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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을 이기는 힘, 복종

LNCK 2015. 6. 29. 07:10

사탄을 이기는 힘, 복종             고후10:3~6              14.11.02.출처보기

 

 

 

고후10:3~6,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을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오늘은 <사탄을 이기는 힘, 복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자주 보는 말씀 앞에 다시 한 번 서기를 바랍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가 많았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은사가 나타났지만, 은사는 좋은 거예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은 다 좋은 거예요.

 

그런데 우리들은 그 은사가 나타날 때, 어지러움과 어려움도 있습니다.

은사 때문이 아니죠. 그 나타나는 과정에서 우리들은 우리의 영이 거듭나도

우리의 혼이 아직도 옛 생각과 습관에 다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충만한 역사가 일어날 때, 거기에 어려움이 타고 나옵니다.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많은데, 가장 많은 문제가 기록된 교회이에요.

그래서 고린도교회에, 회개에 대한 설교를 다시 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4장에서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여러분 우리가 우겨쌈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뭐에요? 당하지 아니하며.

여러분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답답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주님을 따르다보면 주님을 따르기 때문에 해결되는 일도 있지만

주님을 따르는 자가 당하는 답답함도 있습니다.

 

그리고 박해를 받습니다. 예수님 믿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습니다. 순교자들은 영원히 기억합니다, 오히려.

 

거꾸러뜨림을 당합니다. 조금 전 서 있었는데 어떻게요?

갑자기 널부러저 있는 거예요. 이럴 수 있습니다. 예수 믿어도. 널부러질 수 있어요.

그러나 망하지 않습니다. 아멘.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10절에 그 이유가 있어요.

이는 항상 우리가 예수의 죽임을 몸에 짊어지면.

 

바울은 이런 마음이었어요.

'내가 거꾸러뜨림을 당할 때, 내가 예수를 죽였지. 스테반을 죽일 때도 내가 거기에 있었지.'

 

그 사람 안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이유를 발견하는 거예요.

나를 답답하게 만드는 사람에서 발견하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나를 답답하게 만드는 사람에게서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발견하는 것. 나를 거구러뜨릴 때 그 사람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이유를 발견하는 것. 이게 주님만 바라보는 삶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면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그럴 때 우리가 주님의 죽으심을 본받게 됩니다.

답답한 일을 해결하려는 게 아니에요. 거꾸러뜨림을 당하면 반격하는 게 아니에요.

거꾸러뜨림을 당하면 상대방을 거꾸러뜨리면 안돼요. 그건 역습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안돼요.

 

주님이 보시고 네가 나의 죽으심과 연합됐구나. 너 세례 받은 게 진짜구나.

넌 계속 그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죽으심을 본받는구나. 주님이 어떡해요?

 

우리 영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아니에요. 우리 몸에 부활 생명을 나타나게 하십니다.

이게 죽으면 천국 가는 게 아니라

지금 우리의 모든 문제 속에서 현재적으로 부활 생명이 역사합니다.

 

설교가 이 날씨 좋은 날. 여러분. 낙심하지 마시고 이런 말씀을 붙잡고 사세요.

저 설교에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 얻으리라. 아멘.

 

믿음이 없으면 인내라도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님 역사하십니다. 이게 복음이에요.

고린도 교회는요 계시와 능력을 구했어요. 계시와 능력을.

성령의 능력은 환경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좋아할만해요.

 

땅에서 고추가 네 배로 열리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러니 사모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환경이 바뀌는 동안, 내가 안 바뀌면 쓰임 받고 결국 버림받습니다.

이것도 고린도서에 나와요.

 

우리는 쓰임 받는 게 목표가 아니에요. 우리는 변화 받는 게 목표에요.

쓰임 받을수록 교만해져서 버림받을 가능성이 높아져요.

우리의 목표는 변화 받는 거예요.

 

그것은 성령의 능력보다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서 시작하면서, 십자가의 로고스, 십자가의 프린시플(원리),

십자가의 말씀과 십자가의 원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가 능력입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계시와 은사와 능력을 구하는 거예요.

 

바울은 말합니다. 십자가의 길이 능력이라고. 그래서 말합니다.

