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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터치

LNCK 2015. 7. 13. 08:28

성령 터치                            3:7~17                                   출처보기

 

 


 

예수님의 놀라운 사역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에는 신비스러운,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아주 신비스러운 일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29세와 30세의 차이입니다.

 

29세까지는, 성경에 보면, 어떤 특별한 기적과 능력과 말씀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30세가 되면서부터

예수님의 생애는 우리가 이 지상에서 볼 수 없었던, 아주 초자연적인 놀라운 능력이 있고,

기적이 넘치는, 그리고 정말 천국 말씀을 듣는 것 같은 일들이, 1년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어떤 분기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3년간 기적과 능력과 행사를, 초자연적인 일을 많이 행하셨는데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도중에 위기도 있었고, 고난도 있었고, 핍박도 있었고, 시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까지, 어떻게 이 길을 계속해서 흔들림 없이 갈 수 있었을까요?

왜냐면 우리도 예수 잘 믿어보려고 하는데, 어려움이 많거든요.

 

거기에 비밀이 있었습니다.

*그 비밀은, 설교 제목, 성령터치입니다.

 

또 한 가지, 십자가는, 사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질 수 있는 거예요.

죄인이 십자가를 지는 거고, 원래는 죄 없는 사람도 십자가는 질 수 있어요.

 

질려고만 마음먹으면.. 그러나 부활은 안돼요.

십자가까지는 사람들이 다 이해를 한다고요.

 

그러나 부활은 이 지구 역사상 오직 한 분뿐이세요.

예수 그리스도. 그렇다면 십자가와 부활 사이에 비밀은 어떤 것일까요?

 

또 한 가지, 이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이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 마음속에 그 분은 살아계신다는 거죠.

이건 신비스러운 거죠.

어떻게 이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동일하게, 능력과 기적과 감동과 그런 일들이 계속되는 것일까요?

 

 

그 비밀은, 성령터치

 

이 비밀들을 풀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에 일곱 번의 놀라운 비밀들이 있었어요. 터치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들을 오늘부터 시작해서 일곱 번 연속 시리즈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일곱 번 (터치) 설교 시리즈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승천하실 때까지

이 놀라운 사역의 비밀들을 우리가 알 수 있을까.. 하는 것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 교회가 또 여러분들이 예수님처럼 일곱 가지 축복을 받게 되길 축원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터치는 성령 터치입니다.

오늘 13절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마3:13절 같이 읽어주십시오.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예수님의 공생애는 놀랍게도 세례 요한을 찾아감으로 시작했다는 것이죠.

여기에 여러 가지 특이한 면이 있습니다.

 

1) 첫째,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해서 온 사람이에요.

예수님이 이 세상에 메시아로 올 때, 그 얘기를 곧게 하기 위하여

광야에 외치는 사람의 소리로서 있었다는 것이죠.

 

세례 요한은 스스로 말했어요. 나는 예수님의 신을 들기도 감당할 수 없는 자라고.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 분은 불로 세례를 주는 분이라고 한 사람이 세례 요한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거꾸로 예수님이 세례 요한을 찾아감으로써, 그의 공생애가 시작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2) 두 번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온 인류의 메시아고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인간을 찾아갔느냐는 것입니다.

 

3) 차라리 우리가 세 번째 질문이 이거예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고 직접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입고 가는 것이

순서상 옳은 일이 아니냐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우리의 기대와 생각과는 정반대로

세례 요한을 찾아가셨어요. 찾아가서 그에게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의 사역이, 그의 공생애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13b절을 보면,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는 요한을 찾아간 목적은 딱 하나입니다.

그것은 세례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발견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1) 첫째는 겸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존심도 경쟁심도 반항심도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예수를 믿으면서 경쟁심이 없기를 바랍니다.

자존심을 버리기 바랍니다. 반항심을 버리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는대도 자존심으로 일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 버렸습니다.

 

예수님께 있었던 가장 놀라운 인격적 특징은 겸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도 자기를 버리고 자기 체면 생각하지 않고

그가 겸손이 세례 요한에게 가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죠.

