 다음에 답이 주워지는 거거든요.
근데 모르면 계속 딜레마에 빠진다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신앙이 성장 하면서, 하나님이 통과 시키는 필수 과목이,
육신의 소욕이 무엇인지에 대한, 감각을 주시는 거예요.
여기에 때로는 실패가 자주 반복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실패가 반복되면서 스스로 학습하셔야 돼요.
'아 이게 육신이구나.'
그 다음에 이 육신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으로, 처리해 나가시면 되는 거예요.
▲먼저 '육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싸우려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어떤 분의 글을 보니까, 이런 글을 쓰셨더라구요.
"잠깐 콧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갔습니다. 날씨를 허락하신 주님을 보지 않고,
자꾸 짧아지고, 얇아진 여자들의 옷에, 자꾸 제 눈길이 갔습니다.
근데 나만 그런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분들도, 다같이 그러는 것 같아요.
자꾸 죄의 본성이 살아납니다.
그럴수록 제 죄의 본성에, 십자가의 피를 물들입니다."
자 이제 봄에, 여성들은 옷을 잘 입으세요.
너무 이렇게 유혹하듯 입지 마시고,
아무튼 자 그때 남성들에게
막 눈이 돌아가고, 뭐가 이렇게 속에서 살랑살랑 올라 올 때,
'아 이게 육신이구나!' 하고, 먼저 그 실체를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딱 그 순간에, 아 싸울려고 하는 태도로, '아 이게 육신이구나. 지금 적이 발견되었다.'
그런 태도로, 비상을 걸고, 싸울 태세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런데 '아 이제 육신을 따라가야지. 어쩔 수 없어. 나를 받아주세요.' 이렇게 하면 안 돼요.
여러분. 다시 한번 그런 살랑살랑한 마음이 올라올 때,
'아 이게 육신이구나.' 딱, 감지 하셔야돼요.
그 다음에 그 고백처럼, '십자가의 보혈에 적신다' 라는 부분은 차츰 뒤에 설명합니다,
▲운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크리스천들도 운전하면서, 시험에 많이 들더라구요.
저는 좀 성격이, 급한 면이 많구요, 약속시간에 대한 강박증이 굉장히 심합니다.
특히 심방을 가야 되는데, 늦으면 안 되는데,
근데 이제 어떤 우리 사람들 얘기 들어 보면, 막 좀 이러면 속에서,
막 십원짜리, 이십원짜리, 막 십팔원짜리 막 나오고, 막 그러잖아요.
자 그런 혈기가 올라 올 때, '아 이게 육신이구나.'
이걸 파악하셔야 해요. 그저 모르고.. 자기 육신에 져서, 욕하고 넘어가면 안 됩니다.
육신의 그 활동을 파악할 때, 내가 한발 떼서, 거기에 잡히지 않고,
"주여 주여" 하면서, 그 다음에 싸우는 작업에 들어가요.
그런데 그 육신의 활동을 파악조차 못하면, '육신에 져서' 죄를 짓고 살 수밖에 없는 거지요
자 요정도까지는 싸우기가 좀 쉬워요.
그런데 아래 예는, 그 육신과의 전쟁이 좀 까다롭습니다.
▲자 이번에 드리는 '육신과 싸우는 예'는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예요.
이 육신의 소욕이 제일 많이 역사할 때가, 어느 때인줄 아세요?
내 자존심을 건드릴 때, 누가 나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했어요.
그때는, 자기 육신을 이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가 뭔가 가진 것이 없는데, '너는 왜 이렇게 가진 것이 없니?' 이런말 들을 때.
나는 뭔가 못 배웠는데, '너 정말 무식하다'
내가 몸매에 자신이 없는데, '너는 다리가 조선 무다리 같다.' 이런식의 얘기,
자기가 가장 감추고 싶고, 부끄러운 그 자존심을 딱 건들면요, 그 때는 눈이 뒤집힙니다.
이 상황은요, 혈압과 신장박동수가 최대치로 올라가요.
쭉 올라가서, 전투모양으로 바뀌고,
'어떻게 이것을 앙갚음을 할까?' 그러면서 속으로 칼을 갑니다.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은, 그 인생 핵심이 자아추구인데, 그 자아가 상처 받으면,
'감히 나를 건드렸다니, 감히, 감히' 하면서, 소위 뚜껑이 열리는 겁니다.
