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문을 여는 기도 약5:16~18 16.02.28. 스크랩, 출처
야고보서는 기도로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야고보서의 주제는 성숙 maturity, 성숙한 삶입니다.
특별히 '행함을 통한 성숙'을 강조합니다.
'믿음은 말이 아니고, 행함입니다!'라는 논지입니다.
그런데 왜 야고보서의 마지막을 기도로 마무리지을까요?
‘신앙인의 믿음의 삶에, 행동이 구체화된 것이 기도’ 라는 관점에서
아마 야고보가 기도를, 이 책의 마지막에 다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능력있는 삶을 살려고 하면, 반드시 기도라고 하는 이 통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이죠.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도"를 귀가 따갑도록 듣습니다.
기도를 빼고 신앙생활을 얘기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기도 없는 신앙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믿음이 강화되고, 우리 행동이 구체화될 때,
우리가 성숙한 신앙과 삶으로 도달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 엘리야
그러면서 야고보는 구약의 한 인물, 엘리야를 예로 듭니다.
구약의 대표적인 선지자입니다. 본문은 왕상18장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런데 기도의 모델로 엘리야를 예로 들고 있는데요,
사람들이 엘리야를 예로 들면,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구약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를 예로 들면, 우리하고 너무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고, 위대한 기적을 일으켰던 엘리야 선지자를 예로 드니까
일단 우리가 기가 죽는거죠. 비교할 것을 비교해야죠.
옆집에 박집사랑 비교하면 할 만한데, 나하고 엘리야하고는 비교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거죠.
자 그래서 야고보도 이미 알고, 우리의 입을 막습니다.
약5: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Elijah was a man with a nature like ours
우리와 성정이 같다는 말은, 쉽게 얘기하면 우리하고 똑같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온 인물 중에, 어떤 사람도 날때부터 특별히 위대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도, 바울도.. 성경은 인간을 추앙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다 연약한 존재입니다. 사람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특별하게 만들어 쓰시는 하나님이 특별하신 거죠. ‘우리와 성정이 같다’는 말입니다.
엘리야를 예로 들었다고 해서, 우리와 거리가 먼 사람을 예로 든 게 아니고
엘리야도 우리와 똑같이 연약하고, 한계를 갖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자 그런 면에서 우리는 마음을 푹 놓고, 본문의 엘리야를 살펴보십시다.
갈멜산 정상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겨루어 승리했던 엘리야.
그는 하루아침에 그렇게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능력있는 기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엘리야 역시 하나님의 부재를 많이 경험하고 살았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음성을 많이 들은 것 같고, 엘리야도 기도를 통해서 기적을 체험했다고 했는데,
왜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가요?
그것은 여러분, 드러난 것만 우리가 보기 때문에 그렇고,
사실은 보이지 않는 커튼 뒤에, 그들의 삶속에서 비밀이 있는 거죠.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쌓여져갔던 (기도의 내공의) 영적 비밀을 갖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여러분, 기도라는 것은 커튼 뒤에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삶속에서 그가 얼마나 기도하는지, 거기에 비밀이 있는데,
겉으로 드러난 어떤 현상만 보면서 ‘와, 저 분은 나와 다르다.’
그게 아닙니다. 그의 이면에 감추어진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하루아침에 되어지는 게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았지만,
그의 인생에 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은 아닙니다. 그가 잘못된 시행착오를 수없이 겪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하나님의 음성을 명확히 듣고, 순종하는 믿음의 점진적 변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능력있는 기도는,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특별한 사람이 능력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특별함을 끌어내는 경험이 쌓여져가면서, 어느 날 그런 역사가 일어났다는 거죠.
그러므로 여러분, 엘리야가 우리와 동일한데도 불구하고,
놀라운 역사들을 일으킵니다. 불을 내리게 하고, 물이(비가) 내리게 하고,
3년 반동안 닫혔던 하늘을 열리게 하는, 그런 위대한 기도를 이루어냈다면
오늘 엘리야와 동일한 우리에게도
그런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영적 자신감을 가져라'는 의미에서
그는 ‘우리와 성정이 똑같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런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이 얘기를 야고보는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아침에, 영적 자신감을 얻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옛날에는 목사님들이 교구별로 성도님들께 안수기도도 많이 해드렸습니다.