4:11절에 우리 살아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여러분 예수님을 위하여 죽음에 넘겨지기를 축원합니다.

그런 사람들 바깥에서 구하기는 어려워요. 여기서 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걱정 마요. 끝까지 견디는 자, 능히 죽음에 넘길 사람을 우리는 보유하고 있습니다.

걱정 말아요. 여러분 그 길이 맞는 길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답답한 일을 당해요. 우겨쌈을 당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해요.

그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서 이유를 구하지 아니하고

나를 우겨싸고 거꾸러뜨리는 그 사람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주님과 나 사이에서 이유를 구합니다.

 

우리가 예수 죽인 것을 내 몸에 짊어지고.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지는 사람에게

주님은 부활 생명으로 반드시 함께 합니다.

 

4:12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이런 분들을 통하여 이 교회가 반드시 부흥할 줄로 믿습니다.

 

바울은 내가 너희로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골1:24

내가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이 있어요. 내가 이 사람을 위하려 하다보니 괴로움이 오는 거예요.

근데 이걸 기뻐해요.

 

여러분 괴로움이 괴롭죠. 부부싸움 뭐라 그래요. 부부싸움하면.

내가 너 때문에 괴로워. 그렇게 말하잖아요.

 

근데 바울은 이랬어요. 바울은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에 기뻐하고.

왜요? 그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내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1:24

주님의 남은 고난이 있대요.

 

주님의 남은 고난은 죄 때문에가 아닙니다. 죄는 십자가에서 다 해결했어요.

그런데 십자가에서 주님의 몸이 죽었죠. 그런데 3일만에 다시 사셨죠.

다시 사셔서 못 붙잡아요. 올라가셨어요. 그 다음에 어딨어요?

 

부족한 우리들로 주님의 몸을 다시 만드셨어요. 이 땅에.

근데 많이 부족해요. 교회가 많이 부족해요. 어떤 사람 찾으세요?

(교회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

 

그게 바울은 기뻤어요.

여러분 이 교회가, 세례로부터, 나는 주님의 죽으심과 연합되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건이 터지더라도 나는 늘 주님의 죽으심과 연합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을 통하여, 이 교회에 화가 복이 되고, 부활 생명이 역사할 줄로 믿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한 거예요.

사망은 우리 안에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 역사하느니라. 이게 주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 이게 십자가의 도에요. 십자가의 도는요, 사탄을 이기는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 말씀에 이렇게 써놨어요.

 

우리가 육신에서 행하지만 육신을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무슨 말이에요? 고후10:3

싸움은 반드시 있다. 우리가 출애굽을 시작할 때부터 말합니다.

 

노예들이에요. 히브리 노예들. 종치면 밥먹고 그냥 일만하면 끝이에요.

잘할 생각도 없어요. 어떻게 하면 대강 할려고 하는 거죠. 노예.

 

근데 주님이 출애굽 시키자마자 죄를 용서해요.

죄를 용서하자마자 너희는 내 군대라.

 

아가서를 봐도, 출애굽기를 봐도, 구약을 맞춰보면 군대가 된 사람이 신부가 돼요.
그래서 계시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혀주신다말합니다.

이기는 자는, 군대가 된 자는 흰 옷을 입은 신부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현대 교회는 이기는 자를 뺐어요. 왜요?

마치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내 죄만 자복하고, 내 죄만 용서 받으면 구원되는 줄 알아요.

 

아담과 하와 사이에 죄를 범하게 된 이유는

아담과 하와 사이에 사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처음에 하와한테 안 말해요. 뱀한테 말해요.

원인을 제공한 게 뱀이니까. 뱀아, 너는 앞으로 여인의 후손과 원수가 된다.

너는 앞으로 내가 너를 땅의 모든 짐승보다 더 저주를 받음이라.

 

여러분 인간이 죄를 짓는 바람에, 모든 짐승도 저주를 받았어요.

그 때부터 사자도 토끼도 말 안 듣는 거예요.

너로 인하여 땅의 모든 짐승들보다 네가 더 저주를 받으리니.

너는 기어다닐 것이요. 흙을 먹으리라. 흙을 먹게 됐어요.

