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에게 핍박 받는 해를 입은 여자 계12:1-17 출처
오늘 본문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러합니다.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아이를 낳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를 하늘로 데리고 가십니다.
여자가 낳은 아이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로서 예수님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승천 하자 하늘에서 미가엘과 붉은 용과의 큰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 전쟁에서 미가엘이 붉은 용을 이깁니다.
그러자 붉은 용이, 자기 수하들을 데리고 이 땅으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붉은 용은, ‘옛 뱀, 마귀, 사단’으로서 이 세상 신입니다.
세상 신인 마귀는 그 수하들을 동원하여서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합니다.
하늘에 전쟁이 이 땅으로 옮겨져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 교회 전 역사를 말합니다.
이 땅의 교회는 하늘에 전쟁을 대리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간에 전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간에 벌어지는 전쟁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주후 90년경에 써졌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지 약 60여년이 흐른 뒤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받고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열 두 제자들도 다 순교를 당한 후 사도 요한만 남았습니다.
이 때 사도 요한의 나이가 90세 즈음 되었습니다.
90세 고령인 노인이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먹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밧모 섬에 유배당하고 있었습니다.
말이 유배이지 죽으라고 던져놓은 것입니다.
밧모 섬은 ‘송진’ 이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밧모 섬은 마치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진을 빼서 죽였듯이
신자들의 진을 빼서 죽이는 곳입니다.
당시에 밧모 섬은 돌이 많은 곳으로서 먹을 것도 없고, 뱀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뱀의 섬’이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주로 정치범들을 보내서 굶어 죽게 내 던져진 곳입니다.
지옥과 같은 곳이라 하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를 전한다는 죄목으로, 정치범과 동일하게 취급을 당하였습니다.
그래서 밧모 섬으로 유배를 당한 것입니다.
당시에 로마의 도미티안 황제는 예수 믿는 자들을 혹세무민하여
사회를 어지럽히는 자들이라고 하면서 엄청난 핍박을 하였습니다.
밧모 섬에서는 살아갈 희망이라고는 없습니다.
소망이라고 한다면 오직 하나, 천국 소망뿐입니다.
사도 요한은 천국에 소망을 품고, 오늘 내일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구전으로 전해져 온 사도 요한의 밧모 섬에서의 삶을 보면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였는지, 이마를 바위에 대고 비빈 흔적이
바위가 홈처럼 움푹 파였다고 합니다.
얼마나 절박하고 간절했으면, 바위가 움푹 패일 정도로 기도를 했겠어요.
그만큼 사도 요한에게는 하늘나라가 간절했어요.
▲이러한 때에 하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으로 사도 요한의 눈을 열어서
죽음 너머에 있는 천상의 세계를 보여 주신 겁니다.
다른 말로 지옥에 있는 사도 요한에게 천국을 보여 주고서
위로와 소망을 주고 계신 것입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이 뭔가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입은 자”라는 뜻입니다.
성도를 일컬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고 합니다.
이러면 구원 받은 모든 성도가 ‘요한’인 것입니다.
우리가 요한이에요. 우리가 지금 지옥에 있어요.
뱀이 우굴거리는 밧모 섬에 있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지옥 가운데 던져 놓고서, 천국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당시 교회들은 지옥 같은 환경에서 핍박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에게 천국을 보게 하시고는, 그 광경을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편지를 써서 보내서 위로케 하신 것입니다.
▲우린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위로와 소망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 때문에 핍박과 고난당하는 것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핍박과 고난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위로 받아야 해요.
핍박과 고난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에요.
오직 그 속에 예수를 품은 성도만이 받는 것입니다.
마귀는 그 속에 예수가 없는 자들은 핍박하지 않아요.
그 속에 예수가 있기 때문에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으면
‘아! 내가 예수를 품고 있는 것을 마귀가 알고 핍박하는 것이구나’ 생각하세요.
그럼 핍박이 슬픈 것만은 아니에요.
저는 이렇게 위로를 받고 있어요.
복음 전하면 옆에서 박수 쳐 주지 않아요.
도리어 비방해요.
그것도 안다고 하는 자들이 그래요.
초대교회 성도들이 누구에게 핍박을 받을 줄 아세요.
유대인들이에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자칭 형제라고 하는 자들로부터 핍박을 받아요.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형제 싸움이에요.
가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 야곱과 에서, 레아와 라헬, 브닌나와 한나,
사울과 다윗,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의 싸움이에요.
육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 간에 전쟁이에요.
바울을 괴롭힌 자들이 누구인가요?
자칭 형제라고 하는 유대인들이었어요.
유대인들이 지금은 육에 속한 자들이에요.
복음을 가지고 자기 영광을 추구하고, 자기 이름을 내고자 하는 자들이 육에 속한 자들이에요.
이들은 복음을 자기 유익에 도구로 사용해요.
복음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고 복음으로 유익을 도모해요.
결국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입니다.
▲구약이나 신약, 그리고 교회사를 보세요.
항상 거짓에 속한 자들이 참에 속한 성도들을 핍박했어요.
이건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이고, 교회는 항상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 위로를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성도에게 위로를 주시기 위하여
자기를 환난에 넘겨주었다고..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기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도 아시아에서 너무도 고난이 심해서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했습니다.
그 때 받은 위로가 하늘에 위로라고 합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하더라는 갓입니다.
고난이라는 말이 ‘튤립시스’ 라고 하는데,
이것은 큰 바위 밑에 깔려서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나올 수 없는 상태를 말해요.
이건 하나님이 고난을 거두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당하는 고난은 모두가 하나님이 언약을 이루어 가는데 필요하여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시편 105편을 보면, 하나님이 ‘요셉의 발을 차꼬에 채워서
말씀이 응하기까지 저를 단련하였다’고 합니다.
