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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6

시험이 없을 수는 없다

LNCK 2016. 3. 15. 12:27

시험이 없을 수는 없다        벧전4:12~13, 약1:14        16.02.26 출처보기 

                                                           

*원제목 : 시험에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자 中 일부 발췌

   

◑시험을 이겨야, 구원의 완성에 이릅니다.

 

시험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요즈음 제게도 적용이 될 것 같고, 교회에도 적용이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 시험(유혹, 고난, test를 다 포함하는 의미)을 겪는 분이 많이 계실 것 같아서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는, 시험이 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성장은, 언제나 그 시험을 이길 그때 비로소 성장합니다.

 

신앙성장은, 자연적으로 성장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육신은 태어나면 자연적으로 성장하지만

신앙은 자연적으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자동으로 자라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고 신앙은, 시험을 이길 때만 성장합니다.

시험을 이기지 못하면, 신앙은 정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합니다.

 

시험을 이기고 성령을 받잖아요.

성령을 받고 나면, 또 많은 시험들이 오는데,

그것을 이길 때, 더 충만함 받고, 더 영적으로 성장하거든요.

 

그렇게 성장하던 어느 시기에, 신앙이 딱 정체됩니다.

그리고 퇴보하기도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시죠?

뭔가 시험에, 그가 걸려서 넘어진 것입니다.

 

시험이 극복 안 되면, 신앙은 추락하게 되고

시험을 승리할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목적지까지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서에 많은 비유가 나오는데, 제일 중요한 비유가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비유인데요.

 

길가, 돌밭, 가시밭, 옥토에 떨어진 씨.. 이렇게 4가지 밭이 나오는 데요.

결국 복음의 씨앗이 구원의 열매까지 맺는 밭은, 마지막 옥토 뿐입니다.

 

돌밭, 가시밭은, 처음에는 뭔가 뿌리를 내리고, 뭔가 뻗어나가는 것 같았지만

결국은 다 뽑히고 막혀버렸습니다.

뭣 때문에 막혔는지 아시죠? - 시험에 걸려 막혀버렸습니다.

 

"세상의 유혹"이라는 시험,

"환란"이라는 시험,

"물질"의 시험

 

그래서 복음의 씨앗이 떨어지면, 구원의 열매까지 가야 되는데,

중간에 쭉정이가 되어버리거나, 타서 말라 버립니다.

구원까지 못 갑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시작하지만

끝까지 완주하는 사람은 적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대로 '내가 나의 날려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는 의의 면류관을 받는다'는 그 승리의 면류관을 받는 사람이,

성경의 맥락 그대로를 보면, 적다는 것입니다.

 

시작은 했는데, 가다가 시험에 걸려서 넘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등 4복음서 전체에, '씨 뿌리는 비유'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사복음서에 네 번 다 나오는 비유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하게 하신 이유는,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옥토가 되어서, 구원의 열매를 얻을 사람은, 따르는 무리들 가운데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끝까지 인내해서 열매 맺는 일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말이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중간에 시험에 걸려 넘어지는 것을 미리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제 과거를 돌이켜 보면, 성령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음이 불편한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자꾸 짜증이 나고, 신경질이 나더라고요. 제 마음에 뭔가 시험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있다가 짜증이 나서, 그냥 집에 확 와버렸습니다.

그리고 귀찮아서 그냥 주일날, 집에서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그때 제가 시험에 든 것입니다.

 

감사하게 하나님께서 그 순간에 제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TV에서 <초원의 집>이라는 프로가 있었는데, 맹인 제니 라는 딸이 처음 점자 책을 배우면서,

선생님이 그 점자 책을 읽어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창세기1장 이었어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게 TV에서 나오는데,

성령께서 시험에 들어 그냥 다 포기하고 누워있는 제 마음 안에, 은혜를 주시더라고요.

 

'태초에 하나님이 대형이를 창조하시니라. 대형이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렇게 해석이 되면서,

주님께서 누워있는 제게 '이 세상에 창조되기 전부터, 나의 계획 속에 네가 있었고,

태초에 내가 너를 지었을 때, 이미 너는 나의 기쁨이었다.'

 

그런 해석이 제 마음에 되면서, 갑자기 누워있는 제게 눈물이 흘러내리면서

다시 벌떡 일어나 제 마음이 회복되었어요.

    

▲제가 이 교회를 개척한 후 약 5년 가까이 지나오는 오늘까지

오는 과정에서 여러 시험들이 매우 많았거든요.

