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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David Pawson's Unlocking the Bible

이사야 P2 / David Pawson

LNCK 2015. 12. 8. 21:32

 

이사야 P2                                 영어 녹취록                    출처보기

 

우리는 <이사야서>40년 동안의 여러 예언들이 수집되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그리고 예언도 질서 정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사야서의 전체 구조를 살펴보고, 연결시켜 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전반부(1~39)을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렸듯이, 전반부는 대부분 나쁜 소식입니다.

1~10은 유다를 책망하는 내용이고, 특히 예루살렘을 책망하는데,

예루살렘 성 안의 화려하게 치장한 여자들을 책망하며,

그들은 많은 돈을 허비하여 보석을 사들였습니다.

 

이 사진은 당시 예루살렘에서 발굴해낸 보석들을 찍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보기에 이것들이 아름답든지, 아니든지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값비싼 보석들입니다.

당시 여자들이 많은 돈을 들여서 이 보석들을 구입 했습니다 

 

 

 다음은 13~23인데, 위 도표의 파란색 부분을 보시면

하나님이 다른 나라들을 심판하신다는 예언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그 주변 나라들을 사용하여, 자기 백성을 징계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수준보다 더 지나치게 유다를 학대하였어요.

 

그들은 악독이 충만했고, 잔인하였고,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보다, 너무 지나치게 학대하였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신다는 예언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나라들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어요.

하지만 만약 그 나라들이 선을 넘어서 지나치게 하면, 자기 머리로 돌아오는 것을 염려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오히려 그들을 징벌하셨습니다.

 

24-34에는 사마리아를 심판하는 것을 예언했고,

다음은 북방의 10지파의 심판, 그리고 이어서 유다를 심판하는 예언입니다.

 

하지만 그가 여기에서 두 단락의 좋은 소식을 끼어 넣었는데, *도표를 보세요

그래서 샌드위치 구조인데,

슬픈 소식 과 좋은 소식, 나쁜 소식 과 좋은 소식,

그리고 또 나쁜 소식입니다. *샌드위치처럼 겹겹이 나오네요.

 

나쁜 소식 중간에 끼인 좋은 소식이란 곧 오실 영광을 두 번 언급하였는데, *11~12, 35

그래서 이사야서의 전반부가 모두 무거운 내용만은 아닙니다.

이는 메시지가 너무 무겁기만 하면,

사람들이 밝은 미래의 소망을 전혀 보지 못할까 염려해서 였습니다.

 

36-39에는 히스기야 왕이 병이 든 네러티브가 나오는데, *narrative: 예언과 성격이 다르지요.

이것은 역사의 한 전환점입니다.

바벨론이 곧 앗수르를 대신하고, 이스라엘 제일 큰 위협이 될 것을

히스기야의 어리석음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당시 국력이 연약했던 작은 바벨론 나라 사신을 환영하고

득의양양하게 예루살렘의 보물들을 자랑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전반부(1~39장)에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예언)이 둘 다 나오며,

그리고 나쁜 예언은 아모스의 메시지와 아주 비슷한데,

백성의 거역을 책망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백성들을 자기 앞으로 다시 데려 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이웃 나라를 사용하여 그들을 징계하였던 것이고,

이러므로 그들은 반드시 재앙을 만나게 되었고, 결국에는 타국에 포로가 되는 깊은 우울에 빠지게 되지요.

 

하지만 <전반부>의 좋은 소식은, 포로 이후에 남은자들이 귀환하는데,

이것은 이사야의 둘째 아들 이름을 통한 예언 입니다.  *스알야숩 

 

또 하나의 좋은 소식이 있는데, 아주 중요합니다.

<이사야> 전반부에 한 왕이 태어난다고 선포하였어요.

 

그의 어깨에는 정사government를 메었고, 한 왕이 태어날 것이며,

그는 만국에게 평화를 가져 올 것입니다.

 

헨델의 <오라트리오 메시야>의 시작이 바로 <이사야서> 전반부에서 온 것입니다.

 

   ※파슨 박사님은, 강의 때 몇 장, 몇 절을 밝히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시청자들이 성경을 장 절로 따로 떼서 읽지 말고,

   전체 문맥을 읽으라고, 일부러 몇 장 몇 절을 밝히지 않으신다고,

   계시록 5강에서 그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번 번역에는, /절을 일일이 찾지 않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사실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이 오실 왕의 통치는, 다윗 왕 같이 될 것이며,

그는 영존하시는 아버지, 모사, 평강의 왕이라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는 동정녀에게서 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이사야서 전반부에서 온 것이며,

곧 한 왕이 오시리라는 묘사이며, 그가 다시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입니다.

