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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된 천국 2

LNCK 2016. 1. 6. 10:13

위장된 천국 2              13:31~33                               출처보기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13:33

    

 

 

 

너무 볼 품 없는 천국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천국을 가르쳐주고 싶으신데,

천국은 이런 것이다.. 라고 설명을 해 주시고 싶으신데,

 

그런데 그 천국을, 정말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그런 비유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천국을 비유하신 내용들로,

천국은 마치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

천국은 마치 화려한 스타와 같다. 천국은 마치 빌 게이츠와 같다.

천국은 마치 너무나 우리 눈에 매력적으로 보이는 어떤 것과 같다.’

 

만약 이렇게 예수님이 비유하셨다면, 우리 마음이 즉시로 거기에 끌릴 것입니다.

, 천국은 저렇게 화려하고 멋진 것이구나!’

이렇게 천국은 우리의 모든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즉, 농부)과 같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비유하신 천국이란

볼 품 없고, 이름도 없는 농부와 같은그런 것이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런 천국을 사모하겠으며, 누가 그런 천국에 관심이나 보이겠습니까!

 

천국이 마치 농부와 같다면, 그 천국에 대해서 관심 있는 분이 몇 사람이나 될까요?

오늘날 농부나 농사에 관심 있는 젊은이가 있습니까?

 

그런데 왜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농부와 같다고 비유하셨을까요?

 

본문 마13:32절에는 천국은 마치 겨자씨 한 알과 같다.’

천국이 마치 겨자씨 한 알과 같다면, 누가 그 겨자씨 한 알에 관심이나 보일까요?

겨자씨를 한 되박을 주어도, 아무도 관심 없어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13:33

 

도대체 왜 예수님은, 천국을 누룩에 비유하셨을까요?

 

누룩이.. 무슨 사람의 관심을 끌만한 것이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 예수님은 천국을 이런 것에 비유하셨을까요? 이것이 천국의 비밀입니다.

 

바로 그런 천국의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천국을 놓쳐버립니다.

 

예수님 때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계속해서, 천국의 비밀 네 번째 설교입니다.)

 

예수님은 왜 천국을 겨자씨에 비유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왜 천국을 누룩에 비유하셨을까요?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되는 데요.

그게 뭐냐면, 사람들이 그토록 기대했던 천국의 모습과 너무나 다른 천국의 모습을,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기대했던 천국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으로 임하셔서, 모든 악을 다 멸하시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모든 나라를 다 제압해 버리시고,

정말 영광 중에 찬란하게 임하는 그런 천국, 그런 하나님의 나라를, 그들은 꿈꾸었는데,

 

그런 천국을 기대했는데,

정작 예수님이 오셔서 천국이라고 소개하신 천국은

시시하고, 하찮고, 보잘 것 없고,

무슨 천국이 이렇습니까?’ 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천국의 모습 때문에,

 

세례요한마저도 시험에 들어서,

감옥에 갇혀 있던 세례요한이 자기 제자를 예수님께 보내면서
정말로 당신이 오실 그이입니까? 당신은 정말 메시야 맞습니까?

당신이 메시야가 맞다면, 도대체 우리가 기다리고 사모하던 천국은 어디에 있습니까?

 

1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결국 세례요한마저도, ‘아차하며 천국을 놓칠 뻔했던 이유는, 천국의 모습이,

그토록 그들이 기대했던 모습과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천국을 놓치며 살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 정말 천국은, 우리가 예상하고 꿈꾸고 기대했던 모습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1. 예수님은 왜 천국을 그 많고 많은 대상 중에 <겨자씨>에 비유하셨을까요?

그 이유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크기와 눈에 띄는 주목할 만한 것, 화려한 것에 속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찮아 보이고, 정말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것을 간과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천국은 그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겨자씨는 예수님께서, ‘모든 씨앗 중에 가장 작은 것이라고 표현했는데, 

당시 사회에도 가장 작다는 표현을 할 때 겨자씨 같다는 표현을 잘 썼습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잘 아시는 말씀에 너희 믿음이 적다라고 책망하시면서

만일 너희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저리로 옮기라 하여도 그대로 될 것이다. 17:20, 17:6

 

이 말은, 당시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가장 작은 것을 표현하고자 할 때,

사람들은 종종 겨자씨를 인용했다는 것입니다.

 

겨자씨 말고, 누룩은 어떻습니까?