 

나이가 어리면 어떻고 신분이 낮으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을 접고

겸손하게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섬기고 사람을 위해서 일할 때

하나님의 기적들은 나타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세례 요한을 찾아가신 예수님의 겸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2) 또 한 가지, 세례를 받은 이 사실 속에 놀라운 것은

세례는 죄인이 받는데, 죄 짓지 않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죠.

 

자기를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세례를 받아야만 하는 존재인데

예수님이 대신 먼저 모범으로 받으셨다는 거죠. 이것이 예수님의 세례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예수님이 지실 필요가 없는 거예요. 왜 스스로 지셨겠습니까.

자신의 죄를 속죄함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과 나와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하여, 그 분이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이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서 두 가지 모습을 발견합니다.

첫째는 겸손이요, 둘째는 자기 희생입니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을 위해서는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을지 몰라요.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수고하고 애쓰고 땀을 흘리는 것,

이것은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아직도 복음안에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아직도 성령받지 않은 많은 사람들.

 

나는 괜찮아요. 나는 어떤 떡도 먹을 수 있어요.

그러나 형제가 내가 떡을 먹는 걸 보고 우상의 음식을 먹는 걸 보고 시험이 든다면

내가 안 먹는 것이죠. 나는 다 할 수 있으나 덕을 위해서 안하는 거예요. 이것이 예수님의 모습이었죠.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찾아왔을 때 충격받은 사람은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왜냐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위해 존재했고, 예수님을 위해 그가 앞마당을 쓸었고

예수님이 들어오시는 길을, 높은 산은 낮게 만들고 낮은 골짜기는 높게 하기 위해서

그의 사명은 그것인데..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러온다니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세례 요한의 충격적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옳은 말이죠. 정말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태도도 강경했습니다.

이렇게 극구 사양하는 요한에게 예수님은 1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님의 요구는 여기서 보면 억지나 고집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때로 내 신념과 믿음이 고집일 때가 많아요.

안 해도 되는 것을, 상처 받아서 끝까지 하는 사람 있습니다. 내가 하고야 말리라.

그리고 해요, 그냥. 뒤집어버리고. 이런 걸 하죠.

 

예수님이 이렇게 주장한 것은 그런 게 아니라, 고집이나 자존심이 아니었단 말이죠.

온 인류를 구원하려는 예수님의 애정과 헌신과 눈물이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예수님이 요한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꼭 해야 한다.

나한테 세례를 줘야 한다. 내가 이것을 통과해야 한다.. 하시는 거예요.

 

높아지기 위해서 고집부리긴 쉬워요.

그러나 낮아지기 위해 고집부리는 것은 쉽지 않아요.

포기하기 위하여 고집부리는 것은, 쉽지 않다고요.

 

예수님은 바로 그런 것을 하셨어요.

그런데 영적으로 영특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의도를 빨리 알아차렸어요.

그리고 태도를 바꿉니다. 수락하기로. 허락하기로. 결정합니다.

 

진정한 겸손은 예수님에게 있어, 세례 요한에게 찾아온 것이요,

세례 요한에게 있어서 겸손이란, 예수님의 요구를 허락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겸손과 세례 요한의 겸손이 만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낮추는 인간에게 세례를 받으신 하나님의 모습에서 진정한 겸손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줌으로써

선생으로서 주로서 겸손과 솔선수범을 보였듯이 그런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겸손은,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 겸손이었습니다.

진정한 겸손이란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가 하시고자 하는 일을 두렵고 떨림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니 나 이거 못합니다.’ 그런 건 겸손이 아니라 오만입니다.

하나님이 무슨 일을 맡기실 때,

제가 두렵고 떨림으로 내가 이 일을 끝까지 할 지는 모르나, 순종하겠습니다. 이게 겸손입니다.

 

세례 요한에게 순종은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겠다는 결정입니다.

자기가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지만

주님이 원하시면 내가 그 일을 하겠습니다.. 하는 것이죠.

