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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가정

LNCK 2016. 3. 6. 05:36

https://blog.naver.com/karamos/220302493357

 

◈파괴된 가정           창13장             1~13 2012.05.06.

 

서론

 

창세기 13~19장은 아브라함과 롯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는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둘 다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섬기던 죄인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해주셔서 의인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성도지만 롯은 성도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베드로는 롯을 의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벧후 2:8).

 

그러므로 롯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가정생활은 하늘과 땅이 다르듯이 전혀 달랐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은 성공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는 위대한 족장들과 왕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께서도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롯의 가정은 실패했습니다. 롯은 자기 아내도 죽고 사위들도 죽었습니다.

큰 딸로 인해 모압이라는 아들을 낳아 모압 족속의 조상이 되었고,

작은 딸로 인해 벤암미라는 아들을 낳아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압과 암몬은 대대로 하나님의 백성들과 원수로 지냈던 족속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둘 다 훌륭한 성도였지만, 아브라함은 가정에 성공했고 롯은 가정에 실패한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주간을 맞아 두 가지 측면으로

어떻게 하면 아브라함처럼 훌륭한 가정을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고,

또 어떻게 하면 롯처럼 파괴된 가정을 만들지 않을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롯의 삶을 네 가지로 살펴보면서 그의 가정은 왜 파괴되었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롯은 경건생활에 실패한 사람이었다

 

아브라함과 롯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롯은 어디에도 제단을 쌓았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예배와 경건생활에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롯은 실패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롯의 가정이 파괴된 가장 중요한 원인입니다.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창 12:7).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창 12:8).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 13:4).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창 13:18).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창 22:9).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든지 단을 쌓았습니다.

돌단을 쌓고 짐승을 죽여 피로 제사를 지내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은 돈도 많고 능력도 많으며 지혜도 많았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짐승이 죽어 피를 흘리는 희생제사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인격이 훌륭하고 능력이 많고 지혜로우며 권세가 높아도

희생제사 없이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제사를 믿는 믿음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믿음을 가지고 어디를 가든지 제단을 쌓고 피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경건생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롯은 단 한 번도 단을 쌓은 일이 없습니다.

영적인 경건생활에 대해서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 중에서도 교회를 나오기는 하지만

롯이 빠져있던 영적인 수렁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경건생활, 예배생활, 기도생활에 부주의한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경건생활의 실패가 가정의 실패라는 결과를 낳게 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시 128:1).

 

경건생활을 하게 되면 무슨 복이 있습니까?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시 128:2~3).

 

경건생활을 하는 자에게는 가정의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롯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경건생활에 실패하였고 결국 가정에 실패가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2. 롯은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아브라함과 롯은 둘 다 당시 최고의 부자였습니다. 돈이 많은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과 롯의 차이는 이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돈을 사랑하지 않았지만

롯은 돈을 사랑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0).

돈을 사랑하게 되면 미혹을 받고 근심으로 자신을 찌르게 되는 것입니다.

 

▲롯이 돈을 사랑한 사람이었다고 말을 하는 증거가 무엇이냐?

아브라함과 롯은 오늘 본문에 양과 소와 장막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벧엘 동편 산에 함께 거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짐승이 많아져서 물을 먹여야 되는데 우물이 몇 개 없으니까 우물을 차지하려고

목자들이 자꾸 다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롯은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먼저 롯에게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의 삼촌이었습니다.

삼촌이 먼저 조카에게 선택권을 주면, 당연히 조카인 롯은 거절하면서

삼촌이 먼저 택하라고 해야 하는데

롯이 눈을 들어보니, 요단 온 들에 물이 넉넉한 것을 보고 자신이 먼저 택한 것입니다.

 

결국 롯이 요단 근처의 들을 택하고 소돔, 고모라로 가게 된 동기에는

영적인 유익을 위한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요단 근처의 들로 가면 기도하는 데 도움이 된다든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도움이 된다는 동기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오직 물이 많고 목축에 유익하다는 물질적인 유익만 보고 선택한 것입니다. 롯은 돈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롯이 돈을 사랑해서 돈을 얻었느냐?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롯은 도리어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근심으로 자신을 찌르게 되었습니다.