말씀이 응하기 까지란? 언약이 이루어질 때까지란 말입니다.
이로보건데 성도는 이 세상에서 정한 때까지 고난을 받게 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난이 하나님을 찾게 되는 촉매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극한에 몰리면 하나님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성도들을 다루어 가시는 것이
죽음에 던져 놓고 하늘을 열어 주시는 방법으로 일을 하십니다.
호세아서에 보면, ‘아골골짜기를 소망의 문을 삼았다’고 했습니다. 호세아서2장15절.
아골골짜기란? 지옥을 상징합니다.
이 시대 아골골짜기란 어떤 장소적인 의미보다는
복음으로 인하여 이단소리 듣고 왕따 당하는 것과 같은 환경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의 모습이 그러했어요.
엄청난 고난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 때문에
가산을 적몰당하고 죽음에 넘겨졌습니다.
글자 그대로 아골골짜기처럼, 하루 종일 신음하는 지옥 같은 환경으로 살았어요.
이들에게 소망이라고는 유일한 한 가지 뿐이었습니다.
그건 천국입니다.
우리 주님 빨리 오셔서, 이 지긋지긋한 세상으로부터 빼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시대를 초월하여서 모든 성도들이 바라는 소망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이 빨리 오셨으면 하잖아요.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초대교회 신자들의 운명을 종일 도살당할 양 같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을 봅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35절에서, 바울은 역설적으로 고백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단호하고 분명하게 그 어떤 것으로도 끊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이 말은 그 당시 신자들이 당하는 아픔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굶고 헐벗고 욕먹으면서 옥에 갇히고 위협을 당하고 매 맞으면서
급기야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고난이 한 두 가지가 아니고 산다는 것 자체가 고난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신자들의 운명을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뭐라고 합니까?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가요?
성도가 비록 이 땅에서 실패한 모습으로 살 수는 있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약속이 뭔가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나서 천국에 가셨듯이,
우리도 고난이라는 십자가의 문턱을 넘어 천국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려울수록 천국이 가까워지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간절해지는 것입니다.
▲당시 사도 요한만 핍박 받지 않았어요.
모든 신자들이 다 핍박을 받았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일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과 비교하면
지금 이 시대 우리의 신앙은 신앙도 아닙니다.
이 시대는 물질의 풍요로 인하여 등 따습고 배부르니까 아쉬운 게 없어요.
그러다 보니까 신앙이 취미생활이 되어 버렸어요.
너무 살기 좋으니까 천국이 필요치 않은 겁니다.
예수 안 믿어도 불편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관심이 없어요.
여기가 천국인데 뭘 천국을 바라겠어요.
그러니 우리의 신앙이 늘 허상이고 관념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입술로는 존경하나 마음은 멀어요.
요한계시록 결론을 어떻게 말하는지 아세요.
요한계시록 22장을 봅시다.
10절.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11절.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이 책의 예언에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고 하지요.
그러면서 불의하고 더러운 짓을 하는 자들은 그대로 하고,
반대로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하게 하라고 합니다.
이건 종말이 되면, 각자의 신앙의 본질들이 속속들이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세상이 좋은 자는 세상과 짝하여 육체의 쾌락을 좇을 것이고,
천국이 좋은 자들은 날마다 주의 나라를 사모하며 교회로 모여서
서로 사랑하면서 서로 섬기고 봉사하면서 살아갈 것이란 말입니다.
‘그대로 두라’는 말은, 신앙은 누가 간섭해서 되는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 속에 예수가 있으면,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 것이고,
그 속에 마귀가 있으면, 세상을 좇을 것이란 뜻입니다.
그 속에 주인이 누구인지는 그 사람의 신앙을 보면 알 수가 있어요.
이 시대 신앙의 위험은, 자기가 성경적인 지식을 많이 알아가는 것이
마치 신앙의 본질인줄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머리에 담아 두고 있어요.
절간의 스님들이 염불 외우듯이, 성경을 분석하고 도를 닦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성경적 지식은 해박해요.
그런데 내어 놓는 삶을 보면 영 아니에요.
사는 모습을 보면 이방인들과 똑 같아요.
말만 성경이야기를 할 뿐이지 살아가는 삶에 모습이나 가치관은 이방인과 똑 같아요.
분명히 말하지만 삶이 없는 신앙은 허구에요.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에요.
나무는 열매로 증명하는 겁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그 속에 담고 있으면 복음적 삶이 유출 되어야 해요.
마치 초대교회 성도들과 같이 성령이 임하고 나니까
예수로 살아가는 삶들이 나타난 것과 같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로 살아가는 삶은 없으면서
입술로만 예수가 어떻고 복음이 어떻고 백 날 주절거려 보아야 소용이 없어요.
선수는 실력으로 말하고, 신앙은 삶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고 귀신의 믿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곧 오세요.
자기의 타작마당을 추수하러 오세요.
예수님의 타작마당이 어딘가요?
교회에요.
교회 안에서 심판하세요.
교회 밖은 이미 심판이 끝났어요.
초림 때 구약교회를 심판 하셨듯이 재림도 신약교회를 심판하세요.
그래서 교회에 성경을 주셔서 ‘언제까지 두 사이에 머뭇거릴것이냐?’
하며 돌이키라고 하는 것입니다.
두 증인들이 세상에다 외치지 않았어요.
교회에서 외쳤어요.
교회 안에 땅의 가치로 사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 증인들을 교회로 보냈다는 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아직까지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두 증인들을 타락한 교회로 보내서
돌이키라는 뜻으로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흘러듣지 마세요.
요한계시록의 말씀 앞에 스스로를 돌아보세요.