 

드디어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어줍니다. 그것은 물세례였습니다.

오늘 영화에서 본 것은 침례에요.

그래서 우리 교회도 침례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교회는 세례공동체입니다. 진짜 교회는 침례, 세례를 받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거든요.

 

교회가 한 달에 한 번씩 세례 주는데 이것도 못마땅해요.

매주일 세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물세례뿐만 아니라 성령세례가 이루어지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이 자리 세례 안 받은 분들은 빨리 회개하고. 자격이 있어야 세례 받는 게 아닙니다.

성경을 한번 읽어야 되고 술담배 끊어야 되는 거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세례 받는 거예요. 저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새벽기도 가는데 급히 한 40대 된 자매님이 찾아왔어요.

울면서 목사님 내일 내가 독일로 떠나는데, 세례를 안 받았습니다.

그런데 자기 교회에서는 자기가 세례 받은 줄로 알고 집사도 주고 다 줬대요.

 

근데 이걸 고백할 수가 없대요. 그래서 목사님, 내일 제가 떠나거든요.

아니 걱정하지 말라고. 내 방으로 오시라고. 그래서 세례 드렸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예수님도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도. 두려워하지 말고 세례 받으십시오.

침례 받아도 괜찮습니다. 다 좋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은 세례를 받고 물 세례를 받고 물에서 나오셨습니다.

16, 17절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세례를 받고 나신 예수님께는 세 가지 영적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첫째는 하늘이 열리고

 

-둘째는 성령님께서 비둘기처럼 임하여 예수님 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성령 세례는 한번 지나가는 게 아닙니다. 임하면 계속 머무르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늘에서 음성이 들린 것입니다.

이 영적인 세 가지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아주 기가 막힌 거예요. 나는 오늘 그런 축복이 우리 교회에 있기를 바라고

민족에도 개인에도 이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1.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뭘까요? 하늘과 통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여러분, 미래가 열린 사람이 미래를 보는 거죠.

미래가 닫힌 사람은 미래를 못 봅니다. 미래를 못보는 사람은 미래를 못 갑니다.

미래가 열려야 합니다. 할렐루야. 축복이 열려야 합니다.

하늘이 열리고 땅이 열려야 합니다. 대로가 열려야 합니다.

 

예수님에게서 일어난 영적인 첫째 사건은 하늘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선언하는 말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내가 결정하고 내가 시작되었다고 다 되는 건 아니에요.

하나님이 시작하고 하나님이 선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어야 하고, 하나님의 섭리여야 하고,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해요. 내 사역도 하나님의 허락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그런 섭리여야 해요.

 

이런 사람은 절대 흔들리지 않아요. 죽음이 올지라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일을 하다가 왜 자꾸 흔들립니까. 당신 생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생각이 하나님 생각이라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는 사랑하는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이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하늘이 어떻게 열리는가, 세례를 받을 때. 예수님을 영접할 때,

세례 받는다는 말은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거예요.

보혈의 피로 그 죄가 씻김 받는다는 거죠.

 

에베소서 표현에 의하면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곧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임함을 받는 거예요.

이것이 하늘에 속한 참된 축복이에요. 세상 사람이 주는 축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축복.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 거룩한 신령한 축복인줄로 믿습니다.

 

2. 하늘이 열리고 난 다음에 일어난 두 번째 영적 사건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하늘에서 비둘기처럼 예수님 머리 위에 임했다는 것이죠.

 

이게 성령 터치에요. 할렐루야.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에 있어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이겁니다.

여러분 하늘이 열려야 성령이 오세요.

성령님이 오셔야 터치해야 만나야 관통해야, 그 다음에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신 분이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9년동안 가만히 있다가

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는 순간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님을 관통했다 말이죠. 임재했다 말이죠.

