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산에 가서 변화되어야 합니다 눅9:28~35, 벧후1:1~29 편집자 글
(기도하시다가 변화되셨습니다)
눅9: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1. 기도하면 변화됩니다.
변화산 사건은 마17장과 막9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엔 ‘기도하러 올라가셨다’는 내용이 안 나옵니다.
하지만 본문 눅9:28~29절엔, 변화산에 올라가신 목적이
산에 올라갔더니 저절로 ‘변화되었더라’가 아니라,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셨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다볼 산이라고 합니다.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29
성도의 기도의 중요한 결과, 또는 현상은.. 변화되는 것입니다.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난 것도, 옷이 변화되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그 옷 속의 용모가 변화되니까, 그게 투사가 된 것일 것입니다.
어쨌거나 1대지는, ‘성도가 기도하면 성품이 변화된다’입니다.
기도의 목적은, 뭘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요,
자기의 새해 소원을 이루어달라고 떼쓰는 것도, 주된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대면하고, 하나님과 진솔하게 만나다 보면.. 자기 성품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변화산이, 그러니까, 내 기도의 골방이, 내 기도의 처소가
바로 ‘나의 변화산’이 되는 셈이지요.
▲성도가 기도하고 나서, 가장 당황스러운 때는
기도를 30분이나 했는데, 어떤 때는 1시간이나 했는데,
기도하고 나서, 자기 마음이 맹숭맹숭 한 것입니다.
기도하고 나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뭔가 성령의 충만이 느껴진다던지,
‘내 기도가 응답 되었다’는 마음에 확신이 들던지 해야 되는데..
어째서인지, 기도하고 난 이후나, 기도하기 전이나
내 마음 상태가 똑같은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늘 기도할 때마다, 성령충만으로 마치면 좋으련만,
늘 그렇게 안 된다 하더라도,
몇 번에 한 번은, 적어도 기도한 후에,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기운을 느껴야지요.
우리가 기도생활을 얼마정도 지속적으로 하다가, 곧잘 중단하는 이유도,
기도한 이후에, 맹숭맹숭 되는 느낌이 계속되면.. 저절로 기도생활을 포기하게 되지요.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을 통해서, 내 기도의 방향성을 다시 점검하고자 합니다.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29
이 사건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사도 베드로는,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우리는 그 분의 위엄있는 모습을, 우리 눈으로 직접 보았다’고 증언했습니다. 벧후1:16
내 기도의 방향성, 내 기도의 목적을 다시 재점검하고자 합니다.
-내 기도시간을 통해, 내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원 성취 위주의 기도로는, 이런 일이 안 일어나겠죠. 특히 새해에!)
-그래서 기도하고 나면, 용모가 변화되고, 광채가 나고
사람들이 볼 때, ‘위엄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운이 감도는 사람이 되는 거죠.
매번 그렇게 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이렇게 되어야죠.
만약 6개월이 지나도, 이런 ‘변화’가 없다면, 내 기도는 매너리즘에 빠진 겁니다.
◑2. 기도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정이,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반을 내내 지속 가능하게 했던 내적인 힘이요, 원동력이었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 각자도 마찬가지지요. 똑같이 하늘이 울리고, 구름사이에서 그런 음성이 들린다면
그걸 잊어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남은 생애 내내, 일평생 죽을 때까지, 그 음성을 기억하고,
자기 삶과 사역의 원동력을 삼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그런 초자연적인 음성을 들을 수도 있고,
또 성경말씀을 읽을 때도, 그런 강한 확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런 강한 확신의 음성/말씀을 들은 경우가 종종 나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출14:16
여호수아는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수1:2
다윗은 ‘너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네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겠다’
이사야는 사6장에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에스겔은 ‘이 두루마리를 먹으라’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또한 ‘이 배에 탄 사람이 다 구원을 얻으리라’
베드로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너희는 성전 기둥이라. 너희 앞에 열린 문을 두겠다'
그 외도 수두룩 합니다. 성경에요.
▲우리도 금년 한 해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확실한 한 마디만 듣는다면,
성경을 통해서 그 강한 확신을 받을 수 있으면.. 1년을 거뜬히 살아갈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겁날 게 없지만..
그게 강하게 확신이 되지 않을 때가 많은 것이.. 나의 현실입니다.
그런 일반적인 언약/약속/음성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 개인적으로 주시는 언약/약속/음성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걸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기도하시다가 들었다는 것입니다. *세례 받으실 때도 들으셨지만
우리도 기도에 깊어지면, 진정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면, 진정 임재를 체험하면
1) 우리의 인격만 변화될 뿐 아니라
2) 주님의 음성/뜻/말씀이.. 내게 확신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의 말씀’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한 해는 거뜬히 ‘먹고 살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3. 변화되면 자기 자신이 행복해 집니다.
▲먼저 ‘언어’를 예를 들어 생각해 봅니다.
벧전3: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사람이 변화되지 못하여 (기도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그 언어가 거칠고, 험악하면,
그 결과 제 1번 피해자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 거친 말을 내 뱉은 자기 자신이, 제일 먼저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물론 그 거친 말을 들은 상대방도, 불행해지겠지만요.