 

비록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시험들이

없었던 날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이 이런 은혜, 저런 은혜주시면서,

그래서 그 시험의 허들(장애)을 뛰어넘고, 또 뛰어넘으면서,

오늘 이 자리까지 온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삶에 크고 작은 시험이 늘 도사리고 있고, 우리를 넘어뜨리려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겨내야 합니다. 이겨져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까지 갑니다.

 

시험에 강한 크리스천이 되어야 합니다.

시험에 약해 빠진, 정말 맥을 못 추는 크리스천은, 그 사람은 언젠가는 중도 탈락합니다.

끝까지 가려면 시험에 강해야 되거든요.

 

계시록에 주님께서 하신 반복되는 말씀은

'이기는 자는.. 이기는 자는..'

 

이기는 자가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요. 이기는 자가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을 것이요.

이기는 자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할 것이요.

이기는 자가 하늘보좌에 주님과 함께 앉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어떤 시험에 걸려있습니까?

몸은 예배실에 앉아 있지만, 내 마음은 지금 시험에 들어 있습니까?

이기십시오. 이겨야 주님이 말씀하신 그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연단을 위해서,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제가 오늘 말씀 준비하면서 한 가지를 깨달은 게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시험에 강한 신자가 되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면 시험이 많기 때문에 시험에 강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부러, 정말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온실속에 화초처럼 인도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시험을 일부러 겪게 하시면서,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이 깨달음이 왔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글을 읽었는데요.

아이들을 너무 깨끗하게 키우지 마십시오.

부모가 그냥 아이들이 조금만 뭐가 묻어도 깨끗이 씻기고

어떤 세균 있는 곳은 보내지도 않고, 그런 호들갑을 떠는 어머니들이 많은데

그게 의학적으로 건강에 안 좋답니다.

 

오히려 독일이나 유럽에는 어릴 적에 아이가 세균과 많이 접하도록 키운답니다.

뛰어놀다가 땅의 흙먼지도 좀 마시게 하고, 산 속에서 막 뒹굴면서 약간 지저분해도 놔 둔 답니다.

왜냐면 그렇게 면역력을 키워야, 나중에 커서 아토피도 안 걸리고,

그리고 감기도 덜 걸리고 더 강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 깨끗하게 키우면, 나중에 정말 센 병균이 올 때, 그것을 이기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권사님은, 큰 아이가 다재성 내성 결핵 때문에 굉장히 힘들었는데

후회하더라고요. 어릴 적부터 너무 깔끔하게 키운 것입니다.

그렇게 키운 것에 대해서 후회하더라고요.

 

더러운 데서 좀 구르면서 크면,

그런 과정에서 아이 몸에 점점 항체가 생기면서 면역력이 강해지는 거죠.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이끄실 때

정말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처음부터 이것 저것 시험을 겪게 하십니다.

 

   저를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이것 저것 부딪혀가면서

   '제 안에 시험의 면역력을 주님께서 키우셨다' 라는 것을,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 번 깊이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에 강한 신자가 되기 원하십니다.

왜냐면 이 땅을 걸어가야 하는 수많은 길에, 만만치 않은 시험이 있고,

특별히 마지막 시대에는, 정말 온 세상에 시험이 오는 때입니다.

 

지금 IS가 기독교인을 공격하는 뉴스들은,

어쩌면 마지막 때 이런 현상들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어떤 전조가 될 수 있습니다.

IS의 최대 적은 기독교인인 것을 아시죠?

 

계시록에도 '하늘에서, 목 베임을 당한 영혼들이 하나님께 호소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런 예언처럼 지금 IS가 성도들의 목을 베고 있습니다.

 

장차 다가올 그런 큰 시험을 이기려면, 지금 자잘한 시험들을 부딪혀가면서

지금 이기는 연습을 해야, 마지막 때에 다가올 큰 시험도 이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는 너무 약해빠져가지고, 누가 조금만 눈을 흘겨서 자기를 쳐다봐도

   시험에 들어서 '나 교회 안 나가!' 합니다.

   누가 자기를 째려봤다는 것입니다.

 

   이런 작은 시험에도 흔들거리면, 장차 다가올 큰 시험을 우리가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우리에게 시험이 있을 때, 오히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지나온 삶에 있었던 시험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왜냐면 그 시험들이 다 용광로였더라고요.

 

여러분, 용광로는 우리를 해체시키는 곳입니다.