저 같은 경우도 목회 하다가, 이 부분에 건드려지면, 저도 굉장히 힘들어 져요.
저는 목회자니까, 특별히 제 목회에 대한 부분을, 누가 건드리면요,
이게 자아가 막 살아나면서, 막 진짜 너무 힘들어져요.
전에 어떤 친구가, 저 한테 메일을 보냈는데, 제 속을 막 긁는 거예요.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인가? '너희 교회는 뭐 진짜 제대로 된 교회지 모르겠다.'
그런 식으로 우리가 하는 '복음 인카운터'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비방하는데,
그 메일을 읽으면서, 막 못 견디겠더라구요.
그때 바로 감지를 했죠. '아 이게 내 육신이구나.'
아 근데 너무 힘들더라구요.
그 메일을, 그것도 친구로부터,
한 번, 두 번, 세 번째 받고, 제가 끝까지 육신대로 따라 가지 않고, 축복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어린양이여, 주께서 깨닫게 하시기를 바란다.' 끝까지 축복했어요.
막 여기서, 이때, 저도 대단히 쏘아 붙이고 싶었지만, 그게 아니잖아요. 목사가 축복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끝까지 제가 진짜 사랑으로 '하나님이 너의 길을 잘 인도하시기를 바란다.' 하고
제가 그냥 뒤로 물러났어요. 그러나 너무 힘들더라구요. 하지만 승리했습니다.
제 육신이 이끄는 대로, 제가 안 따라 갔어요.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 안에 이 육신이, 죄를 추구하는,
노골적인 음란함, 또는 노골적인 혈기, 이런 것도 있지만,
어떤분은 율법주의, 원칙주의자인데, 이게 종교적인 틀을 갖고서,
교회 안에서 막 판단하기 시작하는데, 그 내면에 들어가면,
본인의 그 낮은 자존감과 상처와 어떠한 그 완고함으로, 또 그렇게 나가는 분들도 있고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것들이 역사할 때,
성결한 그리스도인들, 주님과 동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순간에 시작,
"아 이게 육신이구나." 하며, 자기 영혼에 빨간불이 들어와야 된다는 겁니다.
그 순간에. 감지가 되야 된다라는 거예요.
내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지만, 이 육신은 언제든지, 기회가 주어지면 죄를 추구하고,
하나님 앞에 딱 버팅겨 서서,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굴복할 수 없는,
하나님과 원수된 그 본성이, 내 안에 들어 있다니까요.
그 순간에 성령의 분별의 영으로, 딱 감지를 할 때,
우리는 그 다음에 하나님이 주신 복음에 능력으로, 싸워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감지가 될 때, 어떻게 이길 것인가? 하고 대처하게 되는데,
그런데 아예 감지부터 안 되면.. 그냥 육신에 지고 마는 거죠.
▲그럼 결론은요?
주님께서 이길 수 있는 답을 이미 주셨습니다.
그것이 이어지는 롬8장 1~2절이예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자 보세요. 내 마음이 있어요? 내 육신은 죄의 법을 섬겨요,
반대로 내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따라하고 싶어요, 둘이 내 속에서 싸워요.
그런데 내 힘만 가지고는 죄의 법을 이겨요, 못 이겨요? (못 이겨요)
그래서 율법이 실패한 거예요.
율법이 거룩하고, 의롭지만, 내 힘만 가지고는 그 율법을 내가 못 지키는 거예요.
왜요? 육신이 더 강하기 때문에,
그런데 8장에 뭐라고 말씀 하느냐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이것을 이길 수 있는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 즉 성령으로 말미암은 이 법이,
내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이 육신의 죄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여, 이기는 권세를 가졌습니다.
믿음으로 이 진리를 취하셔야 합니다. 이게 여러분이 붙잡아야 될 진리의 검이예요.
우리는 7장(특히25절)의 실패하는 자들이 아니예요.
이미 승리의 그 길이, 십자가를 통해서 열린 거예요.
예수님을 통하여,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이거를 사용하는건데,
그러나 아셔야 될게 뭐냐면요, 저절로 이기냐? 아니예요. 바울이 말하잖아요.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신은 여전히 살아서, 죄의 법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아차 하면요, 끌려간다니까요.