이 소식은 당연히 극한 기쁨을 가져 올 것이며,

그래서 이사야서의 전반부에서부터 큰 기쁨과 즐거움이 나옵니다. *책망만 아니라요.

 

 

 

계속하여 <후반부 40~66장>를 보겠는데요,               

 

여기 후반부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아주 훌륭한 하나님에 대한 묘사입니다.

제가 후반부의 하나님에 대한 묘사 몇 개를 써 보았습니다.

 

1. 첫째,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신은 세상에 없습니다.

이 점이 이사야서의 후반부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 같은 신이 없고, 내가 존재하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라

이 점이 아주 중요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신은 없습니다.

 

사실상 이사야가 다른 신들을 비웃었어요.

그는 말하기를 그들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한다고 하였어요.

 

제가 태국에서, 천 개의 불상이 있는 절을 방문해 보았을 때, 바로 이 구절이 생각났어요.

그 불상들은 발은 있지만 다니지 못하는구나.’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나 말고, 다른 신들을 숭상하는 구나

 

이 말씀은 당연히 오늘 날 많은 세상 사람들의 미움을 사지요.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은 모든 종교를 받아들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2. 둘째,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열방은 마치 물통 안의 물 한 방울과 같고, 저울 위의 한 알의 먼지와 같습니다.

그가 별들에게 이름을 지으셨어요.’

 

인간은 별들의 이름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별들에게 이름을 지은 후로, 많은 문제를 가져왔어요.

 

저는 제가 무슨 별자리 출생인지 몰라요.

저는 저 자신의 생일이 어느 날인지 말하고 싶지도 않아요.

저는 제가 어느 별자리에 속했는지를 알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걸 아예 모르는게 더 좋아요.

 

그러나 사람들이 별들에게 이름을 지은 후부터, 각종 문제를 가져오게 되었어요.

남자 10명 중 6, 여자 10명 중 7명이 매일 점성술 운세를 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모든 별들의 이름을 지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동물에게 이름을 지으면 되고, 뭐든지 우리 권세 아래 있는 것들에게 이름을 지으면 됩니다.

 

하지만 사람이 별들에게 이름을 짓는 것은, 본분을 뛰어 넘은 것이고,

자신을 점성술사로 만드는 것이지요. 이런 모든 내용들이 후반부(40~66장)에 나오지요.

 

3.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이사야서 후반부에 이사야가 계속해서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부르기를 좋아했습니다.

 

4. 또한 하나님을 ‘(친척 중) 기업 무를 자라고 불렀습니다. *kinsman redeemer

우리는 <룻기>에서 기업 무를 자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어요.

 

5. 또한 <만민의 구세주>라 불리웠어요.

 

6. 그리고 그는 <역사의 하나님>이십니다.

헬라어 타 에쓰네이라는 단어에서 오늘의 “ethnic groups”이라는 단어가 파생 되었죠. *민족 동질집단

 

이 단어는, 정치적 나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동질 집단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서 모든 족속 ethnic groups 을 제자로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국가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후반부에서 하나님에 대해많은 것들을 예언했습니다.

하지만 후반부부분에서 또한 다른 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리고 한 연속적인 시적인 노래 속에 나타납니다. *종의 노래

 

그는 바로 여호와의 종입니다.

오늘 날까지도 유대인들은 이 사람이 누구인지 여전히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신비로운 인물이 후반부에서만 나타나는데,

보라 내 종이...”

이 여호와의 종이, 어떤 때는, 온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분명히 한 사람(예수님)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복잡한데, ‘이란 호칭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붙이기 때문입니다.

웃시야 왕도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리웠고,

히스기야도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리웠고,

요시야, 예레미야, 에스겔 모두가 '하나님의 종'이라 불리웠어요.

 

하지만 이 종은 조금 다른데, 4가지 다른 점이 있어요.

 

1) 첫째, 그의 성품에 아무 흠이 없어요. 이 종은 아주 완벽합니다.

그는 잘못을 하지 않았고, 죄를 짓지도 않았어요. 다른 들은 이 점을 갖추지 못하였지요.

 

2) 둘째, 그는 참으로 행복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는 슬픔의 사람이며 질고를 아는 자입니다. 보통은 즐거움이 없었습니다.

