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유랑자들 히11:8 2014.02.16.출처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11:8
◑유랑자들에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오늘 본문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믿음의 후손인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는지를
교훈하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75세 되던 어느 날, 문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 양자택일해야 하는 명령이었습니다.
제가 금년에 77세입니다. 아브라함과 비슷한 나이인데요.
그런데 저보고 ‘옆집으로 이사 가라’고 해도 끔찍할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옛날에, 가족과 조카 롯과, 사람들과, 가축들을 이끌고
이방 땅으로 간다는 것은, 아주 어려웠던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이 어려운 명령에 그냥 순종한 후
175세 때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시종 똑같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한 가지 하나님께서 보장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너는 복이 될 것이다.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보장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의 사람들에게 주신 공통적인 약속 한 가지가 있습니다.
보장 하나가 있어요. 그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모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출애굽을 주저할 때도 ‘내가 정녕 너와 함께 하겠다’
모세를 불러내어 출애굽의 장정을 맡겼습니다.
선지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사도들에게도 주님께서 똑같이 말슴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
천하만민에게 복음을 전하여라.’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임마누엘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 약속이, 이 보장이 항상 반드시 우리가 만사형통하고, 건강하고,
순탄대로를 걸어갈 것이란 뜻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한 그날부터,
자기로서는 예측할 수 없는 하루하루를 살게 되었습니다.
히11:8절처럼,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했습니다.
그의 손자 야곱이, 우여곡절 끝에, 애굽까지 갔습니다.
애굽의 왕 바로가 물었습니다. ‘네 나이가 몇이냐?’
대답이 ‘제 나그네길 세월이 130년입니다.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여러 차례 약속하시고 보장하셨어요.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야곱은, 자기 130년 일생을 회고하면서 한 마디로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라고 표현했습니다.
요셉의 일생을 보면, 군데군데,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중요한 삶의 대목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에게 팔렸고, 노예가 되었고, 하인이 되었고, 관리자가 되었고
옥에 갇힙니다.
애굽 총리가 되긴 했지만, 실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가 살았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지요. ‘내가 정녕 너와 함께 하리라.’ 약속을 받았지만,
그러나 출애굽 40년 광야의 행진 속에서, 그가 겪은 고초는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가 그렇게 원했던 가나안 입성, 그 자체는 못했습니다. 느보 산에 올라가서,
멀리 가나안을 바라보고, 그는 느보산에서 자기 일생을 마감했습니다.
◑유랑자들이 복음전파의 도구였습니다.
▶사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온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거의 사도요한을 제외하고는 순교했습니다.
요한은 에베소로 갔고, 베드로는 로마에서 순교했고,
안드레는 우크라이나, 빌립은 히에라폴리스,
바돌로메는 아르메니아에서, 도마는 인도에서, 다대오는 이란에서
열심당 시몬도 이란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프랑스 남부까지 흘러갔습니다.
프랑스 남부 엑생 프로방스에 가면, 막달라 마리아의 기념관과 유적이 있습니다.
마가는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했습니다.
지금 이태리 베니스에 마가의 성당이 있지만,
그건 상인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그의 유골을 훔쳐다가 옮겨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전통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함락한 후에, 예루살렘 교회의 교우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날 이후 오늘까지, 기독교는, 교회는
이 세상에 지리적 중심지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유랑하는 하나님의 공동체로 세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유랑은,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중세 초부터 유럽 대륙의 복음화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이리 저리 떠돌아다녔던 유랑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복음화 되었습니다.
400년~800년까지 이르는, 서부 유럽과 중앙 유럽의 복음화는
로마 제국을 침략했던 고트 족에 의해서 포로와 노예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납치되어간 사람들이
그 땅으로 가서, 그들 대부분이 로마 제국의 기독교인들이었기 때문에
그곳의 복음화를 위해서, 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복음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이킹 족이 유럽을 침략하고, 수도원을 파괴하고, 교회를 파괴하고
많은 사람들을 납치해 갔습니다.
