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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길이 막힐 때

LNCK 2015. 5. 9. 16:05

인생의 길이 막힐 때             롬15:22~29             14.12.14.스크랩, 출처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계획하고 목표하고 달려가는데 그 길이 막힐 때,

인생의 장애물들이 생기고, 내 길이 자꾸 가로막힐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풀어보려 하지만, 해결이 안될 때 절망하게 되죠.

그런 면에서 오늘 우리에게 해답을 주는 본문입니다. 로마서를 정리하면서

바울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로마를 가고 싶어 하고,

보고 싶어 하는 열망이 성경 여러 곳곳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그 당시에 제국 로마에

복음을 전하고 싶었던 열망이 있었던 것은 당연하리라 봅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에 가고 싶어 했던 것은, 로마가 최종 목적지가 아니고

로마를 경유해서 서반아, 서반아는 현재 스페인입니다.

그 당시에는 스페인이 지구의 끝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바울이 얼마나 복음에 열정이 있었는지, 그는 언제나 늘 새로운 사역지에 눈을 떴습니다.

지난 시간 살폈던 것처럼, 바울은 남의 터 위에 집을 짓지 않는,

이 시대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내가 집을 짓지 않겠다.’

그래서 늘 새로운 사역지로 이동하는 그런 개척자의 모습을 가집니다.

 

오늘 이 본문 외에도 사도행전 1921절에도 보면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를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로마를 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사도행전에도 나오죠.

 

로마로 가고자 했던 목적은 뭘까요?

복음을 위해서. 그런데 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그 바울의 순수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를 향한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왜 로마의 길이 자꾸 막혔을까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로마를 가려 하는데

로마의 길은, 막히고 정반대의 상황으로 꼬였습니다. 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뜻이라도, 하나님의 때를 분변해야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과 인간의 계획의 차이가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 전도를 향한 강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열정이 강한만큼

가고자 하는 길이 막힐 때 힘들 수가 있죠.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밀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왜 하나님의 뜻을 살고자 하는데 길이 막히는가요?

 

우리가 하나님의 뜻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때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충만해지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꿈을 주시죠.

열정도 일어나게 하고 소원도 일어나게 하고

뭔가 충만해지는 의욕이 넘치고 무엇이든 하면 될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막 들어요.

 

그런데 막상 밀고 나가면 상황이 전혀 아닌 것이죠. 이때 의구심이 생깁니다.

이상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 때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하나님의 때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 항상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때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인도의 핵심은 타이밍입니다. 어떤 일이라 할지라도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적절한 때. 빠른 게 좋은 게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

타이밍을 모르면 굉장히 혼란스러워집니다.

 

어떤 마음을 주시고 어떤 말씀을 하셨다면, 그 다음은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고 기다리는 것.

자기의 생각과 고집과 방식으로 밀고 나가면 사고가 일어납니다.

여기는 사고다발지역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가장 정확한 때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늦어보여도, 하나님은 타이밍을 맞추는데 귀재십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에 맞추는 길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타이밍이 맞춰지지 않으면 엉망이 됩니다.

하나님이 어떤 일에 대해서 이루시겠다는 확신을 주셨어요,

근데 문제는 언제냐는 겁니다.

언제라고 하는 분명한 말씀을 주시지 않으면 기다려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것은, 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이 그 일을 하게 하신 이유를 발견하는 게 중요해요.

하나님이 보여주신 일이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때가 있어야 합니다. 기다려야 하는데

내 욕망인가 하나님의 뜻인가를 분별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한다면, 그 다음은 때를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오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낭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원망하거나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탐정소설을 읽어보면 굉장히 흥미진진하죠.

그런데 읽는 독자들은 소설 속 주인공을 따라가다보면 굉장히 긴장되죠. 아슬아슬하고 위기에 빠지고..

 

그런데 독자들은 그렇지만 작가는 그런 긴장감이 없어요.