 

3) 셋째, 그는 사형에 처해졌고, 마치 죄인처럼 처형당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가 죄인 중 하나로 여김을 받았지만, 본래 죄가 없고,

그는 자신의 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해 죽임을 당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무고를 당하였으며, 그리고 부자와 함께 매장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종은,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고 난 후,

죽음에서 부활하였고, 그리고 또한 제일 높은 자리에 올려 졌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이 사람은, 조금도 신비하지 않지요.

하지만 유대인들은 그가 누구신지 모르는 미스터리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후반부의 여호와의 ,

전반부(1~39장)의 약속된 왕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유대인들의 각도에서 그들은 왜 모르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 이사야 자신도 전반부의 왕과 후반부의 종을 명확히 연결시키지 못했습니다.

 

아마 이사야도, 자기가 후반부에서 예언한 그 종이

사실은 그가 전반부에서 예언한 그 똑같은 종이란 점을,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사야서의 <전반부><후반부>의 연결성               10:01~

 

이사야서의 <전반부><후반부>를 처음으로 연결 지은 유대인은 바로 예수님이시고,

바로 그분이 세례 받을 때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

   *‘사랑하는 아들이란.. 이사야서 전반부의 주제이고,

    ‘기뻐하는 자.. 이사야서 후반부의 주제이지요. *내 기뻐하는 종을 보라.

 

그래서 사실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 왕과 이 종은 한 사람이라고 연결지으셨고,

바로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예수님은 이 두 개의 신분이 둘 다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유대인들은, 이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과연 누가 그 종인가?’를 계속 토론하고 있습니다.

 

아주 신기한 것은, 이스라엘 나라가 정치적으로 회복되었던 바로 그 해에,

사해사본과, 그 속에 완벽한 <이사야서 사본>을 발견하였어요.

 

지금 그것은 가장 놀라운 박물관인, 이스라엘 국회 빌딩의 부근의 도서 보관소에 보관중입니다.

만약 당신이 거기를 가시면, 진열해 놓은 <이사야서>를 관람할 수 있어요.

 

수난을 받는 종, 바로 현대 이스라엘 중심 지대에 진열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종이 누구인지 여전히 모르고 있는데, 참으로 슬프지요.

 

예수님만 둘의 연관성을 지적한 것이 아니고, 베드로도 설명했어요.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설교할 때, 재차 반복해서 의 연결성을 설명했지요.

 

그래서 초기에 많은 제사장들이 크리스천이 되었는데,

이는 그들이 <이사야>를 이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사장이라서 이사야서를 잘 알고 있었지요.

 

빌립도 이 은 한 사람이라고 지적하였어요.

빌립이 수레를 타고 가는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났던 것을 기억합니까?

 

그 내시가 유대인의 하나님께 관심이 있었고,

당시 그가 수레에서 마침 이사야 53장을 읽고 있었어요.

 

그는 빌립에게 '그 구절은 누구를 가리키느냐?'고 물었어요.

그가 전에 예루살렘의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는데 아는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그 내시는 빌립에게 '그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아느냐?'고 물었어요.

 

빌립이 말하기를 , 제가 압니다. 그 예언된 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이로써 빌립은 바로 그 구절로부터 예수님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고,

그가 듣고 나서 곧 바로 세례를 받았는데, 그는 첫 번째로 예수님을 믿은 아프리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가지고 에티오피아로 돌아갔고,

그는 당시 에티오피아 여왕의 재무 장관이었습니다.

 

바울도 은 한 사람이라고 지적하였어요.

특히 빌립보서에서 이 왕이, 하나님과 동등된 권리가 자기에게 있다고 고집하지 않았고,

그가 종의 모양을 취하였다고 하였습니다. 2:6

 

우리는 운이 좋게 이 위대한 비밀을 알게 되었는데, 유대인들은 아쉽게도 모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왕이 그처럼 고통을 당하고,

일반 죄인처럼 죽임을 당하는 것을, 도저히 상상하지도 못하지요.

 

이것이야말로 유대인들에게 참으로 장애물입니다.

십자가는 유대인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런 왕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왕은, ‘그 어깨에 정사(정권)를 맨 왕'과 같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왕이 강림하시기를 기대합니다.

오셔서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능력 있는 왕이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문제를 아셨지요?

 

이사야서 후반부에 또 하나의 뛰어난 역할이 있는데 바로 <성령님>입니다.

아주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성령을 슬프게 한다는 구절이, 바로 <이사야 후반부>에서 온 것입니다. 63:10

성령은 후반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끊임없이 나타나시고,

그분이 이 종의 사역에 기름을 부으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여기 몇 구절에서 아주 돋보입니다.

 

내가 나의 영을 너의 후손들에게 부으리라 이것은 이사야서 후반부에서 온 것입니다.

