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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속의 토끼' 같은 예언자의 사명

LNCK 2015. 10. 27. 16:21

◈'잠수함 속의 토끼' 같은 예언자의 사명         12:54-56      12.12.16 출처보기

                                                                                                                          *원제목 : 하늘과 땅의 징조를 아는 것처럼

 

 

 

※아래 "잠수함 속의 토끼" 일화는 꼭 읽어보세요!

 

크리스천은 보는 시각이 달라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세상 사람과 다른 모습이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과 다른 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늘 말씀드리는 것이 우리는 웃는 것도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 웃을 때 덩달아 웃으면 안 됩니다.

슬퍼하는 것도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슬퍼하는 것에 대해서 웃을 수 있어야 하고

세상 사람들이 웃는 것에 대해서 슬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웃고 우는 것이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하고, 우리의 눈높이도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우리의 눈길도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이 같이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과 다른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가가 중요합니다.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고 말합니다.

콜럼버스의 입장에서 보면 아메리카라는 대륙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메리카 인디언의 입장은 다릅니다. 자신들은 오래 전부터 아메리카 대륙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상들이 바닷가에서 놀고 있을 때, 어떤 백인이 배를 타고 왔다고 말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콜럼버스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콜럼버스가 자기의 나라에 오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다른 생각입니까?

보는 시각에 따라서, 그 결과에 천양지차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야 합니다.

제가 몇 주일 전에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축시법을 하는 사람들이다,

, 시간을 접어서 보는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시간을 접어서 10년 후, 20년 후의 일을 현재의 일처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저는 축시법이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이런 능력이 있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내가 죽었을 때의 모습을 지금 보듯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장례식장에서 일어날 일을 지금 내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죽은 후 10, 20년 후의 일을 오늘 보듯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믿음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이런 저런 걱정을 하며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이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나 똑같은 근심과 걱정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똑같은 근심과 걱정이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취급하고 다루는가, 어떻게 해결하는가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세상 사람들은 근심과 걱정에 붙잡혀서 끙끙대며 살지만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잠깐만 근심하고 걱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고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근심 걱정에 짓눌려서 사는 사람들이고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근심 걱정을 다 예수님께 맡기고 편안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크리스천은 세상의 징조를 볼 수 있어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할 것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늘 한 가지만 더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징조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갑자기 일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나타나는 징조가 있습니다.

 

감기에 걸리는 것도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루 이틀 전에 열이 나든지 코가 맹맹하든지 징조가 있습니다.

암도 갑자기 걸리는 것이 아니라, 징조가 있습니다.

주의하지 않으면 조심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것을 가리켜 징조라고 합니다.

 

요즈음은 일기예보가 과학적으로 잘 발달했지만

예전에는 여러 동물들의 징조를 보면서 날씨를 예측했습니다.

개미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흙으로 성을 쌓는 것을 보면

얼마 후에 장마가 오겠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개미들의 움직임이 장마의 징조였습니다.

 

그리고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는, 쥐들이 이리저리 뛰는 징조가 있었습니다.

쓰나미의 징조는 산짐승들이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저녁의 황혼을 바라보면서 바람이 부는 것을 보면서

날씨가 좋겠구나, 나쁘겠구나하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징조가 있은 후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런 <자연적인 징조>가 아니라, <시대적인 징조>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갑자기 큰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조그마한 징조가 먼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큰일도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조그만 징조가 먼저 나타납니다.

그 징조라는 것이 1년 전에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5년 전, 10년 전에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시대의 징조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5년 후, 10년 후 우리 역사 가운데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조그마한 징조를 느낄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징조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것인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조그만 징조를 보면서

우리 역사에 큰일이 일어나는구나, 우리 시대에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2장에서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대를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꾸짖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시대의 징조를 느끼고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1020년 후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주는 조그만 징조를 놓치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잠수함 속의 토끼' 같은 예언자의 사명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영화로도 상영된 <25>의 작가 게오르규는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 1916~1992

루마니아의 유명한 시인이며 천주교 신부이기도 합니다.