왜냐면 풀 스토리를 다 알고 있기에. 읽는 사람은 과거에서 미래로 가고 있지만

소설가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이 그런 분이세요. 타이밍의 귀재시죠.

우리가 성경에 많은 예가 있지만 특별히 에스더서가 그렇습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 언급되지 않지만, 하나님이 가장 강력하게 흥미진진하게 역사하신 내용입니다.

 

하만이라는 아주 간교한 사람이 왕을 설득해서, 모르드개를 장대에 매달아 죽이고

그것을 신호로 해서 유대 민족 전체를 말살하려는 정책을 세워서, 교묘하게 악을 행하는 얘기가 나옵니다.

다 하만이라는 사람의 음모에 의해 진행되는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이제 날만 새면 모르드개가 죽고 유대인들이 몰살당할 수밖에 없는 그 전날 밤 늦은 시간,

왕이 잠이 안 오는 겁니다. 그리고 왕실이 있었던 실록을 역사 기록서를 가져오게 하고

그것을 읽다보니 매달아야 할 사람이 모르드개가 아닙니다. 오히려 상을 줘야 할 일등공신입니다.

 

이걸 발견하는 극적 사건이 그 전날 밤 일어납니다.

여러분 왕이 잠이 안 오는 게 우연히 그런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 뒤척이다가 책을 읽게 되는 이게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반전이 일어나죠. 정확한 순간에 하나님의 개입이 빛나는 책, 이게 에스더서입니다.

그런데 에스더서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가 그렇습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출애굽의 역사 속에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바로의 손길에서 벗어나 이제 쉬려고 하죠.

그런데 홍해가 딱 가로 막고 있습니다.

뒤에는 애굽의 병사들이 오고 있고 사막의 모래가 폭풍처럼 일어나는 살벌한 시간.

그런데 하나님이 정확한 때에 홍해를 가르시죠.

 

그리고 통과하게 하시고 추격해오던 애굽의 군사들이

적당한 시간에 왔을 때 물이 침몰하면서 수장을 시켜버립니다. 전부 타이밍입니다.

하나님이 정확하게 일하시는 그런 역사를 보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정확한 시계를 차고 계세요.

그런데 우리는 현재라는 시계를 차고 있지만,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계, 동시에 보고 계세요.

하나님은 시간 속에 역사하십니다.

 

모든 역사에는 하나님의 카운트다운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일이 완성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시간을 다 알고 계시죠.

시간을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시간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만드신 분이고 시간의 주관자십니다.

우리가 시계를 조작하듯이 하나님은 시간을 조작하세요.

시간을 멈출 수도 있고 늦출 수도 있어요. 태양을 멈춘 사건도 있죠.

 

하나님은 시간을 다스리시기에 우리의 삶을 돌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한계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시간을 멈추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거역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건드릴 수 없어요.

 

시간의 통제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 우리는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고

그 분께 우리가 삶을 맡길 수 있는 이유는, 시간을 통제하시는 분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시간에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겸손해야 하며, 시간의 제약 속에 하나님의 인도 아래 우리의 삶을 맡깁니다.

 

 

우리의 길이 막힐 때는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을 준비해놓으시고

우리에게 타이밍을 기다리게 하십니다.

 

믿음이란 우리의 계획보다 하나님의 계획이 더 낫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때에 따라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지금 일이 이루어지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건 하나님, 하나님의 그 손길,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비록 지금 길이 막혀도 염려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의 길이 막힐 때 우리는 빨리 안 된다는, 이 시간에 초점을 자꾸 맞춰요.

시간에 초점을 맞추면 초조해집니다. 시간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우리는 시간을 통제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잠언 169절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이 말은, 그 모든 흐름들 속에 하나님이 당신의 시간을 가지고 움직이고 계신다는 겁니다.

우리가 당장 무엇이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안돼요.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행동이 느린 분이 아니세요.

하나님은 가장 최상의 순간에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로마를 가고자 했던 계획이 여러 번 바뀌었잖아요.

