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6

비판하지 말라 / 잭 푸닌

LNCK 2016. 4. 12. 09:51

 

비판하지 말라               마7:1~5, 14:1~23, 벧전4:15              영어출처, 편역

Do not Judge by Zec Poonen

 

영분별은 필요하지만, 비판은 안 됩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7:1~2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판단하지 말 것을, 끊임없이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이웃을 판단하기 쉬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남이 나를 판단하고, 정죄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한 그대로.. 내가 되돌려 받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에 '분변하라'고는 명했습니다.

그 분변/분별은.. 오직 영적인 영적인 영역에 국한됩니다.

, 그의 가르침이 성경적인지,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것인지.. 분별하라고 하셨지요.

 

요일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또한 '영 분별'은 성령의 은사 중 한 하나이기도 합니다. 고전12:10

 

그러나 이 '영분별'은 오직 영적인 영역, 신앙적 영역에 국한된 것이며

신앙생활 적인 영역에 있어서는, '비판하지 말라'고 엄히 명하셨습니다.

 

비판과 판단은.. 자기 육신적 죄성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14장은, 우리가 자주 묵상해야 되는 장입니다.

예수님이 마7장에서 '비판하지 말라'고 명하셨다면,

사도바울은 롬14장에서 '비판하지 말라'고 길게 명하고 있습니다.

 

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4장을 요약하면, 먹는 문제로, 또는 날을 지키는 문제로

서로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다양성을 인정하라는 것이죠.

다만 성숙한 자는, 자기에게 자유함을 있어도, 남에게 비판 받을 만한 꺼리를 제공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 Zac Poonen, 실제적으로

오늘날 우리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쓸데없이 남을 함부로 비판하는지

한 번 실제적으로 거론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아래에 거론되는 문제에 있어서,

함부로 자기 생각/판단을, 이웃에게 전파해서는 안 될 것이며

또한 자기 마음으로도, 이웃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실제적인 사례들

 

▶1. 다른 성도가 가진 자동차에 대해서 비판하지 마십시오.

 

차가 없거나 초라하면.. 가난하다고 판단하기 쉽고,

차가 비싸거나 두 대 이상이면.. 또 사치한다고 비판합니다.

 

거기에다 한 술 더 떠서 '세상에 굶어죽는 사람'까지 운운하면,

'정죄' 수준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14: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각 사람이 직고.. 직접 보고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이웃의 타고다니는 차를 보고 판단한다면.. 내가 죄짓는 일이 됩니다.

 

 

2. 그 사람의 사는 집에 대해.. 판단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집이 작거나 없으면.. 그렇다고 판단을 하고,

반대로 집이 크거나 두 채 이상이면.. 또 그렇다고 판단을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이 앉아야 할 재판관의 자리에

자신이 대신 앉는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4:11~12

 

 

그 집에 있는 가구나, 공구, 가전제품, 자전거, 희한한 물건에 대해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비판은, 종종 질투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값비싼 목걸이를 가지고 있지만,

자기는 값비싼 자전거를 갖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값비싼 냉장고를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자기는 값비싼 화초를 많이 수집할 수도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일수록,

가급적 비판이나 판단을 줄여나가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의 연약한 점이 보이면, 불쌍히 여겨서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3. 그 집이, 자기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시키든지/말든지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에서도 이게 심각한 문제인데,

인도에서도 이게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되는가 봅니다.

 

그 집이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내든지 말든지,

조기유학을 보내든지 말든지

방학 때 외국에 연수를 보내든지 말든지.. 함부로 비판하지 마십시다.

      

▶4. 그가 은행에 얼마를 저축하고 있든지, 비판하지 맙시다.

 

물론 우리는, 이 땅에 재물을 쌓아서는 안 됩니다. 6:19

그렇지만 성경에는, 또 자녀들을 위하여 저축할 것을 용인하는 구절도 있습니다.

 

고후12:14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위 구절은, 직접적으로 '저축하라'고 명령하는 구절은 아니지만,

저축을 용인하고 있습니다.

 

 

딤전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매달 얼마를 도와주든지, 아니면 평소에 저축해서 목돈으로 도와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저축하는 것을 보고서,

'저 사람은 땅에다 재물을 쌓는다'고 무조건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축 없이 막 쓰는 사람들 중에.. 그래서 남을 못 도와주는 사람도 있고

아주 아껴서 저축하는 사람들 중에.. 남을 도와주는 사람도 많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판단하실 영역입니다.

 

▶5. 그가 얼마나 비싼 호텔, 식당을 이용하는지..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경제적 수준이 다 다르니까요.