납치당해 갔던 수도사들이, 또 그리스도인 여인들이
스칸디나비아 지역 복음화에 위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흘러온 유랑자들이었습니다.
◑<유랑의 교회>
▶제작년 4월에 제가, 동남아시아에서 모이는
인도차이나 반도 한국 선교사 대회에 가다가, 일본에 잠시 들렀습니다.
쓰나미가 강타한 지역에, 지금 교회는 어떻게 되었는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한 번 보기 위해, 그 지역을 제가 방문했습니다.
쭈욱 며칠 돌아본 후에, 일본 기독교 동북지역 재해대책본부가 있는 교회를 찾아가서
그 사무실에서, 책임을 맡은 분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작은 교회 2층에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그 아래 층 구석에 서재가 있었고, 그 유리창에 책 광고하는 포스트가 붙어 있었습니다.
<유랑의 교회> 그 제목이 제 마음을 갑자기 사로잡았습니다.
쓰나미가 강타한 후쿠시마 지역에 있는, 후쿠시마 제일침례교회 목사님이 쓰신 책입니다.
▶좋은 예배당 가지고, 편안하고 기쁜 신앙생활을, 그 교회가 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쓰나미가 닥쳤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죽고, 피신했고, 일본 전역으로 흩어졌습니다.
가족을 찾아, 친지를 찾아, 수용소를 찾아
그리고 그 교회로, 동네로, 지금까지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비극이, 그들에게 현실로 들이닥친 것입니다.
“집을 떠나 전 일본에 흩어져 있는 교우들이, 깨달은 최고의 은혜는,
비록 집은 없어지고, 더러는 가족들이 세상을 떠났고
재물을 잃어버렸고, 교회 건물도 없고, 일본 전역에 흩어져 버렸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안에서 하나인 공동체로서
교회의 본질을 깨닫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는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예배당에 모여서, 누렸던 특별한 은혜들,
건물, 시설, 제도, 프로그램 등등 특별한 은혜들,
교인끼리 서로 얼굴과 맞대어 이야기하고, 같이 차를 마시고, 같이 식사하고,
같이 교제하던..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이 모든 것들이 다 없어졌어요.
생각해보니 당연한 것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있을 때는 그것을 몰랐었지요.
이제 다 흩어져보니, 없어지고 난 후에야
서로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기도하는 것
비록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함께 찬양하지는 못하지만
때를 따라 같은 주님을 찬양하며..
그러나 공동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것이 교회다..
그 진리를 알게 된 것을 기뻐한다. 체험했습니다.”
그런 내용이 책에 적혀 있었습니다.
▶그 저자 목사님께서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성경을 읽을 때,
출애굽, 바벨론 포로생활, 유배생활,
초기 교회의 성도들이 박해를 받아 온 사방에 흩어지고,
숨어 다니고 했던 이런 이야기들을
성경에서, 역사에서 읽었지만, 단순한 그것은 지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쓰나미로 이렇게 비극적인 상황을 체험하다 보니까,
모든 이런 이야기들이 새롭게, 실감 있게, 느껴지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출애굽?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행진했고.. 그런데 단순히 그게 아니에요.
‘광야 40년 이스라엘 백성이 유랑하는 동안,
아이들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그 어린 것들은 어떻게 자랄 수 있었을까?
병든 사람들은 어떻게 치료받았을까? 연로한 노인들은, 광야에서 어떻게 돌볼 수 있었을까?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장례를 지냈을까? 죽은 후에 장례를 지내고 무덤을 만들고
다시는 볼 수 없는 그 길을 또 가야했던 이들의 심정이 얼마나 비통했을까?’
이런 것들을 알게 된 것입니다.
포로생활, 유배생활, 자국에서 쫓기고 숨어 다니던 디아스포라 성도들의 처지를
쓰나미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실감나게 알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참으로 은혜였습니다.” 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유랑하지만, 생동적인 교회
▶유랑의 교회, 여기서 오늘 유랑이라는 말
유랑이라는 이 사실을, 우리가 주목하기를 바랍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답게 존재하고 사역하기 위해서는,
‘유랑’이라는 이 말이, 이 역사적 사건들이, 이 사실들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유랑생활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됩니다. 가질 수가 없습니다.