편안한 용광로는 없습니다. 용광로는 다 고통스러운 곳이거든요.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께서 이런 저런 용광로를 마련하셔서

그 속에서 우리를 연단하시고 강하게 만드십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우리는 물러터진

정말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없는, 그런 사람밖에 못 되었겠지요.

 

   자 그럼 오늘 이 시험에 대하여 살펴볼 텐데요, 그런 여러 가지 시험이 감사하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이겨야 그 시험이 나를 더 강하게 하지, 시험에 부딪혔는데 내가 잡아먹히면,

   결국 믿음이 퇴보하게 되거든요

 

 

그럼 시험을 어떻게 이기고, 어떻게 대비해야 합니까

 

1.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여기지 마십시오.

 

여러분, 시험이 왜 올까요?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말씀이 많은데

왜 자꾸 시험이 다가오죠?

아셔야 될 것은, 이 땅의 과정은 천국에 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천국은 시험이 없는 곳입니다. 그곳은 완벽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 땅은, 시험이 있는 광야의 길입니다.

 

그러니까 이 땅을 걸어가면서, 시험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마치 전쟁터에 나갔는데, 총알이 안 날아오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이 땅의 삶은 마귀가 우리를 시험하고, 이 땅에서의 삶은 늘 우리의 연약함이 있고,

이 땅에서의 삶은, 인간안에 그 죄성이, 우리 안에서 꾸역꾸역 흘러나오는게 이 땅의 삶이잖아요.

 

그곳에서 사는데, 여기에 저기에 죄가 있고,

마귀가 정말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공격하려고 하고,

우리 안에 연약함이 있는데, 이 땅을 살아가면서, 어찌 시험이 없겠습니까.

이 땅에서는 어디에 가나 시험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희 교회에 오시면서, 막 사모하는 마음으로 오십니다.

   마치 이 교회에 오면, 자기가 진짜 완전히 잘 될 것 같은 마음으로 오십니다.

   죄송합니다. 이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교회도 시험이 많은 교회입니다.

 

   제가 지금 47개월 개척목회하는데요, 끊임없이 보글보글 시험이 연속되어 끓고 있습니다.

   마치 급행열차가 칙칙폭폭하며 가는 느낌

   또는 비행기가 굉음을 내면서 가는 느낌입니다.

 

   가기는 가는데, 달리기는 달리는데, 그 과정에 어려움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잔잔하고 태평하게 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지난 47개월 그냥 달려왔지만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혜를 부으시니까,

-그러니까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끄집어내리려고 이런 저런 시험으로 공격해 오죠.

 

-또한 담임목회자 및 지도자들의 부족함

-또 저희 교회로 오시는 분들의 연약함들이 다 아우러지는데

 

그렇지만 성령은 역사하시고, 하나님께서 이 교회에 기름을 부어주시면서 역사하시지만

그것을 따라다니면서 그만큼 상응하는 마귀의 시험과 환란이 동시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과연 제대로 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잠시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어디가나 시험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 태어나면서부터 헤롯이 미쳐서 죽이려고 하는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살 아래 애들을 다 죽이잖아요. 예수님께서 공생애 시작하실 때,

4:1에 보면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다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맨 처음 하신 일은 광야에 가서 시험을 받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마귀가 와서 '이 돌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높은 데서 뛰어내려 보라.

내게 절하면 천하영광을 다 네게 주리라'는 등의 시험을 했죠.

 

공생애 시작하자마자 마귀에게 십자포화를 받고 시작하셨고요.

주님의 공생애 내내 편안하셨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을 아시죠?

 

나사렛에서 첫 번째로 말씀을 전하니까, 벼랑끝에서 밀쳐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가는 데마다 예수님을 추앙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반대로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었습니다.

 

그것을 다 부딪혀 가면서, 주님은 이 땅에서 사역하셨어요.

어느 날은 너무 힘들어서, 심한 통곡과 간구로 눈물로 하나님앞에 아뢰면서, 5:7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 위를 걸어가시면서, 심한 통곡으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앞에 기도하여 도움을 입으면서, 마지막 십자가까지 지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땅은 광야의 삶입니다.

이 땅에 파라다이스가 있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의 영혼안에 하나님이 평강을 주시지만

우리의 바깥 환경에는, 늘 도사리고 있는 시험이 있는데,

그러한 시험이 올 때,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반응하시면 안 됩니다.

 

벧전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왜 내게 이런 시험이 왔어?' 라고 말하지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시험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시험을 당하셨으니까요.

 

성경의 인물들을 보십시오.

