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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LNCK 2016. 1. 13. 14:37

◈너는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딤후3:12-17           16.01.10설교스크랩

    

 

 

 

여러분 우리나라는 현재 여러 가지 면으로 한계에 도달해 있습니다.

-성장의 한계, 경제의 한계,

-그리고 비전의 결핍, 지도자의 결핍이에요.

 

매일 저녁 TV뉴스를 장식하는 정치인들의 얼굴은, 그 밥의 그 나물이에요.

거기에서 어떤 새로운 인재나 리더십을 우리가 볼 수 없습니다.

정말로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그건 우리나라뿐만이 아니고, 전 세계적인 문제가 아닙니까?’

라고 묻는 분들이 계실 것인데.

맞아요. 어느 나라도 그 문제에 돌파구를 발견한 나라가 보이지 않습니다.

 

미국의 대통령 후보로 트럼프가 선두주자가 됐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미국 같은 나라도 인재가 없다는 얘기에요.

 

사우디아라비아가 재정 적자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파면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부자가 영원히 부자로 남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얘기에요.

 

영국 해군이 과거에 쓰던 함정을 외국에 팔기 시작했다는 사실.

그 말은 대영제국의 영화는 끝났고,

영국도 살아남기 위하여 아등바등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중국의 증시가 2016년 연초에 계속해서 폭락한다는 사실.

중국 경제도 막강한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그렇게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남을 부러워하지 말고 우리의 일을 찾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인도를 구해야 됩니다.

 

저는 1990년대에 한국교회에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꼭지점을 돈 것이지요.

 

1980년대만 하더라도 많은 외국의 목사들이

한국교회 성장의 비결을 배우기 위하여 한국을 찾아왔었습니다.

 

그래서 기도원에도 가보고, 구역예배도 참석해보고, 새벽기도회도 와보고,

한국교회에 성장의 비결이 어디 있는지를 알고자 했습니다.

어느 큰 교회 같은 데서는 교회 성장연구소를 만들기 까지 했어요.

 

그런데 1990년도가 되면서 양상이 뒤바뀌기 시작했는데,

외국의 목사들이 더 이상 대한민국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그 반대로 대한민국의 목사들이 외국에 가서

교회 성장비결을 배워오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미제는 뭐라도 좋다는 식으로 미국에 성장하는 교회들이 비결을 배워다가

그것을 베끼려고 하는 붐이 한 때 일기도 했었습니다.

 

그 당시 한국 목회자들의 시선을 끌었던 것 중에는

-"토론토 블레싱"이라는 것이 있었죠. ‘거룩한 웃음 현상’,

 

-그리고 윌로우크릭 교회의 열린 예배.

 

-그리고 새들백교회, 목적이 이끄는 삶.

 

많은 한국 교회들이 미국 교회 예배방식을 흉내 내고 도입하기 시작했어요.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왜 많은 한국 교회 예배 모양이, 찬양 집회 같기도 하고, 공연 같기도 하고,

왜 뒤죽박죽이 되었느냐?

그 이유는 여러 외국 교회방식을 베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베끼는 것은 논문뿐만이 아니고, 남의 신앙이든, 남의 목회방식을 베끼는 것은

거기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따를 수가 없습니다.

 

베끼기 시작했다는 말은, 내게 주신 은혜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렸다는 얘기에요.

내게 주신 은사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렸다는 얘기에요.

 

저는 한국교회가 성장 동력을 잃어버린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우리의 믿음에 선배들에게 받은 신앙의 유산을 업신여기고,

그 대신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이고, 남의 것을 베끼기 시작했다는 얘기에요.

 

여러분 1960년대, 70년대 한국교회가 눈부신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리만의 이유가 있었어요.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가졌던 비결이 있었어요.

 

그걸 우리가 알고, 귀중히 여기고, 그것을 물려받으려고 했었어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바깥(외국)에 시선을 빼앗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이에요. 정체성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에 대하여 뭔가 창피하게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처럼 뜨겁게 기도하던 사람들이 없었는데,

"한국 기독교인들이 열심히 기도하는 것은 기복적인 신앙 때문이다"라는 비판의 목소리에

기도의 뜨거움이 식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약속을 간절히 믿고, 믿음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던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그 믿음의 대상이 물량주의적이 것이 아니냐라는 비판에 기가 죽어서

그 믿음이 위축되기 시작했습니다.

 

또 성령의 뜨거운 능력, 성령의 뜨거운 은사를 소유했던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그것이 샤머니즘이 아니냐라는 비판에 기가 죽어서 그 뜨거움이 식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하고나니까 남은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에요. 뭐가 남았습니까?

남은 게 별로 없어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우리 자신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우리의 신앙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깐 남은 게 별로 없습니다.

 

외국 속담에 "아기 목욕을 시킨 후에 물 버릴 때 아기도 함께 버리지 말라"

우리는 과거에 바로 잡을 것이 있다면 바로 잡아야 되지만

그렇다고 유익한 믿음의 유산까지 버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대한민국 교회에 주신 유산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귀중히 여기고, 보존하여 이후에 세대들에게 가르치고 물려주는 역할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미래와 과거 사이에 다리가 있어야 됩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보존해야 될 유산이 무엇인가요?

 

1. 첫째는 <신실하고 뜨거운 기도>에요. 신실하고 뜨거운 기도.

여러분 "나는 평생 기도합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기도는 쉬지 않고 하는 것입니다. 한때 하는 게 아니에요.

