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6

칼럼 3편 스크랩 / 30년 전 그 산에서 등

LNCK 2016. 3. 16. 21:09

◈칼럼 3편 스크랩                      창32:26                 스크랩, 출처


김철기, 허운석 선교사 칼럼을, 출처 홈페이지에서 스크랩했습니다.


◑1.  30년전 그 산에서


김철기 선교사  칼럼            2006년 08월


30년전으로 거슬러가는 그 가난했던 시절,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어 이 몸 바칩니다.' 했던 그 약속을 하나님이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 제가  처음으로 그 산에 올라갔었습니다.

당시 영동교회 김의순 전도사님이라는 분과 함께, 삼각산(북한산) 통일봉이라는 곳에 갔었습니다.

"방언을 받으면 몇시간이고 기도를 할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나도 그렇게 기도를 하고 싶어서, 전도사님을 따라 방언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올라다녔던 그 산은,

가난했던 저희가 주말과 공휴일에 철야를 하기 위하여 늘 오르던 산이 되었습니다.

추위를 피하기 위하여 비닐을 뒤집어 쓰고 밤을 새우며, 목이 터지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무슨 기도를 했는지 회상해 봅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이 몸을 바치기 원합니다. 은사를 주시옵소서. 이 민족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런 기도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밤이면 밤마다, 여러 분들의 기도하는 소리가 산 전체에 울렸었습니다.

낮에도 기도하러 그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1984년 겨울, "신학생이 새벽기도를 하지 않으므로 이혼하자"는 아내의 협박에 못 이겨

다시 삼각산을 찾아가서, 40일 금식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영하 15도의 추위속에서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셔서 그추위를 느끼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 굶주림도 견딜만 하였습니다.

그 금식기도가 끝날 무렵,

"나사렛과 갈릴리의 가난한 삶을 배우라. 목회자가 없는 농촌교회의 잃어버린 양떼를 돌보라"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최일도 목사의 소개로 경북 금릉군 부항면 월곡리 학동에 소재한

부항중앙교회에 찾아가서 6년을 목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저희를 브라질 아마존으로 보내셨습니다.
아마존에서 15년반을 인디오 형제들과 살았습니다.

그리고 안식년으로 한국에 들어와서 

2006년 8월 20일 아마존에서 저희와 동행했던 네명의 형제들과 함께 새벽기도를 마치고

그 삼각산에 올랐습니다. 제가 금식하던 바로 그 자리에 섰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그분의 임재을 느끼며 통곡하였습니다.

"이 몸을 바치기 원합니다" 라고 기도했던 그 기도를 잊지 않고 기억하셔서

저를 아마존에 보내신 그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였기 때문입니다.

함께 동행하였던 아마존 형제들에게 그 경험을 전하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함의 복이 얼마나 큰지 설명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만이 이 몸을 바칩니다! 라고 기도할 수 있다.

너희도 그렇게 기도하고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바란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고 그산을 내려왔습니다.

언제 다시 그산에 오를지 모르지만, 그때나 지금까지 '이 몸을 바칩니다' 라는 기도를

계속 바치도록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 너무나 감사함으로..


김철기 선교사  기도편지, 2007년 12월


1991년 3월 선교사로 파송되어 물설고 낯설기만 했던 브라질 쌍파울로에 들어왔을 때

저를 불렀던 선배 목사님이 당시 브라질 화폐가 개혁되어, 달러가치가 극히 적으므로

쌍파울로에서 포어(포르투갈어) 공부가 불가능하니

포어를 공부하지 말고 곧 아마존으로 들어 가자고 하였습니다.


너무 난감한 상황에서 파송교회에 상황을 알려드리는 편지를 팩스로 보냈고

파송교회에서 언어학교에 필요한 등록금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셔서 10개월간 언어를 배웠습니다.

저희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언어공부에 매달렸습니다.

