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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버리고 드리라

LNCK 2015. 6. 23. 09:10

장광우 목사 "자신을 버리고 드리라" [엡 5:1-7] /  - YouTube

 

자신을 버리고 드리라               5:1~7                14.08.24 출처보기

    

사도 바울이 개인적으로 가장 가고 싶어했던 지역이 있습니다.

거기에 가면 난 정말 날개를 단 사람처럼 복음을 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곳이

그리스 아테네, 아덴이라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열망해서 자신 있게 갔던 그곳에서, 그는 복음적으로 큰 실패를 하고

바울이 갔던 곳 중 유일하게 교회를 세우지 못한 곳이 아덴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갔던 곳이 고린도 지역입니다.

고린도 지역은 자신이 전혀 준비되지 않았는데 원하지도 않았는데

아무런 계획 없이, 아무런 준비 없이, 원하지 않는 곳에 우연히 보내지게 되었고요.

 

그곳은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이 만연해서

아데미의 신전이 있고 온갖 우상과 음란이 가득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아덴에서는 실패하게 하시고

고린도에서는 그가 십자가의 복음을 완성하게 되고

그곳에서 놀랍게 성령의 은혜와 은사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마도 사도 바울이 사역했던 곳에서 가장 탁월하게 사역했던 곳을 들라면

오히려 고린도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상황을 그는, 고린도전서 21~5절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아무런 준비없이 가게 되었기에 그는 심히 두려워하고 떨었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랬기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외에는, 아무런 대안이 없는 상황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이게 아덴의 체험입니다.

 

아덴에서는, 바울 자신이 철학자요,

소크라테스의 후예들을 비롯한 유명한 철학자들이 있는 그곳에서는, 

그는 '지혜의 말'(철학같은) 로 복음을 설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실패한 후에,

 

나는 지혜의 말로는', 오늘로 말하자면 내 지적 능력으로는 하지 않았다/않겠다.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내가 모자라면 내가 준비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더라

그 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그 환경이

여러분이 계획하지 않은 삶, 원하지 않는 삶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상황에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여러분이 처한 곳에서 어떻게 벗어날까,

여러분의 마음 속에 갈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서 십자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거기서 성령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내가 준비하지 않았기에, 내가 감당할 능력이 없기에, 내 지혜로는 감당되지 않기에,

거기서는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은 다 준비되어서 성공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서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우리 삶을, 하나님 뜻 가운데서, 성공(고유 사명 감당)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가장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신 것이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 중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십자가를 질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잘 들으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과,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신 것.

그게 제일 잘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그런 방법으로 일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을 비롯한 모든 사도들과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말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내가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할 때

참 여기는 내가 좋아하는 곳이라고 믿을 때는.. 아무런 역사가 없습니다.

거기서는 제 자신도 변화되지 않고, 거기서는 신앙의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내가 원하지 않는 곳에서

내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하나님이 그 때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일하심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고,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중에 지금 마땅치 않는 삶을 살고 있어서

여러분의 마음에 스스로 나는 실패한 자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대신에, 지금은 은혜 받을 때라고 생각하십시오.

지금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을 때라고 생각하시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령을 체험하시고 십자가를 경험하므로써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풍성하게 경험하게 되는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5:1

 

우리는 5장에 들어오면서 계속해서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이며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가에 대한 성화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5장을 보시면 첫 번째로 생각할 내용이 있는데요.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들은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고.. 5:1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는 이유를 착하고 바르게살기 위해서’, 이게 대부분입니다.

무슨 종교를 가지든지 바르게 살면 돼. 착하고 선하게 살면 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신비한 능력 때문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감당해내는 그런 능력이 필요해서

종교에 심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소위 신비주의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사후에, 죽음 이후의 두려움 때문에

예수를 믿으면 천당 가고, 불교를 믿으면 극락가고.

사후의 대처방안으로, 종교를 보험들 듯 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저는 여러분께 여쭙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왜 예수를 믿으세요?

 

착하고 바르게 살기 위해서?

신적인 능력에 힘입어 삶의 연약함을 벗어나,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죽음 이후의 두려움 때문에? 천당 가기 위해서? 여러분은 왜 예수를 믿으세요?

 

오늘 1절에 그 대답이 있습니다. 다시 볼게요.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함 인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들 히브리서 127~11절 말씀입니다.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라는 말은 파이디온헬라어로 아들되기.

아들을 훈련하는 것을 파이디온이라고, 그러고 징계로 번역했습니다.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아멘.