 

이것은 마치 오순절 날 다락방에서 사랑하는 제자들이 모여서

열흘 동안 합심하여 기도하고 있었는데,

오순절날 홀연히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집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불의 해 같이 갈라지는 역사가 120명의 머리 위에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들은 성령의 말하게 함을 따라 다른 방향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물이 차듯이, 성령님께서 비어있는 내 영혼에

그 영이 충만하게 채워지기 시작한 것이에요.

 

성령님의 생기와 성령님의 능력과 기적과 역사와 말들이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고와 생각과 사상과 행동 속에

이 물에 스펀지가 빠지듯이 그 안에 들어간 거예요.

이걸 가리켜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온다는 겁니다.

 

영적인 사람은 다 안다 그랬습니다.

어떤 영이, 어떤 말씀이, 어떤 인격이 내 몸안으로 들어오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굉장히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누가 방에다 불을 떼면 따뜻해지기 시작해요. 밖에는 추운데.

외롭던 내 영혼이 그렇게 풍성해지기 시작합니다.

자살만 꿈꾸던 절망만 생각하던 내 영혼이 희망이 생기고 긍정적이 되고

충만함이 생기고, 아이디어가 생기고, 그냥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다 뛰쳐나간 거예요. 다락방은 못 있어요. 불바다처럼 다 튀어나가야 해요.

성령이 임한 거예요. 예수님에게 그 시간에 바로 하늘문이 열려서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님의 머리 위에 임하였을 때

예수님에게 성령 터치가 일어나듯이, 이 터치가 일어난 거예요.

 

이후부터,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은 29세까지와는 전혀 다른. 일이 시작됩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의 신앙 생활이 오늘부터 전혀 다른 사건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전혀 다른!

 

예수님께서 마귀의 세력을 꺾고 질병을 고치고 자연을 정복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더러운 귀신들을 쫓는 일들이 이때부터 생깁니다.

그전까진 없었어요. 안 나타났어요. 이때부터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세리와 창녀들을 만나주시고, 배고픈 군중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옥에 갇힌 자 가난한 자들과 억압된 사람들 마음을 읽어주시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모습들이 이때부터 나타납니다.

 

천국 말씀을 선포하시고 사랑과 용서를 선언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말씀하시는 것이 이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예수님의 능력에서 예수님의 사역에서. 할렐루야.

 

오늘 사순절을 통해서 부활절을 기다리는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성령의 터치가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사도행전 10:38절에 보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이것은 마치 좋은 기가 막힌 자동차를 만들어놨는데 시동 거는 것과 같습니다.

열쇠를 돌렸더니 그 기막힌 차가 움직이는 겁니다.

자동차를 밀고 가겠습니까, 타고 가시겠습니까.

 

지금까지 신앙 생활 내 이성과 의지로 하는 신앙생활은, 차를 밀고 가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차도 밀고 가면 힘들어요.

 

그러나 믿음 있는 사람, 키를 가지고 차를 타고, 시동을 걸고 달리는 것입니다.
달려라 달려라. 거대한 기계가 움직이는 것 같고, 잠수함이 수면에 뜨는 것과 같아요.

 

저 개인적인 간증을 이야기하자면 저는 모태신앙이에요.

그리고 중등부 고등부를 통해서 교회 생활 너무나 성실하게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님을 만난 것은 재수할 때였어요.

 

대학에 들어갈 무렵에, CCC라는 학생 단체를 통해서 성령 체험을 한 거예요.

그때 나는 살아있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과거에 내가 예수 안 믿었나요? 전도 안했나요? 봉사 안했나요? (다 했지요)

그런데 그 사건이 어제 같아요. 지금까지도.

내 가슴에 불을 하나님이 끄지 않으셨어요. 할렐루야.

 

나는 여러분이 예수 안 믿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 다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책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교회 누가 안 와요.

극장처럼 올 수도 있고. 죄송해서 올 수도 있고. 벼락 맞을까봐 올 수도 있고. 다 오는 것이죠.

 

그런 건 중요치 않아요. 예수 만나기를 바랍니다. 성령체험하기 바랍니다.