 

여러분. 뱀 흙 안 먹어요. 뱀 복숭아 먹어요. 개구리 잡아먹고.

그런데 왜 흙이라 그랬을까요. 사탄에 대한 말이에요.

사탄은 뭘 먹어요? 아담, 우리()를 먹는다는 거예요.

 

하나님은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사탄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교회를 만드셨어요.

그래서 음부의 권세가 견디지 못하리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사탄이 물러가고, 교회가 들어오기 바랍니다.

음부의 권세가 견디지 못하리라. 공격이 누구에요. 우리입니다.

음부의 대문이 견디지를 못하리라. 게이트에요 대문. 음부의 문이 견디지 못하리라.

 

공격은 교회가 합니다. 여러분 음부의 게이트를 두드려서

사탄에게 속해서 붙잡히는 자들을 구원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게 구원이에요. 그래서 교회를 세우셨어요.

 

출애굽하자마자 그게 교회에요. 뭐가? 내가 군대로 너희를 부르리라.

그리고 7장에서 말합니다. 나의 군대, 나의 백성을 보내라.

 

우리가 보기엔 노예인데, 주님 보시기엔 군대인 거예요.

그 때부터 주님이 이렇게 말해요. 나는 만군의 여호와라. 그래서 나온 거예요.

출애굽 전에는 그렇게 안 나와요. 왜요? 군대가 있어야 만군의 여호와지요.

 

여러분. 우리 인생의 목표는 이기는 자입니다. 누구에 대해서? 사탄.

그런데 현대 교회가 이성에 묶여서 사탄을 말하지 않아요.

마치 나만 똑바로 잘 믿으면 되지 뭐. 나만 주님 앞에 진실하게 죄 고백하면 되지.

그렇지 않은 것이 욥입니다.

 

욥은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탄이 자신을 공격한다는 것을 이해했어요.

여러분, 저한테 상담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교회에서 시키는 걸 다하고 인정 받고 모든 걸 다 따라하는데

집안에선 어려움이 많은 사람한테 연락이 와요.

 

무슨 죄를 많이 지었길래.. 그 다음이 이거예요.

그러면 얘는, 얘는. 진짜 나쁜 놈은 얘인데. 거긴 멀쩡한 거예요.

그게 어려운 거죠. 이해가 안되는 거예요. 이해해요?

나만 이러면 괜찮은데 근데 우리 구역의 그는. 이건 뭐 기도를 제대로 하나.

근데도 아무 어려움이 없는 거야. 돈은 잘 벌고.

나는요. 보증금 다 뜯기고. 그럼 흔들리죠. 이해가 안되는 거죠. 왜 내가 이런지.

 

여러분 우리는요. 사탄과 저주를 이해하기 전에는 우리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걸 푸는 자가 구속자예요. 리디머(구속자)는 누구예요?

죄를 용서하는 것은 주님과 나 사이의 문제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의 종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성실하게 사는 게 답이 아닙니다.

 

성실하게 살지 말라는게 아니라, 그것만으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많은 책이 있으면 열정이에요.

그런데 순종에 관한 책이 몇 권 없으면 안돼요. 열정이 아니라 순종이에요.

 

그래서 오늘 말씀에 우리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되어.’

아브라함과 롯이 같이 주님을 따르기로 했는데요.

처음부터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거예요.

 

하나님이 본토 친척 다 버리라는 거예요. 주님만 의지하라는 거예요.

친척들 의지하면 안돼요. 아멘? 주님만 의지하는 게 구원이에요.

그래서 어려움이 있을 때, 잘 믿게 되는게 주님 말씀 밑으로 들어가기 때문이에요.

 

정말 이기기 어려운 게 정이에요. 정이 정말 어려운 거예요.

오죽하면 그런 노래가 있어요. ‘정주지 않으리라.’ 정말 어려운 거예요.

그 안에서 자기애가 나오고, 자기 동정이 나오는 거예요. 문제가 생겨요.

 

주님을 순종하는 자만이 진실을 알 수 있다. 세상에. 롯이랑 문제가 생긴 거예요.

롯의 양과 아브라함의 양이 너무 좁은 거예요 부흥하니까. 자리가 없어서. 다툼이 생겼습니다.

