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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두 가지 선물 / 찰스 카린

LNCK 2016. 4. 15. 23:11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두 가지 선물      고후3:6, 갈1:8~12       영어번역, 출처

    - 성경과 성령


Amazing Dual Gifts From God!  by Charles Carrin



 

성경이 폭발적으로 많이 발간된 이유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셔서, 그 후 여러 가지가 달라졌는데

그 중 중요한 한 가지는, 성경책의 제작 생산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이전 역사에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유독 예수님에게만,

그 분의 행적을 <책>으로 기록해서 남기겠다는 일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났습니다.

 

다른 위인이 죽으면, 소수의 몇몇 사람만 불과 몇 권의 책을 남긴 것으로 끝났는데,

예수님의 죽음과 승천 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거나, 사본을 만들어서 전파했습니다.

고대의 다른 위인들과는 다른, 특이한 현상이었습니다.

 

그 결과, <신약성경>은, 고대의 모든 유명 서적들,

그러니까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헤르도투스, 호머 와 다른 고대 작가들의

모든 저서들을 다 합친 것보다

신약성경은 더 많이 사본으로 만들어져 배포되었습니다.

 

당시 고대작가들의 고전들이, 신약성경 때문에 빛이 바래버린 것입니다.

즉 요즘말로 하면, 그 책들의 출판 부수 순위가 신약성경 뒤로 밀린 것입니다.

 

▲이 현상에 대한 설명은 간단합니다.

<신약성경>이란 책은, 하나님에 대한 접근 경로로서 예수를 계시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고대 작가들은, 독자들에게 어떤 정보나 지식을 주었지만,

신약성경, 즉 예수님의 메시지는, 하나님을 만나게 해서, 독자들을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2천년이 지났지만, 이 책은 계속적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놀라운 계시를 불어넣어주고 있는데요.

 

1. 최근에 프린스턴 대학의 브루스 메쯔거 박사에 의하면, Bruce Metzger

5,686개의 고대 그리스어 신약성경 사본이, 현재까지 여전히 남아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다른 고대 사본들과 비교해 보면, 아주 놀라운 수치입니다.

*아마 나중에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사본까지, 다 합한 숫자로 여겨집니다.(이 문장 녹음할 필요 없음)

 

2. 고대 플라톤의 책의 사본이, 오늘까지 남아있는 것은 오직 7개에 불과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49,

헤로도투스는 8,

유리피데스는 9개 등입니다.

 

이 사본들은 원본이 나온 후 1천년 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도 신약성경에 비하면, 너무나 숫자가 적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고대 사본"의 기준으로 볼 때, 이런 고전들은 발행 부수에 있어서 <신약성경>과 도저히 비교가 안 됩니다.

 

3. <신약성경> 전체는 아니지만, 이 책의 일부분은

1세기 것이 아직까지도 남아있습니다.

다른 책에 비교하면, 놀랍게 보존이 잘 되었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의 일부분은, 오리지널 요한복음 원본이 쓰여진지 29년 후에 만들어진 사본이

오늘날까지 남아있습니다.

 

다른 어떤 고대 사본들도, 이같이 잘 보존되어 내려오는 책은 없습니다.

 

4. 신약성경만큼 다른 언어로 많이 번역된 고대의 책은 없습니다.

신약성경은, 시리아어 역본, 라틴어 역본, 콥틱어 역본, 아람어 역본 등으로 번역되어

지금까지 그 고대사본들이 다 합치면 19천권 정도가 남아있습니다.

 

다른 어떤 고대문헌도, 이렇게 여러 언어로 번역되거나,

또한 출판 부수도 많이 제작되지는 않았습니다.

 

5. 그래서 헬라어 사본과 합치면, 지금 전 세계에는 약24,000개의 고대 신약성경 사본이

현존하고 있는데,

이것은 신약학자들이 사본을 서로 비교해서, 정확한 원본을 찾는데 도움을 줍니다.

 

6. 그 결과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신약성경은, 본문의 99.5%가 정확합니다.

다른 어떤 고대 서적도, 사본이 여러 차례 베껴져 전해 내려오는 과정에서

이런 정확성을 띠는 책은 없습니다.

 

또한 사본의 보존 상태도, 고대의 다른 어떤 문서보다 훌륭습니다.