나이, 신분 묻지 마세요. 성령님 오셔야 해요. 성령님으로 기도하십시오. 성령님으로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잘나고 못 나고는 중요치 않아요. 우리가 완전해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예수님 외에 그렇게 되겠어요.

다 불완전하고 실수가 있고 무너지는 인간이에요. 그러나 성령님이 임하면 달라집니다.

 

그런 분이 또 한 분 있어요. 우리의 사랑하는 베드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3년 따라다녀도 몰랐어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몰랐어요.

 

베드로가 언제 변했어요? 오순절 날. 성령 받고 나서 두려움이 없어졌어요.

감옥에도 들어가고.

 

나는 오늘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A.D(주님 후)B.C(예수 이전)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 Anno Domini (라틴어, 주의 해에), BC (Before Christ)

 

예수님의 탄생은 역사의 A.DB.C를 만들었듯이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음으로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하늘문이 열리고 성령의 세례가 임할 때

이것이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의 A.DB.C에요.

 

그 전과 그 후는 다릅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의 생애가 달라지길 축원합니다.

지금까지의 생애와 이후의 생애가 달라지길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전도하면 전도가 막히고 말하면 말이 먹히고 영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기도하면 응답이 일어나는 그런 축복들이 바로 이 비밀, 성령 터치에 있었다는 것이죠.

 

3. 17절에 보면 성령이 임한 후에 하늘에서 소리가 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여기서 중요한 공식 하나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음성 듣고 싶습니까?

성령 세례 받으십시오.

성령 세례 없이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은 마귀의 목소리입니다. 자기의 목소리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성령 세례 후에 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뭐에요.

오늘 너는 동으로 가라. 귀인을 만날 것이다. 이런 게 아닙니다.

주님 내가 어느 대학 갈까요. 누구와 결혼할까요. 그런 것도 있을 수 있죠.

 

아나니아와 베드로를 보면, 그런 것이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 음성의 핵심은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보십시오. 내가 오늘 그 말씀만 들을 수 있다면 다른 음성이 뭐가 필요합니까.

돈이 건강이 자녀가 이게 다 의미가 없어요. 이 말 한 마디 들으면 돼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나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너는 내 아들인데 아들 중에서도

미운 아들 있고 예쁜 아들 있거든요. 기뻐하는 아들인데.

 

돌아가신 장인어른께서 제 손주들이 많은데 유독 제 아들을 그렇게 사랑하셨어요.

그런데 이 아들이 분주합니다. 시끄럽게 돌아다니는데

다른 애들이 떠들면, 다 떠든다고 야단인데

제 아들이 떠들면 절대 시끄럽다고 생각 안하세요. 편견도 보통 편견이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그렇게 무조건 좋은게 있어요. 무조건. 잘해도 좋고 못해도 좋고.

그냥 시끄럽지가 않은 거예요. 다 예뻐 그냥. 하는 짓마다 다 예뻐요.

하나님이 당신에게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하는 짓마다 다 예뻐. 다 좋다는 겁니다.

 

이 말씀만 들을 수 있다면야 뭐가 부족하겠습니까. 할렐루야.

 

마치는 말

성령 터치가 일어나기 바랍니다. 주여 오늘 이 아침에 성령 세례가 일어나게 하시옵소서.

하늘의 문이 열리게 하옵소서. 이 민족에 하늘의 문이 열리게 하옵시고

이 민족에 성령 세례가 일어나게 하시옵소서.

 

걱정하지 마라. 내가 이 나라를 지켜주마. 보호해주마. 내가 이 나라를 사랑한다.’

나는 교회에도 이 음성이 들리기 바랍니다.

하늘의 문이 열리는 교회. 성령이 임하는 교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교회.

성도들에게도 이런 축복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하나님의 문이 열리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오늘 임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 험한 세상에서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의 박수를 올립시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성령 세례가 임하여

우리 교회에 처음 오는 분들께도 성령 세례가 임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교회를 오래 다녔지만 아직도 그 영혼이 컴컴한 이들에게도

성령 세례가 임하도록 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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