 

여러분. 여기서 보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로 대우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로 삼으신다. 그리고 아들되기를 요구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징계다.. 그런 말입니다.

그러면서 다시 무시무시한 본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5:2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여기까진 아주 따뜻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무시무시한 말씀이 나옵니다.

 

:2b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아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자기 자신을 버리고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다고 말씀하시면서

자녀된 너희도 하나님의 아들됨과 같이 너희 자신을 버리고

너희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시무시하다는 거예요.

 

마태복음 543~45절 말씀입니다.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 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씀입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구요?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한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 그래야 아들이 되리니.

이 말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안하면 아들이 아니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너희를 아들로 삼았기에

이 수준에 이를 때까지 징계하실거다. 이런 말입니다.

그래서 무시무시한. 피할 수가 없다! 놀래가지고 벌써 눈 감으신 분들도 계십니다.

 

:45b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지금 이 시대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희생해야 한다.

그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

 

바울이 전도하는 지혜의 아름다운 말로 한 게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와 그 성령의 은혜를 덧입어서 기적 같이

하나님이 그 황무한 땅에 황폐한 땅에서 너희들을 구원하셨다..

 

고린도 교회에서 그렇게 말한 것처럼.

오늘 하나님은 우리가 아들 되기를 원하시고

 

우리 기독교인의 윤리라고 말할 수 있는 내용은

자신을 버리는 것이고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했던 그 일을

우리가 따라함으로써 본을 삼는다고 했던 말은

이것은 국화빵 찍듯이 틀 안에 찍어내는

그리스도와 판박이의 삶을 살라는 말씀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구원의 교리를 설명한 후에

로마서 121절에서 말하기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아들이 되는 것, 그것은 여러분들이 자신을 드리는 것.

버리는 것.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는 것.

자기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윤리는, 다른 사람을 굴복시켜 이기는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동정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원수를 보복해서 속이 시원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아들이 되는 것은, 전부 다, 우리가 져야만 이룰 수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참아야만, 우리가 기다려야만, 우리가 희생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자녀되는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제 이겨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을 굴복시켜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져야 합니다. 남편에게 지시기를 바랍니다.

성가대. 남편에게 지시기를 바랍니다. ‘죽을라고 그러시네요

 

여기 계시는 50대가 넘으신 분들 남편에게 지시기를 바랍니다.

아내에게 지시기를 바랍니다. 자식에게도 지시기를 바랍니다.

부모님께도 지시기를 바랍니다. 형제에게도 이웃에게도 지는 겁니다.

참는 겁니다. 기다리는 겁니다. 희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들이고 아들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자신을 드리는 겁니다. 살아있는 순교자로 드리는 것입니다.

 

 

5:3~7

 

두번째 메시지는 3절에서 7절입니다.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핵심입니다.

우리의 욕망. 그 욕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을 숭배하면서

우리는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다 더러운 말들과, 더러운 욕심과, 더러운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모든 탐심은 우상숭배라는 골로새서 3:5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약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우리 인류는 문명을 발달시키고 문명의 발달로 많이 사는 것이, 쉬워진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살기 좋아졌는가요? 여러분들이 한 번 비교해보십시오.

 

우리가 1970년대 80년대 그 때보다 지금 생활수준은 올라갔는지 모르지만

살기는 더 힘들어지고 세상은 더 삐뚤어져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아야 할 것들을 공급받지 못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제 아내와 함께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젊은 여성들에게 성경적 부모 교실을 가르치고 싶은데

지원하는 사람이 지금 세사람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더이상 같이 교육을 받을만한 사람이 없어요.

 

지금은 부인도 거의 다 일을 나가기 때문에 주중에 시간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부부가 함께 일하면 주일날 한 번 쉴수 있는데

주일날 예배드리고 훈련받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어쨌든 목회자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냐면, 여러분께 시간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제 가슴은 늘 말씀으로 불타고 있습니다.

들어야 할 텐데. 깨달아야 할텐데. 알아야 할텐데.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그 마음이 간절하지만, 여러분의 삶의 스케줄의 내용을 보면 시간을 좀 내주십시오 할 수가 없습니다.

 

새벽시간을/ 낮시간/ 밤시간이든지, 아무 것도 쉽지 않습니다.

어느 날도 여러분들께 우리 신앙을 위해서 성경 공부합시다. 기도합시다.’

이렇게 요구할 수 없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육신의 것들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은 시간을 요구당하고 있습니다.

지고도 살 수 없고 누가 나를 도와주지도 않는 세상에서 경쟁 속에서

숨 막히게 살아가고 있고, 이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2천년 전에 사탄은 예수님께도 요구했듯이 지금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48~10절 말씀입니다.