자기의 신앙을 해부 당해 보세요.
내가 과연 성경이 말하는 길을 걷고 있는지,
아니면 성경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서 자기 합리화하여
육체의 쾌락을 쫓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셔야 합니다.
누구라도 우리의 영혼을 책임져 주지 않아요.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혼을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니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셔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을 시작하면서 뭐라고 했나요?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말씀을 읽고 듣는데, 그치지 말고 지키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복음을 몰랐을 때는, 우리가 세상 것에 일희일비 했어요.
그러나 복음이 우리 안에서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죽이는 일을 하면
세상 것으로 인하여 울고 웃지 않게 되어요.
오로지 복음 하나로 만족해요.
감사가 나와요.
내가 비록 사는 것이 비천하다 할지라도
그 비천이, 내 안에 있는 복음이 주는 즐거움을 빼앗지 못해요.
그래서 그 안에 복음을 품고 사는 성도들은
세상에 구경거리와 만물의 찌끼 같은 모습으로 산다고 하여도
낙망하거나 슬퍼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 복음 안다 하지 말고
내가 지금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세요.
‘공부해야지! 공부해야지!’ 머리로 생각한다고 공부가 되는 것이 아니에요.
공부는 책상머리에 앉아서, 책을 펴고 씨름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에요.
입술로 백 날 나 복음 안다고 떠들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죽여야 합니다.
그 길로 성령님이 매일 나를 인도해 가실 때,
그 도우심을 힘입어,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어요.
이는 예수는 입술로 믿는 것이 아니고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란 말입니다.
내 몸이 지금 어디에 있나요?
세상입니까, 교회입니까?
교회생활을 등한시 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두 증인들을 교회로 보내셨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어떤 자들은 복음 복음하면서 교회생활을 우습게 여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땅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두 증인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마귀의 종들입니다.
종말이라는 게 뭔가요?
추수 때는 곡식과 가라지로 갈라지고,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지는 때에요.
참된 알곡 신자와 거짓 신자가, 극명하게 갈라지는 때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그 종말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요한계시록이 다 응해가고 있는 때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장차 될 일’이라고 분명하게 말해주었던 것입니다.
이걸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알려 주었어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이 땅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구약 교회는 끝이 나고 신약 교회 시대가 시작이 된 것입니다.
이 땅에 교회가 어떻게 세워져 가는지를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마귀로부터 공격을 당해 왔습니다.
그 이유를 오늘 본문을 보면 알게 됩니다.
왜? 마귀가 교회를 핍박하는지 그 원인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계시록 12장은 땅에 이야기와 하늘이야기
그리고 땅 이야기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졌습니다.
1-6절까지는 이 땅에서 일어난 것이고,
7-12절까지는 하늘에서 일어난 것이고,
13-17절까지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것을 말해주고 있어요.
그러니까 땅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여주고,
하늘에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또 다시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과,
하늘로 가셔서 하신 일과,
세상 속에 남아 있는 자기 백성들을 세상 끝 날까지 어떻게 지켜내시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 오늘 본문을 살펴봅시다.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두 가지 큰 이적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는, 해를 입은 여자에 관한 것인데, 이는 예수님과 교회에 관한 이적입니다.
다른 하나는, 붉은 용에 관한 것인데 이는 마귀와 그가 하는 일에 관한 이적입니다.
▲그럼 먼저 땅에 이적을 봅시다.
계시록 12장 1절에서 6절입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 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사도 요한은 ‘하늘에 큰 이적’을 보았어요.
그런데 내용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고 있어요.
왜,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늘에 이적이라고 합니까?
이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것은 하늘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땅에서 해를 입은 한 여인이 행하는 일이
하늘에 속한 일이란 말입니다.
이적으로 보여준 여인의 모습을 봅시다.
사도 요한이 보니까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하나님께서 여자를 코디를 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자에게 해를 입혀 주셨고 달을 밟게 하였고 면류관을 씌워준 것입니다.
도대체 이 여자가 누구일까요?
세상에 이런 여자가 있었나요?
없었어요.
그럼 이 그림이 무얼 말하고 있을까요?
여자의 이 모습을 뭐라고 했나요?
‘이적’이라고 했지요.
이적이란? 뭔가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적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알려주는
싸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뭔가를 설명해 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걸 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비유로 제자들을 가르친 것과 같습니다.
▲그럼 여자부터 알아야겠지요.
성경에 최초로 나타난 여자가 누구인가요?
에덴동산에서 나타났습니다.
하와입니다.
하와는 아담으로부터 나왔습니다.
하와가 아담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곧 하와는 아담의 또 다른 모습이 됩니다.
아담이 하와를 보고서 한 고백이 뭔가요?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 이라고 했지요.
이건 곧 하와는 자기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담의 또 다른 모습으로 하와를 만드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와는 아담의 영광을 담고 있는 것이 됩니다.
알다시피 아담과 하와는, 예수그리스도와 교회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아담과 하와를 가지고, 예수님과 교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교회를 어떻게 세우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한 후
그 몸에서 뼈를 취하여 여자를 만든 것처럼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이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나타났어요.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그 피 값으로 교회를 세우셨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담을 가지고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할 일을 예표적으로 하신 것입니다.
이걸 오늘 본문식으로 말하면 ‘이적’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말하는 이적인가요?
장차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교회를 세우는 이적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행한 것을 그대로, 예수님에게 하셨습니다.
하와 속에 아담의 영광이 담겨져 있듯이,
교회 속에도 예수님의 영광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걸 구약 이스라엘로 살펴봅시다.
구약 이스라엘이 어디에서 나왔나요?