그런데 마침내 로마로 가는 길이 열립니다. 그 자세한 내용이 어디에 나오죠?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사도행전 후반부에 로마로 들어가는 바울의 얘기가 나와요.

 

흥미로운 장면입니다. 그렇게 여러 번 가고자 했던 로마가 막혔는데

사도행전 후반부에 길이 열리는데, 놀랍게도 죄수가 되어서 바울이 호송되어 갑니다.

로마의 재판을 받기 위해 호송되어가는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잠시 생각이 복잡해지는데, 바울이 그토록 복음을 위해 헌신해왔는데

인간적으로 보면 참 기구한 운명입니다.

 

로마로 재판을 받으러 가는 바울은 미래가 불투명합니다.

사자의 밥이 될 수도, 검투사에 찔려 죽을 수도 있는, 그런 불운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죠.

 

복음을 위해 모든 걸 바치던 인생이 끝장날 수도 있습니다.

그토록 가고자 했던 로마로 죽으러 갈 수 있는 것이죠.

 

하나님이 복음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을 길이 척척 열리지 않게 하시고

왜 지금 이렇게 죄인으로 가게 하시는 건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다 보면

이렇게 우리가 충분히 받아들일만한 상황이 아닐 때가 많아요.

 

이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은 계속 험난하기에 육로가 아니고 해상으로 가는 거죠.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때인데 로마로 가는 상선이 있는데

아마 이 상선에 죄수들도 싣고 간 것 같아요. 거기에 바울이 실려 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살면 고난이 올 것이다웬만큼 신앙 생활한 분들은 다 압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일어나면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그런데 우리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막힘 속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어요.

바울이 사실 여러분 바울은 유대교에서 개종한 이후에 많은 동족들,

유대인 동족들이 바울의 신변을 노렸습니다. 죽이려고. 자객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곳곳에 바울이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죽이려는 사람들이 많았단 말이죠.

 

그런데 혼자 로마로 가려 했다면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자객들,

이 바울을 죽이려 이를 갈고 있는 사람이 수없이 많은데, 로마로 가기 전에 아마 살해당했을 겁니다.

 

그런데 호송되어 가기 때문에, 수없는 사람들이 바울의 신변을 지켜야 합니다.

로마에서 재판을 받기까지 군인들이 이 바울을 지키지 않으면 안돼요.

그러니 어때요, 호위병을 거느리고 로마로 들어가게 된 겁니다.

 

바울의 소원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는 건데

지금 이렇게 가는 가운데 로마에 가서도 자기를 지키는 수비대,

그리고 고관들에게 아주 높은 사람들에게 변호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평소에는 접근할 수 없는 고관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자연스럽게 열렸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시대는 여러분 이 교통이 어려운 때이기에

로마까지 간다는 것은 교통비가 만만치 않아요.

그런데 바울은 완전히 공짜로 가고 있습니다.

 

죄수로 가는데 돈이 한 푼도 안 들어요. 경제적으로도 대단한 일입니다.

또 풍랑이 막 일어나서 죽기 직전까지의 위험이 왔지만, 바울이 선장 노릇을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죽을 고비에 절망해 있을 때 소망을 주면서

그들을 안심시키고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무사히 빠져나오는,

그 일을 통해서도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는, 바울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이었습니다.

훨씬 풍성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길을 열어주신 것이죠.

 

우리는 한 가지 일이 일어나면, 한 가지 이상의 사건을 보지 못해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 한 가지 사건 속에, 수많은 비밀을 숨겨두고 길을 이끌어 주시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가 당장 무엇이 안되면 죽느니 사느니 야단인데, 조급증이 많아요.

하나님 빨리 빨리. 응답도 빨리 빨리.

어떤 분은 내일 빨리 하나님 응답하셔야한다 그러고

어떤 분은 금식까지 하면서 일주일 금식하고 하나님 끝나는 날 응답하셔야 해요.