 

누가 봐도 롯이 잘못했죠. 조카가 저러면 안 되지요.

아버지 죽은 다음에 아브라함이 다 먹여 살렸는데, 저럼 안 되는 거지요.

그런데 롯에게 양보하잖아요,

 

여러분 우리들은 우리를 거꾸러뜨리고 답답하게 만드는 사람에게서 이유를 발견하지 않습니다.

롯이 부족하게 하고 롯이 아브라함을 우겨싸고 롯이 아브라함을 거꾸러뜨리려 해도

우리는 롯에게서 이유를 발견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때 알아요.

아 내가 본토 친척을 못 떠났구나.’ 그제야 떠나요.

롯아, 네가 우하면 좌하고 네가 좌하면 우하리라.’

 

여러분, 어떤 위기가 올 때, 환경을 지키려하지 마세요. 마음을 지키세요.

다윗은요, 주님의 환경이 합한 자가 아니에요.

주님의 환경이 합한 자는 솔로몬이었어요. 그런데 타락했어요.

 

다윗은 주님이 언제나 이래요. 죄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여러분, 롯은요 솔로몬처럼 환경이 합한자가 되려고 했어요. 그때 다 뺏겼어요.

 

이게 뭐에요? 생명은 너희 안에 역사하고 사망은 내 안에 역사하느니라.

아브라함은 모든 생각을 주님께 집중했어요. 뭐에요?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짊어지는 거예요. 어떻게 돼요.

 

주님이요, 환경을 잃어버렸는데 아브라함의 눈을 바꿔줘요. 눈을.

아브라함아, 이제 눈을 들어 내가 지시할 땅을 봐라.’ 그 다음에 약속을 해요.

신약 구약 그러죠.

 

근데 중국 책은 뭐라 그래요. 사서삼경, 경이라 그러죠. 차이가 있어요.

성경은 원래 성경이 아니에요. 그건 동양스럽게 유교스럽게 말한 거예요.

사서삼경처럼 성경 그런 거예요. 은 뭐에요? , 약속의 책이에요.

 

여러분 노자, 장자 말씀이 좋은 게 더 많아요, 사실은.

장자 책을 보면 정말 좋은 말이 많아요. 그런데 그 책에 약속은 없어요. 왜요?

노자는 죽었으니까. 장자는 죽었으니까. 하나님은 살아계시기에 하나님만 약속하십니다.

 

성경은 약속의 책이에요. 유명한 구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다 약속이에요.

 

주님이 내게로 오라, 쉬는 것도 주님이 하게 해줘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래요.

너희들은 무슨 재미로 사냐. 궁금해하는 거예요.

 

예수가 없는 자들은 자기가 뭔가 하고 놀아야 해요.

골프, 영화, 게임 자기들이 해야 해요. 안하면 기쁨이 없어요.

그 사람들은 내버려둬야 해요. 그 사람들한테 고스톱하지마 그러면 지옥이에요.

그거라도 해야 사는 거예요.

 

술 먹지 마라고 하지 마요. 술마저 안 먹으면 못 살아요.

왜요? 하나님이 없으니까요. 그 사람들이 그래요.

아니, 예수 믿는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아, 그래요.

 

저는요 노는 걸 좋아했어요. 저는 일요일에 경복궁 덕수궁 가서 그림 그리고 그랬어요.

극장에 가고. 문교부에 걸렸어요. 그래도 또 갔어요. 생명을 주니까.

근데 신기한 게, 예수를 믿은 다음에는 그런 걸 하지 않아도 쉼이 왔어요.

 

전에는 그렇게 해서 쉬었어요. 사람들이 그러죠. 무슨 재미로 사냐.

예수님이 약속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땅에 없는 거예요.

하늘에서 주는 평강이에요.

 

여러분 돈 많이 벌어도 세상에서 주는 평강을 취하지 마십시오.

돈 많이 벌어도 주님이 주시는 평강과 바꾸지 마십시오. 약속이란 거예요.

성경은 약속해요. 제가 절망 가운데 봤던 또 하나의 약속이 있어요.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어요.

 

너희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너의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3:6

제가 길이 없었어요. 살 길이. 갈 직장도 돈도 없었어요. 모든 게 없었어요.