아브라함 언약으로부터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 속에서 하와를 빼내듯이
아브라함 속에서 이스라엘을 빼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스라엘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예표하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 하실 때 지옥에 간 부자가 하나님을 누구라고 부르던가요?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라고 하지요.
아브라함이나 하나님이나 같은 의미가 되어요.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아버지이고 하나님과 같습니다.
언약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브라함과 하나님은 같아요.
아브라함 언약에서 이스라엘이 나왔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뜻입니다.
이걸 남자와 여자로 보면 아브라함은 아담처럼 남자 입장이 되고,
이스라엘은 하와처럼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남자는 누구를 예표합니까?
하나님을 예표해요.
그래서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남편이라 하고, 이스라엘을 아내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여자가 해를 입었다는 것은, 남자의 영광을 몽땅 뒤집어쓰고 있다는 뜻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여자로서 남자인 하나님의 영광을 몽땅 담고 있는 민족이에요.
이걸 교회라고 합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구약 교회’에요.
그러니까 ‘해를 입은 여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담고 있는 구약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구약 교회는 야곱의 12 지파로 구성 되었습니다.
이것을 ‘열두 별의 면류관’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발 아래 달이 있다는 것은, 여자는 달 위에서 존재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달을 밟고 서 있다는 의미도 되지만,
그보다 더 큰 의미로 이 여인은 ‘세상에 속하지 않고 세상 위에 속하여 있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달은, 육을 상징하고 이 세상을 상징해요.
하나님께서 해와 달을 만들어서 해는 낮을 주관하게 하셨고, 달은 밤을 주관하게 하셨어요.
해는 낮으로서 하늘을 의미하고, 달은 어둠으로서 땅을 의미합니다.
이러면 해를 입은 여자의 발 아래 달이 있다는 것은
이 여자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가 이 세상을 상징하는 달 위 하늘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해되지요.
▲그런데 이 여자가 임신을 하고서 아이를 해산하고자 합니다.
어떤 아이인가 하면, 이 아이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 아이입니다.
만국을 다스릴 남자 아이는 메시야를 말해요.
이러면 구약 교회가 메시야를 품고 있음이 됩니다.
이는 장차 오실 메시야를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 신앙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메시야 대망 사상 신앙이었어요.
야곱이 죽기 전에 유다에게 축복을 할 때 “실로가 오시기까지” 라는 말을 하지요.
창 49장 10절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이 말은 구약의 열 왕들이 일어나고 지는 일들이
실로가 오기까지 계속 된다는 뜻입니다.
실로가 오면 열 왕의 시대는 끝이 납니다.
여기서 말하는 실로란? 메시야를 말해요.
그러니까 야곱의 12 아들로 세워진 구약 교회는
메시야를 기다리는 신앙을 토대로 세워져 있는 것입니다.
▲해를 입은 여자는 구약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아이를 임신했어요.
이 아이가 어떤 아이라고 했나요?
철장으로 만국을 심판 할 아이라고 했지요.
이는 마귀의 권세를 깨트릴 것이란 말입니다.
마귀의 권세를 누가 깨트립니까?
여자가 낳을 아이이지요.
마귀가 무슨 짓을 합니까?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타락케 하였어요.
하나님을 떠나게 하였어요.
그래서 구약 교회가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구약 교회가 타락하는 이유는
마귀의 권세를 깨트릴 아이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구약 교회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아이를 임신하였지
그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성경은 구약 이스라엘의 결론을
타락하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은 반드시 타락해야 해요.
죄를 못 이겨요.
죄를 못 이기기 때문에 죄를 이길 메시야를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메시야가 와서 철장으로 이스라엘로 타락케 한 그 원흉인
뱀의 머리를 깨트려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이기는 교회를 새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게 신약교회에요.
신약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해요.
왜냐하면, 예수님의 피 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신 12장의 전체 그림이
바로 예수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약 교회를 실패케 한
그 원흉을 잡고,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뱀이 이기지 못하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호 아래 있는
새 언약으로 세워진 교회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마귀가 알아요.
그래서 여자가 아이를 낳으니까, 붉은 용이 그 아이를 삼켜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아이가 자기의 머리를 깨트리기 때문입니다.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린다는 것은 만국을 심판한다는 말입니다.
마귀는 이를 알고 여자가 낳은 아이를 삼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이 여자가 아이를 낳자 하늘로 데리고 갑니다.
하나님이 아이를 하나님 보좌 앞으로 데리고 가자, 하늘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미가엘과 붉은 용과의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미가엘이 이깁니다.
그러자 용이 하늘로부터 쫓겨나서 땅으로 내려갑니다.
미가엘은 “하나님과 같은 사람이 누구리요”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천사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는 사람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사람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이 누구신가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마귀와 싸우는 것을, 미가엘과 용이 싸우는 것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용과 싸우는 미가엘은 예수님의 또 다른 모습이에요.
예수님이 미가엘이라는 말이 아니고
미가엘이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힘 쎈 천사로 자주 묘사하고 있어요.