그래서 기라성 같은 분들도 쓰러지는 거예요.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도 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깨어 있지 않으면. 저절로 이긴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8장을 가만히 보면, 답은 주지만요, '저절로 이긴다, 무조건 이긴다' 안일하게 이야기 하지 않고,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믿음으로, 전심으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사용하기만 하면 이길 수 있다라고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이 진리를 가지고, 이제 어떻게 싸우느냐가.. 해답인데,
바로 그 하나님의 길이, 8장 12~13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자 경고합니다.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지 말아라.
육신이 끌려가는데 지면,
너희 속에서 혈기가 나오고, 음란이 나오고, 교만이 나오고, 세속을 추구하는
여전히 그 "육신"에 끌려갈 때,
이미 승리의 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끌려 가는 곳에, 네가 자꾸 거기에 마음을 주고,
그 승리를 누리지 않고, 거기에 자꾸 니가 끌려 가기 시작하면.. 너는 죽는다.
너는 반드시, 반드시 죽는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롬8:13
이 말씀은, 창세기에서
'너희가 그 열매를 따 먹으면, 죽는다'고 경고하신 말씀과 병행됩니다. 창3:3
그러므로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사는 것이란,
바로 '선악과를 따 먹는' 그런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죽는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여러분의 영이 죽을 것이고, 영이 죽으면 끝나는 거예요. 천국 못가요.
로마서 8장을 그렇게 보셔야 해요. 너희가 육신데로 져서, 육신에 계속 끌려 살면, 죽는다.
천국에 못 간다!
참 그리스도인들은요, 육신이 역사 하지만, '주님, 저는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지 않겠습니다.'
그 마음에 서슬 퍼런 결단이 있으셔야 돼요. 왜요? 죽지 않아야 하니까요.
어떻게 얻은 구원인데, 어떻게 만난 복음인데, 어떻게 만난 하나님의 사랑인데,
이 더럽고 가증한 이 육신에 또 져서, 지난날에 그 허무한 삶에, 내가 또 다시 빠져서,
지난날에 그 실패로 족한데, 지난날에 방황으로 족한데,
'주님, 나는 다시는 그 허무한 삶, 살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 저는 육신에게지지 않겠습니다.'
이 절박한 마음의 결단이, 그리스도인 안에 있는, 심령의 결단인 것입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육신에게 지지 말라고 말씀을 하시냐면, 답을 주고 있지요?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3
여러분 성령만이, 육신을 이기는 하나님의 해답입니다.
우리가 많은 훈련 받으셔야 돼요. 많은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셔야 돼요.
하지만 저는, 진리 안에서 답은 하나밖에 없어요.
그리스도 안에 성령의 법을 따라 가는 것만이, 죄를 이길 하나님의 유일한 길입니다.
다른 데서 찾지 마세요. 그리스도 십자가 안에, 성령의 법을 의지하는 것만이,
성경에서 제시한 유일한 답이예요.
구약의 율법, 실패 했잖아요. 그때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 하십니다.
때가 이르리니, 내가 새 법을 세우겠다. 너희 육신의 굳은 마음을 제하고, 너희 속에 새 영을 부어 주겠다.
새 언약, 성령을 부어 주겠다. 너희 육신에 굳은 것, 내가 제해 버리고, 십자가를 통하여,
그 날 이후에, 십자가 사건 이후에, 성령을 보내주셔서,
구약 율법으로 이길 수 없었던, 이룰 수 없었던,
하나님의 법을 너희 마음으로부터 지키게 해줄(도와 줄) 것이다.
성령(의 도우심)이, 육신을 이길 유일한 답입니다.
우리가 그러면 이제 훈련할 것이 뭐냐면,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안에서, 성령이 거하십니다. 이미 우리 안에 거하셔요.
그러면 우리가 개발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면, 어떻게 이 성령님과 함께 살면서,
성령의 법으로써, 이 끊임 없이 나를 미혹하고, 노력하려고 하는 이 죄의 법을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어떻게 날마다 죽이느냐?
이걸 계속 해야 되는 거거든요, 죽을 때까지 계속 하는 거예요.