안 그러면 죽는 거 보시겠어요.

 

이게 외국에서는 보기 힘든 일입니다. 빨리 결단을 보는 이게 좋은 점도 있는데

너무 조급한 거예요. 어떤 사람은 재밌는 기도도 하잖아요.

하나님 인내심을 빨리 주시옵소서.’ 마음이 너무 급한 거예요.

 

빠른 게 좋은 게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때입니다. 하나님의 타이밍.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를 얘기하는데

카이로스가 헬라어로 하나님의 정확한 때입니다.

 

그 때는 뭐냐면 마치 임신한 여인이 만삭이 되었을 때, 만삭이 되면 아이가 나오죠.

그 때는 아무도 막을 수가 없어요. 그게 카이로스에요. 완전히 때가 찬 거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 당신이 계획하신 그 모든 섭리가 맞춰지고

가장 적절한 때, 최적의 상황이 되면 그 때가 만삭의 여인과 같습니다.

지금 막 5개월 밖에 안됐는데 아이를 낳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면 안 되잖아요.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는 그 때.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입니다. 그 완전 안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때가 차지 않았는데 주시면 안 되잖아요.

바울이 로마로 가고자 한 계획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바울을 로마로 보내시기로 작정하였으니

그 마음을 바울에게 심어주셔서 가도록 한 것이고

비록 호송되어 가지만, 그 길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가장 완벽한 순간이라는 거죠.

 

우리가 늘 기억해야 할 것은, 나의 원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함.

왜 일이 잘 안되면 울고불고 좌절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의 뜻이 더 강하기 때문에.

 

자식들에 있어서도 너무 부모들이 실망하고 좌절하고 하나님께 원망하고,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만히 보면 부모의 욕심과 의욕이 너무 강해서 입니다.

 

하나님이 이 자녀에게 주신 뜻이 아니라

나의 자식에 대한 욕망, 이게 늦어지는 거 같으니까 막 닦달하는 거죠.

 

하나님의 뜻보다 우리의 뜻이 너무 강하면, 때를 기다릴 수가 없어요.

날마다 뒤집어지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에 나의 고집이 꺾여서 온전히 순종하는 훈련, 그게 기다림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약속을 붙잡고 내 욕망을 내려놓는 과정이에요.

여러분 무엇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너무 쉽게 이루어지면 그게 조심스러운 거예요. 오히려 그게 위험한 겁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것은 기다리게 하시고 더 좋은 것은 더 기다리게 하세요.

왜 신앙생활이 어려운가요?

우리의 힘과 방법을 동원하여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과 다르게 돌아갈 때, 사람들이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죠.

신앙은 기다림입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느냐, 그것은 기다림으로 증명되어야 하고

그 기다림에서 실패하면 승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개인적 간증

 

저는 제 삶 가운데서 참 귀한 은혜는, 기다림을 통해 받은 은혜입니다.

그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여러분도 동일하리라 생각합니다.

기다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커요.

아무리 좋은 뜻과 계획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셔도

그것은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겁니다.

 

특히 저는 호주에 가서, 19901215일 호주에 도착하고.

3년의 계획을 가지고 호주에 갔었는데, 뜻하지 않게 목회를 하게 하셨어요.

 

그리고 교회가 개척된 지 11개월 만에, 저는 비자 문제로 한국에 오게 됩니다.

한국에서 영주권 수속을 하며 재입국을 기다리는데, 이 시도가 계속 무산되는 겁니다.

 

여러 가지 저희 교회의 컨디션, 아주 작은 개척 교회가 스폰서쉽이 되어

호주의 교단에 가입하지 않고, 오직 단독 교회로 작업하는데 굉장히 어려워졌어요.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했고, 사실 그렇게 보였습니다.

 

저와 같은 케이스로 비자를 받고 들어간 예가 없었어요.

