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성을 쌓는 인생 창4:9~17 15.12.27 출처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창4:14
▲에덴동산 안에 있을 때는, 항상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에덴 바깥에서 살아가게 되었을 때,
에덴 바깥에서 살 때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왜냐면,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안전한 곳에 있을 때는
가정 집안에 있을 때는, 그 아이가 어디 있는지 별로 신경 안 써도 됩니다.
왜냐면 집안 어딘가에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그 아이를 데리고 함께 외출해서, 사람이 많은 곳,
즉 백화점이나 놀이동산 같은 곳에 가서는,
이 아이에게 시선을 놓쳐서는 안 되고, 이 아이도 부모님 곁을 잠시도 떠나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믿음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에덴 바깥에서 살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왜냐하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해 가시는 길로 따라가려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인도해 가시는 길이, 우리가 익숙한 습관을 좇아 살아가는 삶과는
다른 길로 항상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하고, 그 믿음을 좇아 하나님과 동행할 때
비로소 하나님이 예비해놓으신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는데,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제일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어떻게 공급되느냐 하면,
믿음은 예배를 통해서 공급됩니다.
예배는, 믿음이 공급되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믿음을, 예배를 통하여 계속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려도, 믿음이 공급되지 않을 때, 믿음을 공급받는 것을 실패할 때,
우리 삶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는, 가인의 삶이 잘 보여줍니다.
가인은 하나님을 만났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고치라 하는 것도 고치지 않았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자기 삶의 드러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예배에 실패했습니다.
그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받아야 될 믿음을 공급받지 못했습니다.
◑1. 믿음을 공급받지 못할 때, 우리 인생에 불행한 일들이 생깁니다.
그 불행한 일들은 어떤 형태로 오는 가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믿음이 공급되지 못하면, 죄에 대해서 애통하지 않고,
죄의 형벌에 대해서 애통하게 됩니다.
4: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에 너무 무거우니이다
죄에 대해 벌 받는 것에 대해 애통하지, 죄 자체를 애통하지 않습니다.
죄 자체를 애통하게 되면, 그 애통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세워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애통인데,
죄의 형벌에 대한 애통은,
내가 지금 고생하고, 내가 지금 힘들고, 내가 지금 괴롭고 아픈 것에 대하여,
힘들고, 아프고, 괴로운 것에 대하여 애통하는 것입니다.
힘들고, 괴롭고, 아파하는 것에 대해 애통하는 것은,
애통하지만 그 애통에는, 어떠한 유익도, 어떠한 은혜의 결과도 없습니다.
죄에 대해서 애통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를 개선할 수 있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이 용서를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이 회복해주시는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공급해 주실 때, 비로소 우리는 죄에 대해서 눈이 열려서,
이제 죄의 결과에 대해서,
‘내가 병이 들었고, 내가 사업에 실패했고, 내가 누군가에게 버림을 받았고,
고통을 받았고, 낮아졌고..’ 이런 것에 대해서 애통하는 것이 아니라
죄 자체에 대한, 하나님을 아프게 한 것에 대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에 대하여
비로소 애통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때 예배가 회복되는 것이고,
그때가 은혜가 회복되는 것이고,
그때가 바로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의 도움이 임하는 시간입니다.
그 믿음이 공급되지 않으면, 매번 예배시간에 와도, 기도를 드려도
성경을 읽어도, 무엇 때문에 슬퍼합니까?
자기의 형편과, 처지와, 괴로운 삶 때문에 한탄합니다. 가인처럼요!
‘아이고, 나는 왜 이 꼬라지로 살까? 내가 왜 저 인간을 만나서, 이 신세로 살까?’
별별 소리를 다 하면서, 스스로 한탄하고 애통해 합니다.
애통해 하지만, 내내 자기의 형편과 처지에 대해서 애통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인생에 행하신 여러 가지 죄의 결과/형벌들에 대해서
아파하고 괴로워합니다. 죄 자체로 애통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달라지기를, 형편이 달라지기를
그리고 좀 잘 살게 되기를, 형편이 풀리기를,
환경과 여건이 내 인생에 좀 달라지고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아무리 바래도, 그런 바램은,
만약 죄가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면,
그 바램은 내 인생에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여러분, 예배에 실패한 사람은, 죄의 형벌 때문에 아파하지, 죄 자체로 아파하지 않습니다.
죄는 아직도 따뜻한 것이고, 좋은 것이고, 여전히 친구로 가까이 할 것으로 그렇게 여깁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아파하시고, 괴로워하시고
그것 때문에 내 인생이 지금 큰 형벌과 고통가운데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죄보다, 죄의 형벌을 애통해하는 것, 이것이 예배에 실패한 사람의 첫 번째 모습입니다.
▲하형록 목사님이 쓰신 책 <P31>이란 책에 보면, *부제: 성경대로 비즈니스하기
이분은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민 가서, 미국의 명문대학교를 졸업하고
29살에 회사에 중역을 맡았던, 어메리칸 드림을 이루었던 인물입니다.