그래서 막 줄 서고 그랬는데, 저희가 요즘 거의 교역자 안수기도 시간을 잘 안 가집니다.
왜냐면 내가 힘들고 영적으로 연약하면,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을 필요가 있지만,
성도님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에게는
놀라운 영적인 역사가 일어날 수 있는, 자격이 다 주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때는 굉장히 영적으로 충만한 상태에 있고, 오히려 목사님들이 비실비실하면,
오히려 안수를 해 주어야 합니다. 서로 도와주는 거죠. 타이틀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신약시대는 모든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런 영적 권세들을 주셨기 때문에,
엘리야와 동일한 그 어둠의 시대에, 하늘 문을 열렸던 엘리야와 동일한 역사가
오늘도 우리에게 일어납니다.
엘리야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은 동일하게 나에게도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 영적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신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들은 의인입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약5:16
예수 믿어 의롭게 된 사람들, 우리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엘리야의 기도의 특징>을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적용하고 우리도 동일한 은혜를 얻기 원하는데요,
◑1. 그는 작은 기도의 응답들을 쌓아갔습니다.
엘리야는 한순간에 막바로 불이 내리게 하고, 물이 내리게 하는 기도를 한 게 아니고
아주 자신의 일상속에서, 크고 작은 소소한 기도의 응답들을 쌓아갔다는 거죠.
그릿 시냇가에서 까마귀가 매일 물어다주는,
매일 어떻게 아무런 생존 대책이 없는 환경속에서,
하나님이 까마귀를 통하여 자신을 먹여 주시는 그 과정속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하나님의 공급을 기도를 통해 경험한 것입니다.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내는 과정 속에서 경험하고,
갈멜산 정상에서 그는 불이 내리게 하는, 우상숭배자들을 척결하는 승리에 이르기까지,
그런 여러 과정 속에서, 기도의 응답의 경험들이 하나, 둘 쌓여갈 때
믿음이 강화되는 것입니다.
단 한 번에 기도로, 능력있는 기도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가 점점 쌓여져 간다는 것이죠.
오랜 세월동안 크고 작은 기도의 응답들이 쌓여가면서,
그 응답의 누적이, 내 믿음을 자라가게 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속에서 기도응답이 없다면, 신앙은 이미 매마른 종교생활입니다.
신앙의 활력이 어디서 나오는가 하면, 기도응답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그걸 경험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에 신바람이 나고, 생동감이 돋게 만드는 그것은
기도응답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기도하면 응답하시는 그 하나님을 경험할 때, ‘아,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영적 담력이 거기서 생기는 것입니다.
무슨 거대한 일이 아니라도, 일상의 작은 소소한 응답들이 쌓여가면,
그 속에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깊어지고, 영적인 활력을 얻게 되고, 믿음이 자라가는 것입니다.
최근에 여러분들의 삶과 신앙생활 속에서
여러분들에게 기도를 통하여 응답받았다는 스토리들이 있습니까?
그것이 우리의 믿음의 세계이고, 그 만큼 우리의 믿음은 자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응답이 누적되어갈 때, 우리의 신앙은 날개를 펴게 될 것입니다.
◑2. 엘리야의 기도의 특징 두 번째는, 엘리야는 믿음의 기도를 드렸어요.
약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일으키나니’
기도와 믿음은 한 쌍으로 병행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기도 자체를 믿지 않는, 즉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는데, 기도가 나옵니까? 안 나옵니다.
기도 응답을 믿지 않는 거죠. 그런 기도는 무의미합니다.
응답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데, 어떻게 기도가 나오겠습니까.
기도응답 자체를 안 믿기 때문에, 기도를 안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기도하면 응답받는다는 확신을 갖는 사람은, 기도를 안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엘리야 시대는 불신앙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시대에, 기도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기도의 사람 엘리야가 우뚝 시대 속에 솟아올랐던 거죠.
엘리야는 무엇을 기도했습니까?
3년 반동안 비가 오지 않았던 기근에 대해, 비를 구했습니다.
여러분, 3년 반동안 하늘이 닫힌 것입니다. 비가 안 왔습니다.
우리가 한 여름에, 비가 안 와도 농작물이 야단나잖아요.