 

롯은 돈을 사랑해서 중요한 네 가지를 잃어버렸습니다.

첫째, 롯은 땅의 보화를 얻으려다가 하늘의 보화를 잃어버렸습니다.

롯은 하늘의 보화가 없습니다. 천국에 가도 상급이 없는 것입니다.

 

둘째, 롯은 마음의 기쁨도 상실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8절에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는 말의 의미는 기쁨을 상실했다는 의미입니다.

소돔 성에 살았지만 즐겁게 살지 못한 것입니다.

 

셋째, 롯은 가정에서의 지도력도 상실했습니다. 아내도 롯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롯이 소돔성에서 나올 때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아내에게 말했지만

결국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된 것입니다.

롯의 두 딸과 정혼한 사위들에게도 도망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넷째, 돈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롯이 돈을 벌어 소돔성에 땅도 사고 빌딩도 짓고 했지만

소돔성에 유황과 불이 비처럼 내려 다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결국 소돔성에서 나와 두 딸과 소알성이라는 곳에 거하는데 돈이 없어

동굴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동굴 속에 살면서 남자가 아버지밖에 없으니까

딸들이 롯에게 술을 먹여 모압과 벤암미를 낳게 된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버시기 바랍니다. 돈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돈은 사랑의 대상은 아닙니다.

돈을 사랑한다고 해서 많이 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사랑하고 사모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하나님을 중히 여기고 돈을 경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돈이 들어오든지 나가든지 붙들지 말고 신경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이 나가는 것을 너무 아쉬워하면 병이 듭니다.

 

어떤 분이 돌아가셨는데 이유를 물어보니까, 돈 빌려준 것을 못 받아 화난 것 때문에

병이 나서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돈을 중히 여긴다고 돈이 들어오면

저도 여러분들에게 돈을 중히 여기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돈을 중히 여기다가 돈도 날아가고 가정도 망친 것이 롯의 이야기 아닙니까?

그러므로 하나님보다 돈을 중히 여겨서는 안되겠습니다.

 

◑3. 롯은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충분히 분리되지 아니했다

 

롯은 타락한 사람과 적당히 타협하며 가까이 지냈습니다.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를 알려면 그 사람의 친구를 보면 됩니다.

 

술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다니는 사람은 틀림없이 술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다니는 사람은 틀림없이 도박을 좋아합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비슷한 행동을 한다는 뜻입니다.

 

롯은 죄인들을 좋아하고 타락한 사람들과 타락한 동네를 좋아했습니다.

창13장부터 19장까지를 보면 롯이 어떻게 움직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창 13:12).

 

롯은 타락한 세상을 은근히 좋아했습니다. 요단 들이라고 그곳 전체가 소돔성은 아닙니다.

그런데 롯이 점점 장막을 소돔성 가까이 옮겼다는 것입니다.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창 14:12).

 

결국 롯은 소돔성 안에 살게 됩니다.

창13장에서는 소돔 근처에 있다가 14장에서는 소돔 안에 살다가

19:1절에서는 소돔 성문에 앉아있습니다.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 (창 19:1).

 

성문에 앉았다는 것은 롯이 소돔성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소돔성의 재판관, 시의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물 많고 육축하기 좋은 곳으로 가겠다고 하더니 점점 소돔성 가까이 가게 되었고

결국 소돔성 안으로 들어가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롯이 소돔성을 좋아하고 소돔 사람들을 좋아한 것입니다.

 

롯이 그 아내를 어디서 얻었는지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모르지만

롯의 아내는 소돔성을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소돔성을 떠나며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된 것입니다.

 

또한 사위를 소돔 사람들 가운데 택한 것을 보아

롯의 아내는 아마도 소돔 출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롯은 타락한 세상과 분리되지 않은 삶을 산 성도의 모형입니다.