죽을 때까지. '어 육신이 또 내 속에서 올라오네?'
그러면 성령의 법으로 또 죽이고, '어 육신이네?' 또 죽이고,
그렇게 하면서, 계속 쳐내버리는 거예요.
그러면서 점점 더 성화되는 거지요. 나중에는 육신이 더 적게 올라오는 거지요.
▲로마서 6장은 십자가에서 이미 그것을 '못 박은자로 여기라'고 말씀을 하세요.
근데 그 말씀은, 그게 못 박은자로 여긴다고 해서, 죄의 소욕이 사라지는냐 아닙니다. 안 사라져요.
만약에 6장에서 사라졌다면,
7장 8장 이런 말씀 없었을 거예요.
그러나 7장 8장은, 여전히 싸움의 현실을 이야기해요. 십자가를 통하여 진리로 결론 삼지만,
그 소욕이 일어날 때,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자기 속에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는 겁니다.
그 길로 가도록, 성령님이 도와 주시는 겁니다.
(최종 선택은 자기가 하는 거지만요, 성령님은 그 길로 인도하십니다. 쉽게 할 수 있도록요)
또한 이런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자기 컨디션을 잘 조절해야죠.
하나님의 거룩한 마음이, 나를 지배하는 상태에, 계속 거하는 삶,
이것이 포도나무와 가지에 붙어 있는, 주님이 내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을,
날마다 그 안에서 고하면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거예요.
그렇게 날마다 싸우다가, 승리하며, 천국까지 가는 것이예요.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 싸워왔고, 그 싸운 바를 여러분에게 나누는 것이예요.
주님 나라 갈 때까지, 저는 이렇게 싸우다가, 십자가로 승리하고,
성령으로써 승리하고, 저는 천국에 들어 갈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일까요?'
▲1. 만약에 진 상태라면, 내가 육신에게 져버렸어요,
그래서 내 육신이, 나를 장악해 버렸어요.
그래서 영적으로 무기력해졌고,
분명히 내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있지만, 내 속에 죄가 나를 먹어서,
내가 실패해서, 기도할 힘도 없고, 회복할 소망도 안보이고, 나는 너무나 지쳐 있고, 무기력해져 버렸어요.
자 이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때는 영의 법이 잘 활용이 안되요.
왜요? 너무 양심에 눌리고, '하나님이 나를 받아 주실까?' 라는,
믿음이 안 들기 때문에, 이 상태되면요, 이런 예배 자리에도 못 나와요. 너무 너무 힘들지요.
자 그때, 어떻게 영을 사용하는지 말씀 드릴께요. 그때는 무엇을 하셔야 하냐면, 따라 하겠습니다.
"의지를 사용하여, 부르짖어야 한다."
의지가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에 의지가 중요합니다.
저도 넘어진 적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 끊어졌어요. 기도가 안되요. 나 버림받았구나.
물론 '영원히 버림받지 않았다' 라는 건 알았지만, 영적으로는 꽉 막혀버렸어요.
전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애걸복걸 했습니다. 애걸복걸요.
'주여, 주여,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얼마나 부르짖었는지,
어떤분이 제 기도소리를 듣더니,
'어휴 저 사람, 도대체 무슨 큰 슬픈 일이 있길래 저렇게 부르짖는 거야?'
나중에 저한테 물어 보더라구요. 뭐 그렇게 힘든 일이 있느냐고?
제 마음에, 마음을 다해.. 왜요? 하나님은 부르짖는자에게 인자하심이 후하세요.
영적으로 그런 의지가 일어나지 않더라도요, 마음을 다하여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면, 주의 앞으로 떠나 어디로 가리이까,
내가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내가 바다 끝에 가서, 내 자리를 펼지라도 주님이 거기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긍휼이 많으시며, 인자하심이 풍성하지 않습니까,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기도가 잘 안되요. 하지만 저는 부르짖습니다. 왠지 아세요?
비록 제가 넘어졌지만, 제가 갈 곳은 한 군데 밖에 없어요. 하나님 외에는 저는 다른 길이 없어요.
연약해서 넘어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거기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거 제가 알아요.