 

 

▶6. 특별히 자매들은, 다른 자매들이 입는 옷, 가방, 두르는 장신구에 대해서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싸다. 사치다'라는 기준을, 자기가 정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눈에 사치로 보여도, 그 판단은 오직 하나님의 영역에 속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교회 갈 적에 아예 수수한 옷을 입고 가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합니다만

어쨌거나 성숙한 성도일수록, 상대방이 입은 옷, 가방, 장신구에 대해서

함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7. 남자 형제들이 머리를 치렁치렁 기르든지 말든지, 함부로 비판하지 맙시다.

인간의 본성은, 남자는 여자처럼 머리를 길게 기르지 말라고 말하지만,

신약에서 성경은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습니다.

 

고전11:14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구약에서 나실인의 서약을 할 때는 머리를 길게 기르고, 자르지 않았습니다. 6:5

예수님도 나사렛 사람이라, 머리를 길게 기르셨을 것이라 봅니다.

 

한때 미국의 보수/근본주의 교회는, 이발이나, 복장 규례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귀가 반드시 보여야 하며, (머리가 짧아야 하며)

여자는 무릎 위로 치마가 올라가서는 안 된다는 등이었습니다.

 

이제는 이런 것이 너무 '율법적'이라 하여, 거의 멍에를 얽어매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남의 헤어스타일에, 우리는 비판적이 되기 쉽지만,

'그 사람의 헤어스타일 문제'보다,

실제적으로 더 큰 문제는, 그걸 '비판하는 내 문제'인 것입니다.

 

여성이 남자처럼 짧은 머리를 깎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에게 긴 머리는, 그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고전11:15

 

여자가 여자의 긴 머리를 갖는 것은 좋지만,

혹시 여러 가지 이유로 짧은 머리를 가진다 하더라도,

(물론 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하지 않지만, 그래서 머리를 단정하게 하지만)

성숙한 성도일수록, 다른 여성이 짧은 머리를 가졌다고 해서, 비판하지 않습니다.

 

머리 염색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염색해서 남을 시험에 들게 하지 말아야 하지만,

그것보다는 염색한 사람을 보고, 판단하고 비판한다면.. 그게 더 큰 문제입니다.

 

여자들이 화장하는 방식을 놓고도, 구설수에 올리거나 씹지 맙시다.

물론 튀는 화장을 해서, 남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이 좋지만,

혹시 누가 화장을 좀 진하게 하든지, 반대로 생얼로 하더라도,

그걸 보고 쉽게 비판하는 사람은, 7:1절을 종종 암송해야 합니다.

 

나는 화장은 진하게 안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남에게 판단을 받을 영역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서로 비판을 하지 않는 성숙한 문화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8. 남이 TV보는 것도, 너무 비판하지 맙시다.

물론 음란한 영상물을 보거나, 폐인이 될 정도로 봐서는 안 되지만,

 

남이 TV로 스포츠를 보든 말든

장로님이 드라마를 보든 말든

그것까지 알아내서 비판꺼리로 삼는 것은,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주님을 제일 사랑해야 하지만,

그 외 영역에 있어서, 신앙의 기본적 원칙은 '자유'입니다.

 

기독교는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자유롭게'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나는 TV를 거의 안 보는데, 셀 그룹 리더는 왜 보느냐고..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는 TV는 안 보지만, 다른 영역에 빠져 있을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가급적 이웃을 판단,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그가 가진 TV의 크기, 이런 것에 너무 민감할 필요 없습니다.

자기는 영상물에 시험이 많이 드는 스타일이지만,

어떤 사람은 영상물에 시험이 거의 별로 안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9. 교인이 결혼할 때, 상대방의 사회적/경제적/교육적 수준을 고려해서

배우자를 고르는 것을 두고.. 함부로 비판하지 맙시다.

 

물론 우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메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우리는, 상대의 신앙과 믿음 수준을 먼저 고려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내 결혼도 아닌데, 이웃 집 결혼인데,

그가 상대방의 사회적/경제적/교육적 수준을 고려해서 꼼꼼이 따지더라도

그걸 '세속적이다'며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비판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이며

종종 나의 불찰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그 결혼이 화려하다/초라하다..는 문제로 비판하지 맙시다.

화려하면 화려하다고 비판하고

초라하면 초라하다고 비판합니다.

 

그렇다면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입니까?

혹시 '나 자신' 아닙니까?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는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부러움이 질투심 때문에.. 그가 화려하게 결혼식 한다고 비판하고,

반대로 내 교만한 마음 때문에.. 그가 초라하게 결혼식 한다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10. 그 외에도 많겠죠.