 

너희의 반역이 성령을 슬프게 하느니라” 63:10

 

하지만 여러분들이 제일 좋아하는 성령에 관한 말씀은

성령을 부어 주리니입니다. “부어 주리니, 부어 주리니” 44:3

 

성령이 부어진다는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압니다.

바로 오순절입니다.

 

   이렇게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이사야서 후반부에 명확히 나타나 있지요.

   이것은 이사야 6장에서의 우리가 누구인지를 해석해 줍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서 갈꼬?”

   구약성경의 삼위일체가 바로 여기에 나오지요.

 

   아주 분명하진 않지만, 마음과 눈이 밝은 사람은 바로 삼위일체를 볼 수 있지요.

   -우주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고통을 받는 그의 종,

   -성령님.

   삼위일체 하나님이 이사야 후반부에서 명확히 나타나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예언에 대해 해석할게요.      14:24~

 

여러분, 이 그림은 조금 복잡하게 보이는데, 여기에 그린 이것은 사람의 눈이고,

여기 이것은 긴 망원경인데, 제가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서 미안해요.

다니엘서 강의에 가면, 그림이 더욱 엉망입니다. 이것은 눈이 망원경을 통해서 본 광경입니다.

 

여러분, 선지서가 성경의 삼분의 일을 차지했어요. <이사야>에서 <말라기>까지 총 16권인데,

분량이 큰 것을 앞에 놓았고, 이를 대선지서라고 하는데, 이는 내용이 많기 때문입니다. *Major Prophets

그 다음에 짧은 책들은 소선지서인데, 이 책들은 비교적 짧아서 읽기가 쉽습니다. *Minor Prophets

 

하지만 모든 선지자들은 당시의 시대를 초월하여 미래를 보았어요.

그들은 두 가지 도구를 사용하였는데, 하나는 현미경으로 현재를보았고,

다른 하나는 망원경으로 미래를본 것입니다.

 

그들은 현미경으로, 자기 나라 이스라엘의 진정한 현실 상황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현미경으로 자기 나라를 점검하였어요.

 

다음으로 그들은 망원경으로 미래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약간 여러분의 이해가 필요한데요,

 

만약 당신이 망원경으로 겹쳐진 두 산봉우리를 보면, 겹쳐진 두 산 사이의 간격이 안 보이지요. *아래 그림 참조

만약 황혼 때 역광으로 보시면, 그것이 그냥 두 봉우리가 붙어있는 한 개의 산으로 보이지요. *실제 간격이 멉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시죠?

 

예언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이, 한 산에 두 봉우리가 겹쳐 있는 줄 알았는데,

하지만 사실상 그 두 산은, 간격이 멀리 떨어져 있는 두 개의 산입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서 후반부에서, 그가 망원경으로 보았는데,

사실상 두 산봉우리를 본 것이지요. 그는 두 봉우리가 붙은 한 산을 본 줄로 생각하였어요.

 

그는 이 두 산봉우리 사이에, 사실 많은 시간과 공간의 간격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가 예언한 두 사건(초림, 재림) 사이에, 아주 긴 시간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두 산봉우리 사이에 살고 있어요.

한 봉우리는 과거이고, 또 한 봉우리는 미래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어떤 일은, 당시 선지자들은 몰랐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계속하여 왕이 오시기를 기대했지만,

우리는 그 왕이 두 번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서의 제일 큰 비밀이고, 예수님이 이미 우리에게 계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왕의 강림은, 두 가지 사건으로 예언되어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초림과 재림으로 알고 있지만, 당시는 몰랐지요. 하나로만 알았습니다.

 

이사야가 왕이 강림하신다는 예언을 했고, 이중 성취가 있습니다.

즉 첫 번째와 두 번째 강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더욱 복잡한 일은,

바로 이사야의 비전(예언)에서, 성취 순서가 사실은 뒤바뀌어졌어요.

 

후반부의 수난 받는 종이 먼저 성취되고,

그리고 전반부의 다스리는 왕이 나중에 성취된 것입니다.

*이사야서 전반부의 예언이, 역사에 나중에 일어나고, 후반부의 예언이 역사에 먼저 일어났지요.

그래서 더욱 복잡하고 이해가 어려운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여러분, 여러분들이 유대인의 시각에서 보십시오. 그들은 <이사야서>를 아주 잘 이해합니다.

그래서 계속하여 전반부의 왕이 강림하시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 왕은 아직도 오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메시야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스리는 왕이 먼저 오기를 기대하지만,

성령은 수난 받는 종이 먼저 오셨다고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후에 그가 다시 왕으로 오셔서 세계를 다스리신다고 합니다.