가장 필요한 것만, 없어서는 안될 것만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교회가 왜 부패하고 타락했습니까?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비본질적인 것을 중하게 여기고.. 그런 거죠.
▶로마제국 하에서 박해 받던 초기교회가
313년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서, 마침내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떤 역사가들의 기록에 의하면
약 5천만 로마제국 인구 중에, 약 5백만명 정도가 기독교인이었다.. 라고 기록했습니다.
10% 엄청난 숫자입니다.
거듭되는 박해 속에서,
가시적인 연락, 교류가 없었던 그런 시대에
어떻게 10%정도의 신자들이 있었던가요?
교회는 계속 내용적으로 부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중국이 1930년대 말에 전쟁에 휘말렸습니다. 선교사들이 중국을 떠났습니다.
그때 선교사들의 보고에 의하면, 중국 기독교인의 수가 약 75~80만이었습니다.
1945년에 전쟁이 끝나고, 바로 내전에 돌입했습니다. 1947년에 공산화되었습니다.
1977년 말에 개방이 시작되기 까지 약 30년 동안, 중국교회는 비참하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폐쇄되었고, 교회지도자들은 감금되거나, 처형되거나,
강제노동소용소에 보내졌습니다.
공개적으로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책, 찬송가도 출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세월이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말에, 개방을 하고 보니
그 전보다 훨씬 더 많은 교인들이 중국에 있었습니다.
▶로마제국과 중국교회의 역사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선교와 우리의 교회에 중대한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선교사들과 대조적인 교회가 필요없다는 뜻인가?’
라는 심각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박해받고, 이리저리 쫓겨 가고, 공식적인 선교활동이 금지된 시기에
오히려 생동력을 가지고, 교세가 증가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그 핵심적인 이유는, 우리가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박해 때문에, 교회가 비본질적인 것들, 지위, 교권, 명예, 건물, 시설 등등
이 비본질적인 것들을 박탈당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질 수가 없었어요.
그냥 본질적인 것, 말씀,
여러분 중국교회의 형편을 우리가 잘 아는데요,
그 기간 동안 성경이 출판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성도들은 자기가 기억하는 성경들을 머리에 담고 있었습니다.
혹은 필기해서 나눠 갖고 있었습니다. 말씀.
기도. 믿음, 소망, 사랑, 성도의 교제.
이런 것들을 고수함으로써, 순결하고 생기 있는 교회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살아 역사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 교훈입니다. 역사적 교훈은, 하나님의 교훈입니다.
▶<유랑의 교회>라는 책이 한국말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제목을 <기적을 이루는 교회> 그렇게 붙였습니다.
‘유랑의 교회’, 그 제목이 ‘기적을 이루는 교회’ 이렇게 바뀐 거예요.
제가 이 책을 통해서, 이 제목을 보면서,
이렇게 제목을 바꾼 이유와 의도가 출판사 쪽에 있겠지만,
제가 오해인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오늘 우리 교회의 성향을 드러낸,
우리 교회의 문제를 그대로 드러낸 상징적인 작은 사건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유랑의 교회, 기적을 이루는 교회,
기적, 행운, 성공, 자기만족, 자기소원성취.. 이런 것들을 강조하고, 설교하고,
그 자체는 나쁜 것은 아닙니다. 괜찮아요.
그런데 예수 믿으면 그렇게 된다.. 등등 이런 식으로 강조하면서
섬김과 수고와 희생과 고난을 기피하고
오히려 그런 것들은 하나님의 징벌처럼 가르치고
설교하는 듯한 교회들이 적지 않고
그런 교회들에 오히려 어떤 경우로 보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오늘의 이 현실,
유랑의 교회, 기적을 이루는 교회
그런 좀 착잡한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에, 어떤 사람들은 ‘종교가 아편’이라 그랬습니다.