오늘 본문의 초점은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 아이를 낳은 ‘해를 입은 여자’에게 있어요. ‘남자 아이’가 아니에요. 요한계시록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에요. 지금 교회가 엄청난 핍박을 받고 있어요. 누구 때문에 핍박을 받는가요? 예수님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예수님은 만국을 다스리는 만 왕의 왕이세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는 분입니다. 이 다스림 속에는 마귀의 세력도 포함이 되어 있어요.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자 제일 먼저 반발한 세력이 누구인가요? 귀신들이지요. 귀신들이 하는 말이 왜 당신이 와 가지고, 우리의 때를 단축시켰느냐고 아우성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입니다. 마귀가 그 동안 땅에서 주인 노릇을 했어요. 죄인들에게서 왕 노릇했어요. 죄인들에게 죄와 사망의 권세로 왕 노릇했어요. 그래서 마귀를 일컬어 이 세상 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걸 알려면 에덴동산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아야 합니다. 에덴동산에 뱀이 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뱀을 저주 하고 내어 쫓아 버렸어요. 이건 마치 하늘에 붉은 용이 쫓겨난 것과 같아요. 하나님이 뱀을 어떻게 저주 하셨나요? 종신토록 흙을 먹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흙을 마귀에게 주었어요. 흙은 이 세상을 상징해요. 하나님이 마귀에게 이 세상을 준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를 세상 신이라고 합니다. 마귀가 이 세상 주인이에요. 마귀는 하나님으로부터 넘겨받은 권세를 가지고, 이 세상 신으로서 왕 노릇했어요. 언제까지인가 하면 정한 때까지 에요. 그 때가 언제인가 하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시자, 귀신들이 혼비백산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4장을 보세요. “5절.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6절.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근데 이 세상을 만드신 진짜 주인이 오신 겁니다. 해를 입은 여자가, 이 세상을 심판하실 진짜 주인을 낳은 것입니다. 그 진짜 주인이신 남자 아이가 하늘로 올라가서 이 땅을 지배하는 공중 권세 잡은 용을 박살을 낸 겁니다. 그래서 용이 땅으로 쫓겨 와서, 이 남자 아이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용을 일컬어 뭐라고 하는가요? 옛 뱀, 마귀, 사단이라고 하지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그 뱀이에요. 에덴동산에서 뱀을 쫓아내신 분이 누구신가요? 하나님입니다. 마귀를 멸하는 분도 하나님이에요. 사단의 권세를 깨트리는 분도 하나님이세요. 이 역사 속에 마귀를 잡으러 오신 분이 누구신가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뱀의 머리를 깨트렸어요.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렸어요. 그리곤 하늘로 가셨어요. 예수님이 하늘로 가서 이 세상의 각종 더러운 영들과 귀신들을 진두지휘 하던 용을 잡아서 땅으로 내동댕이쳤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하시고 하늘로 올라오니까 용이 하늘에 있을 자리가 없어진 겁니다. 그래서 땅으로 쫓겨 난 겁니다. 땅으로 쫓겨난 것은 지옥으로 던져진 것과 같아요. 왜 그런가 하면 이 세상은, 장차 불로 심판을 당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마귀를 불 못에 던진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이 세상은 불로 심판을 당하는 곳이기 때문에, 불 못과 같은 것입니다. ▲계시록 12장을 보세요. 13절.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14절.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5절.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16절.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17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용이 자기가 땅으로 쫓겨난 분풀이를 아이를 낳은 여자에게 합니다. 예수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여자를 큰 독수리 두 날개로 받아서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즉 1260일 동안 보호하고 지키시면서 양육을 하는 것입니다. 이를 본 뱀이 물을 강같이 토하여서, 남자를 낳은 여자를 떠내려가게 하고자 합니다. 이 때 땅이 도와서 뱀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다 삼켜버립니다. 그러자 뱀이 분노하면서 ‘여자의 남은 자손’들과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여자의 남은 자손’을 뭐라고 하는가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라고 하지요. 이는 신약의 성도들을 말해요. 이걸 교회 이야기로 해 봅시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초대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자 로마 황제가 큰 핍박을 가해서 교회를 흩어버립니다. 이 때 교회가 세상 속에서 지하로 숨어들게 됩니다. 이름하여 지하 카타콤 교회 시대를 맞이한 것입니다. 교회는 감추어져 있지만, 예수의 증거를 가진 성도들은 곳곳에서 활동을 했어요. 이 때 수많은 성도들이 핍박을 받았어요.. 붙잡혀서 죽임을 당하기도 했어요. 뱀이 예수님은 이길 수가 없지만, 교회는 해코지 할 수가 있어요. 마귀는 성도의 구원을 빼앗아 가거나, 지옥에 보낼 수는 없어요. 하지만 성도들을 시험 들게 하고 넘어지게 할 수는 있어요. 욥을 보세요. 하나님이 마귀에게 욥을 붙여주지요. 그러면서 욥의 생명은 손을 대지 못하게 합니다. 마귀는 욥의 생명은 손을 대지 못하였지만, 집안을 풍비박산하게 하고 재산을 거둬가고, 병들게 하고, 고난 속에 집어넣었잖아요. 성도들도 욥처럼 시험을 당해요. 하나님께서는 마귀로 하여금 성도들을 시험케 허락을 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후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이 땅에 예수님의 몸된 교회가 세워지자 마귀는 그 수하들을 동원하여서,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보세요. 교회가 누구에게 핍박을 당하는가요? 전부 마귀의 종인 거짓 종들로부터 핍박을 받았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왜 뱀이 여자를 핍박하는가요? 예수를 낳아서 그래요. ▲해를 입은 여자를, 구약 교회로만 국한 시키지 말고, 신약 교회로도 적용할 수가 있어요. 마귀는 복음 전하는 종들을 핍박하잖아요. 복음 전하는 교회를 핍박하잖아요. 왜 그런가요? 복음 전하는 교회에서, 예수와 같은 성도들을 낳기 때문입니다. 해를 입은 구약 교회는, 예수를 낳았고, 진리로 무장한 신약 교회는, 예수를 닮은 성도를 낳아요. 그러니 십자가 복음을 전하면 이단이니 삼단이니 하면서 핍박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를 낳았다’고 하니까 이상하게 들리지요. 우리 상식으로는 예수가 교회를 낳지 어떻게 교회가 예수를 낳느냐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맞아요. 그림을 잘 보세요. 