그때 이 말씀을 봤어요. 너희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너의 길을 지도하시리라.

 

너무 놀랐어요. 그 말씀을 적용하는데 범사에 인정하라. 에브리씽(범사).

주님을 인정하라고 해요. 어떨 때,

급한 일로 택시를 타려할 때 어떤 아줌마가 새치기를 하는 거예요.

못 견디겠는거예요. 막 올라오는데 말씀이 떠오르는 거예요.

너는 범사에 이 아줌마 앞에서 그를 인정하라. 정말이에요.

 

그래서 비키고, 버스를 탔는데 너무 피곤해서 졸린 거예요.

자려고 했더니 왜 이 많은 자리에 할머니가 내 앞에 서 있는 거에요.

? 내가 얼마나 피곤한데. 바뀌었어요. 너희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너의 길을 지도하시리라.

 

하나님이 허락치 않으시면 이 할머님이 버스를 타자마자 내 앞에 서 있을 수가 없나이다.

일어나야 하는 거예요. 갑자기 내 이성이 마비되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살다가 인생 망하겠다. 이건 패배자의 합리화 아니야?

 

망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이제 될 일도 안되는 거예요. 언제까지요.

주님이 너, 나의 죽으심을 본 받는구나. 여러분, 그 다음부터 부활이 와요.

 

내가 모를 때는요. 말씀이 감동이 오구요.

말씀이 바로 모를 때는 꿈과 환상과 음성으로 말씀하세요.

 

주님은 모든 싸움에서 복종하는 자를 통하여 함께 하시니라.

우리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는 거예요.

 

쉬려고 하면 안돼요.

너희는 내게 와서 배우라. 배우려고 하면 쉼은 주님이 주십니다.

 

제가 좋아하던 영화가 있었어요. 그 영화는 제가 온전히 좋아한다는 걸 믿습니다.

저는 007 영화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아주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게 다 들어있어요.

그래서 하루는 영화를 보러 갔어요. 종로였는데 여름이었어요.

제목은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요. 잊을 수가 없어요. 재미가 없는 거예요.

 

내가 이성적으로는 이건 첩보가 나오고 사랑이 나오고 경쟁이 나오고 아 너무 재밌는 거예요.

내가 좋아할만한 게 다 있는 거예요. 이성은 알겠는데 가슴에서 재미가 없는 거예요.

주님이 주신 진자 쉼이 들어오니까, 저게 쉼이 아닌 거예요.

내가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날 내가 영화의 속박에서 제가 자유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불이 다 켜졌는데 갑자기 밑에 오징어 땅콩 쓰레기가 보이는 거예요.

아 이게 화려한 어둠에 속았구나. 이 쓰레기들.

극장을 나왔는데 초저녁에 머리가 띵하더라구요.

제 생각에 마귀가 우리에게 주는 인생은 한 편의 영화와 같은 거짓이에요.

 

그래서 제가 영화감독들 전도를 많이하게 되고 그랬어요.

여러분 복종은 뭐냐면 주님이 하겠다는 것은 안 하는게 복종이에요.

주님이 하라고 하는 것만 하면 돼요. 나머지는 주님이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하는 폭군이 아닙니다.

주님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라고 하세요.

그런데 우리가 불안하면 더 해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정시에 퇴근할 수 있어요.

 

그런데 믿음이 불안한 사람은 퇴근 안하고 김밥 먹으면서 앉아있어요.

믿음이 있는 목사는, 심방 안가고 가만히 기도하면 괜찮을 때가 있어요.

 

믿음이 없는 목사는 엄청 신방 다닐 수 있어요.

그게 영혼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보시는 건 동기입니다.

 

목회건 비즈니스건 불안을 에너지로 쓰지 마세요. 불안으로 가게 열어놓지 말아요.

오는 사람까지 불안하게 만들지 마요. 그게 나와요 여러분.

믿음으로 가게의 문을 열고 믿음으로 가게의 문을 닫으세요.

주님은 믿음을 보시고 손님을 보내주세요.

 

이렇게 많은 손님을 보냈잖아요. 정말이에요 여러분.