그런 경우, 진정한 교회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시고 약속하신 복을
구분할 수 있겠어요?
러시아에 세인트 피터스버그(상뜨 빼째스부르그) 도시에 가면,
베드로의 이름으로 지어진 도시, 많은 큰 교회들이 있고,
기독교 건물들이 많고, 장식들도 많고, 기독교 예술품들로 충만한 이 도시에
무신론 공산주의자들이 일어나,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성공했습니다.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 것입니다.
왜요? 그때는 그랬어요. ‘종교는 아편이다.’ 그 말이 먹혀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왜요? 기적, 성공, 평안, 서우너성취, 자기이기적인 자기중심적인 소원성취!
예수 믿으면 그것이 은혜받은 증거다, 그것이 은혜다.
물론 그럴 수 있죠. 그러나 그것만이 아닌데..
▶마치는 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하고, 그 길을 믿음으로 걸어갔다고 했습니다.
이 디아스포라 교회가 대부분 한국이라는 본토친척아비집을 떠난 이들의 교회입니다.
지리적 이동, 이주에 본질적인 의미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유랑인가, 아닌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갈바를 알기 어려운 이 세상에, 우리의 삶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니까, 하루 후의 일을 모르는 겁니다.
저는 오늘 이 주일에, 여기서 설교해야 되는지, 어제 오후까지도 몰랐습니다.
우리가 갈 바를 알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선한목자이신 주님을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지식이나 자기 경험이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믿는 것이 아니고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만사를 그분에게 위임하고,
그냥 순종한 믿음이었습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의 유랑자들의 공동체로
남은 역사를, 감당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이고, 그래야 다른 사람과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신령한 복을 나누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는 길이라 믿습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이곳에 귀한 교회를 일으켜 세워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남은 세월동안, 가진 것에 만족하고, 이 세상의 어떤 것에 우리가 집착하고,
축적하는 그런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과 명령에 날마다 순종하면서
전진하며 움직이는 참으로 유랑하는 귀한 공동체가 이 교회를 인도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선한목자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유랑자들 히11:8 2014.02.16.출처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11:8
◑유랑자들에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오늘 본문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믿음의 후손인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는지를
교훈하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75세 되던 어느 날, 문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 양자택일해야 하는 명령이었습니다.
제가 금년에 77세입니다. 아브라함과 비슷한 나이인데요.
그런데 저보고 ‘옆집으로 이사 가라’고 해도 끔찍할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옛날에, 가족과 조카 롯과, 사람들과, 가축들을 이끌고
이방 땅으로 간다는 것은, 아주 어려웠던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이 어려운 명령에 그냥 순종한 후
175세 때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시종 똑같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한 가지 하나님께서 보장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너는 복이 될 것이다.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보장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의 사람들에게 주신 공통적인 약속 한 가지가 있습니다.
보장 하나가 있어요. 그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모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출애굽을 주저할 때도 ‘내가 정녕 너와 함께 하겠다’
모세를 불러내어 출애굽의 장정을 맡겼습니다.
선지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사도들에게도 주님께서 똑같이 말슴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
천하만민에게 복음을 전하여라.’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임마누엘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 약속이, 이 보장이 항상 반드시 우리가 만사형통하고, 건강하고,
순탄대로를 걸어갈 것이란 뜻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한 그날부터,
자기로서는 예측할 수 없는 하루하루를 살게 되었습니다.
히11:8절처럼,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했습니다.
그의 손자 야곱이, 우여곡절 끝에, 애굽까지 갔습니다.
애굽의 왕 바로가 물었습니다. ‘네 나이가 몇이냐?’
대답이 ‘제 나그네길 세월이 130년입니다.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여러 차례 약속하시고 보장하셨어요.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야곱은, 자기 130년 일생을 회고하면서 한 마디로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라고 표현했습니다.
요셉의 일생을 보면, 군데군데,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중요한 삶의 대목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에게 팔렸고, 노예가 되었고, 하인이 되었고, 관리자가 되었고
옥에 갇힙니다.