 

이 사람이 쓴 글 중에 <예언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이 시대의 예언자인 예수님을 믿는 자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게오르규는 이차대전 때 해군에 입대해서 잠수함에서 근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는 잠수함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이 근무하는데

그 잠수함 안에 커다란 구리 통을 가져다 놓고

흰 토끼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렇게 비좁은 잠수함에서 왜 토끼를 기르는가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당시는 산소측정기가 없어서

토끼를 키우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잠수함에서 산소가 없으면 사람이 죽는데 토끼가 사람보다

7시간 먼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토끼를 키우면서 토끼가 음식을 잘 안 먹고 비실비실 하면

산소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물위로 떠올라 산소를 공급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잠수함 안의 산소가 부족한지 넉넉한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토끼를 키우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게오르규가 다른 잠수함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신참인 게오르규를 잠수함 제일 밑바닥에서 근무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잠수함에는 흰 토끼가 없어서 이 잠수함은 산소측정기가 없는데

어떻게 할까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자신을 감시하면서

자신이 기운이 없으면 얼른 떠오르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잠수함에는 토끼 대신 자신을 잠수함 밑바닥에 넣어놓고

산소를 측정했다는 것입니다. ‘아하 내가 이 잠수함의 흰 토끼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게오르규는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게오르규가 <예언자의 역할이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쓴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보겠습니다.

 

아 내가 이 잠수함의 흰 토끼구나 하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역사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어떤 역할을 맡겨주었는지 깨달았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시대와 역사에

흰 토끼 역할을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역사는 흰 토끼의 역할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부여하고 있다.

즉 이 시대의 크리스천들은 시대의 징조를 보고 나타내는 사람들이다.

 

불행이 다가올 것을 예측하고 괴로워할 줄 아는 사람들,

잠수함의 산소가 부족한지 넉넉한지를 측정하는 흰 토끼와도 같이

이 시대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미리 알고 괴로워하고

그것 때문에 몸부림을 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크리스천이 괴로워하면 그 사회는 병들어있다는 증거이고

그 사회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사회에 내재해 있는 문제를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할 때

누구보다 먼저 그 시대의 문제를 앞으로 닥치게 될 불행과 어려움을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징조를 느끼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없다고 하면

그 사회는 불행한 사회이다.

 

산소결핍이 되어도 결핍이 된지 모르다가 죽게 되는 것처럼

그 시대와 역사에 흰 토끼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이

그 시대의 징조를 느끼고 보지 못하고 예민하지 못한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결국 그 사회는 불행을 맞게 되고 재앙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와 같은 징조를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예민한 감각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는 사회는, 복된 사회이다.

 

미래에 닥쳐올 재앙과 불행을 예방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잠수함에 있는 흰 토끼와도 같은 사람들이다.

 

만약 잠수함 속에 흰 토끼가 없다든지 흰 토끼가 있지만

병이 들어서 감각을 잃어서 산소결핍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면

잠수함은 큰 재앙을 만나

7시간 안에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은 모두 몰사하고 말 것이다.’

 

여러분, 흰 토끼가 아주 중요합니다. 잠수함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큰 위기와 재앙을 느끼고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는

이 시대와 사회 속에서도 흰 토끼가 중요합니다.

 

징조를 볼 수 있고 징조를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이 시대 이 징조를 예견할 수 있는 흰 토끼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흰 토끼의 역할을 해야 할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이

제대로 그 역할을 하는가,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머지않아 우리 사회에 일어날 큰일들을 정말 느끼고 있는가,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이 시대에 나타나는 조그마한 징조들에 대해서

깨닫게 하고 경고해주고 메시지를 주고 해석해주는 것을

과연 우리 크리스천이 하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역사적으로 어느 나라든 위기와 재앙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징조를 빨리 느끼고 깨닫고 대처할 능력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징조를 알 수 있는 예언자들이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예언자가 있는 사회, 흰 토끼가 있는 사회는 행복한 사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 모두는 이 시대의 징조를 보고 느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흰 토끼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듣고 보고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는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이상한 징조들을, 우리 주위에서 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이상한 징조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는 일이지만 조금만 주의해서 보면

무슨 징조일까, 왜 옛날에는 보지 못했던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앞으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알려주는 징조가

우리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조그마한 징조들을 놓치지 말고

그 의미가 무엇인가, 도대체 무슨 일이 이 시대를 향하여 다가오고 있는가를

예견하고 깨우쳐주고 메시지를 전달할 책임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시대 징조들                    2012. 12월 즈음 설교

 

오늘 아침 저는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몇 가지 징조에 대해서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우리나라의 자살률8년 째 세계 1위입니다.