이렇게 (예언과 성취의) 순서가 뒤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구약의 선지서를 읽을 때, 두 가지가 아주 복잡한데,

하나는, 그들이 왕의 강림을, 두 봉우리를 가진 한 산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두 산봉우리의 간격 사이에, 아주 긴 시간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두 번째는, 그들은 이사야서의 예언이 순서대로, 발생하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사실, 하나님은 반대 순서로 발생하게 하셨어요.

 

예수님이 반드시 종으로 먼저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임을 당하시고,

그러고 나서 왕으로 오셔서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초림과 재림의 두 번의 강림 사이에는 많은 사건들이 발생하며,

다스리시는 왕을 맞이하기 위해, 그 사이에 우리가 준비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이 두 전환점을, 우리 모두는 확실히 이해해야 하는데,

이는 우리는 처음부터 그리스도를 알고 믿음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알기가 매우 힘들었지요. 이것이 이사야가 예언한 큰 비밀이었습니다.

수난 받는 종통치하시는 왕은 한 분이지만,

그는 반드시 먼저 종의 신분으로 오시고, 그리고 다시 왕의 신분으로 오십니다.

 

원인은 아주 간단한데, 왜냐면 유대인이 유대인 자신들의 구원의 제일 큰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구원을, 이스라엘 주변 대적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의 구원은, 내적인 적(자기 자신들, 그들의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고통의 문제를,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탓하기를 아주 쉽게 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의 진정한 문제는, 그들 자신들의 죄였습니다.

 

이 사실이, 복음서에 전부 다 설명되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외치기를 주의 길을 예비하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잘 준비하여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자신을 깨끗이 씻으라.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으라.”

 

그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세례요한의 말은

너희들은 왕을 영접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아니다.

너희는 죄악된 백성들이다. 너희는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깨끗하지 못하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도 똑같이 말씀하셨죠. “회개하고 믿으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제가 종려 주일을 자세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종려 주일에 나귀를 타고 성으로 들어 가셨고,

마침내 백성들은, 정말 기대했던 일을, 예수님이 하시려는 것 같았어요.

 

그는 왕의 신분으로 성으로 들어갔고, *나귀 타심

이로써 대중들은 크게 흥분되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예수님이 정말로 왕이 된 줄로 생각하였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외치기를 호산나 호산나 호산나!”

이 말은 하늘의 인사말이 아닙니다.

 

오늘날 성가대가 찬양을 할 때, '호산나 찬양하라'고 하니가, 그 말을 좋은 뜻으로 여기는데,

사실 호산나의 뜻은 지금 우리를 자유케 하소서. 지금 우리를 로마에서 자유케 하옵소서라는 뜻입니다.

*Save us! 그들이 외친 구원, 정치적 구원, 즉 정치적 자유를 뜻했죠.

 

예수님이 나귀에 앉아 성으로 들어가셨어요.

사람들은 그가 겸손하게 나귀를 타고 오실 줄은, 알아채지 못하였어요.

 

그가 두 번째 오실 때는 말을 타고 오실 것입니다. 아주 다르지요.

 

하지만 그가 이번에는 나귀를 타고, 성으로 들어 가셨고,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전쟁하러 갈 때는 말을 타고 갑니다.

예수님이 두 번째 오실 때는, 오셔서 싸우실 것입니다. 그는 백마를 탄 전사로 오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귀를 타고 오셨는데, 그들은 나귀를 타고 오신 점에 주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옷을 벗어 땅에 펴고,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흔들며

끊임없이 외치기를 다윗의 자손이여 다윗의 자손이여

 

그들은 그가 <이사야서의 전반부>의 예언을 정말로 성취하시는 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성안으로 들어오신 후, 오른쪽이 아니고 왼쪽 길로 가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일제히 조용해졌지요.

그때 어떤 사람이 손에 채찍을 들고 있었는데, 예수님은 그 채찍을 달라고 하였어요.

 

사람들은 그가 그들을 대신하여 복수해 주는 줄로 알았어요.

하지만 아니었지요. 예수님은 오른쪽이 아니고, 왼쪽 길로 도셨습니다.

 

여러분이 예루살렘으로 가 보셔야, 이 상황을 실감나게 알 수 있습니다.

성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은 로마의 안토니우스 진지인데, 로마 군대들이 바로 거기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왼쪽으로 도셔서, 성전으로 들어가서, 채찍으로 유대인들을 때리셨습니다.