 

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것은요. 뻥이 아닙니다. 사탄은 줄 수 있습니다.

지금도 사탄을 숭배하는 자들이,

세계의 종교와 세계의 경제와 세계의 문화를 다 장악하고 있습니다.

 

세계 종교. 세계 경제. 세계 문화. 몽땅 지금 장악하고 있습니다.

공중의 권세를 잡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혹되고 실제로 거기에 속하면

수많은 이득을 보고. 거기에 속하면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기에 거기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듯이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아멘.

 

여러분. 세상의 것들을 얻는 일에 열심인데,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 소홀합니다.

이 세상을 사는데 볼륨이 너무 커져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시간과 물질도 마음도 줄 수 없는. 세상을 우리는 만들어버렸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7~9절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육신을 위하여 심는 자도 있고

영원을 위해서 영생을 위해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에는 바울이 말하기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에게는 특별히 낙심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고

때가 이르러야 거둘 수 있다는 말을 붙입니다.

 

그 말은, 육신을 위하여 심으면 이 땅에 금방 표시가 납니다. 대가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성령을 위하여 심으면, 이 세상에서는 그 열매를 볼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죽음 그 이후를 바라보지 않으면,

그것이 우리의 것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처럼 보이기에, 쉽게 낙심한다는 것입니다.

 

    한 정신과 의사가 이렇게 얘기하는 말을 들었는데,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환자)는,  인생에서 얻고자 했던 것에, 너무 치열한 경쟁의식이 빚은 참극입니다.

   성공이라는 우상을 바라보며, 정신없이 달려온 자의 정신적인 황폐라고 말합니다.

 

   그는 소위 S대 출신이 아니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고

   검사들이 기피하는 특임 검사를 맡아서,

   검사 킬러로서, 자기 자신을 기꺼이 어렵게 자리에 올라가면서

   그의 정신세계는 점점 무너져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원치 않는 일을 하게 되는 것.

이것이 오늘 이 시대의 문제입니다. 이것뿐입니까?

오늘 우리들 세대의 소위 성공이라는 것을 거둔 사람들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머리를 숙였던 사람들입니다.

성령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영생을 위해서 심은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그는 비참한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성공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종교적인 현상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다시 한번 여러분들 삶의 목적이 세속적인 성공에 있는지

하나님의 아들을 닮아가는 순결함에 있는지 돌아보시고

 

여러분. 사도 바울이 원하지 않는 곳에 가서 성령을 체험하면서

십자가를 구체화하면서 그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던 것처럼

우리 지금 세속적으로는 만족할 수 없고

내가 원하지 않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지만

지금이 성령을 받을 때라고 믿지 않으십니까.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지혜와 능력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의 질이 다른 이를 잡아먹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세워주고 내가 지고 내가 희생함으로써

십자가의 길을 완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라크 반군 수니파(IS)는

이라크를 자신들의 이슬람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완전히 만드려는 급진파들인데,

그들에 의해서 참수형을 당했던 제임스 폴리 James Foley 라는 미국의 기자를 여러분 알고 계시죠?

 

 

 

제임스 라이트 폴리(짐 폴리)는 미국의 보도기자이다. 처음엔 시리아 내전의 프리랜서 종군기자로 활동했으며,

이후 2012년 11월 22일에 시리아 북서부에서 납치되었다. 2014년 8월에 미국의 이라크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이슬람 국가에 의한 첫 번째 미국인 희생자가 되었다. 기자로 일하기 전에, 폴리는 티치 포 아메리카 비영리 단체에서 강사로 일했다.

IS는 몸값으로 1358억원을 요구했고, 미국은 무대응으로 나왔고, 결국 비극적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게 동영상으로 배포되면서, 세계가 충격에 빠집니다.

현장에서 짧은 칼로 목을 베어 죽이는 일을 당했습니다.

 

그 부모는 TV에 나와서 깊은 슬픔 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아들은 평생 시리아의 해방을 위해서 그는 분주하게 최선을 다해서 뛰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들이 자기가 원하는 사명을 위해 살다가 간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그 인생을 비참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명을 위해 살다가 간 사람은 영광스러운 사람입니다.

 

정말 비참한 것은, 사명없이 욕심으로 살다가 허망한 인생을 끝내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설교하면서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오늘 다시 이 말씀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답게.

그 분이 그랬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자기를 희생의 제물로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자신을 버리고 자기를 드리는 것이라는 것. 잊지 마시고

남은 생애는 사명으로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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