죄인들하고 항상 가까이 지내다가 결국 가정에 대재앙이 오게 된 것입니다.

 

◑4. 롯은 그의 자녀들을 죄에 기꺼이 내어 주고자 했다

 

롯은 자녀 교육에 있어 올바른 영적인 교육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19장에서 두 천사가 소돔성을 방문했을 때 롯이 천사들을 알아보고

간청하여 자기 집에 묵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소돔성 사람들이 롯의 집으로 몰려와 천사들을 이끌어 내라고 하였습니다.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창 19:5). 그러자 롯은 문밖으로 나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컨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말라” (창 19:8).

 

두 천사를 보호하기 위해서 자기 딸을 내어주겠다는 말입니다.

물론 두 천사를 지키기 위해서 했다고 좋게 볼 수도 있지만

세상의 어느 아버지가 자기 딸들을 치한들에게 마음대로 하라고 내어줍니까?

 

저는 롯이 하는 짓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아버지가 자다가 치한을 만나 자기 딸이 겁탈을 당하게 되었다면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야 합니다. 자기 살자고 딸을 죽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가족이 위험에 처하면 가장은 죽음을 각오하고 가정을 지켜야 됩니다.

 

하지만 롯은 자기 딸들을 내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딸들의 성결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두 천사들이 손을 내밀어서 롯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고

밖에 있는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만들어서 흩어지게 합니다.

만약 두 천사들이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롯의 딸들은 그 결과를 상상하기도 참담한 일을 겪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세상의 죄로부터 보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악한 영화, 음악, 교재, 습관 등으로부터 보호받는 피난처가 필요한 것입니다.

 

최근에 신촌에서 대학생이 한 명은 다치고 한 명은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대학생들이 왜 서로 죽고 다치게 되었느냐? 사령카페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죽을 사, 영원 영. 죽은 영혼들과 대화를 하는 카페라는 것입니다.

죽은 영들과는 대화할 수 없습니다. 죽은 영들의 흉내를 내는 것은 전부 악령이나 귀신들입니다.

그러다 결국 서로 다툼이 일어나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기도 겁이 납니다.

왜냐면 학교에 온통 깡패들이 많아서 아이들을 잡아다 때리고 겁주고 돈을 빼앗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어디 설 자리가 없습니다.

 

미국에서도 학생들이 학교에서 마약을 먹고 나쁜 것을 배워오니까

홈스쿨링이라고 집에서 교육을 시키는 것이 유행입니다.

하지만 부모가 가르치는데도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결국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교육이 아주 심각한 위기 상태가 된 것입니다.

 

이 세상 곳곳에 뱀 구덩이가 널려있습니다. 자녀들이 잘못 발을 디디면 뱀 구덩이에 빠집니다.

저도 지금 가만히 과거를 되돌아보면 ‘내가 그때 한발만 잘못 디뎠으면

뱀 구렁텅이에 빠져서 내가 뱀의 노예가 될 뻔했구나. 지옥 가게 될 뻔했구나.’

이렇게 생각되어지는 순간이 많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지 이 세상에 얼마나 뱀 구덩이가 많은지 모릅니다.

 

결론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뱀 구덩이에 방치할 수 없습니다.

롯은 자기 자녀들에게 바른 교육을 시키지 못하고

자기 자녀들을 죄에 내어주려고 했던 아버지였습니다.

 

롯은 소돔에 살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소돔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소돔에 살아도 롯이 경건생활에 성공하고 돈을 사랑하지 않으며

세상과 벗 되지 않고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잘 시켰더라면 롯의 가정도 성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롯은 네 가지에서 다 실패하였고 결국 많은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다 잃어버리고 남긴 것도 매우 악한 유산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원수들을 남겨놓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롯은 소돔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창 19:15).

 

롯에게 분명히 경고하여 재촉하지만 롯은 계속해서 지체합니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창 19:16).

