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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로

LNCK 2015. 7. 30. 09:18

개인적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로        4:43              아래설교녹취

 

 

 



수 십 년 동안 수많은 교인들을 상담한 어떤 분이, 책을 썼습니다.

이 분이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자기가 상담한 많은 교인들, 모태신앙인, 수 십 년 신앙생활 했다는 분들,

그들이 대부분 다 영적으로, 무능하고 무기력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영적 무기력증 환자들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중심적, 문제 해결 위주의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 문제 해결 위주의 신앙생활! *쉽게 말하면 기복신앙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찬양하고, 성경공부하고, 기도하는데

그 중심의 동기가, 대다수가, 욕심, 자기 욕심이었습니다.

 

자기 건강, 가족 문제, 사업 문제 등등을 위한 기도!

그런 기도는 당연한 것이지요. 해야 되지요. 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기도한 대로, 병이 나을 수도 있고, 사업이 잘될 수도 있고,

우리의 뜻대로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지만,

또 어떤 때는 우리 뜻대로 문제가 해결 안 될 때도 많습니다.

 

이것이 현실 아닙니까?

삶의 실상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내 뜻대로 해결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하다가

그런데 자기 뜻대로 안 되면,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신다.’ 하면서

상처받고, 사람들 간에 시비가 일어나고, 갈등하고..

 

그런 신앙생활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까?

 

이 분이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승리의 비결은, 참 크리스천답게 살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한 가지! 그리스도께 항복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밖에

그에게 충성하는 길 밖에 우리에게 승리의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이 충성이고

그렇게 충성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입니다.’

 

제가 몇 해 전에, 런던의 어떤 교회에서 설교 했습니다.

예배 때 찬송을 같이 부르는데,

주께서 행하신 일, 헤아리기 어렵더라도

(후렴) 주가 지켜주신다.

 

그런데 그날 스크린에 자막 글씨가 잘못 나왔습니다.

주가 지켜주신다주가 직여주신다로 잘못 비춰졌습니다. *죽인다의 경상도 방언

 

제가 설교 시간에 그랬습니다.

오늘 특별히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싶은 교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때때로 우리를 지켜주시기 위해서, 직여주시는데

우리를 직여주실 때, 우리가 원망하고 섭섭해 하는데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로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한다면

주가 죽여주실 때도, 그것이 우리를 지켜주시는 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행하는 모든 자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하셨는데, (8:28)

 

, 하나님의 선입니다.

우리 자신의 이기적인 선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우리 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때때로 그 하나님의 선을 우리가 이해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상처받고, 섭섭한 마음이 들고,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것 같은 그런 느낌도 들고 하는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 믿고, 충성하는 그 사람들에 의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 교회가 그 같은 정신적 도덕적 영적 힘을 가진 교회가 되어,

세상을 바꾸어나가는 교회로 성숙하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아무리 많아도, 그게 세상을 바꾸지 못합니다.

주님께 충성하는 교회가,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명의 목표가 무엇이었습니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이었습니다.

 

4:43절에, ‘나는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 52, 마가복음에 19, 누가복음에 44, 요한복음에 4

하나님의 나라!

 

또 그와 같은 뜻의 말이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선교의 주제가, 하나님의 나라이었음을 증거합니다.

(다시 말해서, ‘개인적 문제 해결의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3년동안, 공생애 동안, 전심전력으로 제자들을 육성하셨습니다.

같이 잡수시고, 같이 주무시고, 같이 사시면서 12사람을 훈련시키셨습니다.

 

마태복음에 76, 마가복음에 46, 누가복음에 37, 요한복음에 78

제자’ ‘제자’ ‘제자란 말이 나옵니다.

오늘의 교회 혼란과 침체되어가는 이유는, 잘못된 목표와 제자 육성의 차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리는 많은데, 제자들이 부족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떡을 찾아서, 이런 저런 자기 어떤 목적으로 따라다닌 무리들은 수천이었지만,

십자가 밑에서 몇 사람이나 남아있었습니까?

주님 승천하실 때, 120명이 감람산에 모였었습니다.