애굽 총리가 되긴 했지만, 실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가 살았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지요. ‘내가 정녕 너와 함께 하리라.’ 약속을 받았지만,
그러나 출애굽 40년 광야의 행진 속에서, 그가 겪은 고초는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가 그렇게 원했던 가나안 입성, 그 자체는 못했습니다. 느보 산에 올라가서,
멀리 가나안을 바라보고, 그는 느보산에서 자기 일생을 마감했습니다.
◑유랑자들이 복음전파의 도구였습니다.
▶사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온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거의 사도요한을 제외하고는 순교했습니다.
요한은 에베소로 갔고, 베드로는 로마에서 순교했고,
안드레는 우크라이나, 빌립은 히에라폴리스,
바돌로메는 아르메니아에서, 도마는 인도에서, 다대오는 이란에서
열심당 시몬도 이란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프랑스 남부까지 흘러갔습니다.
프랑스 남부 엑생 프로방스에 가면, 막달라 마리아의 기념관과 유적이 있습니다.
마가는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했습니다.
지금 이태리 베니스에 마가의 성당이 있지만,
그건 상인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그의 유골을 훔쳐다가 옮겨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전통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함락한 후에, 예루살렘 교회의 교우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날 이후 오늘까지, 기독교는, 교회는
이 세상에 지리적 중심지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유랑하는 하나님의 공동체로 세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유랑은,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중세 초부터 유럽 대륙의 복음화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이리 저리 떠돌아다녔던 유랑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복음화 되었습니다.
400년~800년까지 이르는, 서부 유럽과 중앙 유럽의 복음화는
로마 제국을 침략했던 고트 족에 의해서 포로와 노예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납치되어간 사람들이
그 땅으로 가서, 그들 대부분이 로마 제국의 기독교인들이었기 때문에
그곳의 복음화를 위해서, 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복음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이킹 족이 유럽을 침략하고, 수도원을 파괴하고, 교회를 파괴하고
많은 사람들을 납치해 갔습니다.
납치당해 갔던 수도사들이, 또 그리스도인 여인들이
스칸디나비아 지역 복음화에 위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흘러온 유랑자들이었습니다.
◑<유랑의 교회>
▶제작년 4월에 제가, 동남아시아에서 모이는
인도차이나 반도 한국 선교사 대회에 가다가, 일본에 잠시 들렀습니다.
쓰나미가 강타한 지역에, 지금 교회는 어떻게 되었는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한 번 보기 위해, 그 지역을 제가 방문했습니다.
쭈욱 며칠 돌아본 후에, 일본 기독교 동북지역 재해대책본부가 있는 교회를 찾아가서
그 사무실에서, 책임을 맡은 분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작은 교회 2층에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그 아래 층 구석에 서재가 있었고, 그 유리창에 책 광고하는 포스트가 붙어 있었습니다.
<유랑의 교회> 그 제목이 제 마음을 갑자기 사로잡았습니다.
쓰나미가 강타한 후쿠시마 지역에 있는, 후쿠시마 제일침례교회 목사님이 쓰신 책입니다.
▶좋은 예배당 가지고, 편안하고 기쁜 신앙생활을, 그 교회가 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쓰나미가 닥쳤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죽고, 피신했고, 일본 전역으로 흩어졌습니다.
가족을 찾아, 친지를 찾아, 수용소를 찾아
그리고 그 교회로, 동네로, 지금까지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비극이, 그들에게 현실로 들이닥친 것입니다.
“집을 떠나 전 일본에 흩어져 있는 교우들이, 깨달은 최고의 은혜는,
비록 집은 없어지고, 더러는 가족들이 세상을 떠났고
재물을 잃어버렸고, 교회 건물도 없고, 일본 전역에 흩어져 버렸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안에서 하나인 공동체로서
교회의 본질을 깨닫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는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예배당에 모여서, 누렸던 특별한 은혜들,
건물, 시설, 제도, 프로그램 등등 특별한 은혜들,
교인끼리 서로 얼굴과 맞대어 이야기하고, 같이 차를 마시고, 같이 식사하고,
같이 교제하던..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이 모든 것들이 다 없어졌어요.
