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4OWjZjKBhdM
◈해외 선교로의 헌신과 결단 P2 계7:9, 겔36:23
2008년 미션달라스 중남부선교대회 제리 랜킨 IMB총재, (화면의 31분부터 녹취)
◑변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 침례교 선교부는, 세계의 선교 상황을 연구하는 부서가 있는데,
그들은 특별히 미전도 종족을 연구/조사하는 일을 중점적으로 합니다.
그리고 색깔별로 미전도종족이 어디에 있는지, 잘 표시한 지도를 출판했습니다.
색깔마다 복음을 듣지 못한 종족들을, 잘 표기해 놓았습니다.
그들이 또 인터넷을 이용해서 전자 지도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색칠된 작은 점을 누르면
‘구글 항공지도’로 연결되어서, 그 지역을 실제로 볼 수가 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문명의 이기가 발전했는데도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데, 어떤 특별한 변명과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 중에 네팔 히말라야를 다니면서 전도하는 순회 선교사가 있는데,
사람들 찾아가기 위해서, 이틀씩이나 골짜기와 산길을 넘어서 가야 합니다.
그 산골 후미진 시골의 어떤 찻집에서 휴식을 취하게 되었는데,
거기에도 ‘코카콜라를 마시면서 쉬십시오’라는 광고그림이 붙어져 있었습니다.
그 순간, 그 순회선교사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히말라야 산골 사람들은, 코카콜라는 알지만
복음에 대해서는 아직 모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그 말을 들었을 때, ‘이것은 참 고소장과 같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법정에 기소됨, 복음 전하지 않은 죄로)
세상 사람들은 상업적 유익을 위해서, 땅끝까지 나아가고 있는데,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중요한 생명을 살리는 복음을 가지고도,
코카콜라 회사가 나아가는 열심만큼, 우리는 열심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나중에 심판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이 선교 사명에 대해서
반드시 책임을 물으실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세계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계신데,
누가 이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단 말입니까?
▲최근에 저희 연구 부서에서 프린터 한 것을 보게 되는데,
이 세상의 종족people group에 관한 자료가 나와 있었습니다.
그 자료에 의하면, 폴라니족, 웨스트아프리칸, 마하라니족 등 모든 종족에,
거기에 믿는 사람 있는가, 교회가 있는가.. 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이 있는가,
그 부족에는 어떤 선교 단체에서 선교사를 파송했는가 하는 데이터가
자세히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데이터에, 아주 두꺼운 글씨체로 강조된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족에는 아직 크리스천이 없다. 교회도 없다,
선교사도 없다, 성경도 없다’.. 라는 표시였습니다.
제가 그 보고서를 받고서, 무엇을 생각했는지 아십니까?
저는 요한계시록 7:9절의 말씀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사도요한은 어떤 환상을 보았는데,
어린양 보좌 앞에, 수많은 종족과 나라와 민족이 모여서 있는 모습입니다.
그 장면이 바로 제게 있어서,
해외 선교를 추진해 나가는데, 지향하는 목표요, 비전입니다.
계7:9절의 장면처럼, 하나님의 선교는 반드시 성취될 것으로 작정되어 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종족이, 복음을 위해서 결국은 구원 받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선교의 성취와 종말은 완성되어져 있고,
이제 남은 궁극적인 질문은
그 하나님의 지상 명령에 대해서, ‘내가 과연 신실하게 순종할 것인가?’
그것이 우리가 물어야 할, 남은 질문입니다.
우리는 이 명령에 부르심을 받았는데,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선교의 사명, 복음 증거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그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니까? 사람들은 영원히 멸망 받고 있는데요.
◑늦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몇 해 전에, 이 세상에서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비극을 경험했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여러 나라에 지진과 쓰나미가 갑자기 닥친 것입니다.
한 순간에 25만명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저에게 참으로 슬픈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인도네시아에서 14년간을 살면서 선교를 했습니다.
그 희생자들은 마치 저의 사람과 같은, 가깝게 여긴 사람들입니다.
저도 한 때는, 가족들과 함께 그런 바닷가로 휴가간 경험이 있는데
바로 그 지역에서 쓰나미로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은 것입니다.
또한 제가 스리랑카 해변가를, 그 현지 목회자들과 자동차로 여행한 적이 있는데,
소식을 들어보니, 바로 그 해변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쓰나미로 생명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저는, 즉시로 떠오르는 생각이 ‘너무 늦었어!’ 였습니다.
최근에도, 미얀마에 13만 명이 태풍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중국에서 8만명이 지진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게으름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모르고 죽어야 되겠습니까?
▲그 쓰나미 이후에, 제가 뉴스를 접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상당히 냉소적으로 ‘이런 상황 속에, 하나님은 과연 어디 있었단 말인가?’