 

오늘 적지 않은 교회들은, 예수님께서 단번에 배격하셨던 사탄의 유혹,

광야에서 3가지 유혹,

그 유혹을, 오히려 사탄에게 무릎을 꿇고, 달라고 간구하고 따라가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인기, 권세, 압도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절 해라

명예, 권력, 자기 영광, 재물,

 

그것으로 교회가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할 수 없습니다.

 

요즘 저는 목회자/선교사들이 모일 때마다, 자주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선교나 목회나 옛날 서구 기독교 왕국 시대에 사고방식이나, 태도나, 구조나, 형태로 해서는 안 된다고요.

 

어떻게 이같은 세속적인 시대를 돌파해 갈 수 있겠는가요, 바꾸어 갈 수 있겠는가요?

우리 자신이 바뀌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교회가 바뀌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이야기를 요즘은 제가 자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몇 해 전에 서울에서 목회하는 어떤 젊은 목사님이 제게 물어왔어요.

 

교회 창립주일인데, 기념으로, 서울에 교회를 하나 개척하기로 했습니다.

어디에 개척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제게 물어왔어요.

 

제가 교회 개척하지 마세요! 서울에 교회가 너무 많아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서울 시내에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교회가 다 보입니다.

서울의 문제는, 교회 숫자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좋은 교회, 교회다운 교회가 부족한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 창립주일을 정말로 뜻있게 기념하려면, 감사하려면,

어떻게 하면, 그 교회가, 더 좋은 교회가 될 것인지 그것을 생각하십시오.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가 연이어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교회 개척하려고 모아둔 돈이 얼마입니까?’

몇 억이라 그러더라고요.

나 같으면, 그 돈을 교회 가구별로 분배해 주겠어요.

그래서 그 교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교회 이름으로, 쓰게 하십시오.

자기 삶의 현장속에서 만나는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병든 자를 위로해 주고,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도와주는 일에 쓰면, 되지 않겠습니까.’

 

(젊은 목회자) ‘당회에서 허락하기 어려울 건데요..

목사님이 오셔서, 그렇게 쓰도록, 당회에 좀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안 됩니다. 그건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담임 목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제가 그랬어요. 목회자들에게

만일 서울에 있는 교회들이, 교회 창립주일 때마다

그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준비한 헌금을,

교인들에게 나눠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교회 이름으로 쓰게 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서울이 조용하겠습니까? 서울이 변하지 않겠습니까!’

 

히틀러 정권 하에서 약 6백만명의 유대인들이 죽었습니다.

수용소에 끌려가고, 처형되고, 그 숫자가 약 6백만 명입니다.

 

그 시기에 프랑스 남쪽에 르샹봉 Le Chambon 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25백명 정도의 유대인들이 구출된 역사가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구출된 유대인들의 증언에 의해서, 이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르샹봉에 있는 작은 개혁교회가, 이 일을 한 것입니다.

 

그 마을에 숨어들어오는 유대인들을 숨겨주고,

그 마을 뒤에 산언덕과 수풀이 있는데, 거기에 감추어주고,

스위스 등지로 피신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만약 독일군이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 마을과 교인들을 보복했을 것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르샹봉 마을에 찾아가서,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위험한 일을 했습니까? 왜 그같은 일을 했습니까?’

그들은 왜라뇨? 우리가 달리 어떻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르샹봉 개혁교회 우리 목사님, 안드레 트로메이(Andre Trocme 1901~1971) 목사님이

우리를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목회자에게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셨습니까?’

왜라뇨? 양떼들이 위험을 피해서 여기까지 와서 도움을 요청하는데

목자인 제가 무엇을 어떻게 달리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정치운동을 한 것도, 저항운동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성경을 읽고,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당시 독일과 프랑스와 동유럽은, 유대인들에게 지옥천지였습니다.

그러나 르샹봉은 별천지였습니다. 그들에게 도피처였습니다.

 

그곳에만 가면, 살았습니다.

그 르샹봉은 날마다의 삶속에서 주님의 말씀에 복종한 그것 때문에,

그 지옥같던 유럽 대륙 안에서 별천지를 만들어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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