그런 결과, 1992년 1월말 아마존에 들어갔을 때, 저는 포어로 설교와 강의가 가능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 무더위와 부족한 음식과 독충들에 시달리면서

매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루의 생존도 불가능함을 알게 되어 매일 주님을 붙들며 살았습니다.

저희는 3년간 저를 불러주셨던 선배 목사님의 명을 따라

그곳에 신학교를 세우고 가르치고, 순회목회를 기쁨으로 하였습니다.

제 집사람과 아이들은 '레치시아'라는 콜롬비아의 작은 국경도시에 거주하고

저는 아마존 솔리모이스 강변에서 신학교 사역을 하며 생활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말에만 가족들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주일이 되면 가족들을 카누에 태우고, 여러 곳의 인디오 마을들을 순회하며 예배를 인도하며

순회 목회를 하였습니다.

저는 처음에 세계선교부로부터 아마존에 가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제 마음에 품었던 생각은

복음이 한 번도 전해지지 않은 깊은 정글 속, 미전도 부족이 거주하는 곳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던 그 부르심에 응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메바 선교회(Missao MEVA)의 소개로

야노마미 부족이 거주하는 호라이마 주(Estado Roraima)의 뚜꾸싱(Tucusim)이라는 곳,

아직 문명에 접촉되지 않은 야노마미 부족들에게 가서 성경번역 사역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므로 부족들이 거주하는 근처까지 가서, 정보를 구하고 한국에 첫 안식년을 갔습니다.

한국에 가서 후기 사역의 사역계획을 파송교회에 이야기 하였을 때

총회 세계선교부는 환영하였지만, 파송교회 당회로부터 많은 반대가 있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장로님들을 설득 하였지만

오랜 기간의 투자에 비해 적은 열매와, 선교사 신변의 안전을 이야기하며 거절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당회원 장로님 한 분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간의 잣대로 재지 말라”는 음성을 들으시고

그분이 다른 당회원들을 설득하신 결과, 다시 당회를 통해 선교사로 채택받고 브라질로 보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브라질로 보내주시는 조건이

저희가 들어가서 사역하고 싶었던 위험한 사역지에 들어가지 말라는 것과

생활비 이외는 후원하지 않겠다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명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한국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 보다 더 큰일을 행하셨습니다.

1995년 3월에 다른 두 후원교회와 여러 성도님들의 연속적인 도움으로

대지를 구입하고, 노후 건물을 수리해서 1995년 6월 25일에 예배를 시작하였습니다.

제 집사람이 20일 금식을 하는 중에

1995년 4월 저희가 전혀 모르는 LA 조목사님께서 저희의 소식을 들으시고

저희를 찾아 아마존까지 오셔서 저희 프로젝트를 들으시고 기뻐하시며

함께 신학교를 세우자고 하셨습니다.


일년이 지나고 LA의 백명남짓한 교회에서 정성껏 헌금을 모아서 보내주심으로써

신학교 건축이 시작되고, 1997년 3월 21일 신학교가 열명의 신학생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시작되고 신학교가 이루어지면서

저희는 늘 인디오 마을에 의료선교와 복음 전도를 위하여 정글 마을들을 방문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놀랍게 행하실 때

사탄이 극렬하게 저희를 선교지에서 추방하기 위하여 역사하였습니다.

12년전 썽가브리에우 다 까쇼에이라에서 사역을 시작할 때

주변 다른 선교단체로부터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을 받고 핍박을 받으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저희 선교대상인 인디오 형제들이, 다른 선교회 선교사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그대로 믿고

저희에게서 등을 돌렸습니다.

한 번은 저를 살해하고자 샘물에 독을 풀어서, 그 샘물을 마시고 생명의 위험을 경험하였습니다.

주변인들의 질투와 시기로 인하여 까닭없이 고소하는 사건들을 통하여

브라질 법관앞에서 제가 해명하며, 추방의 위험을 겪었습니다.