제가 갈곳은 하나님의 인자한 품밖에 없고, 제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자비하신 분이십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인자하심이 풍부하신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마음을 다하여 부르짖으면, 주님께서는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했을 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찾아오게' 하시더라구요.
많은 분들이 이것을 안하는 것 같아요. 왜 안할까요?
'하나님을 떠나도 살 수 있다'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럴까요? 여러분 없습니다.
하나님 떠나면 우린 죽는 거예요. 지옥에서 어떻게 살아요?
또 하나는요, 예배 참석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주일날 영적으로 탈진 됐을 때,
제가 의지를 일으켜서 은혜로운 집회는, 제가 계속 찾아 다녔습니다.
왜요? 혼자로는 못 일어나니까,
월요일 흰돌산, 목요일 온누리 교회 경배와 찬양,
또 산상 집회에.
그렇게 막 나를 그곳에 막 몰아놓으면서,
영이 더 강화되는 그 충만함 속에 들어가서, 내 힘으로 못 살리니까,
제가 그 안에 들어가서, 젖을 빨아 먹었습니다.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켰기 때문에
그 안에서 공급되니까, 제가 회복 되더라구요.
자, 영적으로 진 상태에서는요, 부르짖고, 충만한 곳을 찾아 나가는 거예요.
▲2. 자 두 번째, 이제 어느 정도 회복이 됐어요. 살아난 거예요.
이제 영적인 뭔가 활력이 뭔가 꿈틀꿈틀 돼요. 그때 해야될게 뭐냐? 따라 합시다.
"그래도 영을 더 강화해야 합니다."
자 이제 살아났잖아요.
자 이 육신이 지금 나를 지배했다가, 막 부르짖고 막 은혜 받아서,
성령을 좇아 사는 거예요.
옛날 같은 그냥 자연인의 마음이면, 육신과 죄가 나를 장악 했을텐데,
내가 부르짖었을 때,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작용했기 때문에, 육신이 힘을 잃고 물러갔어요.
자 그러면 인제 회복 됐으니까, 어떻게 해야됩니까?
이제 더 채워져야 됩니다. "충만"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이제 더 내가 성령으로 충만해 지고,
말씀으로 충만해 지고, 막 더 생명으로 충만해 져서,
완전히 밞아 버릴 수 있는, 육신을 이길 힘을 얻어야 됩니다.
여러분, 권투 같은 시합을 보더라도,
1라운드에서 이겼다고, 완전히 이긴 것이 아닙니다. 2라운드에서 수세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 시험은, 그 육신의 소욕은, 한 번 물러 간 것 같지만
반드시 또 틈을 타고, 기회를 봐서 내게 다시 공격해 옵니다.
얘가 물러났어요.
그런데 방심하면, 또 죄를 지어요. 또 막 육신을 추구해요.
막 TV보고, 막 컴퓨터 하고,
막 교회에서는 뜨겁게 했는데, 오 회복된것 같다.. 했는데,
집에 와서, TV보면서, 세상의 온갖 것을 다 먹어요. 그래서 또 먹히는 거예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은혜를 유지 못해요. 이기게 하셨으면요,
원리는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여야 되기 때문에, 더 더 말씀 집중하고, 더 주 앞에 기도하면서,
더 이상 이 육신이 나를 지배할 수 없을 정도로, 충만함 가운데 쭉 나갈 때,
우리는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게 될줄로 믿습니다.
▲자 세 번째, 자 이제 잘해서 아무튼 더 충만하게 올라갔어요. 자 충만해 졌어요.
자 그러면 이 육신이, 나한테 졌기 때문에, 충만했기 때문에, 더 이상 나를 안 건드릴까요?
아닙니다. 또 건드려요.
얘는요, 제가 경험해 보니까, 너무 충만하면요, 싹 숨더라구요.
제가 정말 완전 성화된것 같아요.
딱 숨어 있어요. 그런데 제가 약간 방심하고,
'어 이젠 나도 이겼나보다' 하고, 하는 어느 순간에, 봄바람이 불고, 살랑 살랑 거리고,
마치 다윗이 왕궁위를 이렇게 거닐다가 밧세바를 딱 보자마자,
그 충만했던 왕이 순간 그 죄가 정욕이 딱 기습하니까, 완전 돌고,
나중엔 우리아까지 죽이고, 완전 미친 짓 하잖아요. 그전까지 얼마나 대단한 왕이었습니까.