위 벧전3:10절 말씀에 의거하면 ‘좋은 날을 보지 못하게’ 되고,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로 변화되어, 이웃을 용서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 이웃을 위해서 라기 보다, 먼저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항상 분노와 복수심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결코 행복하게 살 수 없습니다.
물론 거액을 사기 당해 사글세를 전전하게 되었다든지,
엄청난 심적, 육체적 폭행을 당했다든지,
그래서 내 인생이 완전히 그 때문에 피폐 되었다 하더라도,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진짜 피폐된 가운데.. 자기 인생이 끝나게 됩니다.
언론에, ‘자기 배우자를 살해한 살인범을 누가 용서했다’는 기사가 가끔 나오는데요,
그 살인범을 위해서 용서하는 것은, 부차적입니다.
바로 자기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진정으로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면.. 자기 성품이 변화되고
성품이 변화되면.. 자기가 행복해집니다.
사실 내가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는 원인은,
내가 변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돈을 못 벌어서, 배우자를 잘못 만나서, 부모를 잘못 만나서.. 자식을 잘못 키워서..
여러 가지 원인을 대는 것도, 자기가 아직 변화되지 못한 증거이고,
자신이 아직 변화되지 못한 이유는,
변화산에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새해에는, 내가 정말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도
나는 변화되어야 하는데,
그 비결은.. 기도의 방향성을 잘 잡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노년의 베드로는, 흩어진 공동체에 회람으로 보내는 편지, 베드로후서에서
‘신의 성품에 참여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벧후1:4
이런 신앙의 원리를 모르는 사람은 ‘소경’이라고 불렀습니다. 벧후1:9
벧후1:14절에, 베드로 사도는 ‘내가 곧 떠날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면서,
15절.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내가 죽더라도, 너희가 꼭 기억하기 원하는 것은.. 하면서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기도하셔서 변화되신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벧후1:16~18
그 내용을 한 마디로 말하면, ‘기도해서 변화되라, 신의 성품에 참여하라’는 것이죠.
그게 베드로후서에서 밝힌, 베드로 사도의 죽기 전 유언이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새해에는 아무래도 좀 더 기도에 힘쓰게 되는 시즌입니다.
내 기도의 방향성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내가 정말 네게 제일 소중하니? 나를 구하라. 나를 알아가라.
나의 성품에 참여하라’고 요청하시는데,
나는 아직 ‘소경’이라서 벧후1:9
그것 말고, 뭔가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그게 있어야 행복할 것 같습니다.
◑4.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었다 (스크랩해서 추가 2019.03.23.)
변모하신 예수님께서는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변화를 이루시는 거룩한 영이 그들을 덮었습니다.
변화산에서 기도할 때, 이처럼 우리도 변화의 힘을 입게 됩니다.
이미 그 힘을 입었기에 우리는 변화될 것입니다.
마치 구름이 시내 산을 덮고서 모세를 영광된 모습으로 변화시켰듯이 말입니다.
“모세가 산에 오르자 구름이 산을 덮었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시내 산에 자리 잡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덮었습니다.”(출 24:15-16)
그렇게 구름이 그들을 덮었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마리아를 덮었을 때처럼, 우리를 덮었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눅1:35)
우리도 변화산에 올라가면, 하나님의 힘에 덮이게 됩니다.
빛나는 믿음의 구름에 덮인 제자들처럼 됩니다.
아버지의 그 크신 자비의 구름에 덮인 이들이 됩니다.
아버지께서는 단지 그 힘만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더하여 더 큰 선물을 선사하십니다.
이제 그 영광된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그것은 뒤덮은 구름 속에서 울려오는 음성이었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막9:7)
이는 단지 아들의 신원을 밝혀주신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변화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곧 그분 앞에서 “그분의 말씀을 들어라”는 말씀입니다.
........................
▲예화 / 한 수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큰 뜻을 품고 인간 세상을 떠나 깊은 산의 인적이 끊어진 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변화됨을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을 거듭했습니다.
약간의 결과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20년을 기도와 수도에 정진했지만
스스로 생각할 때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20년 이상 노력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비참했던 나머지,
허송세월했던 지난날이 너무나 아까웠던 나머지 수도자는 이렇게 외칩니다.
“아깝고도 아깝도다. 금쪽같은 20년 세월 동안 헛고생만 했구나.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하랴? 허망하게도 20년 세월이 물거품이 된 이 마당에
더 이상 무엇을 망설일 것인가? 깨끗이 접고 세상으로 돌아가자.”
그는 실망하고 상심했던 나머지 수심으로 가득 긷든 얼굴로
막 길을 떠나려 할 때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대가 몸부림치던 그 세월이 바로 그대의 영광이 되었다.
그대가 계속 붙들고 있었던 변화에로의 갈망이 그대를 살렸구나.
이제 그대는 그대가 고민했던 그 세월, 그대가 힘겨워했던 그 세월로 인해 행복해지리라.
그대가 지녀왔던 갈등과 상처 때문에 이제 그대는 자유로워지리라.
그대가 안고 왔던 고민 때문에 결국 그대는 변화에 도달하리라.”
비록 오늘 우리 삶이 너무나 하찮아보일지라도
‘변화에로의 가능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변화는 우리의 마음처럼 그렇게 빨리 다가오지 않습니다.
회개 역시 전광석화처럼, 번개처럼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랑비처럼 다가오는 것이 변화요 회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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