 

소돔성에서 얼른 나와야 온 가족이 산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롯은 한 시간이라도 더 있으려고

지체를 한 것입니다. 지체한 결과 롯은 아내도 잃었고 두 사위도 잃게 되었습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의 가정은 롯과 같은 가정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해야겠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가정, 후손들도 축복되고 우리도 복 받는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경건생활을 바로잡아 우리의 마음 속에 돈을 우상으로 삼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돈을 중히 여기고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이 뱀 구덩이와 같은 세상에 빠져있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지 마시고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바른 길로 가도록 지도하는 부모가 되어야겠습니다.

아브라함처럼 가정에 성공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blog.naver.com/karamos/220304168443

 

◈롯이 잃은 것과 남긴 것      창19장 12~17           2013.07.21.

 

서론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입니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70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70세에 아들 셋을 어떻게 다 낳습니까?

70세부터 낳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이고, 11장에 아브라함이 제일 처음 나와서 그가 장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데라의 장남은 하란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둘째이고 나홀이 막내입니다.

 

데라의 장남인 하란은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죽었는데 그에게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롯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롯의 작은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 하란에 잠시 머무르는 동안 데라가 죽고 나홀은 그곳에 정착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으로 떠나는데

이때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도 아브라함과 함께 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까지 롯은 아브라함과 동행하였고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서 애굽으로 피신할 때도 롯은 아브라함을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애굽 왕 바로가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의 미모를 보고 탐하여

사라를 취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빼앗은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은금과 종과 육축들을 주며 사라를 취한 것입니다.

 

하지만 애굽 왕 바로가 사라를 취하려 하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막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라를 보호해주셔서 아브라함은 사라도 돌려받게 되었고

바로가 준 재물들도 함께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부자가 되었는데 아브라함만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롯도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따라다니다가 롯도 부자가 된 것입니다.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창 13:1~2).

 

얼마나 부자가 되었으면 가나안 땅이 그 두 가족을 용납할 수 없을 정도라고 나오겠습니까?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창 13:5~6).

 

양과 소를 많이 갖고 있다 보니 목자들이 서로 다투는 것입니다.

물을 얻기 위해서 다투고 꼴을 얻기 위해서 다투니까 아브라함과 롯이 갈라서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단을 쌓아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땅의 약속도 주시고 자손의 약속도 주시고

아브라함을 통해 세상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놀라운 언약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방패가 되어주셨고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현재도 복 받고 내세도 복 받고 영원히 복 받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롯도 아브라함을 계속 따라다녔으면 믿음의 조상의 조카로 복을 받았을 것인데

아브라함과 다른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1. 롯이 걸은 인생길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창 13:8~11).

 

아브라함이 롯에게 먼저 선택하라고 선택권을 주자 롯은 눈을 들어 봅니다.

그런데 롯의 눈에 요단 온 들이 보였습니다. 요단 온 들에는 당시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소알 이렇게 다섯 개의 성이 있었는데

물도 많이 흐르고 목초도 많아 보여서 그곳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하지만 소돔에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창 13:13).

물론 다른 도시 사람들도 악했겠지만 ‘큰 죄인’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습니다.

소돔 사람들에게만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창19:1~11절을 보면 두 천사가 남자의 모습으로 소돔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롯이 성문에 앉아 있다가 보통 분들이 아닌 것을 알고 자신의 집으로 초청합니다.

두 천사가 거절을 하지만 롯이 간청하여 결국 롯의 집에 머물게 되는데

그날 저녁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들의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창 19:4~5).

 

저는 4절에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를 보고 놀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성연애자라는 것도 놀라운데

그중에 어른만이 아니라 아이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동성연애자들이 모두 몰려와서 롯에게 요구하기를

너희 집에 있는 평소에 보지 못했던 남자 둘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롯이 밖으로 나와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컨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말라” (창 19:8).

 

하지만 사람들은 롯의 말은 듣지도 않고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천사가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은 뒤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밤새도록 문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돌아갔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동성연애가 선천적인 장애라고 말합니다.

