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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명’과 ‘너희의 말소리'

LNCK 2015. 6. 15. 11:44

여호와의 명과 너희의 말소리'            1:19-46             2015.06.07. 출처, 정리 

 

*주제 요약 : 교회 안에서의 '소리'는 단 하나, 항상 하나님의 말씀/음성밖에 없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음성을 올바로 선포하고, 전달하는 메신저들이, 늘 살아/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메신저들을, 쉽게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된 것이

지금 우리 사회/교계의 위기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은 고갈되거나 거의 멸절되어 없어져 버리고,

'사람의 목소리'만 남아서 압도하는 교회/사회는

오직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성경 말씀대로만 인도함 받아서,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먼저는, 메신저들이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서 전달하는 사명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여러분, '목소리 큰 자가 이긴다.'는 것은, 

사회나 교회의 혼란만 더 가중시키지, 아무 도움이 안 될 뿐더러, 오히려 독입니다.

 

'사람의 소리'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부할 수밖에 없으며,

그런 교회는 가나안을 코앞에 두고도, 애굽으로 되돌아가자는 불신앙적인 생각을

압도적인 다수결로 따라가게 되며,

결국은 광야에서 유리하는 비참한 꼴을 면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 설교 시작 .....................

제가 약 30년 전 미국에서 살게 되었을 때에

우리나라와 미국 사회 사이에서 여러 가지 문화적 차이점을 보게 되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쌍방 운전자들의 행동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상황에서 소위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식이 통할 때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자동차 사고가 나도

어느 쪽도 결코 소리를 지르거나 삿대질 따위를 하지 않습니다.

 

일단 'Are you OK?' (당신 괜찮습니까?) 정도로 물어 보면서

만약 다친 사람이 있으면 먼저 구급차부터 부르는 것이 제일 급선무입니다.

 

그리고 어느 쪽의 과실인지에 대해서 싸우는 일은 전혀 없고 그저 경찰을 부릅니다.

그리고 그 경찰이 사고 경위서를 작성하면

보험회사는 그 보고서에 따라서 서로 적당히 타결을 보게 되며,

만약 합의가 안 되거나 어느 한 쪽이 보험에 들어 있지 않는 경우에는

민사 재판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우리와 비슷한 국민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그것을 두고 '너희의 말소리'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소리를 들으시고 노하사 맹세하여 이르시되’ 1:34, 5:28참조

 

이 신명기 1장 후반부에서 모세는자신의 생애 마지막 40년을 바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사역했던 기간 중에 가장 가슴 아픈 사건 하나를 회고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간 저는 여러분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보다 더 큰 소리를 냄으로써 벌어졌던 비극적인 사건을

모세의 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면서,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중심'의 교회를 세워야 하는지그 이유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오직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명령'에만 순종할 때

교회 안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사라지게 됩니다.

 

본문 신1:26~33절에서, 모세가 과거를 회고하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는 사실은

바로 '가데스 바네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신1:19절에서 모세가 "너희의 본바 크고 두려운 광야"라고 하는 것은

아라비아 사막 북서쪽 지역을 가리킵니다.

 

그곳은 대부분이 모래와 암석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며

물을 얻기가 어렵고 모래바람도 빈번한,

실로 사람의 생존과 여행에 모든 악조건을 다 갖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출애굽한 직후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 덕분에

그 '두려운 광야'를 무사히 통과해서 "가데스 바네아"

즉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남쪽 입구 지역까지 도착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즉시 가나안 정복의 명령을 내리면서

그 땅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모리 족속의 산지"

즉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이라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계속해서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얻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말은 곧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제이스라엘 백성들의 손에 쥐어 주신 것이나 다름없으니

그저 '올라가기만 하면 얻게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런 모세의 명령이 떨어졌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첫 반응은

'행동'이 아니라 ''이었습니다.