 

많은 성도들이 수능 시험 때가 되면 새벽기도를 나오고,

누가 아프면 새벽기도를 나오다가

애들이 크고 나이가 들면, 그 기도의 열의를 잃어버리기 시작하는데,

여러분 기도는 쉬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말씀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셨어요,

성령이 우리에게 기도를 시키실 때가 있지만

우리 자신이 습관적으로 삶의 기도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기도에 힘을 써야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그리스도인들은 둘 다 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기도할 마음을 주신 그것도 경험하지 못하고,

그리고 기도가 삶의 한 부분이 되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도의 최우선순위를 두는 사람을 그렇게 볼 수가 없습니다.

"기도 이외에는 이 같은 유가 나가는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둘째로 보존해야 될 유산은 <믿음의 능력>이에요. 믿음의 능력.

저는 이 부분에 있어서 한국교회가 남들이 갖지 못한 은혜를 받았다고 봅니다.

 

한국의 경제가 부흥할 때와 교회가 부흥할 때가 일치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그게 우연한 일이 아니에요.

 

교회가 부흥할 때 경제가 함께 부흥했습니다.

그런데 교회 부흥이 멈추고 나니깐 경제도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나눠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경제가 다시 살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이 꿈과 비전과 믿음을 가져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의 유산을 살려야 됩니다.

 

3. 셋째로 우리가 보존해야 될 것은 <성령의 뜨거운 역사>입니다.

이 성령의 은사를 소유한 사람, 영적인 은사를 가진 사람을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유학을 갔다 오고, 신학 박사학위를 받고, 철학을 공부하고,

세상 돌아가는 문화를 이해하고, 세련되고, 말을 잘하고, 키가 크고, 잘생겼다고 하더라도

영적인 감각이 없고 성령의 능력을 소유하지 못했다면

그 어떤 것으로도 영적인 능력의 부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기름부음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갖고 있던, 갖고 있지 못하던 둘 중에 하나에요.

성령을 받았든, 받지 못했든 둘 중에 하나에요.

 

성령 받지 못한 사람의 설교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킬 수 없고,

성령의 은사를 받지 못한 찬양, 하나님에게 영광을 올릴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없는 사역, 사람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고 했어요.

 

저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교양도 있고, 또 인간을 이해하는 지혜도 있고,

이 모든 것을 갖추기 원하지만 무엇보다도

성령의 충만함, 성령의 기름부음을 알고 소요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어요.

 

성령을 받고나서 그리고 교양을 쌓든, 신학을 공부하든, 무엇을 얻든 할 수가 있는 것이지,

성령의 능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다른 어떤 것을 갖다 바치더라도

그것이 사람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찬양 사역을 하려는 사람 성령부터 받아야 됩니다.

사역을 하려는 사람 성령부터 받아야 됩니다.

전도하려는 사람 성령부터 받아야 됩니다.

자녀의 영혼을 구원하려는 부모는 본인 자신이 성령부터 받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기 때문이에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무엇을 받고?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이 임하셔야 권능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나는 성령의 열매가 있기 때문에, 성령의 은사가 필요 없다.’

성경에 그런 구절 없습니다. 그건 양자택일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열매가 있으면 은사가 없어도 되는게 아니에요.

은사가 있으면 열매가 없어도 되는게 아닌 것처럼, 많은 교회들이 잘 못 가르칩니다.

 

성령의 은사보다는 성령의 열매가 더 중요하다는 이,

그건 비교해서는 안 될 것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그건 마치 여자가 잘 믿으면 남자가 안 믿어도 된다이런 말과 같은 것입니다.

전혀 말이 안 되는 말이에요.

 

그러나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우리의 선조들의 믿음의 유산을 촌스럽게 생각하고,

창피하게 생각하고, 더 세련된 선진 문화를 도입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이 땅에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으셨던 그 비결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제가 왜 기타를 들고 성도들을 찾아가서 찾아가는 부흥회를 하려고 하느냐?

성도님들이 성령의 뜨거운 역사를 경험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외국 교회들이 성령운동을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에 성령운동이 뜨겁게 일어났었지만 그 흔적만 남은 데가 많아요. 흔적.

문화적인 유산만이 남은 데가 많습니다.

 

그래서 외국 교회를 가면 밴드가 찬양 인도를 하고

또 스크린에 가사를 다 비춰주고 성도들은 아주 익숙한 몸으로 손을 흔들고,

우리가 보기에는 성령 충만한 것 같다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문화적인 유산만이 남은 것입니다.

 

그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내용이 없고,

정말로 성령의 주시는 은혜보다는, 인간의 감각에 어필하는 그런 교회가 많아요.

 

오늘 본문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14절에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말했습니다.

자칫하면 스쳐지나갈 수 있는 문구입니다.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 From whom you have learned these things"

누구에게 이것을 배웠는지를 안다라는 말이에요.

 

신앙은 인간문화재와 같아서

내가 무엇을 배우느냐 뿐만이 아니고, 누구에게서 배우느냐가 중요합니다.

 

누구에게서 배웠느냐. 그걸 잊어버리면 안돼요.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공부할 때는 지도교수 밑에서 공부하는 것이죠.

신앙도 누구에게서 배웠느냐를 기억해야 됩니다.

가르쳐 준 사람을 부인하게 되면 가르침 받은 것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처해있는 상황이 이와 같습니다.

가르쳐준 이들을 부인하려고 합니다. 그건 실수에요.

누구에게서 배웠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누구에게서 배웠느냐가 분명한 사람일수록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믿음의 유산이 확실합니다.

 

우리는 과거를 보존해야 미래에 물려줄 수 있습니다.

남아있는 세월 동안에 우리가 그것을 해야 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