타 선교회의 중상모략과 맞물려, 저희 아이들의 공부하는 길이 막혀서

일년간 선교지에서 공부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신학교내에서 신학생들이, 저희를 반대하고 반기를 드는 일도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로 오늘을 잘 살아내게 하여주십시오.” 라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며

더위와 벌레들과의 힘겨운 전쟁을 매일 치렀습니다.

더위가 몸에 들어오면, 속이 울렁거리고 현기증이 나면서 토하고 싶은 증세가 나타납니다.

각 시간마다 종류를 달리해서 물어대는 독충들에게 물리면, 불타는 듯한 지옥경험을 하였습니다.

사랑과 감사, 용서라는 개념이 없는 인디오 신학생들에게

언어로 그 개념의 설명이 불가능하므로, 저희 몸으로 보여주고 그들이 그 개념들을 배우도록 해야 했습니다.

기도가 무었인지, 어떻게 기도하는지 몰라서

신학교가 시작되고 6년간 새벽마다 목이터지도록 기도하며

신학생들에게 주님을 경험시켜주시던지

아니면 저희를 데려가시든지, 둘중에 하나를 선택하시도록 기도하였습니다.

90명이 되는 신학교 가족들에게 의식주를 제공하고 신학교를 운영하기 위하여

저희 가족들을 위하여 보내주시는 생활비까지도 모두 사용하며 허리띠를 졸라매었습니다.

후에 은퇴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노후를 보장하시리라 믿고, 단 한푼도 저축하지 않았습니다.

선교동역자님들께서 보내주시는 모든 헌금 전액을 사역에 사용하였습니다.

은행잔고가 바닥날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겨우 2달러 3달러밖에 남아 있지 않아

숨을 죽이며 하나님께 은행 잔고를 보고 드리고 도움을 구했습니다.


이렇게 쪼들림을 인하여 감사를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든 일을 책임지고 계심을 확인시키시며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그분을 잊어버리지 않게 만들어준 안전 장치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양철 지붕의 낮고 낮은 목재가옥에서 9년을 살았습니다.

그 속에서 정오에 점심을 먹을 때는, 실내온도가 40도가 넘는 열기로 앉기도 서기도 불가능하였습니다.

양철지붕이 얼마나 낡았던지 비가 내리면 부엌과 마루에서 비가 샜습니다.

밤에 비가 쏟아지면 새벽 한시고 두시고 일어나서, 대야를 마루와 부엌에 받쳐서

집 전체가 물 바다가 되는 것을 막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감사했던 것은 우리 형제들의 집이 거의 모두 양철지붕으로 비가 새는데

우리도 함께 경험함을 기뻐하였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필요한 건물들을 모두 건축하고, 새 예배당이 완성되면 우리가 살 집을 마련하자고

제 집사람에게 그때까지 참아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제 집사람이 슬퍼하지 않고 제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선교지에서 우리는 김치와 한국음식을 먹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비행기로 두시간 거리의 가장 가까운 대도시에서 일본 간장과 된장을 구입하여

간장에 저린 양파와 멀겋게 끓인 된장국을 가끔 먹는 것을 제외하고 우리는 한국음식이라고는 없었습니다.

형제들의 마을에 가면, 화링야라는 구근식물가루와, 개미 양념을 넣고 끓인 생선탕과

사냥한 원숭이와 여러 동물고기 훈제한 것들을 같이 먹었습니다.


화장실은 열려진 정글전체였습니다.

저녁에 형제들의 집에서 해먹(그물 침대)을 걸고 잠을 잤고

함께 검은 강물에서 목욕하며 형제들의 마을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함께 생활하는 것이 기쁨이었습니다.

주님처럼 낮아질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일년간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놀고 있는 것을 딱하게 여기신 LA 어느 교회에서

저희 아이들을 미국으로 데려가셔서 공부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아이들이 우리를 필요로 할 때, 우리는 선교지에 있었습니다.