해를 입은 여자가 남자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 남자 아이는 세상을 심판하는 아이에요. 이 남자 아이가 하늘로 올라가서, 먼저 이 세상을 다스리는 용을 심판했어요. 그러자 용이 땅으로 쫓겨났어요. 용이 화가 나서, 남자 아이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종노릇하는 것과 같아요. 언제까지 했나요? 아브라함과 언약하신 때까지 했어요. 아브라함과 언약한 정한 때까지는, 애굽에서 종노릇하고 있어야 해요. 그러다가 때가 되면 하나님이 구원자를 보내서 종에서 해방시키십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애굽에 있는 바로에게 가서 ‘내 아들을 내어 놓으라’고 하지요. 모세는 바로에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장자라고 하면서 내어 놓으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이 정한 시기까지 종노릇한 것입니다. ▲이 그림이 그대로 신약으로 오면 예수님 이야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세와 같은 구원자에요. 누구를 구원하러 오셨는가 하면, 율법 아래서 종노릇하는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러 오셨어요. 잘 보세요. 예수님이 때가 차매 오셨다고 하지요. 어떻게 오셨나요? 율법 아래 나게 하셨다고 하지요.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라고 하지요. 그러면서 “율법 아래 나게 하셨다”고 합니다. 율법을 여자와 같이 말하고 있지요. 이렇게 되면 구약의 율법 교회가,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 아래서 났어요. 그러니까 옛 언약 아래 있는 구약 교회가, 예수를 낳은 해를 입은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언약 공동체에요. 언약을 위하여 생겨났어요. 율법은 옛 언약으로서 죽이는 언약이고, 은혜는 새 언약으로서 살리는 언약입니다. 예수님은 구약 교회를 통해서 낳아짐을 당하였고, 신약 교회를 낳으셨어요. ▲또 예수님은 율법 아래서 났어요.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고 하늘로 올라 가셨어요. 그리곤 성령을 보내서, 예수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신약교회는 예수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을 바탕으로 세워졌어요. 이렇게 되면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 아이를 낳은 여자는, 구약 교회가 되고, 예수의 피로 낳아진 새 언약의 신약 교회는, 뱀으로부터 핍박을 받는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뱀이 물을 강같이 토하여서 떠내려가게 하려는 것이 바로 예수의 피로 세워진 신약교회에요. 뱀으로부터 핍박을 받는 여자가 바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요. 하나님은 사도 요한에게 예수를 통해서 낳아져서 이 세상에 있는 교회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요한계시록을 쓰게 하신 것입니다. 고난 받는 성도들에게 뱀이 아무리 물을 강같이 토하여, 너희를 떠내려가게 하여도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이여 낙심하지 말고 이겨라! 비록 예수를 믿는 것이 아픔이긴 하지만 ‘장차 천국에서 엄청난 영광을 주기 위한 것이니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이게 12장의 내용이에요. 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신약의 모든 교회를 상징해요. 그러니 신약의 교회는 뱀으로부터 수많은 핍박을 받는 것으로 이미 나타났고, 이는 마귀가 예수님에게 당한 분풀이를, 교회에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예수를 품고 있는 성도는, 이 땅에서 고난을 당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진짜 두 증인들처럼 복음을 전하면, 뱀 새끼들이 난리를 쳐요. 누가 뱀 새끼냐? 육에 속한 자들이에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시고 ‘의인 아벨로부터 사가랴의 피가 이 성중에 가득하다’고 하지요. 의인이 예루살렘 밖에서 죽임 당하는 법이 없다고 했어요. 이는 곧 예수님이 타락한 교회로부터 죽임을 당하였듯이 두 증인들도, 타락한 교회로부터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1장에서 두 증인들이, 교회에서 죽임 당한 것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어떤 교회가 타락한 교회냐? 예수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을 전하지 않는 교회에요. 하나님의 언약에 관심이 없는 자들이 독사의 새끼들이에요. 예수님 당시 뱀들은 바리새인들이었어요. 그들은 신앙을 빌미로 호의호식하였어요. 이 땅에 영광을 추구했어요. 백성들의 피를 빨아 먹고 산 자들이에요. 이 시대 독사 새끼가 누구냐? 교인들의 피를 빨아 먹는 지도자들이에요. 세상 일락을 즐기는 자들이에요. 한마디로 돈 버러지들이에요. 뱀이 물을 강같이 토한다는 말은, 뱀의 말을 쏟아낸다는 뜻입니다. 뱀이 공격하는 대상은 교회에요. 그래서 교회마다 뱀의 말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갖가지 공교하게 만든 이론으로 교인들을 미혹해요. 그 속에 말씀이 없는 사람은 다 속아요. 그럴듯하기 때문입니다. 말씀 없이 교회 다니는 사람은 거짓 목사들의 먹잇감이에요. ▲뱀은 흙에 속하였어요. 그러므로 뱀은 땅에 말을 하는 것입니다. 뱀은 하늘의 말을 몰라요. 땅에 말은 무엇이고 하늘에 말은 무엇인가요? 구약에 거짓 선지자들이 어떤 말로 백성들을 미혹했는지를 보면 이 시대 뱀의 새끼들이 어떤 말로 미혹하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구약의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언약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떡을 쫓아갔어요. 이게 우상숭배 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우상숭배 하는 목적은 단 하나에요. 이 땅에서 배부르게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서입니다. 이 세상 영광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자들을 십자가의 원수라고 했어요. ▲빌립보서 3장 18절을 봅시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바울은 땅에 일을 생각하는 자를 ‘십자가의 원수’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땅에 일이란? 먹고 살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을 말해요. 그래서 그들의 신은 “배” 라고 하는 것입니다. “배”란? 의역하면 밥이고 돈이에요. 그럼 십자가의 원수가 누구인지 드러났습니다. 관심사를 하늘에 두지 않고, 이 땅에 부귀영화에 두는 자들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 믿고 복 받고 잘 살아야 한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이 시대 거짓 목사들이 땅에 것을 주고 있어요. 교인들을 땅에 붙잡아 두고 있어요. 땅의 일에 정신을 빼앗고 있어요. 뱀처럼 흙의 기운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지금 어디에 보냅니까? 빌립보 교회에요. 왜, 눈물 흘리며 말합니까? 교회 안에 뱀의 말을 듣는 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지금 이 시대 교회에다가 말하고 있어요.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고 여러 번 말했다고 합니다. 