이것은 마치 전능하신 하나님이 없는 것과 같은 인상을 그들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만약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도록 내버려 둔다면, 그는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회의적 질문이 미디어에 유행했을 때, 저는 좀 더 다른 각도로 질문했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살아 계신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희는 어디에 있었니?, 여태 무엇하고 있었니?’라고 물으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복음을 듣지 못하고 25만 명이 죽어가는 데, 우리는 이런 안락한 교회에, 편한 의자에 앉아서
그들에 대해서 외면하지는 않으셨습니까?
그 쓰나미 소식을 듣고서, 제가 중앙아시아를 다시 방문했는데,
그 남아시아 지역에 교회들이, 그 환란을 계기로 오히려 성장하는 귀한 소식을 듣고
제 마음이 상당히 흥분되었습니다.
▲중앙아시아 여행 막바지에, 저는 우리 선교사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가 ‘중앙아시아에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만큼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는가?’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중앙아시아의 23개 종족에 복음을 전했다’고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질문을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즉시 고쳐서 다시 질문했습니다.
‘그럼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남은 종족people group은 얼마나 됩니까?’
그 지역 책임자는 즉각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처음에 고개를 떨구었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먼 산을 쳐다보며 눈물을 머금은채 말하기를
‘제리 목사님, 중앙아시아에 아직도 3백 종족 되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단 한번의 복음을 듣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의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를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침례교단선교 책임자로서, 제 어려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의 선교사와 자원들은, 매년 한정되어 있고, 복음을 전해야 될 곳은 많은데,
또 어떤 그룹은 금년에도 복음을 듣지 못하겠구나.. 인원과 예산 부족으로
라는 것을 생각할 때, 제 마음이 아픕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거기서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제 마음에 불타는 질문이 있었는데,
‘세상에는 아직도 이렇게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데,
만약 우리가 그런 복음전파 사업에 무관심하고, 참여하지 않는다면,
장차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우리의 정당성을 변명할 것인가?’ 라고 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너무나 좋은 것으로 엄청난 축복을 허락하셨는데,
바로 이런 선교의 마지막 완성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선교를 위해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혼란스런 세계 정세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계십니다.
복음에 쉽게 반응할 수 있도록요.
이런 환경을 조성해 놓으시고, 하나님은 지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고 계십니다.
42:24~
◑복음은, 삶으로 전파될 때, 역사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자발적으로,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먼저는 이 복음 자체가 능력이 있어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이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임한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의 큰 확신으로 임했다’ 라고 말씀합니다. 살전1:5
기독교의 가르침을 귀로 듣고, 배운 것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로, 그들의 “삶이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변화된 삶을 통해서,
복음을 증거하라고, 오늘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북아프리카의 아주 강한 무슬림 지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가,
하루는 제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자기가 거기서 구제, 봉사 등 사회사업을 통해 선교하고 있는데,
바로 오늘 아침에, 일하는 한 사람이 예수님 믿기로 결심했다면서,
제게, 그에 대한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저는 ‘참으로 잘된 일이군요’.
근데 제 격려에 대한, 그 선교사의 반응이 시원찮았습니다.
선교사는 말하기를
‘제리 목사님, 제 말 뜻을 이해 못하시는군요. 여기서 누가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게 되면
6개월 내 죽임을 당합니다.
그가 아침에 제게 와서, ‘나는 당신과 할 말이 있습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2년을 일을 해 왔는데,
나는 당신의 삶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인 것을, 제가 보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예수님을 소개해서, 나도 당신처럼 사는 길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무슬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상당히 조심해야 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젊은이가 너무나 진지했기 때문에,
선교사는, 하나님의 복음을 그에게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영접기도를 하게하는 과정에서,
선교사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내가 한 가지 분명히 확인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자네는 죽임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네.’
젊은이가 말하기를
‘나도 압니다. 그러나 이 길만이 내가 따라야 하는 길입니다.’
그런 확신이 있을 때, 복음은 중도포기하지 않는 힘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 남아시아에 있는 무슬림 배경의 신자들은, 기도를 배우는데,
과거 중국의 지하교회 신자들처럼, 기도를 배웁니다.
무슬림 사회에서 그들이 예수를 믿게 되면
고문을 당하고, 심지어 죽게 되는 일도 만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준비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목숨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목숨을 당신에게 내어줍니다.
그래서 당신도 언젠가는 예수 믿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정말 내 목숨을 내 던질 만큼의 결단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아무도 당신을 저지 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무서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각오가, 미전도 종족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힘이 되고, 원동력이 됩니다.
그것이 무슬림 가운데 복음으로 침투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눈으로 보는, 이런 성육신적인 복음의 역사(삶의 증거)가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식으로 ‘가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겔36:23절에, “내가 그들의 눈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바로 그들의 눈으로, 우리 신자의 거룩한 삶을 목격하게 된다면,
모든 열방이 내가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그 예수님의 성육신이,
그가 보내시는 사람들로 통해서, 목격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증인의 거룩함과, 무고한 피흘림을 통해서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 목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을 보고서, 우상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모습을 사람들이 본다면,
우리가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확실하게 심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헌신과 결단
▲대위임령, 마28:18절에 보시면
먼저는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입니다.