우리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부모가 없는 고아들보다 낫지 않느냐’고 말하며

감사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한달에 한번은 인디오 마을들을 방문하여, 의료선교와 복음전도를 병행하였습니다.
읍네 군인병원 의사들과, 한국과 미국에서 가끔씩 찾아오는 (단기의료선교)의사들을 동원하여

복음을 전하며 의료선교를 다녔습니다.

저희에게 아무 장비도 없을 때는, 매일 50달러씩 주고 모터와 기계를 빌려서 갔습니다.

후에 상파울로 교인의 도움으로 구입된, 길이 8미터 가로 1.6미터의 모터보트에

사람을 12~14명을 태우고, 그안에 가솔린과 짐을 실으면 다리도 제대로 펼수 없는 공간입니다.

일주일이 넘게 멀리 가야 하는 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중간 중간의 동네에 가솔린을 미리 보내놓고,

지나가면서 미리 보내 놓은 가솔린을 공급받았습니다.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출발하여 해가 진 후까지 하루 열네시간씩 달렸습니다.

점심은 이른 새벽에 밥과 라면을 섞어서 만들어서 가지고 가다가, 달려가는 보트안에서 먹었습니다.

어두어져서 더 달릴 수가 없게 되면 강변에 모터보트를 묶어 놓고,

불을 피워서 대충음식을 만들어 먹고,

몇 명은 보트안에서, 나머지는 정글의 나무들에 해먹을 걸고 잠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새벽에 출발하여 달려서, 목적지까지 다니며 이렇게 12년간 사역하였습니다.

자주 비가 내리는 아마존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고, 광풍이 몰아치기라도 하면 온 몸이 비에 젖었습니다.

달리는 모터보트의 속력에 뼈속까지 추위가 스며들었습니다.

다시 얼마 지나 비가 그치고 폭염이 내려쪼이면 온 몸이 햇빛에 익었습니다.


가끔씩은 모터가 고장났습니다. 그러면 강변에 모터보트를 묶어놓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습니다.

여행객이 별로 없는 강이라 어쩌다 누군가 지나가면 도움을 받아서 수리를 하고, 다시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여행을 하자면 폭포를 거슬러 오르고 내려야 했습니다.

카누나 보트를 폭포위로 끌어올리고 내릴 때, 쏟아져 내리는 물의 압력을 조절해야 하며

방향을 잡을 때 전율하는 공포가 있었습니다.

외마디로 주님을 찾으면서 숨가뿐 공포까닭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처음 우리가 선교사로 아마존에 올 때, 우리는 아마존에서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살아서 한국에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저희 내외는 주님을 사랑하고 인디오 형제들을 위하여 죽으러 아마존에 왔음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거절하지 않고 죽음을 기뻐하였습니다.

살기 위해서 아마존에 온것이 아니고, 죽기 위해서 아마존에 왔으므로

주어지는 고통이 오히려 우리를 기쁘게 하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였습니다.

전혀 우리를 낙심시킬 수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세상에 대하여 죽게하고, 주님을 향하여 살게 한다는 믿음을

주님께서 공급하여 주셔서, 우리는 모든 고통을 기뻐했고 항상 감사로 충만했습니다.

한알의 밀알이 썩어지듯

우리가 죽어서 인디오 형제들 가운데 많은 열매가 맺히기를 사모하였습니다.

제 집사람은, 송아지를 떼어놓고 사명의 길을 가야했던 벧세메스의 암소처럼

자식들보다 주님의 사명을,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선교사로 저와 동역하였습니다.

알레르기 피부를 가진 집사람 허선교사는, 시간대를 따라서 괴롭히는 온갖 독충들에 물리며

온 몸에 진물과 고름이 항상 흐르고, 독충에 물린상처들로 얼룩졌어도

제게 아마존을 떠나자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허선교사는 강의와 설교, 기타와 키보드 교수, 성가대 지휘, 학생들 상담을 하면서

저보다 더 많은 시간을 신학교에 헌신하였고, 말라리아에 걸려 심히 고생하였습니다.