이미 29살에 기업의 중역이 되었으니, 대단한 성공을 이룬 인물입니다.
그는 비행기를 몇 번씩 갈아타며, 전 세계를 도는 그런 탁월한 성공적인 삶을 살았는데,
어느 날, 심장근육이 다 죽어있다는 의사의 판결을 받게 됩니다.
의사의 진단이, 심장근육이 다 죽어서, 심장 이식이 급히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아직 아이들이 2~3살 어린데, 그때까지 쌓았던 모든 성공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몇 번의 수술을 통하여 재산 전부를 다 잃어버리게 되고,
그리고 생명조차 잃어버릴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때 내내 그가 기도했던 제목은 뭐냐면,
‘주님, 제 심장을 고쳐주세요. 제가 여기서 죽으면 안 돼요.
하나님, 제 심장을 고쳐주세요.’ 였습니다.
한 번 수술을 했는데, 재발해서 두 번째 이식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때도 변함 없이 뭘 놓고 기도했느냐 하면, ‘심장을 고쳐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심장이 다 나으면 뭐 할 건데? 너는 옛날로 되돌아갈 거잖아’
그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깨닫고 보니, 그랬습니다.
심장을 고쳐달라고 그랬는데, 심장을 다 고쳐주시면
다시 옛날처럼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 성공을 위해서 또 좇아 다닐 텐데..
‘내가 기도를 잘못하고 있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날부터는, 심장을 고쳐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나를 고쳐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심장이 아니라 나를 고쳐주십시오! 새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을, 그 병실에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두 번째 읽었을 때,
하나님이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하시는 말씀에
큰 감동을 받게 하셨습니다.
건강할 때는, 자신과 전혀 무관한 말씀으로 들렸던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 말씀이
새로운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일의 목적이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성공의 결과, 자기를 위한 성공은 허무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웃을 위한 성공, 하나님을 위한 성공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왜 성공해야 되느냐..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서.
왜 성공해야 되느냐..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서..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성공에 대한 개념과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왜 성공해야 되느냐.. 이웃에게 좋은 것을 복된 것을 나눠주기 위해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병원에서 퇴원하고
새롭게 사업을 시작할 때, 돈을 버는 목적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사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회사의 비전은, ‘우리는 어려운 자를 위하여 존재한다’ 라는
잠언 말씀에 의지하여 사업을 시작했고
그래서 신개념의 주차장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주차 빌딩을 만드는데, 그 빌딩에
미국식 주차 빌딩은 그냥 어두침침한 그냥 주차타워였는데,
거기 사이사이에 쉴 수 있는 공간을 두고,
사이사이에 간단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두고
사이사이에 또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두면서
건물과 주차장이 함께 가는, 신개념의 사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업은 번창하게 되었고,
제일 먼저 그 기업이 성장하니까,
함께 일하는 그 직장 동료들을 위하여 많은 혜택을 베풀었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이웃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미국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가장 가기 원하는 그런 직장이 되었습니다.
TV <글로벌 성공시대>에도 나왔고,
지금 백악관 자문위원으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 나를 고쳐달라’고 기도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로 돌아간 인간의 모습입니다.
‘돈 많이 벌면 뭐할 건데? 성공하면 뭐할 건데?
교회가 커지면 뭐할 건데? 자녀가 원하는 대학과 직장에 들어가면 뭐할 건데?’
그렇게 성공해서, 세상으로 나갈 거라면,
타락할 거라면, 하나님을 떠날 거라면,
그 성공이, 여러분, 과연 성공이겠습니까?
하나님께로 돌이킨 인생, 하나님께 믿음을 가진 인생은
여러분, 죄에 대하여 애통합니다.
죄의 형벌 때문에 애통하지 않고, 죄 때문에 애통합니다.
돌이켜 이제 진짜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서도록
죄에 대해 애통하는 우리가 되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배에 실패하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믿음을 공급받지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항상 두려움 가운데 살게 됩니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창4:14
지금 가인이 하나님께 말하고 있는 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 너무 두렵습니다.’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너무 무섭습니다.’
하나님께 믿음을 공급받지 못하면, 우리 인생에 나타나는 두 번째 특징은
불안과 두려움 속에 떨면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뭘 해도 두렵고, 뭘 해도 두렵습니다.
뭘 해도 답답합니다.
14절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에서
이 말은 히브리어로 '가라쉬' 인데 ‘이혼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 분리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인생에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불안과 두려움입니다.
뭘 해도 두렵습니다. 뭘 해도 불안합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떠난 인생은, 여러분, 뭘 해도 안식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공급받지 못하면, 여러분, 뭘 해도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두려워서 하는 일들이 많이 있죠.
불안을 해소해 보려고,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는데
아무리 해도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합니다.
▲참 평안을 얻으려면, 안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께 믿음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예배에 성공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마다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내 삶을 보고, 내 중심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예배에 성공하지 않으면, 불안과 두려움에서 탈출할 수 없습니다.