그런데 3년 반동안 하늘이 닫혀버린 것입니다.
그 먼지가 막 날아다니고, 짐승들이 그냥 물이 없어서 다 죽어가서 사체가 뒹굴고 있었습니다.
비가 올 확률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기도를 하는데도,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늘은 너무 맑고 구름 한 점 없었습니다.
종을 시켜 나가서 하늘을 보도록 해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엘리야는 마치 비를 본 것처럼 말합니다.
아합왕에게 찾아가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그랬어요. 왕상18:41
지금 완전히 말라있고, 하늘이 닫혀있는 상황입니다.
비 올 조짐이 전혀 없어요. 번개치는 것도 없습니다. 구름 한 점 없습니다.
그런데 아합왕에게 엘리야가 찾아가서, ‘큰 비소리가 있나이다.’
여러분,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감각기능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영적 청력이라는게 있어요.
엘리야는 눈앞의 현상이 아니라, 비가 올 것이라고 하는 믿음을 가졌는데,
그 믿음의 근거는 무엇이었냐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다가 시험드는 이유가 뭐냐면, '근거 없는 자기 확신' 때문입니다.
뭐 자기는 응답을 확신한데요.
기도는 무조건 믿는 맹신적 행위가 아닙니다.
엘리야의믿음의 근거는,
하늘이 완전히 말라있는데, 온 땅이 말라있는데, ‘큰 비소리가 있나이다.’라고 하는 이 말을
왕앞에 가서 합니다. 이렇게 자신있게 얘기한 것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상18:1 많은 날이 지나고, 제 3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엘리야가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내가 비를 내릴 터이니, 아합에게 가서 얘기하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비가 올 것을 확신했습니다.
천둥과 번개소리보다 더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그가 들었어요.
기도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그 믿음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무조건 ‘믿습니다’ 하면 안 되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으로, 지금 아합에게 나아가, '큰 비소리가 있나이다.'
비가 지금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아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아합에게 나아가 말한 것이죠.
여러분, 오늘 우리의 기도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가 어떻게 기도의 응답을 받았는지 살펴보면,
그는 기도의 방식이 항상 말씀을 먼저 붙잡았습니다.
자신이 먼저 기도하지 않았어요. 먼저 말씀을 읽으면서,
매일 말씀을 읽는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그 말씀의 약속을 주장하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약속하신대로 이루어주시옵소서!’
여러분, 말씀 붙잡고 기도하셔야 됩니다. 오늘 아합에게 나아갔던 엘리야,
비의 조짐이 없어도 기도했고,
비가 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비가 올 것이라고 말했던 엘리야!
그는 말씀에 근거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3. 세 번째 엘리야의 기도의 특징은 "간절함"입니다.
여러분이 엘리야의 기도가, 좀 특이합니다.
‘얼굴을 무릎 사이에 집어넣고’ 기도합니다. 왕상18:42
상상해 보세요. 얼굴(머리)을 무릎사이에 집어넣습니다. 배가 나오신 분은 쉽지 않은 자세입니다.
왜 이렇게 기도하죠? 간절함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본문에도 보면,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약5:17
‘간절히’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대충 알 수 있어요.
기도를 하기는 하는데, 몸은 뒤로 제끼고, 다리는 꼬고, 팔짱은 끼고, 고개는 뒤로 제끼고..
벌써 간절함이 없는 거잖아요.
그 다음에 또 가서 커피한잔 마시고, 이게 간절함이 없는 기도입니다.
여러분, 기도에는 간절함이 있어야 됩니다.
한나가 자식을 달라고 기도할 때, 얼마나 통절하게 기도했는지.. 엘리 제사장이 오해한 것입니다.
‘이 대낮에 술을 마셨구나.’ 이렇게 막 책망했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무릎사이에 얼굴을 넣은 것은, 간절함이고, 기도에 몰입하고, 기도의 집중력을 말합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태도를 말합니다.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그가 하나님과의 관계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오늘날 기도의 간절함이 없습니까?
하나님 외에 다른 대안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수없는 방법과, 그 빠져나갈 자기의 모든 것들을 다 준비해 놓고, 대충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직 답답하지 않은 거죠.