하루에 42.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자살을 시도 했다가 실패한 사람도 그 정도라고 하니까

하루에 80명 정도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 징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10년 전인 2002년에 비해 141%가 증가한 것이라고 합니다.

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지

왜 옛날에 나타나지 않았던 이런 징조가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요?

 

-또 하나는 출산율입니다.

전 세계에 227개국이 있다는데,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222위 끝에서 다섯 번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에는 192등이었는데 30등이 더 밀려났습니다.

젊은이들이 결혼은 하지만 애를 낳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OECD 국가 중 꼴찌인 1.23명으로

세 쌍이 결혼하면 아이 둘 정도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최근에 나타난 심각한 징조 중에 하나가

혼자 사는 나홀로 가구가 점점 증가하는 것입니다.

 

2년 전인 2010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혼자 사는 가구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는 대부분 남자가 평균수명이 짧으니까

남편이 죽고 할머니들이 혼자 살 것으로 생각하지만

혼자 사는 남자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2년 전 통계이니까 얼마가 더 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북한은 왜 먹을 것도 없으면서, 주민들의 일 년 반 식량 값을 들여서

로켓을 쏘는 것인가 하는 것도 이상한 징조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이상한 징조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 사회에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징조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징조들을 놓치지 말고 보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이 시대에 일어날 것인가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이 시대의 흰 토끼이기 때문입니다.

 

자살을 하는 것은 살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살아보아야 좋은 세상을 볼 수 없다, 미래가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길이 보이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노력하면 웬만큼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고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이 시대에 대한 사보타지입니다. , 반항입니다.

애를 낳아야 기를 자신이 없고 그 아이들이 살아갈 좋은 세상이 아니니

차라리 낳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이야 이미 태어났으니까 어쩔 수 없지만

이런 세상을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아이를 낳으며 대를 잇는다고 했습니다.

대를 잇는다는 것은 이 세상을 대를 이어서 지키겠다는 것인데

나는 이것으로 끝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들끼리 잘 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나를 더 이상 남겨놓지 않겠다는 사회에 대한, 저항이며 폭동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어떤 외국인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말하길 여러 가지 우리 사회의 상황으로 볼 때

폭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금년 우리나라의 무역규모가 이탈리아를 제치고 세계 7위이라고 합니다.

세계에서 7번째로 잘 사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생존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가진 사람들은 너무 풍부하고 잘 사는 세상이지만

가지지 못한 사람은 너무 힘들어 폭동이 일어나야 마땅한 사회인데 조용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조용한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거대한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

어떤 나라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폭동이 일어나서

하루에 43명이 죽는데, 이것이 지금 폭동과 데모가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마땅히 아이를 낳아야 할 사람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도 인명의 손실입니다.

세상의 어떤 전쟁이나 시위나 폭동이, 하루에 이만한 인명의 손실을 가져오겠습니까?

지금 우리 사회가,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폭동과 저항에 휩싸여 있는 것입니다.

 

총을 쏘아서만 죽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사회를 저항하는 사람이

하루에 43명이나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상태로 계속되는 한 더 큰 재앙이 이 나라에 닥치게 될 것입니다.

 

너무 많이 가진 사람이 더 이상 욕심을 내면 안 됩니다.

자기 혼자 잘 살 수 없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불공정한 데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생각합니다.

내가 이렇게 애를 쓰고 노력하는데,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 정의롭지 않은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억울함을 풀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입니다.

 

정부에서 아무리 출산장려정책을 세운다고 해도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무슨 마음이겠습니까?

당신들끼리 잘 살고, 나는 이만 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닥칠 엄청난 재앙의 징조들을

이 시대의 흰 토끼인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느끼고

이것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징조를 눈으로 보고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메시지를 전하고 예견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세상 사람과 똑같이, 세상 풍조와 똑같이

무엇을 더 가져보려고 하고, 무엇을 더 쥐어보려고 하고,

이 시대의 징조를 알지 못하고, 아파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고

 

우리가 그렇게 하는 한, 우리 한국교회까지 더불어

역사의 심판을 받고, 위기의 재앙을 맞게 되리라고..

저는 그렇게 내다보고, 염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가, 이 시대의 징조에 민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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