제가 하는 말은 목회나 비즈니스나 같다는 거예요. 주님은 사람을 찾으세요.

왜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심이라.

이런 사람 만나면 주님 못하실 리가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걸 말씀하시는데, 왜 우리가 못 듣느냐.

내가 이해 안 되는 걸 말씀하세요. 5천명이 먹을 게 없는데

너희 걸 먹이라는 둥. 너희가 먹이라는 거예요, 너희가.

주님이 찾는 건 판단 잘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복종 잘하는 사람.

5천명 먹을 게 없는데 너희가 먹을 걸 줘라.

판단이 맞다고 주님이 함께 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주님은요 판단 맞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게 아니에요. 복종하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 남편들에게 판단 잘하지 마시고 복종하시기 바랍니다.

 

근데 이런 분들이 있어요. 우리 남편은 달라요. 이런 분들 있어요.

성경은 A급 남편, S급 남편, B급 남편을 분간하지 않습니다. 정말이에요.

 

어떤 사람은 생지옥을 만드는 남편도 있어요.

제가 아는 남편은 아침에 눈을 뜨면 웃도리부터 양말까지 벨트까지 순서대로 놔야 한 대.

지옥이죠. 그 분 미칠 뻔 했잖아요, 그 집에서.

뭐냐면 주님이 하라 그러는 복종을 하는 거예요.

둘 중에 하나에요. 주님이 새 것(남편)으로 바꿔줘요 할렐루야.

 

그 전에, 내가 바뀌어요. 복종을 해봐요 내가 죽어버리지. 나는 죽어버려요.

여러분, 내가 죽는 순간 내가 새 사람으로 바뀌어요. 그 다음에 나를 치잖아요,

주님을 치는 거예요. 그래서 이 말씀이 이렇게 마쳐요.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너희 복종치 않는 모든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저는 이것을 제 삶에서 경험했어요. 용서를, 이를 악물고 용서했어요.

마음이 동하지 않아도 끝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했어요.

상대방은 내 용서를 받지 않았지만, 그 다음 주에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또 한분도 용서할 수 없었는데,

정말 내 속에 없는 생명을 낳는 거니까 용서가 안 되더라고요.

용서가 고통이더라고요. 용서 못하겠는 거예요.

 

그러다가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책을 봤어요. 코리텐 분이라는 사람이 썼어요.

이 분이 목숨을 걸고 유대인을 숨겨줘요.

그런데 유대인 한 사람이 자기 살려고 밀고를 해요. 식구가 다 끌려가요. 아우슈비츠에.

 

그 전에, 자기에게 모든 신앙을 소개한 멘토가 죽어요. 벌거벗김을 당한 채.

그 속에서 그는 주님을 만나요. 주님이 말씀해요.

너는 풀려날 것이고 전쟁이 마칠 것을 보여줘요. 이 한 여인에게.

 

이 여인은 학벌도 없어요. 자전거 고치는 여인이에요. 시계 수리공 여인이에요.

근데요, 이 분이 용서를 했기에 요셉처럼 쓰시는 거예요.

 

그 전쟁이 마치자마자 세계의 상담학자가 못 고치는 그룹이 생긴 거예요.

누군지 아세요, 두 그룹이었어요. 게쉬타포.

그리고 아우슈비츠를 나온 사람들이 석방됐는데 묶여버린 거예요.

석방된 나라에 가서 아우슈비츠처럼 새벽 세시에 동네 광장에 서 있는 거예요.

공포에 묶여서 치유가 안되는 거예요. 세계의 상담학자가 모여서 치유하려는데 안되는 거예요.

공포와 죽음을 풀만한 감동이 없는 거예요.

 

속박이죠. 마귀에게. 근데 주님이 환상을 보여줘요.

모든 상담학자가 못 고치는 이들을 고치는 게, 게쉬타포도 끌려가요. 다시 수용소에.

그리고 못 고치는 사람들도 불쌍하지만 다시 수용소로 와요. 거기서 주님이 지혜를 줘요.

게쉬타포나 피해자들이나 똑같은 시를 나눠줘요. 그리고 꽃을 심게 해요.

게쉬타포는 바깥에, 이 사람들은 감옥에 꽃을 심어요.