성경에 나와있는 인물 가운데 시험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땅을 살아가면서, 심지어는 한 어머니 뱃속에서 같이 태어난 형제들끼리도

시험을 겪으면서 서로 죽이니 살리니 합니다.

그것도 모태신앙 가정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3대째 내려가면서

쌍둥이 안에 얼마나 큰 갈등이 일어납니까.

 

시험이 올 때, 이상한 일로 여기시면 안 됩니다. 시험은 이기셔야 되는 일입니다.

이상한 게 아니라, 당연한데 그러나 '아 주님이 나를 단련하시려고 하시는구나

주님이 나를 더 큰 그릇으로 만드시려나 보다' 하고 이기셔야 합니다.

 

오히려 신앙생활하면서 시험이 너무 없으면, 그때는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생각하셔야 합니다.

'왜 내 신앙생활에 시험이 없지? 어 문제가 있구나 지금!'

그리고 주님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셔야 합니다.

'주님 왜 제게 시험을 안 주십니까? 주님 나를 미워하십니까?(농담 아니고 진담입니다.)’

 

요한 웨슬리가 그랬답니다. 복음을 전하러 갈 때, 늘 사람들이 핍박하고 돌을 던졌는데,

한 동안 돌이 안 날아오는 것입니다. 그때 자기가 문득 생각했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 버림 받았는가?'

그래서 말을 타고 가다가 말에서 내려서 기도하고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왜 돌이 안 날아오는 겁니까?' 그랬더니 다시 돌이 날아왔다는 겁니다.

 

   순회선교단 중의 어떤 분이 그랬답니다.

   연말에 '하나님, 나를 왜 사랑하지 않으십니까. 내가 연초에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내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 시험을 달라고 제가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지난 1년을 돌아보니까, 시험은 하나도 없고 은혜만 받았습니다.

   어찌 저를 미워하십니까, 어찌 저를 버리셨나이까.' 이런 식으로 기도를 했답니다.

 

   우리는 시험이 없어야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그 선교사는 시험이 없이 너무나 편안하게 지내온 지난 1년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오히려 고민하더라는 것입니다.

 

뭐가 정상일까요? 시험이 없기만을 바라고,

시험이 조금만 오면 막 놀라고 시험에 드는게, 그게 정상일까요?

아니면 시험을 당연히 여기는 것이 정상일까요?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매일 시험이 찾아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 안에서도, 시험이 있습니다.

당연하게 여기셔야 합니다.

 

이 땅에 시험이 또 왜 오는 것일까요?

 

2. 자기 욕심 때문에 시험에 빠집니다.

 

야고보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말씀인데요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우리가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시험들 가운데,

결국 자기 욕심 때문에 받는 시험도 있습니다.

그 시험을 유발한 주체는 너의 연약함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혹자가 제게 '당신 정말 마음에 안 드네요. 당신이 목사 맞습니까?'

제가 그 말을 듣고서, 시험에 들 수도 있고, 시험에 안 들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만약에 제 마음을 겸손히 낮추어서, '그래 나는 부족한 자가 맞아.

저 분의 말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경고일 수도 있어. 그래 나는 부족한 자야, 목사 같지도 않아!'

이렇게 나를 딱 낮추면 겸손하게 하면, 그 말이 제게 시험이 안 됩니다.

 

그런데 제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저 자가 감히 목사한테.. 저런 건방진 분이 다 있어..'

이렇게 제 스스로 높이면, 그 말은 내 마음속에 걸려서 시험이 됩니다. 상처가 되고 미움이 됩니다.

 

여러분, 물론 그렇게 말한 사람에게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어떤 면에서 보면, 그 시험에 걸린 것은 나의 어떠한 교만이 작용한 것입니다.

 

   실제로 어떤 분이 교인에게 사기를 쳤습니다.

   여기에 투자하면, 매달 20%의 수익금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말이 안 되는데, 5~6개월동안 꼬박꼬박 이자를 준 것입니다.

   1억을 투자했는데, 한 달에 수익이 2천만원씩 5달 동안 배당받았습니다.

   벌써 투자 원금이 회수된 것입니다. 아직 투자 원금은 고스란히 살아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다음부터는, 빚을 얻어서 수 억원을 투자했는데, 지나고 보니까 사기꾼이었습니다.

   싹 다 떼먹고 사무실 철수하고 날라버렸습니다.

 

   그때 그 교인은 시험들어서 하나님께 원망하고, 투정하고 불평할 수 있겠지만,

   그런데 보세요. 그 분이 왜 시험에 들었습니까?