저는 연구를 많이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선천적인 장애라고 한다면

어떻게 소돔에는 그렇게 많은 동성연애자가 있을 수 있습니까?

선천적인 장애자가 어떻게 그 성에만 다 몰려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돔의 경우를 봤을 때 동성연애라는 것은 사회적인 분위기가 만들어낸

악한 문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동성연애가 괜찮다고 하면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서 멀쩡하던 사람도 동성연애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사람은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할 것입니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대한민국 중‧고등학생이 보는 도덕교과서를 보았는데

문제가 심각합니다. 동성연애자들을 성적 소수자라는 아주 교묘한 말로 표현해서

그들의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동성연애자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살펴보고 느낀 점을 써오라고

숙제를 내줍니다. 이렇게 사회에 동성연애 분위기를 조장하는 사람들은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롯은 이런 소돔을 좋아했습니다. 거기에 정착해 살면서 하나님과의 교제는 단절되었고

기도도 중단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인정했듯이 롯은 의인이고 하나님의 자녀였지만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신의 결혼하지 않은 두 딸을 죄인들에게 내어주는 아버지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정상적인 아버지라면 자신이 죽더라도 딸들을 보호해야 마땅한데

죄인들에게 기꺼이 내어주는 악한 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뜻도 구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 당대뿐만이 아니라

후대에도 엄청나게 큰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겠습니다.

 

◑2. 롯이 잃어버린 것

 

롯은 소돔에 살면서 부자가 되었고 성문에 앉아있었다는 것을 보니까 출세도 했습니다.

하지만 롯은 성공하기 위해서 너무 귀한 것들을 많이 희생했습니다.

롯은 네 가지 귀중한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첫째, 성도의 기쁨을 상실했습니다.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벧후 2:7~8).

 

롯은 날마다 고문당하는 심령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 남편 우리야를 간접 살인했을 때 심정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시 32:4).

 

영혼이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 51:12).

 

롯이 구원을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구원의 기쁨을 상실했습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그 영혼은 불행했습니다. 출세하고 돈을 많이 벌어도

기쁨이 없는 것이 낫습니까? 조금 가난해도 기쁜 것이 낫습니까?

 

물론 출세하고 돈도 벌고 기쁨도 있으면 좋겠지만

기쁨을 희생하면서 얻는 돈은 별로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 성도로서 증거능력을 상실했습니다.

롯이 말을 해도 자식들이 듣질 않습니다. 롯이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롯이 나가서 그 딸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창 19:14).

하지만 사위들은 그것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롯이 아무리 말을 해도 증거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롯이 말하면 농담으로 들릴 뿐이었습니다.

왜 롯은 증거능력을 갖지 못했습니까? 그의 삶이 자식들에게 모범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롯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롯이 기도하는 모습은 딱 한 번 나옵니다.

“종이 주께 은혜를 얻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보소서 저 성은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로 그곳에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창 19:19~20).

 

천사들이 산으로 도망가라고 하니까 평소에 등산도 하지 않았고

다리도 약해서 산으로 갈 수 없으니까 근처에 있는 작은 성은 멸하지 말고

그곳으로 도망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것이 롯의 기도의 전부였습니다.

 

천사들이 듣고 한심하게 여겼겠지만 그런 내용은 기록되어 있지 않고

어쨌든 소돔과 가까이 있던 소알은 살려두었습니다.

소알은 ‘작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성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부모 된 우리가 자식들에게조차 증거능력을 갖지 못하는 것은

이 시대의 비극이기도 합니다. 자식들에게 기도하라고 해도 하지 않고

교회 나오라고 해도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면 자식들에게 영적 유익을 준 적도 없고, 그리스도에 관해 증거하지도 않고

자식들을 위해서 기도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사명은 돈 벌어서 주는 것이고 어머니의 책임은 밥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세상의 유익을 추구하며 삶의 모범을 보이지 않으니까

자식들에게 말을 해도 통하질 않는 것입니다.

 

▲셋째, 벌어놓은 재산도 모두 상실했습니다.