그러나 벼랑 끝에서 하는 기도는 다릅니다. 간절함이 있는 거죠.
‘하나님 이 일을 해결해 주시지 않으면, 나는 소망이 없습니다. 길이 없습니다. 다른 탈출구가 없습니다.’
대충 때우는 기도, 간절함이 빠진 기도는, 진정한 기도가 아닙니다.
▲여러분, 무릎을 한 번 꿇어보십시오. 기도의 자세도 참 중요하더라고요.
무릎을 꿇고 기도해 보세요. 한 번 실험해 보십시오.
푹신한 의자, 소파에 앉아서 기도하는 것과
무릎을 딱 꿇으면, 느낌부터가 다릅니다.
자기의 마음에 있는 게, 겉으로 행동으로도 표현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새벽기도 예배가 마치고,
성도들이 강대상 앞으로 나와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강대상 앞바닥이, 무슨 특별한 영험이 있는 자리는 아니지만,
기도자의 간절함을 대변해 주는 것입니다.
요즘 철야기도때는 중고등부 학생들이, 이 강대상 앞바닥을 점거해서
어른들이 끼일 틈도 없어졌습니다.
지난 금요철야 때도 얼마나 큰 은혜가 있었는지, 꽉 차서 자리가 없었습니다.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이 시대에 이런 교회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중고등부 학생들이 3백명 이상 나옵니다. 4시까지 올나잇 철야를 했습니다.
여러분 간절함이 빠진 기도는,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의 내용이 중요하지, 자세가 그렇게 중요하냐?’
아닙니다. 간절함은 태도, 자세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기도는 매달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결사적인 것입니다.
▲엘리야의 태도에서, 그걸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무릎사이에 머리를 넣었다는 것은,
간절함과 아울러, 겸손함이 배어나오는 거죠.
여러분 엘리야는 이미, 왕상18장에 보면, 비가 내리게 하는 이 기도 앞부분의 사건에,
갈멜산상에서 850대 1로 승리를 거두는 사건이 나옵니다.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처단하는 승리의 사건,
민족적인 아주 스타가 될 수 있는, 그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승리를 거둔 이후에, 이 엘리야가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는 모습속에서,
그는 승리의 도취되어있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여러분, 그는 선지자로서 강력한 능력을 보여주었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에 도취되지 않고, 도리어 겸손하게 엎드렸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좀 성공하면 자만하잖아요. 인간이 얼마나 빨리 착각합니까.
마치 자기가 하나님이 된 듯한 느낌!
그러면 여러분, 내가 성공하고, 세상적으로 잘 나가면, 당장 무슨 증상이 일어납니까?
어디에 가장 영향이 일어나느냐면, 기도에서 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거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간절함은 사라지고, 교만이 머리를 드는 것입니다.
기도를 해도, ‘하나님 도와주십시오.’가 아니고, ‘하나님, 요즘 제가 필요하시죠?’ 합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가장 경종을 울려야 하는 부분은, 간절함이 사라졌어요.
한국교회의 위기는 기도의 약화인데, 왜 약화되었습니까?
간절함이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약식 기도, 간단한 기도, 대충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무시를 당하고 있는 거지요. 왜냐면 배가 부르니까요.
한국교회가 배가 불러졌습니다. 세속주의가 찾아오고, 물질만능이 찾아오고,
우리가 세상의 화려함들에 도취되어서, 하나님앞에 간절히 나아가는 기도의 약화가,
한국교회를 약화시킨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배가 불러 교만해져서, 내 기도의 태도에 문제가 생겼는지
자세히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우리 영적인 모든 질병은, 거기서부터 출발합니다.
엘리야는 승리 이후에, 팡파르를 울리며 자기의 자만에 빠지지 않고,
머리를 무릎사이에 넣고, 겸손하게 간절함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써
응답받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4. 포기하지 않는 기도입니다.
엘리야는 기도한 후에, 종에게 ‘올라가서 바다 편을 한 번 바라보라’
그러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조금 더 기도하다가 다시 종에게
‘다시 가서 보아라’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7번 반복했습니다.
7번이나 사환에게 기도의 응답을 확인하게 합니다.
여러분, 기도를 열심히 하지만, 현실은 더 악화될 수 있습니다.