생각해보니 당연한 것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있을 때는 그것을 몰랐었지요.
이제 다 흩어져보니, 없어지고 난 후에야
서로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기도하는 것
비록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함께 찬양하지는 못하지만
때를 따라 같은 주님을 찬양하며..
그러나 공동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것이 교회다..
그 진리를 알게 된 것을 기뻐한다. 체험했습니다.”
그런 내용이 책에 적혀 있었습니다.
▶그 저자 목사님께서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성경을 읽을 때,
출애굽, 바벨론 포로생활, 유배생활,
초기 교회의 성도들이 박해를 받아 온 사방에 흩어지고,
숨어 다니고 했던 이런 이야기들을
성경에서, 역사에서 읽었지만, 단순한 그것은 지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쓰나미로 이렇게 비극적인 상황을 체험하다 보니까,
모든 이런 이야기들이 새롭게, 실감 있게, 느껴지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출애굽?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행진했고.. 그런데 단순히 그게 아니에요.
‘광야 40년 이스라엘 백성이 유랑하는 동안,
아이들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그 어린 것들은 어떻게 자랄 수 있었을까?
병든 사람들은 어떻게 치료받았을까? 연로한 노인들은, 광야에서 어떻게 돌볼 수 있었을까?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장례를 지냈을까? 죽은 후에 장례를 지내고 무덤을 만들고
다시는 볼 수 없는 그 길을 또 가야했던 이들의 심정이 얼마나 비통했을까?’
이런 것들을 알게 된 것입니다.
포로생활, 유배생활, 자국에서 쫓기고 숨어 다니던 디아스포라 성도들의 처지를
쓰나미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실감나게 알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참으로 은혜였습니다.” 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유랑하지만, 생동적인 교회
▶유랑의 교회, 여기서 오늘 유랑이라는 말
유랑이라는 이 사실을, 우리가 주목하기를 바랍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답게 존재하고 사역하기 위해서는,
‘유랑’이라는 이 말이, 이 역사적 사건들이, 이 사실들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유랑생활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됩니다. 가질 수가 없습니다.
가장 필요한 것만, 없어서는 안될 것만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교회가 왜 부패하고 타락했습니까?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비본질적인 것을 중하게 여기고.. 그런 거죠.
▶로마제국 하에서 박해 받던 초기교회가
313년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서, 마침내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떤 역사가들의 기록에 의하면
약 5천만 로마제국 인구 중에, 약 5백만명 정도가 기독교인이었다.. 라고 기록했습니다.
10% 엄청난 숫자입니다.
거듭되는 박해 속에서,
가시적인 연락, 교류가 없었던 그런 시대에
어떻게 10%정도의 신자들이 있었던가요?
교회는 계속 내용적으로 부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중국이 1930년대 말에 전쟁에 휘말렸습니다. 선교사들이 중국을 떠났습니다.
그때 선교사들의 보고에 의하면, 중국 기독교인의 수가 약 75~80만이었습니다.
1945년에 전쟁이 끝나고, 바로 내전에 돌입했습니다. 1947년에 공산화되었습니다.
1977년 말에 개방이 시작되기 까지 약 30년 동안, 중국교회는 비참하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폐쇄되었고, 교회지도자들은 감금되거나, 처형되거나,
강제노동소용소에 보내졌습니다.
공개적으로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책, 찬송가도 출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세월이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말에, 개방을 하고 보니
그 전보다 훨씬 더 많은 교인들이 중국에 있었습니다.
▶로마제국과 중국교회의 역사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선교와 우리의 교회에 중대한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선교사들과 대조적인 교회가 필요없다는 뜻인가?’
라는 심각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박해받고, 이리저리 쫓겨 가고, 공식적인 선교활동이 금지된 시기에
오히려 생동력을 가지고, 교세가 증가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그 핵심적인 이유는, 우리가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박해 때문에, 교회가 비본질적인 것들, 지위, 교권, 명예, 건물, 시설 등등
이 비본질적인 것들을 박탈당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질 수가 없었어요.