한국에는 노래방 문제가 있습니다.

가족끼리 가서 부르는, 건전한 노래방 문화도 있습니다.

 

그가 어쩌다가 노래방에 한 번 가는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그걸 작심하고 비판하는 사람이 문제가 더 큰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것을 더 무겁게 여기실 까요?

 

위의 대부분의 문제들은, 그 사람의 수입과 관련 있습니다.

성도들의 수입은 각자 다르며, 대부분은 자기 수입에 맞게

, , , 식당, 아이들 교육, 헤어스타일, 결혼식 수준을 결정합니다.

 

 

비판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

 

1. 우리는 '내가 기준'이 되어서,

남을 함부로 비판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A형제는, B가 운전할 때 끼어들기를 잘 하는 것을 비판합니다.

B가 신호도 잘 지키지 않고, 운전이 아주 엉망이라고 비판합니다. 사실입니다.

 

그러나 A형제는, 운전은 준법정신으로 잘 하지만

가끔씩 사업을 하면서, 탈세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한 분야에서는 잘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잘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부로 남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 우리 모두에게는, 아담에게 물려받은 본성인 '비판의 DNA'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은, '비판하는 그대로, 내가 잣대를 댄 그대로' 비판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대접한 대로 대접받는다는 식이지요.

그러므로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비판을 가급적 삼가야 하겠습니다.

 

베드로전서 3: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오늘 내가 불행하게 사는 이유는, 내가 입으로 거친 말을 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베드로는 '좋은 날 보기를 원하면 혀를 금하라'고 가르칩니다.

 

내가 뱉어내는 험담은, 상대방을 상하게 하기 이전에,

먼저 나부터 상하게 합니다. 나부터 그 독에 감염되는 것입니다.

 

    아침 운동을 나가면, 그 어둑컴컴한 미명에 다가오는 낯선 사람이, 먼저 인사를 건네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

    상대방을 기분좋게 하지만, 먼저 인사하는 그 사람에게 엔돌핀이 돌면서

    유쾌하고 즐거운 하루가 되는 것입니다.

 

3. 그리고 리더들은,

언제든지 설교나 대표기도나 찬양인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비판을 한다든지, 누구랑 싸운다든지..

그러면 성령님이 그를 떠나버리십니다. 멀리 가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 리더가 하는

설교/대표기도/찬양인도/전도/모임 인도는.. 죽을 쑤게 됩니다.

영력이 고갈되고 메말라 버리니까요.

 

그러므로 리더들은, 특별히 자기 입을 잘 제어해야 하겠습니다.

한 샘에서 단물과 쓴물을 한꺼번에 낼 수는 없으니까요.

 

4. 남의 일을 간섭하지 마십시오.. 라고 사도 베드로는 가르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아무도 살인자나 도둑이나 악을 행하는 자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서 고난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벧전4:15

a busybody in other men's matters.

 

물론 교회에서는 죄에 대해서, 돈이나 정욕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언급하고 성경적 기준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그 외 영역에 있어서는,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의 성향, 문화, 경제적 수준의 차이,

특히 위에서 언급한 많은 문제들은 경제적 수준 차이 때문에 발생되는 '판단'들입니다.

 

어떤 신학생이 보니까, 자기는 경차도 못 타는데

담임목사님은 중형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 신학생은, '나는 앞으로 평생 경차만 타겠다'고 결심하며,

중형차를 타는 목회자를, 자기 마음속으로 판단했습니다.

 

그 신학생이 과연 얼마나 자기 결심을 지켰을까요?

세월이 흐르고 기회가 되니까, 그는 오히려 자기 수준보다 더 큰 차를 타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젊은 시절의 결심과 판단을, 회개했다고 합니다.

 

//가방 등 그게 뭐든지, 크게 빚지는 일이 아니라면,

남이야 '사치스럽게 보이는' 일을 하더라도

'그와 하나님과 상관할 일'로 미루어 두십시오.

    

 

그 외 문제들

 

디도서2:4~5절은, '젊은 여자들이 집안 일을 하며,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합니다.

물론 우리는 그 성경적 기준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 구절이, '여성이 사회적 직업을 갖는 것을 금지하는 구절'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비판 중에 정말 조심할 것은, 성경 구절까지 인용해서 함부로 남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건 정말 바리새인이 되는 일이므로,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그 외에도 성탄절이나 부활절을 지키는 문제,

어떤 신자들은 그 절기들이 옛날에 이방종교의 축제와 결부되어 생긴 것이라서

성탄절과 부활절을 지키는 것을 반대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이 각자 자기 확신이나 신념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로,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봅니다.

 

14:5절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11: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