*주로 양피지, 즉 양 가죽에 기록했는데, 철심으로 점을 쿡쿡쿡쿡 찍어서 글자를 기록했고,

그 홈에 잉크를 적셔서 기록했으니, 엄청난 노력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오리지널 신약성경이 기록될 당시에

수많은 다른 증인들이 여전히 생존해 있었고,

그래서 만약 그 책들이 부정확했다면, 증인들이 아마 큰 목소리로 책의 틀린 점을 지적했을 것입니다.

 

고대의 책들은, 그 사람들이 죽고 난 후에, 그 후대 사람들이 만든 것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그런 고대 문헌들은 정확하다고 믿으면서도

신약성경은 그런 정확성을 믿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그 반대인데 말입니다.

 

여러분,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신약성경은 수 천 개의 사본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정작 고대 다른 사본들은, 이렇게 많이 내려오지도 않고,

그 당시에 많이 출판되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지금 2천년 사이에 소실된 <신약성경 사본>까지 합치면

수만 권 이상이 사본으로 만들어졌다는 뜻인데,

왜 사람들은, 이렇게 많은 사본을 제작했을까요?

인쇄기가 발명되기도 전인데, 일일이 베껴쓰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신약성경을 그렇게 많이 베껴서 사본을 만들었을까요?

*한 페이지 베끼다가, 중간에 글자 한 자 틀리면, 그 페이지 처음부터 다시 써야 했습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복음이 고대 근동으로 무서운 속도로 퍼져 나갔으니까

따라서 신약성경에 대한 수요도, 아마 폭발적이었으리라 생각하는 거죠.

 

또한 성령님이, 신자들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문서 선교'사역에 불을 지르셨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렇게 많은 신약성경 사본들이

우리에게 남아져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지 불과 30년만 지났는데,

역사책에 보면, 수도 로마에서 크리스천의 숫자가 하도 많아서,

네로 황제는, 로마를 불 지르고, 그 책임을 크리스천들에게 덮어씌웠습니다.

그리고 수 천 명의 신자들을 학살했는데,

 

그만큼 불과 30년 만에 신자들의 숫자가 많아졌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가운데 수많은 <복음서> 책이 또한 필요했겠지요.

 

그런 극심한 핍박 가운데서, 신자들의 숫자는 감소하기보다는

오히려 급격하게 더 늘어났습니다.

 

물론 거기엔, 오순절 날 다락방에 임하신 성령님이

계속 똑같은 파워로 임하고 계셨기에, 새로 믿은 신자들이 똑같은 경험을 했기에

그런 폭발적 성장이 계속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이 "하나님이 주신 두 가지 선물"인데,

그것은 바로 성경과 성령인 것입니다.

 

성경 한 가지 만으로도 안 되고,

성령 한 가지 만으로도 안 됩니다.

둘은 2천년 전부터 같이 갔고, 오늘날에도 같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책의 발행과 그 책의 전파와 확산에 있어서,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꼭 필요했지만,

성경과 성령은, 또 다른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요..

 

 

성경 + 성령입니다.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성령의 역사가 꼭 필요합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헤로도투스의 책을 읽고 이해하는데는

자기의 명석한 두뇌와 지적인 능력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성경책을 이해하는 데는, 그것만 갖고는 절대로 안 됩니다.

거기엔 성령님의 계시, 또는 조명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혹자는, "정확한 성경사본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KJV성경이 좋다, 아니다 현대판 AV성경이 더 좋다" 등의 의견이 분분한데,

그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의 계시'라고 봅니다.


바울은 고후3:6절에서 이 점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오늘날에도 '성령의 계시' 없이 성경을 읽거나 가르치면

많은 교리적 혼란과 오해와 충돌만 일어납니다.

 

심지어 '성령의 계시'없이 성경을 지식적/교리적으로만 이해해서

그 지식 (위 구절에 '율법 조문') 오히려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머리 좋은 사람일수록, 또는 공부 많이 한 사람일수록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지혜로 깨닫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계시'로만 깨닫는 것을

늘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1: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성경과 올바른 신학을 가르치는 신학교의 역할은, 오늘날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신학자나 신학생 각자가, 개인적으로 성령의 세례를 받지 못했으면,

인간의 지식적으로 신학을 연구하게 되므로, 아주 무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 교리에 있어서, 교단적 입장이 차이가 있습니다.