그냥 본질적인 것, 말씀,
여러분 중국교회의 형편을 우리가 잘 아는데요,
그 기간 동안 성경이 출판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성도들은 자기가 기억하는 성경들을 머리에 담고 있었습니다.
혹은 필기해서 나눠 갖고 있었습니다. 말씀.
기도. 믿음, 소망, 사랑, 성도의 교제.
이런 것들을 고수함으로써, 순결하고 생기 있는 교회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살아 역사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 교훈입니다. 역사적 교훈은, 하나님의 교훈입니다.
▶<유랑의 교회>라는 책이 한국말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제목을 <기적을 이루는 교회> 그렇게 붙였습니다.
‘유랑의 교회’, 그 제목이 ‘기적을 이루는 교회’ 이렇게 바뀐 거예요.
제가 이 책을 통해서, 이 제목을 보면서,
이렇게 제목을 바꾼 이유와 의도가 출판사 쪽에 있겠지만,
제가 오해인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오늘 우리 교회의 성향을 드러낸,
우리 교회의 문제를 그대로 드러낸 상징적인 작은 사건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유랑의 교회, 기적을 이루는 교회,
기적, 행운, 성공, 자기만족, 자기소원성취.. 이런 것들을 강조하고, 설교하고,
그 자체는 나쁜 것은 아닙니다. 괜찮아요.
그런데 예수 믿으면 그렇게 된다.. 등등 이런 식으로 강조하면서
섬김과 수고와 희생과 고난을 기피하고
오히려 그런 것들은 하나님의 징벌처럼 가르치고
설교하는 듯한 교회들이 적지 않고
그런 교회들에 오히려 어떤 경우로 보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오늘의 이 현실,
유랑의 교회, 기적을 이루는 교회
그런 좀 착잡한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에, 어떤 사람들은 ‘종교가 아편’이라 그랬습니다.
그런 경우, 진정한 교회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시고 약속하신 복을
구분할 수 있겠어요?
러시아에 세인트 피터스버그(상뜨 빼째스부르그) 도시에 가면,
베드로의 이름으로 지어진 도시, 많은 큰 교회들이 있고,
기독교 건물들이 많고, 장식들도 많고, 기독교 예술품들로 충만한 이 도시에
무신론 공산주의자들이 일어나,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성공했습니다.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 것입니다.
왜요? 그때는 그랬어요. ‘종교는 아편이다.’ 그 말이 먹혀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왜요? 기적, 성공, 평안, 서우너성취, 자기이기적인 자기중심적인 소원성취!
예수 믿으면 그것이 은혜받은 증거다, 그것이 은혜다.
물론 그럴 수 있죠. 그러나 그것만이 아닌데..
▶마치는 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하고, 그 길을 믿음으로 걸어갔다고 했습니다.
이 디아스포라 교회가 대부분 한국이라는 본토친척아비집을 떠난 이들의 교회입니다.
지리적 이동, 이주에 본질적인 의미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유랑인가, 아닌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갈바를 알기 어려운 이 세상에, 우리의 삶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니까, 하루 후의 일을 모르는 겁니다.
저는 오늘 이 주일에, 여기서 설교해야 되는지, 어제 오후까지도 몰랐습니다.
우리가 갈 바를 알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선한목자이신 주님을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지식이나 자기 경험이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믿는 것이 아니고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만사를 그분에게 위임하고,
그냥 순종한 믿음이었습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의 유랑자들의 공동체로
남은 역사를, 감당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이고, 그래야 다른 사람과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신령한 복을 나누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는 길이라 믿습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이곳에 귀한 교회를 일으켜 세워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남은 세월동안, 가진 것에 만족하고, 이 세상의 어떤 것에 우리가 집착하고,
축적하는 그런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과 명령에 날마다 순종하면서
전진하며 움직이는 참으로 유랑하는 귀한 공동체가 이 교회를 인도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선한목자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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