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눈 귀 입을 훈련하십시오 / 잭 푸닌 - YouTube
◈당신의 눈 귀 혀를 훈련하십시오 고전9:27 출처, 영어
Learn to Discipline Your Ears, Eyes and the Tongue / Zac Poonen
▲신약성경은 우리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훈련하라고 강조하는데
특별히 눈과 귀와 혀를 훈련시키라고 가르칩니다.
롬8:13절에 바울은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육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라고 말씀합니다.
‘육의 행실을 죽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를 다 포함하지만,
그 중에 눈과 귀와 혀가, 우리가 가장 빈번히 사용하는 육신의 지체이고,
이것들을 우리가 죽이지 못하면, 즉 제어하지 못하면
성령충만한 삶은커녕 ‘너희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은 고전9:27절에도, 이렇게 강조합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여기서 바울은 ‘자기 몸을 쳐서 복종하게 했다’고 말씀합니다.
‘쳐서’ 라는 말은, ‘때린다, 훈련시킨다’라는 뜻입니다.
즉, 자기 눈과 귀와 혀가 방종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 육신이 완전히 복종되도록, 자기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돌아보았다는 뜻이지요.
성도가 성화의 삶을 살아가려고 할 때,
자기 눈과 귀와 혀를 제어하고, 점검하고, 훈련시키는 일은 꼭 필요합니다.
바울이 실제로 그렇게 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즉 실제적인 경건의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전4:8
사람이 자기 건강을 위해 운동하듯이, 경건도 단련해야 된다는 뜻이지요.
그렇게 훈련하는 자만, 거룩해지는 것이지,
아무 것도 안 하고, 손을 놓고 있으면.. 거룩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결심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그 길로 우리를 인도하실 때, 민감하게 반응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와 대화를 하고 난 이후에,
자기의 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귀도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혹시 헛된 가십에 동의하진 않았나..?’
우리는 험담을 해서도 안 되지만,
이웃이 하는 험담에, 내 귀를 무방비상태로 내어주어도 안 됩니다.
우리 귀가, 아무 말이나 다 구분 없이 완전히 오픈되어 있으면,
결국엔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리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귀가 깨끗하지 못하고, 오염되어 있으니까요.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막4:24
우리의 눈도, 그냥 방치하지 말고, 훈련되어져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날과 같이, 영상물과 책이 넘치는 시대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오늘날 많은 선교사와 사역자들이,
자기 눈을 훈련하지 못하고, 방치한 결과
습관적인 죄에 빠지다가, 결국은 부도덕에 빠지고 맙니다.
눈을 마음대로 내버려두면, 처음에는 상상에 빠지다가, 결국은 실제로 빠지게 됩니다.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시119:37
우리 혀도, 성령으로 늘 통제 아래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바로 혀 때문입니다.
제어되지 않은 혀!
▲특히 말씀사역자는, 자기 ‘혀’를 잘 통제해야 합니다.
그걸 잘 통제 못하면, ‘말씀’이 막혀 버리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누구랑 싸우고, 누구를 비방하고, 강단에 서 보십시오.
거기서 은혜로운 말씀이 증거 되겠습니까?
이사야는, 말씀 사역 즉 선지자로서 예언 사역을 하기 전에,
그는 “자기 혀의 부정함”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요'
오늘날에도, 말씀 사역자들은, 특히 자기 혀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한 입으로, 더러운 말과, 축복의 말씀을 같이 솓구쳐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약3:11
위 말씀은, ‘샘물’에 관한 교훈이 아니라, ‘혀’에 관한 말씀이죠.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입’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너는 나의 입 같이 될 것이라’ 렘15:19
여기서 ‘하나님의 입’은 은유적으로 ‘하나님의 대언자’란 뜻입니다.
그런데 무작정 ‘하나님의 입’이 되는 것은 아니고,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 렘15:19
즉 예레미야가, 헛된 말을 버리고, 귀한 말을 하는 가운데서
그는 ‘하나님의 입’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가, 보통 사람들처럼, 헛된 말, 가십, 비방의 말, 험담, 분노의 말 등을 하는 순간에는
‘하나님의 입’으로서의 자기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의 사역자가 되려면
특별히 자기 ‘입’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만약 함부로 자기 입을 방치해 두었다가는
‘말씀의 종’으로서 자기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입을 천하게’ 쓰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 입으로 ‘존귀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문적인 말씀 사역자들은,
벌목공이 자기 연장을 항상 잘 다듬어 두듯이
한담, 가십, 비방의 말, 분노의 말들로부터, 자기 입을 항상 깨끗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자기가 하나님께 받은 부르심, 그 소명을
자기 부주의 때문에,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지요.
저 잭 푸닌은, 이것이 바로 오늘날에
말씀의 종, 말씀의 선지자가 희귀한 이유라고 봅니다.
자기 입을 잘 관리하는 사람들이 드물어서,
하나님의 귀한 대언자로서의 사명을 한 번 받았다가도, 그걸 원활히 감당 못 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의 말씀을 우리 입술에 두시면,
그때부터 우리에게는 아주 엄숙한 의무가 생기는데,
그것은 그 대언 사역을 위하여, 우리 입술을 평소에 지키는 guard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소명은, 한 번 받으면 항존직처럼 영구히 지속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대언자의 사명을 받은 사람들은,
자기 입술을 평생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을 때면,
의사는 꼭 ‘아~ 하세요’ 하면서, 환자의 혀와 목구멍부터 살핍니다.
우리 영적 건강상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도, 혀가 우리 영적 건강 상태를 나타낸다고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라고 증거합니다. 약1:26
아울러, 만약 누가 자기 혀를 제어할 수 있으면,
그는 경건한 사람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약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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