이제 당신은, 며칠 후 동일한 군중들이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왜 그들은, 예수님 대신에 바라바를 선택하였는지도 알 것입니다.

바라바는 무장 반란자인데, 그 이름은 예수 바라바이며, 그 뜻은 구원자,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그는 무장 반란을 일으키는 자였는데,

유대인들이 원하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바로 로마에 대항해서 싸움을 할 사람,

그들은, 채찍으로 유대인을 성전에서 쫓아내는 사람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위기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셨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오셔서 왕이 되어 주리라고 생각했지만, *이사야 전반부의 왕

그분이 오셔서 하신 일이란, 성전을 청소한 일 뿐이어서

정말로 사람들이 실망하였지요.

 

빌라도가 곧 처형할 사람의 머리 위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판에 썼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걸 믿지 않았고, 온 나라에서 오직  한 사람만 믿었는데, 바로 그 옆의 강도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주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하였어요.

그가 이 고난을 받고 죽어가는 분에게서 곧 오실 왕을 본 것이었습니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조합 

 

오직 그만 보았어요. 이 죽어가는 강도가, 역사에 기록되는 한 공을 세우고 죽었는데,

이는 그 사람만 (수난의 종이신 분이 왕이 되심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사야는 두 면을 모두 보았지만, 자기가 본 것의 뜻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두 면을 조합하지는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두 면을 모두 알고 있지요.

우리는 예수님이 어느 날엔가 말을 타고 오셔서, 온 세상의 왕이 되시고 다스릴 것이며,

그가 영국의 왕이 되시고, 미국, 중국, 러시아의 왕이 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셔서 다스릴 것이고, 이 세계의 모든 나라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로 변하면,

우리는 할렐루야라고 말할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큰 좋은 소식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반드시 먼저 한번 오셔야 했는데,

이는 아직 아무도 그의 통치아래 살 수 있는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에게 왕벽한 왕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만약 좋은 백성이 없다면, 좋은 나라를 건립할 수 없겠지요.

유대인들은 교만한 생각으로, 자신들의 왕이 강림하시면, 자기들은 영접할 준비가 이미 되어 있고,

그래서 왕이 오셔서 자기들을 구원하시고왕이 되어 주시기를 기대했지요.

 

그때 세례 요한은 말하기를 너희들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 너희들은 먼저 정결케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들은, 지금 사람들을 도와서, 왕의 강림과 왕의 통치를 준비시키는 일을 하고 있어요.

   지금 우리는, 모든 나라의 왕의 백성들을 준비시키고 있어요. 그러면 주님께서 곧 오실 것입니다.

 

   복음이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면, 그제야 세상 끝이 올 것인데,

   하나님이 모든 민족이 빠짐 없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서 후반부에서 묘사한 미래 결말이, 이스라엘과 만민이 결합되었고,

마지막 장에서 '예루살렘의 미래' 와 '만민의 미래'를, 의도적으로 번갈아 가면서 얘기(예언)했어요.

예루살렘-만민, 예루살렘-만민, 이런 식으로 되어 있지요

  

이사야 2:2절에 아주 멋진 한 구절이 있는데, 거기에 말세를 얘기했고,

말일에 하나님의 집이 (시온)산 위에 세워지고, 만민 모두가 이 산에 모일 것이 예언되어 있지요.

사2:2.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제가 뉴욕의 UN 본부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거기서 두 가지를 보고 싶었는데, 첫째는 건물 밖에 있는 화강암석이며,

그 위에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라는 구절이 새겨져 있어요.

이사야 2:4절인데, 저는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성경 구절을 새긴 것은 좋지만, 한 절을 끝까지 다 새겼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했어요.

 

그가 열방 사이에 (공의로) 판단하시며..” 라는 부분을 빠뜨렸지요.

 

예수님이 다스리실 때, 반드시 공의가 시행될 것이며,

만약 공의가 없다면, 세상에는 평화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스리셔야, 판단하셔야..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드는 평화가 옵니다.

 

그제야 군대들을 모두 상호 무장해제 할 것이고,

모든 나라들은, 예수님이야말로 국가간 분쟁의 참 중재자이심을 인정할 것입니다.

 

장래 어느 날엔가 유고슬라비아의 분쟁 모두가 예수님에게 맡겨져

예수님이 결정하실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1993년 당시 유고 내전이 이슈

 

미국이나 영국에게 맡겨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 맡겨 예수님이 해결하실 것입니다.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같은 그런 끝없는 분쟁을, 예수님이 어떻게 해결하실까요? *정의와 사랑으로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만 그러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데, 장래 어느 날엔가 그분이 반드시 해결하실 것입니다.