 

1:22절에서 모세가 그때에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이라고 회상하고 있는 그대로입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다 나아와서즉 절대다수의 의견을 좇아서 제의했던 사실은

먼저 정탐꾼들을 보내어서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회보케 하자즉 가나안 땅에 대한 정보부터 입수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는 지극히 타당한 의견처럼 들리는 말이었으며,

심지어 모세조차 처음에는 그 말을 "선히 여겼을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이미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불신앙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저하지 말고 올라가서 얻으라.'고 말씀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저 사람을 우리 앞서 보내어서 알아볼 것은 알아 봐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했으니

그때부터 벌써 그들의 마음에는 의심과 불안이 싹트고 있었음이 분명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불신앙은 그들이 보낸 열두 정탐꾼들이 돌아와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고 하면서

"그 땅의 과실"까지 증거물로 가져 왔었음에도 불구하고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26절에서 모세는 그처럼 "너희가 올라가기를 즐겨 아니한마음은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거역하는죄로 직결되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에서는 "장막 중에서 원망하는 소리"부터 시작해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는 고로"라는 불신앙의 소리까지 거침없이 튀어나오게 되었습니다.

 

열두 명 중에서 절대다수에 해당되는 10명의 정탐꾼들이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라고 불신앙적인 선동을 하자,

그 '사람의 소리'가 마치 전염병처럼 순식간에 전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리면서

'여호와의 명'을 까마득히 잊게 만들었던 것이었습니다.

 

그처럼 '백성의 말소리'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면서

자기를 위협까지 하는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모세는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의 마음을 돌이켜 보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을 무서워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면서

지금까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써 그들의 '출애굽'을 기적적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이시니

이제 그들의 '가나안 정복'을 위해서도 역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라"

간곡히 일깨워 주려 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모세가 말하고 있는 대로 :32

대세는 이미 완전히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의 말'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리'

그런 '하나님의 말씀'이 조금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이미 그들의 귀와 마음속에 왕왕 울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소위 '목소리 큰 자가 이기는곳에는 자연히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설 곳이 없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위 사람의 중지(衆智)라는 것은, 오히려 진리와 반대되는 길로 가기 십상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이란 근본적으로

'살인간음도적질을 비롯한 온갖 악한 생각들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소리가 판을 치는 소위 '민주적 교회'란 곳에는

결국 우리를 죄에서 출애굽시켜 주신 '십자가 대속의 사랑'까지 까마득히 잊어 먹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교인들에게 성경 말씀의 명령이란

마치 하나님이 자기네의 행복을 빼앗아 버리시기 위하여 내리는 부당한 요구처럼 여겨질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하려 하는 '사람의 말소리'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거나 교회를 흔들지 않도록

오직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명령'만을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사람의 목소리'를 높인 결과, 망하거나 허송세월 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같은 반역적인 행태는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소리를 들으시고 노하사"라는

최악의 사태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1:34~40

 

당신께서 지금 모세를 통하여 명백한 명령그것도 축복이 보장된 명령을 내려 주고 계시는데도

그 앞에서 자기네 목소리를 더 크게 지르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라는 저주가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1:35

 

즉 가데스 바네아의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 20세 이상 되는 "이 악한 세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모두 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는 엄중한 징벌이 내려졌던 것이었습니다.

 

▶모세 역시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도 진노하사"라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는 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1:37

 

여기서 말하는 '너희의 연고'란 가데스 바네아의 사건이 생긴 이후에

광야생활 도중에 있었던 일로서 바로 민수기 20장에 나오는 '므리바 사건'을 가리킵니다.

 

그때 모세는 물이 없다고 불평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하고스스로의 흥분에 사로잡히는 죄를 저지름으로써

그 자신 역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대신에 출애굽 제1세대 중에서 오직 "갈렙"과 "여호수아"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했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또한 "너희가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아이들과 당일에 선악을 분변치 못하던 너희 자녀들" :39

다시 말해서 출애굽 제2세대와 광야세대의 후손들은

가나안 땅을 "산업"으로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회정하여 홍해길로 하여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이 떨어졌던 것이었습니다. :40

 

41절 이하에 보면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엄중한 책망과 저주를 받고서

그제야 정신이 버쩍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사오니"라고 말했지만 :41

그것은 참된 회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저주를 돌려 보려는 속 보이는 소리에 불과했습니다.

혹 그것이 진심이었다 해도 너무나 늦은 회개였습니다.