 

누룩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이스트가 아닙니다.

NIV성경은 yeast라고 번역했지만, 실제로 성경이 말하는 누룩 leaven

옛날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고, 그 옛날에는 어느 사회나 할 것 없이 다 그랬는데,

 

밀가루 반죽을 부풀게 할 때,

부풀린 밀가루 반죽의 전부를 다 빵으로 굽지 않고,

반죽의 일부를 한웅큼 떼어서 따로 보관해 놓습니다.

이미 부풀어진 반죽 조각을 떼어놓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또 밀가루 반죽을 해서 빵을 만들 때,

그 전날 한 조각 떼어놓은, 이미 부풀려진 반죽 덩어리를 같이 집어넣어서,

그러면 새 밀가루 반죽이 전부가, 빨리 잘 부풀게 만듭니다.

 

이렇게 부풀려진 밀가루 한 조각 덩어리를 누룩(레븐)이라고 말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너무나 하찮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천국을 이 겨자씨와 그리고 이 누룩에 비유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천국은, 전혀 인상적이지 않다. 천국은 우리가 기대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천국이 임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천국은 (이미) 임해 있다. 그러나 그 천국은 마치 겨자씨같이 아주 작아 보이고,

누룩과 같이 숨겨져 있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또 무시당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해 있다.

천국은 시작되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천국이 이미 우리에게 임했고,

천국은 이미 우리 안에 시작되었다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질문하기를,

도대체 그 천국이 어디 있습니까? 천국이 정말 우리 안에 임했다면, 우리가 이런 모습입니까?’

천국이 정말 우리 안에 임했다면, 세상이 정말 이런 모습입니까?’

 

늘 이렇게 질문하고, 불만과 불평을 가집니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는 천국을 잃어버리고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17:20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천국은 저와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천국은,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다시 말하면, 천국은 절대로 눈에 띄게 화려하고 거창해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외양의 모습으로는 절대로 천국같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천국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내 마음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있기 때문에!

내 안에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 있기 때문에!

내 안에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나는 천국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왜 천국을 그 많고 많은 대상 중에 <누룩>에 비유하셨을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하셨는가요?

제가 아까 사이즈를 말했습니다. 겨자씨는 가장 작은 것의 대명사이지만,

그것이 다 크게 되면, 12feet (4미터) 정도 자라는 나무가 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나물'로 표현했지만,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나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나무가 희박한 팔레스틴에서는, 그 정도 크기면 충분히 나무입니다.

 

어쨌거나 그 시작에 비하면, 직경 1 밀리미터 밖에 안 되는, 그 아무 것도 아닌 그 작은 씨앗이

심겨져서 자라서 나무가 될 때는, 적어도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모습으로 성장하게 되고,

실제로 새 들이 그 가지에 깃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가 장차 너무나 찬란하고 영광스럽게 임할 모습만 바라보다가,

정작 천국이 시작되는 그 하찮은 모습 때문에, 실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천국을 놓쳐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천국은 이미 우리 안에 시작되었고, 그 시작된 천국 안에는

장차 우리에게 임할 그 모든 천국의 영광스런 모습이, 이미 들어있다, 감추어져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모습 때문에, 우리가 천국을 놓쳐버리는 것 같습니다.

 

또 예수님은, 천국을 누룩에 비유하셨습니다.

조금도 우리의 주목을 끌지 않는 그런 누룩 한 조각!

이것이 도대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누룩은, 많은 사람들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또 무교절에 집안에 있는 모든 누룩을 제거하라

이같이 누룩은 죄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누룩을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비유를 잘못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여기서, 누룩의 비유를 드신 것은

누룩의 나쁜 점을 말씀하고자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한 비유에서 사용되었던 그 대상이, 다른 비유에서 사용될 수 있는데,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1)

 

누룩은 지금까지 성경에 종종 죄를 상징하거나, 나쁜 것으로 인용됩니다.

누륵은,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면을 가리킨다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유에서 예수님께서 누룩을 인용하신 것은,

그게 아니라

누룩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틀림없이 그 속에서 활동한다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이 누룩은 반죽 전체를 부풀게 하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볼 땐,

하찮고 볼품없고 알아주지 않는 12 제자로 시작했습니다.

 

어느 누가 그 12제자로부터 시작된 천국이,

불과 1백년 안에 로마 제국을 다 점령하리라고는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제자들 자신들도 상상조차 못했을 것입니다.

