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과 아벨 창4:16 출처보기
◑1. 산 자와 죽은 자의 족보
성경에는 두 족보가 있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족보입니다.
산 자는 여자의 후손의 계열이고 죽은 자는 뱀의 후손의 계열입니다.
아담 안에서 두 계열이 나타납니다.
가인과 아벨입니다.
가인은 뱀의 후손으로서 죽은 자의 족보에 올려진 자를 상징하고,
아벨은 여자의 후손으로 산 자의 족보에 올려진 자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는 정 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산 자라고 하는 아벨이 죽임을 당하게 되고,
죽은 자라고 하는 가인은 승승장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산 자는 영생의 세계인 천국에서 살고 죽은 자는 죽음의 세계인 지옥에서 살게 됩니다.
영생의 나라는 하늘에 있고 죽음의 나라는 이 세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범죄하자 땅을 저주합니다.
이 세상은 저주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산 자의 족보에 올려진 자들은 아벨처럼 땅에서 뽑혀짐을 당하는 인생으로 간섭을 하십니다.
반대로 죽은 자의 족보에 올려진 자들은 가인처럼 땅에서 승승장구하는 모습으로 간섭을 하십니다.
가인의 족보에 올려진 자들은 세상에서 네피림처럼 거인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세상 힘을 가진 영웅호걸들이 되어서 살아가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벨 대신 주어진 셋의 후예들은 특별한 인물이 없고 모두가 자식을 낳고 죽었다는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 세상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살다가 사라져간 티끌과 같은 인생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가인의 족보에 올려진 자들은 죽었다는 기록이 없고 유독 셋의 후손들만 죽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가인의 후예는 저주 받은 땅을 떠나지 못하였고 셋의 후손들은 저주 받은 땅을 떠났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셋의 후손인 에녹은 하나님께서 간섭하여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다가
다른 세상으로 옮겨짐을 당하였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이 에녹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세상 바깥으로 옮겼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녹을 통하여서 셋의 후예들이 이 땅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 것인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성도는 에녹처럼 살다가 하나님 나라로 옮겨지게 됩니다.
그 셋의 후예가 바로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은 셋의 후손들에게 땅에 분깃을 주지 않고 하늘에 분깃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셋의 후손들은 이 땅에서 버려짐을 당하고 뽑혀짐을 당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께서 동행하셔서 그렇게 간섭을 해 나가시기 때문입니다.
◑2. 가인의 죄를 들추어내시는 하나님
가인과 아벨 이야기는 죄인과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즉 가인은 마귀에게 속한 우리들을 상징하고 아벨은 하나님께 속한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곧 우리가 예수를 죽인 것과 같습니다.
왜? 가인은 아벨을 죽였습니까?
이는 가인은 악에 속하여 죄가 가인 안에 소원을 두고 다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자신이 죄인인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너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일을 하십니다.
그것이 가인의 제사를 거부하고 아벨의 제사를 열납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가인은 자신의 제사가 거부 되자 하나님에 대한 적개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속한 아벨을 죽입니다.
결국 가인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인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죄를 드러내게 하시려고 아벨을 희생 재물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는 마치 예수를 들어서 유대인의 죄를 고발한 것과 같습니다.
아벨의 제사 속에는 창세전 언약의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창세전 언약은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자기 백성들이 거룩하고 흠이 없어지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제물의 희생으로 죄인이 거룩함을 입는 것입니다.
아벨은 흠 없는 양을 제물로 드리고 죽임 당한 것은 곧 아벨 자신이 흠 없는 제물로 죽은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예수님뿐입니다.
아벨은 예수님을 표상하고 있으므로 자신이 제물처럼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죽음을 근거로 가인에게 표를 주어 살립니다.
그리고 가인을 놋 땅에 살게 하십니다. 창4:16
놋이란? 유리방황이란 뜻으로 심판 받은 땅을 상징합니다.
이 땅은 아담의 범죄로 저주받은 곳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이 살아갈 땅은 저주 받은 이 세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 받은 이 땅에서 유리방황하며 살고 있는 가인들입니다.