 

그것은 마치 죄인이 재판을 받기 전에 자수하거나 죄를 시인하면 용서나 감형을 받을 수 있지만,

일단 재판장의 판결이 떨어진 후에는 아무리 뉘우쳐 보았자 소용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가 올라가서 싸우리이다"라고 하면서

실제로 "병기를 띠고 경솔히 산지로 올라갔었습니다. :41

 

그런 행위를 두고 모세는 43절에서 "너희가... 천자히 산지로 올라가매"라고 했는데,

이 '천자(擅恣)하다'란 말은 '멋대로 천자와 '방자할 자자를 합친 것으로서

'제 마음대로 하여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셨을 때에는 불순종해 놓고

이제 '광야로 들어가라'고 하실 때에 오히려 다시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려는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방자하기 짝이 없는 불순종일 뿐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결과는 볼 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세일산"에서부터 아모리 족속의 "벌떼"와 같은 반격을 받고

   그저 줄행랑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세일산'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아주 가까운 곳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본토 근처까지 가 보지도 못한 채

   그야말로 '초전에 박살'을 당했던 것이었습니다.

 

실로 처참한 패배를 당하고 가데스 바네아로 퇴각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저 "여호와 앞에서 통곡"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미 하나님은 그들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실뿐이었습니다. :45

 

그 결과 그들은 패전의 아픈 상처를 끙끙 앓는 가운데, 46절에 기록한 대로, 

"가데스에 여러 날 동안 거한후에 원래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홍해의 광야길'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 이후 그때까지 지내온 2년에다 그 이후 38년을 더한

총 40년의 광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처럼 '사람의 목소리'가 높아짐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던 이스라엘의 '출애굽 세대'

가나안 땅의 축복의 약속을 다 상실하고 오히려 징벌과 저주를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는 오직 당신의 말씀대로 끝까지 순종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을 중심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광야 세대'(새 세대)로 하여금, 그 언약의 축복을 누리게 해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목소리'가 판을 치는 교회는 결국 난장판이 될 수밖에 없으며,

   '가나안 입성'은커녕 몇 십 년이 지나가도 여전히 '광야에서 유리'하는 꼴을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적용

 

교회 안에서의 '소리'는 단 하나항상 하나님의 말씀/음성밖에 없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음성을 올바로 선포하고, 전달하는 메신저들이, 늘 살아/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메신저들을, 쉽게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된 것이

지금 우리 사회/교계의 위기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은 고갈되거나 거의 멸절되어 없어져 버리고,

'사람의 목소리'만 남아서 압도하는 교회/사회는

오직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성경 말씀대로만 인도함 받아서,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먼저는, 메신저들이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서 전달하는 사명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여러분, '목소리 큰 자가 이긴다.'는 것은, 

사회나 교회의 혼란만 더 가중시키지, 아무 도움이 안 될 뿐더러, 오히려 독입니다.

 

'사람의 소리'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부할 수밖에 없으며,

그런 교회는 가나안을 코앞에 두고도, 애굽으로 되돌아가자는 불신앙적인 생각을

압도적인 다수결로 따라가게 되며,

결국은 광야에서 유리하는 비참한 꼴을 면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참고로, 침례교는 '교인 중심'의 교회, 즉 소위 '회중정치'를 하는 교회입니다.

   말하자면 철저히 '직접 민주주의'식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감리교는 '목사 중심'의 교회 즉 '감독정치'를 하는 교회입니다.

   세상 정치에 비유하자면 '귀족정치'와 같은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장로교회는 '목사의 성경중심의 설교'를 따르고 '당회의 성경중심의 관할과 치리'에 복종하는,

   세상 정치 형태를 빌어서 표현하자면 '대의(원) 민주주의적'인 교회정치를 하는 교회입니다.

 

소위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사회는 영영 후진국가로 남을 수밖에 없고,

'법과 양식이 통하는사회가 되어야만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건전하고 수준 높은 교회를 세우는 데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더욱 성경을 통해 '여호와의 명'만 듣고 분변해서 순종함으로써

교회/사회 안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사라지게 하고,

그처럼 성경 말씀대로 지도하는 '영적 리더'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온전히 세움으로써

앞으로 이보다 더 큰 '축복의 산지'를 기업으로 함께 누리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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