왜, ‘여러 번 말했다’고 할까요? 늘 있어 왔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도 교회 안에는 뱀 새끼들이 우굴 거렸고, 지금 21세기에도 우굴 거리고 있어요. 두 증인들이 죽자 기뻐하면서 예물을 보낸 자들이 누구입니까? 땅에 거하는 자들이지요. 두 증인들이 교회 안에서 어떤 복음을 전했나요? ‘작은 책’ 곧 영원한 복음이에요. 거짓 종들은 구약의 복을 가지고 물질에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구약은 진짜 복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기 위한 표상으로서의 복이에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은, 땅의 복이 아니라 하늘의 복이에요. 창세기 1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언약을 하실 때 땅과 후손을 주겠다고 언약을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땅이란? 묵시 안에서의 땅이에요. 이 세상에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나라를 말해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가나안에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이 지으실 한 성을 바라보고서 이 땅에서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살았어요. 구약의 증거는 인간들은 배가 부르면 반드시 하나님을 떠나는 것으로 말하는 이유도 이 땅에 것은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것임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라는 족장 시대에는 복이 물질적인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것이 시편에서는 주야로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족장 시대에는 물질 많음이 복이었지만, 국가가 세워지고 성전 시대가 열리고 난 후에는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새 언약 안에서 복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정의해 주셨어요. 그게 산상보훈에서 팔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을 봅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팔 복을 보세요. 이 땅에 것이 없어요. 물질적인 것이 없어요. 전부 신량한 것이에요. 이것은 거듭난 하늘에 사람들이 추구하는 복이에요. 그래서 신약에서는 땅에 것을 복이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땅의 복이, 도리어 하늘에 복을 가리는 미혹의 수단이 되어요. 요한계시록에도 일곱 가지 복이 나오는데, 땅에 것을 복이라고 한 적이 없어요. 예수와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복이라고 했어요. 계시록에 나오는 7가지 복을 살펴봅니다. 1.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계1;3) 2. 주 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다, (계 14:13) 3.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 (계 16:15) 4.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가 복이 있다, (계 19:9) 5.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 복이 있다, (계 20:6) 6.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 (계 22:7) 7.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다, (계 22:14) 산상보훈에서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상태를 말하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는 것을 복이라고 했어요. 장차 예수그리스도가 몰고 오는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에요. 하늘나라에요. 하늘나라는 떡에 가치로 살지 않고 예수의 가치로 사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예수님의 종들은 하늘나라 복을 이야기 하지 이 땅에 것을 복이라고 하지 않아요. 이 땅에 것을 복이라고 하는 것은, 이 땅에 속한 뱀의 후손들이 해요. 땅에 것을 복이라고 가르치는 자도 뱀 새끼이고, 땅에 것을 달라고 하는 자도 뱀 새끼에요. 유유상종이에요. 이 시대 뱀의 말이 뭐냐? 예수 믿고 이 땅에서도 잘 살고, 죽어서도 천국에 가자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세상 종교가 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 종교는 이 땅에서도 복 받고 잘 살다가, 극락에 가자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이고 종교가 호황을 누리는 것은 인간들이 바라는 것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는 불교가 되었어요. 교회나 절간이나 똑같아요.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 땅에서 복 받고 잘 살다가 죽어서 극락에 가자는 것입니다. 목사나 중이나 같은 말을 해요. 기독교 방송이나 불교 방송이나 추구하는 것이 같아요. ▲예수가 누구 손에 죽었는지를 기억하세요. 누가 예수를 죽였는지를 보세요. 땅에 속한 거짓 종들의 손에 죽임 당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복음을 누가 싫어하는가 하면 땅에 복을 말하는 자들이에요. 왜 뱀이 물을 강같이 토해낸다고 합니까? 이는 종말에는, 교회 안에 ‘뱀의 사상’이 홍수를 이룰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의 결론을 집 짓는 비유로 하고서는, 그 집을 홍수로 시험을 한다고 하지요. 이는 종말의 신앙은, 말씀으로 시험 당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은 홍수 속에서도 보호해 주세요. 마치 노아를 홍수 속에서 보호해 주셨듯이, 종말에도 자기 백성들을 보호해 주세요. 어떤 이들은 광야에 예비처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어떤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그리스도 안을 말해요. 진리 안에 있으면 뱀의 말에 속지 않아요. 복음 안에 있으면 거짓 종들의 말에 속지 않아요. 마태복음 2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종말의 징조를 말씀하시면서 적그리스도가 많이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한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광야에 있다고 하여도, 미혹당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이걸 이 시대적으로 말하면 ‘어디에 예비처가 있다고 하여도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디에 예비처가 있다고 하는 자들이 바로 적그리스도 세력인 것입니다. 이걸 다른 말로, ‘어느 집단에 가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어느 목사만 복음 안다고 하는 것도 동일해요. 가짜들은 항상 어느 특정한 사람을 좇게 하고, 어느 특정한 집단을 따르게 해요. 지금은 복음을 가장한 사이비들이 너무 많아요. 복음을 가지고 자기 세력을 넓히고자 하는 자들을 조심하세요. 이러한 자들의 특징이, 복음 아는 것으로 권력을 삼아요. 