성도는 세상에 살면서 자기 안에 있는 죄악들이 낱낱이 고발당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 모두가 창세전 언약에 의한 것입니다.
죄가 폭로당하고 은혜로 덮음을 입게 됩니다.
모두가 죄인이 아벨처럼 희생당한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린 날마다 죄가 들추어지는 일들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마땅히 저주 받아야 하는 죄인임을 자각케 됩니다.
이러한 자각이 긍휼의 자리로 나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긍휼로 살고 있음에 깨닫고 감사케 되는 것입니다.
죄인이 사는 길은 오직 하나 의로운 제물인 예수님의 희생 때문입니다.
저주는 그 피를 보고 넘어갑니다.
그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게 깨끗케 하시고 하나님과 화목케 하심을 알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오늘도 말씀 앞에서 죄가 낱낱히 고발당하시고
예수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 용서 받고 살고 있음을 알고 감사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3. 이상한 복과 저주
※이런 측면도 반드시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에서 나오는 '죽음'은, <성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의 삶>으로 이해하셔도 무방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육적으로는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생각과는 역설적으로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육에 속한 자들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성령으로 난 자들만이 알아먹습니다.
인간들 생각에는 죄인을 저주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인을 살려주는 방식으로 일을 하십니다.
가인과 아벨은 이 땅에서 벌어질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간의 싸움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내어 쫓으면서 하신 말씀을 보면
뱀의 후손은 여자의 후손에 발꿈치를 물고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깨트리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발꿈치를 무는 것은 작은 상처를 주는 일이고 머리를 깨트리는 것은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는 정 반대로 나타납니다.
뱀의 후손인 가인이 여자의 후손인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가인을 죽이기는커녕 도리어 표를 주어서 지켜주십니다.
아벨은 땅에서 버림당하게 하시면서 가인은 땅에서 승승장구하며 살게 하십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일찍 죽임 당한 아벨은 저주 받은 모습입니다.
반면에 땅에서 승승장구하면서 잘 살아가는 가인은 축복받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벨이 복을 받은 자이고 가인은 저주 받은 자로 말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땅에서 일찍 죽임 당한 아벨은 복이라 하고
땅에서 성공하여서 잘 사는 가인은 저주 받은 자라고 하는가요?
이는 이 세상 자체가 저주 받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하자 땅을 저주합니다.
그럼 저주를 머금고 있는 땅에서 오래 사는 것은 결코 복일 수가 없습니다.
땅에서 오래 사는 것만큼 저주의 세월을 오래 사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약속의 자녀들은 땅에서 빼내는 일을 하십니다.
스스로 나올 수가 없으니 뱀의 후손들을 통해서 죽임을 당하여서 빠져 나오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의 죽음을 복 되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래 사는 것 보다 일찍 죽는 것이 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죽음)을 주십니다.
가인에게 있어 저주란? 저주 받은 땅에서 오래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오래 산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고난을 당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육에 속한 자들은 이 사실을 모릅니다.
도리어 자신들이 땅에서 장수하고 성공하여서 사는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땅에 것을 아무리 많이 모았다 하여도 그것들은 다 풀처럼 불살라질 것들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인생이라도 잠간 보이다가 사라질 안개 같은 인생입니다.
그래서 재물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떠난 자들을 어리석은 부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물질을 의지마며 일락하면서 살다가 지옥으로 간 부자가 부럽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거지로 살다가 천국으로 간 나사로가 부럽습니까?
성경은 인간들이 눈만 뜨면 추구하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땅에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를 가졌으면 만유를 가진 것이고 예수를 가지지 못하였으면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것입니다.
죄인이 이 세상을 사는 것은 형벌적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뱀의 후손인 가인을 저주 받은 땅에서 흙에 기운으로 오래 살게 함으로써
아벨을 죽인 죄 값을 저주로 갚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가인의 삶이 아무리 화려하다 할지라도 결국은 종신토록 흙을 먹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입니다.
하지만 아벨은 일찍 죽임을 당하였지만 하나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으므로
복된 인생인 것입니다.
어느 삶이 부럽습니까?
나는 지금 가인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벨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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