신생교회, 11개월밖에 되지 않은 개척교회를 두고 영주권 작업을 하는데

계속 딜레이 되는 겁니다. 한달이 넘고 육개월이 넘고 일년이 넘고

일년 육개월이 넘고 20개월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한 일이다. 안되는 일이다. 하나님의 다른 계획이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많은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불가능한 일이다. 포기해라. 마음을 바꿔라.’

또 호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얘기가 오갔어요. ‘안 되는 일이다.’

 

어떤 부지런한 분은 이민청에 가서 내가 확인해봤다.’(안 된다더라)

아주 시간이 많으신 분들이 계셨어요.

그리고 그 목사가 호주로 다시 돌아온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그런 분들도 계셨어요.

 

그래서 제가 호주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유명해져버렸어요.

아니 교회가 20개월동안 담임 목사 없이 기다리고 있고

저는 그동안 백수로 한국에 있었어요.

굉장히 어려운 시간들이었고,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습니다.

 

기다릴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저는 바울이 로마로 가고 싶어했던 것처럼 저는 시드니로 돌아갈 이유가 있었습니다.

단 한 사람의 교인이라도 있다면 또한 내가 돌아오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떠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을 때 가슴 아팠습니다.

 

그러나 단 한사람이라도 남아있다면 나는 돌아가리라. 이유는.

어느 한 날 밤 수요일 저녁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민목회로의 부르심이 있었기에.

하나님이 저를 부르시더라구요. 저는 꿈에도 생각한 적 없는 이민목회. 이민 교회에서의 사역.

하나님이 저를 부르시더라구요.

 

그 땅의 방황하는 수많은 영혼들을 보여주시면서 저에게 헌신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스, 아멘. 주님이 말씀하시기에 제가 순종하겠습니다.

그리고 영주권 신청하러 한국으로 온 거죠. 그런데 길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확신했어요.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그 날 밤,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그곳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다..

 

그 일이 이루어지고 20개월만에 제가 호주로 돌아갑니다.

19941025일 다시 영주권을 받고 호주로 돌아가 사역을 시작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들을 경험했습니다.

마치 기름에 불을 붙인 것 같은 부흥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호주에서 20년의 사역을 하는 즈음에, 한국 교회로의 부르심이 있었어요.

20개월의 그 세월을 지나면서 다시 호주에 들어가서 정신없이 정말 기쁨으로 행복하게

너무도 아름다운 목회를 하는 동안. 어느 날 한국에서의 콜이 왔어요.

그 교회는 수영로 교회였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상상할 수 없는 일어났습니다.

너무 안정된, 50대 중반, 사역자로서 옮기기에는 굉장히 위험한 시간.

 

저희 가족이 네 명이 투표를 해보았더니 3:1,

아무도 저 외에는 한국 가고자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완강하게 한국으로의 출국을 반대했어요.

 

기도했습니다. 우리 함께 기도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마음은 뭐냐면

22년 전에 한국에서 호주로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 저 안에 주셨던 마음,

그 마음은 조국 교회를 향한 저의 불붙는 신념입니다.

 

부산 땅에서 사역을 하며 현실 교회의 안타까움, 지상 교회의 허약함들, 부조리함들,

한국 교회의 쇠퇴가 급히 일어났을 때, 주님 제가 호주에 돌아가서

조국 교회의 재건을 위해 힘쓰고 싶습니다.

그 잃어버렸던 비전을 하나님께서 상기시켜주신 겁니다.

 

한국 교회의 새로운 부르심 앞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제 가슴에 심어주었던 그 비전이에요. 한국 교회의 회복.

20년이 되어 돌아온 한국 교회의 상황은 참으로 힘든, 어려운. 쇠퇴기에 들어 있는

한국 교회를 보며 제가 한국 교회를 섬길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주신 것은

22년 전에 이미 주셨던 그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이민목회가 제 생애의 마지막인 줄 알았어요.

거기에서 우리의 삶을 다 바치리라.