응답의 조짐조차 보이지 않을 때 낙심하죠.
내가 그렇게 기도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낙심하지 않고, 계속 바라보게 합니다.
드디어 7번째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7번째!
▲여기서 '7번'이란 말은, 하나님의 때를 의미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때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편에서 하나님의 시간에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응답은 우리가 조정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기도하면, 즉시 모든 것을 응답하실 것이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인간이 하나님이 되시고, 하나님은 인간의 종으로 전락되고 맙니다.
내가 부르기만 하면, 짠 하고 금방 나타나주시고,
내가 기도하기만 하면 금방응답하신다면, 그 분은 우리 종이 되시는 거죠
▲여러분, 신앙은 즉각적인 응답보다는,
오래 동안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하면서, 영적으로 더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이 지체될 때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는 은혜를 체험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다가, 기도응답이 될 때는
내가 원했던 기도응답보다, 더 큰 응답을 기도속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기도응답이 길어질 때는,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가 반드시 있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1년, 2년.. 여러 해 동안 기도했는데, 응답이 되지 않는다고 포기하고 싶은 분들이 계십니까?
아닙니다. 낙심은 금물입니다.
눅18장에 보면, 한 억울한 과부의 이야기를 통해서
‘낙심하지 말고, 끈질기게 기도해야’ 할 것을 주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이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게 기도하라’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에 대해..’ 눅18:1
이것은, 우리의 기도가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에서 왜 많은 사람들이 실패합니까? 한 때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삶에 성급함은 금물입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은, 우리의 시계에 맞추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정확한 때를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늦으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때는 가장 완벽한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우리의 삶에 가장 적합한 때가 언제인지를 아십니다.
그 분은 타이밍의 귀재가 되십니다. 여러분, 언제까지 기도해야 될 것입니까?
답은 딱 나왔습니다. 응답을 받을 때까지!
그런데 그 시간을 우리가 조정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마침내 엘리야의 기도는 응답을 받습니다.
기도에 있어서 확신을 가져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사실!
그리고 기적의 기도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 기도”를 배워야 될 줄 믿습니다.
신앙생활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헌신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그게 성경의 전언입니다.
▲그러면 엘리야의 기도는, 어떤 응답으로 나타났습니까?
3년반동안 닫혔던 하늘이 열렸습니다. 기도는 상상을 넘어선 결과를 가져오게 합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혹독하게 메마른 땅에 비를 내리게 하고, 땅이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
여러분, 그의 기도는 국가적 난제를 풀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운명은, 아합왕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고, 엘리야의 기도에 달려 있었습니다.
본문은, 한 사람의 기도가 한 국가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 있음을, 아주 잘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불이 내리게도 하고, 물이 내리게도 했습니다.
갈멜산 정상에서는 불이 내리게 했습니다. 그건 심판의 불이었습니다.
본문에서는, 하늘에서 비가(물이) 내리게 했습니다.
불은 심판을 의미하고, 물은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기근이 임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다면, 다시 비가 내린 것은, 하나님의 긍휼의 회복이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하늘 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본문은, 기도의 사명이 얼마나 큰 가를 보여줍니다.
우리 신약의 백성들은 다 '왕같은 제사장'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도는 왕적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도해야 될 절실한 사명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 북핵문제가 있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많은 난제들이 우리 한국사회 안에 있습니다만
지금 가장 큰 이슈 중에 하나가 북핵 문제입니다.
누가 이 문제를 풀 것입니까?
남북한의 이 극한 대립, 이미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없는 한계를 우리가 맞고 있습니다.
이 남북한의 첨예한 대립, 핵으로 무장하고 있는 북한과의 관계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왕적인 기도가 필요합니다. *벧후2:8 왕같은 제사장의 기도
여러분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기도라는 핵’을 갖고 있습니다.
기도보다 더 강한 것은 없습니다.
기도보다 강한 능력은 없습니다. 기도보다 더 센 것은 없습니다.
북한이 지금 계발하는 미사일이 미국본토까지 타격하겠다고 떠벌리는데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한 순간에 미국본토가 아니라, 온 세계를 돕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순간에, 지구의 반대편에도 역사하게 하는 힘이 있죠.