 

정말 그 밀가루 반죽 한 조각에 불과해 보이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그 누룩 한 덩어리가, 반죽 전체를 부풀게 했던 것처럼,

 

정말 하찮아 보이고, 아무 것도 아니게 보이던 그 예수님의 소수의 제자들은

1백년 안에, 로마제국을 다 복음으로 부풀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천국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왜 천국을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하셨냐면

바로 이러한 천국의 모습 때문에. 이 세상에 기준과 너무나 다른 천국의 모습 때문에

 

어떤 사람들 눈에는, 전혀 천국 같이 보이지 않아서, 천국을 놓칠 수밖에 없고,

그러나 정말 천국을 사모하고 소망하며, 천국을 찾고 구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감추어진 것이 보일 수 있게 해 놓으신 것입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천국을 놓쳐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은 예수님과 함께 이미 이 땅에 임했으며, 우리 안에 있다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천국은, 장차 영광스럽게 임할 그 천국의 모습을 다 갖추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신학자가 이렇게 썼습니다.

 

‘(제목) 하나님 나라에 하찮은 시작. 그리고 그 최종 영광의 대조

 

하나님 나라가 너무나 하찮은 것으로 시작하지만,

그러나 최종에 그 영광스러운 것은, 그 하찮은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인정하지도 않고, 깨닫지도 못하던 그 하나님 나라의 시작입니다.

 

정말 작고 하찮은 것이 하나님 나라의 시작처럼 보였고,

그래서 사람들이 그것을 놓쳐버렸지만,

 

그래서 로마제국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고,

심지어 유대지도자들조차도 자기들의 종교에 눈이 멀어서, 천국을 보지 못하였지만,

 

놀라운 사실은 창녀, 세리, 가난한 사람들, 죄인들, 비천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이미 참여했고, 그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9:12~13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천국이 천국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자기가 정말 죄인인지 깨달은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천국은, 정말 귀한 천국으로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천국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천국을 정말 누렸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아이러니한 것은, 가진 사람들, 배운 사람들, 뭘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하나 같이 천국을 놓쳐버렸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동일한 잘못을, 오늘날 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뭔가 화려한데, 뭔가 있어 보이고, 싸이즈가 크고, 뭔가 눈길을 끌고,

뭔가 인상적인 곳에 천국이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쉽게 착각하게 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예수님은 말씀해 주십니다. ‘천국은 그런데 있는 게 아니다!

 

 

인터넷에서 위장된 천국을 잘 설명하는, 재미있는 글을 하나 발견했기에,

   여러분께 소개해 드립니다.

 

<제목 : 천국 스타일>

 

내가 주일학교에 다닐 때였던 것 같다. 교회학교에서 야외예배를 갔던 적이 있었는데,

순서 마지막에 보물찾기를 했었다. 전도사님의 호르라기 소리와 함께, 열심히 숲을 헤매면서

숨겨진 꼭꼭 접어진 종이를 찾기 시작했다. 종이에 써있는 단어를, 나중에 선물로 바꿔주는 방식이었다.

 

열심히 숲을 헤매다 보니, 금방 보물쪽지를 찾게 되었다.

슬그머니 쪽지에 뭐라고 써있는지 숨을 죽이고 열어보니 이라는 한 단어!

 

상품은 한 사람에게 하나만 받을 수 있기에, 나는 다시 종이를 곱게 접어서

있던 그 자리에 두고, 다른 보물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점점 정해진 시간은 다가오고, 결국 다른 보물 쪽지를 찾게 되었는데,

내 기억으로 독수리였는지, 뭐였는지.. 제법 멋있는 이름의 쪽지를 찾아서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경품식에 참석했다.

 

참고로, 나는 세상 말로 이 세상에 가장 재수 없는 사나이.

무슨 뽑기에서 당첨된 적은 한 번도 없고, 벌 받는 일이나, 매 맞는 일에는

무작위로 뽑아도 무조건 100% 걸리는 그딴 사람이다.

 

한 번은, 모 경품 추천에서, 처음으로 1등으로 뽑힌 적이 있었는데,

상품으로 TV 한 대를 받게 되었다.

'벽걸이 평면TV 시대에, 옛날 구형 브라운관 TV가 상품이라니, 이게 왠 말인가?'

상이 아니라 짐을 받고서, 망연자실해서, 결국 노숙자 센터에 기증했다.