아내가 폐암 선고를 받고도 슬퍼하지 않은 까닭은

그동안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며 그분을 위하여 기꺼이 죽기를 소원했던 자연스러운 결과였습니다.

죽음도 흔들지 못했던 제 아내의 믿음이 주님앞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저희가 아마존에서 주님과 함께 보냈던 16년동안

하나님이 부족한 저희를 사용하여 주셨음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신학교에 학생들과 가족들을 포함하여 약 90명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신학과정을, 저녁에는 중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약 50명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각 지역에 흩어져 목사로 선교사로 사역합니다.

12명이 단일부족 교회 총회를 통해 목사 안수를 받고, 인디오 출신 목사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일년에 두번 인디오 마을 교회 지도자 교육을 통해

연인원 700명 이상이 계속교육을 받고 인디오 교회들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개척된 두개의 교회에 약 350명의 교인들이 있습니다.

매주 다섯곳의 기도처를 통해 300명 이상이 복음을 듣습니다.


저희교회 치과 병원을 통해, 매주 주님의 이름으로 백여명이 치료를 받고 기쁜 소식을 듣습니다.
매월 1회 부흥회와 의료선교를 위해 찾아가는 인디오 마을들에서, 구원과 치료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제 저희 사역의 또 다른 장이 열릴 예정입니다.
첫번째는 12년동안 기도하였던 병원선이 준비되었고,

두번째는 저희가 그렇게 교회를 개척하기 원했던, 검은 강이 흐르면서 만들어 낸 두 동네,


비행기로 40분 거리에 있는 싼타이사베우(Santa Isabel)와

비행기로 한시간 20분거리에 있는 바르쎌로(Barcello,

브라질인들과 인디오 형제들이 함께 거주하는 저희 선교지 썽가브리에우 다 까쇼에이라 같은 곳)에 

지교회들이 개척되도록 상파울로에 있는 동역자들이 후원하여 대지가 구입되고 곧 건축이 시작됩니다.


그 지역에 저희 신학교를 졸업한 목사들이 선교사로 파송되어 활동하며

그 주변의 미전도 부족들을 위하여 사역합니다.

싼타이사베우와 바르쎌로의 교회들은, 그 동네 사람들을 전도하고

아울러 주변 인디오 부족들을 전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저희 병원선이 이 동네들을 지날 때 기지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비로소 아마존 강의 본류 중의 하나인 검은 강 전체를 저희 교구로 삼고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1985년 1월 눈쌓인 북한산 꼭대기 통일봉에서 “목숨을 바치겠습니다.”라는 약속과 함께

40일 금식기도를 마칠 때, 하나님께서 “갈릴리와 나사렛의 가난한 삶을 배우고

농촌의 목회자 없이 비어있는 교회를 돌보라" 하셨습니다.


저는 주저하지 않고 순종하여, 하늘 아래 첫동네라는 경북 금릉군 부항면 월곡리에

목회자 없이 비어 있는 교회에 가서 6년동안 섬김과 가난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농촌교회 6년 목회 후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라는 약속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은, 목숨을 바치도록 저희를 아마존 선교사로 부르셨습니다.


“6개월 전 브라질 아마존에서 선교사를 부르는데 아무도 지원자가 없으니 아마존에 가라”는

세계 선교부의 초대에 응답하고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저희 부부는 장신대 선교사 훈련원에 들어 가게되고

장로교(통합)총회 세계선교부 이름으로 아마존에 보내졌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낮추시며 겸손케 하셔서 주님을 더욱 의지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희를 신뢰하시고 사랑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서

하나님과 선교동역자님들 앞에서 언제나 어디서나 최선을 다하며 부끄럽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1990년 가을 저희가 선교사 훈련을 받던 중에 들은 설교내용 중에,

“하루동안의 전쟁을 위하여 십년동안 훈련한다”는 중국 격언을 기억하며

바로 오늘이, 내가 지금까지 훈련된 모든것을 바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날이기를 바라며 분투했습니다.