믿을 것은 돈밖에 없었는데 돈이 다 날아간 것입니다.

소돔에 사업장도 있고 집도 있고 땅도 있고 돈도 있었는데

유황불비가 내려 하룻밤 사이에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사라진 것입니다.

 

롯은 땅에서 부자였지만 하늘에서는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땅의 것이 다 사라지니까 땅의 것도 없고 하늘의 것도 없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어차피 땅의 것을 다 놓고 가야 됩니다. 그런데 하늘에 쌓아둔 것이 없다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하늘에 쌓아두시기 바랍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마 6:20).

 

우리는 이 땅에 살다가 이생이 다하면 부활하여 영원히 천국에서 살아갈 사람들이기 때문에

좀과 동록이 해하지 못하는 곳에 보물을 쌓아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도 하시고 헌금도 하시기 바랍니다.

자기 좋은 일만 한다면 하늘의 상이 있겠습니까? 롯은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자기를 위한 일에만 에너지를 다 쏟고 하늘에 상을 쌓는 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땅의 것이 다 사라지고 나니까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넷째, 가족의 일부분도 잃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내라” (창 19:12).

 

자녀는 아들, 딸 모두를 가리키는 말 아닙니까?

그러니까 롯에게 아들과 결혼한 딸들도 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이들 모두 다 죽었습니다. 롯의 아내도 천사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을 다 잃고 두 딸만 살아남은 롯의 마음이 얼마나 쓸쓸했겠습니까?

 

롯의 길은 행복한 길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길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께 예배하고 헌신하는 길이

남들이 볼 때는 어리석은 길 같아 보여도, 진실로 복된 길이고 영원한 길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롯이 남긴 유산

 

창세기 19장 후반부는 수치스럽고 비극적인 이야기입니다.

롯은 두 딸과 소알에서 살고 있다가 거기에도 유황불비가 내릴까 무서워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산에 집도 없고 하니까 동굴에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롯의 두 딸이 이제 남자라고는 아버지밖에 없고 자식은 낳아야겠으니까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근친상간을 통해 큰딸은 모압을 낳고 작은딸은 벤암미를 낳은 것입니다.

 

이 두 딸들은 소돔에서 자라면서 동성연애가 괜찮다고 배웠을 것입니다.

큰 죄라고 알았던 동성연애가 괜찮다고 하니까 근친상간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교육은 매우 중요합니다.

 

결국 큰딸은 모압 족속의 조상이 되었고, 작은딸은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모압과 암몬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의 철천지원수가 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공격하고 핍박하며 괴롭게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스라엘과 원수가 되어서 계속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롯의 배역은 단순히 그 시대의 피해로 그친 것이 아니라

후손 대대로 악한 영향을 끼치고 지금까지도 그 영향이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롯이 역사에 남긴 유산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며 남긴 것이라고는 악한 것들만 남게 된 것입니다.

 

결론

 

창세기 19장은 우리 성도들을 향한 대단히 엄중한 경고입니다.

성도이면서 세상의 재물과 쾌락 그리고 죄악에 빠져 사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심각한 경고인 것입니다.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이것이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19:14

소돔이란 동네를 떠나라는 것이 아니라 죄악에서 떠나라는 말입니다.

죄악에 빠져 사는 인생은 롯의 길입니다. 죄악에서 떠나라는 말은 슬슬 걸어서

뒤를 돌아보며 나오라는 말이 아니라 뛰어서 나오라는 말입니다.

 

돈을 위해서 나오라는 것도 아니고 명예를 위해서 나오라는 것도 아닙니다.

살려면 나오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위해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예배하고 있는 여러분 중에 혹시 동성연애와 같은 죄는 아니더라도

다른 죄에 빠져 하나님과 교제를 게을리 하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사는 분이 계십니까?

심령이 괴롭지만 그래도 세상이 주는 쾌락과 만족 때문에 괴로운 것을 감수하고 계신 분들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롯의 길에서 돌이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