   자기 마음에 욕심이 있어서, 자기가 스스로 그물에 걸린 것입니다.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결국 자기 욕심에 이끌려, 시험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시험에 들 때,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내 안에 그 시험에 빠지게 했던 뭔가의 원인이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끔 목회하면서 과거에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내가 목회하면서 시험에 들어서 낙심하고

제가 상처받고, 왜 슬럼프에 빠져서

그렇게 한 동안 내가 영적으로 그렇게 번 아웃(다 타버림)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거기에 키는 나한테 있었더라고요.

 

그러한 여러 갈등의 관계에 있을 때, 제가 가만히 보니까

제가 그 문제의 전면에 서서 반응을 보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거는 틀린 거 아니냐, 나 이거 마음에 들지 않아'

 

또는 교인들이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할 때

제가 2001~2003년까지 안성에서 개척교회를 했을 때, 힘든 교인들이 많이 왔습니다.

가정이 어렵고, 경제가 어렵고, 가정 폭력이 있고

제게 찾아와서 그런 일들을 하소연 했거든요.

 

제가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제 마음은 늘 힘들었습니다. *듣는 것도 힘듭니다.

그렇게 1년반 지나면서, 제가 영적으로 확 가라앉아버렸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제가 잘못한 것이었더라고요.

 

그러한 문제를 제가 들었을 때, 제가 해결할 힘이 없으니까 주님 앞에 갔었어야 되는데,

주님 앞에 가는게 아니라

내가 거기 전면에 서서, 내가 어떻게 하려고, 내가 막 상처 받고, 내가 힘겨워 하고,

그렇게 몇 년 지나가니까, 제가 슬럼프에 빠져버린 것이었습니다.

결국 주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회복시켜 주셨지만요.

,

그래서 2003년도에 저를 단련하시기 위해서, 부목사의 길로 주님께서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8년 정도 안산과 성남에서 부목사로 섬기면서,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2011년도에 경기도 용인시 수지 지역으로 개척을 나올 때, 제가 고민이 되었습니다.

 

제가 개척한지 4년만에 번 아웃 되었거든요. 30살부터 시작해서 34세에 번아웃되었는데,

내가 다시 개척하면 또 4년만에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그때는 교인들이 50명 안팎이었는데, 제가 마음에 다짐한게 있습니다.

'그때처럼 반응하지 말아야 되겠다. 문제가 생길 때, 내가 전면에 나서서 내가 그걸 짊어지지 말아야 되겠다 주님 앞에 가야 되겠다. 주님께 드려야 되겠다..' 라고 다짐했습니다. 

 

왜요? 내가 못하겠더라고요. 한 사람도 내 힘으로 안 되겠더라고요.

여러분, 여러분의 그 속썩이는 자녀

여러분의 힘으로 자기 배로 낳은 내 권위 아래 있는 아이도 내 마음대로 안 되잖아요.

그게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주님이 하셔야 합니다. 주님께 맡기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에서, 1천명이 예배드리는데,

다른 말로 하면 1천명의 시험이 있다는 말입니다.
50명 예배드린다는 말은, 50명의 시험이 있는 것이고

1만명 예배드린다는 말은, 1만명의 시험이 있다는 말입니다.

매 사람마다 다 시험이 있으니까요. 그게 인간입니다.

 

제가 만약에 다 일일이 짊어지면, 저는 아마 지금쯤 확 가라앉아서

마음은 상처투성이고, 그냥 눌려서 도망가야 되겠다.. 이런 마음이 들 것 같아요.

 

이제 그런 마음 안 들어요. 여러 가지 일도 있고,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어왔지만,

그러나 제가 시험에 들지 않는 길을 알았어요. 그때마다 주님 앞에 다 맡깁니다.

제가 회개할 것은 회개합니다. 나를 낮출 것은 낮추고 그리고 다 주님 앞에 맡기면서

주님 안에 거하려고 해요. 그러면 제 마음이 보호되더라고요.

 

그리고 그 하나하나를 주님이 주시는 지혜 속에서,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면서

지금 47개월 왔는데, 괜찮아요. 앞으로도 저는 그렇게 갈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시험이 있을 때, 우리가 기억하셔야 될 것은,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믿음입니다.

어떠한 환경이 있다 할지라도, 그 어려운 시험의 환경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셔야 되고요,

주님이 원하는 것은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그것을 대처하는 우리의 태도, 우리의 내적인 힘!

이러한 부분들을 믿음 안에서 훈련하면서,

 

그것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이 될 때

주님은 그 사람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