마치 자기만 복음 다 아는 것처럼 행세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추종하게 하고 미혹하는 것입니다. ▲뱀이 물을 강같이 토하여도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들을 지켜 주세요. 하나님이 아이를 낳은 여자를 광야 자기 곳으로 인도하지요. 그리고 1260일 동안 양육하시지요. 1260일은 신약의 전 기간을 말해요. 그리고 광야란? 세상과 격리된 곳을 말해요. 이건 장소적인 의미보다는 세상 가치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말해요.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시면서 광야로 나가시지요. 이는 타락한 예루살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강도의 굴혈이 되었어요. 성전을 지키는 자도 강도이고, 성전을 찾는 사람도 그 일부는 강도에요. 성전을 매매하는 곳이라고 한 것은 서로의 계산이 맞아서 사고팔기 때문입니다. 매매란? 사는 자가 있고 파는 자가 있다는 말입니다. 누가 무엇을 사고 누가 무엇을 팔았나요? 제사장들은 제사를 팔았고, 백성들은 속죄를 샀어요. 무슨 말인고 하니 백성들은 살면서 죄 지은 것을 제사장에게 제물을 주고 탕감 받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제사를 지내줌으로서 제물을 받아 챙기는 것입니다. 마치 가톨릭에서 면죄부 파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예수님은 이건 성전이 아니고, 강도의 굴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곤 예루살렘을 떠나 광야에서 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광야란, 타락한 곳을 떠난다는 의미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이 그 속에 광야 신앙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광야 신앙이란, 하늘에 가치로 사는 것을 말해요. 떡에 가치로 살지 않으니까 거짓 목사들이 떡을 준다는 말에 미혹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땅에 가치로 살지 않기 때문에, 뱀의 말에 속지 않는 것입니다. 뱀의 말에 넘어 가는 것은, 뱀이 주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에요. 돈에 가치로 사는 사람은, 돈을 준다는 목사를 쫓게 되어 있어요. 결국 그 속에 품고 있는 가치관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광야가 되기도 하고, 예루살렘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으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사는 이유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세상 것을 들고 왔지만 예수님은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만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산다’고 한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사는 이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떡을 안 먹었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관심사는 오로지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사기를 당합니까? 탐욕이 가득한 사람이에요. 사기꾼이 누구에게 접근을 합니까?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입니다. 그 속에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은 반드시 사기꾼이 접근하게 되어 있어요. 그의 말을 듣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일확천금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절대로 사기 당하지 않아요. 사기꾼들은 그런 사람에게 접근하지 않아요. 교인들이 왜 목사들에게 돈을 뜯깁니까? 이는 돈 내고 돈 벌고 싶기 때문입니다. 돈 바치면 복 받는다고 하니까 돈을 내는 겁니다. 이게 바로 거래이고 매매하는 것입니다. 그 속에 돈이 주인으로 자리 잡고 있으니까, 사기꾼 목사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언약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보세요. 그런 말에 관심도 없을뿐더러, 사기꾼 목사가 접근하지 않아요. 사기꾼 목사가 접근을 한다는 것은, 그가 돈을 좇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기꾼 목사는, 돈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을 귀신같이 알아요. 그런 쪽으로 촉이 엄청 발달해 있어요. 더듬이를 발동해서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결국 먹고 먹힘을 당하는 것입니다. 왜, 사이비 교주들이 활개를 치는가요? 이는 사이비 교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이비 신자는 반드시 사이비 목사를 만나게 되어 있어요. 쇠붙이가 자석에 끌리듯이, 육에 속한 자들은 뱀에게 걸려들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은 뱀을 풀어서, 땅에 속한 자들을 추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말이에요. 이 시대 교회 안에 가짜 목사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땅에 속한 신자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세속화되었기 때문에, 뱀의 후손들이 교회로 몰려들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먹잇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갑옷을 입지 않으면, 언제 미혹 당할지 몰라요. 그러므로 말씀에 든든히 서서 말씀을 분별하여야 합니다. 내가 소경이면, 소경을 인도자로 두게 되고 결국엔 데마처럼 세상을 사랑하고 예수를 떠나게 됩니다. 사단을 일컬어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하지요. 이는 그럴 듯한 말로서 미혹한다는 말입니다. 거짓 종들의 말은, 마치 선악과처럼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워요. 그럴듯하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여서, 하늘의 말과, 땅의 말을 분별하여야 합니다. 지금은 속이는 자가 많은 때입니다.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기 때문에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곧 예수님이 오셔서, 이 놈들을 잡아서 불 못에 던질 것입니다. 반면에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성도들에게는, 상을 베푸실 것입니다. 그 날이 곧 오고 있습니다. 문 앞에 이르렀어요. 그러니 깨어 근신하고 기도하면서 뱀의 말에 속지 말고 영원한 복음 안에 든든히 서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마지막 때에 진리를 분별하는 눈을 주시고 귀를 주옵소서. 눈을 떠서 시대의 징조를 보게 하시고 귀를 열어서, 천국 복음이 들려지게 해 주시옵소서. 이제 말씀에 든든히 서서 뱀의 말에 미혹당하지 않고 오직 하늘나라만 바라보고 좌고우면치 말고 걷게 하옵소서. 주께서 항상 내 곁에 서서 응원하고 있다는 것이 보여지고 믿어지게 하여서 담대히 두 증인들이 걸어갔던 그 길을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지금도 나타나고 있으며, 장차도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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