이 우주에, 주 예수님의 권세만큼 더 높은 권세는 없습니다.
그런 분이 자기 권위로, 계획하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19절에, 사람들이 많이 강조하지 않는데요, ‘그러므로’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고 말씀했습니다.
마지막 구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상기시키면서 끝맺고 있는데,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동행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모든 권세와 능력!,
여러분의 힘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어떤 자격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어떤 기술도 아니지요.
“예수님이 임재하시고 동행하시는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한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부르심 받지 않았어, 나는 자격이 없어’라는 변명을 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격이 있는 사람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부른 사람에게 자격을 주십니다.
▲이 선교대회에 온 사람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선교하기를 원하시는데
하나님이 나를 선교사로 부르시지 않으셨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 말을 들을 때, 저는 잠시 난감했지만, 곧장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당신은 나하고 똑같은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누구에게 주신 것입니까?
갈릴리에 있는 열두 제자에게만 주신 것입니까?
해외 선교로 나가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신 것입니까?
우리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모든 사람, 모든 교회에 주신 것입니다.
누구는 가고, 누구는 안 가고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그 지상명령을 주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나는 선교사로 가기는 원하지만, 하나님이 부르시지 않으셔서 못 간다..’
크리스천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고 성경에 분명히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자격이 안 된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를 드릴 때
하나님은 나에게 성령의 권능으로 위임하신다고 믿습니다.
▲저는, 한 분의 위대한 선교사라면, 사도 바울이라고 믿습니다.
‘나는 사도중에 가장 작은자라. 나는 사도되기에 합당하지 않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바울을 사용하셨을까요?
그의 가치 없는, 그 보잘 것 없는 그 자신을 하나님께 “바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놀랍게 들어 쓰실 수 있었던 것은,
사도 바울의 본래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헌신한” 그에게 부어주셔서, 바울을 쓰신 줄로 믿습니다.
고린도전서2:2절을 보시게 되면,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바울은 그의 눈을 십자가에만 고정시켰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주목하고 그분을 바라볼 때
그분이 어디로 우리를 인도하시는지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려진 자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분의 마음과 관심은
우리 잃어버려진 자를 향해서 인도하시리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헌신하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영적인 무지와 어려움을 강조하는 설교를, 과거에 자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현실적 필요"에 의해서,
선교의 동기를 부여 받지는 못합니다.
오늘날 TV 뉴스를 통해서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죄와 악이 관영한가를
우리는 안방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 세상 어려움에 대한 대답이 예수님이고
우리는, 이런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대한 답(예수)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일들을 보면서도, 우리는 마음에 전혀 어떤 복음 전파의 동기를 가지지 못하는
그런 무딘 마음을, 우리는 갖고 있습니다.
저는 과거에 종종 사람들에게, ‘대위임령을 보십시오.
여러분, 선교를 위해서 여러분의 삶과 자원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라고 도전했는데,
그런데도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이성으로 생각해 보니까, ‘그것은 나에게 맞는 것이 아니야’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에게 관심을 갖게 될 때
내 삶을 주님께 드리려는 결단까지 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선교의 동기, 선교로의 초대는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지,
어떤 이성적 설득, 논리적 설교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제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이 말씀하기를,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우리를 선교지로 보내는 충분한 권세가 있으시다.’ 그러므로 여러분 순종하십시오!
그러나 저는, 그런 논리적 설득만으로는, 충분한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외부적인 강제 명령이, 우리를 잃어버려진 자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충동/감동이, 우리를 잃은 자에게 보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분명히 알고, 그분과 친밀한 관계가 있다면,
이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 마음이 안타깝고,
우리 마음이, 복음에 대한,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과, 그런 사랑의 관계에 이르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러한 거룩한 감동을 하나님 앞에 드린다면
그것은 얼마나 귀한 것이겠습니까.
저는 여기 컨퍼런스에 참석하신 많은 분들의 마음을
하나님이 움직이고 휘저으셔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흘러넘쳐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선교를 위해서 헌신하는 분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있는 분들만 가지고도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충분히 전할 수 있는 숫자입니다.
만일 우리가 ‘내가 갑니다. 내가 합니다’라고 한다면 그 일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선교에 대한 부름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제단 앞에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앞에 드림으로서
그 선교의 삶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나를 통해 무엇을 하시기 원하실까? 를 생각하며,
그분에게 나의 삶을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분류 없음 > 2015'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근 중국, 일본, 이스라엘 교회의 홀리 어레이 (0) | 2015.04.24 |
---|---|
기적의 배와 크리스마스 캐롤 (0) | 2015.04.20 |
21세기에 복음전파 속도가 뜨겁습니다 / 제리 랜킨 P1 (0) | 2015.04.17 |
IT 선교사가 되십시오 P2 / Loren Cunningham (0) | 2015.04.16 |
야곱 가문이 애굽에 내려간 섭리 (0) | 2015.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