저희가 아마존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행한 것이 있다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선교동역자님들의 쉬지 않고 바치신 그 기도와 사랑 까닭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나님께 알려드리며

다시 한번 하나님과 선교동역자님들의 그 간절한 기도와 사랑과 은혜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저희들이 조금이나마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여 드리기를 원하며

선교동역자님들께 위로와 기쁨이 되기를 바라오며

계속하여 죽음으로 부르신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히 행하며,

저희가 달려갈 길을 다 가도록 기도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요. 김철기 드림



◑3. 인간과 하나님과의 싸움            창32:26


허운석 선교사 칼럼   2007년 10월


야곱은 계속해서 자신을 멀리 밀쳐내려고 하면서도

어쩐지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것처럼 보이는 천사를 꽉 붙잡고 한창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 났습니까?


이것은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영원한 싸움입니다.

이것은 한없이 복잡한 역사 안에서,

구원을 향한 하나님과 인간의 공통된 노력인 것입니다.

저는 이 격류속에서 여러분에게 무슨 일이 일어 났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제게 일어난 일만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저도 싸웠습니다, 저도 제 의지와 하나님의 의지 사이에서 .
일을 처리하시는 그 분의 방법과, 제 방법 사이에서 싸워야만 했습니다.

저는 진정 야곱의 이야기가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분투하고 있는 인간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극적인 기도 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경험에 의해 제기되는 영원한 질문이며

이 지구상에서 어둔밤을 사는 체험입니다.

우연성을 지닌 우리 인간이 머무는 곳은, 절대자인 하나님의 맞은편에 있습니다.

고통스럽게 얻어지는 자유의 학교는,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서

노예 생활에서 남겨진 족쇄를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의 그 무시무시한 밤에 당신 아버지와 분투하셨던 것입니다.
그결과 핏방울 같은 땀이 땅위에 뚝뚝 떨어졌습니다.
"제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눅22:42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만, 그러나 이 말씀은 싸움의 끝에 가서야 비로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조차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서로 다른 의지들이 존재하는-것입니다.


성부의 뜻과 반대되는 예수님 뜻이라면 어떤 것이었을까요?
분명 악한 뜻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극도의 시련 한가운데서, 당신의 메시아적 꿈의 성취로서 바라시는 게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인류의 선과 관계된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여! 제가 꼭 이런식으로 죽어야할 필요가 있습니까?"
"제가 십자가 위에서 처형되는 것을 사람들이 봐야만

비로소 하나님 당신이 제 아버지이심을 깨달을수 있겠습니까?"

"제가 종교 권력을 이용하여, 평등과 번영의 정책을 촉진시키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고, 그들이 필요로하는 집을 주며,

그들이 로마인들과 투쟁하여 얻고자하는 정치적 자유를 주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만일 예수님께서 마음 속에 선택할 수 있는 몇개의 대안들이 있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메시아가 지상에서 정의를 이루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선택의 여지는 두가지 중 하나였습니다.
-권력이냐, 봉사냐?
-율법이냐, 사랑이냐?
-내가 십자가에서 죽느냐, 나의 적을 십자가에 처형하느냐?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사랑의 우위성을 요구하셨습니다.

처음 부터 이것을 터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인류는 핵심을 깨닫게 될것 입니다.

어쨌든 언제나 말할수 있는것은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그것은 순교의 우위성이었습니다.

▲"그 분은 야곱을 이겨낼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 뼈를 쳤다.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가 환도뼈를 다치게 되었다".창32:26

이 대목은 우리를 참으로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설득하기 위하여 그에게 상처를 입히셨습니다.
그의 엉덩이 뼈를 치셔서 절뚝거리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조용히 앞으로 나아가십니다.
"자 이제는 너는 너의 약점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나를 의지하여라.  
비로소 너는 승리하게 될것이다".