기도가 그런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발사되면, 어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온 땅에 충만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 분의 통치 아래 온 땅이 다스림을 받게 하는 일이, 기도입니다.
▲저는 지금 기도의 불이 꺼지고 있는 한국교회 안에,
금요철야에 이렇게 많은 성도님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지난 주 금요일에는 밤을 새워서 기도하고, 많이들 밤을 새워서 기도하셨습니다.
북한의 핵을 능가하는, 그것을 이기는, 기도하는 민족은 망하지 않을 줄 믿습니다.
우리 기도를 주님이 들으십니다.
저는 한국에 돌아와서 이 민족의 통일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제 마음에 아픔이 있고, 그래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가 이 통일 시대에 우리의 자녀들, 다음 세대들을 일으키게 하시고,
다음 세대가 통일 세대가 되게 하여 주소서.'
지난 주 교역자 회의할 때도,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통일을 위해서 기도하게 하고,
통일의 일꾼이 되는 비전을 갖게 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등의 회의를 했습니다.
우리 후대는 통일된 세대를 살 것입니다. 지금 믿음을 가지고 준비해야 합니다.
통일을 앞두고 한국교회가 해야 될 일은, 복음으로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 민족의 현대 역사에 유래가 없는 가장 기가 막힌 사건이, 통일일 것입니다.
그 통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비밀이 열리고, 그것을 위해서 우리 차세대 학생들을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철야를 마치고 내려가는데, 중고등부 학생들이 있는데 북한 말씨를 써더라고요. 탈북청소년들인 거죠.
그들이 통일에 대한 교회적 관심에, 얼마나 좋아하는지요. 통일은 이미 와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발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기도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머물러 있을 때가 많습니다. 좀 더 넓혀야 합니다.
세상에 현실적 문제를 직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의 고통의 소리를 듣고, 기도로 연결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중보기도자들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역사의 향방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 기도의 영토를 넓혀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로 이 땅에 영적 기근을, 물댄 동산으로 바꾸는 역사를 일으켜야 합니다.
시대마다 어두움을 밝혔던 힘은, 의인들의 기도였습니다.
그것은 역사가 말해주고, 성경이 말씀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기도를 통하여, 하늘 문을 여는 역사를 일으켜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삶에, 그 기도 가운데 수없는 사람들이
그 영적 기근에서 벗어나는 은혜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엘리야의 한 사람의 기도가, 기근을 종식시켰다면,
오늘 우리를 통해서 이 땅의 영적 기근을,
이 세상의 어두움을 걷어내는 유일한 대안이 기도일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일으키고, 죽은 땅에 생명이 나게 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닥치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늘 문이 열려야 하는 것입니다.
가끔 문을 열려고 하는데, 막 안 열립니다. 키를 넣어서 돌려도 안 열립니다.
나중에 너무 힘을 써서, 키가 휘어지고 부러지기까지 합니다.
알고 보니까 엉뚱한 키를 넣어서 돌린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안 맞는 키를 가지고 별 짓을 다하는데, 문이 안 열리고 힘만 쓰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의 노력으로, 노력해서 될 일이 있죠.
그러나 우리의 삶은, 우리의 노력을 벗어난, 우리의 능력을 벗어난 일들을 수없이 맞이합니다.
하늘 문이 닫혀 있으면, 우리가 별 일을 다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닫으신 문은, 하나님만이 여십니다.
무엇을 통하여? 의인의 기도를 통해서요.
▲여러분, '하늘 문이 열린다'는 말은, 독특한 표현입니다. 하늘의 권능이 임한다는 뜻이죠.
초월적 능력이 임한다는 의미입니다. 마3:16, 계3:8
'하늘문이 열린다'는 것은 세상적으로 풀 수 없는 것을 푼다는 얘기입니다.
지금도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 문이 열리면, 땅의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확신입니다.
인간의 흥망성쇠, 실패와 성공, 죽고 사는 것, 하늘 문의 개폐에 달려 있는 줄 믿습니다.
성도는 땅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자들이고, 기도란 하늘을 응시하는 것입니다.
오늘 야고보서를 보면서 우리는 성숙에 대한 열망, 변화된 삶을 갈망했습니다.