그런데 죄는 언제나, 기회만 보면, 또 기습하는,
그래서 여러분 죽을 때까지 싸울 이 대상이 "육신"의 죄입니다.
자 그래서 항상 경계 하는데, 충만하면요,
어떻게 해요?
딱 육신이 올라올 때, "아 이게 육신이구나." 자 딱 깨달은 다음에,
인제 다음은 원리는 뭐냐면요, 저 같은 경우는요? 십자가 바라보고,
주와 함께 내 육체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하고 믿음으로 연합시키구요,
그 다음에 주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그 죄의 정욕을, 죄가 싸울려고 하는 주께 드립니다.
저는 주의 것입니다.
때론은 꾸짖어요. 예수 이름으로 깨어질지어다.
또는 제 자신을 주님께 드려요.
그리고 주님, 성령으로 채워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 저를 이기게 해주십쇼.
그 공격하는 그 순간에, 죄가 나를 막 붙잡으려고 하면,
저도 막 끌리거든요.
그때 십자가 바라보고, 저를 연합시키고, 그리고 선포하고, 또 성령님을 힘입어서,
그렇게 영으로써 육의 행실을 죽이는 겁니다.
자 이 부분에 대해서, 성경을 한번 보세요. 7장 4절.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무슨 말이냐면, 율법은 뭐냐면요,
그것을 내 마음에 법으로, 내가 지킬려고 하는 건데, 이게 안됬잖아요.
그러면 이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되냐면, 다른 이에게로 가라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답은요, 내가 싸우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 즉 우리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에게로
믿음으로 나가서, 그와 연합 하면,
그 분이 승리의 열매를 맺게 해주신다 라는 거예요. 6절 보세요.
6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율법 조문에 (구약에) 나와 있는 그 법을, 내 힘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영의 새로운 방식,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
그 원리를 믿음으로, 이 육신을 죄를, 눌러 버리고,
그 영을 따르는 새로운 방식으로, 그리스도에게로 가서 연합해서, 죄와 싸울 때,
우리는 이기는 것입니다.
끝날까지 무조건 이기는 거예요. 왜요?
진리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지막 8장 37절.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할렐루야.
마음을 다하여 내가 그리스도를 붙잡고, 성령을 의지하면,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렇게 주님과 사랑하면요,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그 태초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에 그 원형, 그 마음,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있으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다,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 기뻐 하시리라. 이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고, 주님 사랑해요. 주님이 나를 신부로 여기시고,
주님이 나의 신랑이시고,
이 원래 우리가 그런 존재로 만드셨는데, 이 육신 때문에 그게 못 이뤄졌거든요.
그런데 영으로써, 다른이에게 그리스도에게로 가서, 이 몸의 행실을 날마다 죽일 때,
우리에 심령에는 하나님과의 친밀함과, 그 분의 기쁨과 그 구원의 기쁨,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그 원형, 그 행복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나의 사랑이 그 안에 거하여
그 분과 영원한 행복하게,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입니다.
그렇게 살기를 축복합니다. 이게 복음이예요.
복음이 다른데 있지 않아요. 이게 복음이예요. 가장 제가 핵심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에게 있는데 어디가서 방황합니까? 이 답이 우리에게 주워 졌는데,
하늘위로 올라갈 것입니까? 땅 아래로 내려갈 것입니까? 너희 귀에 가까운,
너희가 정말 이것을 믿고, 믿음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고, 마음을 다하여,
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의 부활과 성령을 의지하면,
우리는 이 구원의 삶을 날마다 살아갈 것입니다. 할렐루야.
거룩한 백성들이 일어날지어다. 주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백성들이여, 회복될지어다.
우리 함께 이 시간 찬양하고, 기도합시다.
타이핑 : JCS
'분류 없음 > 2013' 카테고리의 다른 글
뜻을 정해서 사는 사람 P2 (0) | 2015.05.13 |
---|---|
뜻을 정해서 사는 사람 P1 (0) | 2015.05.12 |
십자가와 자기긍정 (0) | 2015.03.23 |
십자가와 자기부인 (0) | 2015.03.16 |
예배란 무엇인가 (0) | 2015.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