그리고 나서 이 새로운 전략에 의해 모든것이 달라졌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야곱의 이름도 바꾸어 주십니다.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여라" 창 32:29

새로운 사람 이스라엘, 하나님과 싸워 절름발이가 된 사람이지만,

이제 그는 역사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곧 고통에 의해 겸손해진 사람, 나눔의 사람, 동료 인간을 이해하는 사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

자기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는 사람,

정복자이지만 과거의 그 물질적이고 오만한 방법으로 정복하지 않는 정복자,

행복 선언의 인간이 될것 입니다.

우리 모두는 어째서 고통이 존재해야하는지에 대해 곤혹스러워 하지만

저는 종종 고통 없는, 눈물 없는, 장애인들 없는, 피 흘림 없는, 휠체어 없는 세상이

과연 더 좋았을 것인지 긍금해 한적이 있습니다.


그 답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아닙니다.
고통이 없고, 눈물이 없고, 죽음이 없다면, 이 세상은 아주 추악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더욱 나쁜 일은, 인류가 더 악해져서, 거의 악마적이라고 까지 말할수 있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충분히 다른 세상을 만드실 수 있는 무수히 많은 방법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불가능한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고통이 없는 세상을 만드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분은 아픔이 없는 세상을 만드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자녀들을 끝없는 밀월 여행 중에 있는것 같은

신혼의 환희의 기쁨속에 계속 잠기게 하실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분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성적인 사랑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아가페적인 사랑에 익숙해 지기를 요구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기막히게 아름다운 새벽을 주셨지만

고통의 비극적인 밤들도 섞어 놓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건강과 힘을 주시면서도

폐에 구멍이 나거나 암세포가 퍼지게 하시기도 하시고
전혀 예기치 못한때 우리가 질식할 정도로 힘든 갈등을 허락 하십니다.


진정 악은 끔찍한 형상을 띨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원하시지 않으셨다고 말해보았자

인간의 죄와 파괴된 생태계 때문에 우리가 고통을 받는 것이라고 말해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따지고들면 결점이 들어나고 말 것입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무슨 일이든 하실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분이 원하시면 내 몸을 갉아먹고 있는 암을 멈추게도 하실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저는 야곱 식의 해결을 좋아합니다.
제게는 그것이 더 단순해 보입니다.
저를 절름발이로 만드신 분은 바로 그 하나님 이십니다.


여러분은 욥의 친구인 네 신학자들처럼

왜 우리가 고통을 당해야하고,

왜 하나님께서는 이세상의 고통을 허락하시는지에 대하여 끊임없이 논쟁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차라리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삶의 들판을 파괴하십니다.
그분의 적이 우리 자식들을 죽이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분은 저를 이 걸음더미 위에 올려 놓으셨습니다.


이 우주의 두개의 힘은 없습니다.
이 우주에는 단지 하나님의 힘- 즉 하나님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분은 개입하실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고통을 허락 하십니다.
그분은 전쟁을 허락하십니다.


그분은 네 사람의 마피아 두목이, 우리가 살고 있는 (브라질) 지역을 망치고 있을때

아무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놓아 두십니다.

이는 고통의 신비의 한 부분 입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허락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십니다.
하나님은 수확을 망쳐 놓으십니다.
하나님 폭풍 속에서 격노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바로 그 상처를 우리에게 허락하심으로써

바로 그일을 통하여 그분은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좋은 것을 끌어내 주십니다.


만일 제가 상처를 입지 않았다면, 저는 제 악마적인 자신감으로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저 자신을 얼마나 믿었겠습니까?

상처를 입음으로써, 저는 평온 가운데 머물게 되었고 우는 법을 배웠습니다.
눈물로써, 저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가난의 복됨을 배웠습니다.
이것은 사실 입니다.