그런데 성숙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의 의지적 순종으로 따를 때 가능합니다.
듣기만 하는 것은 자기 기만입니다, 성숙은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기도가 야고보서에서 마지막으로 마무리 되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는 거죠.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논리만으로 안 되고, 지식만을 쌓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능력의 싸움입니다. 실력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여러분, 능력이 있어야 말잔치를 걷어내는 것입니다.
믿음의 세계가 말로만 끝나지 않게 하려면,
하늘 문이 열리는, 능력있는 기도를 체험해야 된다는 사실을, 야고보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늘의 능력을 경험하는 길이, 우리에게 활짝 열려 있습니다.
하늘과 땅이 교감하는 그 기도생활이 관건입니다.
유한이 무한의 세계와 접촉이 일어나게 하는 게, 기도입니다.
▲마치는 말
우리는 기도마저 이론이 되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말은 잘 하고, 아는 것은 많은데,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왜 영적침체가 찾아옵니까? 맥 빠진 기도생활을 왜 하죠?
해결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능력 있는 기도! 하늘 문을 여는 기도!
칠흑같이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냈던 엘리야는, 오늘 우리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입니다.
야고보가 왜 이 점을 강조하느냐면,
신자라면 누구나 그런 능력있는 기도를 오늘도 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에 도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한 시대를 열었던, 한 시대에 재앙을 끝나게 했던, 하늘 문이 열리게 했던 그 엘리야!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삶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천만인이 붙어도 안 되는 일이라도, 하나님이 하시면 될 줄 믿습니다.
통일도 그렇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인간의 방법과 정치적 모든 지략으로도 풀리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열면 열립니다.
어느 날 갑자기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준비하든/하지 않든 하나님이 열면 열릴 것이고,
하나님이 교회를 사용해 주실 줄로 믿고, 준비된 자들을 하나님이 그 일에 맡겨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사는 길은 기도입니다.
명목상의 신자가 아니라, 말뿐인 신자가 아니라, 능력있는 신자로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주변을 보면, 하늘이 닫혀있는 땅의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고통하는 사람들을 보면, 의인의 기도가, 즉 우리의 책임입니다.
우리가 하늘문을 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하늘문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나려면,
그 가정에 깨어있는 한 사람이 필요한 거죠.
기도하는 한 사람이 있으면, 그 가정에 모든 닫힌 문들이 열리게 될 줄 믿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가족들이 고생하고 있다면,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기도의 사람으로서 마땅한 기도를 올리지 않고,
기도의 책임을 다하기 않았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다 고생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안에, 이러한 우리와 성정이 똑같은 엘리야의 능력있는 기도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도전 받고 여러분의 삶속에 하늘의 능력을 구하고,
하늘의 능력이, 하늘의 역사가 오늘 우리 땅 가운데 실현되는 일들이
여러분의 삶에 재현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엘리야의 그 시대가 오늘 우리 시대와 너무 비슷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필요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 속에 기도가 관건입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믿음으로, 끈질기고 겸손하게, 집중력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당신의 백성들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늘문은 오늘도 열릴 줄 믿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인생이 닫혀 있고, 안 풀려서 답답하다면,
내가 노력하지만 안 되는 게 많습니다. 닫혀 있습니다.
내가 노력을 많이하는 데 결실이 없습니다.
하늘 문이 열려야 됩니다. 그 키는 하나님이 쥐고 계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무릎 꿇고 주님 앞에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엉뚱한 데서 여러분이 열려고 막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받고 힘들고 지치고 상하고 무너지고 깨어진 삶을 반복하지 마십시오.
키는 하나입니다. 하늘 문이 열려야 합니다. 하늘 문을 열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내 인생 가운데도, 하늘 문을 열어주십시오. 기적을 보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그런 역사는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나에게도 하늘 문을 여소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 우리의 삶 가운데 엘리야 시대에 일어났던
그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소서. 3년반동안 닫혔던 하늘 문이 열리고,
그 땅에 비가 내려서,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를 맛보게 하여 주소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가 우리 삶 가운데 다스려지게 하시고,
우리 가정과 직장에, 이 민족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게 하소서.
이 민족가운데 하늘 문이 열려서, 주님의 권능의 손으로
평화로운 통일을 허락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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