 

어쨌거나 전도사님이 꼴찌 상부터 부르기 시작했다.

나의 왕재수의 역사는, 이미 진행 중이었고, 결국 내가 찾은 '독수리'가 꼴찌 상이었다.

 

이름은 그럴싸해 보이는데, 독수리가 꼴찌 상이었다.

꼴랑 연필 한 자루 받았다.

3, 2, 1등을 지나, 오늘의 그랑프리 상, 특등 상을 부를 때, 나는 뒤로 쓰러져버렸다.

 

그날의 특등상은 이었다.

 

정말 천국은, 나의 어릴 적 보물찾기 사건처럼, ‘감추인 보배이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 흠모할만한 구석이 없어서 찾지를 않는다.

천국 가는 길은 관광버스가 다니는 넓고 반듯한 아스팔트 길이 아니고,

협착하고 비좁은 비포장도로라, 사람들이 찾지를 않는다.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예수님이 만약 외모지상주의에 만연한 이 시대에, 한국에서 태어나셨더라면,

그는 틀림없이 한국의 대기업에 절대로 못 들어가셨을 것이다.

 

이사야서에 보니, 그는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처럼,

사람들이 흠모할만한 외모가 전혀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력서에 붙인 사진만 보고, 면접도 거절당할 정도의 볼 품없는 외모를 가졌기 때문이리라.

블루칼라 아버지에, 동네에선 미혼모 자녀로 손가락질 받는 정도로,

아무도 그이 가정환경과 외모로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근본 하나님이셨고,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사도바울은, 천사의 모습이, 일반 사람처럼 손님을 가장하고 나타난다고 했다.

손님 중에 물론 귀한 손님도 있지만, 짜증나고 그만 좀 왔으면 하는 손님도 있다.

겉보기에 냄새나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손님이 천사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13:2

 

성막의 덮개를 보면, 하나님은 역시 동일하게 '감추어진 천국'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성소와 지성소를 덮고 있는 앙장(커튼), 4겹으로 되어 있는데,

우리 눈에 보이는 가장 바깥쪽 앙장은 물개 가죽으로 만들어져 있다.

 

거무튀튀하고 볼품이 없다. 하지만 가장 안쪽 앙장은 화려하고 여러 가지 수가 놓여있다.

그밖에도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라 하시는 등, 우리 생명이 하나님 안에 감춰었다 라고 하시는 등,

'귀한 것은 감추시기에 능통하신 분'이신 것 같다.

찬양 가사에 전쟁에 능하신 주, ‘감추기에 능하신 주로 바꾸어 불러야 할 판이다.

 

반면에 '안이 빈 사람'들은, 겉을 유난히 신경 쓴다.

맨날 예수님께 야단맞던 바리새인들은, 안은 썩어가고 있는데,

밖으로 보이는 것에만 신경을 쓰다가 회칠한 무덤이란 소리까지 듣는다.

 

남의 등쳐먹는 사기꾼들 치고, 명품을 휘감고 다니고, 명차 안 끌고 다니는 사람이 없다.

? 속이는 사람은, 자기 속은 감추고 겉을 보이려 하고,

또 속는 사람들은, 사람의 겉만 보고, 인생의 중요한 결정도, 거금의 투자도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좋은 것은 안에다 감추시고, 겉으로는 볼 품 없게 만드시는 것이

그분의 스타일이신 것 같다.

그리고 가끔 비유나 하나씩 툭툭 던지시고, 알아들을 귀가 있는 사람만 알아들으시란다.

 

천국! 어쩌면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이 아니라

바로 내 코 앞에 뭔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거적대기 안에 숨겨져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내 이웃들이 아닌지.. 둘러보게 된다.

 

내 어릴 적 보물찾기의 뼈저린 기억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소원하며...

 

.....................

 

1)

예를 들면,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예수님께서 씨를 뿌리셨다.

씨 뿌리는 자는 인자이다. 씨가 길가에 떨어지기도 하고, 또 돌밭, 가시떨기, 옥토에 떨어지기도 하는데,

그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에 나오는 비유에서

천국은 마치 그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과 같다.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묘 마13:37~38

 

똑같은 씨앗인데, 한 비유에선 말씀이고, 다른 비유에선 사람입니다.

우리가 비유로 해석할 때, 같은 내용이라고, 같은 의미를 절대로 부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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