 

그랬더니 똑같은 꽃이 자라는 거에요. 물을 주려고 그러면 못 주게 하죠. 게쉬타포한테.

그러다 꽃이 자라니까 꽃을 위해서 물을 나눠주기 시작해요.

게쉬타포의 꽃이나 이 피해자의 꽃이 같이 자라는 거예요.

놀랍게 이 꽃이 필 때에 다 치유가 돼요.

 

그래서 이 분이 강연을 다니기 시작해요. 용서에 대해서.

그랬더니 한 집회를 마쳤더니 한 사람이 뚜벅뚜벅 걸어나오더니 악수를 청하는 거예요.

그 사람이 보니까 얼굴을 보니까 자기를 벌거벗긴 채 수치를 주었던 게쉬타포인 거예요.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해주신 주님께 찬양한다고 악수를 청했습니다.

 

그런데 코리텐 분은 이 순간에 예수님이 떠오른 것이 아니라

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자기들을 벌거벗기고 이 평생 고통이 되는 수치를 준

그리고 자기의 이모, 신앙을 준 베쉬텐 분을 죽이고 시체를 버린 그 기억 때문에

악수를 하려는데 손이 자기도 모르게 목으로 가더래요. 목을 조르려고.

 

노력을 했대요. 노력을. 용서하려고 하는데 손이 자꾸만 목을 조르려는 거예요.

여러번 세워놓고 그 사람은 손을 내밀고 있고. 그 때 알았대요.

아 내 힘으로는 용서할 수 없구나. 그런데 그 순간에 성령께서.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하려고 할 때

성령께서 이 게쉬타포를 자기에게 상처주었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차더래요.

 

이게 뭐에요. 주님은,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자를 통하여  고후10:5

부활 생명을 일으키십니다. 놀랍게요,

나는 죽고 생명을 주려는 것을 거절하려는 자는요. 마지막 구절이에요.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10:6 

 

여러분 이렇게 하십니다. 제가 아는 한 목사님은요. 조폭이었습니다.

김두한 당시에 막내동생이던 분. 그래서 결혼한 불행을 했어요.

사모님이 모델인데요. 강제로 데리고 산 거예요. 조폭이.

 

이 분은 조폭의 두목의 와이프가 된 거죠. 도망도 못 가는 거예요.

근데 이 분은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이 불행 속에서 주님께만 나아갔어요. 살겠어요.

도망도 못가고. 조폭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자기는 원치도 않게 조폭의 아내가 되었는데.

제가 만나서 들은 건 그 조폭 두목한테 들은 거예요. 나중에 목사님 된 거죠.

 

신문에 났대요. 서울 거리를 걸어가는데 그 가로등 있죠.

그 등이 떨어져서 자기 정수리에 꽂혔대요.

그때 떠오른 것은 와이프의 기도밖에 없더래요.

어떻게 조금만 앞에 가거나 뒤로 가도 안 떨어지는데 그게.

 

이 예화를 들면 그렇게 여자들이 기도를 많이 하더라고요. 좋은 마음으로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이 분은요 이런 불행한 삶 속에서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나아갔어요.

새벽이고 밤이고 이 불행한 삶 속에서. 놀랍게도 하다 복이 된 거예요.

그 분이 저를 신학교 가게 만든 목사님이셨어요.

저는 그 목사님의 한 마디에 고꾸라져서 바로 신학교에 가게 됐습니다.

 

여러분 둘 중에 하나에요. 우리의 복종이 주께 온전히 될 때에.

죽음과 같은 그런 복종으로 우리 속에 내가 변해요.

상대방이 바뀌길 바라고 죽으심을 본 받는 복종이 아니에요.

상대방은 언제나 그제나 영원토록 동일해요 주님처럼. 안 바뀌어요.

 

여러분 중보 기도 생각하지 마요. 눈물로 기도해도 눈물이 아까워요.

해보신 분들은 압니다. 주님은 언제나 기도하는 그 사람을 바꾸세요.

주님은 기도하는 그 사람을 죽으심과 연합되게 하세요. 예수의 죽으심과.

 

여러분 그런 기도 속에서도 변치 않는 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주님은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타자 J.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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