그래서 지금도 시드니에 있는 우리 새순교인들은 아직 저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냥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마치 바울이 순종 속에 로마를 보아야 하리라,

그 비전과 소원을 하나님이 심어주셨던 것처럼

조국 교회에 대한 사랑과 회복에 대한 열정이 제 마음에 있었기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기로 한 것입니다.

 

주님의 종은 자신이 살 수 있는 곳을 선택할 권한이 없어요.

주님의 처분에 따라,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무엇인가..

 

 

정리하면

 

바울의 심장에 심어주었던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그것은 바울이 가졌던 비전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그의 신념 속에 심어주었던 비전입니다.

 

사도행전 2816절 이후에 드디어 로마로 들어간 바울,

높은 고관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가 그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울이 빌었던 소원은 개인의 소원이 아니죠.

 

여러분, 아무리 불가능해보여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목표한 것들이 자신의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 때문에 절망하지 않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언제 이루어지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내가 그 일을 왜 하려고 하는가, 그 질문 앞에 명확한 답이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소원과 열망의 출처가 어디냐는 거죠.

 

그게 하나님으로부터 출발되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일을 만사를 제쳐두고서라도 이루시고야 마는 하나님이세요.

 

여러분 유라굴로라는 강풍이 일어났어요.

바울이 배에 탔을 때. 그때 모든 사람들이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바울이 일어나 지휘를 하죠.

 

이게 마치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면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장면과 똑같습니다.

평소에는 떵덩거리고 자랑하고 교만하는 것 같은데

유라굴라 같은 풍랑 한번 일어나면 다 죽는다고 야단입니다. 별 볼일 없어요.

 

그 때 하나님의 사람들이 빛이 나는 거죠. 여러분, 안심하세요!

하나님이 우리를 로마로 가게 할 것입니다. 그 담대한 선포가 왜 나왔을까요?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소원. 오래 전에 가졌던 로마를 향한 비전, 이루어지고 있잖아요.

이것은 하나님의 작품이기에, 아무리 풍랑이 일어도

하나님이 이 배를 로마로 이끌어주실 것을 확신하기에

그 배에서 죽음의 공포에 떠는 사람들을 향해 담대하라고, 염려하지 말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인생의 배를 타고 가는데 풍랑이 일어납니다.

별 희한한 일들이 터질 거에요.

그러나 우리의 담대함, 자신감의 배경이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 소원, 비전, .

나는 이렇게 주님을 위하여 살리라. 그 거룩한 사명을 붙든다면

그 사명을 이루기까지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지키실 것이고

우리의 인생의 모든 방해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목적을 이루실 줄로 믿는 거죠.

 

여러분, 로마로 가게 하는 그 길을 여신 분은, 하나님이세요.

가장 정확한 때에 가장 기가 막힌 방식으로 바울을 로마에 이르게 하셨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소원과 비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면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이루실 줄 믿습니다.

그것을 막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소원과 아름다운 비전을 여러분 많이 가지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비전, 그 소원,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때에 이루십니다.

 

그게 우리의 자신감, 담대함이 되는 것이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은 이루고야 마시기에

우리는 승리 예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가끔 해외 집회 같은 걸 갈 때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비행기가 흔들리고. 걱정 안합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사명, 그것이 저의 안정감입니다. 그러면 걱정이 안돼요.

나중에는 확신이 있으니까요.

 

~ 좋아. 롤러코스터인데 굉장히 비싼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걱정이 없어요.

떨어져도 하나님의 백성은 수직상승하는 겁니다.

사명이 있으며, 그 사명을 이루실 것을 믿고 때는 그 분의 손에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오늘 현실을 당당하게 길이 막히고 어려워져도

하나님은 더 놀라운 카이로스의 시간을 준비하시는 것을 믿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시간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가장 좋은 때에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 기다림의 믿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신뢰하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우리의 심장 속에 심어준

그 소원을 붙잡고 믿음으로 믿음으로 달음박질치는 주의 백성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반드시 이루시는 그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우리 모두 되기를 소원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타자 jh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