만일 인간에게 고통이 없다면, 인내의 한계까지 밀려가지 않는다면

그들이 구원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만일 히브리 사람들이 애굽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었더라면

모세는 절대로 자유를 향한 탈출을 시도하도록, 히브리 사람들을 설득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사막이 뱀과 굶주림과 목마름 대신 사람을 매혹하는 오아시스로 가득찼더라면

그들은 절대로 약속의 땅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내일을 향해 움직이게 하는데, 고통보다 더욱 효과적인 박차는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야곱의 엉덩이 뼈를 걷어차신 이유 입니다.

우리는 가난을 두려워 하지만, 가난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받기를 두려워하지만, 고통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아픔 가운데서, 하나님을 더 깊이 발견하기 위해서 입니다.

가난은, 사람들에게 도덕의 평형 상태를 유지해 주고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가는 가족들이 덕을 갖추게 하며

그들의 소유욕을 제한해 줄 뿐 아니라,

인간 관계에서 겸손을 유지하고 열심히 일하도록 격려해 주며 희망을 길러 줍니다.

저는 비참함이 아니라 '가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난은 두 가지 저주 사이에 놓인 행복한 중용입니다.
두가지 저주 가운데 하나는 거의 언제나 착취와 불의와 강탈의 결과인 부요,

다른 하나는 여러분이 범한 악행이나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게 저지른 악행의 증거인 비참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인간적인 문제와 신적인 문제에 관한

성숙한 인격체가 될 수 있는 더 좋은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의 생활은, 본래 하나님이신 인간 나사렛 예수님의 생활에 가까운 것입니다.
지상에 사시는 동안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부도,

세례 요한의 극단적인 가난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좀더 쉽고 인간 본성에 맞는 모범을 보여주고자 하셨습니다.
즉 지상에서 지내는 짧은 삶을 열심히, 밝게, 검소하게,

그리고 열심히 일하며 평온하게 사는 사람들의 가난이 그것 입니다.

저는 역사의 긴장과 삶의 기쁨 사이의 균형,

빵을 얻기 위한 피땀과 식탁에 앉아 식사할 대의 만족감 사이의 균형,

공동으로 살기 위한 긴장과 서로 함께하는데서 오는 커다란 기쁨 사이의 이 균형 안에서,

우리의 자아 실현과 잠시 머무는 지상의 삶을 가장 쉽고 가장 풍요로운 방법으로 보내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제공해 주시는 가장 훌륭한 수단을 갖게 된다고 확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가운데 오심으로써 아직까지 누구에게나 영원에 이르는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확실한 삶의 양식을 보여주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나사렛의 '가난'이 우리에게 그 방법을 보여 줍니다.      


▲베로니카 성인의 고백에서
고통 받고 싶다는 열망이 제 마음 안에서 또 다시 불 붙는것 같았고 

저는 더욱 많은 평화를 경험했습니다.
그이후 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경험하셨고

이 최상의 광기는 아무리 감각적인 쾌락에 갇혀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 굳어진 마음에 대장간의 큰 망치처럼 떨어져, 그것을 부숴 버릴 수 있음을 저는 모를 수 없습니다.

이러한 단언은 자기 안에 갇혀 있어, 이기심의 지옥으로부터 도망칠수 없는 사람에 대한 승리 입니다.
결국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힘은 기쁨으로 노래하는 우리들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힘, 그 분은 영원하신 분, 이스라엘의 구원자."

고통을 사랑스럽게 받아들임으로써 겪을수 있는 격렬한 고통은

종종 악의 지옥을 피할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께서 "손이나 발이나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던져 버려라. ...

또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

주님이 괜히 이렇게 하신 말씀이 아니십니다.
이것이 손과 눈의 희생을 요구하시는 십자가의 어리석음 입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모든것을 하고자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이 단락, 까르로 까르또의 <왜> 라는 책에서 인용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과 나누고 싶어서요... 허운석

'분류 없음 > 2016'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자의 말  (0) 2016.03.18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되   (0) 2016.03.17
시험이 없을 수는 없다  (0) 2016.03.15
세상 역사는 영적 전쟁의 역사  (0) 2016.03.11
사람이 구원을 거절하게 되는 이유  (0) 2016.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