 

제가 UN본부 안전보장이사회 룸과, 총회장을 참관하는 투어가 끝난 후에

여성 가이드가 이제 투어가 다 끝났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그때 제가 하지만 방 하나를 보여주지 않았는데요.”

그가 어느 방 말입니까?’

그래서 제가 여차 여차 설명하였어요.

 

그는 미안하지만, 그 방은 대중에게 개방된 방이 아닙니다.’라고 하였어요.

 

제가 하지만 저는 먼 곳에서 왔는데, 바로 그 방을 보려고 왔어요.

저는 정말로 그 방을 꼭 보고 싶다고 하였어요.

 

그는 아주 미안한데 당신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제가 불쌍한 척 하면서 허리를 낮추어, 저는 정말로 거기를 꼭 보고 싶다고 하면서 부탁했어요.

그러자 가이드는 당신이 입구 안내 데스크에 가셔서 경비원에게 물어보십시오.

혹시 그들이 혹시 당신에게 들어가게 하실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제가 입구에 가서 총을 메고 있는 경비원에게 물어 보았어요.

제가 저 방을 꼭 보고 싶습니다.”

 

그들은, 그 방은 외부인에게 개방된 방이 아니라고 하였어요.

저는 정말로 아주 많이 보고 싶어요. 저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었는데,

믿어지지 않아서, 제 눈으로 직접 꼭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한 명의 경비원의 마음이 누그러졌어요.

그에게 열쇠가 있었고, 말하기를 당신이 안에서 얼마나 머물 것입니까?”

제가 “2분이면 충분합니다라고 하였어요.

 

좋아요. 2분만 보여 드릴게요.”

 

그래서 우리는 안내 데스크를 가로 질러서 갔고,

그가 문을 열어 주어서, 그 방 안으로 들어갔는데,

지금 여기 예배실 방보다 더 작아요. 부채 모양인데 창문이 없었어요.

 

하지만 천장 가에 숨겨진 전등이 있고, 매우 우울한 느낌이 들었으며,

그 방 중앙에 “UN 연합의 신이 놓여져 있습니다. *“the god of the United Nations.”

 

제가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지만, 진짜라고 믿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보니까 진짜였어요.

은 하나의 큰 무쇠로 만든 것인데, 크기와 형태가 장례식의 관 같았고,

전체를 검은색으로 칠했고, 그 주위에는 기도의자와 기도방석이 놓여져 있는데,

이는 무릎을 꿇어서 그 무쇠 에게 기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정말로 믿을 수가 없었어요.

만약 당신이 <2001>이라는 영화를 보셨다면,

거기에서 그 무쇠가 별들 사이에서 떠다니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바로 그 모습과 똑 같은 것입니다.

 

그 무쇠 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아십니까?

당시 UN연합 빌딩을 다 지었을 때, 한차례의 아주 격렬한 논쟁이 발생하였다고 해요.

 

사무총장이 '기도실이 없으니, 기도실을 만들자'고 했어요.

그러자 그들은, 억지로 부채형 같은 작은 방 한 개를 배정해서

그 방을 기도실로 만들었다고 해요.

 

그때 또 논쟁이 발생했는데, 그럼 그 기도실 안에는 응당 무엇을 넣어야 하는지 공박하였어요.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를 넣어야 한다고 하였지만,

또한 많은 사람들은 그건 안 된다고 반대하였어요.

 

어떤 사람은 꽃을 놓자고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꽃을 반대하였다고 해요.

마지막에 어떤 사람이 이 방법을 생각해 내었어요.

 

그들은 이 큰 무쇠에 검은 색을 칠하였고,

그것을 자기가 생각하는 무슨 신이라고 여겨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UN사람들이, 이 무쇠 앞에 무릎을 꿇고,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원할 경우

 

저는 그 말이 정말로 진짜인지를 믿을 수가 없었지만, 제가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 무쇠한테 기도하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농기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여러분, 그 건물은 처음부터 장소를 잘못 정해서 지었어요.

이 세계 평화는 주님이 시온에서 왕이 될 때 발생할 것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각 나라간의 분쟁을 해결하시면,

그제야 각 나라의 군대들이 상호 해산 될 것입니다.

총과 탱크에 쏟아 붓던 돈으로, 음식과 옷 등의 민생 용품을 살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비전을 갖고 계십니까?

 

이것이 이사야가 예언한 궁극적 미래입니다.