혹시 그것은 성경을 '율법 조문'으로만 해석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그러므로 교리적 입장 차이에 있어서, 좀 더 유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진리에 대해서 타협하라는 뜻은 아니고요

교단적 입장 이외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유연하고 개방적이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으신 후에, 설교사역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소위 '예수님의 사명선언문'이라 불리는 눅4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4:18~19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려는 자들은,

주의 성령이 임하시고, 내게 기름부음이 임하는 체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신학교 졸업장만이 아니고요.

 

'크리스천'이란 말 자체가, '기름부음 받은 자(그리스도)'라는 말에서 파생된 말 아닙니까.

 

그래서 오늘날에도 크리스천에게 '기름부음이 임하면

그가 말씀을 가르칠 때, 기름부음이 임하는데,

 

그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여, 사람들이 구원 받는 일에, 그가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살전1:5) 같은 일들이

2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똑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은, 절대로 가만히 앉아있지 못합니다.

반드시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이모양 저모양으로 쓰임받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거기엔 표적과 기사도 자연스럽게 따르고요.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15:19-20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인위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레 부수적으로 나타납니다.

오늘날 내가 정말 성령의 기름부음 받은 사역자인지, 아닌지 그게 시금석입니다.


내 사역에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 나타나는가? .. 그것을 보면 됩니다.

인간적 머리로 복음을 전파하는 곳에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지요.

 

오늘날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의 조문'으로 전파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파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성령으로 말씀을 전파하는 곳에서는, 고넬료의 집과 같이

'성령이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내려오십니다.' 10:44~45

 

성령과 말씀은, 하나님의 두 가지 큰 선물이었습니다.

종종 우리는 하나만 강조하는 극단에 빠지기 쉽지만요.

 

사도 베드로가, 그 집에 가는 것은 반드시 필요했죠. 이와 같이 성령의 도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건 베드로가 전한 복음이 아니라, 성령이 베드로를 통해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지상명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28:18~20

이것은 그저 지식적인 말씀을 가르치라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말씀과 성령은, 성령과 말씀은.. 젓가락 두짝처럼 항상 같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성령의 역사'가 없는 '말씀'이면, 그건 성경을 인용하더라도 '인간의 말'일 뿐입니다.

말씀 사역자들은 꼭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엄히 경계했는데,

만약 오늘날 우리가 '성령'빠진 '말씀'을 전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오늘날의 '다른 복음'이 아닐까요?

2천년 전에 전해졌던 오리지널 복음과는 '다른 복음'이 맞습니다. 1:6~10

 

오늘날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두 가지 선물이 성령과 성경인데,

'성경'을 가르치면서, 거기에 '성령'이 빠져 있다면

그건 2천년 전 오리지널 복음과는 '다른 복음'이며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1:8

 

원래 갈라디아서 1장의 '다른 복음은, 교리적으로 다른 복음을 말하지만, 즉 율법주의를 말하지만

그 확대 해석하면, '성령이 빠진 복음 전파'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복음을, 너무 교리적으로, 지식적으로만 전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저 카린이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21세기 현대 교회가, 과연 1세기 초대교회의 복음을 회복할 수 있을런지요?

그건 성경에 적힌 복음의 말씀을,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억지로 그렇게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전해지는 것이죠.

 

예수님은 지상명령을 통해서, 그런 일들이 세상 끝 날까지 있을 것을

우리에게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 말씀+성령의 전파자는, 그래서 매 시대마다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지상명령을 통해서, 복음을 세상 끝까지, 땅끝까지 전파하라고 명하셨고,

그건 예수님의 명령이므로, 오늘날에도 반드시 시행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 주인공이면 좋지만,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라도 반드시 그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성령'이 빠진 '말로만 된 복음'을 전하면서

우리가 교리적으로 세계에서 제일 정통이다.. 라는 미혹에 빠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다른 데는 다 틀리고, 우리는 맞다. 그래서 우리가 사도적 apostolic 정통 교회다'라는데,

거기에 정말 성령의 역사가 있는가요? 그게 정말 사도적 정통 교회인가요?

아닙니다. '다른 복음'에 더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다행스럽게 지금 전 세계 20억 기독교인들 중에서,

적어도 5억이 성령충만을 인정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신자들입니다.

'문자적 복음'이 아니라, '성령의 복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신자들이

전 세계에서 더욱 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2가지 선물을

우리가 잘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