불안해서 보험도 많이 들고, 또 뭐도 하고 뭐를 해도.. 여전히 불안합니다.
그 불안을 결코 떨쳐낼 수 없습니다.
그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는 길은, 딱 하나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분명한 믿음,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만
우리 안에 이 걱정과 염려와 두려움으로부터 자유케 되는 평안이 찾아옵니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하나님만이 주시는 평안이 있습니다.
그 평안은 예배를 통하여, 예배의 성공자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하여 다른 길을 찾지 마시고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지 마시고
여러분, 예배에 집중하시고, 예배에 성공자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여러분, 두려울 때마다, 불안할 때마다 주님께로 나오십시오.
나와서, 그 불안함을 토해 내시고, 고백하시고,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안을 얻으시길 축원합니다.
◑3. 예배에 실패하게 되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믿음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면,
우리의 삶에 어떤 모습이 나타납니까?
세 번 째로, 하나님의 보호의 약속을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성을 쌓습니다.
창4: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15절에, 하나님이 불안에 떨고 있는 가인에게 약속해 주십니다.
‘가인을 죽이는 사람은, 벌을 7배나 받을 것이다.’
그러면서 가인에게 표를 주십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죽임을 면하게 해 주십니다. 그 약속을 주십니다.
그런데 가인은 이 약속을 믿지 못합니다.
4: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동쪽'은 히브리어로 '키드마', 동편 또는, 맞은 편/반대편 이란 뜻입니다.
즉, 에덴의 반대편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정반대편, 그 땅의 이름은 놋입니다.
히브리어로 ‘방황하다’는 뜻입니다. *wandering
하나님이 약속을 주셨는데도.. 방황하고 있습니다.
방황하다가.. 그는 마침내 성을 쌓습니다.
4:17.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니까, 자기가 스스로 보호하려고, 성을 쌓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는데, 그 약속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 성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성을 쌓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불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불신앙이 성을 쌓게 만든 겁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죠.
예배에 실패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쓸데없는 성을 쌓게 되는 것입니다.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습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지도록, 자기 인생을 헌신합니다.
▲예수원을 세웠던 대천덕 신부는,
1950년대에 서울의 신학교에서 신학을 강의하고 있었습니다.
신학을 강의하다 보니까, 신학생들이 참 믿음을 발견하고, 참 믿음 가운데 사는 것을,
정말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현장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한국의 신학생들을 위하여,
신학을, 책이 아닌 삶으로 배우게 하기 위하여
신학교 사역을 그만 두고,
1965년도에, 강원도 태백에 <예수원>이라는 공동체를 만들게 됩니다.
이 믿음의 공동체를 통하여, 대천덕 신부는 3가지를 실험하려고 했습니다.
1) 예수님이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실험했습니다.
2) 성령안에서, 교회가 하나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실험했습니다.
3) 재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을 실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실험을, 지금까지도
이제 대천덕 신부님과 사모님도 다 돌아가셨지만
그분들을 이어서, 제자들이, 계속 그 실험들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적은 이유는, 우리가 정직하게 믿음의 실험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한 걸음을 옮기는
믿음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훈련을 하지 않습니다.
왜요? 예배에 실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주일날은 예배시간에 ‘믿습니다, 아멘!’ 하지만,
그러고 나서 현실에서는, 그 약속을 버리고,
자기가 살 궁리를 자기 계산으로.. ‘이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되겠지?’ 생각하며,
가인처럼 놋 땅에서, 방황하면서 자기 성을 쌓는 것입니다.
열심히 성을 쌓는 인생을, 일평생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배 실패자의 모습입니다.
예배의 실패자는, 죄 때문에 애통하지 않고, 죄의 형벌 때문에 애통합니다.
예배의 실패자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예배의 실패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자기 궁리로 성을 쌓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 어떻습니까?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까?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정직하게 내 삶을 고치고/바꾸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스스로 성을 쌓는 불신앙의 삶을 버리고,
방황의 삶을 버리고, 예수님께 뿌리내리고, 말씀과 믿음에 뿌리 내리는
참 믿음의 사람으로 주님 앞에 서는, 진짜 예배자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에덴 바깥에서의 삶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예배임을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죄의 형벌이 아닌, 죄 때문에 애통하게 하여 주옵소서.
죄에 대하여 애통해야, 죄에 대한 태도와 자세를 고치고,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음을, 저희로 다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형편과 처지 때문에, 죄의 형벌 때문에, 죄의 결과 때문에
그게 바뀌어 지도록 기도하는 인생이 아니라,
죄 자체를 애통해하고, 죄 자체를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개선하여, 하나님의 복을 얻는 인생이 다 되도록
주여, 저희들의 모두의 미련함을 벗겨 주시옵소서.
하나님,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믿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임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환경과 상황 때문이 아니고, 믿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임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다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약속이 실현되도록
믿음의 걸음을 걸어갈 수 있는 참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저희 교회가 믿음의 실험을 하기 원합니다.
우리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히 임하는, 그런 증거가 있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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