그는 한 연합된 나라를 예언했고, 그것은 예루살렘이 중심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믿는지/ 믿지 않는지 모르겠는데,

이것은 저의 미래에 대한 간절한 소망입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되리라고 예언했고, 저는 이 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수난 받는 종의 단계는 이미 이루어졌고,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통치하는 왕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이는 미래에 발생할 일입니다.

 

하지만 그 중의 하나의 예언이 이미 응하였으니, 남은 예언 하나도 반드시 응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이사야의 예언이고, 세계의 미래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소망입니다. 이사야서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왜 <이사야서>를 읽고 연구해야 할까요? 6가지 이유를 말씀드릴게요.   

 

1. 첫째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사야서>를 읽고 연구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줍니다.

하지만 <이사야>에서의 제일 중요한 단어는 구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사야이름의 뜻입니다. ‘이사-야후인데,

하나님은 구원이시라는 뜻이며, 그의 이름이 ‘Mr. 하나님의 구원이 되는 거죠.

구원에 대해 아는 것이 바로 첫 번째 이유이고요.

 

2. 두 번째 이유는, 이 책이 우리에게 전체 성경의 개요를 상세히 소개해 줍니다.

이사야서에 구약과 신약도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놀랍게도 성령의 감동에 의해, 이사야서는 신구약 성경의 모든 주제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주제가 여기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성경의 압축판 같습니다.

만약 당신이 성경이 너무 두꺼워서 다 읽기 힘들다고 생각하면, 이사야서부터 읽으십시오.

 

이 책이 당신에게 성경의 모든 주제를 소개할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주제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정말 놀랍지요.

 

3. 세 번째는, 이 책이 우리에게 특별히 예언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이사야서는 3개의 대선지서 중의 한 책입니다.

성경의 선지서 장르 중에서 제일 첫 번째 순서로 나오는데요.

 

성경은, 전체 중에 삼분의 일이 예언입니다.

저는 예언, ‘항의예측의 조합으로 봅니다. *protest + prediction.

 

현실의 상황에 대해 항의하고, 미래의 상황을 예측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선지자들은, 이 두 방면을 계속하여 지적하였어요.

 

그들의 예언자들은, 항의자들일 뿐 아니라 예측가이기도 하며,

또한 예측가일 뿐 아니라 항의자들이기도 합니다.

예언은, 이 둘의 조합입니다.

 

4. 넷째는, 이사야서는, 신구약 사이의 연관성을 이해하는데 도와줍니다.

구약으로 신약을 해석하며, 신약으로 구약을 해석하는데 도와줍니다.

 

이사야서를 이해하면, 우리가 신약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에게 신약 성경의 문을 열어 줄 것입니다.

 

신구약의 두 언약 사이에,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기묘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예수님과 바울이 가장 자주 인용하였던 책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5. 다섯째, 이사야서는 우리더러 예수님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어요.

 

거기서 '성경'은 구약성경을 가리키고,

이사야서가 구약 중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이해하는데 제일 큰 도움을 주는 책입니다.

 

이사야 53장만 읽으면, 바로 십자가 아래에 올 수 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여러분, 여기에 앉으신 분 중의 한 사람이

주일 날 예배 때, 교회 마당에서 기도 받고서 치료를 받은 것을, 제 눈으로 보았어요.

 

그러니 보십시오. 치유는 십자가에서 옵니다. 사죄도 마찬가지이지요.

이 모든 것이 이사야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6. 여섯째는 하나님에 대해 더욱 넓은 이해가 있게 됩니다.

너희와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은 너희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넓히라는 뜻이고,

하나님에 대한 너희 시야가 더욱 넓어져라는 뜻입니다.

 

이사야서의 후반부가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것 한 가지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더욱 광대하게해 주는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시고, 온 땅의 창조주이신데,

너희들은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아주 크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크게 보려면, 확대경을 가져 와서 보십시오.

그가 얼마나 위대하시고, 얼마나 전능하신지 보십시오.

 

만민은 물통의 한 방울 물과 같아요. 그분 앞에 다른 신은 없지요.’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여러분들이 제게 부러졌던 갈비뼈가 어떠한지?’ 물어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제가 아픈 것을 잊습니다.

하지만 가르치지 않으면, 그 때는 통증을 느껴요.

 

당신이 하나님을 얘기하고, 하나님에 대해 더욱 광대한 이해가 있을 때

다른 일들은 모두 중요하지 않고, 아랑곳 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이사야>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강의 하겠습니다. 제가 조금 일찍 끝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해도, 여러분들이 이 놀라운 선지서를 읽는데, 충분한 기초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성경 전체를 압축하여 한 책 안에 넣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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